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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폴 틸리히의 종교 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원리    
  글쓴이 : 노동자 날 짜 : 10-07-21 13:12 조회(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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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의 종교 사회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원리

 

김남중

 

 

서론


이 논문은 바로 틸리히가 1918년부터 1933년까지 종교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하면서 발표한 글들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들을 연구할 것이다. 물론 그의 전기를 살피고 그의 행동을 파악함으로 그의 종교 사회주의 운동을 평가할 수도 있겠으나 필자는 그것보다 틸리히의 이러한 종교 사회주의 운동이 어떤 원리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는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종교 사회주의의 깊이에서 사회 현상으로 나타난 종교 사회주의 운동을 형성하였던 힘 또는 원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가 늘 어떤 원리, 즉 프로테스탄티즘을 말할 때에는 프로테스탄티즘을 형성하는 원리를 강조하였고 종교 사회주의 운동을 하면서도 종교 사회주의의 원리를 중요하게 언급하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로테스탄트 시대가 끝나도 프로테스탄트 원리는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또 다른 형태의 프로테스탄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그의 확신이 필자로 하여금 역사적 상황에 나타났던 종교 사회주의 운동보다 그 기초를 형성하는 원리에 대한 연구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가운데 역사적 상황을 결코 등한시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역사적 상황 속에 나타나지 않는 모든 것들은 문자로 구체적 기술을 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을 틸리히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소논문을 틸리히의 사상을 중심으로 연구하되 항상 그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시작되고 있음을 강조하는 바이다.


1. 종교 이해


틸리히의 종교 사회주의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따르는 종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틸리히는 종교를 "궁극적 관심"이며, "무조건적이고, 거룩하고, 절대적인 어떤 것에 붙잡힌 상태"라고 표현하였다. 틸리히의 해석에 의하면 인간 정신 생활에 있어서 궁극적인 것, 무한한 것, 무조건적인 것을 "심층"이라는 은유로 표현한 이래로, 궁극적 관심으로서 종교는 인간 정신 생활의 하나의 특별한 기능이 아니고 정신 생활의 모든 기능의 심층의 차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종교는 인간 정신 생활의 깊이이고, 인간 생활의 깊이, 즉 심층 또는 궁극적 관심은 인간 정신의 종교적인 형태이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그를 문화의 신학자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간 정신의 활동의 범주인 문화가 바로 종교의 내용이고 종교는 문화의 형태라는 그의 정의는 그의 문화 신학적 종교관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틸리히는 "만일 종교가 정신 생활의 모든 기능을 대표하는 것이라면, 왜 인류는 종교를 특별한 범위--신화라든가 예배라든가 헌신, 그리고 교회 기구--로서 발전시켜 왔을까? 그 대답은 이렇다. 인간의 정신 생활이 그 자체의 터전에서, 그리고 깊이에서 비극적으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틸리히는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하늘의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는데 그 까닭은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모든 것으로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세속적인 영역도 없고 똑같은 이유로 종교적인 영역도 없다. 아니 거기서는 종교적인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은 같은 범주에 속해있다. 왜냐하면 이 둘은 넓은 의미의 종교에서, 같은 궁극적인 관심의 체험에 뿌리 박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틸리히는 오늘날 우리의 시대가 바로 요한계시록의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 시대로 보았는가? 그렇지 않다. 그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신국에 대한 이해를 우리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여서 해석한 것은 그의 역사관에 있어서 역사적 역사해석의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단순히 초월적이거나 미래적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 세계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성과 속이 구별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 또는 그의 문화 신학적인 용어로 바꾸어 부르면 신율의 시대가 긴박해 있다고 보았다. 아직not-yet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그 징조를 보이고 있는 시기속에 그는 살고 있다고 믿었다.


