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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竹齋의 현재적 그리스도론 (김경재)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6-05-06 20:31 조회(7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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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齋의 현재적 그리스도론
 
 
김경재 (한신대, 조직신학)
 
 
 
 
 
 
[1] '현재적 그리스도론'의 의미
 

우리는 고 서남동 교수의 서거 13주년을 맞아, 고인의 삶과 학덕을 추모함과 아울러, 그 분의 신학사상이 총괄적으로 압축표현된 그의 논문 "현재적 그리스도"를 오늘의 자리에서 다시 읽고 그 역사적, 사상사적 의미를 음미하려는 것이다. 그런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죽제신학의 말년의 작업이 민중신학 형성에 집중 되었지만, 민중신학이 그의 신학탐구 여정에서 돌연변이적으로 일탈한 돌출적 사건신학이 아니라, 그의 긴 신학적 여정의 결승점으로서 도달한 참여적 학문이며, 신학적 실존으로서의 결단적 표현이요, 신앙고백적 행위였다는 점을 고찰하려는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민중신학을 계승해가는 후학들이 민중신학의 생성모태로서의 매우 포괄적이고 심원한 서남동의 현대신학 전반에 대한 농밀한 이해를 함께 동반하지 않을 때는, 민중신학을 매우 천박하고도 피상적인 사회정치신학의 한 지류로서 변질시키고 만다는 사실을 경고하려는 것이다.
 
문제의 논문 죽재의 "현재적 그리스도"는 그의 수많은 논문중 하나라기 보다는, 약 30년 동안의 죽재의 신학수업의 총체적 결산논문의 성격을 지닌다. 그만큼 그 논문은 매우 압축적이고, 주제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지니면서도 심도깊으며, 현대신학(contemporary theology)의 논제를 다루면서도 동시에 2,000년 신학사의 중요 쟁점을 통시적 시각에서 파악한다. 진실로 죽제의 논문 "현재적 그리스도"는 죽제의 신학적 사유가 얼마나 치밀하며, 신학사 전체에 통달해 있으며, 해석학 이해이론 이나 학문일반의 지식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박학다식한가를 잘 보여주는 논문이다. 이 논문을 바르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죽제의 "민중신학"을 바르게 이해 할수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만한 중요한 논문이다.
 
그의 민중신학의 첫 논문은 1974년 겨울 연세대학교 교수 퇴수회에서 발표한 "예수와 민중"이 토대가 되어 민중신학의 기초를 놓은 논문 "예수.교회사.한국교회"(기상,1975.2월)로서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가 다루려는 "현재적 그리스도"와 민중신학 첫 논문사이엔 약 10년의 간격이 있다. 그동안 죽제는 무엇을 했던가? 그의 신학 자전적 진술에 의하면 "1969년 부터 1974년 여름까지 나는 비교적 침착한 마음으로 한국의 신학계를 등지고 서재에서 현대의 과학기술문명과 더불어 신학적인 싸움을 했다". 그러나 그 10년은 그 이전까지의 신학적 탐구과정과의 단절이 아니고 내면적 연속이라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신학적 안테나로서 이미 죽제가 파악한 현대세계신학의 동향에 대한 그의 감동이 그 자신의 민중사건 체험을 계기로 이론 형태를 입고 나타난 것이다.
 
욧점을 말하자면, 적어도 서남동의 민중신학에로의 전환은 당시 1970년대 중반기 한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이나, 민중의 인권상실의 절박한 상황이나, 정치 경제적 토대의 상황이 만들어 낸 임시 방편적 상황신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 제반 여건들이 민중신학을 사건신학이 되도록 구성하고 촉발시켰다는 의미에서 촉매적 요인은 되지만, 민중신학을 단순한 "민중론"이나 "민중정치 사회학"으로서가 아니라 신학으로서 정립하게 된 '신학적 해석학으로서의 방법론적 관점'은 당시 1970년대 한국상황의 부산물이 아니고, 죽제신학의 학문적 여정이 도달한 결승점이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 민중신학이 발생하던 시대적 상황과 비교 할 때, 세계및 한국의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많이 변하였고, 민중의 현실적 위상도 많이 변하였으므로, 이제 민중신학의 역활과 존재의미가 살아졌다고 흔히 말하곤 한다. 민중신학을 구성했던 제1차적 외연적 조건들(정치경제적 민중상황)은 많이 변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죽제의 "현재적 그리스도론"안에서 그가 파악했던 "형제 새크,라멘트"라고 명명한 래디칼한 신학적 해석학의 의미와 그 진실성은 앞으로 더욱더 한국 교회와 세계교회에 말해야 할 그 어떤 멧시지를 담보하고 있다. 적어도 죽제의 민중신학이란 다른것이 아니라 그가 "현재적 그리스도"의 한가지 존재방식이라고 불렀던 "오늘,여기현실 한 복판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뵙는 길, 그리스도 생명에 참여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려는 한국적 "요한의 손가락" 이외 다른 것이 아니다.
 
