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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세기연 6월 워크샵 발제문 - 제국과 대안기독교 운동 (간사 최기현)    
  글쓴이 : 마루치 날 짜 : 08-07-04 01:40 조회(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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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E #1 : 세기연워크샵발제문.hwp (24.5K), Down:24, 2008-07-05 10:39:46




  

<2008년 6월 27일, 세기연 워크샵 발제문>

 

 


제국과 대안 기독교운동

 
 


                                                                         간 사    최기현(마루치)

 
 
 
 
 
 

 

1. 이명박 정권과 제국


2008년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는 다양한 참여자와 의제들의 확장으로 6월 중순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소 수입관련으로 시작된 의제는 공기업과 의료보험의 민영화, 공교육의 사교육화 등으로 확장되었는데, 주목할 만 한 점은 처음 미국 소 수입관련 협상이 이뤄지고 나서, 처음 집회를 시작하고 이제는 다수로서 참여하는 이들이 기존의 사회운동세력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 이었다는 것이다.


보수나 진보적인 정치성향을 떠나 사회운동에서 운동 자체에는 소극적인 이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든 계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이번 쇠고기 협상이 자신들의 밥상, 먹거리와 직결된다는 문제인식이었다. 의료보험과 공기업의 민영화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정책이나 거대담론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인식은, 앞으로 그러한 자신들의 일상의 영역을 파고들고 있는 정책의 발생적 배경과 주체, 그리고 그 주체의 성격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1997년 IMF하 경제체제하에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이뤄진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변화로 비정규직은, 오늘 날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20대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단어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의 20대는 중고등학교 시절 IMF체제를 겪으며 자신들의 가정이 겪은 경제적 위기와 아버지의 실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혹자는 최근에 있었던 총선을 분석하며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하는데 그 말이 일리가 있다면, 경제적 위기를 가정에서 보고 느낀 이들이 겪고 있는 오늘날의 청년실업과 비정규직에서 비롯되는 고용불안 그에 따른 미래에 불확실성도 1997년과 더불어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20대에게 한국사회와 미디어는 개별적인 경쟁을 통해 안정적인 생활과 부를 축적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학습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에 참여하고 뛰어 든 대부분의 20대는 ‘소수들의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88만원 세대로 남아있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혹은 지배 받게 될 의료보험 ․ 공기업 민영화, 비정규직, 한미 FTA 등은 자본의 이윤 극대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논리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논리가 현실화 되는 과정에서 대표적인 주체로 참여하게 되는 개별국가와 국가 연합체중 한국사회는 미국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미국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들에게 자본력과 힘의 논리로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를 세계 전역에 넓혀 나가고 있다. 이러한 미국을 앞으로 제국이라 칭한다면, 그 제국은 이제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의 식탁위에까지 자신이 갖고 있는 탐욕적이고 비도덕적인 제국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치적 집권층과 기득권 세력은 제국의 대리자처럼 제국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를 관철시켜내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득권 세력으로 이 사회의 감시자와 공기(空器)를 담당해야할 주류언론은 이러한 제국에 반하여 자신들과 공동체를 지켜나가려는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하며, 제국의 논리에 대변자로 자임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기독교의 대형교회와 보수적인 주류세력은 이러한 제국의 논리에 침묵을 넘어 대항하는 시민들(촛불집회 참여자나 지지자와 같은)을 반국가세력 혹은 사탄의 무리라고 칭하며 동조하고 있다.

   

집권세력과 기득권층이 제국의 이해와 논리를 대변하고 실행하며 오늘날 한국사회라는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면, 그리고 그 공동체가 제국과 대리(代理)자들에 의해 사회적 양극화와 해체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붕괴해나가고 있다면, 이러한 현실을 반(半)식민지 상태 혹은 그러한 과정에 있다고 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더불어 지금과 같은 공동체의 현실에서 주류 한국교회는 한국사회라는 공동체에게 함께 대안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기대조차 받지 못하고 이미 반(反)공동체적 세력으로 윤리적인 정당성까지 잃어가고 있으며, 일부 주류 목회자들과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서울 시청광장에서 제국의 깃발을 흔들며 제국의 이해와 이익에 한국교회의 대리자로 동조하고 있다. 그들이 믿고 있는 예수와 미국 네오콘 행정부의 기독교인들이 믿는 예수는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개인의 구원과 지혜교사, 내세적 영혼의 구원자, 탈정치적으로만 한정된 혹은 그려진 예수는 그들 교회의 거룩한 십자가에서 피만 흘리고 있거나 하느님의 우편에 앉아서 무력하게 그들을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예수는 정말 그리스도일까? 그들의 예수와 이천년 전 예수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 


