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73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73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자유토론광장
문화 예술 Cafe
생활 나눔 Cafe
책과 이야기
Sayings
한 줄 인사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540
어제 690
최대 10,145
전체 2,954,242



    제 목 : [베낀글] “교회의 영적인 전쟁과 사영리 목회”    
  글쓴이 : 늘오늘 날 짜 : 08-10-06 02:21 조회(6211)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f001/1401 


 


교회의 영적인 전쟁과 사영리 목회

흰구름 http://historicaljesus.co.kr

0810020856


“교회의 영적인 전쟁과 사영리 목회”


오늘날 교회의 가장 일반적인 목회 형태는 사영리에 기초한 목회다.  사영리는 교회의 지배적인 신학적 입장, 곧 복음주의나 근본주의, 개혁주의(칼빈주의) 신학의 공통적 요약이다.  교회가 일반적으로 개인의 영혼구원에 초점을 맞출 뿐 아니라 동성애자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자 문제 등의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보수적 경향을 보이는 이유 역시 사영리의 기초가 된 축자영감설 때문이다.  또한 많은 대형교회들에서 소위 적극적 사고와 교회성장신학에 입각하여 선포되는 성공과 번영의 복음 역시 사영리를 바탕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에서 “바알의 아들”로 둔갑한 예수 이해보다 더욱 일반적 기초인 사영리(四靈理)의 문제를 교회의 영적인 전쟁과 관련하여 검토하고자 한다.


1. “대개의 한국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인구의 70%가 넘는 비기독교인들 가운데 안티기독교인들만이 아니라 양식 있는 사람들조차 한국 교회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며 분노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업자득이다.  새만금 공사를 온몸으로 막아내기 위해 65일 동안 삼보일배 하던 동안 뒷짐 지고 있던 개신교가, 천성산을 살리기 위해 한 스님이 목숨 걸고 단식을 계속할 때 침묵했던 교회가,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100여 명씩이나 삭발하면서 기득권을 지키려했으니 말이다.  다군다나 이랜드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인질사건으로 인해 한국 교회의 모순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니 말이다.

교회에 대한 이런 분노를 보면서 김규항은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들은 ‘타락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그저 딱 한 가지만 함께 짚어보자.  오늘 한국 교회가 모시는 하나님은 과연 예수가 말한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인가?” 하고 묻는다(한겨레 21, 2007년 10월 9일자).  그는 한마디로 “오늘 한국 교회의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에 달아 죽인 자들의 하나님이다”라고 일갈한다.  즉 한국 교회가 섬기는 하나님은 “자기를 섬기는 놈은 어떤 악행을 해도 축복하고 자기를 거스르는 놈은 바로 살아도 저주하고 징벌하는, 권위적이며 포악한 마초 아버지 하나님... 미국은 하나님을 섬겨 축복받았고 아랍인들은 우상을 섬겨 벌을 받는 거라는, 침략전쟁이 거룩한 성전이라는 주장”을 축복하는 하나님이지, “잘나고 힘세며 늘 승리하는 자식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는 못나고 약하고 늘 지기만 하는 자식 걱정에 잠을 못 이루며 그가 사람 대접받으며 살길 갈망하는 하나님, 엄마 하나님”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체면도 품위도 잃어버린 사람들 앞에서 고상한 말이나 쓰며 으스대는 놈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 야단치는 하나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 속에 우주가 있고 또 우주가 그 사람의 영혼과 맞물려 작동한다는 걸 깨우치게 하는 하나님,” 그 새로운 하나님은 “인민들에겐 후천세상이 왔음을 알리는 복음”이지만, 대개의 한국 교회는 예수가 가르친 그 하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기 때문에, “타락한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아니다”라는 날선 고발이다.  정의와 해방의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억압과 폭력의 신을 섬기는 교회는 아예 교회가 아니라는 말이다.


