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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세기연 2월포럼 - 예수를 죽여온 기독교, 그 이천 년의 고독    
  글쓴이 : 정강길 날 짜 : 07-02-23 14:18 조회(7556)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2/13 




 
예수를 소외시킨 기독교, 그 이천 년의 고독을 아는가
 
[세기연 2월포럼] 김규항이 말하는 '기독교와 예수 그리고 현대사회'
 
 
 
강의 시작 전
 
전화가 왔다. 김규항 선생의 강의 때문에 국민일보 기자가 무려 2시간 전부터 미리 와 있다고. 김규항님의 강의를 보러 말이다. 아마도 이 기자분도 김규항님의 왕팬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또 한 분은 전라도 구례에서 세기연 포럼을 듣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신 분도 계셨다. 이 분은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이셨다. 단지 한 달에 한 번 하는 세기연 포럼 하나 들으려고 올라오셨다니 너무 송구하지 않을 수 없다.
 
세기연 포럼은 아직 홍보가 그렇게 많이 된 것도 아니었는데, 그래서 그다지 사람이 별로 없을 듯 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조금씩 사람들이 모였다. 김규항님의 예수전을 들으셨던 분들도 함께 참여하셔서, 이번엔 정말로 뜻하지 않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기사연 건물 4층을 메웠다. 비치된 비상의자마저 조금 모자랐을뻔 했을 정도였으니. 김규항님의 포스 혹은 카리스마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뜻밖에 나로선 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는데 김규항님이 약속시간 7시가 되어도 도착을 못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연인 즉, 파주에서 서대문으로 오면서 택시가 잘못된 순환도로를 타는 바람에 결국 지체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랴부랴 도착하신 김규항님은 안타깝게도 몸의 컨디션이 별로 좋진 않으신 듯 했다. 근래 한동안 앓아누웠는데 특히 기관지가 안좋다고 하셨다.
 
그런데도 준비하신 ‘기독교와 예수 그리고 현대사회’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이때 이번 강의 제목으로선 “이천 년의 고독”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다소 시적인 느낌이 들었다.
 
김규항님이 들려준 이야기
 
원래 예수는 '아버지 하나님'을 '엄마 하나님'으로 전환한 <인민의 그리스도>(‘인민’이란 표현은 원래 좋은 말임)였는데, 기독교가 제도화 조직화 되고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가진 자들 부르주아들의 신, 자본의 신이 되고 오늘날에도 역시 제국의 신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예수가 당시 사람들에게도 가장 자주 했던 말씀은 “왜 너희들은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느냐”라는 것이다. 당시로서도 그랬는데 오늘날에 오죽하랴만. 아마도 그래서 기독교는 오히려 예수를 소외시키는 <이천 년의 고독>이 진행되었나보다.
 
그러한 이천 년 기독교사상사에 획을 긋는 남미의 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 출현은 기독교 이해에 대한 탁월한 관점들을 제공해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종교 영역에 억눌린 자를 우선적으로 위하려는 당파성, 그리고 사회과학적 관점, 특히 계급과 지배체제 이해에 대한 중요성을 가져다 준 점이라고 할 수 있겠으며, 특히 한국의 민중신학은 7, 80년대에 기독교를 새롭게 보게 되는 매우 유용한 관점을 제시해주었지만, 이후에 현실 변화에 뒤쳐지면서 급속도로 약화되었다고 한다. 김규항님이 보는 한국 민중신학의 한계는, 민중신학이 유물론과 마르크스주의를 넘어서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고 하셨다.
 
이제 오늘날의 좌파들은 무대 뒤로 퇴장하게 되었고, 민주화 세력들은 신자유주의 세력이 되었으며, 좌파도 아닌 자유주의적 개혁론자가 좌파로서 인지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하였다. 정리를 해보면 다음과 같다.
 