2. 예수와 제국


먼저 리처드 호슬리의 『예수와 제국』1)을 중점으로 예수활동 당시의 이스라엘 역사 상황과 예수의 활동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예수 현존 전 ․ 후에 이스라엘에는 다양한 저항과 반란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기원전 40년 로마의 원로원에 의해 “유다인들의 왕”으로 임명된 헤로데가 기원전 40년 로마 군대의 도움을 받아 그의 영토를 정복하러 왔을 때, 유다인들과 갈릴래아인들은 그에 맞서서 게릴라 전투를 반복했으며, 기원전 4년에는 헤로데의 강권적인 통치가 끝나자, 예루살렘 주민들은 주변의 마을들에서 온 유월절 순례자들과 힘을 합쳐 지속적인 시위를 벌였으며, 지방에서는 반란을 일으켰다. 예수 사후에는 팔레스타인에서 수십 년 동안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유다인들과 로마인들 사이에 정치적 긴장이 고조된 후, 기원후 66년 여름 예루살렘에서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으며 예루살렘 주민들은 지도적인 대제사장들과 그들의 대저택을 공격했다.2)


이러한 저항과 반란은 로마제국을 향한 것이었는데, 로마는 자신들의 군사력으로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재정복하면서 계속해서 그 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집들과 마을들을 불태웠는데, 특별히 나사렛과 가파르나움 같이 예수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마을들에서 그랬다. 로마인들은 헤로데 가문의 왕들과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을 자신들의 속국 지배자로 임명하여

그들 모두가 그 지역을 지배하면서, 예루살렘, 셉포리스, 티베리아스 등의 재건된 도시 혹은 완전히 새로 건설된 도시들에서 점차 무절제한 생활방식을 펼쳐나가고 있었다. 로마인들이 유다인들과 갈릴래아인들에게 저지른 군사적인 충격과 더불어 그들이 부과한 제국적 질서는 지배자들이 여러 층이 되었다는 점과, 가난한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바쳐왔던 성전의 제사장들을 위한 십일조와 헌물에 덧붙여, 조공과 세금을 요구받게 되었다는 것을 뜻했다. 서방의 제국적 지배와 속국의 지배자들이 팔레스타인을 보다 큰 로마의 제국적 경제 속에 통합시키려 한 결과, 갈릴래아인들과 유다인들, 즉 이스라엘 백성의 전통적 생활방식이 그 존속을 심각하게 위협 당하게 되었다.3) 이러한 상황에서 대제세장들의 성전은 기원후 70년에 성전이 파괴될 때 까지, 유다 사회 전체의 종교적 지배세력이었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지배세력이었으며, 제국의 질서에서 핵심적인 기관으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4)


예수 시대에 유다와 갈릴래아를 지배한 속국 왕들과 대제사장들은 중동지역에 새로 확립된 로마제국 질서에서 절대로 필요한 부분이었다. 반란에 대한 보복으로 때때로 벌어진 학살, 노예로 잡아가는 일, 십자가 처형, 그리고 유월절 기간 동안에 로마 총독의 군대가 성전의 주랑 현관에 배치되는 일 등을 제외하고는, 갈릴래아인들과 유다인들에게 겉으로 나타난 로마의 얼굴은 헤로데 가문의 왕들과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의 얼굴뿐이었다.5) 그리고 그들은 제국의 대리통치자로서 충실히 역할을 담당해내며 이스라엘 공동체를 지배해나고 있었다.


로마의 군사력은 제국의 지배계층을 위한 “평화의 번영”의 “신세계 질서”를 확립했을 것이며, 각 지방에서 물자를 뺏어옴으로써 제국의 도시를 이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팍스 로마나의 이면에는 피지배자들의 참상과 무질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갈릴래아인들과 유다인들은 새로운 제국적 질서에 저항했던 탓에 학살당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그들의 집과 마을들이 파괴되었다. 6) 팔레스타인에 여러 층의 지배자들이 생김으로써 경제적 착취가 가중되었고, 이런 구조속에서 제국주의는 사회질서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복음서들은 사람들이 빚에 쪼들리고 굶주렸으며, 육체적 및 사회적 무능력에 시달리고 기록하며 당시 상황이 일반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였음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외국의 악마와 같은 세력들(“더러운 귀신들”)에 사로잡혀 자기파괴적인 행동들로 내몰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근본적인 사회 형태들인 가정과 마을 공동체마저 로마의 제국적 질서의 압력을 받아 해체되고 있었다. 이러한 제국의 지배 상황 속에서 예수의 하느님나라 운동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어떠한 의미였는지 제국주의에 대한 예수의 치유행위에서 살펴보자.