2. 목회자들의 집단적인 마귀들림


한국 교회 대부분이 이처럼 “교회가 아니다”라고 그 정체성 자체가 부정당하게 된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서 영적인 전쟁의 선봉에 서 있어야 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영적인 권세가 예수를 사로잡았던 하나님의 영, 곧 정의와 해방의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예수를 처형하였던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영, 곧 억압과 폭력의 사탄적 영이기 때문이다.  이 사탄적 영은 예수의 복음에서 벗어난 목회방식과 예수에 대한 왜곡을 통해 그 자신의 지배 영역을 확장한다.  따라서 한국 교회가 초월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기보다는 불같은 부흥회와 “경배와 찬양”등의 감정적 흥분을 추구하고, 그 때문에 “차분한 논리적 설득이 자리를 잃은 그곳에는 결국 합리성보다는 과격한 선동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조성돈)거나, 특히 강남의 교회들이 “부동산 투기로 부추겨진” 물질적 기복주의 신앙을 장려하여 “부 자체는 정죄의 대상이 아니며 신실한 신자들은 오히려 물질적 축복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 구원론은 강남의 욕망을 기독교화 하는 데 성공하였다”(이국헌)는 비판 앞에서, 목회자가 반성해야할 핵심적 문제는 자신의 교회와 목회를 사로잡고 있는 영적인 권세가 “교회의 천사”(계 1:1)인지, 예수를 사로잡았던 하나님의 영인지, 아니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사탄적인 영인지 시급하게 반성해야 한다.  이 영적인 권세는 우리의 사회와 문화, 종교가 세뇌시킨 “물론의 세계”이며 “당연의 제국”(김승희)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의 정체성 자체를 부정하는 비판 앞에서 한국 교회와 목회자들의 집단적인 마귀들림을 직시하고 그 권세에서 벗어나야만 회개에 이르게 되며 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전쟁을 감당할 수 있다.  이런 “집단적인 마귀들림 앞에서 교회의 과제는 그것을 의식의 차원으로 떠오르도록 의식화시키는 것이다”(월터 윙크, {사탄의 가면을 벗겨라}, 164).


3. 성전체제와 예수의 대결


그렇다면 왜 한국 교회가 예수의 영이 아니라 예수를 처형한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사탄적인 영에 사로잡히게 되었는가?  예수는 공생애 기간 동안에 자신에 관해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바실레이아)의 복음을 가르쳤다.  당시 유일한 바실레이아는 로마제국이었다.  로마는 스스로를 바실레이아라고 불렀다.  이처럼 로마 황제가 통치하는 바실레이아와 그 하수인들인 예루살렘 성전체제에 맞서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바실레이아를 가르쳤기에, 예수는 예루살렘 성전 제사장들과 신학자들에 의해 고발되었고, 로마 총독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잘못된 영성은 메시야를 죽인다.  십자가 처형은 반란자와 같은 정치범들만을 처형하는 방식이었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체제와 로마 제국이 함께 예수를 처형한 이유는 그 둘 모두가 “브로커체제”로서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 그 브로커없는 나라(brokerless kingdom)에 대해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존 도미닉 크로산, {역사적 예수}).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제자들, 특히 바울은 “예수의 복음”(Gospel of Jesus)을 토대로 “예수에 관한 복음”(Gospel about Jesus)을 발전시켰다.  이로써 랍비와 예언자 예수는 메시아(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되었다.  예수의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이지만, 예수에 관한 복음은 사도신경에서 보듯이, 예수의 출생과 수난/부활/승천 사이에 예수의 삶과 가르침이라는 “가운데 알맹이가 빠진” 복음이며 예수에 관한 모든 신조들이 수동태로 고백된 복음으로서(로버트 펑크, {예수에게 솔직히}, 79), 고대 세계의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와 거의 똑같다(티모시 프리크, 피터 갠디, {예수는 신화다}, 115-118).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 이후 점차 확정된 “예수에 관한 복음”의 핵심은 대속의 교리와 성육신 교리, 삼위일체 교리 등이다.  결과적으로, 예수의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는 주기도문을 통해 분명하게 가르치신 것처럼 “이 땅 위에 임할 나라”이지만, 예수에 관한 복음에서는 사도신경에서처럼 하나님 나라가 영생으로 바뀌어 죽은 다음에 갈 천당이나 신자들의 영혼 상태, 혹은 교회로 간주되었다.

