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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답변입니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05-28 05:07 조회(5621)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f001/1274 



반갑습니다. 한창승 목사님^^
 
제게 어제 전화를 주셨던데 당시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곳에 있어서
나중에 받게 되어서 다시 전화를 드리기도 했었답니다.
어쨌든 목사님께서 이렇게 친히 좋은 질문을 해주신 점에 대해선 오히려 더 깊은 감사를 드린답니다.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성심껏 답변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미진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다시 얘기해주시면 될 것입니다.
 
 
 
첫번째로, 제가 말씀드리는 초월적 유신론의 실체는 사실상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가
실은 그 본질입니다. 초월적 유신론이 나올 수 있었던 점도
관념적 이원론(혹은 위계적 이원론)의 관점과 맞물려 있었던 것인데 어쨌든 이 점에 대해선
저번 강좌 때부터도 계속 얘기를 했었긴 합니다. 이때 한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세계관은 욕망을 합리화하는 도구로서 역할이지 욕망자체를 규정하는 유일한 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에 대한 얘기는 생각컨대
일전에 한목사님과도 얘기나누었던 <권력과 진리게임의 상관성>과도 유사한 것이라고 봅니다.
 
즉, 말씀하신 문구를 그대로 단어만 바꿔 써 보면
"진리는 권력을 합리화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이지 권력자체를 규정하는 유일한 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는 것이죠.

제 생각에 한목사님의 그러한 얘기는 제가 일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진리가 권력을 합리화하듯
세계관이 욕망을 합리화한다는 얘기는 지극히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봐야 할 문제는 세계관은 우리의 욕망을 합리화하는 도구적 역할을 한다지만, 그 도구적 역할을 거세함으로서 그것이 결국은 근거를 갖지 못하는 자족적 욕망밖에 되지 않음을 자각하게 만들려 함에도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볼 때 초월적 유신론이 불교의 도피적 세계관이나 무속과 결합되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결국 제가 볼 때 힘을 정당화하는 관념적 이원론(혹은 위계적 이원론)에 더 뿌리 깊이 맞닿아 있다고 봅니다. 위계적 이원론의 문제는 기독교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또한 말씀하셨듯이 자본주의 욕망이 다시 그릇된 세계관을 생산시켜 다시 고착화시키는 면도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국은 그릇된 세계관의 문제를 들춰냄으로서 결국은 저들이 가진 건 오히려 자본주의 욕망 밖에 없음을 보다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함에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자본주의 욕망의 문제는 사실상 지극히 당연한 보편적 얘깁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지요. 하지만 저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당화하려는 진리나 논리의 힘을 꼭 빌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왜 그래야만 할까요? 그냥 나 독재하고 싶다. 나의 욕망은 모든 걸 가지고 싶다 이렇게 밝히면 되지 왜 꼭 진리 게임의 언어를 가져오는 정당화의 수법을 써야만 할까요?

그것은 사실상 상호 소통의 차원이 궁극적으로는 합리성의 차원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볼 때 세계는 권력투쟁이겠지만 핵심적인 싸움은 결국은 명분과 근거싸움에 있다고 봅니다. 자신의 욕망이 근거되고 있는 그 지점이 얼마나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지를 폭로해버림으로서 결국 남는 건 결코 상호 소통되지 않는 자족적 욕망에 있음을 드러내 보여주려는 것이지요.

