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인이라면 사실상 보수적인 배경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한국 기독교 전반이 과거 보수적이었던 미국 북 장로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본(originality)에 집착하는 반도인의 보수적인 성향이 이러한 보수성을 부축인 것 같다. 그래서 모태 신앙인은 말할 것도 없이 비기독교인을 전도하는 것이 보수 기독교의 몫이 된 지금의 현실에서는 기독교를 처음 접하고 세례를 받은 이들은 대부분 복음주의적인 보수적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다.(본인이 진보성향의 기독교인이라고 인식하는 이들 중 과거 보수적인 신앙인 시절을 겪지 않은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복음주의적 세계관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필연적으로 여러 가지 갈등을 겪게 된다. 자신들이 성경을 통해 알게 된 세계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곳 자본주의적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그 미래도 복음주의적 낙관주의와는 동떨어진 결말로 치닫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가장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객관성으로 무장한 현대과학과의 엇갈림이다. 복음주의가 따르는 성서의 세계관은 창세기에서 기술하는 창조방식을 따르기 때문에 그리 길지 않은 지구의 역사와 격변의 창조론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면 자연과학이 말하는 세계관은 150여 억 년의 우주 역사와 진화론을 현대 자연과학은 주류로서 인정하고 있다. 이 둘의 타협하기 어려운 갈등은 필연적으로 신앙의 갈등과는 다른 차원의 ‘세계관의 갈등’을 겪는다. 그리고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의 양태를 나타낸다.

1. 무관심

사실상 가장 많은 부류에 속하는 이들은 이 세계관의 갈등을 자신의 신앙생활의 갈등으로 결부시키지 않고 소위 ‘무관심’의 방법으로 대체하는 속 좋은 신앙인들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세계관의 충돌에도 불안을 느끼지 못하는 이런 맘 편한 사고를 가진 이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합리적인 세계관을 추구한 것이 고대의 수많은 정신들 중 유독 그리스인들의 집착이었음을 볼 때, 어쩌면 세계관의 충돌을 겪는 이들은 그리스적 사고의 은총과 저주의 유산인 듯 한 생각이 든다.

90년대 중반, 진보신학의 최전방에서 현재 한반도의 불합리한 사회현실 때문에 불안과 분노를 표출했었던 젊은 신앙인들에게 물었었다. 현대과학과 성경의 세계가 다른 것에는 불안이나 분노를 느끼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그러한 자연세계에 대한 관점의 갈등보다는 현대 사회가 가진 모순과 갈등이 보다 중요한 숙제였고 자연과학과 성경이 이 세계를 다르게 모사(模寫)하는 데는 불만을 느끼지 못했다. 그 중에 몇몇 소수는 내가 당시 상당히 실망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대답을 했었는데 이는 소위 ‘창조과학’이라 불리는 일종의 의사(擬似)과학에 자신의 세계관을 위탁했기 때문이다.

2. 의사(pseudo)과학에의 안주(安住)

19세기만 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탐구를 하는 이들은 지역 유지들의 초청으로 각종 사교클럽이나 지역 강연회에서 공개강좌를 열 정도로 일정한 수준 이상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새롭게 논의가 되는 자연과학의 수준은 대학에서도 전문 분야끼리만 다뤄질 정도로 대중성을 잃어버렸다. 그 때문에 자연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소개하는 이들의 관점에 따라 그 내용이 완연하게 달라지는 일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특히 우주의 모든 운동을 하나의 방정식으로 기술하고자 했던 뉴턴의 방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던 20세기부터 자연과학은 이 분야에 속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마치 하나의 철학적 신념으로 평가절하 되곤 하였다.

그러한 틈새에서 20세기 과학을 교회로 소개하는 이들 중에 성경이 문자적으로 말하는 세계관을 변호할 목적으로 집단화를 이루어 현대과학을 심하게 왜곡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창조과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들이 그들인데, 그들은 기존의 자연과학이 만들어 낸 수많은 업적들을 취사선택하여 성경의 세계관(정확하게 말하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성경의 세계관’)과 부합되는 것만을 골라내고 나머지 많은 부분들을 ‘사탄의 학문’이라 저주하며 과감하게 버렸다.

가령 150억년 우주의 역사나 진화론은 창세기 1장의 내용과 배치되기 때문에 ‘옳지 않다.’ 이를 변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과학적인 방법론들은 정상적인 과학의 주류(main stream)를 배운 사람들에게는 분노보다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은 이질감을 준다. 그들에게 창조과학은 흑인과학이나 여성과학과 같은 의사과학에 불과할 뿐 자연세계를 탐구하는 객관에 대한 포용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인지되기 때문이다. 또한 창조과학이 기독교인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주류 패러다임으로 오해되어 기독교 전체를 하나의 미신으로 치부하는 과학자들도 나타난 것이다.

3. 다양한 해법 제안

세계관의 충돌에 불편함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은 각자의 해법을 다양하게 제시하려 노력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창조과학도 의사과학의 힘을 빌려 이 충돌을 해소하려는 목적에서 시작했다. 다만 주류과학을 온통 부정하는 극단적인 취사선택의 방법론이 ‘해법’이라기보다는 문제를 심층화시킨 것이다.

미국 기독교는 한국 못지않게 창조과학에 자신들의 세계관을 상당부분 위탁한 보수적인 기독교이다. 이에 대한 반발의 필요성을 지닌 이들 역시 한국보다 많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부류는 미국의 토착화 신학이라 할 수 있는 ‘과정신학’이다. 이들은 과정사상을 토대로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세계관을 화해하려고 노력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창조과학을 넘어서서 자연과학의 세계관과 융합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대부분 과정사상에 그 둥지를 트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과정사상의 제안에도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 역시 공존한다. 주로 자연과학을 전문분야로 다뤘던 이들은 과정신학이 이해하는 자연과학이 충분한 이해의 바탕에서 이뤄지기보다는 의사과학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여전히 과학의 주변부로 밀려난 패러다임에 의존하는 느낌을 갖는다고 말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존 폴킹혼이나 폴 데이비스는 이 두 세계관을 화해시키기 위해 각각의 대안들을 소개한다. 한국에서도 21세기 초반에 활기차게 토론이 진행되었으나 몇몇 실천적인 신학들에 가려져 최근에는 논의가 수그러진 듯하다.

늘 그렇듯이 종교는 항상 자연과학보다 뒤쳐져왔다. 부르노와 갈릴레이의 재판이나 테네시의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은 자연과학에 대한 종교의 보수성을 극면하게 보여주는 예들이다. 신앙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 아무리 진보적이라 자신하더라도 몇 가지 굽힐 수 없는 전제 때문에(가령 어떠한 방식이든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 등) 과학의 발견보다 앞설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연과학의 새로운 발견들이 어떻게 나오든지 이를 올바로 이해하고 수용하여 자신이 가진 신학을 이에 병행하여 재해석시키는 내부적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신학적 노력의 전제는 새롭게 발견된 과학적 성과가 검증된 가설로서 주류 과학에서 올바르게 받아들여진 것에 한한다. 과학적 성과물이 하나의 철학적 소견일 뿐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사실 이러한 세세한 과정도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과학에서 애써 새롭게 발견되어 유력한 가설로 부상한 것들을 자신의 신학적 선이해에 맞추어 과학적 검증의 노력에 관계없이 이미 그에 대한 가부(可否)를 결정하는 신학자의 자세는 과거의 섣부른 종교재판들을 답습하는 안타까운 작태가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