서남동의 민중신학이 제기했던 근원적인 신학적 화두는 마치 불교 선종 임재 선승(禪僧)이 참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부처를 만나거든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거든 조사를 죽이라"는 촌철살인의 경구를 기독교적 전통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내면적 종교체험 세계, 신학적 교리체계, 에배의식과 회중의 집회열기, 그리고 문자로 고정된 경전의 권위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외면하지말고, 지금 네 앞에서 눌린자와 고난당하는 자들의 생명의 몸으로서 너를 부르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바르게 대하라는 것이다. 불교 선종의 반교종적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종지가 특정시대의 유행불교학이 아니고 화엄천태등 체계적 불교학 교종과 함께 항상 함께 병진하는 진리파지의 형태이듯이, 나는 "방외신학"임을 자처했던 죽제의 민중신학의 기능과 그 의미를 정통신학에 대한 부정이나 도전으로서가 아니라, 불교의 교종적 접근에 대한 선종적 접근에 해당하는 기독교적 표현이기 때문에 그 역사적 의미는 한 특정시대를 넘어가는 항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2] 현재적 그리스도의 해석학: '역사적 실증주의'와 '역사적 지식'

죽재의 민중신학은 매우 '래디칼'(radical) 하다. '래디칼'하다는 말은 매우 급진적이고 과격하다는 말이면서도 근본 뿌리를 건드리는 신학적 사유의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한다는 말이다. 죽제신학의 방법론과 관련해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점은 그의 해석학 이론에 기초한 "역사적 실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역사적 지식이란 무엇인가", 등을 바르게 이해해야만 한다.
 
죽재는 기독교신앙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특징은 우리가 그리스도, 메시야,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그 분이 과거 2,000년 전에 한 인간학적 원형이나 모범으로서 과거사표로서 과거회상적으로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현재하신다는 '그리스도의 현재성' 체험이요, 그 체험에 대한 증언이며, 그 현재성에 대한 매시대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파악한다.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 한 복판에서 아주 리얼하게 체험하는것 보다 더 귀중한 그리스도인들의 염원이 어디 있겠는가?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 재림의 그리스도에 대한 앙망, 영원한 성육신 사건의 재발생,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결합등은 모두 그리도의 현존을 표현하는 전통적 교회회중들의 신앙고백적 표현이다.
 
죽재신학은 전통적 서구신학이 발전시켜온 이원론적인 분리의 사고, 곧 그리스도의 품격과 그 사업, 존재와 행위, 본질 실체와 그 기능, 역사적 예수와 케류그마 그리스도, 외면적 사실로서의역사와 내면적 의미로서의 역사,등등 일체의 이원론적, 또는 이분법적 사유방식을 거절한다. 그것은 본시 둘이 아니고 하나로 통전되어 있는 것이며, 그 것이 분리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발상법 자체가 허구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삶을 살고 간 갈리리 예수의 역사적 삶 곧 그의 行態가 따로 있고, 그러한 삶을 살고 가르치고 행동한 그 분에 대한 신앙적 고백이 성령의 감동감화로 말미암아 별도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수를 主라 할 수 없다"(고전12:3)는 "성령의 내적 증거"교리는 예수에 대한 "역사적 지식"에 대한 신비한 첨가나 秘敎的 추가행위가 아니라, 바로 역사적 지식의 바른 이해과정이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과정은 그 사람에게 예수에 대한 信心을 일으키고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주시라고 고백하는 사건을 발생시킨다고 본다. 다시말하면 칼빈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가르쳐지고 있는 "성령의 내적 증거"는 "역사적 실재"에 대하여 "역사적 지식"이 이뤄지는 심도깊은 인격적 내면사건, 곧 인간인격과 심령 안에서 이루어 지는 영명(靈明)한 해석학적 과정에 대한 신학적 표현이라고 본다. 죽재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자:
 