기독교 역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돈 큐핏이 지적하는 것처럼, 예수는 로마 제국과 “강도들의 소굴”(마태 21:13)이 된 성전의 중보종교(mediated religion)에 맞서서 하나님 나라라는 직접종교(immediate religion)를 가르치다가 처형당했지만, “그의 비판과 반대는 이제 새로운 종교적 중보체제의 토대로 둔갑”했으며, 교회는 “천 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면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종교 체제들 가운데 가장 장엄하고 매우 차별적인 형태로, 또한 잔인하게 핍박하는 중보종교 체계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예수 정신에 따른 기독교 개혁}, 43, 86).  그 이후 교회 역사는 오늘날까지 성전체제의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세력과 그 반대편에서 예수 정신에 따른 저항세력 사이의 갈등과 대결의 역사가 계속 되풀이되는 역사다.


4. 예수운동이 성전체제로 둔갑하는 이유


이처럼 예수운동에서 시작된 교회가 성전체제로 둔갑하여, 예수 이름으로 계속해서 예수를 배척하고 처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회학적 이유들이 관련되어 있지만 신학적으로는 무엇보다 교회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이 성전체제로 둔갑하는 근본 이유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대체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나라, 그 직접종교의 카리스마를 지속적으로 전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로서 교회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도구로 간주하지 않고, 교회 자체를 이 땅 위에 마련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총의 유일한 기관으로 절대화하기 때문이다.  즉 교회 자체가 우상으로 둔갑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예배와 성경, 성직자뿐 아니라 대속의 교리나 구원론과 같은 전통적 도그마조차도 하나님 나라 운동의 수단이 아니라 영원불변하며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간주되는 순간에 그것들은 은총의 수단이 아니라, 성전중보체제로 둔갑하여 예수 이름으로 예수를 처형하는 사탄의 도구로 전락한다.  특히 성직자들의 특권과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동기가 작용하여, 지배체제나 제국주의와 결탁할 경우 교회는 역사적으로 더할 나위 없이 잔혹해졌다.  인류 역사에서 종교가 흔히 지배체제를 합리화시켜주었으며, 지난 5~7천 년 동안 계속된 농경문화 속에서 억압과 착취의 사슬에 매어 끼니조차 잇기 힘들었던 농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지배이데올로기로서 “당근과 채찍”을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사탄적인 권세들이 교회를 통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주입시킨 종교적 요소들, 특히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갖고 몸과 물질, 세계와 자연에 대한 무관심, 복종의 영성과 위계적이며 성차별적이며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일이 시급하다.


5. 사영리 목회의 근본적인 한계


한국 교회는 비록 교단 이름들은 서로 다르지만, 신학은 하나님의 사랑, 인간의 원죄, 예수의 십자가 대속, 믿음을 통한 구원이라는 사영리로 요약된다.  이처럼 간략하게 요약된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비신자들을 대상으로 전도하기에는 매우 효과적이며, 사영리에 기초한 목회는 신자들의 믿음의 통일성을 마련해 준다.  한국 교회에서 아이들이나 노인들이나 믿음의 내용이 똑같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사영리 목회가 목표로 삼는 구원은 죽음 이후에 천당에 가는 것과 영생을 얻는 것이며, 그 적수는 죽음의 공포와 사탄이며, 무기는 순수한 믿음이다.  사영리에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는 정의의 심판자로서 자신의 정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독생자의 목숨까지 요구하는 전제군주이며, 예수는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을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성령은 예수에 대한 믿음을 인도하는 분이며, 교회는 구원의 방주이다.  이처럼 사영리는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복음에 근거한 것이며, 가현설에 매우 가까운 구원자 신화일 따름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죄의식으로 인해 절박하게 외부적인 구원자를 갈구하는 사람들과 비판적 사고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이 있다.