예수는 첫째, 악마의 세력, 즉 로마의 제국주의로 밝혀진 세력을 드러내고 추방하며 심지어 격퇴시키는데 가장 근본적이며 현상적인 차원에서 그런 외국의 세력에 사로잡힌 사람은 폭력적이며 반사회적이며 자기 파괴적인 활동을 보인다(마르코 5:2-5; 9:18). 예수가 마르코 복음에서 그 악령(그 이름은 “군대)을 추방하자 그 백성들을 “사로잡고 있는”것이 실제로는 로마인들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되었으며, 이런 사실은 예수의 악령추출이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그 백성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행동임을 뜻한다.


둘째, 악령추출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치유사역들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자비를 베푼 개별적 행동들이 아니라, 개인적 및 사회적 치유라는 좀 더 큰 프로그램의 일부로서 치유 이야기들과 그에 관한 메시지들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구전으로 낭송되고 청중들의 심금을 울리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뿌리 내려 공동체의 청중들의 사회적 “몸”을 계속해서 “치유”한 이야기들이다.7) 한 예로 12년 동안 하혈증을 앓던 여인과 거의 죽게 되었던 열 두 살 난 소녀는 이스라엘 백성들, 즉 상징적으로 열 두 지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국의 지배와 그 영향 때문에 짓밟히고, 거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 속에 살아가는 그들에게 예수는 희망을 보여주고 또한 불어넣어 주었다. 가난과 굶주림 때문에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예수는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기뻐하게 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전통을 물려받은 갈릴래아인들과 그 밖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받는 것이 자신의 부모들이나 자신들이 계약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그를 지붕에서 내려 보내자 예수는 그의 마비를 치유하면서,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마르코2:1-9)고 선언함으로써, 이제까지 사람들의 생명력이 그들의 내부로 향해 스스로를 비난하고 마비상태로 만들었던 그 생명력의 기를 뚫어 자유롭게 흐르도록 풀어주었다.


넷째, 예수는 이스라엘의 사회적인 해체를 막는 데에도 노력하였는데 한 예로, 여성차별적인 이혼법(신24:1-4에 근거한)을 부자들이 이혼과 재혼을 통해 그들의 토지를 합병하는데 유용하게 활용하였다. 또한 이러한 남성위주의 이혼 규정은 경제 수단을 장악하고 있던 남성들 중심의 이스라엘 땅에서 이혼 당한 여인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법이란 극히 제한되있는 상황으로 내몰았다. 따라서 이혼당한 여성은 자선에 기대는 거지가 되거나, 돌에 맞아 죽기 십상인 창녀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재혼을 해야 했고, 이는 전적으로 재혼을 허락하는 전남편의 이혼장이 있어야만 가능했다.8) 이러한 이혼법은 여성만이 아니라 많은 빚을 진 가족들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으로도 사용되어, 이로 인해 가족들을 더욱 해체시키게 되었다. 이에 대해 예수는 남편과 아내의 연대에 관한 창조이야기에 호소하여 이혼과 재혼을 금지시킴으로써, 혼인의 유대 가족이라는 관계가 가족이라는 사회적 형태의 근본적인 핵심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외에도 예수가 회당이 아닌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선교를 행한 일, 제자들의 자리요구에 숨겨져 있던 제국주의 세계관을 타파하고 공동체 운영을 지배에서 섬김이라는 가치로 환원 시킨 일 등도 당시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상황과 관련하여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9)


예수에게서 사랑은 감정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것을 넘어, 개별 마을 공동체들의 구체적인 경제적 실천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예를 들면, 부채를 탕감하고 자원을 서로 관대하게 나누어 쓰는 것을 가리킨다. 예수의 프로그램에서, 또한 그 배후에 깔린 모세계약의 전통에서는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다는 훨씬 더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이나 강조가 없었으며, 경제적 자원에 대한 주장과 사용에서 훨씬 더 공공성의 의식이 강했다. 그뿐 아니라, 사유재산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근본적인 경제적 권리, 즉 생존의 권리를 지녔다는 믿음과 그 실천으로 이어졌다. “사랑하는 일” 혹은 다른 사람의 경제적 권리를 옹호하는 일은 심지어 사회적 갈등이 날카로운 상황에서조차, 관대함과 협동, 자원을 서로 나누는 것을 요청한다. 이러한 예수의 활동과 더불어 바울은 그리스인과(유대인을 포함한) 야만인들 사이에, 자유인과 노예들 사이에,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에 보다 평등주의적인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지역 공동체를 제안한다. 호슬리는 바울의 이러한 활동들에 대하여 지역공동체에 기초한 대안적 사회(alternative society)를 형성함으로써 국제적인 반제국주의 운동(an international anti-imperial movement)을 형성하였다고 말한다.10)



