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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이안 바버가 보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유형 (김흡영)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7-16 18:25 조회(1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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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기존의 보수 기독교는
자연 과학에 대해 1)충돌 유형과 2)독립 유형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지만,
'창조과학'처럼 보수적인 종교 신념을 먼저 전제하고 과학을 거기에 종속시켜버리기 때문에 
이를 '종속 유형'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듯 싶음~.
 
....................................................................................................................
 
 
 
 
현대 과학과 기독교 신앙: 이안 바버의 유형론
 
 
김흡영(강남대학교 교수, 조직신학)
 
 
우리는 왜 현대 과학의 발전에 주목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침에 알람 소리에 잠이 깨어 다시 잠에 들 때까지 우리는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 낸 기계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있다. 텔레비전, 냉장고, 전화, 자동차, 컴퓨터, 인터넷이 생활필수품이 되어서 우리 일상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 더욱이 우리는 모든 것이 인공 지능에 의하여 자동화되어 가는 디지털 시대, 사이버 시대에 살고 있다. 생명복제, 휴먼 게놈 프로젝트, 유전자 조작, 두뇌과학, 인공지능, 빅뱅, 가이아, 카오스, 양자역학 등의 현대 과학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미래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새로운 용어들을 마구 쏟아 내고 있다. 과학 시대의 헤드라인 뉴스는 곧 과학인 것이다.
 
기독교인도 교회도 이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과학 시대의 기독교와 교회! 그것은 우리의 실존적 상황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며, 당연히 과학은 신학의 한 핵심적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한국 교회는 자연과학을 소홀히 하고 등한시해 온 경향이 있다. 우리가 과학 시대의 현대적 삶을 살고 있고 그 안에 교회가 거하고 있는 한, 우리는 더 이상 과학을 경시하거나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이 이룩한 우주의 근원과 생명의 신비에 대한 새로운 발견들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입장과 안목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더욱이 핵무기, 생명복제, 유전자조작, 컴퓨터, 사이버 스페이스를 비롯한 현대 과학기술들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류의 복지를 향상시키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반면에 잘못 사용하면 인류와 자연을 총체적으로 파괴할 수 있는 위험성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누가 감히 가공할 위력을 가진 현대 과학에 제동을 걸 수 있는가? 누가 감히 현대 과학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오직 종교만이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지 않는가? 특히 현대 과학을 탄생시킨 요람의 역할을 했던 기독교가 이 윤리적 책임을 가장 크게 지니고 있다. 신학적으로 다시 말하면, 자연과학의 무책임한 남용과 파괴로부터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보존할 사명이 기독교인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지난 20세기는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던 시대이다. 해방신학, 정치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제3세계신학, 아시아신학, 민중신학은 이러한 사회학 시대의 징조를 반영한 신학들이다.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칼 바르트(Karl Barth)는 "이제 기독교인들은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읽어야 할 때가 되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유명한 말은 신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이러한 신학들의 출현을 예고하며 그에 대한 준비를 요청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대비하여 말한다면, 21세기는 기독교의 과학적 책임이 무엇보다도 강조되어야 할 시대이다. 앞으로의 신학은 자연과학과 어떤 형태로든 관련을 갖지 않고는 그 구성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미 태동해 있는 환경신학, 생태신학, 생명신학 등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바르트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이제 기독교인들은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오늘날의 헤드라인 뉴스인 현대 과학 책을 들고 읽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점점 더 가속화되고 폭발적 변화를 가져오는 과학 시대에 뒤쳐지고 아예 고립될 위험에 있다. 더욱이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을 저버리는 격이 될 것이다.
 