2. 역사 이해


틸리히의 역사에 대한 이해는 그의 글 "Interpretation of History"에서 자세히 나타난다. 여기에는 역사를 해석하는 세가지 범주가 다루어지는데, 그 첫 번째 범주가 철학적 범주로서 "마성"과 "카이로스"를 다루고 있다. 그가 말하는 마성적이란 말의 기본적 의미는 "형태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힘의 연합"이다. 이 마성은 사탄과는 다르다. 마성적인 것은 형태를 창조하고 파괴하는 사이의 긴장에 놓여 있지만, 사탄은 창조없이 파괴로만 상징되며 현실적 존재를 가지지 않는다.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사탄은 마성 안에 담겨 있는 부정적 원리이다. 이 마성의 깊이에는 변증법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곧 마성의 역사에서 드러나는데 신적 힘과 마성적 힘의 이분법을 포함한다. 틸리히는 이것을 "시작과 끝을 껴안는 역사와 우주 해석의 원리"라고 말한다. 마성은 거룩한 것과 함께 거한다. 거룩한 것은 궁극적인 것과 관련되어 있는 대상으로서 언제나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거룩한 것이 구체적 현실 가운데 나타날 때, 즉 인물이나 책이나 사건에 나타날 때, 거룩한 것은 자기를 나타내고 있는 그 사물을 거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돌로 지은 집이 성전이 되고, 한 권의 책이 계시의 기록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될 때, 구체적 사물은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것과 혼동되는 위험에 항상 직면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 가서는 궁극적인 것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고, 드러난 거룩한 구체적 사물을 위하여 궁극성이 요구된다. 이 요구가 바로 틸리히가 종교의 악마화(마성화)라고 칭하는 것이다. 바로 종교의 치명적인 위험은 거룩한 것이 나타나는 구체적인 대상이 거룩한 것 자체와 혼동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은 종교의 역사 가운데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거룩한 것을 운반하는 유한한 것, 혹은 거룩한 것의 체현을 궁극적인 것 자체의 존엄에까지, 말하자면 신적인 것에까지 높이는 것을 틸리히는 악마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악마적인 것 혹은 마성적인 것은 거룩한 장소에 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만일 어떤 거룩한 것을 운반하는 유한한 것이 궁극성에까지 높이는 일이 행해지면, 그 유한한 것은 궁극적인 것의 자리를 차지하고 마성적인 것이 되며, 그것은 다른 유한한 것 모두를 자신의 통제 아래 복종시키려고 하며, 만일 그 통제가 가능하지 않을 때에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고 한다." 악령적으로 왜곡된 종교는 유한한 다른 모든 것을 지배하려고 하며, 다른 어떤 종교라도 공격하며, 반대하는 어떤 문화라도 공격하게 된다. 이러한 마성적 현상은 종교 신앙이 거룩한 것에, 궁극적인 것에 관련해야 하기 때문에 나타나게 된다. 다른 한편 종교의 역사는 또한 이러한 악령화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이다. 여기에 종교사의 위대함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 이 악령화가 자꾸 왕성해 간다는 점에서 종교의 수치가 드러나기도 한다. 틸리히는 그런 점에서 "종교는 인류의 최고의 영예이며 또한 가장 깊은 치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종교사의 위대한 투쟁, 바로 악령적인 것의 체험과 그것에 저항하는 싸움, 즉 프로테스탄트 원리를 형성하는 이러한 저항의 투쟁은 두 세가지 주요한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는 유대교적 예언으로 시작되는데 이것은 종교중의 악령적인 것에 대한 직접적이며 철저한 비판의 형태로 나타난다. 다음은 신비주의의 형태로서 종교의 구체성을 넘어서 직접적으로 궁극적인 것 그 자체로 고양되어 가는 형태로서 대부분의 아시아 종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특별히 두드러지게 힌두교의 "고행자"의 모습에서 금욕적 신비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성례전적 교회에서 발견된다. 예언자적 투쟁은 구약 성서의 예언자 정신에 토대를 두는 종교의 역사로서 "거룩한 것을 특정한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일 전부에 대하여 비판"하며 저항한다. 이 싸움은 끝이 없다. 왜냐하면 악령적인 것은 끊임없이 거룩한 것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끊임없는 투쟁이 종교의 본질에 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마성은 오직 카이로스에 의해서 정복되며 카이로스는 신율의 문화를 창조한다. 틸리히와 종교 사회주의자들은 세계 제1차 대전후 당시의 상황을 카이로스가 임박한 때라고 믿었다. 틸리히는 후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말기에, 특히 독일의 패배는 영원한 것이 역사 속에 들어오게 되는 이런 종류의 계기라고 하는 특별한 카이로스, 특별한 순간, 특별한 시기라고 대담하게도 믿고 있었습니다." 틸리히는 이 카이로스의 시기에 "특별한 악마적인 기구가 인정되고 공격"된다고 말한다. 이 악마적인 것은 악령이라고 하는 실존을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철학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파괴의 구조"를 의미한다. 바로 이 파괴의 구조는 두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정신 요법에서 말하는 노이로제, 정신병, 또는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는 의식의 분열 현상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영역에서 나타나는데 마르크스가 분석한 것과 같은 것으로서 "사회 기구에 있어서의 선의가 도리어 벌어진 틈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19세기에는 산업 사회에 있어서 "계급사이의 벌어진 틈"을 설명하는데, 바로 틸리히의 시대에 본보기는 히틀러였다. 그는 악마적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게 그 정세에 꼭 들어맞는다고 설명한다. 나치가 권세를 얻은 후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에도 벌써 그 행동은 제1복음서가 사탄이라고 부르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거짓말쟁이 이며, 살인을 일삼고, 독일을 거짓으로 속여서 정복하고, 거짓으로 충분한 활동을 할 수 없을 때에는 살육을 감행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야말로 마성적 분열의 결과입니다. 지금 우리가 엄격하게 종교적인 말을 사용한다고 하면, 이 나치의 행동은 예비적인 것을 궁극적으로 받들어 올리는 것, 즉 우상 숭배입니다. 유한한 것이라고 보여지는 동안에는 선이었는데, 이것을 무한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옮길 때 악이 되고 우상이 되고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틸리히는 여기서 카이로스의 시기에 공격되어지는 "악마", "마성적"이라는 말의 개념은 특별히 종교의 역사에 자주 나타나고 있으며 현실의 세계는 마성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로 보았다.  또한 그는 카이로스가 이 마성적 상황을 정복하는 것은 언제나 단편적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마성적 구조를 대신하는 것은 무엇이거나 그것 자체로서 새로운 악마적 형태가 발육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에 있어서의 악령적인 것에 대한 이 예언자적 싸움에 토대를 두고 개혁 운동이 몇 번이나 일어났던 것이며,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근대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쉴라이에르마허가 "종교 개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몇 번이라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의 용어로 말하면, 거룩한 것의 왜곡에 대한 싸움을, 모든 종교의 중심에 있는 거룩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악령적인 것에 대한 싸움을, 프로테스탄티즘까지도 언제나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의 내부에 자리잡은 거룩한 것의 도착(倒錯)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길인 신비주의적 투쟁은 절반은 신적이고 절반은 악마적인 형태의 종교를 넘어서 궁극적인 것 자체로 향하는 것이다. 신비주의적 형태의 종교는 예언자적 형태와는 달리 구체적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들은 종교 개혁에는 관심을 갖지 않으며, 살아 있는 종교를 움직임이 없은 상태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인간의 정신은 거룩한 것의 영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서 종교에 있는 악령적인 것에 혐오를  느끼는 일이 일어나는 데 그 중의 한 대표적인 예로서 17세기의 유럽의 상황을 들수 있다. 당시 종교 전쟁이, 즉 절대적인 타당성을 주장하는 유한한 것, 즉 다른 종교에 대립하는 한 종교에 대한 증오심에 가득찬 전쟁이 종교의 세속화를 낳게 되었다. 종교를 위협하는 마성적인 것들이 대립하게 되면서 그것을 저항하고 투쟁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종교적 현상들에 대한 거부감이 거룩한 것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떠나 가려는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세속화의 과정을 틸리히는 非聖化(profane)이라고 부른다. 이 非聖的이라는 원래 "성소의 문 앞의", "거룩한 것의 밖의"라는 뜻으로 영어로는 유럽에는 없는 "특히 속되고 악한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쨋든 그것은 "궁극적인 것, 거룩한 것의 체험을 인생으로부터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속화의 과정을 통하여 거룩한 것이 인간의 정신 생활의 기능에서 사라져 버리는 결과가 된다. 다시 말하면 수직의 차원 즉 궁극적인 것으로 향하는 차원은 점점 더 배경으로 밀려나고, 숨겨지고, 마침내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일 은 결코 있을 수 없지만,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억압된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진공상태가 그대로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여러가지 힘들이 들어오게 된다. 신적인 힘이 사라지게 되면 악령적인 힘이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는데 바로 20세 초 독일의 나치즘이 이러한 유럽의 세속화 과정에서 나타나게 된 대표적인 예이다.


