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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답변입니다.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8-06-07 13:31 조회(707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f001/1285 


(* 이번에는 한창승목사님의 글은 >표시로 제 답변은 - 표시로 해놓겠습니다. )

 

 

 

 

>대전 생명나무교회 한창승목사입니다.
현장 속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사용하기에 말과 그 뜻이 맞지 않고 두서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의 뜻을 헤아려 친절하게 해주신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이리 저리 현장에 매이다가 문득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게 됩니다.
신에 대하여 좀 더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 안녕하세요. ^^*
다시 또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바쁘실텐데도 이렇게 찾아주시는 것은
진리와 삶에 대한 목사님의 열정이라고 봅니다. 고맙습니다.

 

 

 


>첫째는 초월적 유신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선생님께서 하시는 작업, 곧 초월적 유신론을 넘어서기 위한 작업에 많은 기대를 하면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초월적 유신론의 본질이 ‘힘의 과잉숭배’라고 하셨습니다.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망령을 떨치는 현대사회에서도 초월적 유신론이 보여준 실제적인 모습이 ‘힘의 과잉숭배’라는 부분은 적극 동의합니다. 그러나 본질이라고 말할 때, 2가지 부분에서 생각을 달리합니다.
먼저 초월적 유신론의 세계관은 ‘힘의 과잉숭배’로부터 나왔다기 보다는 고대사회 세계관의 한계라고 봅니다.


- 여기선 약간 좀더 명확하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데, 저는 초월적 유신론의 세계관이 ‘힘의 과잉숭배’로부터 나왔다기보다는 더 정확하게 말씀드린다면 초월적 유신론 역시 궁극적으로는 관념적 이원론(위계적 이원론)의 고대인들의 철학적 세계관에서 나왔다고 보며, 이것은 결국 ‘힘의 과잉에 대한 숭배’를 정당화하는 입장이라고 봅니다(미기81-83).

 

 

 

 


>근대이전에 어떤 사유가 초월적 유신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지요? ‘ 힘의 과잉숭배’가 아닌 또 다른 모습을 초월적 유신론이라는 세계관을 가지고 자유롭고, 참된 인간의 모습을 찾기 위하여 애를 쓴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 주류 다수 전통은 초월적 유신론일테지만 그래도 간간히 비주류에서는 다른 흐름들도 있었지요. 이를 테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저는 성경에서도 요한 노선의 신 이해와 바울 노선의 기독교도 달랐다고 보는데, 결국은 이후의 기독교는 요한보다는 바울을 따르게 되었다고 봅니다.

 

 

 

 


>초월적 유신론이 역사적으로 ‘힘의 과잉숭배’로 이용된 것은 인식의 한계라고 봅니다. 오늘날 이 초월적 유신론을 배경으로 힘을 추구하는 무리들은 ‘인식의 한계’보다 힘을 추종하기 위한 ‘인식의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 이것은 좀더 설명이 필요한 문장인 듯 싶습니다. 인식의 한계에서 인식의 선택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와 근거가 어떤 것인지를..

 

 

 

 


>혹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세계관의 본질이 하부구조로부터 나온 상부구조의 부산물로 보는, 그래서 인식을 획일적으로 보는 사적 유물론과 같은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 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는 서로 상호 교호한다고 보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만..

 

 

 

 


>다른 하나는 좀 더 실제적인 문제,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문제입니다.
저는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세계관이 서구와 미국과는 달리 초월적 유신론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초월적 유신론은 절대타자인 신과 단절된 내세관등이 그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월적 유신론이 ‘힘의 과잉숭배’로 나타날 때, 그 인식의 중심에는 언제나 절대타자인 신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신은 ‘절대타자’라기 보다는 ‘실용적인 신’이라고 봅니다. 또한 한국교회의 세계관은 단절적인 성격보다는 도피적 성격을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곧 내세를 세계관의 중심에 두고 현실세계에서 절대타자를 구한다기 보다는, 내세라는 현실의 도피처를 마련하고 현실세계에 필요한 신을 구한다고 봅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이한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한국교회의 위기가 합리적 사고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다는 실용적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것에 있다고 봅니다.
격동의 한국사회에서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주류의 교회들이 최근 실용주의적 교회운영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한국교회의 세계관은 그들의 현실을 움직이는 다른 세계관에 종속되어 실용적 가치로만 인정되는 세계관이라고 봅니다.


- 여기서 말하는 실용이라는 건 그때그때마다의 유용성인가요?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 역시 반합리적인 것 아닌가요? 오히려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야말로 더욱 실용적이잖아요. 따라서 저로선 여기에도 협소한 인식의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는 합리성은 실용성과 맞닿아 있습니다. 즉, 가장 합리적인 것은 가장 실용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역으로 말해도 참이구요. 이건 화이트헤드의 합리주의가 실용주의와 연관되어 있는 측면에서도 고찰해볼 수 있겠구요.

