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02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0 명 / 손님 102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보수 근본주의
중간 복음주의
진보 기독교 진영
민중신학 & 살림신학
종교 일반 & 사회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330
어제 859
최대 10,145
전체 2,287,585



    제 목 :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기독교 해방주의와 민중신학 비판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1-27 17:13 조회(7231)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d001/123 


 
 
미국의 사회학자가 바라본 민중신학 

피터 버거 교수, "기독교 해방주의, 사회주의는 길이 아니다"
 
 

 2011년 10월 07일 (금) 17:42:00 윤영석
 
 
 
소수의 신학자들만의 관심이 돼버린 지 오래지만 세계적인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은 한국의 민중신학을 일컬어 "한국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신학"이라고 칭했다. 최근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피터 L. 버거 명예교수(보스턴대학 사회학)가 심원 안병무 박사와 민중신학을 소개하고 민중신학을 비평하고 나섰다. 그는 이미 메가처치나 선교사들이 민중신학을 전혀 거론하지 않고 보수적인 개신교 공동체가 민중신학에 무관심하다는 현실도 인지하고 있었다. 미국의 사회학자가 눈에 비친 민중신학은 어떤 모습일까.
 

피터 버거 교수는 지난 8월 31일, 시사평론지 <아메리칸인터레스트>의 온라인 칼럼에 "젓가락식 해방신학"이라는 제목으로 민중신학에 관한 글을 썼다. 영문 민중신학 학술지인 <마당>을 근거로 민중신학을 도마 위에 올린 버거 교수는 <사회학에의 초대>(현대사상사, 1977/1982), <이단의 시대>(문학과지성사, 1981), <종교와 사회>(종로서적, 1983), <지식 형성의 사회학>(홍성사, 1989) 등의 저자이며 미국을 대표하는 사회학자 중 한 명이다.

 

사회학자가 본 민중신학, 마르크스주의와 유사?

 

사회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민중신학은 어떤 모습일까. 버거 교수는 민중신학을 설명하면서 먼저 마르크스주의와의 유사점을 이야기했다. 그는 민중신학의 민중은 "단순히 일반 대중을 이르는 용어가 아닌 '가난과 억압 가운데 고통 받는 사람들'"이라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사용하는 '인민'의 개념의 사람들"로 이해했다.

 

그러나 안병무 박사는 민중이 인민, 프롤레타리아(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력 이외에는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의 개념과 다르다고 했다. 과연 버거 교수가 다시 민중을 인민의 개념으로 해석한 까닭은 무엇인가. 단지 그가 사회학자이기 때문일까.

 

"민중신학은 예수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과 함께한다고 이해한다. 예수가 설교했던 하나님나라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메시지다. 기독교 신학은 반드시 민중의 관점에서 본 성경 읽기를 기초로 해야 한다. 민중의 의식(consciousness)은 민중이 사회 현실에 특권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의 특권적 의식에 관한 마르크스주의의 생각과 매우 가깝다. 물론 한국의 어떤 현실이 이런 의식에 의해 밝혀져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내게) 이 현실이 일반적 마르크스주의식 용어로 정의된다는 점이 그렇게 놀랍진 않다. (이 현실 가운데) 한국은 먼저 일본, 그리고 가장 최근엔 미국 제국주의의 희생자였다. 미국식 제국주의가 강요한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는 민중이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이다." (피터 버거)

 

▲ 피터 버거 교수는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사회 현실의 해석은 마르크스주의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 보스턴대학교
버거 교수에 따르면, 사회 현실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 민중의 의식 개념과 프롤레타리아의 의식 개념은 매우 유사하다. 이 깨어진 민중의 의식, 민중의 의식화를 통해 바라본 현실, 즉 민중신학의 눈으로 본 사회 현실의 해석은 지극히 마르크스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어 버거 교수는 남한의 경제적 성장과 그 결과로 가난에서 벗어난 점에 주목했고 "민중신학이 '가난 전체'보다 경제적 부흥 뒤에 남겨진 이들의 상황과 불균등을 강조"했고 "대부분의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정의는 경제 성장의 이득의 균등한 분배를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민중신학이 "한국전쟁과 분단의 책임을 미국 제국주의에게 전가"하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민중신학이 보는 사회정의는 "화해와 평화 통일을 기반으로 한 북한에 관한 의제로 향한다"고 말했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그리고 제3세계 신학들

 

버거 교수는 민중신학을 해방신학의 연장선에서 바라봤다. 해방신학은 민중신학과 유사하게 신학의 당위성을 "가난한 이들의 관점"에서 찾으며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실천적 행동"을 강조한다. 제 3세계 빈곤의 근본 원인이자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는 세력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다. 그렇기에 이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의식화 작업"을 중요시한다.

