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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야 산다! (김경재 교수)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9-01-06 08:03 조회(6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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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야 산다

[2009-01-01 08:00]

김경재 명예교수

2009년 기축년 새 해가 시작되었다. 지구라는 작은 행성이 공전궤도를 한바퀴 돌아, 사계절이 바뀌고 밤낮의 길이가 길거나 짧아진다고 해서, 사람이나 역사가 새로워 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해가 바뀌면서 좀 더 나아진 삶을 꿈꾼다. 나는 한국 개신교에게 이것을 바라고 싶다. 나 자신부터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첫째,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한국개신교에 대한 신뢰지수는 20% 미만 곧 10명중 2명뿐임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철저한 개혁과 환골탈퇴하는 자정의 노력을 최소 향후 10년간 계속해야 한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하여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사회구성원들이 기독교에 바라는 5가지 요청은 분명하며 정확하게 핵심을 잡아 진단하고 있다. (i) 교인과 교회지도자들의 언행일치(42%) (ii)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자세 확립(25.8%) (iii) 사회봉사(11.9%) (iv) 교회재정의 투명화(11.5%) (v) 교회성장제일주의 지양(4.5%) 이상의 5가지 요구였다.

둘째,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위의 5가지 정당한 요구에 직면하여 물량적 사고와 자기과시적 허세, 명예욕과 권력욕망의 부끄러운 망상에서 벗어나 후다닥 잠을 깨야 한다. 한국교계와 각 교단이나 지교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지도자들은 할말도 많겠고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명분과 정당한 자기변호를 다 감안하더라도, 한국사회는 한국개신교의 지도력을 존중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속된말로 “잘들 논다!”라고 멸시를 넘어 비아냥거리고 아예 관심도 두지 않는다. 교계 교권 중심부는 그러한 사회의 냉혹한 기독교에 대한 반감 원인을 안티기독교단체, 이단적 신학사조, 방송이나 언론매체의 부정확한 비판적 선동 때문이라고 책임을 밖으로 돌린다. 그리고, 목숨 걸고 기존의 보수적 기독교 자기정체성을 사수하겠다고 순교자적 전의를 불태운다. 도대체가 진지한 자기성찰이나 자기정화 노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해서, 지금 한국기독교의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자기정화, 자기회개’여야 한다. 자존심상하고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그것이 사실이고 현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이다.

셋째, 최근 교계뉴스가 전하는 바를 보면 20009년은 한기총 발족 20주년 기념의 해가 되기 때문에,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루겠다고 포부를 말하는 지도자들의 지도노선에 관한 뉴스를 접한다. 한기총 발족 20주념의 해가 한국사회사나 교회사에서 도대체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기에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성대한 행사를 치루겠다는 것인가? 제발 정신 차리고 발상법의 전환이 있기를 촉구한다. 2007년의 해에 ‘1907년 평양 대부흥 회개와 부흥운동 100주년 기념대회’로서 성의껏 범 교단적으로 준비하여 10만명이 모여 상암축구 경기장에서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일반 언론방송매체나 사회인의 관심은 차갑고 냉소적이었던 것을 잊었는가 아니면 아직도 모르는 것인가? 국민전체가 경제적 사회적 위기와 고난의 시련을 겪고 있는 2009년에 한기총 발족 20주년 기념성회를 아무리 성대하고 웅장하고 거룩하게 치르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냉소적 사회 비판 뿐 일거라는 점을 교계지도자들은 명심하기 바란다.