 

 

 

 


>이런 까닭에 한국교회는 성서에 나오는 플라톤의 이원론등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초월적 유신론을 넘어서는 인신의 전환을 위하여 공부한다면, 사실 한국교회조차 잘 모르는 플라톤의 이원론부터 시작하여 이신론-무신론등의 과정을 공부해야 할 입장입니다.


-당연히 관심이 없을테죠. 왜냐하면 이것은 오히려 의식적 자각의 차원이 아닌 저 깊숙한 무의식적 인식의 틀에서부터 부지불식 간에 작동되는 것이니까요. 자기 인식의 틀을 스스로 객관적으로 잘 관찰할 수 있는 한국교인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는지요. 이를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해야 할 필요도 있겠구요.

 

 

 

 

 

>게다가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초월적 유신론은 전통적인 서구의 이원론과는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서구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적 차원의 삶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 종교간의 대화가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는 이미 종교다원적 삶을 살고 있기에 기독교 자체가 종교다원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그 전통적 가치가 왜곡된 형태, 곧 이미 전에도 말한 역사성 잃은 불교와 사회성을 잃은 무속신앙의 결합입니다. 여기에 수백년 전부터 봉건적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굳어져버린 유교적 질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배경에는 한국사회에서 불교와 무속신앙, 그리고 유교질서는 사회를 생산적으로 변화시킬 역동적 힘을 이미 잃어버린 탓이 우선입니다.


- 이원론적 틀은 저는 관념적이고 보수화된 불교나 유교나 기복적인 무속에서도 잘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한국교회 이전에도 나타나 있던 것이구요. 역동적 힘을 잃어버린 것도 저는 결과로 보지 원인으로 보진 않습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한국교회를 폭팔적으로 성장시킨 종교적 욕망에는 이미 굴절된 사회적 인식과 배경이 깔려있기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종교적 가치를 가지고 기독교를 만났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가치와 종교적 유산이 기독교의 가치가 기독교의 개념아래 필요에 의하여 자기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봅니다.
잡신이 섞여 더욱 기괴하여진 고대의 망령은 일상생활에서 영향력을 잃어버린 왜소해진 종교적 영역에서 요구에 부응하는 실용적인 신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이런 화려한 결합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세계관은 현실세계에서 왜소하게 축소된 종교적 영역에서만 존재하고 활동할 뿐입니다. 오로지 현실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힘이 아닌 현실의 근원적인 욕망의 표현으로만 존재할 뿐입니다.


- 네.. 실용적인 신을 만들어내는 이면이나 근원적인 욕망의 표현으로만 존재할 뿐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얘기해볼 수 있겠지요.

 

 

 


>인식의 전환은 실천, 곧 삶을 변화하는 초석이 된다고 봅니다.
신에 대한 인식은 모든 종교적 실천의 중심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분석해야 할 신인식은 곧 한국교회를 변화시키는 실천의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신인식이 플라톤의 이원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을 절대타자로 보는 초월적 유신론이 맞는지요?
이미 삶의 영역에서 퇴출된 이름만 남아있는 ‘절대타자’인 신에게 그 절대성 여부보다는 삶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런지요.


- 바로 그 인식의 전환을 위해서 저는 제 책에서 관념적 이원론(위계적 이원론)에서 현실적 관계론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삶의 영역으로 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미 삶을 내다보다는 인식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데.. 바로 그래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아니겠어요. 현실적 관계론의 패러다임으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패러다임 전환에 있어 가장 기초라고 ‘미래에서 온 기독교’에선 누누이 말하고 있는 것이구요..

 

 

 

 

 

 >두 번째는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닫힌 합리성’에 대비되는 ‘열린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오류와 비극을 인정하고 수정이 가능한 열린 합리성에 대하여 저도 적극 공감합니다.
다만 그 오류와 비극이 수정되는 합리적 추구는 객관화보다는 주관적 경험의 공유에 있다고 봅니다. 저는 합리적 인식의 과정과 신인식의 합리적 추구는 그 과정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인식의 과정은 주관적 경험으로부터 객관화의 과정을 통하여 비로소 합리적 인식에 이르지만, 신인식의 경우에는 이미 신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상태에서 경험을 통하여 분명해진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아직 서구의 문물을 만나기 이전에 기독교를 성경으로만 본 분들이 만난 하나님이 산신령과 같은 모습을 체험하였다는 한국초대교회의 기록들이 그 예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신인식의 합리성은 인식의 객관화보다는 경험의 공유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신인식의 합리적 추구는 변증적 성격이 아니라 오류와 비극을 넘어서서 삶을 변화할 때 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신인식은 주관적 경험에 의하여 끊임없이 객관화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봅니다. 주관적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친다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UFO를 타고 날아다니는 경우에 해당하겠지요.
그러나 신인식의 경우 주관적 경험은 경험의 공유를 통하여 합리적 추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여전히 인식의 한계 안에 있는 신인식은 다양한 주관적 경험에 의하여 끊임없이 오류와 비극을 넘어서는 새로운 추구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 아무래도 제 사상의 전달이 목사님께는 다소 설명이 부족했나보군요. 제게 있어, 주관적 경험은 경험의 공유를 통해 합리적 추구가 가능하다는 목사님의 얘기나 오류와 비극을 통해 합리성의 추구가 가능하다는 제 얘기나 제 입장에선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요? 화이트헤드도 그렇지만 저 역시 합리주의적 경험론자의 입장입니다. 물론 베이컨적 의미의 고루한 경험주의는 아니구요. 인간은 결국 경험에 의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조정되어 갈 수 밖에 없지요. 제가 말하는 합리성은 혹은 객관화는 애초부터 경험에 뿌리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제가 말씀드린 ‘신에 대한 경외’란 합리적 인식이 넘어서야 할 한계 밖으로의 신인식의 추구이며 삶의 지향입니다. 스스로의 한계, 곧 오류와 비극을 넘어서고자 하는 지향에 신의 존재가 있다고 봅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추구는 주관적 경험이며, 그 합리성은 주관적 경험을 공유함에 있다고 봅니다. 주관적 경험이 기초로 공유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와 끊임없이 실천의 현장에서 그 신인식을 객관화하는 일이 아니라, 실천적 공유를 하고자 할 때 비로소 또 다른 차원의 합리적인 신인식의 추구가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신인식의 추구는 주관적 경험의 객관화보다는 다양한 주관적 경험에 열려져 그 경험들에 의하여 더욱 변화되는 삶에 있다고 봅니다.


