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다큐프라임의 <성격>에 대한 연구 프로그램을 보았다.

결론은 성격은 유전의 영향이 거의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즉, 성격은 태어난 이후의 환경보다는 태어나기 이전에 형성되는 유전자에 따른다는 얘기다.

 

실험을 통해 생후18개월 아기를 6개월마다 5년 간 관찰했는데

6살 이전까지의 성장과정에서 무려 80% 이상이 처음의 기질을 계속 유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시 말하면 성격은 만들어진다기보다 갖고 태어나는 쪽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 약3-5만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10%이상의 유전자가 뇌의 기능에 영향을 준다.

결국 천 개 이상의 유전자가 성격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사람에 따라 D4DR(도파민수용체)의 길이가 다르다고 한다.

그 길이의 차이는 뇌의 반응을 결정했는데 긴 사람이 짧은 사람에 비해

강한 자극을 추구한다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강한 자극이란

성격으로 쉽게 얘기하면, 외향성 개방성을 지닌다는 의미와 연결된다는 얘기며,

바로 이러한 성격의 차이가 유전자의 차이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 아쉬운 점은 그러한 유전자의 차이가 왜 생기는지에 대해선

더이상 묻지 않고 끝을 맺고 만다는 점이다.

 

내 생각에 유전자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운반 기계로 설명되어진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유전자를 동일성을 지닌 실체로 이해하는 보고 있는 시각에 가깝다.

 

유전자 역시 매순간 찰나찰나마다 생성소멸하는 변화의 흐름상에 있다고 여겨진다.

이때 오랜 세월 이어지는 유전자의 반응은 외부적 자극에 대한 관성적 반응으로 형성된 점이 있기에

거의 반응이 기계적이라는 점에 대해선 일면 수긍되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유전자 간의 차이가 나타나는 현상에 있어선 여전히 또한

그때그때마다 유전자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무쌍한 환경의 맥락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고 본다.

소위 말하는 <공진화>Co-evolution개념이 이에 속할 수 있다.

유전자 역시 자연선택을 위해선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유전자를 포월하는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테제인 밈(Meme)을 생각해보자.

도킨스가 밈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의 모험이라고 여겨지는데

내가 볼 때 밈은 유전자의 새로운 진화를 내포하고 있는 문화유전자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다시 환경의 영향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성격의 주체가 자각적이고 의식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면

내가 볼 때 성격의 변화는 더욱 다양한 통제를 할 수 있을 걸로 본다

(기존 생물학에 이런 얘기가 있는지는 모르나 현재 나의 가설로 봐도 상관은 없다).

 

단지 현재까지 인간 진화의 수준으로 봤을 때 자각적이고 의식적인 상황보다는

오히려 거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인 반응으로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 형성에 있어서도 유전자의 기계적 영향 또한 매우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인간 뇌 연구를 보면 자동적 항상성 시스템이 95%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의 의식과 상관없이 별도로 이뤄지는 기계적인 자동 반응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지 시스템도 거의 이러한 영향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나머지 거의 뜻밖이라고 여겨질만한

극소한 예외적 반응들이 인간사에 새로움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경우 결국은 유전자냐 환경이냐 본성이냐 양육이냐 이렇게 이분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관계 자체만이 있다고 본다. 유전자와 본성의 영향이 결정적이지만 그러한 차이를 낳게 하는 것은

그때까지의 이전 세대와 환경 간의 적응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깊이 나아가면 유전자 법칙도 물리학의 초끈(막)의 법칙을 거스를 수 없는

물리적 질서에 기반하는 가운데 새로움을 도모하고 있는 개체일 것으로 본다.

 

인간은 유전자의 운반기계라고 하지만 이제 인간은

유전자 자체를 조작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그때까지 물려받고 있는

기존의 물리적 생물학적 영향이 거의 절대적일 수 있으나

적어도 자각의 상태, 깨어 있음의 상태라면 몇 십 년 몇 백 년이 걸릴 수 있을 만큼

매우 더니고 느린 변화일진 모르나 또다시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변화로 인해

새로운 유전자의 진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여겨진다.

 

어떤 면에서 우리 삶의 습관을 볼 때

나 자신과 주변 환경에 대한 관계 자체를 주시하는

자각, 관찰, 깨어있음, 알아차림 이러한 것들이

여전히 왜 중요한 지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나는 진화의 비밀이 결국은 <환경에 대한 능동적 적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만일 소극적 적응만 있다면 유전자 결정론에 가깝다고 해야겠지만

유전자 역시 진화 메커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볼 경우

결국은 진화로 도약하는 비밀의 열쇠는

환경에 대한 능동적 적응이 가장 큰 관건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은 물리적 법칙상에선 매우 신비로운 현상으로 여겨지는

<혼돈으로부터 창출되는 질서>와도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존재를 근원적으로 엄밀하게 말한다면 기계가 아니다.

다만 물리적 생물학적 무의식적으로 볼 때 거의 기계에 가깝다.

하지만 정신적 의식적 문화적 차원에서 보는 존재는 여전히 예측불허적인 능동적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인간은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을 항상 함께 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