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아이디    비밀번호
   자동로그인     
  현재 총 137명 접속중입니다. (회원 1 명 / 손님 136 명)     최신게시글    성경검색   
자유토론광장
문화 예술 Cafe
생활 나눔 Cafe
책과 이야기
Sayings
한 줄 인사


  방문객 접속현황
오늘 661
어제 860
최대 10,145
전체 2,270,492



    제 목 : 현대 복음주의 진영이 그토록 애호하는 로잔 선언문의 모순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01-29 06:06 조회(4704)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f005/228 




 
흔히 로잔 선언은 현대 복음주의 진영의 기독교인들이 매우 좋아하는 선언에 속한다.
자기들딴에는 나름대로 열려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로잔 선언은 1974년 스위스 로잔에서
150여국가로부터 모였던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서 나온 것이다. 
글의 초안은 세계적인 복음주의자 존 스토트가 작성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의 글은 로잔 선언의 전문인데 이 선언은 보수적 신앙에다 사회참여를 끼워놓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성프란스시코가 지닌 모순과 마찬가지로 이또한 완벽하게 모순적인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의 성경관만큼이나 멍청한 성서무오설의 성경관이 올라와 있으며
예수의 유일회성 강조와 일반계시의 구원 기능 제거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참여를 한다?
 
이들의 사회참여는 결국 복음 전파의 수단에 불과하다. 물론 로잔 선언을 애호가들은 아니라고 할 진 모르나
내가 볼 땐 예수의 유일회성을 명시하고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나누어 일반계시를 무시하는 한
그 같은 결과는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만일 선교 대상 지역이 평화로운 불교 공동체라면 어떡할 것인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그들 역시 여전히 구원의 대상일 뿐이다.
 
특히 로잔 선언의 성서무오설 명시는 이 선언의 근원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생각된다.
분명히 말하지만, 교회가 새로운 기독교의 성서신학에서 말하는 성서오류설로의 전환이 없는 한
성서무오설은 여전히 성서에 기록된 사건들을 초자연주의적 사건으로 볼 것이며
그것을 사실로서 여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선언처럼 존 스토트의 할배가 온다고 해도
아무리 날고기어봐야 성서무오설을 명시하는 한 근본주의로 회귀될 가능성은 언제나 잠복되어 있는 것이다.
 
즉, 제아무리 설레발 치는 복음주의자들이라고 하더라도 혹은 진보 기독교이든 그 어떤 기독교이든 간에
아래의 다섯 가지 사항에 대한 명시적인 거부와 대안이 없다면
결국은 여전한 낡은 기독교일 뿐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바이다.
 
1. 성서무오설
2. 동정녀 탄생설
3. 죄사함의 피 대속설
4. 예수의 육체적 부활설
5. 예수 재림설
 
이 교리들은 내가 보기엔 기독교 복음으로 둔갑된 <사탄의 교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예수의 기독교를 좀먹는 잘못된 신념 체계이기에!
저걸 버려야 기독교가 제대로 살 기회가 온다.
 
 
...............................................
 
 
 
로잔 선언문
 
 
출처 : http://www.missionchrist21st.com/Losannedecleration.php
 
 

머리말 (Introduction)
로잔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150여개국으로부터 모여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은 크신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자신과의 교제와 우리들 상호간에 교제를 가지게 하심을 기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에 행하시는 일에 깊은 감동을 받으며 우리가 저질러온 갖가지의 실패를 통회하고 아직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복음화의 과업에 도전을 받는다. 우리는 복음이 온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임을 믿으며 이 복음을 온 인류에게 선포하여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 분부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할 것을 그의 은혜로 결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에게 이 신앙과 이 결단을 확인하고 우리의 이 언약의 공포하려 한다.