 

사회학자인 버거 교수의 눈에 민중신학만이 해방신학의 연장선에 있는 것일까. 아니다. 버거 교수는 흑인신학, 여성신학, 게이신학, 달릿신학 등도 합류시켰다. 물론, 이 신학들이 정한 억압받는 대상은 한국의 민중, 미국의 흑인, 중산층 여성, 성적 소수자, 브라질의 파벨라스(빈민촌에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 기자 주), 인도의 달릿(불가촉천민) 등으로 다양하다. 하지만 버거 교수는 "이 신학들이 의식화 작업을 통해 ‘억압받는 이들이 현실에 특권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가정을 공유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이 지목한 억압자들은 '미국 제국주의에 의해 지탱되는 세계 자본주의 기관들'로 고정된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기독교 해방주의의 문제점

 

버거 교수는 민중신학을 비롯해 흑인신학, 여성신학, 달릿신학을 해방신학의 테두리에 묶어 "기독교 해방주의"(Christian liberationism)로 명명했다. 그는 이 기독교 해방주의를 신학적이고 실증적인 관점에서 비판했다.

 

먼저 그는 신학적인 측면에서 "예수와 초대교회가 선포한 하나님나라는 정치적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기독교 해방주의가 신약성서로부터 뚜렷하게 벗어나는 방식으로 복음을 정치화한다"고 논평했다. 그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어도 자신의 결론에 똑같이 이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버거 교수는 실증적인 측면에서 이 신학들의 "해방주의적 의제를 지지하는 진단과 권고된 해결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유사 마르크스주의 용어로 이뤄진 (기독교 해방주의의) 현대 사회에 대한 진단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사회주의로 쏠린 해결 방안은 환상이다. 사회주의는 그들이 바라는 목적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리고 정치적 용어로 선교를 정의하는 교회는 자신들을 시대에 뒤떨어지게 만든다. 왜냐하면 정치적 목적은 모든 (기독교 해방주의의) 신학적 짐덩어리들 없이도 성취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좌파 성향의 교회뿐만 아니라 우파 성향의 교회에게도 해당된다." (피터 버거)

 

그는 이어 해방신학이 주창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the preferential option for the poor)이란 테제를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 선택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며 "자신들은 가난하지 않은 이들의 우선적 선택"이라고 말했다. 또 사회주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길이 아니라며 60년대 해방신학이 시도했던 사회주의와의 연대를 비판했다.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가난하고 사회의 변방에 있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신학적 가정이 있다. 더 나아가 사회는 가장 연약한 구성원에 의해 도덕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는 윤리적 가정이 있다. 1968년, 이런 것들은 초기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데 (이것과 관련해) 남미를 비롯한 여러 곳의 사람들은 사회주의가 길이라고 믿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문구에 누구나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이 가난한 이들에게 좋은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사회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든지 대다수의 가난한 이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나 어느 정도의 물질적 삶을 영위하는 경우는 자본주의 경제의 상황 가운데였다. 놀랍게도 가장 최근엔 중국이다." (피터 버거)

 
 
http://www.newsnjoy.us/news/articleView.html?idxno=2672
 
 
미선 (13-01-27 17:30)
 
피터 버거의 비판은 기존 진보 기독교 진영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즉, 기독교의 핵심 가치가 과연 사회정의 운동에 있냐는 논의다. 그런 점에서 약자우선성의 기독교 신학들을 통틀어 기독교 해방주의로 개념화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보인다.