사영리 목회의 가장 큰 문제는 우선 믿음의 내용들을 문자적으로 강조하는 현실에서 오늘날 지적인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신화들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예수를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이다.  그럴수록 목회자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라는 반지성주의의 횡포를 부리게 되며, 찬양과 경배를 통한 감성중심으로 목회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전도할 때 흔히 비기독교인들이 문제로 삼는 것이 동정녀 탄생 문제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의 아버지 없이) 성령에 의해 동정녀 마리아에 의해 기적적으로 출생되었다고 전할 경우, 생물학을 배운 사람이라면, 생물학적 아버지가 없는 예수의 염색체 속에는 아버지의 정액에서 유전되는 Y 염색체가 없기 때문에 예수는 남성(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성경과 교리를 주관적/종교적 진리가 아니라 객관적/과학적 진리로 가르치기 때문에 생긴다.  또한 역사학을 배운 사람이라며 고대 세계에 처녀에게서 태어난 인물들, 예컨대, 알렉산더 대왕, 플라톤, 크리슈나, 네로, 석가모니, 모하멧 등도 예수와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구원자인가 하고 질문할 수 있다.  이런 비판적 질문에 대해 정직하게 대답하지 않으면, 복음은 남에게 빌려온 복음(중고품)으로 남게 되어, 정말 믿음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신의 주체적 복음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사영리 목회는 예수의 대속교리를 “값싼 은총”으로 변질시키고 제자직의 근거를 위태롭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즉 지옥에 대한 두려움, 혹은 낙원에 대한 이기적인 갈망에서 비롯되는 사영리는 유아기적 하나님과 예수님의 모습을 문자적으로 붙잡고 있는 근본주의 신앙일 뿐만 아니라, 예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절차를 다 마쳤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지 예수를 따라 살 필요는 없으며, 또한 우리는 예수처럼 신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예수처럼 살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는 사영리 교리와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면 충분하며, 굳이 신자들에게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의 본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복음주의 신학자 로날드 사이더가 미국의 “중생한 복음주의자들”의 비도덕성을 분석한 책(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 Why Are Christians Living Just Like the Rest of the World, 2005)에서 미처 지적하지 못한 부분이 바로 이런 사영리 교리의 근본적인 한계다.


나가는 말


한국 교회가 대부분 사영리에 입각한 목회를 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영리의 전제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흔히 예수에 관한 기독교의 주장들(예컨대 원죄와 대속 교리)이 참된 문자적-사실적 진리임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믿음 이해는 기독교가 17세기 이후 과학적 세계관에 기초한 계몽주의의 공격에 맞서서 성경의 진리와 전통 교리를 수호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문자적-사실적인 믿음 이해일 따름이다.  본래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예수에 관한 교리를 믿는 것이라기보다 예수의 인격을 신뢰한다는 것, 곧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랑하고 그분께 충성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닮아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어 예수처럼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참된 행복이며 구원의 길이라는 고백이다.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에 관한 복음”에 근거한 사영리는 오늘날 고등교육을 통해 비판의식을 갖게 된 사람들에게는 지적인 설득력이 없으며, 윤리적으로는 예수의 삶을 따를 필요 없이 예수의 팬(fan)으로 남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암시하기 때문에 삶에서 십자가의 자기비움과 희생을 회피하게 만들며 믿음과 생활 사이의 괴리를 초래하는 경향이 크다.  더욱 큰 문제는 사영리에 기초한 목회는 예수의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나라 운동을 망각한 채, 예수를 처형한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교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오늘날처럼 자원고갈뿐 아니라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인해 인류문명이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으며, 인류의 생존 자체가 문제되는 이 두려운 묵시적 시대에, 사영리에 기초하여 교회가 감당할 영적인 전쟁을 개인의 영혼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채 하나님 나라 운동을 방기할 때, 우리는 예수를 에세네파로 왜곡하는 것이다.  제국주의와 성전체제에 맞서 브로커없는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다 처형된 예수의 하나님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정체성 자체가 부정 당하는 비판과 분노 앞에서도 여전히 성전체제의 부흥에만 몰두한 채 그 집단적 마귀들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통해 하실까?