틸리히는 "나치즘이 대두되면서 독일은 완전히 세속화되고, 거룩한 것은 모든 영역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고 말한다. 세속적인 것은 거룩한 것을 나타내야할 실체가 거룩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고 싸우게 될 때에 비록 거룩을 종교 개혁은 아니지만 그러한 종교를 저항한다는 점에서 틸리히는 가치있는 것으로 보았다. 종교가 종교됨을 상실했을 때 세속문화는 마성적 종교를 거부하고 저항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세속문화는 종교 개혁을 도왔고 그런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의 저항 운동은 잘못된 종교를 개혁하는데 세속적인 것과 연계해서 그 저항 운동을 수행한 것이다. 프로테스탄트의 원리는 이러한 점에서 세속적 문화를 종교의 내용으로 간주한다. 즉 무제약적 궁극적인 것을 대신하는 모든 유한한 것을 거부하는 힘, 이것이 틸리히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트 원리이고 비성화는 바로 이러한 원리를 세속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 독일의 루터파 교회는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저항하는 힘을 잃고 세속화된 사회는 사회주의 운동을 통하여 저항하였으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봉건적 부르조아와 손을 잡고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지지하였다. 이러한 루터파 교회의 메시지는 어떤 성취의 희망을 역사 가운데 두지 아니하고 역사가 끝나는 날을 기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회의 메시지에 노동자들은 무관했다. 틸리히는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항하는 사회주의 혹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저항은 가까운 시일 안에 계급이 없는 사회의 도래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정세 아래서 수평적인 것과 수직적인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일체화 하겠다는 사명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 사회주의"운동을 하게 되었다.



3. 카이로스와 신율


틸리히에 따르면 카이로스는 "어떤 수직적인 것, 영원에서 오는 것이 수평적인 것, 시간적인 것에 들어오게 되고, 이 영원한 것이 일시적인 것에 들어오게 될 때, 그것이 개인적인 선에서의 개인적인 차원, 사회나 역사를 위해서는 사회적, 역사적인 정세에 있어서 비로소 어떤 중대사가 성취되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형식적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와 구별해서 정확한 시간, 내용과 의미로 충만한 시간을 말한다. 이 말은 신약성서에 사용된 그리이스어로 유대교와 원시 그리스도교의 역동적 정신을 위한 그릇이 될 때 가장 함축성 있고 가장 흔한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곧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 궁극적인 것과 일시적, 현세적인 것, 현실 변혁과 현실 초월의 새로운 통합, 재결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종교 사회주의의 목표인 카이로스는 악마적인 것과의 투쟁을 통하여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은 마성의 지배의 반대편에 있는 신율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성 혹은 마성적이라는 것은 철학적으로 파괴의 구조를 말한다. 이 파괴의 구조는 존재론적으로는 정신치료학에서 말하는 정신 분열증으로 의식 구조의 분열 현상을 가르킨다. 또 하나의 영역은 사회적인 영역으로 19세기 산업사회 이후에 나타나는 사회의 틈, 계급의 분열을 의미하는데 바로 독일의 히틀러는 세계속에서 국가들 사이에 깊은 틈을 벌어지게 하는 악마적 구조의 표본으로 나타났다. 당시 우리의 머리에 떠 올랐던 가장 큰 본보기는 히틀러였으며, 우리보다도 강하고 신이라고 일컫어지는 국가를 신의 위치에 높이 받들고 그 밑에는 작은 신들을 두어서 이 세계에 깊은 틈이 벌어지게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한다고 하면 인류 사회에는 틈이 벌어지게 되어서 다른 나라의 반감을 사게 되고, 이 악마적인 구조에서 우리는 악마적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게 이 정세에 꼭 들어 맞는다고 깨닫게 됩니다. 1918년 카이저가 물러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서게 되면서 틸리히는 결정적으로 카이로스의 때가 왔다고 보았다. 그리고 신율에 대한 비전을 가졌다. 틸리히는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은 자본주의의 마성적 구조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결과"라고 보았고, 사회주의와는 달리 역사의 전환이란 프롤레타리아의 봉기가 아니라 "신의 자기 표현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의미와 힘의 출현"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는 신적 기원을 지니고 있으며 이 신적 기원을 지닌 역사는 성스러운 역사이다. 따라서 역사 가운데 발생하는 모든 일은 신화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 역사는 분리되지 않으며 원시적 신율속에 있다.  신율이란 이성에 즉 실재와 정서속에 내재한 "로고스"에 대한 복종을 의미한다. 이 원시적인 신율을 파괴하는 것은 자율의 원리이다.  원시적 신율은 삶과 죽음의 순환적 운동의 법칙을 지니고 있다. 모든 존재는 기원의 신화를 지니고 있고 태어나는 순간 기원을 향해 되돌아 간다. 이것이 일반적 존재의 순환 운동이다. 오직 인간만이 이러한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인간만이 의식을 지니고 근원(the Whence)을 묻고 가야 할 목적지(the Whither)를 살핀다. 순환의 원시적 신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유혹은 인간이 지닌 본성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순환적 운동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이 가능성은 요구demand로 나타나고 이러한 요구는 자율로 이끈다.



