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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1-02-17 13:43 조회(1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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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 아래의 글과 다소 중복되지만 좀 더 내용을 보충한 글임)
 
 
 
여전히 사회운동을 최우선시하는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오도된 마인드
 
오늘날 대부분의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안들을 <사회정의>운동과 관련지으며 거기에 더 열을 올린다. 이곳 세기연처럼 이천 년 기독교 자체의 변혁에 우선적인 관심을 두기보다는 기독교 밖의 사회문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MB보다 이천 년 기독교라는 제국이 훨씬 더 끔찍함에도 불구하고 MB정책과 신자유주의 문제에 주로 신경을 쓰지 교회 자체를 현장으로 생각지 않는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말해지는 <진보 기독교인>에 대한 이미지란 약간 좌파적 색조의 사회운동을 하는 기독교인을 떠올리게 하는 실정이다.

최근 진보 기독교인들의 담론은 주로 <생명평화>라는 담론에 꽂혀 있다. 하지만 나는 진보 기독교인들이 <생명평화>를 기독교의 최우선적인 가치로 채택하는 것에 대해선 분명하게 반대를 하는 바이다. 물론 <생명평화>라는 좋은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선 충분히 이를 공감함에도 불구하고 기존 진보 기독교의 낡은 습성을 제대로 탈피하기 위해선 분명한 반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 번째,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은 일반적인 사회정의 운동의 범주에서도 얼마든지 채택될 수 있는 것이기에 기독교 자체의 문제와 변혁을 다루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기독교의 정체성이 생명평화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기독교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해주는 측면들을 모호하게 만들거나 희석시킨다고 본다. 물론 생명평화의 가치는 참으로 소중하고 그것의 취지와 내용 또한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 가치에 속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열매에 해당될 뿐이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는 그 같은 사회적 열매 이전에 훨씬 더 깊숙이 자리하는 존재론적 변혁에서부터 발견되어져야 한다. 뿌리와 열매는 엄연히 다르잖은가. 생명평화라는 가치는 굳이 기독교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얼마든지 내놓을 수 있는 가치 혹은 열매라서 새로운 기독교 변혁 운동에 있어서는 결코 효과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두 번째,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의 가장 큰 치명성을 말한다면, 그것은 여전히 쟁점화된 구체성을 탈각시킨 표어라는 것이다. 사실 생명에 대한 정의도 여전히 추상적이고 제각각이다. 어떤 면에서 생명이란 이미 존재와 실재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자 세계 전체를 일컫는 표현이기도 하다. 알고 보면 생명 아닌 것도 없다. 나는 핵심 가치를 추구하는 표어 채택에 있어서, 누구나 공감가능하리만치 추상적인 보편적 가치의 표어를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그것이 지닌 정치적 무기력함도 함께 비례할 것으로 본다.
 
이를 테면 기독교 신앙이 원래 생명평화적이라는 얘기는 하나님은 사랑과 평화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강조만큼이나 무기력하다. 유명한 김지하 같은 분도 얼마나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강조했었던가. 오히려 굳이 따진다면 민중을 약자로서의 생명이라고 볼 경우, 민중해방(약자해방)이라는 표어가 적어도 생명평화보다는 좀 더 구체성을 띤 표어라고 생각된다.
 
놀라운 사실 하나는 계급해방 없는 생태환경운동은 오늘날 중산층은 물론이고 부르주아들도 그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계급운동이 탈각된 환경생태운동은 진정한 환경생태운동이 아니라고 할는지 모르나 기후변화나 온난화 문제 자체도 이미 문제로서 인식하는 지점에서만큼은 보편적일정도로 공통적이다. 단지 서로 간의 정치적 경제적 이해타산으로서 서로 충돌하고 엇갈려 있을 뿐이다.
 
보수 기독교인들도 시행하는 생명평화 운동

더욱 흥미로운 점은 진보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보수 기독교인들도 생명평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수 기독교인들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생태환경 운동과 사회정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고 여긴다. 예컨대, 한국 사회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극렬하게 반대하지만, 보수 기독교인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적극 지지하고 도우는 입장에 놓여 있다.
 