***********운영자님에 의해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10-05 09:02)



p.s. 다비아/ 베낀글/에서 윗글을 읽었습니다.

글자색 변화는 제가 임의로 강조한 것입니다. ^^



정관 (08-10-06 06:49)
 
최진실 사건이후 교회는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날 그 우울한
사건을 보고 본교회 거의 폐쇄된 게시판 자그마한 곳에 기독교인 물질관이
드러난 사건으로 최근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연예인 자살이 다 기독교인으로
그것이 목표를 잃은 양들의 죽음에 적어도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목자가
얼마나 있을까?라는 짤막한 글을 썼다.  그러나 좀더 그들의 반응을 두고 보려한다.
오늘날 되어 가는 꼴들이 기독교가 자살하고 있는 형국이기는 하지만 이러할 수록
우리는 균형적인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진실법을 만드는 홍준표도 그렇고
국민을 우롱해도 이만 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다수 국민은 잔꾀에
넘어가게 되어 있지 않은가.

바비도 (08-10-06 16:19)
 
늘오늘님 잘지내시죠! 김준우 교수님의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에 관한 복음(Gospel about Jesus)이 아닌 예수의 복음(Gospel of Jesus)을 고백한다면

우리는 성전체제와 대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길은 현실에서는 패배할 가능성이 큰 길이지만

이것이 우리의 십자가라면 반드시 가야만 할 길 인 것 같습니다.

우도 (08-10-06 19:41)
 
어느 분은 문익환선생님에게 묵자는 인민을 위하여 적국의 잘못을 소리쳤는데 예수는 로마에 대하여 한마디 한 것이 있냐고 논쟁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문익환 목사님은 묵자는 제롯당과 같으나 예수는 원수인 로마를 사랑으로 정복을 하려고 하였다 합니다. 지금의 교회를 사랑으로 정복을 하여야 할까요? 폭력으로 하여야 할까요? 운동으로 하여야 할까요?

    
바비도 (08-10-06 22:46)
 
목사님 요즈음 건강은 회복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여건이 어려우시겠지만 건강에 특별히 신경을 쓰셨으면 합니다.^^

목사님의 질문에 저는 첫번째 질문과 세번째 질문을 조합한  "사랑으로의 비폭력운동" 에 한표 던집니다.^^ 

이것이 진부한 대답일 수도 있지만 진정한 문제는 이를 실천하는 것이 많은 인내를 요구한다는 것 같습니다.^^

    
sydney (08-10-08 06:26)
 
제 생각에는 무관심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늘오늘 (08-10-06 20:22)
 
싸잡아 비난만 할 수 없는 요소들이, 현실 교회에 있습니다.
직장과 집 외엔 달리 갈 데 없는, 지치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주일 하루, 깨끗하게 옷단장하고 나서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다른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삭막한 도시 공간에서, 공동체적인 정서와 기회와 서비스가 제공되는,
그나마 몇 안 되는, 무난한 쉼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옹호만 할 수도 없는 요소들이, 현실 교회에 있죠.
망우리 고개 부근에 있는 교회에, 전도/성장과 관련된 현수막이 있더군요.
이토록 큰 교회가, 여전히 전도/성장에 목매고 있는 모습이
멈출 줄 모르고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을 닮았다는 생각,
마치 끔찍한 암세포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더욱 가관은, 작은 교회들이 그런 대형교회를 지향한다는 거!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 좀 가르쳐주세요!”

    
sydney (08-10-08 06:30)
 
맞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교회가 주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민해서 깨달은자만 가슴이 아플 뿐입니다.
감각이 없는 이들에게 느낌을 강조하는 것은 고문일 뿐입니다.
감각이 있는 자들이 상처를 안고 조용히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 합니다.

우도 (08-10-07 08:43)
 
무난한 쉼터? 라이온스, 로타리, 와이즈 클럽으로가면 사회에 대한 좋은 정보와 적당한 봉사와 친교가 이루어지는데 왜 굳이 교회에 갈까요 그것은 먹사들의 유혹에 인민이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교회에서 위로와 안위를 받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작은 교회를 가보아도 예수보다는 큰 교회를 꿈꾸는 먹사들이 있는한 이 땅의 진정한 교회는 없을 것입니다.