과학 시대에 현대 과학에 대한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 동안 신학이 자연과학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유형별로 살펴보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충돌(conflict), 독립(independence), 대화(dialogue), 통합(integration)의 네 모형들로 구성된 이안 바버(Ian Barbour)의 유형론이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앞으로 과학시대에 가장 큰 화두가 될 과학과 종교 분야에 대한 기본 지식으로 꼭 알아 둘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충돌 유형은 신학과 과학이 서로 배타적으로 대립하여 충돌한다는 것이고, 독립 유형은 서로 참견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고유한 영역을 인정하려는 절충형이고, 대화 유형은 서로 유사성 또는 공명하는 부분을 찾아서 대화하자는 유형이고, 통합 유형은 적극적으로 상대방을 수용하고 통합하려는 태도이다. 이 글에서는 이 네 유형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충돌(Conflict)
 
이 유형은 과학과 종교 간에 전쟁과 같은 양상이 전개되는 경우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갈릴레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이 그 역사적인 실례들로서 유명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들은 단순히 기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과학적 주장 때문에 발생했던 문제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러한 충돌 속에는 더욱 문제가 되는 태도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자연과학의 경우에는 과학적 유물주의(scientific materialism)이고, 신학의 경우에는 성서 문자주의(Biblical literalism)이다.
 
이 둘은 현대 과학과 전통적 기독교 신앙 사이에 심각한 대립이 있다고 전제하고, 필히 양자 중 하나만을 진리로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한다. 그러나 이 태도의 근본적 모순은 과학을 오용하는데 있다. 과학적 유물주의는 과학적 사실로부터 출발하지만 결론적으로 과학의 영역을 벗어난 철학적 주장을 하고 있는 반면, 성서 문자주의는 성서를 근거로 하여 신학으로 시작하나 신학의 영역이 아닌 과학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들의 오류는 신학과 과학의 고유성과 본질적 차별성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인 태도에서 기인한다.
 
1) 과학적 유물주의
 
과학적 유물주의의 배후에는 다음에 나오는 두 명제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1) 과학적 방법이 앎(지식)에 이르는 가장 믿을만한 방법이다. (2) 물질(matter)이 우주의 가장 기본적인 실재이다. 이 입장은 모든 것에 대한 인식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야 한다는 인식론적 환원주의와 실재는 물질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물질적 환원주의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과학적 유물론자들은 과학만이 객관적이고, 개방적이고, 보편적이고, 개혁적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비하여 종교 전통은 주관적이고, 배타적이고, 지역적이고, 보수적이라고 혹평한다.
 
예를 들면〈우주〉라는 텔레비전 시리즈로 유명한 천체 물리학자 세이건(Carl Sagan)은 우주는 영원한 것이며, 과학적 방법만이 보편적 적용이 가능한 것이고,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같은 것은 과학의 궁극성에 위배되고, 인간의 공경의 대상은 이제 신이 아니고 자연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노드(Jacque Monod)는 DNA의 발견 등 분자생물학의 놀라운 업적을 내세우며 "세포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의 기계일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완전한 기계적 환원주의를 주장한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윌슨(Edward O. Wilson)은 또한 인간의 마음을 "두뇌라는 신경기계의 한 부수적 현상"이라고 주장하면서, "인문학을 포함해서 사회학이나 다른 사회과학들은 생물학의 현대적 합성을 위해 남아 있는 마지막 가지들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견해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그들은 신학과 과학을 혼동하고 있다. 두 영역들은 서로 다른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과학의 기능이 "어떻게(how)"라는 질문에 답하는데 있다면, 신학의 영역은 "왜(why)"라는 질문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날 물질적 환원주의의 약점은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다. 양자역학, 카오스이론 등 현대 과학 자체가 이 환원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신에 대한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신학과 대립되는 것은 사실상 과학적 방법론이 아니고 물질적 환원주의이다.
 
