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예수살이 공동체입니다.”
“예수살이란 어떤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합일되어,
        지상에서 천국처럼 사는 이상의 삶입니다.“
“예수살이의 정신은 무엇입니까?”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기쁨,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입니다.”

        -〈예수살이 공동체〉『강학집』,“예수살이 문답”중에서


‘지상에서 천국처럼’ 산다? 유토피아라는 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던데, 이런 일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세계를 둘러보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죽음과 파괴의 소식들을 너무도 쉽게, 그리고 넘쳐나도록 접할 수 있다. 어디 멀리 딴 나라뿐이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도 죽음과 파괴의 소식들은 넘쳐난다. IMF 관리체제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죽음과 파괴의 소식들은 더욱 우리를 답답하게 옭죄어오고 있다. 전쟁과 분단 등의 문제가 가져오는 죽음과 파괴의 소식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를 근심하고 아프게 하는 일들이 꽤나 많다. 실직의 불안, 젊은이들의 취업난, 맞벌이를 해도 팍팍하기만 한 서민들의 살림살이, 치솟는 물가. 각종 사회지표들은 우리 사회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불안과 고달픈 삶을 은폐하며 소비를 부추기는, 아름다움과 편리함, 세련됨과 첨단기술로 포장된 상품들이 주위에 넘쳐난다. 텔레비전을 통해 무차별하게 퍼부어지는 상품광고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상품의 소유가 존재를 말해 준다고 선동한다. 그런 상품들을 가지면 아름답고 세련되고 앞서가는 존재로 여겨지는 세상이다. 경제적 부는 이제 사람의 계층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격까지도 표현해 주는 지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신학자가 오늘날의 사회를 가리켜 ‘돈의 신’ 맘몬(Mammon, 物神)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했다던데 공감이 간다.

이처럼 맘몬의 지배가 강고해져가는 우리 시대에 소유로부터의 자유와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기쁨을 실천하며 지상에서 천국처럼 살 수 있다고 ‘가난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선교사’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소비주의 문화에 저항하는 것이 ‘예수살이’, 즉 예수를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의 답은 간단했다. 소비문화는 죽음의 문화이고, 생명을 살리는 삶을 사신 예수의 생애를 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소비문화는 인간의 삶과 환경을 파괴하고 있고 생명을 죽이는 문화이기에, 우리는 하느님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살려내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소비문화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거예요.”

“자유와 기쁨과 투신은 예수의 생애를 통해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광야의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로부터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하층민의 벗으로 사신 예수로부터 가난한 이와 함께 하는 기쁨을, 예루살렘 십자가의 예수로부터 현실에 도전하는 투신을 발견할 수 있다.” -『강학집』중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삶에서 나온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기쁨을 맛보고 세상의 평화를 위한 투신의 정신을 기르려는 교육은 3박 4일간 진행된다. 4일은 각각 ‘만남의 날’, ‘자유의 날’, ‘기쁨의 날’, ‘투신의 날’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스도를 만나 자유를 얻어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고, 그 샘솟는 기쁨으로 나를 헌신하게 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다.

“예수를 따라 살려고 하면 예수님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아야 하잖아요. 몇천 년 전, 어디에선가 그냥 있었던 일로 볼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의 삶과 연결시켜서 예수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 다음에 한 달에 한 번은 공동체와 함께 성찰하자고 하죠. 개인의 성찰은 한계가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성원들과 함께 성찰해서 한 달을 살아가기 위한 힘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명상하고 일 주일에 한 번은 이웃과 함께 하고 한 달에 한 번은 공동체와 함께 하고, 그 다음에 일 년에 한 번은 공동체 전체와 어우러져 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체험하자고 해요. 이것이 <일묵상 주적공 월찰고 년공생>(日黙想 週積功 月察考 年共生)이라고 표현하는 예수살이의 四行이에요.”