자율은 로고스의 실현으로서 원시적 신율속에 있는 신비적인 자연을 합리적인 자연으로 바꾸며, 역사적 사건을 기원적 신화가 발생한 자리에 놓으며, 의식이 마술적인 의사소통의 자리를 차지하고 기술적인 통제을 하게 된다. 자율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맞추기 위하여 분석한다. 그러고 자율의 처음 단계에서는 신율의 표면에서 활동한다. 자율은 세계와 정신속에 있는 형식, 로고스, 보편적 이성의 무조건적 성격에 복종하는 수단이다. 신율의 토대위에 활동하는 자율은 역사의 역동적 원리로서, 개인 문화와 사회 문화의 영역을 통제하는 원리들에 복종한다. 그러한 원리들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인 것 속에 있는 로고스 요소에 대한 복종이다. 그러나 자율적 문화에 있어서는 문화적 형식들이 그들의 유한한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반면에, 신율적 문화에 있어서는 문화의 형식들이 무조건적인 것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율적 학문은 사물의 논리적 형식과 실제적 요소를 다루고, 신율적 학문은 그것을 넘어서 그러한 것들의 궁극적 의미와 실존적 의의를 다룬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율은 자율에 대한 부정이 아니며, 자율이 지닌 창조력의 자유로운 행위를 능가하고 억압하려는 시도도 아니라, 오히려 그 깊이에서 자유로운 자율의 역동적 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율이 신율로부터 빠져나오게 됨으로 점점 정신적인 기초를 잃게 된다. 자율은 더 공허해지고 형식적이 되면서 회의주의와 냉소주의로 젖어들게 되고 의미와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틸리히는 이러한 "자율 문화의 역사는 정신적 실체를 허비하는 역사"라고 규정한다. 이 과정 끝에 자율은 무기력한 갈망으로써 사라진 신율로 되돌아 가거나 혹은 카이로스가 나타날 때까지 창조적인 기다림의 자세로써 새로운 신율을 기다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율의 창조력의 자유를 능가하려는 것은 정신과 세계의 로고스 구조를 무시하는 "타율"이다. 타율의 상징은 절대적인 교회와 절대적인 국가들에 의해 감행된 "공포심"으로 인간의 창조적인 자유와 인간성을 손상시킨다. 타율적으로 활동하는 종교는 문화의 실체와 활력이 되기를 중단하며, 종교의 신율을 망각함으로 오만와 패배주의의 혼합을 드러내는 문화의 일부가 될 것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신율, 자율, 타율에 대한 분석을 하고 다시 그의 역사적 상황과 연관지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문화에 대한 신율적 분석을 해야 할 과제가 과거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율 문화의 양식을 그 모든 특징적인 표현으로 해석하는 과제와 그 표현에 숨어있는 종교적 의의를 찾아내는 과제이다.  .. 자율문화는 그 궁극적 보증, 의미의 중심, 정신적 실체를 상실할 정도로 세속화되었다. 르네상스는 자율을 향한 걸음이었으나 아직 약화되지 않은 중세기 유산의 정신적 힘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계몽주의는 곧 바로 프로테스탄트의 실체와 종파적 실체를 상실하고 그 표현들 중 몇몇에 있어서는 완전히 세속화되었다. 19세기 말엽은 사상과 행위의 기술적 경향에 종속됨으로써, 진보한 분열의 단계에서 극도로 공허화되고 세속화된 자율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심지어는 여기서 까지도 종교적 실체, 즉 궁극적인 어떤 것이 눈에 띄였으며, 바로 그것이 이러한 문화의 무상한 존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종교의 보증은 붕괴되는 부르조아의 자율에서 보다도 이 상황에 저항하는 운동에서 더 효과적이었다. 신율적 분석은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로 말미암은 부르조아 이상주의와, 자연주의의 환상적인 붕괴와 이해하기 어려운 경험을 해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의식의 도덕적, 지적 압제에 대한 인간 인격성의 생생하고 무의식적인 측면의 반란이라는 종교적 배경을 보여줄 수 있었다. ... 비록 세속적인 말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그 모든 일에는 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관심과, 절대적으로 진지하고, 따라서 거룩한 어떤 것이 있다. 틸리히는 이러한 상황에서 절망을 표현하는 문화는 바로 종교 사회주의가 "가까웠다고 믿은 카이로스"로 인하여 "종교와 세속문화 사이의 파괴적인 틈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바로 그가 말하는 타율을 극복하는 "새로운 신율의 도래"에 대한 기대이다.



