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찢어진 우산이 친구들에게 자기가 왜 찢어졌고 지금은 왜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물었다. 빨간 우산은 자기 기억 속에 비슷한 유형의 우산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너의 증상은 너가 그저께 너무 센 빗살을 맞았기 때문이고, 앞으로는  큰 비나 우박을 피하면서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일광 건조를 하는 게 좋을 거야."
    찢어진 우산의 고맙다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파란 우산이 말했다. "잠깐, 이 친구는 그 정도로 이렇게 될 리가 없어. 우리 둘 보다 더 튼튼한 메이커잖아. 여덟 번째 하고 열 번째 살 쪽이 뭐 잘못 된 거 아닐까? 혹시 화학약품에 맞은 적은 없는 지도 생각해 봐. 그리고 일광 건조는 한 시간 정도가 적합하다고 읽은 적이 있는데... 너는 두 시간이 좋다는 말 어디서 들었어?"
    찢어진 우산이 두 친구의 말을 종합하려고 애쓰는 동안, 빨간 우산은 발끈한 마음이 들었다. "화학 약품 같은 건 우리 주변에 없어. 그리고 일광 건조는 두 시간이 좋아. 이건 아빠한테 들은 거야. 너는 아빠보다 경험도 없으면서 그런 소리 하고 그러냐."
    "아니, 화약 약품이 없다고 무슨 수로 장담하지? 나는 있을 수도 있다고 한 것뿐인데? 그리고 건조에 대해서는 내가 읽은 책에 실험 장면까지 사진으로 실려 있었어. 그러니까 너도 너가 무엇 때문에 너의 믿음을 갖게 됐는지, 그것이 믿을만 한 근거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 것 뿐이고."
    빨간 우산은 더욱 언성 높여 반대했고, 파란 우산도 응수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 중에 누구의 결론이 맞는 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너가 사용하는 사고방식이 틀렸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고 생각해!"
    그날 그렇게 싸우다가 세 친구는 그냥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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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달이 지났다. 빨간 우산은 지금 아프다. 꼭지 쪽이 약간 찢어지고 여기 저기가 쑤신 것이, 한달 전 친구가 겪은 증상과 너무 비슷하다. 이런 적은 전에도 없었다.
    아침에 아빠에게 물어봤는데, 아빠의 대답은 이것이었다. "엊그제 우박을 맞어서 그런 거겠지. 당분간 밖에 나가지 말고, 내가 말한 대로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일광 건조해라."
    하지만 빨간 우산은 아빠의 말이 흡족하지 않다. 한달 전 일을 기억하고, 그 때 파란 우산이 한 말을 되새기려고 애쓴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새 화학 약품에 닿았을 수도 있다. 살 어디가 느슨해졌을 수도 있다. 자외선을 너무 많이 맞았을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은 모든 가능성을 동등하게 고려하는 것이 최상인 것 같다.
  
     "그런데 한달 전에는 내가 왜 그랬을까. 왜 파란 우산이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을 막아버리고, 내가 아빠한테 들은 것을 다른 합리적 이유 없이 우겨댔을까? 그래, 그 때는 내 아픔이 아니라 친구의 아픔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
    내 주장과 파란 우산의 주장이 대립하는 걸 보니, 내 주장이 맞고 파란 친구의 주장이 틀리기를, 그래서 내가 체면 상하지 않고 존중받기를 바랬던 거야. 양쪽 중에 어느 쪽이 정말 맞느냐보다도, 어느 쪽이 내 체면을 깍아먹느냐, 어떻게 해야 자존심을 유지할까 하는 데에 내 관심이 더 있었던 거야. 내 주장과 나를 동일시해서, 내 주장이 깨지면 나도 함께 깨진다고 생각했지.
    내 주장이 틀리다는 것이 밝혀질 때 과감하게 그것을 버리고, 더이상 거짓(또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을 믿지 않게 된 걸 기뻐한다면, 내가 깨지는 일 따위는 없는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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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찢어진 우산.
    찢어진 우산은 몸은 많이 좋아졌다. 빨간 우산과 파란 우산은 의학적인 문제를 놓고 건설적인 토론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진지하되, 밝게 웃어가며 논쟁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