정관 (08-10-08 22:00)
 
아이들이 문제입니다. 어른들이나 장년층들이야 깨닫던 그렇지 못하던
그렇게 살다가 가면 되는데, 사실 이들에게서 인식의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그러나 중고등, 대학생들 그리고 청년부 학생들이 애절하게
기도하는 모임들을 종종 봅니다. 그들이 성장하여 장년부에, 또 선교부등으로
가게 될때에 또 이렇게 오염되어 갈 터인데...패러다임이 바뀌어 가고있고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조화와 허용,존중등이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게시물수 1,219건 / 코멘트수 2,022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허위 기재로 가입하실 경우 접속 제한 및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 24045 06-16
[알림] 이곳 자유토론게시판에 펌글을 올리시는 모든 분들께..정확한 출처 표기 바람! 관리자 27491 09-13
★ 회원 가입시 유의 사항 (정확한 메일주소 기입 요망) (1) 관리자 98040 07-10
토론(논쟁)이 주는 즐거움과 가치 미선이 33222 01-28
몸학기독교는 '예수'보다 '오류'를 더 섬기는 곳인가요? (12) 미선이 36870 06-14
이곳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 포지션 : 기존 기독교 및 안티기독교에 대한 입장 관리자 35600 02-10
★ 이곳에 처음 오신 기독교인이라면 필히 읽어주세요~^.^! 정강길 45201 07-02
[필독] 기독교 전통에 대한 몸학기독교의 입장 (2) 관리자 38357 05-30
[논쟁3] 다비아 정용섭 목사와의 논쟁 (헨리 나우웬과 전통 기독교에 대한 시각차이 논쟁) (12) 미선이 61581 11-28
♣ 지난 날에 썼던 정치 사회 시사적인 글모음 정강길 52442 11-11
[필독] 논쟁(혹은 토론)의 기술 : 참다운 자유토론을 위하여 관리자 48282 04-22
519 진짜인지 가짜인지? (4) 맑음 4682 11-27
518 Obamerica의 도전과 시련 (1) 장동만 4905 11-27
517 혹시 '휴메니버시티'에 대해 아시는지... (사진자료 첨부) 미선이 5557 11-26
516 새 문화를 연다 (5) 맑음 4432 11-25
515 "광신도여! 예수를 더 이상 욕되게 말라" (1) 치노 5233 11-24
514 [12/2 저녁7:30] 대화마당 <병역거부 특별하지 않은 우리주변이야기> Artizen 4359 11-24
513 아담과 이브, 그 관계의 시초 Adam & Eve - The Origin of Relationship (1) 미선이 5642 11-21
512 거짓말. 거짓말들-퍼오기 되네요 (2) 정관 4965 11-20
511 [펌] IQ에 대한 상식. 그리고 실과 허. 미선이 8086 11-18
510 미선이 님의 글이 신천지에서 사용되고 있네요. (2) 하랑 5586 11-18
509 무함마드가 악마의 계시를 받았다? (2) 치노 4902 11-17
508 대동문화센터 소식지 <진실의 소리> 2호-성경의 모순과 오류(2)-서로 다른 복음서의 기록들 한솔이 4855 11-16
507 (강추!!) 좋은 책들을 엄청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1) 미선이 6719 11-11
506 종교정치 논쟁에 휩싸인 미국정치 (강인규) (1) 미선이 5583 11-08
505 안마시술소 여종업원 자살 (1) 정관 6354 11-07
504 [펌] 한의 정서와 기독교 부패의 침묵 기독교와 사회 (4) 미선이 7588 11-07
503 [11/21 저녁7:30] 이부영(서울시교육위원) 국제중논란과 MB정권, 공정택교육감의 교육정책 (1) Artizen 4364 11-06
502 소녀시대, 원더걸스와 페미니즘 (2) 통전적 신… 5168 11-05
501 세기연이 기독교 정통신학과 함께 갈 수 없는 이유 하나.. (4) 미선이 5195 11-02
500 세기연은 명칭을 세계와 종교 변혁 연구소로 바꾸는 것이 낫지 않을까? (31) 거시기 11234 10-31