3. 대조사회로서의 교회(혹은 예수공동체)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그의 저서『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서 교회의 역할을 하르낙의 종교적 개인주의 혹은 주관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대조사회 혹은 대척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파악하는데 이는 예수의 가르침의 대상이 일반적인 이스라엘 국가나 개인이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성서에서는 하느님 백성을 대조사회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며, 그 예로 하느님이 백성이란 가령 솔론몬 시대나 하스모네아 시대에 구축된 민족상과는 다르며 이스라엘 국가를 뜻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적한 벽지에서 구원을 대망하는 영적 공동체만도 아니며 온 실존으로 - 따라서 온 사회적 차원에서도 - 하느님의 선택과 소명을 의식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상의 다른 모든 백성과 구별되어야할 이스라엘이라고 말한다. 11)


이러한 조금 더 구체화된 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에 관하여 로핑크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몇 가지 예수공동체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예를 들면 섬김, 새가족(하나님의 일을 행하며 형성되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서), 비폭력 저항, 지향윤리와 대비되는 실천적 특성 즉 행함, 그리고 상호간의 협력, 보복과 지배구조가 존재하지 않고 모두가 주체가 되는 운영방식, 에클레시아로서 갖는 정치적 성격으로서의 민중공동체, 계급적 ․ 종교적 ․ 사회적 차별과 구분이 없는 ‘공동 연대’, 화합, 형제애, 연대의식 등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공동체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며 드넓게 빛을 비추는 도시이다.12) 나아가 로핑크는 교회가 사회의 소금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바깥에서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세계를 개혁하는 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더없이 큰 봉사는 아주 간단히 ; 교회가 참으로 교회가 되는 그것이다”13)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예수공동체의 특성들은 제국주의 질서와 논리에도 대조되어 있다.


4. 세계의 변혁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제국주의의 질서가 한국사회 안에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오늘날, 교리화 된 예수 상에 얽매여 제국의 질서에 침묵 내지 동조하고 있는 한국 교회에게 역사적 예수는 교회 밖에 혹은 한국사회라는 공동체 밖에 머물러 있다. 종교가 정치 및 경제와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 공동체보다 개인적 구원에 치우쳐 있는 예수 이해, 개별적 경구로서 지혜 교사로만 머물러 있는 예수 이해 등에서 예수현존 당시의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이해와 함께 하는 역사적 예수 탐구는 ‘대조사회(혹은 대척사회)’ 서의 예수공동체의 역할의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꺼라 생각한다.


나아가 세계의 변혁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작용하는 한국교회의 영향14)과 한국교회의 반反사회적 형태의 작용하는 내부 세계관, 가치, 근본교리(특히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들에 대한 지속적인 분석과 비판적인 ‘행함’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대안기독교 운동은 단순한 제도적 교회개혁운동을 넘어, 교회 안에 본질적 작동기제인 기존 기독교의 신앙의 ‘대상’들에 대한 개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 생각하며, 이러한 운동(특히 기초전제로서의 현실적 관계론)은 한국사회에 만연에 있는 제국의 논리의 반反하여 예수공동체를 포함하며 넘어서는 하느님나라, 즉 이 세계에 대한 변혁으로서의 대안사회로 나아가는데도 좋은 지향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 살자!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 공생해야 한다.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바로 이를 위해서 판을 다시 짜야 한다.”15)



 
 
 
 
 
 
 
 


<참 고>16)


21세기 새롭고 건강한 기독교 변혁을 위한 패러다임 대전환


※ 기초전제 - 관념적 이원론에서 <현실적 관계론>으로


①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에서 <깨달음의 기독교>로

② 문자적 성서해석에서 <사건적 성서해석>으로

③ 초월적 유신론에서 <포월적 유신론>으로


④ 교리적 예수에서 <역사적 예수>로

⑤ 이웃종교에 배타적인 기독교에서 <함께 가는 기독교>로

⑥ 가부장적 기독교에서 <상호평등의 기독교>로


⑦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⑧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⑨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⑩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⑪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⑫ 저 세상이 아닌 <지금 여기서부터의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참고문헌>

 

1. 정강길, 『미래에서 온 기독교』, 에클레시안, 2007

2. 리처드 호슬리,『예수와 제국』, 한국기독교연구소, 2004

3. 게르하르트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 2001

4. 박태식,『예수와 교회』, 우리신학연구소, 2001

5. 김민웅, 강의자료, “제국의 폭력에 맞서는 해방을 위한 신학-기독교 정치 윤리적 접근”, 2008

 

 

 

 

 

 

 

 

 

 

 

 

 

 
지난 6월에 세기연 워크샵에서 발표한 발제문입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에서 신학과 NGO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급하게 준비하고 아직 학부생이라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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