해석학은 역사적 지식을 얻는 방법(art)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격적 지식'(Personal Knowledge) 혹은 '믿음의 지식'(Faith Knowledge)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들은 역사적 지식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지식의 핵심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비적 지식'을 말할 경우가 있다. 이 신비적 지식의 신빙성은 그에 관한 역사적 지식, 곧 성서적 근거가 그 규준이 된다...분명히 말하자면 역사적 지식으로 신앙을 대채하고, 나사렛 예수로써 사도적 케류그마를 대채한 필자의 주장을 잠정적으로 "역사적 실증주의"(Historical positivism)라고 부르기로 한다.
 
평신도뿐만 아니라, 신학을 전공했다는 목회자나 신학자들도 "역사적 지식으로 신앙을 대채한다"는 죽제의 말에 반발을 느끼고 그럴수 있을가 하고 의심한다. 보통은 역사적 지식은 지식이고 신앙은 신앙이 아닌가라고 둘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그러나 죽제에 의하면, 그러한 발상법이야 말로 죽은 역사적 지식을 주어모으면 실재 사실로서의 역사가 된다고 확신하는 19세기를 풍미했던 "실증주의적 역사주의"(Posotovistic historicism)의 해독이라고 본다. 다시 죽재의 주장을 역으로 말하면 진정한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는 실증주의적으로 이해해서는 결코 아니되고, 그 인격과 의미와 영이 되살아 재현되는 사건으로서, 재생(再生)-재현(再現)-재발생(再發生)-재현존(再現存)되는 사건으로서 체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재현되는 지식이 "역사적 지식"이요 "성령의 공시적 해석"이라는 것이다.
 
죽재는 그의 임마누엘 신학대학원 석사논문의 연구시절부터 슈라이에르 맛허, 빌헤름 딜타이, 콜링우드, 불트만등의 해석학 이해 이론에 깊이 들어갔다. 그들을 통하여 인간의 삶이란, 인문정신과학의 특징이 밝혀주듯이 타인이 경험한 삶의 체험을 이해를 통하여 '추체험'(追體驗, nacherleben) 하는 사건적 과정이며, 그러므로 역사적 지식은 해석이며, 역사적 존재는 이해라는 점이 밝혀졌다. 이러한 현대 해석학 이론은 하이데거, 가다머, 폴 리꾀르, 하버마스등을 통하여 더욱 발전하게 되지만, 인간의 정신적 삶이란 해석학적 이해과정을 통하여, 이전의 삶의내용을 사건적으로 추체험함으로서 '역사적 지식'이 모든 인격적-영적 믿음의 실질적 근거가 된다고 본 것이다. 죽제가 신앙을 '역사적 지식"이라는 말로서 대치하려는 파격적인 ,래디칼한 동기가 어디있는가를 다시한번 명확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역사적 지식 以外에는 그의 現在는 없다"고 보는 그의 해석학적 신학의 신념이다. 다메색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재나, 신비적 경험 속에서 만나는 그리스도의 신비적 현재가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 반문에 대하여 죽제는 그런 신비적 그리스도의 현재체험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것의 신빙성은 결국 성서가 전하는 역사적 지식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둘째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옳바르고 영명한 '역사적 지식'그 자체가 신앙을 일으키며, 아니 그것이 곧 신앙고백으로 언표되는데, 전통적 인습상 보면, 나사렛 예수의 역사적 인격의 위력에 부족한 점을 보충해서 어떤 신앙논리나, 성령의 내적증언을 '역사적 지식'에 追加 해야만 신앙이 발생한다고 보는 신학적 사고의 타성을 파기하기 위해서 이다.
 
