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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종교 위의 종교,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라는 원죄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12-13 02:18 조회(351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60 


 
종교 위의 종교,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라는 가장 근원적인 죄
 
- 새로운 기독교가 말하는 원죄론
 
 
모든 종교 위에 군림하고 있는 가장 궁극적인 종교가 있다.
기독교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등등
사실상 모든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에서도 가장 깊숙한 차원이다.
 
내가 알기에 아마도 기독교의 원죄를 말한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뭔가? 바로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다.
 
존재란 힘이다. 그렇다면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란 필연적으로 존재의 과잉으로 이어진다.
이 같은 존재의 과잉은 결국 다른 존재(힘)의 결핍을 낳는다.
이것은 곧 타자에 대한 폭력과 지배의 행사에 다름 아니다.
역으로 그 같은 존재의 과잉을 경험한 타자는 그로 인해 고통과 억압에 놓여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질서 세계 안에 있던 그 어떤 존재가 '힘의 과잉'을 숭상함으로 인해
존재의 과잉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연쇄적으로 이와 관계 맺고 있었던
모든 존재들의 흐트러짐들이 결국 발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원죄는 죄의 원형이자 첫단추의 의미를 지닌다.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에는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가 깔려 있다.
불교는 인간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태를 얘기한다.
욕심을 다스린다는 것은 욕심을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금욕은 해답이 아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욕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다.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는 결국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질서에 대한 숭배로 전환되어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의 질서가 있었고, 곧 타락이 있었다.
그 타락은 <힘(존재)의 과잉>을 불러옴으로서
하나님의 질서를 마구 흐트려놓은 타락이었다.
왜냐하면 힘(존재)의 과잉은 필연적으로 이웃한 힘(존재)의 결핍을 낳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 고통이 생기게 되고 악이 창궐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란 적재적소에 있어야 할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는
힘의 균등한 배분과 그에 따른 유기적 소통들이다.
그것은 모든 존재의 목적들의 조화다.
 
모든 존재 활동의 시작점에는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냐, 하나님 나라의 질서 숭배냐? 는 선택지가 있다.
이때 많은 이들이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로 빠진다.
 
기독교를 믿는 이슬람교를 믿든 불교를 믿는 유교를 믿든 과학을 믿든
혹은 자본주의를 쫓아가든 제국주의를 쫓아가던 간에
가장 원초적으로 달콤한 원형의 유혹을 거부하기란 매우 힘든 것이다.
 
사실 여성신학에서 말하는 <가부장성>도 바로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가 그 원형인 것이다.
내가 알기에 이 원형의 종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모든 종교 위에 군림하는 가장 원형의 종교이며,
지구상의 가장 많은 인간들이 숭배하는 최고의 종교이다.
 
예수도 죽기 직전까지 유대교를 넘어서 이 근원적인 악의 종교와 싸움질 했던 자였다.
십자가 처형 전날 밤, 예수의 겟세마넷 동산의 기도를 기억하는가.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여기서 '내 뜻'과 '아버지의 뜻'은 다른 것이다. 내 뜻은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를 뜻한다.
 
예수라고 해서 왜 인간적인 갈등들이 없었겠는가.
그로서도 정치적 성공을 꿈꿨을 법도 한 것이다. 좀더 편하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뜻, 곧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의 숭배의 길을 따른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따른다는 것은
근원적으로 우리 안에 있는 원죄의 해체요 극복으로 가는 길이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 회복은 세상 질서와 반대되는 거꾸로의 방향일 경우가 많다.
대체로 세상이 천하다고 버리고 소외시킨 것들을
오히려 가장 귀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은 하나님 나라에 눈을 뜬 자의 시각이다.
 
이제 더이상 세계 안에 죄의 되물림이 있어선 안된다.
 
나는 지금 매사에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를 따르는지 아니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 숭배>를 따르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서 늘 깨워있길 기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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