하나님의 목적 (The purpose of God)
우리는 세계의 창조자이시며 주되신 영원한 한분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한다. 하나님은 그의 뜻의 목적에 따라 만물을 통치하신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한 백성을 불러내시며 다시금 그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시어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의 건설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그 부름받은 백성들을 그의 종들과 증인이 되게 하신다.
우리는 왕왕 세상과 동화되든가 혹은 절연됨으로 우리의 소명을 부인하고 우리의 선교 사명에 실패하였음을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고백한다. 그러나 복음은 비록 질그릇에 담겼을지라도 귀중한 보화임을 기뻐하며 이 보화를 성령의 능력으로 널리 알게 하는 과업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하려고 한다.
(사40:28, 마28:19, 엡1:11, 행15:14, 요17:6, 18, 엡4:12, 고전5:10, 롬12:2, 고후4:7)

성경의 권위와 능력 (The authority and power of the Bible)
우리는 신구약성경이 하나님에 의하여 영감되었음과 그 참됨과 권위를 믿는다. 성경은 그 전체에 있어서 하나님의 유일한 기록된 말씀으로서 그 모든 가르치는 바에 있어서 착오가 없으며, 신앙과 행위에 대하여 유일의 정확 무오한 법칙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그의 구원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성경말씀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는 불변하기 때문이다. 그 계시를 통하여 성령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성령은 어느 문화 속에 있든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깨우치사 이 진리를 그들의 눈으로 친히 새롭게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모양의 지혜를 온 교회에 더욱더 풍성하게 나타내신다.
(딤후3:16, 벧후1:21, 요10:35, 사55:11, 고전1:21, 롬1:16, 마5:17, , 18, 유3, 엡1:17, 8,, 3:10, 18)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the uniqueness and universality of Christ)
우리는 전도의 방법은 여러 가지이나 구주도 오직 한분이요 복음도 오직 하나임을 확인한다. 우리는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에 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이 이 것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그의 불의로써 진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여하한 형태의 혼합주의와 그리스도께서 어떤 종교나 어떤 이데올로기를 통해서도 똑같이 말씀하신다는 뜻에서 진행된 대화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손상시키므로 이를 거부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하신 신인(神人)으로서 죄인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로서 자신을 주시었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의 중보자이시다. 예수의 이름 외에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이름은 없다. 죄로 인하여모든 사람이 멸망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어 한 사람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가 회개할 것을 원하신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자는 구원의 기쁨을 거부하며 스스로 정죄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떠난다.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한다 해서, 반드시 모든 사람이 자동적으로 혹은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되는 것은 아니며 더구나 모든 종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제공한다고 보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예수를 "세계의 구주"로 전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죄인들의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한 회개와 신앙에 의한 인격적 헌신으로 예수를 구주로 맞이하도록 모든 사람을 초대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이름위에 높임을 받아 왔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그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모든 입이 그를 주로서 고백하게 되는 날을 간절히 고대한다.
(갈1: 6-9, 롬1:8-32, 딤전2:5, 6, 행4:12, 요3:16-19, 벧후3:9. 살후1:7-9, 요4:42, 마11:28, 엡1:20, 21, 빌2:9 -11)

전도의 본질 (The nature of evangelism)
전도한다는 것은 기쁜 소식을 널리 퍼뜨리는 것인데, 기쁜 소식이라 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죽은 자로부터 다시 살아나시어 통치하시는 주로서 그는 지금도 회개하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사죄와 성령의 자유케 하시는 은사를 공급하신다는 것이다. 전도에 있어서 세계 속의 그리스도인의 현존은 불가결한 것이며, 또한 이해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도 없는 수는 없다. 그러나 전도 그 자체는 역사적 성서적 그리스도를 구주요 주로서 선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에게 개인적으로 와서 하나님과 화목함을 얻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복음의 초대를 함에 있어 제자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일을 감출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의 새 공동체에 속하였음을 분명히 하도록 부르신다. 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께의 순종, 그의 교회와의 협력, 세상 안에서의 책임있는 봉사를 포함한다.
(고전 15:3, 4, 행2:32 -39, 요20:21, 고전1:23, 고후4:5, 5:11, 20, 눅14:25-33, 막8:34, 행2:40, 478, 막
10:43-45)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Christian social responsibility)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의 창조자이신 동시에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사회 어디서나 정의와 화해를 구현하시고 인간을 모든 종류의 압박에서 해방시키려는 하나님의 권념에 참여하여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인종, 종교, 피부빛,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없이 모든 사람이 타고난 존엄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은 서로 존경받고 섬김을 받아야 하며 누구나 착취당해서는 안된다. 이 점을 우리는 등한시하여 왔고, 또는 왕왕 전도와 사회 참여가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한데 대하여 참회한다. 사람과의 화해가 곧 하나님과의 화해가 아니며, 사회 행동이 곧 전도는 아니며, 정치적 해방이 곧 구원은 아닐지라도, 전도와 사회-정치적 참여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의 두가지 부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는 다같이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우리의 교리, 우리 이웃을 위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필수적 표현들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메시지는 모든 종류의 소외와 압박과 차별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를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과 부정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것을 공박하는 일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그의 나라에 다시 태어난다(중생함을 받는다). 따라서 그들은 불의한 세상 속에서도 그 나라의 의를 나타낼 뿐만 아니라 전파하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구원은 우리의 개인적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총체적으로 수행하도록 우리를 변화시켜는 것이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행17:26, 31, 창18:35, 사1:17, 시465:7, 창1:26, 27, 약3:9, 레19:18, 눅6:27, 35, 약2:14-26, 요3:3, 5, 마5:20, 6:33, 고후3:18, 약2:20)