2) 성서 문자주의
 
성서 문자주의는 과학적 유물주의와 정 반대편에 있는 극단적인 태도이다. 테드 피터스는 이 태도를 다시 교권적 권위주의(ecclesiastical authoritarianism)와 과학적 창조주의(scientific creationism)로 구분한다. 교권적 권위주의는 교회의 권위가 자연과학에 우선한다고 믿는 입장이다. 이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 로마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 입장이었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는 과학 및 근대화의 도전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교회 전통을 절대화하기 위하여 교황무오설을 교리화했다(이 점은 개신교 근본주의의 성서무오설과 유비적이다). 그러나 그 후 가톨릭의 입장은 수정되어 자연과학에 교권적 권위로부터 독립된 학문적 자율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아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앙과 이성의 평화를 주창하며 신학과 자연과학 간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과학적 창조주의는 창조과학(creation science)이라고도 일컬어지며, 그 근원은 성서무오설을 신봉하는 성서 문자주의와 근본주의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성서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는 동일한 영역에 속한다고 전제한다. 그들은 과학적 주장과 신앙적 주장이 대립할 때는 과학이론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창세기』에 우주의 물리적 창조에 관한 이론이 담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원창조의 시기에 신이 특별한 종류의 유기체들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 진화된 것이 아니다. 지형학적이고 생물학적인 데이터, 곧 과학적 데이터는 결국 성서적 진리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하버드 대학의 고생물학자 굴드(Stephen Jay Gould)는 이러한 주장들은 무의미하고 자기모순적인 것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이와 같이 일반적인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자들을 반 과학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는데 반하여, 그들 스스로는 과학적이라고 자처한다.
 
바버는 창조과학이 종교적 자유와 과학적 자유를 동시에 침해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급속한 문화적 변화와 도덕성의 혼돈을 경험하고 있는 불안한 현대인들에게 성서 문자주의가 주는 확실성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다원종교적 상황에서 요청되는 종교적 관용을 거부하고 어떤 특정한 종교적 시각을 강요하는 절대적 입장은 종교적 자유의 이름으로 반대하여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또한 창조과학은 과학적 자유의 이름으로도 수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 공동체도 그 주위의 사회적 상황과 완전히 분리된 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정 집단이 그들의 이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가지고 과학을 재구성하려 했던 사례들을 이미 보아 왔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 스탈린의 러시아, 호메이니의 이란, 그리고 창조주의자들의 미국이 그 대표적인 실례들이 아닌가?
 
 
2. 독립(Independence)
 
이 유형은 신학과 과학이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영역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각자는 서로 간섭할 수 없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 타당성 여부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방법에 의하여 결정된다. 상호불가침조약을 맺은 것처럼 서로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신학과 과학이 각자의 성격과 개성을 최대로 존중하려는 태도이다. 신학과 과학은 서로 대조적인 연구방법을 가지고 있고,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언어들이라고 주장한다. 신정통주의, 실존주의, 언어분석이 대표적으로 이 입장을 지지한다.
 
신정통주의(Neo-Orthodoxy)는 신학과 과학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영역에 속해 있다고 본다. 신학은 하나님과 관련된 학문 분야이며,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계시와 믿음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Karl Barth). 전적으로 다른 세계에 있는 초월적인 하나님은 그분의 자기 계시에 의하지 않고는 인식이 불가능하다.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존해야 하는 것이지, 과학을 통하여 인간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사역하시는 영역은 역사이지 과학이 아니다. 과학은 인간의 이성에 의한 관측과 실험에 의존하지만, 신학은 오로지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다. 이와 같이 연구 대상과 방법이 전혀 이질적이므로 과학자들은 신학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그들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말씀의 신학을 주창하는 신정통주의 또한 성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지만, 충돌 유형의 성서 문자주의와 창조과학처럼 성서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성서가 계시적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 기록들은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인간들에 의해 작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 구절들은 그것을 기록한 기자들의 인간적 한계와 문화적 배경을 고려하여 해석하여야 한다. 예컨대,『창세기』는 인간과 이 세상이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하여, 다시 말하면 인간의 피조성과 창조세계의 선함을 상징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 내용을 그 당시의 우주관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이 창조에 대한 신앙고백은 그 고대적 우주관과 구분되어 이해되어야 한다.
 
실존주의(existentialism)는 신학과 과학을 인격적 주체와 비인격적 객체간의 두 독립적 영역으로 간주한다. 신학은 신앙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식되며, 과학은 연구 대상과 분리된 객관적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인간 실존에 관한 문제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자유를 가진 인간의 주체적 참여에 의해서만 인식이 가능하다. 삶의 의미는 결코 합리성과 관찰에 따른 자연과학의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발견할 수 없고, 오직 실존적 결단과 실천에 의해서만 파악된다.
 