그러나 피터 버거가 윗글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은, 그러한 기독교 해방주의에 있어 거의 물질적 경제적 해방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마르크주의주의와 유사한 것으로 평가하지만, 내가 볼 때 이는 단순히 경제적 해방의 차원에만 국한된다고는 볼 수 없다. 물론 물질적 경제적 해방의 차원 역시 중요하다. 보다 중요하게 들여다봐야 할 부분은 힘의 과잉과 결핍에 있으며, 이를 단지 경제적 구도로만 얘기될 수 없고, 오히려 경제적 구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권력 문제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세속적 사회주의가 경제적 해방을 그 핵심으로 삼는다면, 적어도 예수의 사회주의는 경제적 해방 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적 지평까지 총체적 해방을 염두에 둔 하나님나라 라는 것이다. 내가 볼 때 여기에는 당연히 개인의 몸얼 발달까지도 모두 포함한다. 쉽게 말해 개인의 의식 수준이 향상되는 인지 발달과 사회의 체제 발달은 함께 가야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방법적 핵심은 철저히 희생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를 위해 비폭력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점이 기독교 예수운동이 갖는 핵심 골자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피터 버거가 윗글에서 언급한 기독교 해방주의가 말하는 '가난한 자'가 단지 물질적 경제적 궁핍만을 의미하는 걸로 보는 것이라면 큰 착각이라고 생각한다(물론 실제 어느 정도 그러한 요소들이 있었음을 인정하더라도 말이다). 예수운동은 사회정의 운동의 성격도 지니고 있긴 하나 실상은 전방위적인 존재 자체의 해방운동을 지향한다. 여기에는 힘의 과잉 숭배자들(가해자들)에 의해 한편으로 억압되고 희생된 약자들 모두가 함께 엮여져 있다. 우리가 민중이라고 했을 때도 단순히 그것은 물질적이고 경제적인 약자만을 지칭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모든 폭력에 희생된 자들을 대변하고자 했던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면, 세계 안의 희생자(약자)적 관점에서 확립되는 사회주의야 할 것인데, 지금까지의 세속적 사회주의 운동에선 이러한 전방위적인 차원까지 고려되어 있진 않은 실정이다. 그런 점에서 주의 나라는 아직 이 세계 안에는 없다. 내 나라는 아직 이 세상에 없다고 말씀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나라는 가까이왔다. 주의 나라는 언제나 희생자들과 함께 할 때만이 세계 안에 잠깐씩 현존할 뿐이다. 천국도 지옥도 형성과정이라는 현재 진행형에 있는 것이다.



