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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글쓴이 : 미선 날 짜 : 13-02-18 02:53 조회(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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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1998년 전문]
 
 

1. 들어가며
2. 화이트헤드 말하는 철학의 유용성
3. 민중신학과 맑스주의
4. 민중신학의 민중론 비판
5. 유기체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세계관
6. 민중신학을 위한 대안적 모색
7. 민중신학에 대한 그 밖의 얘기들
8. 나오며
<참고도서>

 
 
1. 들어가며
 
이 글을 읽는 식자(識者) 중에 본 논문의 제목인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이라는 타이틀을 보고서는 미처 읽어보지도 않은 채, 약간은 질색을 표명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그것은 무슨무슨 사상에서 본 무슨무슨 비판 따위의 글에 대한 거부감일 터인데, 이러한 제목의 글들이 대부분의 논문의 주제 중에서 제일로 궁색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학문적 조류의 유행에 편승하는 글로만 생각하는 선입견 때문에 생기는 거부감이 아닌가 하고 여겨진다. 또한 필자가 <패러다임>이라는 학문적 유행어를 남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겠으나 이 글을 끝까지 읽어본다면 그런 우려는 충분히 불식시키고도 남음이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한 거부감과 우려 이전에 우리는 먼저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민중신학이 현재 우리가 배우고 익히는 학문적 세계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의 철학은 종래의 서양철학사에서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이며, 우리를 무지의 잠에서 깨우게 하는, 20세기 지성사의 거대한 봉우리를 점하고 있다. 화이트헤드가 20세기초의 인물임에도, 그의 사상은 난해해서 그런지, 당대에는 알아보는 이가 드물었으며, 세월이 흐르고 후대에 가서야 화이트헤드 철학의 위대성은 점차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던 것이다.[1]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등등 20세기 첨단의 물리학이 밝혀낸 사실들에 의해 그 진가가 계속적으로 예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세기말을 살아가는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역작인 「과정과 실재」가 번역된 것은 겨우 90년대 초반이었는데, 화이트헤드에 대한 연구나 학회 모임들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물론 전체 학문의 풍토에서 보면 화이트헤드에 대한 인식이 고루하지는 못해도 그의 심원한 철학의 여정에 한번이라도 발을 담궈 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화이트헤디언이 되고자 한다. 물론 진정한 화이트헤디언이라면 화이트헤드에 대한 맹종보다 비판적 극복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하면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1929)가 세상에 나온 지 거의 70년이 지났는 데도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아직도 첨단의 진보적인 학문의 영역에서-그것도 엄청 중요하게- 취급받고 있는 학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배움의 과정에서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지성의 궤적임을 명심하자.

또한 한편으로는 그동안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의 글이 다수 있었는데, 굳이 또 민중신학을 비판할 필요가 있는가? 라는 생각을 하는 이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의도하는 바는 민중신학이 갖고 있는 해석학적 베이스에 관한 비판적 고찰을 통해 민중신학의 근본적인 헛점을 들춰내는 작업이다. 즉, 민중신학이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밑변들을 화이트헤드의 철학이라는 텍스트를 갖고 점검함으로써 민중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찰을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서 왜 하필 화이트헤드 철학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화이트헤드 철학이 가지는 학문적 성격 때문이다.[2] 제2장부터 언술할 것이지만, 이는 민중신학이 은연중에 깔고 있는, 민중신학이 상정해놓고 있는 이 세계와 사물을 보는 원리들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며, 그럼으로써 그 한계와 방향성을 설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뉴턴 물리학이 뉴클리드의 기하학적 세계관을 은연중에 전제하는 오류를 범했 듯이,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인 실재로 오인하는 잘못을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라고 한다.[3] 나는 이런 치명적인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가 민중신학에도 다분함을 -일부는 이미 그 전철을 밟고 있음을- 이 논문에서 밝힐 것이다. 그렇기에 본론으로 들어가면 알겠지만 지금까지의 '민중신학 비판'에 대한 글과는 사뭇 다를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 민중신학이 의도했던 바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 아닌 우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으며, 나의 지론이 의도하는 최종 목적은 결국 이원론적 철학을 밑변으로 하는 전통신학의 장점과 사회변혁을 놓치않는 민중신학의 장점들을 화이트헤드의 철학 안에서 조화롭게 지양하는 초석을 놓고자 할뿐이다. 그 시도는 이 논문의 대안적 모색을 제시한 제6장에서 얘기할 것이다. 이 실험적인 시도는 민중신학이 조직신학적인 작업을 가지기 위한 첫 발걸음에 불과하다.

