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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추천]『오늘날의 무신론은 무엇을 주장하는가』근본주의 무신론자에게 답하다!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09-10 21:43 조회(8392)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f003/471 




 
책소개

『오늘날의 무신론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는 무신론의 주장들을 여덟가지 형태로 일목요연하게 구분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어떤 논리적 오류 혹은 성서학적 허점들에 근거하고 있는지 밝혀낸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 무신론을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낫다고 주장한다. 난해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쉬운 언어와 다양한 예시를 제시하여, 무신론자와의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배울 수 있다.

이 책이 속한 분야
종교 > 종교일반 > 종교이야기
 
저자 : 게르하르트 로핑크
역자 : 이영덕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옮긴이의 글
서문 : 새로운 상황

주장1.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주장2. 하느님은 인간의 투사물일 뿐이다
이 투사물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인간은 등을 돌릴 것이다

주장3. 인간은 동물계로부터 발전한 존재다
그러므로 그는 창조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장4. 선(善)은 진화(進化)로부터 쉽게 설명된다
그러므로 선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하느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주장5. 세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주장6. 종교는 세상에 폭력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종교는 매우 위험하다

주장7.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은 원시적일 뿐만 아니라 혐오감을 자아낸다
그러므로 이 하느님 상(像)으로 아이들을 세뇌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주장8.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마취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마침. 누가 더 나은 답변을 주는가?
 
 
게르하르트 로핑크 (Gerhard Lohfink)  
소개 : 193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출생하여, 1986년까지 독일 튀빙겐 대학 신약성서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7년 교수직을 떠나 가톨릭통합공동체에 입회하였다.
 
 
.......................................
 
[서평] 기독교사상(2012년 6월호)에 실린 서평
http://www.clsk.org/gisang/gisang_view.asp?tab=sasang_book&flag=01&board_idx=467&set_year=2012&set_month=06
 
 
글쓴이 / 이한영 
 
이한영 l 박사는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고,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종교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일본 교토대학(京都大學) 문학연구과에서 초빙외국인학자로 재직했다. 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종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근본주의적 무신론과 현대신학자의 응답
 
 
1. 근본주의적 무신론에 대한 그리스도교계의 응답
이 책은 무신론자들의 주장들에 대한 그리스도교 세계의 응답이다. 그러나 이 응답은 저자 로핑크가 밝히고 있듯이 모든 무신론자들을 향한 것은 아니다. 아니 그는 건전한 무신론은 오히려 그리스도교 세계관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까지 말할 정도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나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이 때로는 자기 자신의 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대상은 그리스도교 세계를 향해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공격적인 무신론자들이다. 그는 이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자연과학을 도구로 사용하고, 또 남용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들이 조직적인 무신론 네트워크를 만들어 그리스도교에 반대하는 책들을 저술하며 텔레비전 등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선전선동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들이야말로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는 열광적인 무신론 선전선동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무신론자들의 공격에 대해 그리스도교 세계는 침묵할 것인가? 대응할 것인가? 대응한다면 이러한 공격적인 근본주의적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선전선동에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이 책은 이에 대한 대응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무신론자들의 문제제기를 8가지 핵심적인 주제로 분류하여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응답을 하고 있다.

2.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로핑크의 응답

1)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이 문제제기에 대해 인식의 문제를 통해 응수한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무신론자들의 논변의 근거로 삼고 있는 자연과학의 환원주의를 문제로 삼는다. 사실 환원주의는 예측가능성, 검증가능성, 반복가능성, 수치화, 측정화 등을 통해 눈부신 과학적 성과를 이루어낸 과학적 인식의 한 특성이다. 그러나 로핑크는 바로 이러한 환원주의의 장점이 동시에 한계라고 적시하며 그의 논변의 근거로 삼는다. 즉 환원주의는 수치화, 계량화, 추상화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관점을 협소하게 만들거나 방법론적인 제한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물론은 다양한 실재의 영역을 오로지 물질의 영역으로만 환원시켜버리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생물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근본주의적 무신론자들의 환원주의적 사고방식 또한 자연, 예술, 종교, 역사, 문화 등 심오한 세계를 협소하게 만들고 제한시켜서 DNA나 생물학적 단위로 환원시켜버리는 한계를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참된 인식은 어느 하나의 층이 아니라 다양한 인식의 층들을 통합하는 인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과학이 세계를 수치화할 수 없으며 또한 세계해석에 대한 독점권을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앞에서 제시한 물음, 즉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는 물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결론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단순한 환원적 해석이 아닌 3,000년이 넘는 길고 긴 그리스도교 역사의 체험 안에서 맺어온 결실로서 인류체험의 총체적 차원에서 파악해야 할 인식이라고 주장한다.

