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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글쓴이 : 미선 날 짜 : 17-06-07 04:44 조회(55)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730 
  LINK 1 : http://www.koreatimes.net/ArticleViewer/Article/101425 (7)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 제가 이곳 밴드에서 많이 주장한 내용인데 마침 이곳 캐나다 한국일보에 실렸네요. 분량상 줄여서 실렸는데 이곳 밴드에는 원문 그대로 올려놓겠습니다. ^^; )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naturalism로!

일반적으로 <초자연주의>super-naturalism란 <자연주의>와 달리 자연을 벗어난 초자연적 실체나 원인을 상정한 것으로 이 초자연적 원인이나 존재가 간헐적이라도 자연의 인과적 법칙을 깨고서 자연 속에 개입할 수 있다고 보는 사조를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 자연과학에선 이를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다. 왜냐하면 만일 과학이 초자연주의를 수용할 경우, 그 어떤 사건에 대한 분석과 해명을 시도할 때 얼마든지 그 원인적 설명을 초자연적 원인이나 존재로도 돌릴 수 있기에 이는 과학적 설명 자체를 아예 봉쇄시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연세계가 존재하는 가장 궁극적인 원인, 그러니까 적어도 <제1원인>의 자리는 결국 초자연적 존재(또는 초자연적 사건)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와 달리 <자연주의>naturalism는 자연 속에서 얼마든지 자연에 대한 설명과 그 원인 근거들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기에 이것은 과학의 탐구 방식에 적합한 사조로 볼 수 있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종교와 과학이 결정적 충돌을 일으키는 핵심 지점도 바로 이 초자연주의 수용 유무에 있다고 본다. 전투적 무신론자로 잘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R. Dawkins)조차도 자신이 비판하는 신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범신론적인 신이 아니라 초자연주의적 유신론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설정하고서 이를 배격한 바 있다.

반면에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는 이 초자연주의를 결코 포기할 수가 없는데, 이는 창조론을 주장하는 창조과학 그리고 지적설계론 두 진영 모두에서도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진화론적 유신론을 표방하는 진보 기독교 진영에서도 이 초자연주의 요소는 온전히 극복되어 있진 않은 실정이다.

이를 테면 우주 시작의 특이점만은 신의 초자연적 개입을 설정해야만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자연주의적 유신론>의 가능성은 종종 간과되곤 했었다.


기존의 주류 보수 기독교가 갖고 있는 문제 중에는 <성서무오설>이라는 문제도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 훨씬 더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초자연주의>를 믿는 낡은 신앙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것은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며 ‘과학 이전의 신화적 시대의 언어’를 현대에서도 사실로 소통될 수 있다고 보는 여러 종교들과 신념들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종교 경전들에 나온 초자연적인 기적이야기들을 비롯해 성경에 당나귀가 말을 했다는 얘기도 사실이고 동정녀 탄생도 사실이라는 주장 역시 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병원의사의 진단보다 오히려 종교지도자의 얼토당토 않는 처방과 이상한 기도원들을 더 찾곤 했던 사례들도 근원적으로는 바로 이 초자연주의를 믿는 신앙과 맞물려 있다. 이른바 <반지성주의>가 초자연주의적 신앙에 의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초자연주의 신앙을 버리면 자연의 신비나 신(God)에 대한 종교 신앙 역시 없어질 것으로 우려하는데, 이는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데서 나온 가장 큰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신비주의>mysticism는 고대로부터 현대에까지 있어온 것이지만, 이것은 과학의 온갖 합리적 해명과 시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게되는 모름과 물음의 영역들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앞서 말한 초자연주의와는 구분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점에서 시대를 다음과 같이 구분해볼 수 있다.

① 과학 이전 - 초자연주의와 신비주의가 미분화된 혼재 상태

② 과학 시대 - 근대 자연주의 과학의 등장으로 초자연주의 믿음과는 충돌함

③ 과학 이후 - 자연주의적 과학과 신비주의 요소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 가능함



알고 보면 오늘날 현대과학이 자연주의를 채택하는 것은 신비주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초자연주의를 제거하면서 이를 합리적 해명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일 뿐이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 시대로의 전환 및 과학의 형성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신비는 여전히 남는다. 실제로 자연의 신비는 이미 자연주의를 받아들인 과학자들조차도 그 신비를 더 깊이 그리고 더 크게 느낀다고도 고백한다. 심지어 도킨스조차도.


그렇다면 신(God) 존재에 대한 신앙도 가능한가 하는 질문도 해볼 수 있겠다. 물론 가능하다! 바로 그 지점이 <자연주의적 유신론>에 해당한다. 이미 이 점을 아주 상세하게 설파하고 있는 진영이 바로 화이트헤드(A. N. Whitehead) 철학의 유신론으로 이를 신학화한 오늘날 기독교 내의 과정신학 진영과 그리고 필자의 <몸학 기독교>에서 추구되는 바다.

여기서는 <자연주의>에 대한 오해부터가 이미 기존 종교와 기존 과학에 많이 유포되어 있다고 보는데, 대표적으로는 자연주의를 <무신론>과 <유물론주의>와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또 하나의 극단적 해석일 뿐이다.




이미 화이트헤드 철학에선 이 문제 역시 논증된 바가 있듯이 자연주의를 받아들여도 전혀 유물론주의가 아닌 것이며, 신과 세계의 활동성을 말할 수 있는 자리가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의 현대과학의 성과들과도 전혀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다. *

(각주 * Griffin, David Ray. Reenchantment Without Supernaturalism: A Process Philosophy of Religion. Ithaca and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2001. ; 데이빗 그리핀 지음, 이경호 장왕식 옮김, 『화이트헤드 철학과 자연주의 종교론』. 서울: 동과서, 2004. 참조. 이 책은 종교의 초자연주의와 과학의 유물론주의를 함께 비판하면서 <자연주의적 종교론>을 대안으로 역설한 과정신학자의 저작이다.)


필자가 볼 때 신관의 문제는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다. 초자연주의 신앙에서는 신을 일종의 군주 모델로 이해하기 때문에 현대 과학과의 불통문제 뿐만 아니라, 알고 보면 악과 고통의 문제 역시 궁극적으로는 신에게로 돌려지는 난점도 있어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 역시 제대로 해결치 못하는 불통으로도 남게 된다.

불통스런 영역들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종교는 폐쇄적 믿음의 자족적인 그룹들로만 전락될 것이다. 혹은 인맥거점의 사교행사 정도의 의미로 전락되거나! 이는 결국 본래 종교의 의미를 상실해버린 종교 퇴행과 소멸의 징후에 속할 뿐이다.


종교도 진화해야 한다.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필자는 그 점에서 바야흐로 <종교 2.0의 시대>가 열렸다고 진단하고 있다. 소통하지 않는 종교, 혁신하지 못하는 종교는 이제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뿐만 아니라 어떤 면에선 매우 위험한 재앙과 비극을 남기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될 가능성마저도 있다고 보기에 어쩌면 이 문제는 사실상 인류사회 전체가 협력적인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현재의 기독교 역시 이제 <종교 2.0 시대>에 함께 들어설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리라. 소통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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