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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10-19 20:06 조회(100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528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남긴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 그의 미완의 작업

나는 살아 생전에 민중신학자 안병무를 딱 한 번 뵌 적이 있었다. 내가 한신대 신학과에 들어가기 전 서울 종로5가에서. 그때 당시 나는 그의 강연을 먼발치에서 들었었다. 연로하신 모습의 학자였지만 그래도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글이 내게 일으킨 변화는 참으로 컸었기에 존경어린 마음으로 보았었다. 그날 나의 인상에 강하게 남아 있었던 건 그 강연의 마지막 요지였다.

안병무는 민중신학이 사회운동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하겠지만, 기존 교회에 대해서도 계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었다. 민중신학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도 절망적인 교회 현실이기 때문에 결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말씀을 나는 분명하게 들은 바 있다. 그래서 민중신학도 바로 기존 교회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 내가 들은 그날 강연에 있어 마지막 요지였었다.

나는 원래는 보수 신앙인이었지만 민중신학을 접하면서도 그때까지의 내 신앙이 머리통이 완전히 뒤집힐 정도로 바뀐 터라 당시로선 민중신학과 관련된 저서들 뿐만 아니라 진보적인 사상들 대부분을 읽고 탐독하며 연구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 결실이 바로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이었고, 나의 그러한 신앙 여정에 대한 일말의 기록도 그 책에 남아 있다.

내가 읽고 연구한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민중신학적 상상력이 매우 풍부한 신학자로 남아 있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는 그의 선언적 언명이나 예수를 일종의 사건으로서 본 이해,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민중사건으로서의 예수를 언급한 점이나 인자 개념에 대한 집단적 이해, 그리고 화산맥으로서의 민중사건 등등.. 이런 언술과 개념들은 그의 신학적 상상력이 갖는 통찰에서 나온 언급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민중신학은 체계화되지 못한 채로 마감되고 말았었다. 또한 안병무와 함석헌은 서로 간에 친분이 두터웠으나 두 분 사이의 신학적 노선에는 약간의 변별적인 차이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해방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체제 해방을 우선한 안병무와 달리 함석헌은 존재 해방을 우선적으로 삼았었다(<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 pp.176-179 ; 안병무,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pp.108-109 참조). 하지만 둘 다 민중에 대한 차별없는 사랑과 평화를 중요시하는 면들은 공통적이었다.

기존 민중신학의 절실한 과제

이러한 안병무의 민중신학은 서남동과 함께 1세대 민중신학을 대표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1세대 이후의 2-3세대 민중신학자들의 노선에 대해선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 있다. 1세대 이후의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을 얘기하면서도 제대로 살려놓지도 못했으며 그저 민중신학을 팔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http://freeview.org/bbs/tb.php/b001/498 참조). 이들이 주로 현재 안병무를 기념하고 있는 교수 신학자들 세력인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민중신학은 정말로 다시 처음부터 세워져야 한다. 1세대 민중신학에는 매우 유효하게 살릴 수 있는 통찰적 개념들이 아주 풍부하다. 다소 모호한 형이상학적 입장으로 인해 다층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민중신학은 이를 다시 체계화하는 기초 체계화 작업부터 마련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의 첫번째 과제는 존재론과 우주론이 깃든 철학적 입장(=형이상학적 체계)부터 튼튼하게 쌓아갈 수 있도록 이를 명확히 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종교적 통찰에는 존재론과 우주론이 깃들어 있다. 사실 이 부분에선 안병무는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 옹에게서 좀더 배웠어야 했었다. 다석과 함석헌에게선 존재론과 우주론에 대한 형이상학적 성찰이 있다(참고로 다석에겐 거의 존재론이 발견되고, 함석헌에게선 다소 희박하지만 떼이야르 샤르뎅의 사상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주론적 통찰도 함께 발견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

1세대 민중신학을 이어받았던 이후의 민중신학자들이었다면 바로 이 부분이 더욱 명확히 하고 체계화했어야 했다고 본다. 어쨌든 아쉽게도 안병무의 이 작업은 그가 돌아가시기 직전 그의 말년에 동양사상에 대한 관심사로서 잠시 이뤄진 바라 안타까움이 많다. 흥미롭게도 같은 1세대 민중신학자였던 서남동 역시 과정신학과 과학철학에 대한 관심을 마지막 미완의 작업을 남겨놓고 떠났었다. 1세대 이후의 기존 민중신학자들은 얼마만큼 이 부분에 대한 작업들을 계승했었던 것일까..

민중신학의 가장 큰 두 번째 과제는 민중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다. 정말 이는 절실히 요구된다. 왜냐하면 어차피 민중신학의 모든 관련 개념들이 결국은 <민중>Minjung이라는 개념과 관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그 핵심부터가 구멍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안병무는 민중 개념에 대한 학문적 체계화 자체를 거부했었지만, 어차피 체계적 학문을 위해선 이는 피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문제는 학문적으로 개념을 정의하는 것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개념화 하느냐에 달려 있을 따름이다.

제대로 정립조차 되어 있지도 않은 그런 상황에서 나온 민중신학의 교리들 중의 하나가 바로 "민중은 역사의 주체"라는 명제다. 하지만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명제는 그저 의지적 요청일 순 있어도 학문화로서 들어올 수 있는 사실적 명제는 결코 아니다. 물론 3세대 민중신학에선 이를 민중사건으로서의 역사 주체성을 언급한 바 있다(본인의 "3세대 민중신학 비판"과 “새로운 민중신학의 민중론”에 대해선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 참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민중은 누구인가를 계속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민중이란 어떤 존재인가? 민중은 인간인가? 그렇다면 민중도 인간의 보편적 속성을 지닌 존재인가? 민중이 인간이라면 도대체 어떤 인간인 것인가? 단지 정치적으로 억압받고 경제적으로 궁핍하고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간으로서만인가? 그렇다면 그러한 민중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죽이는 폭력적 모습은 없는가? 그러한 민중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있진 않은가?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과 이러한 민중은 과연 어디에서부터 차이를 갖는 것인가? 또한 순복음류 교회 신앙에 홀려서 마치 기독교를 기복신앙화된 종교로서 변질시키고 있는 건 과연 누구였는가? 이들이 나중에 커서 교회를 크게 짓거나 다른 사람을 부리는 자본가가 되었다면 그는 민중을 탈피한 것인가? 도대체 누가 민중이고 민중이 아니란 것인가?

다시 말하지만, 민중신학은 아직도 1세대 이후를 제대로 넘어서질 못했었다. 무려 20년이 흘렀어도 말이다. 안병무의 통찰 가운데 예수의 부활을 민중사건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있다. 내가 아는 모든 역사적 예수 연구 성과물들 중에서 예수의 부활을 가장 잘 해석한 경우를 꼽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안병무가 민중신학이야기에서 말한 그 역사적 예수의 부활 해석을 꼽는다.

그러한 역사적 예수의 부활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깨어 있는 자들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다. 민중사건은 사회학적 해방 사건 이전에 이미 존재론적 해방을 성찰하게끔 하는 깨달음의 사건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학적 지평의 해방사건으로서 빛을 발하는 것뿐이다. 기존 민중신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대한 여실히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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