2) “하나님은 인간의 투사물일 뿐이다. 이 투사물의 실체가 밝혀진다면 인간은 등을 돌릴 것이다”
 
그는 신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투사물일 뿐이라는 포이에르바흐의 주장으로부터 이 논제에 대한 불을 당긴다. 사실 그리스 철학자 크세노파네스의 말처럼 신들은 질투, 사랑, 도둑질, 간통, 생김새 등등 인간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이러한 면에서 신은 인간의 투사물이라는 주장도 어떤 면에서는 타당한 말이다. 사실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에 대한 표현들도 인간의 개념들을 통해서, 우리의 경험에서 유래한 심상들을 통해서 형성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로핑크는 이러한 인식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심상들은 동시에 부정되어야 하고 극복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참된 하나님은 모든 인간적 상상을 넘어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인식의 측면에서 투사이론을 비판한다. 그는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으로 인식하는 것은 나의 자아가 투사한 특성을 덮어씌우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타자의 고유성 안에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포이에르바흐의 투사이론이 인식적인 측면에서 자아의 투사라고 하는 한 가지 제한된 측면, 협소한 측면에서만 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3) “인간은 동물계로부터 발전한 존재다. 그러므로 창조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은 진화론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의 창조신앙을 비판하는 주장이다. 그런데 로핑크는 진화론을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을 기뻐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복제, 돌연변이, 선택이라고 하는 자연의 놀이를 통해 자신을 더욱 더 풍성하게 형성해가는 생물의 구조가 지닌 그 엄청난 능력과 점점 더 복잡한 구조로 향해가는 진화의 과정을 바라보며 감탄해야 하며 그 이면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것은 진화론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세계관으로 각색된 진화론, 특히 그리스도교 세계관을 비판하기 위해 각색된 진화론이다. 마찬가지 입장에서 그는 그리스도교 근본주의자들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한다. 근본주의자들이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특정 세계관을 주장하기 위해 성서를 자기 멋대로 오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창세기 1장의 창조이야기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땅으로부터 생겨난 이야기라고 이해함으로써 진화론과 조우한다. 창조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동시에 자연의 작품이다. 즉 하나님은 초월적 원인으로 모든 것을 당신으로 이끄시는 목적으로서 세계를 떠받치고 있는 분이며, 진화 전체는 하나님이 자연에게 준 엄청난 자유 안에서 자연이 이루어가는 자기생산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관점으로부터 인간이 동물계로부터 발전했다고 하는 사실이 결코 창조신앙과 대립적인 것이 아니며 하나님에 대한 진화론의 반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서가 말하고 있는 창조신화는 오늘날 물리학과 천체학이 사용하고 있는 이미지들과 은유들처럼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자 했던 당대의 수준 높은 은유와 언어의 표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러한 면에서 근본주의자들이나 무신론자들 모두 성서의 이러한 은유와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섬세함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4) “선은 진화로부터 쉽게 설명된다. 그러므로 선하게 살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도킨스는 동물세계에 존재하는 이타주의가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한 이기성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타주의의 한 형식인 동물세계 속에서 관용은 자신의 지배적인 위치나 우위성을 확인할 수 있는 행위라고 보았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자선의 행위도 이러한 동물세계로부터 형성된 방식이 남긴 유물, 부산물, (잘못된, 나쁜 오작동이 아닌) 축복받은 고귀한 오작동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로핑크는 도덕의 기원에 대한 이러한 도킨스의 시각이 매우 단편적인 안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도덕성이 생물학적 조건, 자연적 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부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도킨스가 다른 부분에서는 진화를 말하면서도 왜 도덕영역에서 이루어진 발전에 대해서는 진화론적인 시각에서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반문한다. 즉 로핑크는 도덕성도 진화의 역사를 통해 발전되어 온 것이지 오작동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수많은 희생을 하면서 퇴보와 발전의 과정을 거쳐 왔으며 그 결과 동물적인 행동양식들을 뛰어넘는 더 높은 단계, 즉 자유와 정신의 단계로 승화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고 반박한다. 그렇기에 그는 도덕은 자연을 전제로 하지만 또한 역사를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점점 더 심오하게 진행된 인간의 정신적 성숙과 위대한 자유의 성취가 맺은 열매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담고 있는 산상설교를 십계명, 이웃사랑에 대한 구약의 계명(레위기). 원수사랑에 대한 계명으로 완성되어 온 기나긴 완성의 길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오직 생물학적 이타주의만 있고 모세와 예수, 다른 위대한 성인들이 없었다면 과연 산상설교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은 선, 도덕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점을 다시 되묻고 있다.
 
