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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글쓴이 : 미선 날 짜 : 12-10-05 03:59 조회(748)
   트랙백 주소 : http://freeview.mireene.co.kr/bbs/tb.php/b001/650 




 

신학에서 몸학으로, God에서 Gio로,

신학은 종말을 고했다(물론 본인의 이 말에 대해 기존의 신학 종사자들과 기독교인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걸로 본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무신론자는 아니다. 그러나 신학이란 개념은 말 그대로 ‘신에 관한 학문’이며, 그 신은 여전히 낡은 유신론 개념에 기반되어 있다. 실제로도 신학에는 공허한 사변놀음이 많다. 무엇보다 잘못된 종교 교리로 인해 숱한 생명들이 죽어야만 했던 인류사의 참혹한 비극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화이트헤드가 언급한 “신학은 인류가 내린 재앙 중의 하나”라는 주장에 철저히 공감하는 사람이다. 서구 기독교 신학은 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신학이란 학문을 폐기한다고 해서 나는 기독교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는 것도 아님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예수도 유신론자였다. 다만 예수의 신 이해는 구약에서 여자와 아이들의 생명들까지 죽이라는 정복적이고 야만적인 야훼신과는 다른 신 존재였으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친밀한 관계로서의 아빠(Abba) 신이었다. 그리고 그 아빠신은 삶과 유리된 저 세상이 아닌 구체적인 땅의 현실 곧 우리의 몸삶의 현실에 함께 하는 존재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신 이해와는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에 또한 새로운 신 이해와 세계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나는 <신학>이 아닌 이를 <몸학>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길, 굳이 신학의 폐기를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건 몸학을 내세우기 위해 하는 얘기가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생각할 때 그동안 신학은 대체로 구체적인 몸의 현실을 상실한 학문이었다고 본다. 그 원인은 성경 자체에 있다기보다 오히려 성경 해석에 작동된 이원론적인 형이상학 곧 그리스 철학의 영육 이원론의 폐해에 기반되었다.

그렇기에 사후 세계 보험인 영혼구원에는 많은 관심을 가질지언정 인간의 일용할 양식, 몸의 고통과 건강 그리고 노동과 여가의 문제에 대해선 많은 외면과 방치가 있었고, 심지어는 방치로 인해 역으로 세속화된 기독교로 진행되기도 했었다. 즉, 세속에선 안락한 삶을 살고 죽은 뒤에는 영생을 얻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 되었던 것이다.

신이 있든 없든 혹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적어도 구체적인 몸삶을 통해 이를 발견하고 몸삶을 통해 깨닫자는 것이 몸학의 가장 큰 핵심이다. 몸이야말로 신이 현존하는 자리인 것이다. 따라서 신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을 통해 신을 아는 것이지 몸 없이 신을 안다고 감히 말할 수도 없다. 몸이야말로 내가 볼 때 모든 종교의 시원적 자리라고 본다. 무엇보다 내가 말하는 신 존재는 기존의 신 개념과는 다른 것이기에 이는 형이상학의 차이에도 기인하는데, 이 차이를 잘 모를 경우 자칫 혼동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은 채로 그래봐야 그 신이 그 신 아니냐는 식으로 단정내릴 지도 모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몸학에서 말하는 신이라는 용어도 기존의 ‘God’이 아닌 ‘Gio’으로 표기한다. ‘Gio’는 신이라는 존재 자체도 단독자나 홀로일 수 없으며, 그 본성상 나와 타자와 관계적으로 엮여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신 개념과는 다르다. 신 또한 ‘우리’라는 나와 타자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Gio(한울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독교의 이름 <몸의 기독교> 탄생

나는 이러한 한울신(Gio) 개념이 지난 인류 역사에서 존재해왔던 적이 거의 없었던 걸로 안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동학에서 말하는 한울님 사상이 바로 이와 비슷하다고 할 뿐이다(화이트헤드의 철학과 동학사상이 비슷하다는 연구는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상응하는 지는 아직 본인으로서 확인한 바는 없다. 다만 대략적인 스케치에서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는 보고 있다).