교회와 전도 (The church and evangelism)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는 그의 구속받은 백성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을 우리는 확인한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이 세상으로 깊고도 희생적인 침투를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의 교회적 "울타리"를 트고 넘어서 비기독교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희생적으로 해야 할 일 가운데 전도는 최우선적인 것이다.
세계 전도는 전체 교회로 하여금 전체 복음을 전세계에 전파함을 요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우주적 목적을 바로 중심에 서 있으며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그가 지정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십자가를 설교하는 교회는 스스로 십자가의 흔적을 지녀야 한다.
교회가 만일 복음을 배반하든가, 하나님을 향한 산 믿음이 없다든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든가, 사업 추진과 재정 등 모든 일에 있어서의 철저한 정직성이 결여될 때 교회는 오히려 전도의 장애물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어떤 특정한 문화적 사회적 또는 정치적 체제들이나 인간의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되어서는 안된다.
(요17:18, 20:21, 마28:19, 20, 행1:8, 20:27, 엡1:9, 10, 3:9-11, 갈6:14, 17, 고후 6:3,4, 딤후2:19-21, 빌1:27)

전도를 위한 협력 (Cooperation in evangelism)
교회가 진리 안에서 가견적 일체성을 이룩하는 일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우리는 확인한다. 전도는 또한 우리를 하나가 되도록 부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불일치가 우리가 전하는 화해의 복음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처럼 우리의 하나됨은 우리의 증거를 더욱 힘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적 일치가 여러 가지 모양을 띨 수가 있고 또 그것이 반드시 전도를 증진시키는 것이 아니란 것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서적 신앙을 함께하는 우리들은 교제와 일과 증거에 있어서 긴밀하게 일치 단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의 증거가 때로는 죄악된 개인주의와 불필요한 중첩으로 인하여 저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는 진리와 에배와 거룩함과 선교에 있어서 좀더 깊은 일치를 추구할 것을 약속한다. 교회의 선교를 촉진하기 위해서, 전략적 계획을 위해서, 상호간의 격려를 위해서 그리고 자원과 경험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 지역적이며 기능적인 협력을 발전시킬 것을 우리는 촉구한다.
(요13:35, 17:21, 23, 엡4: 3, 4, 빌1: 27요17:11-23)

전도와 문화 (Evangelism and culture)
세계 전도 전략의 개발에는 대담한 개척적 방법이 요청된다. 하나님 아래서 세계 전도의 결과로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 박히고 동시에 각각의 문화에 밀접히 관련된 여러 교회들이 일어날 것이다. 문화는 항상 성경을 표준으로 해서 검토되고 판단받아야 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인고로 인간 문화의 어떤 것은 대단히 아름답고 선하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그 전부가 죄로 물들었고 어떤 것은 악마적이다. 복음은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복음은 모든 문화를 그 자체의 진리와 정의를 표준으로 해서 평가하고 모든 문화에 있어서 도덕적 절대성을 주장한다.
선교는 이제까지 복음과 함께 이질적 문화를 수술하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하여 교회는 왕왕 성경에 매이기보다 문화에 매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스도의 전도자는 겸손하게 자기를 전체로서 비어버리기를 힘써야 한다. 다만 그의 인격의 가장 진정한 것만 남겨 가져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문화는 문화를 변형(변혁)시키고 풍요하게 만들기에 힘쓰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만 한다.
(막7:8,9,13, 창:21, 22, 고전 9:19-23, 빌2:5-7, 고후4:5)