과학자는 연구 대상과 분석적이고 간접적인 '나와 그것의 관계'(I-It)를 맺는 반면, 신앙인은 하나님과 '나와 너의 관계'(I-Thou) 안에서 인격적이고 직접적으로 만나게 된다. 성서는 하나님의 행위를 객관적인 언어로 서술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인격적 자연 질서에 관한 과학적 이론과는 무관하며, 그 목적은 인간 실존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고 결단하여 삶의 변화를 실천하는데 있다(R. Bultmann).
 
그런가 하면 언어분석은 상이한 언어들은 서로 다른 기능을 위해 사용되며, 어느 한 쪽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과학이 모든 담론의 규범이 되어야 하며, 실험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 명제는 무의미한 것으로 무시해 버리는 실증주의와 과학주의에 대한 전면적 반론이다. 과학과 종교는 전혀 상이한 임무를 가지고 있으며, 한 쪽의 기준으로 다른 쪽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적 언어는 우선적으로 예측과 통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용된다. 과학 이론은 데이터를 요약하고, 관측 현상의 상관적 규칙성을 측정하고, 기술적 적용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과학적 언어의 기능은 자연현상에 관한 문제들로 제한되어야 한다. 종합적 세계관, 삶의 철학, 윤리적 규범에 대한 사항들은 종교적 언어의 기능에 속한다. 종교는 우선적으로 실천적이고 규범적인 삶의 방법에 대한 교훈이며, 예배와 설교와 신앙생활을 통하여 인격의 변화를 도모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신정통주의, 실존주의, 그리고 언어분석은 신학과 과학은 서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사상이라고 이해한다. 물론 신학과 과학은 서로 이질적인 방법, 질문, 태도, 기능,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 이론들은 또한 심각한 문제점들을 수반하고 있다. 신정통주의는 신의 초월성과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반면, 신과 세상을 지나치게 이원화하고, 기독론과 구원론에만 편중되어 창조론과 성령론이 취약하다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비인격적이고 객관적인 반면 신학은 인격적이고 주관적이라는 실존주의의 대비는 과장된 것이다. 과학에서도 과학자의 개인적 판단이 필요하며, 이성에 의한 합리성은 신학의 구성요소이다. 마찬가지로 언어분석의 언어적 분리는 종교와 과학의 구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나, 종교도 실천행위 뿐만 아니라 명제적 성격을 가진 교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과학은 사실(fact)에 대한 언어이고 종교는 가치(value)에 대한 언어라 하여 종교와 과학을 분리한다. 고생물학자 굴드에 따르면, "과학은 우주가 실험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fact), 왜 그런 방법으로 움직이는가(theory)를 살핀다. [반면에] 종교는 윤리적 합리성과 가치를 파헤친다." 말하자면, "우리[과학자]는 어떻게 하늘이 움직이는가를 연구한다면, 그들[신학자]은 어떻게 하늘에 가는가를 결정한다." 미국의 신학자 길키(Langdon Gilkey) 또한 과학은 이차적 근원에 관한 객관적이고 공적인 인식을 취급하는 반면, 신학은 궁극적 근원에 관한 실존적이고 개인적인 앎을 다룬다고 주장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과학은 "어떻게(how)"라는 질문을 하고 신학은 "왜(why)"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이 독립 유형의 이론들은 신학과 과학간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건설적인 대화와 상호 보완의 가능성을 배제해 버리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과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 입장은 충분한 해답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신앙과 과학기술이 서로 칸막이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이미 서로 접속되고 연합된 총체적이고 통전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3. 대화(Dialogue)
 
이 유형은 신학과 과학간의 독립 모형과 통합 모형 중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이 다양한 형태로 이 유형을 지지한다. 판넨버그(Wolfhart Pannenberg)는 신학도 교리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방법론적 유사성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과학은 이미 주어진 자연의 조건과 원인에만 국한하여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신학은 종말과 같이 예측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쏟으며 미래를 향한 개방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 신학은 실재를 과거와 현재 뿐만이 아니고 미래를 포함해서 총체적(종말론적)으로 파악한다.
 
