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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무의식-1차의식-고차의식 & 포월 그리고 창발과 환원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2-19 04:51 조회(505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e003/88 




이것은 그냥 저의 견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모든 시간적인 현실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3중의 충동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1) 산다(to live) 2) 잘 산다(to live well) 3) 더 잘 산다(to live better)"라는 3중의 충동입니다(A. N. Whitehead, the Function of Reason, p.8).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 번째는 생존적 지향이며, 두 번째는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생존하는 지향이며, 세 번째는 그러한 만족의 증가를 획득하려는 지향으로 끝없이 나아간다고 보는 것입니다(FR 8/49). 이것이 바로 모든 시간적인 현실 존재들의 특성이라고 봅니다. 

이때 이 지향적 사태의 정도가 더 깊고 복잡해질 때마다 각각 '무의식-1차의식-고차의식'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말하는 지향성 개념은 후설 철학의 의식의 지향성 개념과 달리 그냥 단순하게 말뜻그대로 그 어떤 것에 지향된 사태나 성격을 일컫습니다. 

무의식의 경우, 1차적인 단순 지향성의 사태로 그 어떤 가상적 이미지 혹은 상징의 발현이 그 어떤 물리적 신체 상태와 자동 반응적으로 연결 픽스된 경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가능태(potentiality)에 대한 지향이기도 합니다. 즉, 이 가능태는 그 어떤 특정의 물질적 사태와 근원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가능태입니다. 

이때 지향된 그 가능태의 내용이 무엇이냐고 했을 땐 기본적으로는 앞서 말한 3중의 충동에 대한 지향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여기서는 생존으로의 지향이 가장 클 것으로 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무의식 상태는 대체로 자동 반사적 행태로 드러납니다. 이는 자각 없는 1차 감각 욕구 상태라고 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1차의식은 오히려 일종의 <2차 지향적 사건>으로서 앞의 단순 1차 지향성들을 어느 정도 치리(control)한다는 점에서 그 지향성의 강도(intensity)가 좀 더 깊고 복잡해진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은 앞서 말한 단순 1차 지향성들이 병렬적 대비를 이루면서 시간적으로는 중첩되어 있다가 어느 하나의 지향적 사태로 집약되는 과정이라고 보며, 이 경우의 지향성 특징은 <자각>입니다. 즉, 앞의 1차 지향성들이 병렬적 대비와 시간적 중첩을 보일때 그 중에서도 선택된 그 특정의 1차 지향성을 보다 깊이 있는 강도(intensity)의 수준에서 불러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알다시피 이 수준에서는 단순 기억이나 사유가 가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보는 <고차의식> 단계는 사유 자체에 대한 사유를 할 수 있는 단계라고 여겨지며, 이는 특히 인간현상에서만 보여지는 특징으로 생각됩니다. 영장류 연구에서도 말하길, 침팬지도 간단한 기억과 학습은 하지만, 인간처럼 사고 자체를 사고할 줄 아는 추상의 능력은 거의 결핍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따라서 고차의식의 상태는 앞의 2차 지향성 상태가 더 깊고 복잡해져서 <3차 지향적 사건>이 창발한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앞의 <1차 지향적 사건>과 <2차 지향적 사건>을 다시 조작 또는 활용할 수 있는 더 높고 깊은 지향성 확보를 보인다는 점입니다. 

●1차 지향적 사건(무의식) -> 2차 지향적 사건(의식) -> 3차 지향적 사건(고차의식) 

즉, 이렇게 보면 하위 범주가 상위로 나아갈 때마다 하위 범주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포함하면서 초월하기에' 일종의 <포월>적인 발달 관계라고 여겨집니다. 그렇게 볼 경우 결국 무의식-1차의식-고차의식이라는 구분도 결국 지향성의 강도(intensity) 수준 혹은 정도 차이라는 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에 이르면 보다 근원적 <의미>를 지향하는 고차원적인 지향적 수준을 보여주기도 하잖아요. 물론 대부분의 인간들은 1차 감각 욕구에 매몰되는 모습 또한 많이 보이지만, 그래도 소수지만 인류의 현자들 중에는 그렇지만은 않은, 고양된 수준의 모습도 분명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팬지가 '세계 평화'라는 것을 지향할리도 만무하거니와 그런 개념과 사고를 아예 생각해내지도 못하니까요. 

여튼 지향성의 강도(intensity)가 깊어질수록 <가상성>virtuality 에 대한 조작 기술 역시 발달되는 <추상 능력>을 점점 얻게 된다고 봅니다. 인간은 추상 능력으로 인해 보다 고양된 의미를 찾게 되며,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미지의 것에 대한 상상과 호기심 그리고 사색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 추상 능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도 있는데, 객관성을 지향하는 추상 능력과 주관성을 지향하는 추상 능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 전자는 거의 인간의 산술 수학적 능력에 다름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주관성을 지향하는 추상 능력도 중요한데, 그 이유는 전자는 후자가 감행하는 온갖 시행착오들로서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공상 망상에 가까운 추상적 사변이라고 해도 온갖 실험적 사유의 장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관적 발상이 객관성을 확보하는 과정이야말로 보편화 과정이잖아요. 
  
