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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다비아(정용섭 목사의 신학노선)에 대한 짧은 단상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8-10-27 17:24 조회(1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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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다비아에 대해 별로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세기연 모임을 하다보면 직간접적으로 다비아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다.
 
이번에도 우연히 다비아측의 교회창립 모임에 다녀온 분을 뵙게 되었는데
그분으로부터 다비아의 교회창립의 변이라는 글을 받게 되었다.
날더러 그 글을 한 번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그 글은 한국에서의 설교비평 히트메이커 정용섭 목사의 글이다.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정용섭 목사가 취하고 있는 신학 노선은
마치 보수와 진보가 혼재되어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그의 노선은 기독교의 정통교리와 다소 진보적인 사회운동이 양립가능하다고 보는
오늘날 한국의 중도 복음주의 진영이 띠고 있는 모순과도 정확히 맥을 같이 할 따름이다.
 
아마도 그나마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성서비평의 수용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바르트 신학이 보수 진영에게선 성서비평의 수용으로 인해
진보 기독교 혹은 자유주의 신학자로 매도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포함하여 민중 해방 신학을 전개하는 진보 진영의 신학자들에게는
여전히 보수적인 신학자로 비판되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은 처지인 것이다.
 
혹자는 이런 혼재를 일컬어 진정한 통합이라고도 볼 진 모르나
그것은 일관된 통합이 아니라 혼재된 모순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정용섭 목사의 입장은 그 자신도 스스로 고백하듯 대안적 입장은 못된다.
그는 사도신경적 신앙고백을 오늘날 현대에도 여전히 고수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하지만 나는 신을 절대타자로 보고 있는 사도신경적 정통신학의 수용과
한편으로는 이원론의 극복이 어떻게 양립 가능한지를 모르겠다.
만일 진정한 이원론의 극복이라면 그 이원론을 대체할 대안적인 형이상학적 틀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나로서는 새로운 대안 기독교 신학이 나와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정용섭 목사는 이 지점에서 어이없게도 삼위일체론적 해석을 들고 있는데 그런 얘기는
'형이상학'이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얘기일 뿐이다.
특히 그의 '철학'에 대한 바탕적 이해는 매우 취약한 듯이 보인다.
게다가 일전에도 확인된 바 있듯이 그가 말하는 니케아 신경이나 삼위일체에 대한 해석은
사실상 그 자신의 현대적 해석이지 그때 당시의 해석을 설명하는 입장은 결코 못된다.
 
타종교에 대한 정용섭 목사의 입장은 배타주의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대체로는 포용주의 혹은 포괄주의 입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잘 알듯이 포괄주의 입장 역시 기독교우월주의 혹은
기독교 제일주의라는 입장이 여전히 견지되고 있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젠 잘 알려져 있듯이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가톨릭의 제2바티칸 공의회 입장과도 거의 다르지 않다.
 
이번 교회창립을 보니 '십일조 없는 교회'를 표방한다는 것이 있다.
물론 이런 점들은 세기연에서도 이미 추구하는 바라 나 역시 좋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정용섭 목사의 신학 노선은 한국 기독교에서 볼 때
징검다리 역할의 건넘돌적인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교회 대부분은 수구 보수적인 진영에 속해 있기에
정용섭 목사가 추구하는 몇 가지들이 이들 눈에는 매우 신선하게 여겨질 수 있기에
곧바로 진보 기독교 진영에 호감을 보이기보다는 그 중간에서의 완충 역할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핵심적인 신학 바탕은 결코 다르지 않다. 단지 해석을 좀더 세련되게 할 뿐이다.
 
정용섭 목사가 보기에 정통교리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정용섭 목사의 입장에서 사도신경 및 정통교리는 
예수의 삶과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서 자리매김되어 있다.
 
따라서 좀더 기독교 정통에 대해 고수할 것은 고수하면서
부분적인 교회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다비아는 그야말로 인기 진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뭔가 우리 안에 변화를 갈망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신앙의 안정성을 여전히 지키고자 하는
개신교 대중들에게는 그야말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확히 말하면 정용섭 목사의 노선이 유효하게 먹히는 진영은 거의가
기존의 개신교 대중(특히 보수 기독교 진영)에 국한되지 이를 결코 넘어서고 있진 못하다.
 