5) “세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으로 가득차 있다. 이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실 이 물음은 그리스도교 안팎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행해왔던 오래된 물음이다. 그리스도교 내에서는 신정론을 위한 물음으로, 그리스도교 밖에서는 그리스도교를 비판하기 위한 물음으로 행해졌던 것이다. 이 물음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신이 존재한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암세포, 다중경화증, 치매, 죽음, 아우슈비츠 수용소 대학살 등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거북하고 불편한 진실이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자연재해에 대해 자연 자체는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해지는 위협이 그것을 악하게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미생물 세계, 동식물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냉혹한 전투는 진화의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생존을 위한 과정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유기체들의 죽음은 다음 세대의 진화를 위한 재생산, 세대교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죽음 없이 세대교체 없이 진화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죽음이야말로 진화, 역사, 자유, 사랑을 만드는 힘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아우슈비츠 사건을 통해 보는 것처럼 세계의 악에 침묵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에 대해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라고 하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프로그램화된 기계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창조된 인간이 자유를 통해 행위하고 그 행위에 대한 책임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6) “종교는 세상에 폭력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종교는 매우 위험하다”

9·11테러 등에서 보듯이 종교는 매우 폭력적인 면을 갖고 있다. 공격적 무신론자들은 특히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 등 유일신 종교가 더욱 그러하다고 비난한다. 실제로 역사 속의 그리스도교가 많은 증오, 억압, 폭력, 살해 등을 자행해 왔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로핑크는 이러한 폭력성은그리스도교 정신의 본래정신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오히려 이러한 폭력행위야말로 그리스도교 정신에 반한 것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산상설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근원적인 비폭력으로 나아갈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신론자들이 물고 늘어지는 것은 폭력과 보복의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약의 일부 본문들이다. 그러나 로핑크는 이러한 본문조차도 앗시리아, 바빌론 등에 의해 민족이 말살되었거나 포로로 살아야 했던 역사적 아픔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생존을 향한 절박한 정치적 배경이 이러한 폭력과 보복의 본문을 낳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역사에 대해 회고하는 바빌론 유배 이후의 본문들(가인과 아벨의 이야기, 노아 홍수 이야기 등)은 오히려 폭력으로 가득찬 세계, 인간사회의 폭력에 대해 고발하며 그것이 본래의 평화를 원하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벗어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상징을 만들어 냈고, 메시아 사상을 통해 보듯이 비폭력을 향한 생각의 혁명을 완성했다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7)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원시적일 뿐만 아니라 혐오감을 자아낸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 상으로 아이들을 세뇌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구약의 신은 소심하고 부정의하며 원한에 사로잡힌 관음증환자, 복수심과 피에 굶주린 순수민족주의자, 반동성애자, 인종차별주의자, 아이들까지 살해하는 역겹고 광적인 가학자이며 피가학자, 사악한 독재자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로핑크는 이에 대해 자신과 다른 생각에 대해 독설을 뿜고 있는 언어사용의 천박함과 공격적 성향에 대해 지적함과 동시에 고대의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지식조차 결여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그는 구약성서의 서술방식은 고대근동의 왕정주의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사실 억압받는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정치적 열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사악한 독재자의 열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구약의 하나님은 가난한 이들이 억압받지 않는 의로운 사회로 인도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로핑크는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언어세계에 빠져드는 것도 무엇이 악하고 무엇이 선한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다. 즉 인간의 비참함과 위대함을 함께 배울 수 있으며 인간의 잘못과 회개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엄하고 의로운 하나님과 더불어 자애롭고 사랑스러운 하나님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도킨스가 말하는 중립적 언어, 중립적 세계, 중립적 교육이란 애당초 없다고 말한다. 즉 교조적으로 주장된 중립적 세상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서는 이 세상이 악할 수도 있으며 선할 수도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오히려 아이들을 이러한 접근으로부터 막고 비신앙인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교조적인 행위라고 반박하고 있다.
 