저들의 진리가 상호 소통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은 결국 저들의 욕망이 폐쇄와 고립을 자초하게 됨으로 이끄는 것이죠. 따라서 제게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고발하는 맥락과 세계관 혹은 진리 게임의 문제는 언제나 함께 얽혀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
 
 
 
두 번째 질문 역시 실은 첫 번째와도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데,
여기서 목사님과 제가 인식하는 합리성에 대한 개념부터가 서로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목사님께선 "합리적인 설명이 가지고 있는 자기 완결적 이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합리성은 근대 계몽주의와 모더니티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던 <닫힌 합리성>일 따름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러한 차원은 <반합리성>으로 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합리성은 오히려 <열린 합리성>입니다. 절대적 확실성의 합리성이 아닙니다. 열린 합리성은 오류와 비극 앞에서는 언제든지 수정 가능한 합리성입니다. 말씀하신 고대로부터 그리고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 합리성은 제가 볼 때 오류와 비극 앞에서도 여전히 닫혀 있는 합리성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합리성은 인간에게 잡혀지는 합리성이 아니라고 누누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인간은 오류와 비극을 통해서만 적어도 이전보다는 좀더 나은 과정상의 합리성을 확보하는 기회를 부여받을 따름입니다. 분명한 것은 합리성의 완결된 성취란 언제나 희망으로서 있을 뿐이지 결코 우리 손에 단번에 잡히지 않는 그 무엇입니다.

이때 신 인식의 합리성을 넘어서는 경험을 해야 한다는 점에선 저도 마찬가지로 동감합니다. 하지만 경외감이나 초월적 신비에 있어 우리가 구분할 지점들 역시 여전히 있잖아요. 이를테면 사이비 기적술사들의 신적 체험도 경외감과 초월적 신비를 강조하지요. 기도 중에 천상에 다녀와서 예수와 바울을 만나고 왔다는 사람들을 마냥 인정할 수만은 불가피한 현실 역시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역시 건강한 소통의 차원 때문에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 역시 필요하며 그러한 합리성이 닫힌 합리성이 아니라
오류와 비극을 접할 경우엔 언제든지 열어놓을 수 있는 그러한 열린 합리성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상 합리성의 온전한 성취는 우리가 신이 되지 않은 이상 결코 완결될 수가 없지요. 합리성의 근거는 결코 자기 완결적 논리 안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합리성의 근거는 오류에 있으니까요. 인간은 자신의 오류와 한계를 성찰함으로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획득할 기회를 가질 따름입니다.
 
 

세 번째 질문 역시 제 생각에는 위의 두 번째와 또 연속적으로 관련되는 질문이라고 봅니다.
즉, 신과의 관계는 인간의 이해에 갇힌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과정의 만남이며, 한계 안에 있으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런 얘기 역시 충분히 타당한 말씀이라고 봅니다.

이때 한목사님께서는 신의 초월성을 언급하시면서 신과의 관계에 있어 "신 역시 자기 실현은 그가 가진 모든 방식을 통하여 이루며, 인간이 한계를 가지고 신 앞에 나왔다면, 신은 초월을 가지고 인간을 만난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신이 그가 가진 모든 방식을 통하여 만난다는 점에는 공감합니다.
하지만 신은 초월을 가지고 인간을 만난다고는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신은 오히려 초월이 아닌 내재를 통해 인간을 만난다고 봅니다.
이러한 제 주장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타자원인성>과 <자기원인성>을 함께 갖는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신이라는 존재 역시 이 세계에 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타자원인성과 자기원인성은 어느 하나 배제될 수 없이 모든 존재가 기본적으로 함께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때 자기원인성에 측면에 있어서 모든 존재는 초월적 속성을 갖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고유의 자율적 결단입니다. 하지만 타자원인성에 있어선
타자와의 관계 선상에 놓여 있기에 관계적 성격을 갖습니다.

흔히 우리가 '실존'이라고 쓰는 표현은 자기원인성의 측면을 강조한 것이기에
자칫 오히려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상은 하나의 존재 안에서 두 가지 성격이 함께 내포되어 있으니까요.

신은 초월성에선 자기 실현적 결단을 하지만 그 내재성에 있어서는
그 자신의 고유 결단이 적용되는 세계와의 관계 지평에 놓여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관계에 있어서 신은 인간과 화해되는 지점에서 만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때 신이 우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이해된다는 것과
신이 우리의 합리적 인식 속에 갇힌다는 것은 서로 같은 말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신의 초월성만큼은 언제나 우리의 인식 속에 있지 않으니까요.