죽재의 '역사적 지식'이 곧 바로 신앙을 발생시키며, 믿음을 일으킨다고 강조하는 그의 신학적 해석학이론은, 거듭강조하거니와, 현대신학의 고질적 질병이랄 수 있는 실재에 대한 이원적 분리주의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그 나름대로의 학문적 신념에서 나온다. 다시맣하면, 중세기의 자연/초자연의 이원구조적 도식이 현대신학에서는 사건/의미, 세속사/구원사, 존재/행위, 내재/초월, 시간/영원, 정치/종교,등등 이원적 분리주의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별은 하되 양자를 분리할 수 없다는 역사적 실재론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는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이러한 죽재 서남동의 신학적 사유가 칼바르트의 신정통주의 신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두 사람의 신학은 다르다. 그러나 적어도 생명'현실'을 하나님의 현실과 분리할 수 없는 오직 하나님의 계시적 행동안에 있는 하나의 현실만이 있다는 바트의 신학적 신념과 매우 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르트는 그것을 신학적 언어로 표현하기를 "하나님은 자기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신다"라는 계시론적 명제로 표현하다. 다시말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한 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은 그 자신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신다.계시의 본성, 내용, 그리고 계시사건은 분할 할 수 없이 하나 이다.
 
바르트의 계시론이 지닌 배타적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죽재의 민중신학과 매우 래디칼하게 상충된다고 보는것이 상례이지만, 서로다른 신학적 발상법과 체계에도 불구하고, 바르트의 "하나님의 자기 계시 행동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현실성"과 서남동의 "역사적 실재로서의 현실"이해 사이엔 신학적 사유의 타성적인 이원론적 분리를 극복하려는 상통하는 정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여기에서는 만족해야 할 것이다.
 
죽제의 "역사적 실재"라는 개념은 화잇트헤드의 "현실재의 유기체적 신실재론"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여진다. 죽제의 신학적 사유 속에 과정신학적 요소가 풍부하게 발견되지만 직접 화잇트헤드의 인용구를 많이 발견할 수는 없다. 화잇트헤드에 의하면, "현실재들은 현실사태(actual occasions)라고도 부를 수 있는데, 그것들은 그것들로서 세계가 조성되는 궁극적 참 실재들이다. 현실재들의 배후로 넘어가서 보다 더 실재적인 다른 것을 찾을 수 없다" 화잇드헤드가 '현실재'(actual entities)를 떠나서는 어떠한 의미있는 참 실재도 없다는 형이상학적 신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전통, 전승, 과거의 유산, 모든 의미있는 삶의 영향, 이데아들과 창조성과 하나님, 그 모든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 실재나 관념들은 "지금 여기"에서 총괄적으로 생성적 과정운동 속에서 현실재들의 상호침투적, 상호의존적, 상호생성적 창발사건을 떠나서는 아직 '현실적인 것'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과거의 모든 의미있는 생명적 실재들은 지금 여기에서 총괄적으로 수렴되면서 창조적으로 발생하는 '역사적 실재' 안에서 부활되고 재현되고 재생된다.
 
그러므로 화잇트헤드나 서남동에게 있어서 살아계신 하나님은 영원히 언제나 '현재적'이다. 이제 우리는 서남동의 "현재적 그리스도의 삼중형태"에 대하여 간략히 개관해 보자.
 
 
 
[3] 죽제의 '현재적 그리스도'의 삼중적 형태

여기서 우리는 죽재의 논문 "현재적 그리스도"를 다시 상세하게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 욧점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그 논문이 민중신학이나, 민중교회의 현장에서 일하는 목회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다시한번 세삼스럽게 음미하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죽제의 "현재적 그리스도"의 삼중적 형태란 '케류그마적 그리스도', '세속적 그리스도', 그리고 '우주적 그리스도'를 말한다. 그 논문의 결론 부분을 인용한다:
어떤 의미에서 역사적 예수의 재생인 케류그마적 그리스도(설교)는 그리스도의 過去의 프로필이고, 우리의 이웃인 세속적 그리스도(봉사)는 같은 그리스도의 현재의 프로필이고, 새 인류인 우주적 그리스도(친교)는 같은 그리스도의 장래상이다....또 어떤 의미에서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는 인간의 인격적 실존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한다. 세속적 그리스도는 인간의 사회적 실존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우주적 그리스도는 인간의 역사적 실존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을 소망이라고 한다.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그 수직선적 차원을 부여한다. 세속적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그 수평적 차원을 부여한다. 그리고 우주적 그리스도는 인간에게 그 대각선적(對角線的) 동경적(動徑的, diagonal) 次元을 부여한다. 그리스도의 현존에 관한 위의 세 가지 프로필은 통전되어서 그리스도의 입상적 역동적 모습을 제시한다.
 