90년대 들어서 민중신학은 보수화 현상과 더불어 더더욱 계속 제자리를 도는 것 같은 지리멸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것은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현장과의 괴리감이 주는 요인이 아주 컸다고 본다. 이런 싯점에서 민중신학에 대한 나의 작은 글이-비록 일개 학부생의 글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없지 않아 있다. 거듭 얘기하지만, 난 민중신학을 사랑하며,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민중신학이 다가올 21세기에 전통신학을 대체할, 항구적으로 복음의 빛을 밝히는 세계적인 신학이었으면 하는 소원이다. 이 자리에서 밝히는 거지만, 난 민중신학 때문에 학교에 들어왔고, 민중신학 때문에 다른 학문의 세계도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 민중신학이 없었더라면 결코 이 자리도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2.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철학의 유용성

2, 1.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간단 소개.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여기서 전부다 논할 수는 없다. 그의 웅대한 유기체적 세계관을 고작 몇 페이지에 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자칫 그의 정교한 사상을 곡해할 우려마저 있다고 본다. 여기서는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철학의 유용성, 즉 형이상학이 다른 학문과의 연관에 있어서 가지는 의미와 특히 철학이 신학에 어떠한 학문적 메카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화이트헤드 철학이 단숨에 요약되는 그런 얄팍한 철학은 결코 아니기에 논의상 피력하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대한 대략의 설명들은 빈약하더라도 이해하기 바라며 읽어나갔으면 한다.[4]

오늘날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과정철학>Process Philosophy이라고 일컫지만 화이트헤드 그 자신은 <유기체의 철학>Philosophy of Organism이라고 명명했다.[5] 유기체의 철학은 사변철학, 즉 다름 아닌 형이상학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전까지의 플라톤의 철학이나, 포이에르바하와 맑스가 입에 거품을 물고 비판했던 독일 고전 관념론과는 다른 형이상학임을 알아야 한다.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사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보면서,[6] 이전까지의 서양철학이 갖고 있었던 오류들을 지적하고는 플라톤的이면서도 플라톤을 넘어서는,[7] 새로운 형이상학을 제시하였다. 그의 유기체의 철학은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는 두 패러다임을 극복하며 양쪽을 통일시킨다.[8]

그는 이전의 서양 철학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그 자신의 독특한 용어들을 창조하여 정밀한 유기체적 세계관을 구성한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그 자신의 창조적 용어들로 인해 치밀할뿐더러 아주 난해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 이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뜻과 관련한다.[9] 화이트헤드는 서양철학의 한계를 명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전에는 찾아 볼 수 없는 새롭고 참신한 용어들을 구사하며, 놀랍게도 그것은 감탄을 자아 낼만큼 정확한 언명을 포착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2, 2.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형이상학과 그 유용성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형이상학이지만, 결코 비역사적이거나 사변적이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생의 위대한 결실인 하버드 대학시절에 저작된 이 형이상학은 그가 수 십 년간 쌓아 온 케임브리 지 대학시절의 수리논리학과 런던 대학시절의 과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 이다. 알다시피 그의 대표작인 「과정과 실재」는 수학과 물리학적 개념의 기초 위에 서 있는 작품이다. 그의 저서들 중에서 이 「과정과 실재」를 비롯하여 「과학과 근대세계」, 「관념의 모험」은 그의 형 이상학 체계의 대표적인 3부작이라 불리는데, 그는 먼저 「과학과 근대세계」(1925)에서 이전의 세계관 인 뉴턴 물리학이 전제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의 오류를 그의 철학적 구도에서 명석하게 밝혀내고, 그 다 음 작업으로 「과정과 실재」(1929)에서 그 자신의 철학적 구도인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서술하며, 마침내 「관념의 모험」(1933)에서는 그 자신의 형이상학을 인간 경험 의 문명세계에 깊숙히 적용시켜 유기체의 철학을 검증시킨다.[10] 그렇기에 그의 철학은 합리적 측면과 경험적 측면을 함께 공유한다고 봐야 한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사변철학이란 우리의 경험의 모든 요소를 해석해 낼 수 있는, 일반적 관념들의 <정합적>이고 <논리적>이며 필연적인 체계를 축조하려는 시도로써, 그 <해석>은 경험의 여러 사항들이 그 철학적 도식에 의해 <적용가능>하고 전반적으로 해석이 불가능한 사항이 하나도 없는 <충분>한 것 이어야 한다"고 말한다.[11] 이것이 바로 사변철학의 이상인데, 여기서 <정합적>, <논리적>은 합리적 측 면이요, <적용가능>과 <충분>은 경험적 측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12]