499 세기연은 무엇하는 곳인가요? (10) 손오공 5102 10-29
498 다비아(정용섭 목사의 신학노선)에 대한 짧은 단상 (24) 미선이 11277 10-27
497 참다운 용서 (3) 정관 5221 10-24
496 불교계 대학교에서 어찌 이런 일이 (3) 정강길 6891 10-22
495 허물고 다시 세우는 기독교? (2) 통전적 신… 4913 10-16
494 [10/30 저녁8시] 25차 문화나눔마당 <망명의 티베트 불교> Artizen 4495 10-16
493 최진실의 자살과 한국사회 그리고 기독교 신앙 (5) 치노 6132 10-15
492 [펌] '종교재판' 받은 진보신학 / 문동환 (1) 미선이 6394 10-14
491 한국씨알공동체 대동문화원 소식지 제1호 (3) 한솔이 6558 10-11
490 이벤트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2) 통전적 신… 5120 10-07
489 [베낀글] “교회의 영적인 전쟁과 사영리 목회” (9) 늘오늘 6212 10-06
488 진실의 소리(3)-현대고고학이 밝혀 낸 성경의 실체 한솔이 5129 10-02
487 [자료] 정철의 관동별곡 원문 및 현대해석문-대역본 한솔이 11718 09-29
486 대형교회들이 작당하기를.. 정관 5188 09-27
485 예수의 신학 (2) 통전적 신… 5952 09-26
484 정강길 님과 언제 대화의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1) 통전적 신… 7107 09-25
483 진실의 소리(2)-성경의 모순과 오류(도표) (4) 한솔이 24481 09-19
482 정교분리(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의 원칙 (3) acecard 8280 09-16
481 [9/30] 24차 문화나눔마당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무료관람] Artizen 4716 09-12
480 현실적 존재와 쿼크, 힉스, 초대칭 입자 (1) 한솔이 7816 09-10
479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2) 정관 5691 09-08
478 진실의 소리(1)-성경을 믿지 맙시다 (2) 한솔이 8874 09-05
477 [서명합시다]식량난으로 여동생이 굶어 죽었습니다. (2) 생명을 밥 5697 08-29
476 ‘하나님 중심의 삶’을 오해하는 삶 (3) acecard 8650 08-25
475 역사적 근거가 없는 신앙고백은 망상에 불과하다 (6) 한솔이 6042 08-21
474    예수와 교리는 다르지 않나요? 정강길 5466 08-22
473 [한대수 영상편지] 8/20 저와 같이 선율을 맞춰 봅시다! Artizen 5401 08-10
472 [자료]광개토대왕 비문 원문 및 해석문 한솔이 7505 08-04
471 이명박 대통령에게 '강적'이 나타났다 (1) 별똥별 6917 07-25
470 "기륭노동자들과 함께 한 넉 달...시시때대로 눈물이 난다" - 민중의 소리 (1) 마루치 6131 07-25
469 마광수 교수에 대한 넋두리. (1) 별똥별 6452 07-20
468 [자료]영한성경-창세기 1~11장-인문학적 입장에서 본 창세기 강해 한솔이 6463 07-20
467 촛불 心志가 사른 것들 장동만 5614 07-19
466 [긴급]굶어 죽어가는 우리 동포들을 살려주세요!!! (1) 생명을 밥 6222 07-18
465 [인터뷰] '살림이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를 만나다 (3) 관리자 7210 07-11
464 촛불정국을 바라보는 연합교회 공론탐색 이야기 (1) 작은불꽃 5300 07-09
463 BBC다큐 붓다의 일생을 보고서.. 정강길 7188 07-05
462 모든 신론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다 (4) 한솔이 6089 07-03
461 대전신학대 김덕기 교수의 "최신 역사적 예수 연구" 특강 (1) 관리자 8922 07-03
460 성경 번역, 무엇이 문제인가? (6) 한솔이 7587 06-30
459 종교와 보수 (2) acecard 5960 06-30
458 성경공부 좀 합시다! 먼저 창세기부터 (3) sydney 6686 06-24