4. 종교 사회주의의 역사적 상황 이해


틸리히의 종교 사회주의는 역사적 상황속에서 출발하였다. 그는 1918에서 1933년까지 종교 사회주의자로서 헌신하였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이 발발하였을 때 그는 독일제국의 임박한 승리를 확신하고 군에 지원하였다. 그리고 1914년 9월 서부 전선에 군목으로 임명되어 조국을 위하여 봉사하게 된다. Wilhelm Pauck은 "그는 당시에 애국자였고, 그의 조국을 위해 기꺼히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당당한 프러시아인이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순진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1918년 9월 전쟁으로부터 베를린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이던 국가주의자가 종교 사회주의자가 되어 있었고, 기독교 신앙인이 문화적 염세주의자가 되었고, 그리고 억제된 경건주의 소년이 거친 청년으로 돌변하였다. 그리고 그후 그는 종교 사회주의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났을 때에 그는 카이로스의 때가 오고 있다고 느꼈다. 종교 사회주의 운동은 제 1 차 세계 대전 후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그 동안 억압되었던 사회 민주주의 운동이 권력을 얻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사회 민주주의 운동은 마르크스주의를 민주주의로 완화한 것이다. 이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서 일종의 피할 수 없는 필연성에 따라서 사회주의의 사상가나 예언자의 이상인 계급없는 사회를 가져온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진보적 사회주의자들로서 19세기 실증주의의 세계관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을 "과학적"인 사회주의라고 불렀다. 즉 "과학적"인 사회주의는 자연에 대하여 과학자처럼 행동하는 것, 다시 말하면, 역사의 과정이 희망하는 목적을 향하여 반드시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관찰하며 기다리는 것이 옳다고 하는 내면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과학적 사회주의가 일어날 당시의 독일 교회의 유형은 루터파였는데 틸리히는 루터파 교회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말한다. 첫째는 독일 역사에 근거한 것으로 혁명적인 부르조아가 빈약한 상태에 있었고 부르조아 계급은 낡은 봉건 제도의 잔존물에 그 자체를 적응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둘째는 루터파 신학 자체에 기인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틴 루터의 역사에 대한 혐오에서 기인하는 비관주의, 또는 인간성과 세계사에 대한 소극적 평가라고 부를 수 있다. 루터는 역사 가운데 무엇인가 성취되는 일이 있으리라는 사실에 대하여 절망하고, 역사가 끝나는 날, 즉 최후의 날이 오기를 기대하였다. 이러한 기대속에서는 신이 주신 권위에 인내심을 가지고 복종하는 것이 할수 있는 일의 전부인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베를린 주변에는 수 백만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있었고 교회는 농장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이는 교회들이 지주편에 서 있다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보여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당시 루터 교회는 세계 제 1차 대전 이전의 군주정치 지배에 있던 집단들과 오랜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그런 이유로 교회는 프롤레타리아가 국가에 반대한다고 하는 견해에 동조하였다.


이때에 노동자나 노동 운동은 수평선만이 있고, 내일 이후 신의 왕국, 계급이 없는 사회라는 것이 온다고 말하며, 반면에 교회는 수직선, 즉 죄와 혼란의 세계로부터 빠져나가서 이것을 버리고 떠나야 개인의 구원이 온다고 주장했다. 틸리히는 이러한 정세에서 세계사적 의의의 어떤 기회가 종교 사회주의 자들에게 주어졌다고 보았다. 우리 한 그룹의 크리스천, 유인 및 인도주의자들은 이 정세 밑에서 수평한 것과 수직한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일체화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종교 사회주의"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이들 가운데 틸리히가 있었다. 틸리히가 처음 정치적인 글을 썼을 때 그는 교회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는 가치있는 그리스도인의 태도를 지닌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자로서 인식되기를 희망했지만 실제적으로 그는 거부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그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비판을 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John Stumme은 "만일 그가 교회안에 남겨졌다면, 아마도 예언자적 양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점차적으로 교회로부터 소외되었다. 그 결과 그는 비그리스도교적 배경에서 종교 사회주의를 발전시켰고, 이러한 변화는 그의 신학에 반향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후에 카이로스 모임에 가담하였고 이 카이로스 모임은 종교적, 그리스도교적이 아닌, 사회주의 집단이 되었다. 그 모임에 유대교인과 목회자 그리스도교 평신도들이 모였다. 그러나 그는 어쨋든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주의자가 되었고 사회주의자이면서 기독교인으로 남아있었다. 


사회주의자로서 그는 당시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베를린의 노동자 거주지역에 있는 큰 교회를 기억한다. 노동자들은 세례, 결혼, 장례를 위해서가 아니면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교회는 이 의식을 엄숙하게 집행해 주었다. 그러나 교회와의 내적 관계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당시 전형적인 루터파의 목사에게 말했다. 노동자들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들을 수가 없다. 당신은 좀 더 다른 방식으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그들은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의 종소리를 듣습니다. ... 그러나 저들은 아무 것도 듣지 못했고,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 루터파의 태도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들으려고 교회에 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이런 종류의 태도는 교회와 노동 계급 사이에 커다란 틈을 생기게 했다. 종교적 사회주의는 그 벌어진 틈을 메꾸려고 애썼다. 틸리히가 교회와 노동 계급 사이의 틈을 메꾸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교회와 노동 계급사이에 틈은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노동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은 사회주의와 분리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둘이 서로를 형성해 놓았다.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은 프롤레타리아의 모든 구성원들이 살고 있는 상황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 있는 일정한 집단의 대표적인 상황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은 이와 같이 구성원들이 오로지 그들의 육체 노동력을 자유롭게 판매하는데만 의존해야 하며, 사회가 전적으로 시장의 회전에 의존하는 자본주의 체제 가운데 존재하는 계급의 상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은 인간성의 왜곡을 사회적 영역에서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당시 루터파와 같이 신학적으로 하나님과 세계와의 관계를 오로지 인간과 영혼과의 관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을 부정한다. 그러나 틸리히에게 있어서 이러한 교회의 왜곡된 사고는 그리스도교의 원리로서, 또는 보다 넓은 의미의 종교를 형성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 처음부터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은 사회의 왜곡과 내부의 모순을 알고 있었으며 계급으로 사회가 해체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점에서 프롤레타리아적 의식은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이러한 통찰력이 틸리히로 하여금 마르크스의 정신을 통하여 구약의 예언자적 프로테스탄트 원리를 발견하도록 이끌었다. 프로테스탄트 원리에 따르면 인간 실존의 왜곡은 개인적 왜곡 뿐만 아니라 사회적 왜곡도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실존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틸리히는 바로 마르크스를 통하여 사회적 왜곡의 심각성을 보았고 이 분열의 상황을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통하여 극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틸리히는 종교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노동자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오는데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젼을 제시함으로 사회주의와 그리스도교 양자의 근본적 뿌리를 점검하고 그것에서부터 양자를 비판하고 그들을 변혁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다소 적의를 품긴 했지만 "종교 사회주의"의 출범을 묵인하였다.