실제로 보수 기독교 단체인 한기총은 성명서를 통해 “오염되고 파괴된 생태계가 복원되도록 친환경적으로 추진돼야 하는 입장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적극 지지한다”고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즉, 보수 기독교인들도 자기들 나름대로는 생명평화 운동을 실천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보수 기독교인들도 생명평화 운동을 실천하는 단체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생명평화냐라는 거에 대한 개념 정의 문제만이 우리 앞에 남아 있지 않겠는가.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한미FTA가 생명과 평화를 말살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기존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보기에는 한미FTA야 말로 생명과 평화를 살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가 말살되듯이, 생명과 평화의 이름으로도 생명과 평화 역시 훼손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전히 우리에게는 다양한 생명평화에 대한 정의가 남아있는 것이며, 천 개의 생명관과 천 개의 평화관이 있을 따름이다.

도대체 생명평화라는 게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국은 개념의 궁극적 지평을 논하는 철학(형이상학)의 문제로 다시 들어가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앞서 말했듯이 생명평화라는 가치는 존재론적 지평의 깨달음에 바탕을 둔 사회적 열매의 차원일 뿐이다. 오늘날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은 사회운동을 최우선적 가치로 두고서 기독교의 기제들을 죄다 거기에 끼워 맞추는 식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볼 땐 그러한 진보 기독교인들 역시 이천 년 기존 기독교의 위기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된다.
 
이제 사회운동은 사회 일반의 진보 운동과 연대사업으로서,
그 전에 이천 년 낡은 기독교 자체의 문제부터 개선되어야
 
오해가 없기위해 말씀드리지만, 만일 7-80년대 암울한 독재치하의 시대였다면, 나는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운동에 그다지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더욱 이를 지지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무도 외치지 못했던 억압과 굴종의 절망적 시대였기에 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으며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 섰던 것이다. 예를 들어, 김재준, 장준하, 문익환, 함석헌, 안병무, 서남동, 허병섭, 김관석, 조화순, 박형규 목사 등등 나는 이러한 분들의 소중한 희생과 길트임이 있었기에 우리가 이만큼 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이 전개되면서는 진보 기독교인들은 이제 교회 현장을 눈을 돌렸어야 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 교단이라는 '한국기독교장로회'조차도 보수화 바람에 젖어서 교회성장에만 몰두할 줄 알았지, 기독교 자체에 대한 변혁에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었다. 교단 차원에서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솔직한 입장 하나 제대로 내놓지도 못하고 있잖은가. 보수적인 목사들의 눈치만 보는 것인지 몰라도 장공 김재준의 정신이 무색할 정도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나는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등등 이러한 사회운동의 불필요성을 얘기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러한 사회운동 역시 분명하게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 진보적인 사회운동 단체들과 연대사업으로 펼치면 될 것이다. 우선적으로 더욱 주력해야 될 운동은 기독교 변혁 운동이라고 생각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의 자리는 기독교 자체의 문제부터 살펴야 함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오늘날 한국사회 전체가 개신교에 대해서도 많이 지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도적인 책임성을 지는 진보 기독교인들은 거의 드물며, 사회운동에 골몰한 모숩들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기독교 자체가 변혁되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선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는 이가 없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이야 그렇다쳐도 왜 진보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토록 미약한 것인가. 물론 게 중에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 하지만 새로운 기독교 변혁에 대한 목소리는 진보 기독교인들의 사회운동 목소리에 비해선 너무나 미약한 실정인 것이다.
 