넷째, 무엇보다도 요즘 한국기독교계 특히 지도자들의 발언들과 교계신문 기사논조를 보노라면, 이슬람교의 한국전파와 교세신장을 이단종파의 도전이나 위협처럼 생각하는 발상과 언어적 표현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두려운 예감마저 든다. 한국개신교가 이슬람 문화권에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이슬람교의 한국선교나 교세신장은 경계하고 위험시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이런 이기적이고 자가당착적 모순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현재 중동지역에서 불타고 있는 유대교-기독교연대(이스라엘과 미국의 연대)를 한축으로 하고 아랍-이슬람 교세를 또 한 축으로 삼는 이런 종교문화충돌의 대립구조 씨앗을 이 땅에 뿌리는 듯한 시대착오적인 위험한 발상과 언행논조들을 크게 반성해야한다. 한국사회구성원들이 한국개신교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경멸하는 가장 큰 원인중 하나가 타종교에 대한 독선적이고도 공격적인 태도와 비관용성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섯째, 한국 기독교는 교세 1,000만명의 종교왕국에 유폐당하고 1970-80년대에 이룬 교세신장의 선교업적에 도취하여,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를 도통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곧 ‘때의 징조’를 분별 못하는 어리석은 종교단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09년은 과학계에서는 '천문·진화론의 해’로 정하여 갈릴레오 망원경 발명 400돌과 다윈 탄생 200돌 행사를 전지구촌 차원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도 생명의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못한채 창조론의 입장을 고수하며, 창세기 천지창조설화가 말하려는 신앙진리를 소홀히하고 그 설화를 과학적 사실처럼 믿어야 정통신앙이라고 강요하는 한국 기독교 미래에 과연 현실을 이끌어갈 창조적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 남아 있을까? 한기총 창립20주년기념행사 같은 것은 집어치우고 차라리 2009년의 해를 ‘종교와 과학의 상호대화의 해’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2009년은 한국 기독교가 다시 갈릴리의 순수하고도 생명력이 넘치는 가난한자들의 친구가 되는 사랑의 종교에로 복귀하는 첫해가 되기를 바란다. ‘갈리리 복음’이란 상징어이다. 교권적 기독교, 교리적 기독교, 성직자중심의 기독교, 가부장적 남성중심의 기독교, 부자들의 부를 축복하고 청빈과 가난한자를 비웃는 콘스탄틴적 기독교 등에 대한 대립적 개념이 ‘갈릴리 복음’이라는 상징어이다.

전지구가 미국발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세계적 경제위기로 고통을 겪는다. 하루 속히 이 경제적 위기가 한국사회나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극복되기 위해 고통을 분담하고 지혜를 모으고, 어려울수록 더 어려운 인간에 대한 연대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교회는 지난날 경제위기 발생이전의 호황을 누리던 시대에로의 복귀만을 바라야 할 것인가? 더 근본적인 지구문명의 존폐를 위한 가치관의 전환, 생활스타일의 변화, 인간 영성의 진작을 선도해가야 할 것 아닌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 인구 20억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교회는 잊어 버렸던 산상수훈의 복음을 설교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많이 소비하고 너무나 낭비하며, 지나칠 만큼 경제적 물질욕망에 병들어 있음을 말해야 한다. 교회부터 ‘청빈과 여백의 영성’을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

김경재 (삭개오작은교회 전도목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2009년 1월 1일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자!
 

삭개오 작은 교회 김경재 목사  
 

이성숙 (기사입력: 2008/12/29 14:05)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에 이끌렸나보다. 35년간의 교단 신학교 교수직에서 물러나 새롭게 시작한 교회의 이름이 ‘삭개오 작은 교회’다. 벌써 3년의 세월이 흘렀다. 예배 처소도 옮겼다. 서교동에 있는 함석헌기념사업회 건물 3층. 음각으로 새겨진 십자가상이 인상적이다. 언젠가 성 프란치스꼬의 고향 아씨시를 방문했을 때 기념으로 사온 것인데, 작은 예배당에 안성맞춤이다. 강대상도 따로 없다. 한켠에 마련한 작은 교탁이 사회 겸 설교대다. 60여 명의 교인이 마음 모아 예배드리기 알맞은 공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가 이 교회의 모토다.

김경재 목사, 남들이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 그가 다시 목회 일선에 나선 이유가 있다. 키가 작은 삭개오가 군중들에게 밀려 예수께 다가갈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의 한국 교회도 교인들에게 둘러싸여 정작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갈릴리에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던, 교리가 되기 이전의 예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교회의 본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자

철학에서 “칸트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있었듯 기독교도 “갈릴리 복음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싶단다. 갈릴리는 예수께서 펼친 하나님 나라 운동의 시발지이다. 갈릴리 복음은 교권화 되기 이전의 기독교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치시던 본래의 복음으로 이 땅의 가장 낮은 자, 소외된 자와 함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평화와 위로, 생명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구원의 본래적 의미가 건강한 생명의 회복에 있음을 알고, 물질과 권력, 명예에서 벗어난 복음을 선포하자는 것이다.

기독교가 교리화 된 것은 신앙을 시대에 맞게 변증하고 증언하면서 빚어진 산물이다. 그리스 철학과 라틴, 서구 앵글로색슨의 영향을 받으면서 고착화되어 온 것이다.