5. 종교 사회주의의 근본 개념


"종교 사회주의"는 "종교"와 "사회주의"라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틸리히는 "종교"와 문화의 한 형태인 "사회주의"를 연합한 운동을 시작하였다. 틸리히의 구분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종교 사회주의라고 불리울 수 있는 형태는 4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최초의 종교 사회주의 형태는 "율법주의적 종교 사회주의"legalistic one였다. 이것은 사회주의가 종교의 도덕적 요구의 직접적 결과라는 것이다. 즉 사랑의 기독교적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것이며, 이런 의미로 해석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첫 번째 사회주의자이다. 두 번째 유형은 낭만적 해석으로서 곧 "사회주의가 종교"라는 주장이다. 누구든지 사회주의 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자는 종교가 추구하는 것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이며, 사회주의는 바로 그 사람의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종교 사회주의의 유형은 실행적 정치적 형태로 현재 사회주의 운동을 종교의 실존적 형태, 즉 교회들과 연합하려고 시도한다. 네 번째는 변증적 역동적 사회주의로서 종교와 사회주의 양자 사이에 존재하는 개념의 정적인 대립을 해결하기 위하여 변증적 관계로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역동적 변증적 종교 사회주의는 전통적으로 경험된 종교나 사회주의를 고정적이고 궁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주어진 토대로서 이해하고 그것들을 변화시킨다. 이 네 번째가 바로 틸리히가 추구하는 종교 사회주의의 형태이다. 틸리히는 후에 이 종교 사회주의 운동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주의는 종교가 아닙니다.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로 하는 것은 수직적인, 즉 종교적인 차원입니다. 더욱 정확한 말로 하면, 이 운동의 세속적인 말과 행동 가운데도 내면에 숨겨져 있는 어떤 것, 즉 종교적인 관심, 인생의 의미에 궁극적인 관심, 그 뿐 아니라 선택된 소수의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닌 인민 대중을 위한 관심을 드러내어 밝히고 그 점을 확실하게 하는 일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첫째 임무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사회주의적 운동에 수직의 차원을 부여하고,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숨겨진 수직의 차원을 의식위에 떠오르게 하여 그들의 세속주의적 표현이 할 수 있는 것 보다도 더 잘 이것을 발휘하려고 원했던 것입니다. 틸리히가 추구한 종교 사회주의는 그 구성원에 있어서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기독교와 인본주의의 연합으로 생겨난다. 다시말하면 종교 사회주의는 기독교 인본주의의 고백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가지 의문은 어떻게 기독교와 인본주의가 함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인본주의는 종교적 배경을 단절하고 나왔으며 초월적 성향을 거부했다. 또한 뿌리가 없고 공허한 인본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것들은 반 기독교적 요소들을 향해 열려있다. 교회 또한 인본주의 이전 상태에 고착되어 있으며 단지 부분적으로 세속적 인본주의를 개조하여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화 사회주의의 대립의 극복은 두가지 조건이 만날 때에만 가능하다고 틸리히는 말한다.



첫째, 만일 사회주의가 이념주의적인 것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부르조아 사회의 물질절 해석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면, 둘째로 만일 기독교가 낭만적 봉건주의 뿐만아니라 이념적 부르조와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이러한 반목적 대립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 사회주의의 결정적인 생각은 종교는 특별한 종교의 영역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루시는 하나님과 연관이 있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의 활동이 좀 더 분명하게 세속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활동은 교회의 종교적 영역에서 보다도 세속의 영역에, 반 그리스도교의 영역에, 아니면 사회주의 운동 같은 그런 곳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종교 사회주의자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독일 종교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하나님의 활동이 문화속에서 확연히 드러날 수 있다는 신학적 관찰과 변증법적 태도는 종교와 사회주의가 반목으로 남아 있기보다는 그들의 연합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종교와 사회주의 사이에 대립은 인간론에서 발생한다. 사회주의가 이념적으로나 또는 유물론적 형태에서 전형적인 부르조아의 인간 해석을 따르는 한 그리스도교의 인간론과는 반대로 모호한 상태가 된다. 이러한 인간 개념의 모호성은 포에르바하에게서 이미 나타났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로부터 인간의 개념을 배워왔다. 포에르바하의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무한한 추진력을 가지고 생각하며 기획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획과 그것을 대상화함으로 종교적 개념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개념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포에르바하-마르크스주의의 인간의 개념에 대하여 종교 사회주의는 삼중적 평가를 내린다. 먼저 모든 예언자적 종교가 인간의 욕망에 기초한 종교나 인간이 만든 신--루터가 그러했듯이--에 대하여 본질적으로 의심하고 잘못된 종교에 대하여 저항은 받아들인다. 또한 역사적 유물사관을 포함하여 포에르바하-마르크스의 인간론의 유물론적 형태는 반이념적 저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론에 담긴 이상적 요소들, 즉 인간의 본성이 변화되어 온전히 정의의 이념에 따르게 된다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 사회주의는 인간론에 있어서 유물론과 이념론 사이의 대립을 넘어서 그 기초를 구한다.



