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잔치' 열린 안성 수해 지역 [현장] 아픔 있는 곳에 '회복의 기쁨' 가득   송상호(shmh0619) 기자

▲ 물이 막 차오르며 집을 삼켜가던 날을 떠올리며, 어지럽혀진 집 앞에서 잠시 표정이 일그러진 할머니(67·안성시 가현동). ⓒ 송상호 "아저씨, 우리 집에도 좀 와 줘유." 경기도 안성 수해지역에 자원봉사를 나가 한 할머니 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봉사자들을, 이웃집 할머니가 애타게 부른다. "할머니. 저희들도 맘대로 못 움직여요. 이장님께 가서 봉사해줄 것을 신청 하셔요." "아.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도 해달라니 께유."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 하다가 결국 마을 이장에게로 가는 할머니의 양보(?) 때문에 상황이 정리가 된다. 모처럼 햇볕이 난 날인지라, 수해주민들은 바쁘다. 물에 잠긴 물품들을 다 끄집어내어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햇빛을 많이 보게 하려니 움직이는 태양이 아쉽기만 한 게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 출동한 자원봉사자들을 한시라도 빨리 자기 집으로 모시려는(?) 경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아! 제가 평생 여기서 살았는데, 이런 큰 물난리는 처음이여유. 4년 전에도 물난리는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는…. 그날은 정말 무섭더구만유." 비가 억수 같이 와서 집이 조금 씩 조금 씩 잠겨가던 공포의 순간을 떠올리는 A할머니(67·안성시 가현동)의 얼굴이 잠시 일그러진다. 자녀와 손자들과 함께 사는 집이었는지라 더 아찔하기만 했던 것이다. 봉사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옆집으로 자원봉사자들이 불려간다. 남자들이 들어야 겨우 들릴 만한 물건들을 이것저것 지적하며 물건을 끄집어내게 하는 할머니의 입이 바쁘다. 그 집은 갓난아기 손자까지 같이 사는 집이었는지라 더 고생이 많다. 그릇을 끄집어내는데 한참을 걸린다. 그릇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 집은 종가집이여유. 제사를 많이 지내다 보니 호호호호." ▲ 집마당에 쌓여있는 젖은 옷들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는 듯. ⓒ 송상호 미안한 마음을 웃음으로 넘기는 할머니는 35년 된 차 장롱도 끄집어내게 한다. 수재민들의 고생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는 심정으로 오히려 미안해 할까봐 "뭐 이런 걸 가지고요"라며 크게 웃는 한 남자봉사자와 할머니는 이심전심이 되어 버린다. 이제 생전에 끄집어낼 일도 없는 골동품들이 속살을 드러낸다. 재산(?)이 다 공개되는 현장이다. 일을 마치니 할머니는 "고마워유, 고마워유. 이거 대접도 제대도 못해드리고"라며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연신 표시한다. ▲ 한 수해주민이 만화책을 펴서 말리고 있는 게 마치 만화노점상인 듯 보여진다. ⓒ 송상호 마을 한 복판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신났다. 수해가 있었거나 말거나, 일이 많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마을에 외부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게다. 마을 회관 앞에선 자원봉사자들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합의(?)를 보는 중인 주민들이 몇 사람 눈에 띈다. 그 옆으로 안성시 경찰 대원 20여 명이 줄을 맞춰서 지나간다. 안성시 보건소 직원들이 예방접종을 하느라 무더위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인원을 배치하는 사람들은 봉사자들보다 더 바쁘다. 여기저기서 와 달라고 하지만 봉사자들의 숫자도 한정되어 있고, 일이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니 속이 탄다. 한 곳에서 몸에 익혀 일을 진행하고 있는데, 다른 데로 호출을 하면 가벼운 짜증을 내는 일도 생긴다. ▲ 세상에서 제일 신나고 재미있는 빨래장면이 여기에 있다. 여기에도 남자들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 송상호 설거지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 물론 빨래도. 오히려 힘 있는 남자들이 설거지와 빨래를 더 잘한다. 그래서 설거지와 빨래하는 것에는 남자들이 더 인기다. "아저씨들 수고가 많으셔요." "뭘요. 고객이 만족할 때까지 우리의 봉사는 쭉 계속 됩니다." 설거지를 시켜 미안해하는 아주머니에게 어느 자원 봉사자가 던진 말 한마디에 웃음이 마구 피어난다. 세 시간의 설거지를 끝내고 나오는 남자 봉사자들에게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고객만족'이 아니라 '고객감동'입니다. 어느 단체예요? 제가 인터넷에 올려 칭찬 해드릴 게요." 역시 남자들이 설거지 하나는 끝내주는 듯! ▲ 이날 남자들의 설거지 행각은 최고로 인기였다. ⓒ 송상호 유명 전자업체들이 가전제품 수리 및 건조를 하는 캠프엔 가전제품이 즐비하다. 중고 가전제품 노점상이 따로 없다. 계속 말리고 수리해도 수영하고 나온 가전제품의 행렬은 끝이 없다. 물건을 나르는 사람들, 각종 단체에서 설치한 천막캠프, 경찰들의 교통 정리하는 광경 등은 마치 시골 장을 옮겨온 듯하다. 마을이 온통 잔치 분위기다. '회복 잔치' 말이다. ▲ 젖은 가전제품들이 장사진을 이뤄 마치 가전제품 노점상을 연상케 한다. ⓒ 송상호 "우리도 힘들지만, 회복할 새도 없이 연속해서 두 번 수해를 입은 강원도 주민들이 더욱 힘들 거구만유"라는 한 주민의 아름다운 말이 이 잔치의 진정한 의미를 더해준다.

* 지금은 물에 젖은 물건을 말리고 있는 시간들입니다. 물건들이 다 말라서 집으로 도로 집어넣어야 됩니다. 그래서 8월 3일 이후에도 수해 지역에 일손은 필요합니다. 오히려 이날들에 봉사자가 없어서 더 고생하게 될 거라고 주민들은 걱정합니다. 뜻있는 분들은 동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