자유와 핍박 (Freedom and persecution)
모든 정부는 교회가 간섭하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주 그리스도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하도록 평화와 정의와 자유의 상태를 보장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있다 .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하나님의 뜻으르 따라, 그리고 유엔 인권선언에 규정한 바와 같이 종교를 믿으며 전파할 자유를 보장해 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또한 부당하게 투옥된 사람들, 특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고난받는 우리 형제들을 위하여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는 그들의 자유를 위하여 기도하며 일할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그들의 운명에 의하여 유발되는 협박을 거부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매 우리는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불의에 항거하며 복음에 충성하기를 힘 쓸 것이다. 핍박이 없을 수 없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우리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딤전1:1-4, 행4:19, 5:2, 골3:24, 히13:1-3, 눅4:18, 갈5:11, 6:12, 마5:10-12, 요15:18-21)

맺는말 (Conclusion)
그러므로 이와같은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결심에 비추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또 우리 상호간에 전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계획하고, 일할 것을 엄숙히 언약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서 그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이 언약에 충실하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기를 기도한다. 아멘, 할렐루야
 
 
 
 
 
 


게시물수 203건 / 코멘트수 153건 RS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간단한 식별법] 해로운 종교와 성숙한 종교의 분명한 차이 (1) 미선이 18292 07-05
그가 우리에게.. (이곳은 '짧은 글 긴 여운'의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7787 09-26
203 다시 (박노해) 미선 1184 01-02
202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정호승) 미선 1089 01-02
201 진정으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미선 1332 11-23
200 정진규 <몸시>, 추억 (몸시 25) 미선 1416 10-17
199 마가렛 휘틀렛의 詩 <서로에게 기대어보기를> 미선 2110 08-03
198 갈릴레오의 편지- 성경구절의 권위 그리고 감각 경험과 필요한 증명 미선 1939 07-16
197 갈릴레오의 손가락 미선 1559 07-13
196 현재(現在)와 몸(momm) 미선 1860 07-05
195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 (함석헌) (1) 미선 4581 01-02
194 Here are the six pillars of self-esteem 미선 2346 12-29
193 돈벌이 시스템에서 기본사회 시스템으로 미선 2166 12-02
192 중세와 근대의 차이 미선 2668 11-07
191 The Universe is vast (2) 미선 2733 10-12
190 Mysticism, clarification, action (1) 미선 2686 09-17
189 "신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미선 2243 09-10
188 진화 메카니즘의 열쇠 미선 2111 07-10
187 진보의 의미 미선 2913 01-09
186 우리가 남이가?! (1) 통전적 신… 3247 11-30
185 베이스 인생론 (1) 통전적 신… 3066 11-17
184 (펌글) 무례한 한국사회 (2) 통전적 신… 3678 07-30
183 걱정버리기 연습 미선 5178 06-29
182 정치를 딴나라 일로 생각해서 참여하지 않을 경우.. 미선 3057 06-05