위 인용문은 그의 논문의 결론부분에서 '현재적 그리스도'의 삼중적 모습이 각각 어떤 위상을 지니면서도 절대 분리되거나 어떤 한가지 면모만 강조되어서는 않되고 실존적, 사회적, 역사적(우주적) 세차원이 통전되어야만 그리스도의 총체적,역동적 모습이 살아난다는 것을 강조한다.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는 성서 속에서 증언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를 통하여, 성서연구를 통하여, "말씀의 사건"으로서 부활하시는 그리스도를 말한다. 죽재는 이렇게 표현한다: "성서는 역사적 예수의 현재적 형태 일 뿐만 아니라, 그 성서의 매(每) 현재적 전달에서 역사적 예수는 늘 새롭게 현재적 그리스도가 된다는 말이다." 같은 말이지만 다시한번 얼마나 죽제가 성서 말씀을 통한 현재적 그리스도의 사건을 가장 근원적 그리스도 현존사건의 지핵으로 생각하는지를 다음말에서 확인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을 본문으로 하고 그것을 오늘 전하는 교회의 설교에서 그리스도는 새로운 '말사건'으로 발생하며 거기서 곧 오늘의 케류그마에서 現在的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 이것이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다. 이것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교회의 확신이며, 또 나사렛 예수가 우리를 찾아오는 유일한 통로다. 이것이 또 교회의 존재의 이유다.........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역사적 지식 以外에는 그의 현재는 없다. 이 말은 교회의 지금 선교가 그의 현재태(現在態)라는 말이다.
 
성서의 가치와 그 의미 그리고 성서의 말씀을 해석학적으로 재현시키는 말씀사건을 통한 예수그리스도의 현재적 방식에 대한, 그의 1960년대 중반에 지녔던, 그의 확고한 신학적 신념이, 그 뒤 10년 뒤 1970년대 중반 민중신학 탐구시대에서 "성서를 하나의 규범으로서 가 아니라 전거(point of reference)"로 봄으로써 약화되거나 초기 신학적 관점을 변경시킨것이 아닌가 우리는 물을 수 있다. 이 점은 앞으로 면밀하게 논의해볼 과제가 된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죽제는 성서를 유일무이한 '절대적 계시서'나 '신학적 사유의 규범서'로서 경직화시키는 것을 싫어했다는 점이며, 성서를 통한, 말씀사건으로서의 그리스도의 현존방식을 가장 참되고(authentic) 근원적(originative)인 현재적 그리스도의 존재방식으로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죽재의 '현재적 그리스도론'의 둘째 방식은 세속적 그리스도의 존재방식이다. 그것은 본훼퍼의 세속화론에서 촉발되고, 폰 발다사르와 칼 라너의 '형재 세크라멘트'론에서 더욱 숙성되어, 사회적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방식에 관한 신학적 이론이다. 죽제는 현대의 삶이 '종교시대 이후'로 돌입했다는 시대적 의식을 갖고, 이러한 '성인이 된 시대'에서 하나님의 구원경륜의 방식을 진지하게 찾는다. 계몽시대 이후 현대사회를 '종교시대 이후'로 본다는 말은 종교역활이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종교적 실재를 참 실재라고 생각하고 역사적 실재를 가현이라고 생각하는" 전통 종교적 실재관을 극복하고, 종교적 실재와 역사적 실재를 대결관계나 모순관계나 양자택일관계로 보지 않고, 한발작 더 나아가서 역사적 실재를 종교적 실재이 타락이나 소외 상태로 보지 않고, 반대로 그 실현상태 또는 현실태로 생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재는 세속화론 안에 미묘하게 흐르는 세가지 신학적 계보의 차이를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첫째계보는 世俗과 神聖사이의 변증법적 긴장을 견디어내며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루터-고가르텐 계보이다. 둘째계보는 신성과 세속의 역설적 일치를 말하려는 칼빈-하비칵스 계보의 적극신학이다. 셋째계보는 人間性이 다름아닌 神性의 역사적,세속적 존재방식 이라고까지 말하며 성육신교리를 확대심화시키는 칼라너, 떼이야르 샤르뎅의 네오토미즘의 카토릭 신학계보가 그것이다. 죽재의 '세속적 그리스도론'은 이 세가지 신학적 계보중 어느 한가지 계보에 집작하지 않고 통전하려고 한다. 세속적 그리스도론의 핵심을 죽재는 이렇게 표현한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방식이다.하나님은 사랑으로 계신다. 물은 액체로 있고, 증기는 기체로 있듯이, 하나님은 사랑으로 存在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者만이 하나님을 안다고 했다. 우리가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그 사랑에서 비로소 하나니므이 사랑이 실현되고 체험되고 알려지고,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그의 存在方式)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한 실현 이전의 사랑은 활자이고 단어이고 가능성이고 약속이다.
 
