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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교회여, 하나님 나라와 천당을 구분하라!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3-23 12:01 조회(630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93 




천국과 천당도 구분 못하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

영혼구원과 인간구원 개념이 서로 다른 것처럼 <천국>과 <천당>이란 개념 역시 서로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흔히 <천국>과 <천당>을 구분하지 않고 종종 같이 쓸 때가 많다. 하지만 둘의 뜻은 천지차이다. <천당>이란 개념은, 이 땅에서 사람이 죽은 뒤에 그 영혼이 거주하는 영원복락의 내세를 의미한다. 현세와 내세를 구분하여 마련된, 매우 이원론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천국>은 무엇인가.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세와 내세를 나누는 것에 그 핵심을 두지 않는다. 거기가 어디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의(義), 하나님의 법(法)이 실현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인 것이다. 예컨대, 이 세계에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고 모든 만물들이 조화로운 세상이 된다면, 그 역시 하나님 나라에 속한다. 멀리 나갈 필요없이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사랑의 끈으로 엮여 있다면 그 역시 천국이요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과 흔히 얘기하는 천당은 분명하게 다른 개념이다. (사진작업 뉴스앤조이 신철민)

즉, 이렇게 볼 때 천국―또는 하나님 나라―과 천당이란 개념은 실로 그 뿌리가 전혀 다른 형이상학적 밑그림들을 각각 전제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 자신이 죽은 뒤에 가야할 내세를 더 중요시하는 이들이 많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추구해야 할 지점은 <천당>이 아니라 바로 천국 곧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이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속한다. 본래 역사적 예수가 이 땅에서 남기고 갔던 사역도 한 마디로 할 경우, <하나님 나라> 운동이었다.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서로의 목적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조화롭게 조정된 나라다. 그 나라는 하나님께서 현실 세계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신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다. 속된 말로 우리가 가장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일말의 충돌 같은 삶의 피곤함조차도 있어선 곤란할 것이다. 삶의 목적들이 충돌할 경우 실제적으로는 서로 폐가 되고 손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잘 먹고 가장 잘 살기 위해서는 나의 목적과 상대의 목적이 충돌나지 않는 그러한 상태여야 한다. 따라서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때 우리가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상태라고 하겠다.

1) 첫째, 모든 삶들의 목적들을 최대한 만족시킬 수 있어야만 할 것.
2) 둘째, 모든 삶들의 목적들이 서로 충돌나지 않고 조화로울 수 있어야 할 것.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상태다. 그런 게 있을까? 나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존재의 목적들이 조화롭게 소통되고 있는 나라다. 거기에는 상호 목적의 충돌이 없다. 이를 이사야서 11장 6-9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고,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이끌고 다닌다. 암소와 곰이 서로 벗이 되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눕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는다.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서로 해치거나 파괴하는 일이 없다.'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전세계 인구가 대략 68억이라고 할 때, 예를 들어 우리에게 68억 명의 모든 삶의 목적들이 합리적이고도 조화롭게 조정된 새롭고도 거대한 비전적 시스템을 한 번 떠올려보자. 그럴 경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기댈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좌표점을 자기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간주하며 살아갈 경우, 그것은 그 사람 자신을 위해서도 가장 최상의 유익이 될 것이며, 전체 세계를 위해서도 가장 최상의 유익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좌표 기준점은 세계 안의 모든 개개인들을 고려한 것으로서의 <최선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 이유에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너희가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셨지만, 물리적 성취로는 아직 아닌 것이다. 이미(already)와 아직 아닌(not yet)의 사이,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긴장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만일 하나님 나라라는 비전이 없다면 그들은 여전히 보편적 일반인, 즉 중생에 속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모든 존재의 목적의 목적들이 조화롭게 조정된 나라라고 할 경우, 악이란 것은 존재의 목적들이 상호 충돌함으로써 빚어지는 사태를 의미한다. 이때 어느 한 존재가 과잉욕심을 부린다면, 조화롭게 조정되어 있던 그 전체 그림은 연쇄적으로 다시 뒤엉클어질 것이다. 목적들이 충돌하여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게 되고 다투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를 사랑하셔서 끊임없이 그 나라로 가기위한 희망의 비전들을 제시해주고 계신 것이다. 그 나라로 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지름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는 곧 걸어다니는 하나님 나라라고 보면 된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정치노릇을 해야

하나님 나라 운동은 내가 있는 자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는 악한 세계일 땐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으로 바꾸는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노력들이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혹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무슨 놈의 정치노릇이냐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따질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종교에만 국한되는가? 종교는 세상 돌아가는 곳과는 별개의 영역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청지기로서의 삶이며, 이러한 사역은 어떤 면에서 세상에서 펼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정치노릇이기도 하다. 그것은 세상의 정치마저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온전하게 바로잡으려는 정치노릇인 것이다. 그렇다면 신앙인이 정치노릇 못할 것도 또 무엇인가. 진정한 교회는, 언제나 현실 저 너머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맞게끔 변혁을 추동하려는 <하늘의 비전으로 의식화된 정치세력들>인 것이다.
 
-크리티앙 정강길 기자
 
불독 (07-07-13 11:21)
 
조금만 생각하면 천당과 천국(하나님 나라)의 차이점을 쉽게 이해할 것으로 생각되어지는데......많은 이들이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받아들일거라는 생각에 참으로 안타까운 기독교의 현실을 봅니다. 그 동안 교회들을 통해 한쪽만 강조하는 교육과 양육에 길들여지다 보니 이원론적 사고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발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저를 포함)에게 눈과 귀가 열릴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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