예수살이공동체는 흩어지는 공동체이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 속에서 폐쇄된 개인주의자로, 착하지만 이웃에 무관심한 개인으로 남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공동체 정신이 사회 전체에 확산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그 ‘확산’의 월찰고 모임

방식은 분점이나 지교회를 내는 방식이 아니라 개인들이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공동체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예수살이는 예수의 자유와 기쁨과 투신을 경험한 사람들이 각자 삶의 터전에서, 즉 세상 한 복판에서 분투하는 공동체이다. 흔히들 교회에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들 한다. 하나는 모이는 공동체이고 또 하나는 흩어지는 공동체라고 한다. 모이기만을 강조하는 한국교회의 대체적인 풍토 때문인가? 예수살이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또한 예수살이공동체는 성례전적(聖禮典的) 공동체이다. 매주 혹은 매월 혹은 매년 정례적으로 모이는 공동체 시간에 얻은 힘으로 나머지 시간들,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들을 이겨내는, 그리고 다시금 모여 서로 고백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새 힘을 얻는, 단순히 인간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힘, 예수께서 날마다 얻으셨던 그 힘을 얻는 공동체. 성스러움의 체험으로 속의 세계를 성화시키려는 그들의 모임은 굳이 미사가 아니어도 성례전(聖禮典)일 것이다.

합정동 집 다목적실 한 편에는 한 귀퉁이를 잘라낸 CD 수십 장이 줄에 매달려 있었다. 자신의 이름과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라는 운동의 실천방안들 중에서 자신이 실천하기로 결심한 내용, 그리고 잘 실천하기를 간구하는 기도문이 적힌 CD들은 뜻밖의 아름다움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안내해 주던 진선미 사무국장은 잘라 낸 CD의 조각은 소비사회의 순환 고리를 끊는 결단을 의미한다고 말해 주었다.

“새로운 공동체의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를 소비문화로 지배해 온 보이지 않는 마케팅, 그 악령의 실체를 추방하기 위하여 지금까지의 관행적 생활형태를 단절하는 것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 우리 시대 소비문화라는 광야의 악마가 내놓은 유혹을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단호한 거절로 실천한다.” -『강학집』,“광야수행”중에서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 이들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SO (Shopping Off), TO(TV Off), HO(Handphone Off), CO(Credit card Off), AO(Auto-car Off), PO(Processed food Off), MO(Make up & accessary Off)를 선택하여 실천한다.

“예수살이 운동의 하나로 벌이고 있는 것이 광야운동이에요. 그것이 오프(Off) 운동이고요. 광야운동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 받으셨고 그 유혹을 끊어 버리셨다는 것을 본받아 오늘 우리의 삶에서 광야의 유혹을 끊어 버리자는 운동이에요. 구체적인 일상에서의 실천을 함께 고민하고 월찰고 시간에 나누게 되지요.

 

예를 들어 신발이 필요하다 했을 때, 무조건 안 사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에서 각자가 안 쓰는 물건을 서로 내어놓는 나눔을 실천하게 하죠. 그런 식으로 우리가 쉽게 구매하는 물건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하고 함께 생각하고’, 그 다음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그래도 꼭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서 구매하는 과정을 함께 겪어 나가자는 것이 운동의 취지에요. 오프 운동을 실행하면서 하느님과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굉장히 놀라운 경험을 듣게 될 때도 있어요.”

쇼핑 안 하겠다고 고민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난다니. 이들의 성스러움에의 체험은 지극히도 일상적이다. 하지만 일상만큼 넓고 강한 것이 있을까? 이들의 하느님 체험도 그만큼 넓고 강렬한 것이리라. 우리는 너무 하느님을 좁게 그리고 거룩하게만 만나려는 것은 아닐까?

“오프 운동은 이제 2년 정도 되어 가요. 그 이전에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지만 합성세제 사용 안 하기 운동 같은 것을 했어요. 상업적-보수신문 안 보기 운동도 했고요. 생명을 파괴하는 직업에 종사하지 않기 이런 것도 하지요. 운동은 여러 가지를 제시하지만 개인이 선택하도록 하죠. 교육과정을 통해서 그런 운동이 왜 단순한 사회운동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합한 것이고 소비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르기의 구체적인 방법인지 알리려 노력합니다. 소비문화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하도록 이끌죠.”

“오프 운동은 무조건 안 쓰기에만 그치는 운동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끊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고 중심이 되지만 결국에는,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안 보게 됨으로써 생겨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합니다. 단순히 텔레비전을 봤다 안 봤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가족과 혹은 개인이 무엇을 했는가를 고민하게 하는 거죠. 또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게 될 경우 공동체 성원들 간의 효율적인 연락과 약속 지킴의 방안을 고안하는 것에까지 생각이 이르도록 하죠. 단순히 안 하는 것만 가지고는 운동이 오래 갈 수 없을 거예요. 의미도 없고.”