이것은 인간안에서 생명력과 영이 연합함과 동시에 이 연합의 분열이 인간 존재에게 위협의 근원이라는 이중적 출발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종교 사회주의가 근본적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 처한 프롤레타리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전형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상황 안에서 의미와 생명력의 상실은 실존의 위협을 지적하는 것이며 의미는 존재 상실의 실재를 가르킨다. 존재의 생명력의 차원에서 무의미에 직면하게 되면 교회나 철학에서 생명력의 차원과 분리된 영적 세계안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주장은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연합이므로 그의 실존의 의미는 육체적 실존의 의미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종교 사회주의는 신구약의 근본적 방향, 목적을 대변한다. 그것은 성서와 같은 방법으로 관념론과 유물론의 분리 그리고 인간 존재의 생명력과 영적 측면의 분리를 극복한다. 그리고 이 연합의 파괴는 인간의 실존에 대한 본질적 위협아래서 인간을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위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견해는 역사안에서 온전함의 기대를 형성하는 모든 유토피아 사상을 거부한다. 이 위협은 실재이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남아있는 한 이 실재는 남아있다. 종교 사회주의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하여 막스가 분석한 토대위에 서있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구조가 자본주의 경제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인식한다. 또한 종교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안에 생산수단의 주인과 이러한 수단에 의존하는 사람들 사이에 필연적 대립이 있다는 막스의 분석에 동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은 계급의 차이를 창조하고 내면적으로는 자본주의 구조와 연관된다. 그러므로 계급투쟁은 이러한 계급의 차이에서 오는 필연적 결과이다. 계급투쟁은 개인의 선한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당연성으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막스에 따라 종교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 안에서 사회의 자본주의 구조에 저항을 위한 숙명으로 주어진 자리로 본다. 그러므로 종교 사회주의는 종교적 과제로서 현 사회를 대변하면서 마성적 자본주의를 노출시키고 그들과 투쟁하는 것이다. 마성화된 사회에 대항한 투쟁가운데 그리고 의미있는 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 가운데 종교 사회주의는 하나님 나라에 기대하지만 사회주의가 추구하는 새로운 시대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것을 반박한다. 비록 틸리히가 마르크스를 통하여 구약의 예언자 원리를 발견하였지만 마르크스의 세속화한 예언성과 유대의 예언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유대의 예언자들은 수평적인 기대보다는 언제나 수직적인 선을 마음에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처럼 인간 집단이나, 발전의 논리적 또는 경제적 필연성이나 그 어느 것도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인간과 사회적 왜곡에 대한 분석에 동의하면서 그 해답을 프로테스탄트 원리와 메시지에서 찾는다. 틸리히는 그의 저서 "Political Expectation"에서 "종교 사회주의의 신학적 전제는 종교와 기독교에 대한 예언자적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근본적 적용"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음 다섯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종교적 삶의 고백적 형태를 향한 변증법적 태도를 지향한다. 틸리히는 "종교 원리의 근본적 성격은 어떤 것을 절대적으로 만드는 고백주의를 금한다"고 설명한다. 종교 원리는 한 고백에 묶여있지 않으며 또한 개인의 구체적 고백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둘째는 종교 원리의 변증법은 구별되어진 종교 영역에 대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세속의 종교적 이해를 위한 개방을 종교 원리 안에 창조한다. 이것은 종교 원리의 기초에 놓여있는 결정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사회주의는 이론적 실제적 사회주의 삶을 저버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근저에 종교적 성격을 침투시킨다. 셋째로, 종교사회주의는 종교 원리 아래서 실존의 그리고 교회내의 삶의 실재적 이론적 형태들의 변증법적 분석을 착수한다. 종교 사회주의는 모든 종교적 실재가 자리하는 곳에 구체적인 그리고 역사적 실재로서 "세속"이 같이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목적으로, 종교 사회주의는 교회내의 종교적 삶의 형태들의 심층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분석과 함께 협동한다. 그 문제들을 풀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문제들을 구체적이고 역동성 가운데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고 그들에게 여유를 주자는 것이다.


이것은 역시 교리 의식 그리고 교회구성과 윤리적 시각에 적용된다. 단지 이러한 형태의 중재되지 않은 세속성의 급진적 인식을 통해서만이 그들의 종교적 의미가 나타난다. 넷째로, 종교 원리의 역동적 특성은 세상을 초월하는 의지와 세상을 형성하는 의지 사이의 관계의 문제를 푼다. 종교 사회주의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신약의 카이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방법으로 카이로스가 사용될 때 세상과 사회의 형성은 종교 원리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어진 형상은 추상적이거나 유토피아적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구체적으로 그리고 성취된다는 기대의 지지를 받음으로서 해석된다. 카이로스는 항상 일시적인 것이 실로 변형되고 그리고 영원한 의미가 내재하고 일시적 성취안으로 돌파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율은 카이로스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창조의 목적이다. 이 개념은 종교 원리의 역동성에 따른다. 신율은 겉보기에 실재적이고 종교적으로 무관한 문화를 대항하여 저항한다. 종교 사회주의는 세속화된 부르조아 사회의 본성이 초월을 저지하는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종교 사회주의는 또한 부르조아 사회의 흔들림과 변형이 사회와 영적 삶의 새로운 신율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결론 