수구우익은 아예 보수에도 낄 수 없는 자들인데도, 한국에서는 <수구우익>이 <보수>로 자리매김되어 있고, 노무현 정권 같은 자유주의 세력들이야말로 보수 세력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오히려 <좌파 진보>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진짜 좌파 진보는 이러한 역학구도에 있어서 아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의 정치사회는 기형적인 구도로 되어 있다는 거다.
 
김규항님은 그러면서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으로서 명망이 드높고 많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는 어느 한 분을 예로 들었다. 그는 실제로 좌파 진보라고 할 수 없음에도 우파와 좌파가 만나는 연대에선 마치 좌파측을 대변하는 듯한 역할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 예수의 이천 년의 고독을 들려주는 김규항님  ⓒ 크리티앙 
 
전세계사적으로도 21세기 인류는 신성(神性)을 상실했으며, 자본의 파시즘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피폐된 삶속에서 오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김규항님은 말하길, 예수는 마르크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예수는 여성, 아동에 대한 관심은 당시로선 상상조차 힘든 행태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이와 여성은 사람에도 낄 수 없는 그러한 존재로 인식되었던 사회였기 때문이다. 예수의 이러한 삶은 당연히 그 제자들조차도 이해치 못한 것이었다.
 
예수의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도 오늘 우리가 맛있는 밥과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다는 게 죄악이 될 수 있을 만큼 매우 급진적인 말씀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네 이웃에는 한국에만도 수십만이 결식아동이 있고 그러한데 어떻게 그렇게 먹을 수 있냐는 것이다.
 
또한 김규항님은 마르크스의 실패원인이 결국은 사람의 <가치관 전환>을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었다. 회개(메타노이아)는 <가치관 전복>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 민중 혁명 참여 댓가로서 다시 호화로운 별장에 살아선 안될 뿐더러 오히려 자발적 가난으로서 나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것들을 부여 받는다 것은 분명한 가치관의 부재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유물론적 사태를 전제할 경우 마르크스에게서 가치관 전환을 이끌어내기란 매우 불가능하다. 그것은 존재를 볼 때 물질과 정신으로서 총체적으로 볼 때만이 가능한 지평이 아닐까 싶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할까? 김규항님은 말하길, 적어도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삶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하며, 지금은 또한 신자유주의를 거부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노동자들마저도 자신의 자녀에게는 결국 노동의 천시를 가르쳐주고 있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식의 정치가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섬김>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저 낮고 겸손한 태도로서의 의미라기보다 실제로 예수가 말하는 섬김은 가장 낮은 밑바닥 사람들을 위한 끝없는 연대라는 것이다.
 
예수는 그러다가 사형당한 정치범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운동이 당시 로마 제국 하에서조차 위험시되리만큼 불순한 선동가로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앞서 언급했던 유명 시민단체 활동가를 바리사이로 비유하면서 그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경을 받고 있지만, 반면에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 기독교는 9할 이상이 단지 '교회'라는 형태를 가장한 <가게들>이고, 좀더 큰 대형교회들은 <기업들>이라고 지적한다. 한국교회가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 하고 끌어 모으려는 기업정신은 아주 투철하다는 것이다. 결국 김규항님은 이제 우리는 세상이 우선시 하는 가치들과 거꾸로 살아가려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즉, 세상이 소외시키고 버리는 천시된 가치들을 더욱 우선시하는 그러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딸이 공부 잘해서 오히려 더 걱정이 될 수 있는..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는 공부 잘해서 똑똑한 놈들치고 제대로 된 놈들 하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딸이 공부를 잘하면 오히려 더 걱정이 돈다고 말하는 어느 한 부녀의 얘기를 사례로 들려주었다.
 