8)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은 마취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이 주장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종교가 이 세상을 부정하고 저 세상으로 도피하게끔 하는 마약과도 같은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핑크는 이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구약성경 전체도 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야웨신앙은 죽은 이들에 대한 제의를 거부하고 있으며 또한 그 하나님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다신론적 주변환경이 저 세상에 대한 과도한 믿음을 취하고 있었으며 이스라엘은 이러한 경향으로부터 힘을 다해 벗어나려고 했다고 말한다. 또한 신약성서가 강조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실현되었다고 선포되었던 사회 안에서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미래의 사건이면서도 동시에 이미 현재에 시작되었다고 하는 두 개의 긴장감, 즉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부정하거나 세상에서 도피하려는 종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 있는 종교, 세상을 변화시키는 종교라고 주장함으로써 무신론자들의 비판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다.
 
3. 책에 대한 평가

무거운 신학적 주제들을 쉽고도 간결하게 쓴다는 것은 저자가 갖고 있는 역량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 책은 대중들이 이러한 주제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어렵고 두꺼운 신학 책이 아닌 쉽고 얇은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이 주제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과 정보들을 들을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무조건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옹호하거나 변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의 입장에서 변론하고 있지만, 지적인 충실성과 지적인 균형 감각을 통해 자극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은 학문적인 성실성으로 응답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이 주는 또 다른 매력이다.

또한 단순히 무신론자들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장 속에서도 타당한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용하고 인정하기도 하며 그것을 자기성찰의 계기로 삼기도 한다. 또한 역으로 그리스도교의 주장이라고 해서 모두 찬성하지도 않는다. 기독교 근본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등 종교근본주의의 맹목적 무지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화론을 그리스도교 신앙의 빛 안에서 재해석하고 있기도 하다. 남의 장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고 하는 것은 앎의 문제에 있어서 지적 발전을 위한 대단한 장점이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가톨릭 출신 학자답게 다른 종교의 상대적 진리에 대해서 인정하면서도 모든 종교는 그리스도교를 통해서 포용될 수 있으며 또한 진리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통해 완성해갈 수 있다고 하는 성취론적인 포용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간을 진화의 정점으로 보는 사고도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록은 “누가 더 나은 답변을 주는가?” 라는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로핑크는 그리스도교가 무신론이나 과학이 주지 못하는 의미에 대해 답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그것들이 답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세상과 역사에 대해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누가 더 나은 답변을 주는가 하는 물음에 로핑크는 우회적으로 대답한다.
 
참된 무신론은 신앙을 이해한다. 그리고 참된 신앙인은 무신론을 이해한다. 신앙인에게 정말 무서운 적은 무신론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무관심, 정신적 게으름, 고집, 거만함과 겉과 속도 그러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책은 전문신학서적이 아니다. 그러나 이 얇은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어설픈 전문신학서적이 다루고 있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고 있다. 대중들을 위해 무신론과의 논쟁을 통해 자기종교의 신앙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으로서는 이만한 책도 없을 것이다. 모쪼록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고 신앙의 단계가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글쓴이 / 이한영
 
미선 (12-09-10 22:13)
 
이런 책이 나와 있는 줄은 몰랐는데 최근에 발견한 것이다.
필자가 언급한 적 있듯이, 근본주의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유신론자도 있다.
근본주의자들의 특징은 설명력 확보에 있어 허술한 구멍이 발견되고 있음에도
끝까지 자기 입장을 절대화한다는 데에 있다.