457 [7/9 저녁 8시] 영화마당 <로메로(Romero)> 무료상영! Artizen 4993 06-22
456 "예수는 좌파다 -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설교를 보고" - 한겨레 토론방 마루치 14918 06-18
455 "목사가 다 그렇진 않다" - 시사IN (4) 마루치 6702 06-13
454 이순신은 사탄이라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신도들이 작성한 글(펌) (7) 치노 10719 06-12
453 뉴라이트 (2) 지영 5245 06-11
452 (동영상) 뼈의 최후통첩 마루치 4950 06-10
451 신에 대하여 더 이야기 하고 싶어요 어리버리 5700 06-07
450    답변입니다. 정강길 7076 06-07
449 (동영상) 넘어져있는 여학생을 발로 짓밟고 차는..... (5) 마루치 5870 06-01
448 신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습니다. 어리버리 7335 05-27
447    답변입니다. 정강길 5621 05-28
446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읽어 보셨는지요? (3) 통전적 신… 6636 05-26
445 한겨레 만평 모음 미선이 6570 05-26
444 도올 초청 ‘큐복음서’의 예수 재조명 : 27일 화요일 감신대-한신대 합동 심포지움 마루치 7283 05-25
443 연기론과 심리치료 (2008년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봄 학술대회) 관리자 5928 05-23
442 <공개강좌> 김수행교수와 함께 하는 한국경제, 세계경제 알기 마루치 5482 05-21
441 [6/10 저녁7:0] 정웅기 - 2008년 봄, 티베트에선 무슨일이 벌어졌나? Artizen 4799 05-19
440 불교와사회 특별강좌-'마음챙김과 심리치료' 로널드 시글 박사 초청강연 미선이 6622 05-18
439 이명박은 기독교인가? (1) olivgrun 5603 05-16
438 '밥'과 '신앙' 거래하는 종교단체, 이제 그만(펌) 치노 6815 05-15
437 여전히 풀리지 않는 오해, 문화선교 (1) 별똥별 4897 05-08
436 [한겨레신문 20주년 기념] 평화의 나무 합창단 제 1회 정기 공연 두둥~~~(효과음 ^^;;;) (1) 컨설턴트 8957 04-30
435 [알림] 이명박씨 대통령직 사임촉구 범국민서명운동에 동참부탁드립니다!!! 미선이 6101 04-30
434 미국은 광우병 소 처치가 곤란해서 다른 나라에 수출을? (1) 미선이 5720 04-30
433 [펌] '조중동식'의 해석 (풍자) (1) 미선이 5222 04-28
432 정치인들 넘무 부자다 장동만 5234 04-24
431 이명박 패러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1) sydney 8068 04-20
430 [5/13] 다큐 <세개의 이름을 가진 영화인> 그리고 감독과의 만남! Artizen 5542 04-18
429 새 벽을 넘어 쑥향 4718 04-17
428 존재의 의미 쑥향 5020 04-17
427 4월9일(수) 오후3시 티베트 평화를 위한 아시아인의 연대 미선이 4706 04-08
426 [4.16 저녁7:30] 도로시 데이 <어둠속의 천사> [무료관람입니다] (1) Artizen 6770 04-03
425 예수님 부활이 3일 만에 이루어지는 이유 (3) 김영순 7432 03-31
424 [펌] 습관을 보면 내 몸 보인다 미선이 5069 03-31
423 [펌] 게시판에서 쌈이 나는 이유ㅋ 미선이 5326 03-29
422 재림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오신다 김영순 6342 03-28
421 [펌]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왜 우리는 가난한가 미선이 5343 03-27
420 물로 다스리는 건강법 미선이 6074 03-22
 1  2  3  4  5  6  7  8  9  10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