게시물수 61건 / 코멘트수 50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6 증보판) 출간~!! (2) 관리자 112556 10-25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423 08-08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832 07-10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837 04-29
61 민중신학 대부의 아내, 박영숙 선생 별세 관리자 5618 05-21
60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민중신학은 지금도 유효” 관리자 5596 04-25
59 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기독교 해방주의와 민중신학 비판 (1) 미선 7232 01-27
58 홍인식 목사 “해방신학은 행진 중” 관리자 7153 12-08
57 민중신학과 강원돈의 신학 미선이 7362 08-07
56 “민중신학, 상황신학으로 규정할 수 없어” (1) 관리자 9817 01-01
55 민중을 팔아 장사하는 민중신학자들 미선이 6811 05-11
54 [출간소식] 김명수,『큐복음서의 민중신학』(도올 김용옥 서문 | 통나무) 미선이 7199 07-07
53 故 강희남 목사의 유서…'파장' 예고 미선이 7395 06-07
52 [출간소식] 권진관 『성령과 민중』(동연) (1) 미선이 7433 05-12
51 인도에서 떠오르는 '달리트 신학' 미선이 7144 04-21
50 예수는 민중이란 것에 동의하지만…민중이 예수일까? 미선이 5888 04-08
49 화이트헤드의 '현실적 존재'에 담긴 에큐메니컬 정신 미선이 6005 03-02
48 "인민신학+민중신학=통일신학" 노정선 교수, 한국민중신학회서 주장 미선이 8704 05-26
47 권진관 교수의 민중신학과 화이트헤드 철학 이해에 대한 비평 (1) 정강길 8549 04-20
46 새로운 민중신학의 이름, <살림신학> (3) 정강길 7897 01-20
45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사업회 및 학술제를 다녀와서.. (1) 정강길 9598 10-16
44 부르조아의 하나님 : 낙타와 바늘귀, 자본주의, 제국주의 (2) 리옌화 8479 07-14
43 [펌] 깨달음의 사회화 (박재순) 정강길 8640 04-09
42 "손해보고 살자" (광주 연합예배) (6) 정강길 9095 09-11
41 "가장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나라, 하나님 나라" 정강길 7410 04-01
40 “예수는 민중이고 민중은 예수다”에 대한 엄밀한 고찰 정강길 8004 03-09
39 학문은 쉬워야 함에도 요구되는 '불가피한 아카데믹함'이란? 관리자 14321 02-22
38 혀짤리고 귀먹고 화상당한 우리의 늙으신 하나님을 아시나요? (최형묵) 정강길 9318 02-01
37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운 사람, 송기득 교수 (정용섭) 정강길 8683 01-30
36 이론과 실천의 함수관계 (* 신학과 삶의 관계) 정강길 7884 12-16
3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후기 (2) 해조 8338 12-11
34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한 몇 가지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865 12-01
33 한국 기독교 신학의 전개과정과 새로운 전환의 신학 정강길 6514 11-14
32 정강길의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을 읽고 나서 (Dong-Sik Park) (2) 관리자 9362 10-27
31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2006 증보판) 출간~!! (2) 관리자 112556 10-25
30 <백두근본주의>에 대한 고찰 정강길 7535 10-25
29 지구화 시대의 민중신학을 위하여~!! 정강길 7606 10-18
28 한국 민중신학자 대회를 다녀와서.. 정강길 7048 09-21
27 일반인과 자각인의 욕구와 영성 (7) 정강길 7328 09-02
26 [펌] 내 신앙의 근본을 뒤흔든 그 말, 민중신학 (정병진) 정강길 7280 09-02
25 책을 읽고.. (김광현) 관리자 6650 09-02
24    이하 광현님과 토론글 모음.. 관리자 7126 09-02
23 민중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 과정철학적 관점에서 (장왕식 교수) 관리자 7790 09-02
22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5)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③ 정강길 7776 08-14
21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4)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만무〉滿無,full naught ② 정강길 7165 08-14
20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3) - '영성수련'의 최고 극치, <만무>滿無 full naug… 정강길 7847 08-14
19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2) - '영성수련'이란 <공부>工夫, Kung-Fu를 말한다! 정강길 8031 08-14
18 새로운 민중신학의 영성론 (1) - 도대체 <영성>이란 무엇인가? 정강길 12352 08-14
17 '한국 민중신학에 왜 하필 서구의 화이트헤드 사상인가'에 대한 대답 정강길 7423 08-08
16 [펌]에큐에 올라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서평 (1) 관리자 8832 07-10
15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정강길 6972 07-10
14 민중신학과 철학(형이상학)에 대한 문제 정강길 7542 06-17
13 '민중신학연구소' 진영과의 민중론 논쟁글 모음 정강길 7639 05-20
12 ‘다른 관심ㆍ다른 이론적 틀’ 로 논의 "현재 민중신학이 처한 상황과 문제점" (1) 구굿닷컴 8002 05-06
11 [쟁점] 비평 - 맑스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기독교 (11) 정강길 8847 05-06
10 새로운 민중신학에서 <민중> 개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7253 05-06
9 기존 민중신학이 안티를 걸었던 <서구신학>에 대한 의미 정강길 7347 05-01
8 서남동 신학,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9109 04-30
7 ● 서구신학 / 기존 민중신학 / <새로운 민중신학> 비교이해(필독) 정강길 8837 04-29
6 서남동, 화이트헤드를 만나다.. (5) 정강길 8284 04-28
5 민중사건 그리고 계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정강길 7465 04-28
4 화이트헤드에 기반한 사회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하여.. 정강길 7855 04-28
3 민중신학이여.. 제발! 제발! 제발! 미선이 8035 04-28
2 [탈/향 강좌]민중신학 vs. 민중신학, 성서를 읽는 천 개의 눈 (1) 정나진 15118 04-27
1 21세기에도 민중신학은 여전히 표류할 것인가..!! 미선이 16944 04-21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