- 객관화라는 것이 그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작업으로 그칠 수도 없잖아요. 당연히 다양한 주관적 경험들과 접속함으로서 그러한 다양성의 충돌 가운데 보다 온전한 체계들이 공유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 번째, 초월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문득 신학 공부할 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소재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가르쳐준 철학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초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하는 것은 반칙인 듯합니다. 그리고 실천을 위한 신인식에는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로도 족하다고 생각하고요.

 

- 여기서 말씀하시는 초월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가리킨 얘기인지요? 그리고 그것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라는 것은 또 무슨 의미를 말한 것이며, 그것이 왜 반칙이 된다는 것인지에 대해 조금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입니다.
좀 더 생산적이고 실천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현장에서 느끼는 생각을 적었습니다.
선생님의 답변 부탁합니다.

2008년 6월 7일

대전에서 한창승 목사

 

- 별말씀을요. 토론 자체를 결코 귀찮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당연히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동안 제가 전달한 얘기가 목사님께는 다소 부족한 설명이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여전히 미진하거나 궁금하신 점이 또 있으시면 신에 대한 얘기를 더 하셔도 좋고, 또 다른 궁금함이 있으시면 개의치마시고 얼마든지 얘기하셔도 좋답니다. 결코 귀찮다고 생각지 않는 답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보다 다양한 현장들의 공유들이 필요하지요.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현장들은 있으니까요.


늘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정강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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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9 (동영상) 넘어져있는 여학생을 발로 짓밟고 차는..... (5) 마루치 5871 06-01
448 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어리버리 7336 05-27
447    답변입니다. 정강길 5622 05-28
446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읽어 보셨는지요? (3) 통전적 신… 6636 05-26
445 한겨레 만평 모음 미선이 6571 05-26
444 도올 초청 ‘큐복음서’의 예수 재조명 : 27일 화요일 감신대-한신대 합동 심포지움 마루치 7283 05-25
443 연기론과 심리치료 (2008년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봄 학술대회) 관리자 5929 05-23
442 <공개강좌> 김수행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경제, 세계경제 알기 마루치 5482 05-21
441 [6/10 저녁7:0] 정웅기 - 2008년 봄, 티베트에선 무슨일이 벌어졌나? Artizen 4799 05-19
440 불교와사회 특별강좌-'마음챙김과 심리치료' 로널드 시글 박사 초청강연 미선이 6623 05-18
439 이명박은 기독교인가? (1) olivgrun 5603 05-16
438 '밥'과 '신앙' 거래하는 종교단체, 이제 그만(펌) 치노 6815 05-15
437 여전히 풀리지 않는 오해, 문화선교 (1) 별똥별 4898 05-08
436 [한겨레신문 20주년 기념] 평화의 나무 합창단 제 1회 정기 공연 두둥~~~(효과음 ^^;;;) (1) 컨설턴트 8957 04-30
435 [알림] 이명박씨 대통령직 사임촉구 범국민서명운동에 동참부탁드립니다!!! 미선이 6101 04-30
434 미국은 광우병 소 처치가 곤란해서 다른 나라에 수출을? (1) 미선이 5720 04-30
433 [펌] '조중동식'의 해석 (풍자) (1) 미선이 5222 04-28
432 정치인들 넘무 부자다 장동만 5235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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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 [5/13] 다큐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 Artizen 5542 04-18
429 새 벽을 넘어 쑥향 4719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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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4.16 저녁7:30] 도로시 데이 <어둠속의 천사> [무료관람입니다] (1) Artizen 677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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