틸리히는 종교 사회주의를 통하여서 자신의 문화신학 또는 넓은 의미의 종교를 주어진 역사적 상황속에서 실현해보려고 노력하였다. 여기서 그는 존재론적 접근보다는 사회적, 집단적 접근을 시도했다. 후에 살펴볼 일이지만 틸리히에게 존재론적 완성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게서 나타나며 이를 "새로운 존재"라 부른다. 그리고 사회적, 우주론적 이해를 "하나님의 왕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교 사회주의는 프로테스탄트 원리의 사회적, 우주론적 적용이다. 종교 사회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우주론적 상징인 "하나님의 왕국"을 대신하여 "계급 없는 사회"를 상징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율이 도래하는 계급없는 사회가 시간과 공간에서 대단히 빨리 실현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가 독일에서 미국으로 옮겨온 뒤 이러한 기대는 너무 조급한 것이었다고 평가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의심없이 종교사회주의의 기본 개념들은 유효하다고 믿는다. 확실치 않은 것은 종교 사회주의 원리들의 적용이 가까운 시일안에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전후(戰後) 동서 독일의 분열로 인하여 틸리히는 창조적 카이로스보다 "공허"를 느꼈다. 어쨋든 그는 카이로스가 마성적인 것을 정복하는 것은 언제나 단편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직도 19세기의 문화낙관론적 희망 가운데 "종교 사회주의가 예언자적 정신과 마르크스의 방법을 취한다면 오늘의 세계를 이해하고 초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출처: 김남중의 목회와 신학 아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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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유정원) 정강길 8190 05-20
49 진정한 유일신론은 다원론 (김경재, 오강남) 정강길 9609 04-28
48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을 읽고서... 정강길 10803 04-27
47 이안 바버가 보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유형 (김흡영) 정강길 11089 07-16
46 세계화 시대, 남미해방신학의 유산 (장윤재) 정강길 8241 01-07
45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경재) 관리자 7432 11-12
44 竹齋의 현재적 그리스도론 (김경재) 정강길 7530 05-06
43 경험은 믿을만하며, 완전한 지식을 제공하는가 (황희숙) (1) 미선이 7568 01-07
42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야 산다! (김경재 교수) 미선이 6982 01-06
41 혼란의 시대: 종교, 무엇을 할 것인가? (정진홍 교수) (1) 관리자 7598 12-15
40 진리란 무엇이며, 내가 믿는 것이 반드시 진리인가 (한전숙) (1) 미선이 7857 12-01
39 “복음주의, 알고 보면 기득권주의” (1) 미선이 6331 11-28
38 기존 기독교인이 동성애혐오증을 가장 크게 지녔음을 말해주는 조사자료들 미선이 6232 11-28
37 영성에 대한 원불교 교리적 고찰 (백준흠) 미선이 6409 11-21
36 '죄'와 '구원'에 대한 전통신학의 한계와 과정신학적 해석 (김희헌) 관리자 7028 11-02
35 영성과 영성수련에 대한 새로운 이해 (정강길) (3) 관리자 6952 11-02
34 21세기의 종교-새로운 영성을 위하여 (길희성) (1) 미선이 7562 10-15
33 현대 무신론에 대한 신학적 이해 (오영석) 미선이 6467 10-14
32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배타주의 (이숙진) (1) 치노 8175 10-01
31 [기조강연 전문]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길희성) (1) 관리자 7384 10-01
30 [참조] 세기연의 월례포럼 자료들은 '세기연 월례포럼' 게시판에 따로 있습니다. 관리자 6030 07-29
29 SBS'신의 길 인간의 길' <제4부 길위의 인간> 전문가 인터뷰 정리 미선이 9568 07-29
28 프레크 & 갠디, 『예수는 신화다』(국역판 전문) (4) 미선이 9601 07-20
27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SBS취재 인터뷰 내용 미선이 7880 07-06
26 제국의 폭력에 맞서는 해방을 위한 신학 - 김민웅 마루치 7437 05-21
25 [펌] 탈신조적 그리스도교에 대한 꿈 (1) 고돈 린치 7515 02-27
24 역사적 예수 제3탐구의 딜레마와 그 해결책 (김덕기) 정강길 7472 02-21
23 희랍 동성애의 특성과 사회적 역할 마루치 6917 02-15
22 몰입 (나에 대한 최고의 순간이자 그것 자체가 행복인 순간) 관리자 7889 09-12
21 예수 교회 예배 주보 표지를 장식할 '예수 이후의 예수들' 관리자 7935 08-03
20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전초기지, 공동체 운동에 대한 좋은 자료들 관리자 9537 07-02
19 잃어버린 예수 : 예수와 다석(多夕)이 만난 요한복음 (박영호) 관리자 11549 06-27
18 김경재 - 한국교회와 신학의 회고와 책임 정강길 7098 06-06
17 이성정 - 함석헌의 새 종교론에 대한 연구 (강추!) 관리자 9088 01-27
16 행복 보고서 정강길 8040 01-18
15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3) 성직자 및 종교단체에 대한 평가 관리자 6982 01-06
1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2) 한국인의 종교관과 의식구조 관리자 9367 01-06
13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1) 한국인의 종교실태 관리자 8698 01-06
12 우리나라의 3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 분포 지도 (*통계청) 관리자 15877 12-15
11 종교 인구 20년간 어떻게 변했나? (*통계청) 관리자 13546 12-15
10 한국 종교계는 치외법권지역인가? 관리자 9029 11-24
9 보수 기독교인들 특히 C.C.C가 널리 전파하는 <4영리> 자료 관리자 11745 10-27
8 최근 예수 연구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김준우 11017 10-21
7 기독교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강추) 돈큐빗 9391 10-07
6 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의 생애 (잠농 통프라스트) 관리자 9283 10-04
5 숫자로 보는 한국 장로교의 정체 (3) 이드 16048 06-21
4 기독교 사상사를 결정지은 니케아 회의, 그것이 알고 싶다! (강추) 미선이 13357 05-31
3 [펌] 니케아 회의 시대 (313-590) 관리자 16630 05-30
2 [펌] "미국은 神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는가?" (1) 미선이 8233 05-17
1 [유다복음서 전문] 유다는 왜 예수를 배반했을까? 미선이 15318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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