이제 신학이 아닌 몸학으로서의 기독교라는 점에서 지난 이천 년 기독교 신학의 기독교와는 크나큰 대비를 가질 수 있다. 이제 신(Theos)의 시대는 가고 몸(Momm)의 시대가 왔다고 본다. 몸학의 기독교는 그런 점에서 몸삶 수행 문화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이제 우리가 추구하는 기독교는 더 이상 관념적 기독교일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기독교의 이름을 이름하여, 몸의 기독교 즉, <몸 기독교>Momm Christianity라고 언급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추구하는 바를 좀 더 구체화시킨 것이며 좀 더 명료화한 언급에 속한다.

여튼 기독교 신학이란 학문이 알고 보면 얼마나 이 시대에 뒤쳐져 있는 낡은 학문인지를 새삼 분명하게 부각시킬 필요 역시 없잖아 있다고 본다. 물론 현대신학이 전부 시대에 뒤쳐져 있다고 보진 않지만 적어도 지난 이천 년 동안의 지배적인 기독교 신학과는 분명한 전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나는 몸학의 방향이 좀 더 유용하다고 보고 있다.

한 가지 언급할 것은, 몸학에서의 새로운 신앙생활 측면에서 볼 경우, 몸학이 보는 신(Gio)은 인간들에게 유신론자냐 무신론자냐를 묻는 그런 존재로 보질 않기 때문에 유신론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등식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술 논쟁에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은 여전히 부차적이라는 얘기다. 몸학에서의 새로운 신앙생활을 추구한다고 했을 때 가장 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의 몸삶 추구이다. 이것이 몸학 신앙에 있어 가장 일차적인 사안이다. 신을 믿더라도 우리는 예수의 몸삶을 통해 믿는 것이지 곧바로 신을 믿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필요는 전혀 없다.

몸의 기독교에서의 가장 중요한 신앙 핵심과 성서관

우리에게 그 견본이 되는 것은 예수의 몸삶이고 그것은 성서 안에 담겨져 있다. 문제는 성경을 읽는 방법 역시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형이상학의 수혈을 받게 되면 성경을 읽는 방법도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된다. 절대 고정불변의 교리를 전제할 필요도 없으며, 성서의 문자 하나하나가 모두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자세 역시 불필요하다. 적어도 모든 솔직한 의문들을 열어놓고 성경을 읽는 자세가 필요하며, 합리적인 건강한 소통 방식으로서 성경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성경은 매우 특별하고도 독특한 경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면에서 경전답지 못한 경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그 안에 생명죽임의 흐름과 생명살림의 흐름이 모두 다 깃들어 있다. 심지어 여자든 아이든 모조리 죽여라는 생명죽임의 흐름이 하나님의 말씀인 양 포장되어 있기도 하다. 성경 안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들 온갖 것들이 잡동사니처럼 펼쳐져 있다. 그것은 마치 이 세상 자체인 거울과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경전답지 못한 경전이라고 언급한 것이며, 성경을 종교 경전이라고 하기에는 별별 얘기들이 다 들어 있는 책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게 중에는 오류가 있는 구절들도 꽤 있다. 이쯤 되면 성경이란 게 우리 사는 세상이야기들과 큰 차이가 없지 않냐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다행히 성경의 그 많은 잡동사니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의로운 소수 곧 자각인의 흐름들이 있으며, 그 중심 모델이 바로 예수로 고백되어 있다. 예수는 기독교인의 몸얼 발달에 있어 표본이 된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의 몸얼과 몸삶을 따르는 자들을 의미한다. 내겐 그러한 예수가 진정한 의미로서의 얼짱이요, 몸짱인 것이다.

현재 새로운 기독교를 건설하는 작업에는 바로 이러한 성경공부 교재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아직 이러한 방향의 교재는 전무하게 없으며, 몸학의 방향으로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이도 거의 없다. 그러한 방향에서 우리는 예수의 몸삶을 중심에 놓는 성경공부가 충분히 요구되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왜 <예수>인가?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굳이 “왜 예수인가?”를 질문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물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몸학은 왜 예수를 선택했는가? 우선 내가 말하는 예수는 예수사건, 예수운동,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 예수의 몸삶, 예수의 라이프스타일 등등 이 모두가 동의어로 봐도 무방하다. 이는 예수를 명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동사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존재는 동사다. 동사는 항상 역동적인 과정에 놓여 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 살았던 삶을 갖고서 말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사느냐는 것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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