내가 보기엔 정용섭 목사의 신학 노선은
부분적 혁신을 마련한 세련된 보수주의 입장이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절충적 보수주의자였던 한때의 바르트 유행을 떠올리면 거의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수구 보수가 오늘날 현대에도 여전히 살아남고자 하는 보수 기독교의 한 방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예전에 류상태 연구원이 말하길
진보 기독교는 보수 기독교의 쑥주 노릇을 한다고 꺼낸 그 비난은
내가 볼 때 정확히 정용섭 목사 진영에게는 더 없이 잘 해당되는 얘기라고 본다.
 
국내 복음주의 진영이 대체로 그렇듯 애매모호한 추상성을 공유하면서 혁신을 말한다.
"하나님은 사랑이다"라는 명제는 보수외 진보 진영 모두가 추구하는 바일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점은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구체화 작업에 따라서 그것은 매우 수구적인 신학적 방향이 될 수도 있고
또는 래디컬한 신학적 방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내 안에 있는 혼재된 모순을 올바로 직시하려면
보다 철저한 개념 이해와 논리적 일관성을 띠어야 할 것이다.
 
세기연 모임을 보면 종종 다비아와 인연이 있는 분들도 오곤 한다.
그럴 경우 양자의 신학적 차이에 대한 논의로 대화를 이끄는 것은 좋다고 본다.
즉, 다비아 비판이든 옹호든 간에 이를 얘기하는 것자체는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전에 먼저 세기연과 다비아가 가는 길은 분명하게
서로 다르다는 점을 직시하고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은 더 중요하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들(이를테면 십일조 없는 교회나 교회 민주화 등등)
그런 면에서는 세기연이 추구하는 바와도 공유점이 있을는지 몰라도
가장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신학적 노선에 있어선 양자는 결코 양립 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이 점만큼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직시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바비도 (08-10-27 22:50)
 
동감합니다. 다가오는 10월 31일 월례포럼에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늘오늘 (08-10-28 03:23)
 
꼴 보수 교회,
다비아,
세기연.
시드니 사랑방 모임,
主式會社 드림,

어디에서도 늘오늘은 발을 빼지 못했다.
어디에서도 늘오늘은 눈을 떼지 못한다.

토요일에 선보기로 한 분을, 오늘 미리 만났다.
나 살아온 과정에, 나의 정치적 스탠스, 신앙적 입장을
짧게나마 얘기했다.  그것으로 끝이다.

늘오늘을 양자택일로 몰아붙이지 말아다오.
글찮아도 외로운 놈이다.

    
미선이 (08-10-28 05:29)
 
세기연, 시드니사랑방, 드림교회는 같이 갈 수 있을진 몰라도
꼴보수 교회와 다비아는 결코 그렇지 못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사람보다는 그 노선과 뜻을 보고서 함께 모이는 거라고 생각되어요.
예수도 오직 하나님 나라 운동만 생각하면서 사셨던 것 같구요.
물론 예수께서도 사람의 정을 중요시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가고자 했던 그 노선과 뜻이 흔들리셨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정용섭 목사가 보기엔 다비아교회가 새롭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부분적 개혁일뿐이지
그 신학은 전혀 새로운 게 못됩니다. 이것이 아마도 개혁과 변혁의 차이가 아닐까 싶으네요.

글구 늘오늘님이 말씀하시는 외로움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는 몰라도
제 경우는 선택을 확실하게 내릴 때 더이상 외롭지 않더군요~^^*

늘오늘 (08-10-28 08:51)
 
쩝, 두 곳에서 다 사랑(?) 받을 거 같네요. 끌~;;
머 어쩌겠어요.  뻔뻔해지는 거 밖에는 방법이 없네요. ㅋ^^
암튼, 시월의 어느 멋진 밤샘토론이 예상되는군요. ^^*

맛보기로 제 입장을 정리해놓겠습니다.

원론적인 입장에서,
철학적 일관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학체계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바램은 같습니다.
이 일엔 학문적 바탕과 뛰어난 영성이 요구되기에, 저는 한 발 옆에서 지켜볼 뿐입니다.
다만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 그 신학적 착상을, 나름대로 이리저리 표현해볼 생각이구요.

늘오늘이 세기연에 오는 과정,
여러 번 말했듯, 제가 주술적인 미신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다비아 때문입니다.
한편, 학문적 영성적으론 따라잡을 수 없는 정목사님의 존재 앞에서,
저는 제 나름의 자유로운 헛발질에 더 방점을 찍기로 했고,
마찬가지로 따라잡기 힘든 세기연이지만, 이곳에 둥지를 틀기로 했습니다.

이 부분이 저 스스로를 변호해야할 부분인데,
우발적으로 보이지만, 저는 다시 다비아에 퐁당 뛰어들었죠.