미디어가 신으로서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있어서도 오늘날 진정한 소리를 발하는 미디어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사례로 <참세상>을 소개해주기도 하였다. 삶의 소외된 가치들을 더욱 우선시하고 잘 보여주고 있는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러한 방식의 삶이야말로 예수의 삶을 자기 몸에 체질화하는 것이며, 결국은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강의를 듣고 나서
 
평소 김규항님을 아주 가까이서 뵙게 되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2년 전쯤인가. 정의평화기독인연대에서 주최했던 <평신도아카데미>에서 강연할 때 김규항님께 질문을 던진 바 있었는데, 그때의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 이번 세기연 포럼에서의 강의는 아주 깔끔하고 좋았었다. 녹음을 하지 못했던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의 내용 중에서 특별히 흥미로웠던 것은 예수와 바리사이파와 갈등을 오늘날 민중운동과 시민운동 사이의 갈등과 빗대어 표현한 점이었다. 바리사이파들은 당시 인민을 배제하고 율법이라는 권위로서 군림한 자들이지만, 오늘날의 시민운동가들이 꼭 그런 것인가? 생각건대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은 맥을 달리하면서도 다소 중첩되는 측면도 없잖아 있다고 보기에 오히려 예수와 바리사이파 간의 갈등만큼 첨예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암튼 나로선 이 부분에 대해선 좀더 궁금한 부분이 남아 있다.
 
또한 김규항님은 현재 출판일을 하고 있는데 그 <고래가 그랬어>의 관심이 강의가 끝난 후에 나왔었다. <고래가 그랬어>는 어린이나 중학생까지의 자녀를 둔 사람에게는 더욱 유용한 어린이 월간지다. 즉, 세상이 다들 쫓아가는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오히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이 소외시키고 왕따 시키는 가치들을 더욱 우선시하는 관점들을 제공하는, 그것도 매우 재밌는 만화로서 소개하는 탁월한 어린이 월간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초등학교 자녀를 두 명이나 두고 있는 김규항님은 어린이 교육에 관심이 참 많았었다.
 
그리고 세기연에 대해서도 조금 염려를 해주었다. 즉, 우리 사회에는 운동은 하지 않고 그냥 연구만 하고 규명만 하는 그런 인텔리들도 많은데 그런 것은 그저 <인텔리들의 놀이>일 뿐이라는 한계를 지적하였다. 그럴 경우 세기연 같은 높은 수준의 모임도 결국 그러한 사유 놀이로만 전락될 위험이 있지 않냐고 하시길래, 그래서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결국은 연구된 이론과 실천적 적용 둘 다를 해야 한다고 보는 단체라고 말씀드렸다.
 
애초 세기연을 ‘연구소’라고 하려다가 ‘연대’로 바꾼 이유도 실은 그러한 맥락에 있었다. 하지만 세기연은 이름은 거창하게 보일 진 몰라도 거창하게 나가려는 게 아니라 예수의 삶을 자신의 일상적 삶 속에서 수행하려는 작은 소모임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제 걸음마를 하는 단계일 뿐. 계속 지켜봐달라고 얘기하면서 김규항님과도 교류 관계를 계속 함께 하기로 하였다.
 
어쨌든 모든 것은 결국 삶 속에서 녹아들지 않으면 안되었기에 김규항님의 염려 역시 충분히 인지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의 경우는 아예 신학 목회자 정규코스를 이탈하고 나왔었고 당시로선 쉽지 않은 결정을 했던 거였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느 교회 촉망받는 부목사로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인데 말이다.
 
이날 뒷풀이 자리에서는 김규항님의 <예수전>을 듣는 분들과 즐겁게 만남을 가졌다. 다들 좋은 분들이었고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개척해나가려는 분들로 여겨졌다. 그리고 전라도 구례에서 세기연 포럼을 오셨다는 목사님은 다시 밤차를 타고 내려가셨다. 예사롭지 않은 목사님이신 듯 했다. 그래서 이 분과도 연대를 같이 하기로 하였다.
 
이천 년의 고독을 들려주신 김규항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래서인지 모자를 눌러쓰신 모습이 웬지 고독하게 보이기도 하였다. 다음 세기연 3월포럼에는 진보운동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김민웅 선생님을 모시고 <미국과 국제관계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얘기와 논의를 하게 된다. 
 
앞으로도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를 지향하는 세기연 포럼에 많은 관심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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