사변철학(형이상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로써의 학문이며, 충분히 예증된 최선의 선택으로서의 올바른 사변철학(형이상학)은 다른 학문의 오류를 검증하는 잣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이상학의 실제적이 목표 가운데 하나는 명제의 정확한 분석이다. 그것은 단지 형이상학적 명제일 뿐만 아니라, <오늘 저녁의 식사에는 쇠고기가 있다>라든지, <소크라테스는 죽는다>와 같이 전적으로 일상적인 명제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어떤 특수 과학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는 사실들의 한 유 (類)genus는 그 우주에 대한 어떤 공통의 형이상학적 전제를 필요로 한다."[13]

그렇다면 우리는 물리학, 생물학, 윤리학, 사회과학 등 모든 과학은-그 학문의 주체자들이 인식하든 못 하든 간에 상관없이- 우주의 구도를 밝히는 형이상학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럼, 신학은? 신학이라고 용가리 통?가? 그럴 수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기독교 신학 사상사를 조금만 인지해도 알 수 있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3. 철학과 조직신학의 상관성

우리는 중세신학의 교부들이 조직신학적 작업을 위해 희랍의 이원론적 관념론을 신학의 베이스로 삼고 그 토대를 세웠었던 기독교 사상사가 있었음을 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밑변으로 삼고 신학의 체계를 세웠을 때, 기독교 신학은 본격적인 조직신학적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 다. 이러한 철학의 신학화 작업으로 인해서 기독교 신학은 그 체계의 명료함을 가지게 되었다. 중세에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였다지만, 실은 신학은 어쩔 수 없이 항상 철학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즉, 조직신학이라는 학문자체가 그 철학적 세계관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근대와 현 대에 들어서도 마찬가지로, 바우어와 스트라우스는 헤겔철학을, 바르트와 부룬너는 키에르케고르의 실존 주의를 안다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불트만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와 연결되고, 틸리히는 과정철학과 유사하다고 평가되며, 정치신학자 몰트만은 블르흐와 연관된다. 저마다 이름있는 신학자들의 신학사상은 그 근저에 일정의 사변적 구도를 갖고 있었다. 이처럼 학문을 하는 당사자들이 인식하든 안하든-또는 그 들이 의도적으로 철학을 수용하든 안하든 간에- 그 나름대로의 이 세계를 보는 원리들은 어쩔 수 없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세계를 인식하는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갖고 있 다는 필연적 사실 때문에 나타나는 학문적 현상이다.

신학자는 그 자신이 전제하는 세계관의 구도 하에서 신과 인간과 성서와 모든 사물을 얘기하는 것이 다. 조직신학은 전체 신학의 중추적 뼈대요, 철학은 조직신학에게 명료성을 부여하는 필수적 학문적 장 치이다. 신학에서 세계관 또는 철학은 바로 이러한 영역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학이 철학보다 하위개념의 학문이거나 저등하다는 것을 말하는 게 결코 아니라, 철학과 신학이 갖는 학문성 자체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철학은 신학의 밑변이며, 신학은 그러한 밑변에서 이 세계에 대한 비전을 기독교적으로 이끌어내는 학문인 것이다. 철학이 설계도라면, 신학은 그 설계도에 따른 기독교라는 간판을 붙인 건물이다. 그렇기에 설계도에 오류가 있다면 건물에 오류가 있음은 자 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이 학문적 작업을 위해서 철학의 수용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가능한 한 충분히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철학을 최선의 선택으로써 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새로이 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14] 과정신학자인 데이빗 그리핀과 존 캅은 말하기를, 철학은 지금까지 신학에 철학 자체의 오류로 인하여 기독교에 해를 끼쳐왔지만 근본적으로 이것이 곧 철학의 불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며, 철학을 신학에 적용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올바른 철학으로서 어떤 철학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15] 또한 철학과 신학은 엄연히 다른 학문이지만 그것은 이 세계를 두고서 전자는 논리적인 언명으로, 후자는 기독교적인 용어로 말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엄밀히 말하면 철학(일반계시)과 신학(특수계시)은 나뉠 수 없다라고 말한다.[16]