민중신학은 케류그마적 그리스도, 세속적 그리스도, 우주적 그리스도의 세가지 모습 중에서 특히 둘째번 세속적 그리스도의 모습속에서 우리를 만나시는 주님을 바르게 대면하자는 것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물론 케류그마적 그리스도가 없는 민중신학의 세속적 그리스도 즉, 형제 새크라멘트 신학은 보편적 휴메니즘 운동안에서 추상화 되어 버릴것이고,반대로 세속적 그리스도가 없는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는 공허하게 되어 이념적 말잔치로 끝나버리게 된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현재성에 관한 죽제의 신학적 전망은 물론 떼이야르 샤르뎅의 비젼에 빚진바 크다. 그가 민중신학에 전념하던 당시에도 시간이 다시 허락되면 중단되었던 과학신학공부에 다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할만큼 과학과 종교의 통전에 대한 그의 신학적 관심은 대단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의 욧점은 인간의 존재방식 또는 존재체험의 차원이 실존적 깊이의 차원과 사회적 수평관계만이 아니라, 전우주적 생명과의 상호침투순환(perichoresis) 구조 속에서 대각선적 미래지향성을 지니는 우주적 차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생산노동활동과 제사행위의 갈등, 거룩체험에서 두렵고 떨리는 경배의 차원과 황홀과 환희의 친교의 두 차원의 갈등,날마다 먹는 밥상의 밥과 성찬대 위의 떡과 포도주 사이의 거리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열망이기도 하다.
 
모든 삶의 활동이 그대로 하나님 예배가 될 때 그것은 곧 창조의 회복이요, 우주의 찬송이요, 또 그것이 신적환경(Divine Millieu)이며 만물의 갱신(계21:5)이며 또 그것이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성화의 역사(히13:12)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다름아닌 새로운 인간관계 곧 새 인간성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몸'이 가리키는 인간관계는 인격적 관계라기보다는 기능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잇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우주적 그리스도'는 인격의 집합체 혹은 인격적 기능의 집합체다.
 
장회익은 오늘날 지구의 생태학적 위기 속에서 '온 생명론'을 과학적 관점에서 제창하고 지구생명체 안에서 인간의 위치는, 사람 몸 안에서 중추신경계가(머리) 담당하는 기능에 비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죽제는 몸의 비유에서 머리부분도 몸의 한 지체인 것이므로 머리를 몸 이상으로 생각하고 대립시키는 것은 바울사상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한는 견해에 동조한다. 물론 몸의 비유는 그리스도가 크리스챤 회중공동체의 개인및 집단과 갖는 불가분리적인 유기체적 관계성을 말하려는 한 은유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골1:18,엡1:23)라고 말한 의미를 살려가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머리부분도 몸의 지체요 몸과 불가분리적 관계성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머리가 상징하는 두뇌를 중심으로한 중추신경계는 몸 전체의 메카니즘을 반성적으로 자각하는 유일한 기관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몸체인 지구 생명 안에서 45억년만에 지구 몸 전체의 메카니즘을 스스로 자각하는 반성적 사유능력이 인간생명체 안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교회 곧 그리스도인은 중추신경계중에서 가장 핵심부분 대뇌부분에 해당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는 몸인 크리스챤 회중공동체, 또는 더 넓은 의미에서 전체인류와 지구생명의 머리라고 하는 은유는 머리부분이 가지는 자율적 생각과 판단능력및 몸을 이끌고 가는 주체적 위치를 강조하는 것이지, 결코 서구 사상사에서 발전한 데까르트류의 육체/정신 이원론에서 육체성에 대한 정신의 우위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4] 죽재의 '현재적 그리스도론'이 주는 의미와 한계
 