“이제 성경의 ‘축자영감설’이나 ‘무오설’을 문자 그대로 믿으라는 반지성적, 교리적 기독교는 재해석되어야 하며,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가 나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교리 형성에 영향을 준 서구 철학보다 대승불교나 고전 유학, 송대 이후의 신유학, 노장사상 등 동아시아의 영성이 더 풍요로운 정신적 토양을 갖고 있다는 것.

그는 올 1월말부터 3년 정도 ‘갈릴리 복음’을 가르칠 계획이다. 대승적 기독교, 우주적인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신학 내용을 재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 이해, 속죄, 삶과 죽음, 과학과 종교, 타종교와 문화 등 다양한 주제로 펼쳐질 이 강의가 숨밭(김경재 교수의 호) 신학의 결산이 될 성싶다.

헌금, 쓰는 게 더 어렵다

인위적인 팽창주의를 끊어야 교회가 교회다워질 수 있다. 지금의 예배는 목사와 장로가 영광을 다 받아버린다. 예배를 정결하게 단순하게 드리는 이유다. 진솔한 개방성을 갖고 성경공부를 이끌어가는 것도 본래의 복음을 이해하자는 취지다. 현대 인간의 삶 자체가 의롭지 못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사람, 자신이 삭개오처럼 죄인임을 자각하고 예수님을 가슴에, 가정에 모시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물량주의적 가치관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모여 나누며 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삭개오 작은 교회의 존립 이유다.

오늘의 교회는 큰 공장의 벨트라인이 굴러가는 것처럼 흐름을 타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초대교회의 주요한 4가지 원리가 케리그마-말씀 선포, 코이노니아-교제, 디다케-교육, 디아코니아-봉사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오늘의 교회도 교회 재정의 25%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삭개오 작은 교회는 헌금의 50%를 무조건 구제에 쓰기로 하고 실천해오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분간 유급 담임 목사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개척교회가 어려운 것은 교회가 목회자 생계를 걱정하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좋은 일을 할 때 마음으로 기뻐하도록 피조 되어 있다. 누구를 도울 것인지도 교인들이 직접 선정한다. 헌금만 할 때보다 헌금을 쓰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교회의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나눈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자기 정화가 필요한 때

“한국 교회가 자기 정화와 절제, 내면의 영성훈련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지금의 한국 교회는 역사와 사회가 교회에 무엇을 원하는지 관심이 없다. 반기독교 세력이 안티 기독교를 외치고 있다고만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자정의 길을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지금부터 적어도 10년에서 20년만 묵묵하게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본연의 길을 찾아간다면 한국 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신대학교 학술원 신학연구소가 주최가 되어 진행한 프로젝트 <한국 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의 사회·문화적 변동에 끼친 영향 연구>의 연구 책임자로 일한 그는, “지금처럼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로부터 매도당한 적이 없었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지난해에 벌어졌던 종교편향 논란은 한국 교회가 깊이 숙고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

10여 년 전, 한신대에서 <대승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라는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개신교 신자가 화계사에 방화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담장을 사이에 두고 있던 이웃이라 강의 말미에 그런 말을 했다. 옆집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 우리네 미풍양속이다. 화계사에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라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생들은 즉석에서 모금을 하고 그 날로 방문하게 되었다. 화계사에는 국제선원이 있어 미국, 프랑스 이태리 등지에서 온 서양인 학승들이 있었다. 학생들과 함께 화계사를 방문했을 때 그들은 화계사 방화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이 머무를 곳이 못 된다는 생각에 짐을 싸 고국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신학생들이 찾아온 것을 보고 ‘한국 교회에도 이런 이들이 있구나’ 안심하면서 그들은 쌌던 짐을 다시 풀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올해로 10년째 가을이면 한신대 운동장에서 의미 있는 바자회가 열리고 있다. 인근의 송암교회와 화계사, 수유동 천주교회가 마음을 모아 지역의 어려운 이들을 돕고 있는 것. 종교의 근본인 사랑과 자비를 이웃 종교들이 연대하여 실천하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생태 환경 운동 현장에서 개신교, 불교, 천주교가 함께 힘을 모으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에서 이만큼 열린 사고를 가진 신학자, 목사도 드물다. 그는 지난해 한국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신의 길 인간의 길> 다큐에 인터뷰 장면이 소개되면서 비난의 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두어 번 와서 인터뷰를 해갔을 뿐 그런 식으로 제작된 것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 방송사의 제작 태도도 문제가 있지만, 공중파 방송에 나와 프로그램의 본질보다는 제작비의 출처 운운하는 목회자들의 발언이 더 한심스러웠다고 했다.