181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 박노해 미선 3954 02-04
180 (풍자시) 변태천국 (1) 통전적 신… 4045 02-03
179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발터 벤야민) 미선 4142 01-05
178 우리 시대의 역설 (The paradox of our time) (4) 미선 5212 12-27
177 테너, 바리톤, 베이스 (1) 통전적 신… 6799 08-09
176 [詩] 굽이 돌아가는 길 (박노해) 미선 4507 08-08
175 희망 없이 믿음과 사랑을... (2) 미선 3823 08-07
174 이론의 우위를 확보하게 해주는 네 가지 (6) 미선 4230 06-26
173 <생각의 균형>, 절대주의나 상대주의나.. 미선 3676 05-22
172 공부하는 법 (세르티양주) 미선 3372 05-12
171 자유의지를 부정하려면.. 미선 4925 04-24
170 찬양 가사를 창작해봤습니다 (1) 통전적 신… 3552 04-02
169 학교폭력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2) 통전적 신… 3623 03-14
168 저 다음 주에 선 봅니다 (2) 통전적 신… 3591 03-13
167 <자기제외 논리>와 <자기포함 논리> (2) 미선 3848 03-02
166 잠언 3:5~6 (3) 춘이 4009 03-02
165 일부 과학자들의 착각 - 인간이 기계가 아닌 이유 미선 3588 02-27
164 진화론의 위치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학 미선 3786 02-12
163 가상성(virtuality) 미선 3694 02-02
162 김지하, 몸얼 퇴행의 대표적 사례 미선 4037 12-14
161 지혜의 종국적 소유 형태 미선 3504 12-01
160 폭력 혹은 성장주의도 <힘의 종교>라는 원죄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4) 미선 3776 11-24
159 "우리 죄를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신"의 뜻.. (1) 미선 3996 11-09
158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근본주의자만은 아니어야~! 미선 3549 10-28
157 안병무, 내 인생을 바꿔놓은 신학자 미선 5074 09-17
156 연가시 기독교 미선 3539 09-16
155 우리의 무덤 미선 3483 09-01
154 켄 윌버의 심층 종교와 표층 종교 분류 그리고 형이상학 계통도 (2) 미선 4624 08-28
153 국가도 <몸화> 되어진다! 미선 3588 08-07
152 종교와 과학의 관계 미선 3754 06-19
151 개체분리형 사고와 통전형 사고 미선 3712 06-06
150 진화가 꼭 진보는 아니다! 기독교의 경우도 그러하다! 미선 3819 05-29
149 진정한 진보의 가치란.. (현재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2) 미선 4385 05-17
148 사물을 분석한다고 해서 사물의 신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미선 3396 05-14
147 과학자들의 환원주의적 분석 작업이 힘든 이유.. 미선 3872 05-05
146 이번 4.11 총선 결과를 보고서.. (1) 미선 3990 04-12
145 '무신론 어록들(펌글)'을 읽고.. (1) 미선이 4671 03-04
144 사상은 과연 무기력한 것일까? 미선이 3898 03-01
143 이데올로기 / 김형효 미선이 3935 02-16
142 의심을 장려하는 종교 (4) 미선이 4248 02-09
141 이어령식 기독교의 한계 미선이 5520 01-13
140 신앙에도 발달 단계가 있다! 미선이 8478 12-20
139 불법 다단계 피해 사례를 보고서.. 미선이 4391 12-18
138 새 시대의 새 종교를 주창한 함석헌 어록.. 미선이 4154 12-02
137 <확정형 사고>와 <형성형 사고> 미선이 4095 11-30
136 종교란.. 미선이 3718 11-21
135 불교의 무아설과 전초 오류 미선이 4765 11-07
134 이제 세계자본주의를 넘어 점차 민주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시대로 한 발 딛는.. 미선이 4010 11-07
133 노자의 '무위' 개념에 대한 오류 (2) 미선이 5160 10-31
132 "Occupy Wall Street"를 보고서.. 미선이 4155 10-13
131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진천사대인명(盡天命待人事) 미선이 6770 10-04
130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대한 나의 입장 미선이 5697 09-02
129 예수의 몸 이해 (5) 미선이 4627 06-22
128 무소유(無所有)는 비현실적 발상, 차라리 공사유(共私有)로 전환되어야! 미선이 4251 06-18