‘새로운 신학과 정통 신학은 양립할 수 없다.’
그렇게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자역학과 뉴튼역학의 관계처럼(?), 크게 포괄해내는 것을 어느 쪽에 기대해야 할까요?
제 판단 범위를 넘어서니, 다만 제가 기대하는 바가 큰 통합이라는 점만 지적하겠습니다.

‘도대체 다비아에 뭘 기대하는가.’
예배공동체입니다.
사회과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
내면의 평화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
친목회의 활기로 환원되지 않는 영역,
이 모든 것을 두루 아우르는 풍성함.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람(또는 하나님)이라는 중심주제에 비추어,
다비아가 갖고 있는 생명력이, 늘오늘에게 여전히 필요합니다.

‘세기연에서는 뭘 기대하는가.’
새로운 신학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
다양한 강연과, 치열한 갑론을박을 통해 이론적으로 튼실해지는 것.
가끔 내가 예수쟁이라는 것조차 잊어먹고, 다양한 입장을 취해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또는 하나님), 보석처럼 빛나는 세기연 식구들.

p.s. 모야~, 결국 양다리 걸치겠다는 얘기네? ㅍㅎㅎㅎ^^

    
미선이 (08-10-28 09:00)
 
제 얘긴 예배공동체라고 해도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양비론적 신학에 기댄 예배>일뿐이라는 얘기죠.

글구 저도 그렇긴 하지만 아마도 제 생각에
바비도님께서도 늘오늘님에게 할 얘기가 많으신 것 같더군요.
이번 포럼때 단단히 방어의 준비를 하셔야 할 듯 싶습니다.^^*

바비도 (08-10-28 10:45)
 
늘오늘님이 가지신 생각에 대해서 이해는 하지만 동의 할 수는 없군요.
이 세상에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본인의 외로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외로움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늘오늘님의 욕심이 너무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늘오늘 (08-10-28 10:57)
 
미선이님의 생각을 지지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노선과 뜻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바로 운동이죠.
작은 나를 넘어 큰 나를 살아내는 방법이니까요.

오류와 비극 앞에 겸손한 새로운 기독교,에 기대를 품는 것과
늘오늘이 여전히 꼴보수교회에 나가는 것은 모순입니다.
그러나, 꼴보수교회에 나가는 것이, 더 이상 신앙의 차원이 아닐 땐,
이것은 모순 운운할 여지도 없는, 그저 늘오늘이 처한 환경일 뿐입니다.

그러나, 다비아는 다릅니다.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지는 않을지언정,
다비아에서 그 실현을 감지하는 늘오늘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게 다비아를 방어하는 식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겠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세기연 식구들은 제게,
제가 이미 동의하고 있는 부분을 반복해서 주장하게 될 터이구요.

예컨대, 정통에 기반한 다비아와, 그 정통의 한계를 드러내려는 세기연,
저는 세기연 쪽을 선택했고, 그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그 대립각을 적대적 관계가 아닌, 경쟁의 관계로 보는 늘오늘에게,
세기연이 옳다,라는 주장은 불필요한 얘기가 되고,
다비아가 틀렸다,라는 주장은 무책임한 얘기가 됩니다.

    
바비도 (08-10-28 12:01)
 
늘오늘님의 말씀처럼 저도 세기연과 다비아가 적대적 관계가 아닌 경쟁의 관계로
서로의 생산적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늘오늘님이 인정 하시듯이 세기연과 다비아가 서로의 신학적 노선이 다르다면
세기연과 다비아 중에서 어느 한쪽 단체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다른 단체의
의사결정에는 참여하지 않는것이 두 단체의 구성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늘오늘님께서는 불과 몇일 전 까지만 하더라도 저를 비롯한 저희 세기연 회원들과
세기연의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저의 회원들에게 특별한
말씀도 없이 갑자기 "서울다비아교회"에의 참여를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세기연과 다비아는 교회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동일하지만 그
원인 진단과 해법에 있어는 신학적 노선이 다르기 때문에 다들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경제학의 용어를 빌리면 교회개혁의 영역에 있어서 세기연과 다비아는 궁극적
으로 "보완재" 관계가 아닌 "대체재" 관계 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세기연과 다비아의
숙명(?)입니다. 물론, 사안(교회세습, 십일조 문제,교회내 민주화 등등)에 따른 연대는
가능 할 것입니다.   

비유로 말씀드리면 늘오늘님께서는 지금 정당활동을 하시면서 인간적인 관계때문에
민주당 당원과 진보신당 당원으로 동시에 활동 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고 계신 것 입니다.
그것도 양당의 의사결정에 동시에 참여 하시겠다는 의사도 가지고 계신것 같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가 진보신당 당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저는 이러한 상황을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가질수 있지만 제가 민주당원인 사람과 진보
신당의 진로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할 이유는 전혀 없으니까요? 