가톨릭 신학자 맥물린(Ernan McMullin)은 신학과 과학을 계층적으로 구분한다. 신학은 일차적 원인인 신에 관한 학문이고, 과학은 이차적 원인에 관한 학문이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는 논리적 연결성은 없지만, 전혀 독립적인 것은 아니고 서로 '공명'(consonance)하는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피터스는 이 용어를 채택하여 그의 유형론에서 이러한 입장을 '가설적 공명'(hypothetical consonance)이라고 명명한다. 공명은 궁극적으로 일치(accord)와 조화(harmony)를 의미한다. 피터스는 이 일치와 조화가 아직 발견되지는 못했지만 신학과 과학이 추구하는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빅뱅 우주론과 관련해서 발전된 물리학, 특히 열역학과 양자이론은 이미 초월적 실재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다. 신에 대한 질문이 과학적 합리성의 내부로부터 진솔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이제 동일한 질문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더욱이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며 객관적이고 종교는 주관적이라는 철학적 구분은 1950년대부터 이미 붕괴되고 있다. 과학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만큼 객관적이지 않고, 종교는 실존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만큼 주관적이지도 않다. 과학적 데이터는 이론 의존적(theory-laden)이며 결코 이론 중립적(theory-free)인 것이 아니다. 쿤(Thomas Kuhn)은 그의 유명한 저서『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이론과 데이터도 과학 공동체 내에서 주도되는 패러다임에 의하여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패러다임을 "한 과학전통 안에 구현된 개념적, 형이상학적, 방법론적 전제들의 덩어리"라고 정의한다. 과학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의하여 발전하며, 패러다임의 선택은 어떤 정해진 객관적 법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과학 공동체 구성원의 결단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신학에도 이 패러다임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 신앙 전통을 동일한 패러다임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앙 경험과 역사적 사건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신학은 과학보다도 더욱 패러다임 의존적이다.
 
 
4. 통합(Integration)
 
이 마지막 유형에 속한 학자들은 신학의 내용과 과학의 내용을 서로 통합할 수 있다고 믿는다. 대화유형의 경우는 주로 방법론적인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반하여, 이 유형은 신학 교리와 과학 이론 사이에 서로 직접적인 대화와 수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바버는 이 유형을 자연신학(natural theology)과 자연의 신학(theology of nature)으로 구분하고, 자연신학이 아닌 자연의 신학을 자연과학에 대한 가장 적절한 신학적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1) 자연신학(Natural Theology)
 
이 입장은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신학 전통을 계승한 가톨릭의 자연신학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한 것이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우주론적 논증과 목적론적 논증을 전개한다. 전자는 세상 만물은 우연적 존재들이고 그들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존재로서 제일 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후자는 자연에는 질서와 예지성(intelligibility)이 일반적으로 내재하며, 개별적 자연현상에서도 일정한 법칙이 존재하므로 모든 것이 절대적인 존재에 의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설계(design)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뉴턴과 보일 같은 근대과학자들이 이 입장을 계승하여 신에 의한 호의적 설계가 자연 속에 숨겨져 있다고 믿었다. 다윈 자신도 진화론 자체가 이 가해적(可解的) 설계의 한 작품이라고 믿었다. 가톨릭 교회는 이 자연신학을 계시신학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한 준비 단계로서 중요하게 받아들였다.
 
이러한 예지적 설계에 대한 논쟁의 한 대표적인 현대적 우주관이 바로 인류 원리(anthropic principle) 이론이다. 현대 천체물리학은 우주 초기에 물리학적 상수나 조건이 조금만 차이가 났더라도 이 우주에서 생명의 존재는 불가능했고, 우주는 생명이 존재 가능하도록 미세조정(fine-tuned)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무신론자 호킹(Stephen Hawki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에 빅뱅이 일어난 일초 후에 팽창 속도가 10의 16승 분의 1 보다 작았더라면, 이 우주는 지금 현재의 크기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재 붕괴되었을 것이다." 그 이외에도 진화의 방향성, 러브록의 가이아(Gaia) 가설 등을 이 우주 안에 설계가 내재되어 있는 증거라고 자연신학자들은 주장하지만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호응은 매우 적다. 자연신학은 오늘날과 같이 문화적이고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세계에서 용이하게 합일성을 도출할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방안으로 보인다. 더욱이 설계자(Designer)에 대한 사상은 종교의 한계를 뛰어 넘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연신학은 성서의 하나님과의 개인적 관계를 결단하는 신앙과는 직접적으로 무관하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신학에 의해 신의 존재는 입증될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한 가설에 대한 관념적 증명이 될 수 있을 뿐, 교회 안에서의 실제 신앙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2) 자연의 신학(Theology of Nature)
 
