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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04-22 16:15 조회(549)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623 




 
최근 대형교회(메가처치) 비판에 이어 작은교회가 대안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돌고 있다. 다소 진보적인 복음주의 진영이나 기존 진보 개신교 진영에서 이런 주장이 나오고 있는 듯 하다. 과연 이들의 말대로 작은교회가 정말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몇 년 전에 나 역시도 작은교회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은 그 역시 일정한 한 부분의 교회개혁에 불과하다고 본다. 당시에 내 생각은 단일 교회는 작은교회로 묶어두면서 그러한 작은 교회들이 많아지면 괜찮다고 본 것이다. 이 생각 자체만큼은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이것으로 대안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는 얘기다.
 
문제가 되는 핵심은 여전히 기존 기독교가 갖고 있는 교리다. 특히 배타적 교리 뿐만 아니라 성서무오설의 문제나 성서에 나타난 초자연주의에 대한 신봉 등등 나는 여기에 대한 대한 실질적 대안 신앙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론적 대안이 없는 가운데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실천적 대안만을 나열하는 것도 어찌보면 무모한 낭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진보적 인사로 알려진 교회개혁이나 교회비판론자들 중에는
한국교회 문제를 성장주의 혹은 맘몬주의로 보는 이들도 꽤 있다.
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비록 공감은 하나 정확한 핵심 원인으로서는 그렇게 보질 않는다.
 
이와 비슷한 주장으로서 또다른 이는 한국교회 안에 깃든 '번영신학'이 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주장들도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 문제로 인해 도출된 결과일 뿐이다.
 
 
 
궁극적인 것은 잘못된 철학(이원론이라는 형이상학)에 바탕을 둔 것이 가장 원인적인 것이며, 그에 기반된 채로 신론, 기독론, 교회론, 인간론, 구원론 등등이 축조되었다는 점이 가장 크다. 따라서 이천 년 기독교 신학의 주류 흐름에 대항하는 새로운 대안신학이 필요한 것이다.
 
거칠게 말해 기존의 기독교 신학 사상사는 니케아  신조 및 어거스틴 신학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 헬라문화권에서 형성된 초기 교부들의 신학에 깔려 있는 그 철학적 인식의 구도만큼은 지금까지조차 여전히 깔려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으로 불리는 루터나 칼뱅은 말할 것도 없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바르트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이원론적 구도는 여전히 발견되고 있다.
 
물론 철학에서 이원론 사상의 폐해 정도는 중간 복음주의 진영이나 진보 기독교 진영은 물론이고, 웬만한 보수 신학자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걸로 안다. 그렇기에 이원론에 대한 극복 주장만큼은 보수 기독교 진영에서도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극복이 되기 위해서는 그러한 기존 이원론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 형이상학으로 새롭게 수혈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마련해보지도 않은 채로, 마치 자신들은 이원론을 극복한 것인냥 떠들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존의 <이원론적 형이상학> 대신에 <비이원론적 형이상학>으로 대체시키는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제3세계 신학들(예컨대 남미 해방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등)의 경우는 대체로 유물론적인 형이상학 구도를 깔고 있기에 기존 주류 기독교 신학과는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이 주로 사회정의 운동에 치우치는 이유가 짐작되는 것이다.
 
어찌보면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신앙 행태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사회적 실천 행태는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이라 서로 간에도 빈번한 대화들이 이뤄지기도 한다(물론 대화를 반대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님). 그러나 이들은 그 근원적인 베이스에서는 전혀 합의되고 있진 못하다. 애초 존재론적 구도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단지 휴머니즘의 차원으로서만 서로 연대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편으로는 형이상학 자체에 대한 오해를 가지는 탈근대주의자들도 있다. 도대체 그런 게 왜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해체>를 부르짖으며, 냉소적인 비판들만 잔뜩 펼쳐놓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기초 세계관의 전제가 없는 무(無)전제의 순수 사실적 명제는 불가능하다. 부디 철학사에서도 논리실증주의자들의 역사적 실패를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내가 볼 때 탈근대주의자들은 대체로 근대 형이상학에 대한 트라우마를 여전히 간직한 자들로 보인다. 왜냐하면 예컨대 형이상학이나 합리성을 주장하는 입장을 대부분 근대적 사고 유형의 폭력으로 간주하는 경향들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은 불가능하다고 보거나 대안은 없다 라는 주장에까지도 이른다.
 