이상이 저의 답변입니다. 되도록 부드럽게 쓰려고 노력했는데 혹시라도 언짢은 점 있으
시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늘오늘 (08-10-28 13:57)
 
다비아의 실무진에 저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런 자리를 일부러 피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기연의 운영에 저는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신학의 얼개를 그려내는 일은,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강사를 초빙하고 강좌를 기획하는 일 등에 나서본 적도 없지요.

위의 모양새는 제게 만족스러운 형태입니다.
앞장서서 무엇인가를 끌고 가는 것은,
저의 능력 바깥의 일이고, 성격에도 맞지 않으니까요.

본격적인 담론의 주변에서, 나름 공부하면서
일상적인 소재로 넋두리를 하고, 댓글로 이바구하는 것이,
제가 다비아에서 했던 일이고, 세기연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어느 쪽에서든 저의 이바구는, 단지 하나의 의견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의 거취에 관한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저의 것입니다.

    
바비도 (08-10-28 14:53)
 
늘오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이해하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월례포럼때 만나서 나누었으면 합니다.^^

정관 (08-10-28 15:26)
 
다비아가 뭔데 그러지? 주님앞에 다 비운 아이들 인가? 그런데는 별로 관심없다보니
지금 신이 되느냐? 마느냐? 그것이 오직 문제인데.. 그러다가 여기 저기 찾아보다 글들을 읽어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누구나 안경을 쓰고 있고 자기 의식에 맞는 것을 택할 수 밖에 없겠지요.
과거 루터 종교개혁때 또한 부류의 종교개혁이 있었는데 지금 예수회인 이냐시오의 종교개혁이
있었습니다. 운동모습은 전혀 달랐죠.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그때와 똑 같지는 않더라도
내적인 운동, 심령의 운동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sydney (08-10-29 09:22)
 
제가 다비아에서 경험한 진보는 편리한 진보더군요.
즉 자기 편할 때만 찾는 진보
보수도  마찬가지로 자기 편할 때만 찾는 보수.(정서적으로)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오늘 같은 한국교회에서?
신선한 한 줄기 바람인 것을...

    
미선이 (08-10-29 12:39)
 
저는 이제 다비아에 대해 양비론적 비판도 안할래여..
다비아가 신선하다면 김경호 목사님이 하는 들꽃향린교회 같은 진보 교회들은 억울해할 얘기지요.
워낙 사람들에겐 설교비평 히트는 알려져 있지만 그런 교회들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았을 뿐이니..
예배 모델도 그렇고 성서공부를 하더라도 훨씬 앞서 있는 것을요..

        
sydney (08-10-30 04:05)
 
기독교 시장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여러 형태로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야 하겠지요.
지금 시중에 유통되는 교회 보다 그래도 한 발자욱이라도 앞서가는 신상품이라면
비록 의장 특허 수준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지요.

            
미선이 (08-10-30 04:59)
 
넹 넓고 할일은 많지요. 근데 정작 신상품 취급 받아야 할 교회와 목사님들은 이미 따로 있었다는 얘기였죠.
하긴 사람들은 그저 드러나고 알려진 것들만 보니까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시장을 좁게만 알고 있지요.

                
바비도 (08-10-30 12:41)
 
미선이님의 말씀처럼 저도 김경호 목사님의 들꽃향린교회가 다비아 보다는 훨씬 더 예언자적인
교회라고 봅니다.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다비아가 더 알려진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러한 기독교내의 "정보 비대칭"을 시정해 나가는것 또한 저희 세기연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 보다도 근본주의 기독교가 득세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에서
대부분의 근본주의적 교회보다 다비아가 반 걸음만이라도 앞서 나가고 있다면 그러한 부분
에서의 역할은 인정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됩니다.

                    
sydney (08-10-31 01:40)
 
인정해 줄 뿐만 아니라 아무쪼록 부흥 발전 하라고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모든 것에 수준과 단계가 있는 법인데 보수 일색의 한국 교계에서 참다운 개혁의 길로 가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지 않을까요?

                    
미선이 (08-10-31 09:18)
 
저는 그 역할론 혹은 그 단계이론이 지금까지 그같은 입장들을 정당화시켜주는 쑥주 기능만 했다는 것이죠.
역할로 따지면 오히려 그건 한편으론 보수 기독교를 더욱 고착화하는 <쑥주 역할>을 한 셈일 뿐이지요.