이 책은 근본주의 무신론자에 대해 어느 가톨릭 신학자가 응답한 것인데,
들여다볼만한 좋은 내용들이 많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몇 가지 답변들은 좀 더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신정론의 경우는 유신론 중에서도 다양한 여러 신관을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이 이 세계 안의 악과 고통에 대해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점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주의적 유신론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피력되어 있진 못하다.
서평자가 잘 간파했듯이 몇몇 답변에는 아무래도 가톨릭 신학자로서의 한계가 아무래도 있는 것 같긴 하다.

그러나 근본주의 무신론을 비판하듯, 근본주의 기독교인에 대해서도 이책은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다.
또한 기존의 근본주의 무신론이 지닌 이론의 취약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 점도 이 책이 갖고 있는 미덕 중의 하나다.
종교 안티들의 주장이나 근본주의 무신론자들의 주장이
기존의 종교 근본주의자들보다는 조금 더 나을는지 모르나 그들의 주장 역시 여전히 일면적이다.

내가 볼 때 종교 안티들이나 근본주의 무신론자들이 종종 종교를 끊으라며
이를 자꾸 종용하는 것 역시 종교 집착의 한 변형으로도 여겨진다.
종교에 빠지느냐 끊느냐의 문제보다 어떤 종교냐의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예수의 종교, 민중신학이나 동학 같은 약자우선성의 종교 정신을 이어받는다면 무엇이 문제랴..

인간이 진화과정에 있듯이 종교는 완결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 종교적 존재라는 건 진화생물학적으로도 언급되고 있는 지경인데
마냥 해로우니까 끊으라고만 말하는 건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아니라고 본다.
 
예컨대, 장난감을 지닌 아이가 현재 몸에 해로운 장난감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그 장난감을 손에서 떼기만을 종용하기보다는 차라리 좀 더 나은 장난감을 쥐어주는 것이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더 좋은 효과를 맛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위의 서평자가 쓴 얘기와 동일한 입장이다.
참된 무신론은 신앙을 이해한다. 그리고 참된 신앙인은 무신론을 이해한다.
열린 무신론자라면 그 역시 새로운 견해들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리라고 본다.
진리는 절대 불변하기보다는 그것은 시공간적 제약을 통해 드러나는 최선의 입장 추구에 있다.

그렇기에 무신론자든 유신론자든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자기오류가능성의 여지를 항상 열어 놓는 열린 개방성을 지녀야만 하는 것이다.

호치민 (12-09-16 23:01)
 
윗 글에 올라와 있는 각 질문에 대한 서평(저자의 답변)은 그리 가슴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진짜 저자의 답변이 그러하다면 실망스러울뿐더러 정말 모호하고 애매하기 그지 없네요...질문을 참 7가지로 잘 정리해서 뽑아낸거에 비하면 말이죠.

미선 (12-09-16 23:53)
 
네에.. 제가 보기에도 저자의 답변은 좀 더 많은 질적 보완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평자가 지적했듯이 어쩌면 저자가 서 있는 가톨릭 입장(포용주의)의 한계 역시 무관하지 않을 걸로 봅니다. 다만 이러한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 자체는 앞으로도 더 많이 시도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회가 되면 진짜 한 자리에서 정정당당한 배틀토론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치노 (12-09-18 16:10)
 
저는 요새 정치의 안철수 현상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무신론과 유신론을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 도덕 등 형이상학에도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악이 존재하고 신이 악을 응징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신이 존재를 드러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지 않으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는 반대로, 오직 신앙의 대상이지 이성의 대상은 아니라는 등의 접근방식은 틀린 게 아닐까요? 교회나 사찰에 다니지 않는 일반인 중에도 항상 신을 의식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는 반면, 유일신을 믿는다면서도 실제로는 무신론인 사람이 제 주위에는 꽤 많습니다. 예를 들면, 빌딩을 청소하는 청소부 아줌마는 신을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신이 앞에 있는 듯 행동하고 일하는 현상을 많이 목격합니다.

    
미선 (12-09-19 13:16)
 
네..저도 동의하는 얘깁니다. 신을 믿는다면서도 세속적인 삶을 사는 분들도 많지요. 말로는 신을 믿는다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자본을 섬기는 사람도 있고 매우 다양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신은 있다'에 대한 증거도 아닐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신은 없다'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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