기존의 낡은 기독교 자체를 영혼이 말살되는 <현장>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어

사이비 과학인 창조과학회와 지적설계론이 판을 치며 기존 교회 현장에서 많은 순진한 영혼들을 잠식할 뿐만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까지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끔찍한 현실이건만,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 마인드에는 교회 현장을 <현장>으로 생각하는 마인드가 거의 전무할 정도로 부재하다. 얼토당토 않는 병고침과 이상한 안수기도 각종 부홍회 행사들로 사람들을 미혹시켜 끌어 모으고 헌금을 걷고 하는 가운데 보수 기독교 세력들은 여전히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그저 기독교 바깥의 사회정의 운동에만 골몰해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게 중에는 보수 기독교가 너무 썩어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현재 속한 교단의 배경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분들도 있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는 솔직한 진보가 아닌 <비겁한 진보>라고 생각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진보 기독교 역시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꼴이라서 진정한 진보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양식 있는 사람들은 한국교회의 현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회의를 가지고서 교회를 아예 떠나기도 하는 실정이 아닌가.

내가 볼 때 오늘날의 ‘진짜 진보 기독교’는 생명평화 같은 사회운동의 범주로 넘어가기 이전에 이천 년 기독교 자체를 문제시하며 이를 변혁시키고자하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 세력임을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이른바 깨어 있는 기독교 진영에서 새로운 운동의 주체세력들이 나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생명평화>보다는 <새로운 기독교> 담론으로 전환되어야
 
나의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해서 말씀드린다. 나는 생명평화 담론의 내용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단지 새로운 기독교 변혁 운동의 차원에서 볼 경우, 그것이 지닌 정치적 무기력함을 지적할 따름이다. 따라서 생명평화를 강조하는 것까지는 나 또한 때에 따라선 적절히 그럴 필요가 있다고 보기엔 반대하진 않지만, 생명평화라는 용어가 전체 기독교 신앙을 대표할 만큼의 표어적인 주제로서 채택하는 점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하게 반대하는 입장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

혹자는 내게 말하길, 생명평화를 강조하는 건, 오히려 반발심을 사는 것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되려 기존의 기독교 진영을 품고가기 위한 전략으로서 봐줄 수 없는가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를 품고가기 위해서 구체적인 쟁점들이 드러나지 않은 그런 무기력한 두루뭉술한 담론들로 치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품고 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덮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볼 땐 오늘날에는 <새로운 기독교>라는 표어야말로 (적어도 생명평화 보다는) 훨씬 더 선명성을 드러내는 담론이라고 본다. 기독교 자체의 변혁 없이는 생명평화라는 담론도 7-80년대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이 내세웠던 민중해방 담론의 또 다른 관성적인 계승에 불과할 따름이라고 본다. 우리의 기존 진보 기독교는 여전히 7-80년대식의 기독교 운동을 벗어나 있지 않다. 물론 7-80년대까지는 시대적 절박성이 있기에 나 역시 이를 충분히 계승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이 전개되고부터는 기존의 진보 기독교 운동 시스템은 전면적으로 다시금 새로운 기독교 운동 차원으로서 새롭게 전환되어야 했음에도 지금까지조차 결코 그러하질 못했었다. 통일운동, 생태환경운동 등등 이러한 사회정의 운동들은 어차피 사회연대사업으로서 함께 해나가면 그뿐이다. 문제는 여전히 기독교 자체다. 썩어 있는 기독교에 대한 책임성은 왜 생명평화 담론만큼이나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는가?

더욱 안타까운 현실은, 오늘날 한국의 전체 기독교계를 통틀어서 나의 이러한 주장은 거의 묻혀 있을만큼 전무후무하게 생명평화 담론을 비판적으로 알아차림 하는 분들을 거의 발견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류상태 목사가 기존의 진보 기독교 진영을 비판하면서 기독교 교리의 내용들을 문제삼는 변혁에 대한 우선적인 1차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나의 입장과도 궤를 같이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나 자신의 이런 항변에도 불구하고 아랑곳없이 기존의 진보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생명평화를 줄창 내세우면서 이명박의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펼쳐나갈 것이며, 반면에 이명박의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기존의 보수 기독교들과는 여전히 충돌하는 양상들을 계속 보여줄 것으로 본다. 즉, 보수 기독교인들 역시 자신들의 기독교 신앙이야말로 진정한 <생명평화 운동>이라고 여길 것은 뻔하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변혁의 1차적 쟁점들은 바로 그러한 지점들에 있지 않다. <생명평화> 같은 테제들은 여전히 사회운동 차원에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는 테제들일 뿐이다. 기독교 변혁을 위한 보다 생산적인 핵심 가치의 구현은 낡은 기독교와의 전선을 드러내는 그러한 종교운동의 범주에 속한 것일 때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되어진다.
 