.................. 


그리고 환원과 창발의 경우는 <포월>envelopment 개념으로 풀어볼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흔히 창발에 대한 정의는 
'부분의 합은 전체 그 이상이다' 라고 정의됩니다. 
즉, 구성된 부분들만으로는 결코 전체가 온전히 설명되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부분적 설명으로는 가능하지만요. 

제가 아는 물리학자분 중의 한 분이 창발의 사례로 백남준 아트를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백남준의 무대에 올려진 전자제품이 있는데 그 제품들의 물리적 성분들은 
하나하나 분석이 가능하다지만 그 구성 요소들만으로는 
결코 백남준의 예술 세계 자체를 설명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제가 볼 때 무기물-유기물-세포-동식물-인간으로 진화하면서 
하위 범주의 집합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그 이상의 새로움이 
발현되는 사태가 생겨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하위 구성 요소들을 배제하거나 버리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은 '포함하며 초월하는' <포월>적인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이는 켄 윌버(Ken Wilber)가 말한 홀아키(Holarchy) 개념과도 관련됩니다. 
이미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실테지만 
홀아키라는 용어는 홀론(holon=holos+on)과 위계 구조를 뜻하는 -archy의 합성어입니다. 

자연의 구조는 창발적으로 진화하는 홀론들의 구조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모든 생명체는 <홀아키>라는 몸의 구조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개념은 정면으로 파기됩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존재가 다른 존재에 내재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하나의 작은 생명체라도 기본적으로는 온갖 것들과 생명들이 함께 관계적으로 
관여하면서 일종의 과정적 흐름으로서 살아있는 몸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그 어떤 실체적 몸이 있고 부차적으로 관계를 맺는 차원이 아니라 
관계 자체가 몸을 형성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몸은 형성 과정에 있는 몸입니다. 
관계란 존재의 부차적 성질이 아니며, 이미 존재론적 특질이자 본성에 속합니다. 

알다시피 현재 인간의 몸은 과정적 흐름이면서 무기물 유기물 세포 동식물적 특징 등등 
거의 137억 년의 우주의 진화적 과정의 기억을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우주시대의 중력장과 감각장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중력장과 감각장을 포함하면서도 의미장이라는 
새로운 장의 영역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결코 인간이 하위 범주로(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일컫기도 합니다. 

물질 원자나 화학 원소 그리고 유전자 암호가 
부부간의 사랑과 전쟁이라는 일상을 설명하기에는 정말 턱없어 보이는 거죠. 
의미의 영역은 인간의 고도의 추상 능력에 자리합니다. 

특히 종교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그 종교가 나쁘든 좋든 간에) 
인간은 그 종교로부터 제공받는 남다른 그 의미 때문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킨스가 궁여지책으로 밈Meme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물학적 유전자Gene만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안되는 경우들이 있다는 얘기일테죠. 

이렇게 볼 때 진화라는 개념이 비록 생물학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주민수님 얘기처럼 광의의 진화라는 도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은 저역시 동의합니다. 


 ...................... 


또한 존재를 <과정>process으로 볼 경우, 존재론과 인식론은 결코 나눌 수 없는 동전의 양면일 것입니다. 
인식 작용 자체가 과정적 변화의 존재 사태를 의미하니까요. 즉,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 
과정마다 뉴런을 비롯해 존재가 전적으로 변화하는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화이트헤드의 경우에도 인식 작용이란 
<대상(object)을 자기화(appropriation)하는 과정으로서의 존재론적 활동>으로 봅니다. 
그럴 경우 존재론과 인식론은 분리된 것이 아닌 한 동전의 양면일 뿐이며, 그런 점에서 
존재론적 환원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인식론적 환원 역시 될 수 없다고 여겨집니다. 

다만 방편적 설명을 위한 환원주의는 가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인과 법칙을 해명하기 위해 불러드리는 설명의 한 방법으로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 설명이 온전히 존재와 사물을 설명할 수 있다고는 보질 않습니다. 

인간의 이해란 항상 불완전한 과정상의 이해이면서 
근본적으로 우리는 폐기를 통해 이해를 하는 존재이기에 
모든 설명에는 항상 빠져나가는 그 무엇이 남겨져 있다고 봅니다. 
이미 인간의 언어 자체가 그렇잖아요. 

그래도 환원주의는 부분적으로 효과적일 수 있는 
설명의 한 방법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있는 전략적 신념이라고 봅니다. 
비록 사물에 대한 부분적 해명이라도 해명은 해명이니까요. 

