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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 예언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12-24 20:46 조회(111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560 




(*실은 2010년 올해 첫 날에 들었던 강력한 직관적 통찰인데 제대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올해가 끝나기 전에 꼭 분명하게 얘기해두고 싶어서 성탄절을 맞아 올려놓는 바이다.)
 
 
 
예언
 
 
 
 
점점 흔해지는 ‘새로운 기독교’라는 표현
 
오래전부터 나는 이런 얘길 종종 꺼낸 적이 있다. “이천 년을 이어온 흐름이지만 기존의 기독교가 망하는 데는 매우 오래 걸릴 수 있다. 건물과 땅을 비롯해 워낙 가진 게 많아서 망하는 기간만큼은 족히 백 년도 더 넘게 걸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빠르면 10년 늦어도 30년 안으로는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는 대안 기독교 운동들은 우리가 피부로 느낄만큼 더욱 가시화되어질 것”이라고..

요즘 들어서는 <새로운 기독교>a New Christianity라는 표현이 다소 흔해져가는 느낌이 들지만, 불과 5-6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었다. 당연히 <새로운 기독교>라는 표현을 생소하게 혹은 다소 뜨아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평신도아카데미 주최로 향린교회 강연에서 “기독교 개혁해야 하나? 새판짜야 하나?”를 발표했을 때도 당시 새로운 기독교 강연에 대해 이를 실어 보도해 준 언론도 많지 않았었고, 어느 크리스찬 언론지에 매우 작게 급진적인 기독교 신앙 내용으로서 소개된 바 있을 따름이다.

그래도 이후엔 '주간기독교'와 '기독교사상'에도 게재된 바도 있었다. 기독교사상의 경우는 단 한 번 실리게 된 것이지만, 뜻밖에 문화일보에까지 보도될 정도로 나 역시 놀란 점이 있긴 했었다. 요컨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제는 점점 “새로운 기독교”라는 표현들이 더욱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대안 기독교 운동이라는 것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좋다고 본다. 문제는 이것이 사회운동이 아닌 결국은 종교운동이라는 사실임에도 사회운동 마인드로서 이를 수행한다는 점이다. 대체로 진보 기독교 진영의 사람들은 사회운동 마인드가 여전히 강한 점이 있다. 내가 볼 땐 이점을 잘 캐치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드물 정도다.

오래전 민중신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기존의 기독교 신학의 커다란 구멍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치명적 결함에 대한 해결이 단순히 민중신학 분야에 국한되거나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실로 새로운 기독교 신학이 다시 형성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절실한 차원의 문제 였었다. 그래서 나는 <재신학>Re-theology라는 <새로운 민중신학>을 표방하였었고, 이것이 결국은 새로운 기독교 신학으로 이어졌었다.

전자가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이며, 이를 좀 더 대중적인 버전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이 후자인 <미래에서 온 기독교>이다. 암튼 새로운 기독교 신학은 기존 기독교 신학과는 구분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지만, 뭐라고 다른 이름을 붙이기도 뭣해서 그냥 <새로운 기독교 신학>이라고만 붙였다. 예전에 가끔 다른 말로 살림살이의 신학, <살림신학>이라는 표현도 쓰곤 했었다. 물론 이름 짓는 게 중요하다기보다 어쨌든 구분되는 다른 뭔가에 대해선 이를 뭐라뭐라고 지칭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 있기에 그러하다.

<6.19 선언> 이후

어쨌든 이제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한다는 것자체가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그 자체로도 일종의 시대적 흐름이라고 여겨진다. 말그대로 기존 기독교가 제대로 환골탈퇴하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펼쳐나갈 것인가는 매우 중요한 논의라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선 각자 생각하는 중구난방의 노선들이 있을 걸로 본다. 다들 원인과 진단을 내리고 각자의 처방전을 언급하곤 할 것이다. 물론 내가 보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이 이들과 꼭 맞아떨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요컨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는 주장들은 앞으로도 점점 더 많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수의 새로운 기독교 운동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본다. 결국 기존 기독교의 한계를 갈수록 실감하게 되며, 기독교의 발전은 더 이상 일어나게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기존의 기독교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는 상태다. 이미 신뢰도 역시 땅으로 떨어져 있다.

이곳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메리칸 교회는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한인교회들도 예전과 달리 더 이상의 발전이 잘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곳도 이전과 다른 뭔가 새로운 흐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반증으로 여겨졌다. 미국인들의 의식들은 예전과 다르게 종교생활도 그저 소박한 가족주의 삶의 수단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가 많으며, 낡은 근본주의 성향에선 다소 벗어나려는 흐름들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그렇지 않은 근본주의 신앙인들도 많겠지만 미국에서 출판되는 신앙 서적들도 보면 프로그레시브한 기독교 신앙 서적들도 웬만큼 팔리고 있는 것 같다. 대학의 경우는 미래를 미리 앞당겨 볼 수 있다. 나는 미국의 하버드대가 신학과 폐지를 논의했다는 점을 예사롭게 보질 않는다.

신학은 이제 서서히 폐기되는 종말을 맞이할 것!

자, 이 시점에서 내가 올해 2010년 새해 벽두에 강력하게 내 머리를 친 확신이 하나 있다(사실 지나친 확신은 몸에 해롭지만 말이다). 드디어 신학이란 언명 자체도 끝장날 것이며, 이제는 몸학의 시대가 서서히 도래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물론 이러한 두번째 예언 역시 앞의 첫번째 예언 아닌 예언(?)과 비슷한 표현이기도 하다. “신학이 망하는 데는 어차피 오래 걸릴는지 모른다. 이미 그걸로 밥 벌어 먹고 살며 거기에 종사한 사람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신학에서 몸학으로의 거대한 새로운 전환 역시 내가 볼 때 10년 이내로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나는 이 확신을 거의 1년 동안을 묵혀두다가 날이 갈수록 점점 느끼고 있는 지경이다.