127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보다가.. 미선이 4256 05-26
126 '인간'이란.. (7) 미선이 4474 05-26
125 개념 배우 미선이 4141 05-21
124 종교와 과학의 관계 미선이 4899 04-21
123 어느 이슬람 여성 영성가의 기도문 미선이 4995 03-31
122 하나님이 아니라 <아빠>다 미선이 4210 02-10
121 <화두>에 대하여 미선이 4209 02-10
120 '참나'가 아니라 <참몸>이어야 미선이 4305 02-10
119 현대 복음주의 진영이 그토록 애호하는 로잔 선언문의 모순 미선이 4705 01-29
118 건강한 종교는 방법적 회의주의를 표방한다. 미선이 5068 01-27
117 뇌냐? 마음이냐? (2) 미선이 5132 01-18
116 '공생적 친밀감' 걷어내기 미선이 4857 01-17
115 대인관계를 힘들게 하는 일반적인 오류들 (1) 미선이 5194 01-03
114 기존 기독교의 신앙과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차이점 미선이 4363 12-30
113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신 (6) 미선이 4782 12-05
112 Jesus and Buddha The Parallel Sayings (6) 미선이 6145 11-24
111 성프란체스코의 모순 미선이 5580 11-18
110 신에 대한 표기를 바꾸었으면..God에서 Gio로.. 미선이 4871 11-17
109 현재의 자기 삶의 목적과 욕구들을 재정향하기 위한 연습들.. 미선이 4746 11-06
108 고통의 복음The Gospel of Suffering 미선이 4583 10-18
107    천사를 죽인 소년 (만화) (9) 미선이 7506 10-18
106 지식의 대융합 강의 발췌록 미선이 6754 09-19
105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통찰 (2) "하나님의 뜻, 역사적 상황 인식, 모세의 결단" (1) 미선이 5784 09-15
104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통찰 (1) "예수는 인격이 아닌 사건이다" (1) 미선이 5486 09-15
103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딱지 (1) 미선이 6045 09-15
102 알수 없어요 (기독교 버전) 노동자 4645 07-30
101 새 기독언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노동자 5365 07-13
100 [간단한 식별법] 해로운 종교와 성숙한 종교의 분명한 차이 (1) 미선이 18292 07-05
99 No Vote, No Health! 미선이 4344 05-21
98 뇌를 공부한다는 것은.. (박문호) 미선이 5215 04-12
97 나는 바보인가 봅니다. smallway 4852 04-05
96 과학을 지배하려는 판넨베르크 신학의 오만 미선이 5312 04-05
95 무소유(無所有)란, 약자 우선성의 공소유(共所有)다! 미선이 5026 03-18
94 세기연이 그나마 함께 손잡을 수 있는 이웃종교들이란..? 미선이 4291 03-14
93 진리냐 기독교냐 (3) 정강길 4722 03-02
92 인간 삶의 행복을 위한 다섯 가지 퀼리티 (생존, 생활, 학습, 지혜, 영성) (2) 정강길 5357 02-21
91 폭력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 (4) 정강길 4847 02-15
90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7) 정강길 5092 02-04
89 행복(幸福) - Red River Valley smallway 4441 12-09
88 이스라엘 교육부의 신세대 교육방침 / 민희식 교수 smallway 5820 11-22
87 세상에서 가장 씸플한 .... [기독교 약사(略史)] (4) smallway 4996 10-23
86 나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3 가지 에너지란 (2) 정강길 4702 09-08
85 일상의 반란 미선이 4371 08-31
84 故 김대중 대통령 빈소에 찾아가 분향하고 왔읍니다. (2) smallway 4869 08-25
83 우로보로스 (1) 미선이 5747 08-03
82 당신의 이름은 몇 개입니까? 미선이 5342 08-03
81 생각대로 움직이는 그림.. 미선이 4559 07-08
80 새로운 진화 (함석헌) 미선이 4845 07-05
79 아름다운 꿈 (18 +) (6) smallway 5222 06-23
78 너무나도 공감되는 스퐁의 어록 하나.. (4) 미선이 4951 06-10
77 신앙과 학문의 통합 (다석 어록) 미선이 6328 05-19
76 내가 정의하는 <위빠사나 수행>이란.. 정강길 4538 05-11
75 자기 안에 천국을 지어라 (스베던보리의 위대한 선물 중에서) 박종렬 5652 04-28
74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을.. (2) 정강길 4767 04-20