자연신학과 달리 자연의 신학은 과학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신앙경험과 역사적 계시를 근거로 하는 신앙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과학과 신학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평행선을 긋는 것이 아니고 서로 관심이 겹쳐 수렴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창조론, 섭리론, 인간론이 현대 과학의 발견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된다. 자연에 관한 새로운 이해는 하나님과 자연에 관한 우리의 신학을 재구성하게 만든다. 오늘날 이해되고 있는 자연은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과 법칙이 어우러져 성취한 역동적 진화의 과정이다. 자연적 질서는 생태학적이고, 상호의존적이고, 다층적이다. 이러한 인식은 신과 인간과 생물 간의 관계에 대하여 재 조망하게 하고,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큰 영향을 준다.
 
생물학자이며 신학자인 피콕(Arthur Peacock)은 하나님은 과학이 밝혀내는 자연세계의 과정 안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창조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법칙과 우연의 종합적 과정을 통하여 세상을 총체적으로 창조하지 그 과정 사이의 틈(gap)에 끼어들어 중재하는 부분적인 존재가 아니다. 예술가들이 창작할 때와 같이 그의 창조 과정에는 계획성과 개방성이 항상 공전하고 있다. 바버는 샤르댕(Teilhard de Chardin)의 신학을 이 입장에 포함시킨다. 샤르댕의 신학은 기독교 전통에서 유래한 신학적 사상과 과학적 사상이 합성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샤르댕은 계속적 창조론과, 미완성의 세계 안에 내재한 신론을 주장했다. 만물의 최종 수렴점인 오메가 포인트에 대한 그의 통찰은 진화론과 기독교 종말론이 어우러져 창의적 해석을 성취한 통합유형의 한 실례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하여 가장 고전적인 바버의 유형론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모든 유형론이 그러하듯이 이 바버의 유형론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첫째 충돌유형과 둘째 독립유형은 비교적 명확하나 셋째 대화유형과 마지막 통합유형은 그 구분이 다소 모호하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구적 맥락 안에서 기독교 신학과 자연과학 간의 관계에 대한 유형론으로 고안된 것으로서, 동양적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엄연한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현대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주제들을 읽어갈 때 이 유형론은 우리에게 좋은 출발점을 제공하고, 우리의 신학적 입장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지도와 같은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Barbour, Ian G., 이철우 역,『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When Science meets Religion, 1979) 서울: 김영사, 2002.
Haught, John F., 구자현 역,『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Science and Religion: From Conflict to Conversation, 1995). 서울: 코기토, 2003.
Hawking, Stephen W., 현정준 역,『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 1988). 서울: 삼성출판사, 1990.
Kuhn, Thomas S., 김명자 역,『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 서울: 까치글방, 1999.
Monod, J., 김진욱 역,『우연과 필연』(Chance and Necessity, 1971). 서울: 범우사, 1985.
Peters, Ted. ed., 김흡영 외 역,『과학과 종교: 새로운 공명』(Science and Theology: The New Consonance, 1998). 서울: 동연, 2002.
Sagan, Carl., 서원운 역,『코스모스』(Cosmos, 1980). 서울: 학원사, 1996.
Teilhard de Chardin, Pierre, 양명수 역,『인간현상』(The Phenomenon of Man, 1959). 서울: 한길사, 1997.
Barbour, Ian G., Religion and Science: Historical and Contemporary Issues. San Francisco: Harper, 1997.
Gilkey, Langdon, Creationism on Trial. San Francisco: Harper, 1985.
Gould, Stephen Jay, Hens' Teeth and Horses' Toes: Reflection on Natural History. New York: Norton, 1983.
Peacock, Arthur, Theology for a Scientific Age.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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