근래에 한국 교회가 이슬람의 선교에 과잉 반응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전 세계의 종교 인구를 보면 단일종교로는 이슬람 교도가 가장 많다. 우리는 이슬람 문화권에 가서 선교를 하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와서 선교하는 것을 두고 안방에 적군이 처 들어오는 것 같은 인식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은혜와 감사로 긴장 잃지 않아야

오늘의 크리스천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예수를 통해 얻은 생명과 진리가 정말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것. 크리스천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숭고한 긍지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은혜와 감사로 긴장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근위병 같은 과대망상이 오히려 교회에 폐해를 주고 있다는 것.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리에 있을 때 실천적 영성 훈련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고 했다. 실천적 영성 훈련, 수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절실히 깨닫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예수라는 보석을 담고 있는 보석함이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보석함의 치장에만 시간을 써온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마지막 목회를 통해 목사답게 몇 년이라도 살고 싶다. 바울이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했을까.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예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일흔 즈음에 깨닫는 것이 있다고 했다. 제자리에 있어 자기 분수대로 살 것. 목사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꽃도 가장 아름답다고 할 수가 없다. 제각기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덤불 속에 가려진 작은 들꽃이 더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주간기독교 2009.1.4. 제 1749호
 
 
출처 : 숨밭 김경재 교수 홈페이지 http://soomba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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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기독교 배타주의 (이숙진) (1) 치노 8187 10-01
31 [기조강연 전문]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길희성) (1) 관리자 7396 10-01
30 [참조] 세기연의 월례포럼 자료들은 '세기연 월례포럼' 게시판에 따로 있습니다. 관리자 6038 07-29
29 SBS'신의 길 인간의 길' <제4부 길위의 인간> 전문가 인터뷰 정리 미선이 9587 07-29
28 프레크 & 갠디, 『예수는 신화다』(국역판 전문) (4) 미선이 9618 07-20
27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SBS취재 인터뷰 내용 미선이 7904 07-06
26 제국의 폭력에 맞서는 해방을 위한 신학 - 김민웅 마루치 7452 05-21
25 [펌] 탈신조적 그리스도교에 대한 꿈 (1) 고돈 린치 7527 02-27
24 역사적 예수 제3탐구의 딜레마와 그 해결책 (김덕기) 정강길 7483 02-21
23 희랍 동성애의 특성과 사회적 역할 마루치 6926 02-15
22 몰입 (나에 대한 최고의 순간이자 그것 자체가 행복인 순간) 관리자 7902 09-12
21 예수 교회 예배 주보 표지를 장식할 '예수 이후의 예수들' 관리자 7995 08-03
20 하나님 나라 운동의 전초기지, 공동체 운동에 대한 좋은 자료들 관리자 9547 07-02
19 잃어버린 예수 : 예수와 다석(多夕)이 만난 요한복음 (박영호) 관리자 11573 06-27
18 김경재 - 한국교회와 신학의 회고와 책임 정강길 7110 06-06
17 이성정 - 함석헌의 새 종교론에 대한 연구 (강추!) 관리자 9101 01-27
16 행복 보고서 정강길 8050 01-18
15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3) 성직자 및 종교단체에 대한 평가 관리자 6992 01-06
14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2) 한국인의 종교관과 의식구조 관리자 9379 01-06
13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1) 한국인의 종교실태 관리자 8712 01-06
12 우리나라의 3대 종교-불교/개신교/천주교- 분포 지도 (*통계청) 관리자 15899 12-15
11 종교 인구 20년간 어떻게 변했나? (*통계청) 관리자 13566 12-15
10 한국 종교계는 치외법권지역인가? 관리자 9039 11-24
9 보수 기독교인들 특히 C.C.C가 널리 전파하는 <4영리> 자료 관리자 11756 10-27
8 최근 예수 연구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 김준우 11077 10-21
7 기독교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강추) 돈큐빗 9407 10-07
6 정치적 시각에서 본 붓다의 생애 (잠농 통프라스트) 관리자 9302 10-04
5 숫자로 보는 한국 장로교의 정체 (3) 이드 16095 06-21
4 기독교 사상사를 결정지은 니케아 회의, 그것이 알고 싶다! (강추) 미선이 13372 05-31
3 [펌] 니케아 회의 시대 (313-590) 관리자 16657 05-30
2 [펌] "미국은 神이 지배하는 나라가 됐는가?" (1) 미선이 8244 05-17
1 [유다복음서 전문] 유다는 왜 예수를 배반했을까? 미선이 15344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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