말씀하신대로 그것은 신의 초월성은 언제나 우리의 인식을 넘어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의 내재성 속에서
신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며 신이 우리 안에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급하신 표현 중에 "신과 관계는 이해가 아니라 이해를 넘어서는 과정의 만남이며,
한계 안에 있으나 한계를 넘어서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은 전적으로 공감하며 타당한 얘기라고 봅니다.

이때 "이해를 넘고 한계를 넘는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 지점이 바로
제가 말씀드리는 오류와 비극과 맞닥뜨린다는 지점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자기 인식의 한계에 직면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신은 언제나 다양한 방식들로 우리와 만나는 존재입니다.
당연히 인간 인식에 한정되지 않지요.

하지만 인간은 서로 서로 상호의존적 관계상에 놓인 관계적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신을 만나고 경험하는 주관적 차원에 대한 소통 역시 불가피한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사실상 인간과 신과의 1대1 관계에서 본다면
합리성 혹은 합리적 인식 같은 것은 별로 필요치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은 단지 사람들끼리의 소통의 차원에서는 불가피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을 우리가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노력은
자신의 신 체험에 대한 상호 소통적 노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때 신의 입장이라면 그러한 사람들끼리의 상호 소통적 노력의 차원에서라도
신 자신에 대한 인간의 합리적 이해를 신 역시 충분히 바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은밀한 신앙이야 누가 알겠습니까?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만나도 되고 손가락으로 만나도 되고 발바닥으로 만나도 되고
그 무엇으로도 신을 만나도 괜찮습니다.

신을 만난다는 그런 차원에선 합리적이든 신화적이든 열병적이든 흥분적이든 광적이든 또 아무렴 어떻습니까?
혹자는 UFO를 타고 외계 혹성에 가서 신God을 만나고 왔다고도 하잖습니까?
JMS의 정명석 같은 교주의 신 체험도 그저 사적 영역으로만 귀결된다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 체험에 대한 얘기를 공공의 영역에 표현하는 그 순간부터는
그것은 결코 개인의 사적 영역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점에선 신학이란 신에 대한 체험들을 보다 설득적으로 체계화하고 상식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런 과정의 신학이라면, 그로 인해 우리는 
저마다의 신 체험들에 대한 보다 건강한 나눔과 유익한 공유를 마련할 수도 있잖아요.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은 서로 맞물려 있듯이 합리성과 신비성 역시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늘 얘기드리지만, 세계 안의 과정상의 합리주의는 세계 안에 노출된 신비주의일뿐이며
신비주의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미지의 합리주의일 따름입니다.
합리주의에 대한 온전한 성취는 계시가 온전히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종말에나 가서야 가능할테죠.

유아적인 인간은 그저 오류와 비극에 직면하였을 때 그제서야 한계를 자각할 기회를 잡을 따름입니다.
제가 책에서도 오류란 계시로 갈 수 있는 관문이기도 하다고 말할 때도 바로 그같은 궁극적 맥락에 놓여 있는 표현들인 것입니다.
 
 
 
답변이 잘되었는진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이상의 답변이 미진하다고 생각되시면
언제든지 개의치마시고 다시 질문을 주시길 바라며, 나름대로 또 다시 성심껏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보다 풍성한 논의를 할 수 있도록 질문으로 이끌어주신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다음 주 월요일 대전에서 뵙도록 하겠습니다.
 

-정강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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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5 [알림] 이명박씨 대통령직 사임촉구 범국민서명운동에 동참부탁드립니다!!! 미선이 6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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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 새 벽을 넘어 쑥향 4718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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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재림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오신다 김영순 6342 03-28
421 [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왜 우리는 가난한가 미선이 5343 03-27
420 물로 다스리는 건강법 미선이 6074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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