우리가 일별한 대로 죽제의 '현재적 그리스도'의 존재방식은 실존적으로 영혼의 깊이 속에서 말씀과 대면함으로서 일차적으로 사건화하며, 둘째로 형제 새크라멘트로서 형재가 부르는 소리 특히 고난과 시련 속에서 자기를 도와달라고 부르는 형제의 음성과 몸짓 속에서 그리스도는 오늘 세속적으로 우리가운데 현존하며, 집합적 초인류의 몸을 형성해가는 우주적 그리스도의 초유기체적 관계성 속에 우주적 그리스도로서 현존한다.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은 성경(설교와 말씀공부)에서 주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말씀에 응답하는 길이다. 성경에 결집 되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해석학적 과정을 통해서 인격적 말씀존재로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해석학적 과정'이 이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역사적 예수를 창작해 낸다거나, 본래 역사적 예수의 인격적-영적 실재 안에는 없었던 구원능력을 신학적으로 첨가 부연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해석학적 과정의 탈선이요 사이비 해석학이다. 비유하건데, 해석학은 단단하게 굳어져있는 인삼 녹용을 녹여내는 가열작용에 불과하다. 그 약효와 향기는 그 본래 약재 안에 본구적으로 갖추어져 있다. 죽제는 그것까지를 인정한다. 그러나, 죽제의 케류그마적 그리스도는 헤석학적 가열과정을 기다려서만 그약효를 드러내는 것이지, "말씀의 영" 그 자체가 씌여진 경전의 말씀의 해석학적 과정에 앞서서, 함께, 주체적으로 역사한다고 강조하지는 않는다. 그 점이 칼빈이나 바르트의 말씀론과 서남동의 그것과의 차이점이다. 종교개혁자들이나 칼 바르트등 정통신학의 신앙고백적 신념에서 볼 때, 죽재의 '현재적 그리스도론'은 '말씀의 영'가운데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자유롭고 임의적이며 선행적인 "말걸어 오심"의 측면이 약화되어 있다고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 죽재신학에서 보면 정통적 '말씀의 신학'은 인간의 해석학적 참여의 분깃을 너무나 무시한남어지 계시 실증주의에 떨어질 위험이 상존한다고 비판한다.
 
세속적 그리스도의 한국적 형태가 민중신학으로 나타났다. 사람이라는 존재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요, 하나님의 형상일진데, 그 어느 곳에서보다 고난당하는 형제의 생명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만나보라는 세속적 그리스도로 형제 새크라멘트와 민중신학의 부르짖음은 성경 말씀을 통한 케류그마적 그리스도 현재성 못지않게 귀중하다. 아니 보다 리얼하게 생각한다면 성경도 설교말씀도 전통의 전승자료와 신학체계도 지금 살아있는 현실재 생명에게 밥과 생수로서 공급되어 구체적 생명체의 몸안에서 생명에너지로 변화되고 현실화하기 전에는 죽어있거나 잠들어 있는 재료에 불과한 것이다. 세속적 그리스도론은 불교 선종의 화두와 같아서 끝임없이 종교적 전통과 체계속에, 경전과 종교의식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가두어 놓고 독점 지배하려는 인간의 종교적 오만과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으로서 작동한다. 그러나 세속적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는 한국의 민중신학과 민중교회는 "말씀으로서, 말씀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소홀히 할 때, 공허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주적 그리스도의 현존방식은 21세기 새로운 우주시대에서 더욱더 우리의 관심을 기울여 만나야 할 그리스도론이다. 지구의 생태학적 위기 극복도 문제이려니와, 새롭게 출현한 정보화시대의 초고속으로 전개되는 사고방식과 인간행태의 변화는 떼이야르 샤르뎅이 말한바 "의식-복잡화 법칙"을 따라서 인류를 더욱 긴밀하게 관계성을 갖도록 촉매할 수 있다. 물론 비관적 반대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명심할 점은 이상 세가지 현재적 그리스도의 통전적 입체상이 결여 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 실재성은 살아지거나 반감된다는 사실이다. 민중신학이 세속적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강조한것이 잘못이 아니라 다른 두면을 소홀히 한점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2002-01-10 04:11:16 /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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