문제가 되는 지점은 그것을 부분적 해명으로 여기지 않고 
마치 모든 것들이 죄다 낱낱이 해명된 것처럼 간주하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그럴 만도 한 게 무엇보다 자연과학자들의 설명들은 물리적 화학적 구체성을 띤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들리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물질-감각적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그러한 구체적 설명들이 
마치 모든 것들을 구체적으로 환하게 조목조목 해명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니까요. 
부분적이긴 하나 실제로 성공적으로 해명되기도 하구요. 

그러나 제가 볼 때 사물에 대한 해명은 언제나 
또 다른 합리적 해명을 위한 과제를 산출시킨다고 생각됩니다. 
설령 초끈 이론이든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이든 <만물 이론>이라고 불리는 
양자 중력 이론이 성공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새로운 물음 역시 여전히 새롭게 생성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즉, 인간이 시공을 다스리는 신으로까지 진화하여 종착되지 않은 이상 
해명되지 않은 물음은 항상 우리 가운데 남아 있기 마련인거죠. 
아무래도 그때까지 인간은 과학적 탐구와 철학적 상상력을 부단히 치열하게 진행해나가야 할 것으로 봅니다. 

별로 쓸모 없을 수도 있는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선 (13-02-21 02:57)
 
덧말


위에서 말한 <2차 지향적 사건>에 해당하는 의식의 경우는 <자각>이라는 특성을 갖는 것인데, 이때 말하는 <자각>이란, 수많은 1차 지형적 사태들이 병렬화되고 시간적으로는 중첩되었을 때 그 중에서도 유독 그 어떤 특정한 지향적 사태에 집중되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가 일종의 구별 기능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한 것입니다. 즉, 여러 지향적 사태들 중에서 하나를 느끼는 것이니까요(마치 파동함수가 붕괴되면서 순간 입자적으로 측정되듯이). 이 구별 기능은 앞서 말한 <2차 지향적 사건>에서부터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의식 현상이 양자론과 어떤식으로든 관련이 있다고 보는 입장에 동의하는 쪽입니다(양자론 얘길 꺼내면 썰을 더 풀어야겠지만).

그런데 의식은 알다시피 구별 능력을 갖습니다. 그럴 경우 '자기 인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나(I)라고 여기는 것'과 '나 아닌 것'과의 구별 느낌에 해당한다고 보는데, 그렇다면 자기 인식의 경우는 유인원 수준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침팬지도 거울 속의 자기를 알아차리는 정도는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려는 <고차 의식> 범주는 사고 자체를 사고할 줄 아는 고도의 추상 능력 수준으로, 가장 뚜렷한 예를 든다고 한다면, 수학 및 철학적 사고 같은 것입니다. 물론 아주 단순한 숫자 개념 정도는 침팬지도 익힌다고 하지만, 그래도 침팬지가 기하학적 사고를 한다거나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묻진 않습니다. 철학은 인간만의 추상 능력입니다.

뮈토스의 시대를 넘어 로고스의 시대에 형성된 철학적 물음의 경우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통틀어 인간만이 보여주고 있는 고도의 추상 능력입니다. 철학은 <사실> 여부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탐구하기보다 <사실 너머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고도의 추상 능력을 요구하지요.

이 추상 능력은 <2차 지향적 사건>(=의식)을 통해 '구별된 것들을 다시 또 구별해보이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가히 <3차 지향적 사건>이라고 여겨집니다. 쉽게 말해 우리는 대비(contrast)를 통해 구별 느낌을 얻게되는 것인데, 이 대비가 다시 또 대비의 대비로 계속 나아가는 셈이지요. 그럴 경우 지향성의 강도(intensity) 역시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홀아키 개념은 소립자와 원자로부터 분자-세포-동식물-인간 할 것 없이 모든 몸구조가 이전 단계를 포함하면서 상위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몸구조라는 점을 의미한 것이기에 단순한 수직적 차원의 위계적 몸구조가 아닌것입니다. 그렇다고 획일적인 수평적 차원의 몸 구조도 아니며, 전체 우주의 생성 사건들이 매순간순간 내함되는 가운데 이전으로 환원되지 않고 다시 또 초월하는 양상을 띠는 포월적 발달로서의 몸구조라고 본 것이지요.

그리고 홀아키 개념의 경우 원래 이 개념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켄 윌버가 아니라 그 이전의 헝가리 철학자이자 문학가였던 아서 케슬러(Arthur Koestler)였습니다. 그러다가 윌버를 통해서 홀아키 개념이 전세계에 많이 알려졌었는데, 이것이 요즘 말하는 홀로그램과는 어떤 구체적 관련이 있는지는 잘모르지만, 만일 그것이 양자물리학자였던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주장대로 '홀로그램'이란 표현이 다소 정지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면 이는 제가 생각하는 바에도 전혀 들어맞지 않는 표현일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데이비드 봄은 홀로그램이 아닌 <홀로무브먼트>holo-movement 라는 통전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을 사용합니다. 물론 저또한 그 점에 대해선 동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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