하지만 나 혼자만의 영성과 생활태도의 변화가 어찌 이 악의 세계의 흐름을 막을 수 있겠는가? 현실이 온당치 못하다고 여기는 자,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자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개인의 삶의 방식의 변화만으로는 안 되고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그런 고민은 계속되어야 하고 예수살이를 하는 우리도 그런 고민을 해야죠. 우리 안에도 그런 고민들이 있어요. 세상이 점점 더 비극적으로 변해가고 전쟁이 일어나고, 일자리도 얻기 힘들어지고... 이런 상황에서 예수살이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들을 늘 해오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소극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 앞에서 우리가 담담해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목표로 삼았던 것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살겠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우리 안에만 갇히다 보면 우리 자신을 합리화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에 분명한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의 문제, 구조악의 끈질김과 뿌리 깊음을 이들도 안다. 사회구조의 변혁을 위해 일해야 함도 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몫을 이렇게 말한다.

“저희도 계속 평화미사라든가 촛불집회라든가에 참여하고 있어요. 회원들도 함께 하자고 얘기하죠. 하지만 촛불집회에 나가서는 평화를 외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겠죠. 평화가 파괴의 반대되는 개념이라면 내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생명을 파괴하지 않고 생명을 사랑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더 기본적인 차원의 평화에의 투신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것이 평화를 추구해 나가는 것이고 내 안에 있는 분노와 미움들을 성찰하고 비워 나가는 것도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지요. 그런 작은 것들로부터 우리가 자신을 성찰해 나가고 하는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시대적 상황을 판단하고 살아내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그 사건에 따라서만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평화,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평화적 사유와 생명을 살리는 삶의 방식이 삶 속에 뿌리내리는 것들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나는 물었다.

“운동보다는 일상으로 가야 한다고 보시는 거죠?”

“일상의 운동이죠.”

예수살이는 생활공동체를 설계하고 있다고 한다.〈산 위의 마을〉이라는 이름의 생활공동체. 이미 충북 단양에 첫 발을 내 디뎠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소수의 무리들, 그것도 세상과 어느 정도 격리된 소수의 무리들이 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세계를 멈추게 할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대안 공동체처럼, 이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서 산위의마을이라는 단어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이 실질적으로 세상의 고통을 경감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인가?

“산위의마을은 저희의 고민 속에서, 세상 속에서의 운동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내부에서 제기된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에요.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계속 갈등하고 고민하고 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사람들이 이런 갈등과 고민 속에서 포기하게 되면서 ‘나는 예수살이로 못살겠다, 예수살이로 살려니 사회생활이 너무 괴롭다.’ 하거든요. 왜냐하면 사회생활에서는 실제적으로 예수살이로 살아가는 것에서 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것들을 어쩔수없이 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게 되니까요. 물론 저희는 그 괴로움 자체가 예수살이로 살아가는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요.

 

아무튼 어쩔수없이 타협하게 되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예수살이와 같은 삶이 가능한가라고 사람들이 질문하게 되죠. 우리는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무소유의 부유함’, 소유하지 않아도 정말 잘 사는 것,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마을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것이 가능함을 보여 주는 마을과 우리의 운동이 양 축이 되어 같이 가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수살이를 살아내는 실질적인 생활 공동체의 출범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예수살이 운동도 힘이 빠지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두 가지가 같이 가는데, 서로가 닫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연결되어 산위의마을을 보고 자기 삶의 자리에서 예수살이를 살려는 사람들이 희망과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다.”(『마태복음』5:15)라고 말씀하셨듯이, 산위의마을은 숨겨지지 못할 것이다. 시대를 거스르기에 더욱 숨겨지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삐거덕거림을 극복하고 새로운 ‘함께 삶’의 대안을 제시하여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는 가운데에서 행복이 솟아나게 한다면 이들은 더욱더 숨겨지지 못할 것이다. 소비문화 사회의 그늘이 더욱 짙어지고 그 안에서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산위의마을은 기이함을 주는 공동체로,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예시해 주는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