하지만 <대안>이라는 것은 어차피 또다른 가능성으로서 제안된 것이기에 얼마든지 언급될 필요가 있다. 단, <자기오류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수정 가능한 대안의 제시는 필요하다. 나로서는 그러한 대안을 향한 합리주의의 모험이라는 그 시도 자체가 생산성을 가져온다고 보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저 한국에 전래된 것뿐만 아니라 이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왔던 기존 기독교 신학사상의 실체와 뿌리를 전면적으로 다시금 드러내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존 기독교의 교리들은 분명하게 문제시되어야만 한다. 물론 그 가운데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유용한 교리도 있겠지만(예컨대 성육신 교리), 그렇지 못한 문제 있는 교리들도 있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2020 새로운 기독교 공의회>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이에 대해선 언젠가 따로 또 피력할 것이다).
 
 
 
작은교회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교회 제도를 정비하는 시스템적인 측면을 일컫는다. 그렇기에 그런 면에서는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학적 신념의 교정이 없는 교회의 제도적 개혁들은 너무나 큰 한계를 지닌다. 실제로 애초 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원래부터 작은 교회로 출발했었다는 점을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작은 교회로 출발한 교회라고 해도 여지없이 변질되기 마련인 것이다. 메가처치라는 순복음교회도 처음에는 아주 작은 천막교회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성장과 자본을 지향하는 신학이 문제라고 했을 때도 그렇다면 이를 대체할 만한 건강한 대안 기독교 신학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내가 알기에 다소 진보적인 복음주의자들이나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현재 자신이 소속한 교단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용기 있게 소신 있게 자기 신앙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이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 만일 교리를 비판하면 옷 벗을 각오까지 해야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교리 논쟁 해봐야 백날 소용없다는 식의 무용론까지 펼치기도 한다.
 
 
 
물론 대안의 수립은 하루 아침에 마련되거나 그런 식으로 이뤄지진 않을 것이다. 개인으로서 보면 무기력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래도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서 보면 하나씩하나씩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도 전세계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사도신경 및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나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서를 붙잡고 있는 교회 신자들이 여전히 끔찍하게도 즐비하다.
 
물론 내가 이렇게 말하면 보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부정한다고 난리 부르스를 치거나 이단이라고 공격해댈 것은 뻔하다.
 
기독교를 부정한다고? 단지 저들이 말하는 기독교를 부정할 뿐이다.
하지만 예수와 성서는 내게도 여전히 1차적 텍스트이기에 그 역시 기독교일 뿐이다.
새로운 대안 기독교는 당연히 기존의 낡고 병든 기독교를 대체할 따름이다.
또한 이천 년 전에 새로운 유대교 운동을 폈던 예수운동도 당시에는 이단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장한 대안만이 옳은 대안이라고 결코 주장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오히려 기존의 보수 기독교의 심장부에 자리하는 저들의 교리 내용들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 진보 기독교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아무쪼록 대안에 대한 논의가 더욱 다양하고도 활발하게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 중의 하나다.
 
간혹 지나친 회의주의자나 극단주의자들은 아예 해체하라는 식의 냉소만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땐 그런 식의 태도 역시 그다지 도움 된다고는 보질 않는다.
회의나 냉소만 보낼 게 아니라 현재 우리에겐 기존의 낡은 기독교의 핵심으로 파고 들어가서
이를 대체할 만한 다양한 대안의 장이 펼쳐지는 것 자체가 필요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현재로선 가장 급선무로 요구되고 있는 진정한 대안에 속한다.
 
나는 기존 기독교의 문제를 핵심 교리에 대한 것까지도 솔직하게 비판하면서(물론 자기가 속한
보수 교단의 눈치를 보며 자기 자리에 연연하는 기독교인들은 이를 해내가가 힘들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 간에 대안을 제시해보는 그러한 시도 자체에 가장 우선적인 의미를 부여하고픈 것이다.  
 
어차피 열린 모험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유란 결국 죽은 것에 불과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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