즉, 내가 볼 땐 신학(Theology)이란 용어 역시 점점 더 소멸될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모든 사물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거겠지만, 이제 신학 분야는 역사 속으로 서서히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우리는 이제 서서히 <신학의 종말>을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 물론 신학의 종말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걸로 안다.

그렇다면 정작 신학이 무책임하게 소멸하고 사라지면 그뿐인 건가 하는 물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신학이 종말을 고한다는 사실 그뿐으로 그치는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된다는 것인가? 내가 볼 때, 신학은 종말을 고하게 될 것이지만 그 자리에 나는 앞으로는 <몸학>이 점점 들어서게 될 거라고 본다.

아마도 이러한 나의 얘기에 다소 아연질색 할는지도 모른다. 무슨 통배짱으로 그런 호언장담의 말을 하느냐라고 말이다. 신학이란 학문 분야가 얼마나 오래된 학문인데 그것이 그런 식으로 버려지고 바뀌겠는가 하는 의문을 표할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나의 이런 말은 이미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신학이라는 표현이 사라진다고 해서 <신>God이라는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신 존재에 대한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신 존재를 인정하더라도 예전과 달리 이제는 구체적인 몸삶의 현실을 통해서 신을 이해하는 맥락으로서 바뀌게 된다는 사실이다. 당분간 이행기 시점까지는 '신학'과 '몸학'이라는 표현 둘 다 같이 쓸 테지만, 새로운 기독교 신학 두번째 권 완료 후에는 몸학으로 올인할 듯 싶다. 나는 이제 비로소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이름을 짓게 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몸학>이다.. Kosmomics / Giology
 
어찌되었든 아래의 글은 2010년 새해 첫 날에 삘 받은 낙서 같은 글귀를 그대로 옮겨놓는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
 

신학의 종말, 몸학의 시작!

약간 선언적인 언급이지만, 2010년 새해 들어 받은 새로운 통찰 중의 하나다.
조금 일찍 소개하는 점이 있긴 해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꾸만 확신이 들어서다
사람은 확신이 들 때 더욱더 조심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내가 볼 때 신학이라는 학문 분야는 머잖아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결국에 이는 <몸학>으로 포섭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확히 말한다면 "신학의 종말, 몸학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신학>과 <몸학>의 가장 큰 차이는
신학은 신의 관점을 강조하는 혹은 신에 관한 학문이지만
본인이 말하고자 하는 몸학은 적어도 몸의 관점에서 보는
신(God)을 비롯한 나(I)와 이웃(Others)에 대한 통합 학문이기 때문이다.
 
불트만이 한때 "신학은 인간학"이라고 언급한 적 있긴 했으나
이때 말한 '인간학'이란 항상 신 앞에 선 인간 실존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는 바라
본인이 말하는 몸학과는 그 의미가 판이하게 다르다. 몸학은 실존주의 같은 것도 깔지 않는다.
 
언젠가 나 자신이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몸학을 펼치게 될 경우
'God'이라는 옛날 이름이 아니라 'Gio'라는 새로운 이름을 다는 것이
적어도 예전의 신 개념과 혼동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Theology가 아니라 Giology로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몸학은 현실적인 몸의 관점을 정직하게 수용하면서 출발한다.
(이때 내가 말하는 몸은 Body를 넘어서 있다. 몸학을 들으신 분들은 익히 알겠지만..)
 
반면에 신학이라는 학문은 그 신이 하늘 위에 있든 땅에 있든 간에
더이상 신에 대한 학문이 되어선 곤란하다고 본다.
알고 보면 신 역시 우리 몸의 현실과 관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몸의 현실과 관련할 때에만 신이라는 존재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제아무리 신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어도 우리 몸의 현실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바로 그래서 신학은 종말을 고하고 결국은 몸학으로 포섭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 몸의 현실을 간과한다면 그 어떤 신이라고 해도 이는 공허한 신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신은 오히려 인류의 몸에 해악을 주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라도 나는 기필코 신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종말시킬 것이다.
물론 그러기위해선 여전히 철저히 신학공부를 계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역설의 지점 역시 있다.
 
아마도 나의 일생까지만 신학이란 학문 분야가 남아 있더라도
적어도 나 이후로는 기독교 신학을 물려주고 싶진 않다.
어차피 <몸학>만으로도 예수와 성서를 이어받는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몸학은 항상 GIO로서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말하는 신학의 종말이 꼭 기독교의 종말과 일치되진 않는다.
적어도 신학이 이 천 년 동안 내걸은 자기 이름을 갈아야 할 만큼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볼 뿐이다.
 
이제는 신이 주인공인 학문이 아니라
몸이 주인공인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몸의 현실을 떠나선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몸학의 시대가 서서히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
 
 
P,S. 물론 이는 단순한 예언이고 선언의 의미일 뿐이니,
       당분간은 그저 피식 웃고 지나가셔도 좋다고 본다.
       그냥 지금은 이제 겨우 벽돌 하나 올려놓고 있는 셈일 뿐이다.
 
 
 
 
화상 (10-12-27 21:13)
 
머지 않아 그 예언이 실현되기를 갈망합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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