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에 희랍 전통은 '죄'를 '불완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플라톤을 비롯한 희랍 철인들은 인간의 삶을 무한성을 갈구하는 존재로 규정했고 '이데아'라는 '완전'의 종결이 우리 삶 너머로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악'이라는 것은 완전하지 못한 존재이며 '죄의식'이라는 것은 실체라기보다는 '결여된 상태를 지각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모두 알다시피 이 두 사상은 기독교 전통에서 수용되어 통합, 발전되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은 바울을 포함한 여러 추종자들에 의해 죄의 문제에 관한 것으로 중점 이해되었고 상대적으로 '악'은 그리스-페르시아 전통을 수용하여 실체화된 존재로 이해하였다. 즉, 예수는 선한 신과 악한 마귀가 대립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인간을 선한 것으로 인도하기 위한 중재자인 것이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는 '죄'를 두 가지 다른 전통에 따라 이해하였는데 이는 동로마와 서로마의 지역적 차이에서 기인한다. 첫째로 서방교회는 '죄'를 '교만(pride)'으로 이해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참회록의 저자, 성 아우구스티노(어거스틴)이다. 그는 인간의 모든 죄된 행위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인간의 발칙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다소 히브리적 전통을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아담과 이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피조물의 위치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지위에 오르려는 교만함으로 죄성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예수의 겸비(humble)한 십자가 사건은 교만한 우리 인간에게 겸손한 새 인간의 상을 제시한 것이다.

서방 전통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 기독교와 가장 근접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서방 카톨릭을 비판하고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오늘날의 개신교가 탄생하였으나 오히려 서방전통의 원본을 재해석하여 그 핵심사상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서방전통의 에세이는 지금의 교회 강단에서 설교로 활용되어도 그다지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유사한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동방전통은 우리에게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굳이 알렉산드리아나 소아시아의 대략적인 사조를 파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동방전통이 동양인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개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동방전통은 죄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 이전의 희랍전통을 계승하였고 '완전'과 '결핍'의 공식으로 이를 밝히려고 하였다. 즉, 인간의 유한성 자체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완전한 존재, 즉 '신과의 합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가령, 서방전통에서 죄를 씻기 위해 겸손함과 낮아짐을 중시하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참회와 보속(penance)이 요구되었다면 동방에서는 신과의 합일을 위한 명상과 절제하는 삶이 강조되었다.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죄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요구하게 되었다. 특히 고대 전통들에 대한 비신화화된 해석으로 악과 죄에 대한 실체적 개념보다는 인간의 심리 기저에 놓인 죄에 대한 의식, 즉 죄의식에 집중하였다. 대표적인 학자가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로, 그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개념을 차용하여 인간의 죄 역시 실체적 개념이라기보다는 '불안'이라는 심리적 개념으로 이해하였다. 다시 말하면, 죄라는 것은 인간이 죄를 저지를 때마다 어떤 통에 일정량씩 쌓이는 양적인 개념이 아니라 - 실제로 카톨릭의 보속 개념은 죄의 양적 개념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는 '죄의식에 대한 불안'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유한한 존재이고 누구도 '죽음'과 '고통'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니버는 인간의 심리 속에 존재하는 불안은 결국 인간의 삶 동안 떠날 수 없다고 보았다.

죄가 실체가 아니라 심리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삶의 이해에서 보다 넓은 시각을 요구한다. 가령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대다수의 경우 가해자보다는 피해자가 보다 큰 심리적 고통을 겪는다. 피해자 여성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일반적인 정서를 갖지 못하며 심리적 억압과 기형적 발산을 반복한다. 아동에 대한 폭력 남용의 경우 자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아이는 자신이 맞은 이유에 대해, "제가 맞을 짓을 했어요"라고 답하곤 한다. 이는 피해자가 오히려 죄의식을 더 느끼는 결과를 양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념적으로 가해자가 더 가져야 할 죄책감을 피해자가 더 크게 느끼며 오히려 이들이 죄의식을 줄이기 위해 보다 큰 보속과 참회를 지출해야하는 역전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니버 이후 많은 현대 신학자들은 악이라는 것이 인간에게 올바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통상적인 개인의 노력으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리는 사회적 모순이 바로 악이며 죄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무리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개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속한 조직을 위해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쟁들은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전쟁을 주도하는 지도자들의 윤리성이 부족한 경우는 많지 않다고 보인다. 그래서 많은 전범들이 개인적으로는 소박하고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 늘 놀라곤 하는 것이다.

최근의 용산참사를 통해 5명의 시위자와 1명의 경찰이 죽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번 시위에 대한 공권력의 절차나 집행은 정당했으며 모든 잘못은 불법 폭력시위를 벌였던 시위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표는 공권력과 경찰에게 엄청난 모순을 주는 말이다. 유사한 시위가 있을 경우 경찰은 동일한 공권력을 행사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시위자가 목숨을 잃는 것은 불가피한 순행적 현상이라는 논리가 되어버린다. 시위자가 선량한 시민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다면 틀린 논리는 아니겠지만 그 과정에서 시위대 뿐 아니라 경찰도 목숨을 잃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동원한 시위를 많이 겪어본 통상적인 기성세대라면 철거민들의 시위 속에서 시위자와 진압자의 목숨이 사라지는 이러한 충돌이 불가피하게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테러현장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각 개인들이 아무 문제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 어떠한 문제를 겪더라도 그 개인의 올바른 선택 여하에 따라 그 문제들을 큰 고통을 지불하지 않고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임을 소위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인지했으면 한다. 지금의 한국 시민들은 공동의 문제에 대해 고통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강요하고만 있는 국가의 요구에 대해 합리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