73 성경, 길트(gilt 금박)의 테두리일까? 길트(guilt, 죄)의 테두리일까? (1) 정강길 6002 04-13
72 장공(長空) 김재준 목사의 10가지 생활 좌우명 미선이 6722 03-27
71 <시> 그리움 Joe 5347 03-13
70 인간적 질환과 해방된 신의 선물, 광기(mania) (4) 생명씨앗 6086 03-12
69 행복 미선이 4720 02-28
68 <시>옛 이야기 (2) Joe 5026 02-17
67 [詩] 너는 약해도 강하다 (신현림) 미선이 4898 02-11
66 지혜로운 삶 (4) 미선이 6374 01-29
65 공부의 본래 뜻 (2) 미선이 9591 01-22
64 새해에는 해방의 물결로 살아가십시오 박종렬 5148 12-31
63 자신의 껍질을 깬다는 것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맞먹는 것! (1) 정강길 5227 12-01
62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자는 (4) 작은불꽃 5005 09-13
61 생명을 낳으려면 작은불꽃 4874 09-13
60 내겐 매일매일 절대 필요한 3시간 (2) 정강길 5808 07-13
59 창의적 교육을 위하여 미선이 5076 07-01
58 말 잘 하는 사람의 대화 수칙 20가지 미선이 5293 05-18
57 빅뱅 (Big Bang) (2) 정강길 5726 04-30
56 인간은 경쟁한다. 컨설턴트 5024 04-26
55 인문학적 대화 (김영민) 미선이 5040 04-05
54 영성과 몸성 정강길 6199 03-27
53 존재와 생각 미선이 4921 03-20
52 생활 방식 정강길 4869 03-18
51 지혜의 기도문 (1) 정강길 5964 02-12
50 진짜 <후회>라는 것은.. 미선이 7933 01-31
49 니체, 광인의 절규! 정강길 6490 01-21
48 경쟁과 협력 정강길 6050 01-16
47 자유와 구속 정강길 5633 01-16
46 이런 사람이 좋다 미선이 5510 12-03
45 사랑 나무 미선이 4866 11-17
44 신뢰 정강길 5210 10-17
43 고통과 유혹 정강길 5337 10-16
42 '구원'salvation이란 단어의 어원 정강길 7451 09-17
41 '진리는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1) 정강길 6213 09-17
40 신앙고백문 정강길 7805 09-02
39 <수신제가치국평천하>와 <평천하치국제가수신> 정강길 8321 07-05
38 여성 → 여자 → 여인 정강길 5664 06-16
37 더 깊고 풍요로운 자아를 위하여 (켄 윌버) 정강길 5312 06-10
36 <나와 다름>과 <나와 충돌하는 다름> 정강길 5763 05-31
35 [詩] 깨달음 미선이 5403 05-25
34 역사란? 미선이 5446 05-17
33 인디언들의 십계명 미선이 5656 05-14
32 합리성과 기적 그리고 믿음 정강길 5397 03-26
31 명상 혹은 심리학이 흔히 갖는 오류 정강길 5600 03-23
30 기도나 명상은 비움이 아니다! 정강길 5835 03-06
29 합리주의와 신비주의 정강길 6708 02-25
28 "이 세계는 내 몸의 몸이다" (2) 정강길 5838 01-26
27 "이 세계는 내 몸의 몸이다" (1) 정강길 6014 01-26
26 행복에 이르는 10가지 습관 (실천하면 건강해져요!) 정강길 6367 01-18
25 행복 정강길 6166 01-18
24 선교 미선이 5734 01-17
23 개혁 사각지대 (한겨레 그림판) 관리자 5070 01-02
22 올 성탄은 누구나 따뜻했으면.. 정강길 4955 12-20
21 '무조건 믿어라'의 기독교 (리얼 패러디) 미선이 5962 12-20
20 절망 (詩) 김수영 5348 12-20
19 그리스도교인들이 결론이랍시고 제시하는 정말 하나마나한 말들 (2) 정강길 5761 12-14
18 새로운 기독교의 이름, 신국교?! 정강길 5970 11-25
17 [만평] 언제까지 몰려다니실 건가요? 관리자 5436 11-15
16 어느 그리스도인의 성적 정체성 (1) 현경 6147 11-14
15 진리를 찾게 해주는 역설의 자세 정강길 5420 11-13
14 강자와 약자 정강길 5509 10-24
13 기복신앙 정강길 7744 10-21
12 이 사람을 누가 이렇게.. 관리자 4873 10-09
11 정체성 정강길 4979 10-09
10 침착 정강길 5215 10-08
9 대한민국 중년 아낙의 명절날 신세타령 시조 정강길 5432 10-04
8 평화를 위한 기도를 모을 때 미선이 5210 09-30
7 삶과 수행 (대승기신론2) 미선이 5256 09-26
6 사바가 열반이요 중생이 여래이다 (대승기신론1) 미선이 4905 09-26
5 순수의 전조 미선이 7337 09-26
4 미선이 4998 09-26
3 청춘과 성인 미선이 5139 09-26
2 나의 삶은.. 미선이 5709 09-26
1 그가 우리에게.. (이곳은 '짧은 글 긴 여운'의 게시판입니다) 관리자 7787 09-26



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