다비아는 분명한 보수입니다. 단지 어떤 면에선 진보를 가장한 보수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욱 위험스러운 측면도 있답니다. 왜냐하면 그 위험스런 괴물인
정통교리를 절묘하게 여전히 정당화시키며 보존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우도 (08-10-29 13:27)
 
다비아를 보다가 여러가지 불편한 것이 있었서 나오려는데 나를 열받게 하는 것이 하나가 더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울에 하나 경산인가에도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고 과연 누구를 위한 비평을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 대한 변명을 하지만 내눈에는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기존에 잘팔리는 목회자들과 똑같은 욕심인 것이 아닌지요?

바비도 (08-10-31 13:06)
 
미선이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지 알지만 (저 자신도 그러 했지만) 개신교인들의 신앙의 순례는
대략적으로 근본주의 -> 복음주의 -> 신정통주의 -> 자유주의(다원주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풍토에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근본주의나 복음주의적 신앙으로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다비아의 신학노선은 복음주의와 신정통주의 사이의 어디엔가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이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가 다비아를 통해서 근본주의적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면 이것은 그 개인의 신앙 여정에 있어서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라고 인정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후 이 사람은 계속 다비아의 신학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고 한 걸음 더나가 세기연의 신학에 둥지를
틀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참다운 개혁의 길로 가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sydney님
의 의견에 동의합니다.(그러나 다비아가 부흥 발전하라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sydney님의 말씀처럼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현실속에서의 하나의 단계일 뿐이니까요.^^) 이러한 점이 다비아
에 대한 미선이님과 저의 인식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우도 (08-10-31 13:08)
 
나두

    
미선이 (08-10-31 13:24)
 
그렇다면 저는 바비도님의 다음과 같은 말인
"다비아를 통해서 근본주의 신앙을 버리게 되었다"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개인적 신앙 순례로 따지면 오히려 저는 그런 중도적인 단계를 밟지 않아서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다비아가 근본주의 신앙 노선을 버렸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언뜻 보기엔 그렇게 보일는지 몰라도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저들이 언제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나 속죄설, 전능자, 절대자, 초월자, 부활과 재림에 대해 버렸는지요?

혹시 성서문자주의 극복의 성서비평을 예로 드실는지 몰라도
다비아가 제아무리 성서비평 수용이 있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교리적 대전제 기반한 채로
해석은 그럴 듯 하지만 결국은 이미 결론 역시 맞춰져 있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언뜻 보기엔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앨리스터 맥그리스가 자신의 복음주의를 변증하면서 했던 말과 똑같이
"기독교의 중심 주제들을 건들지 않는 한 얼마든지 열려 있을 수 있다"는 식의 입장 밖에 되지 않는,
결국은 어쨌거나 <닫힌 중심의 기독교>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보기엔 다비아는 그저 근본주의가 좀더 세련된 포장을 가진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혹시 그런 포장조차도 의미가 있다고 하신다면 저도 더이상 할 말은 없지만
사실상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 포장이먀말로
한편으로는 위험천만한 쑥주 기능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더욱 비판적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아마도 이것이 바비도님과 저의 인식의 차이인것 같습니다.

        
바비도 (08-10-31 14:00)
 
미선이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겠습니다.^^  다비아에 대한 미선이님과 저의 인식의 차이
는 결국 "근본주의란 무엇인가?" 또는 "근본주의를 어떻게 정의 할 것인가?" 라는 문제로 귀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치노 (08-10-31 14:07)
 
사실 정용섭 목사님이 내놓은 앞의 설교 비평 2가지는 보았습니다. 무척 잼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저야 아직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아마 그 설교 비평을 본 목회자들(예: 이동원 목사 님등)은 가슴이 뜨금했을테지요. 제 기억으로도 신선한 시도였습니다. 주로 신학생들이 많이 읽더라구요. 그런데 미선이님 말씀대로 기존 체제(기독교) 내에서의 비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신학적 논쟁까지는 못간것 같아요. 그 책에서는 그런 언급은 없었으니까요(물론 설교 비평에 중점을 두었던 것이라 그렇지만요). 저의 교회(복음주의 계열)에서는 강해 설교를 하는 데 저 번 주에는 전도주일이 되서 그런지 예수님 믿고 천국가라는 메시지로 설교가 이루어졌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보통은 이런 언급 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저와 목사님 간의 노선(생각)의 차이가 팍 드러나더라구요. 약간 당혹했습니다. 세기연에 오래 있었더니 그랬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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