그렇기에 종교에 대해서 논의함에 있어서도 화이트헤드는 "발생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불가결하게 상응하는 일반적 개념들을 발견해 내고자 하는 과학"으로써의 형이상학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종교의 권위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이 우주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포괄적인 형이상학 위에 세워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17] 왜냐면 종교가 명료성을 위한 <꿰뚫음>penetration을 추구하기를 그칠 때에 는 그것은 저급한 형태로 전락하기 때문이다.[18]

여기서 알 수 있듯이, 화이트헤드에게 있어서 형이상학이란 바로 일종의 이 세계를 보는 철학적 원리 또는 사변적 구도인 <세계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 4. 형이상학과 패러다임

그런데 여기서 그 자신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 경험적 사례가 발생하고 그것이 누적된다면, 이것은 그 당사자에 그 자신의 세계관의 수정을 요구한다. 그것은 일부를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관 전 부를 다시 재고하여 새로운 세계관의 구도를 짜야 되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면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형 이상학'이란, 바로 토마스 쿤(Thomas Kuhn)이 말한 일종의 <패러다임>paradigm이라는 개념과도 통한 다고 볼 수 있다. 화이트헤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천>practice속에서 발견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형이상학적 기술metaphysical description 범위 안에 있어야 한다. 형이상학적 기술이 <실천>practice을 포섭하지 못할 때 그 형이상학은 불충분한 것이고 수정을 요하는 것이 된다. 우리들이 자기의 형이상학적 학설에 계속 만족하고 있는 한, 형이상학을 보 완하기 위해서 실천에 호소하는 일은 있을 수 없게 된다. 형이상학은 실천의 모든 세부에 적합한 일반 성의 기술일 뿐이다.(Metaphysics is nothing but the description of the generalities which apply to all the details of practice)"[19]

그렇기에 그는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철학은 온갖 지적 탐구 중에서 가장 유력한 학문으로써, 그것은 석공이 한 개의 돌을 운반하기도 전에 대성당을 건립해 내는가 하면 비바람이 그 아치를 훼손시키기도 전에 그것을 무너뜨리기도 하는, 정신적 전당의 건립자일 뿐 아니라 해체자이기도 하다".[20]

「과학혁명의 구조」(1962)라는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화이트헤드는 자신의 과학철학에 대한 통찰력으로 이를 간파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기까지 하다. 물론 여기서의 철학이란 궁극적으로 형 이상학을 의미한다. 철학은 인간의 제약된 언어로 무한한 이 우주의 원리를 밝히려는 작업이기에[21] 그 것은 이 우주의 모든 전반적인 현상과 연관될 수밖에 원리 체계인 것이다.[22] 우리는 형이상학이 바로 모든 과학의 해석학적 기초이론이라는 점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형이상학, 즉 우리가 전제하는 세계관에 오류가 있다면 문제는 근본적인 심각함을 야기한다. 학문의 오류를 밝힐 때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 바로 그 학문이 가진 사변적 구도의 정체를 밝히고 그것의 진위여부를 검증하는 것이다.
 
2, 5. 뉴턴 물리학의 오류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 대표적으로 뉴턴 물리학의 오류를 들어 설명한다. 화이트헤드가 말한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는 어떤 의미에서 구멍 뚫린 세계관을 전제하는 오류를 뜻한다. 뉴턴 물리 학은 뉴클리드적인 기하학적 세계관을 아무 비판없이 전제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것은 물체가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하학적인 좌표상에서 단순히 위치를 점거한다고 보는 관(觀)인데,[23] 뉴턴의 물리학은 시 간과 공간이 뒤틀릴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배제하고 물체의 역학구조를 규명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뉴턴의 물리학은 당연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서 그 한계가 드러나는 경험적 사례로 밝혀진다. 그럼, 과학만 문제가 있었나, 앞서 말했듯이 신학이라고 용가리 통뼈는 아니다. 서구의 전통 기독교 신학이 전제하는 철학이라는 설계도 또한 구멍이 뻥뻥 뚫려있다. 이것은 종교를 덧입고 있기에 더더욱 심각한 것이다.