 
 
호치민 (11-02-22 13:47)
 
<생명평화> 담론에 대한 반대입장에 동의하면서, (왜나하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은 일반적인 사회정의 운동의 범주에서도 얼마든지 채택될 수 있는 것이기에 기독교 자체의 문제와 변혁을 다루기엔 분명한 한계가 있기때문..)

하나의 요청사항은 올 초부터 계속 글을 올리셨던 몸학이 기존 세기연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글을 하나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이해가 부족해서인지 솔직히 좀 당황스러우면서, 왜 이 시점에, 무엇때문에 몸학? 란 질문이 들었습니다. 세기연 참여자들도 궁금해 할 수 있을것 같네요.

시간나실 때 부탁드려요.~

    
미선이 (11-02-23 20:21)
 
잘지내시져? 그동안 몸이 좀 안좋아서 꼼짝없이 누워있었네요.
말씀하신대로 몸학에 대한 바로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안그래도 실제로 그런 질문을 받았었습니다. 여기선 단지 아주 간략하게만 말씀드린다면
몸학은 어떤 면에서 새로운 통합학을 지향하는 점이 있어
궁극적으로는 현재의 기존 기독교 신학을 대체하기 위하고자 하는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작업까지 진행하려면
몸학으로서 기독교 성서의 구절들을 풀어내는 작업까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신학이 굳이 필요없게끔 만들도록 해야하는 거죠.
어차피 기독교인들에게는 가장 핵심적인 것이 성서 때문에 좌우되는 것인데,
그러한 성서 해석에 있어 신학이 아닌 몸학이
새로운 설명력을 제공하는 툴이 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미 몸의 현실이 GIO현장이라고 볼 때 굳이 신학이라는 건 낡은 학문에 불과할 뿐더러
점점 불필요한 것으로 전락되어질 것으로 봅니다. 그렇기에 과학에서 양자역학이 뉴턴역학을 대체한 것처럼
몸학 역시 기존의 신학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물론 이같은 의식 개혁은 반세기 정도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암튼 길게 보면 그러한 방향 속에 현재의 기독교 흐름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탱수니 (11-05-06 08:49)
 
어렵네요. 조금만 생각없이 지내다보면 내 안네 갇힌 기독교신자가되고 눈을 넓힌다고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기본 진리는 잊은 채 세상에 나와 있고... 그래서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가 봐요....

잘살아보세 (11-09-05 00:59)
 
동감합니다.

진보인들이 변혁보다는 사회운동에 나서는 것은
현 틀을 깨기가 겁이나서 그런 것 같습니다.

누이좋고 매부좋고라는 말이 있듯이 적당히 양 쪽에 걸쳐서 가려는
보신주의라 생각합니다.

만일 진보인들이 변혁을 주장한다면 그들은 당장 이단이란 틀에 갇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그나마 먹고 살던 것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바로 변혁이라 생각합니다.

이 운동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미선이 (11-09-05 09:10)
 
네에.. 그래서 아무래도 기존의 보수와 기존의 진보마저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 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doctor (13-03-14 17:20)
 
낡은 기독교를 새로운 기독교로 바꾼다는 것은 동학의 말을 빌리면 혁명입니다.
중세에서 근세로 바뀌는 것이고, 어떤 땅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중생들에게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진리를 2000년 전에 못 알아들은 것처럼

    
미선 (13-03-15 05:16)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낡은 기독교를 뒤바꾸는
새로운 기독교 변혁에 많은 관심과 참여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니로 (16-05-16 08:31)
 
생명평화운동이 계급해방과 우리 삶의 현실에서 구체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울리는 꽹꽈리에 지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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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957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766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760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765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857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175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807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761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793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86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1528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86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595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716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62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704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903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776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220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1118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945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1056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1321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1097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328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507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252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1109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656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242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122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1048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1008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41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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