2, 6. 서구신학의 오류

민중신학이 비난하는 서구신학의 오류는 바로 서구신학이 수용한 이들 철학적 세계관의 치명적 구멍에 다름 아니다. 서양철학이 지금까지 플라톤의 아류였듯이, 기독교 신학이 밑변으로 삼아왔던 철학은 바로 플라톤적인 관념론, 즉 이원론이 줄곧 그 베이스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비역사적이고 타계적인 신 앙의 행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즉 전통 기독교는, 이 세계를 정신(영)과 물질(육)로 나누어 물질은 터부 시하고 정신만 추구하는 희랍철학이 여지껏 기독교 신학의 체계를 지탱해왔으며, 그렇기에 '영혼불멸설' 이니 하며 하나님을 '초월자'로만 파악하는 요지부동의 자세를 보여 왔던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기독교 가 플라톤의 철학을 재빨리 흡수하여 서구신학의 근저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신학이나 실 존적 사실로서의 신앙이 그릇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말한다.[24] 더군다나 심각한 점은 그 역사적 과정 에서 기독교는 그 자신의 미숙한 환상들과 분명한 결별을 하지 않아서 곤란을 겪어 왔었다는 사실이 다.[25] 전통 서구신학이 파악했던 <초월적 창조자>로서의 신관(神觀)은 기독교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종교사상에도 도입되어 있으며, 이것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에 온갖 비극을 야기시켰다.[26]

여기서 우리는 종교가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도 심각한 사태임을 인식해야 한다. 여지껏 기독교의 도그마는 사람을 살리기도 했지만 또 그에 반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던가. 종교야말로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람을 해하는 엄 청난 독단적 무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복음은 이러한 잔인함과 끔찍함을 함께 갖고 있었 다. 그리고 그 잔인함과 끔찍함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복음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2, 7. 관념의 모험

우리가 화이트헤드에게서 배울 점은, 누구보다도 화이트헤드 자신은 유기체의 철학이 어디까지나 가설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철학에 대한 절대성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독단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그는 만의 하나 경험적 측면에서 유기체의 철학 체계와 맞지 않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유기체의 철학은 마땅히 그리고 과감히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화록」이라는 책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상의 생명력(vitality)은 모험에 있다. 이런 생각은 내가 평생을 두고 해 온 말이다. … (중략) … 관 념은 끊임없이 새로운 국면에서 고쳐보도록 해야 한다. 어떤 참신한 요소를 때때로 그 속에 끌어들여 야 한다. 이를 중지할 때 관념도 정지되고 만다. 삶이 의미하는 바는 모험이다.(The meaning of life is adventure)"(Lucian Price, Dialogues of Alfred North Whitehead, The New American Library, 1956, pp.205-206.)[27]

우리나라의 화이트헤드 철학의 제일의 전공자인 연세대 철학과 오영환 교수는,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이 갖는 탁월한 점은, 경험 과학에 대한 기초적 문제들을 철저하게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 또한 과거의 많은 철학자들과 달리 자신의 주장의 절대적 진리성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러한 견지에서 그의 <유기체의 철학> 즉, 그의 형이상학 체계는 현대의 전자장 이론, 상대성 이론, 양자역학 등의 물리학적인 새로운 개념이나 생물학의 새로운 식견과 모순되지 않을뿐더러 그것들과 인간 사회를 통일적으로 이해하는 하나의 창작적인 넓은 구도이며, 그렇기에 그의 형이상학은 앞날의 우리의 주체적 실천에 지표를 제공해 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증거에 따라 창작을 다시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구도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28]

실로 화이트헤드는 그 자신의 구도 속에서 모든 학문적 담론에 대해서 열어놓고 있는 진정한 진보적인 학자라고 표현하고 싶다. 당시 화이트헤드가 활약하던 20세기 초반에는 학계 전반에 논리실증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으며 반형이상학적인 경향이 농후한 풍토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화이트헤드는 사멸된 것으로 알았던 형이상학을 건져내어 가장 심오한 20세기 지성의 역사를 이끌어냈다. 시대적 불협화음과 화이트헤드 철학 자체의 난해함은 결국은 20세기 후반에 갈수록 <유기체의 철학>의 진가가 드러내기 시작하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철학계에서 논리실증주의를 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지한 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포스트모던이 유행하는 이 시대에 도대체 유의미적인 확실한 명제라는 것이 한 번이라도 존재했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를 어떻게 객관적으로 증명할 것인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이 우주를 지배하고, 드디어 20세기 과학마저도 절대적 지식을 포기하고 상대적·확률적 지식으로만 만족하는 마당에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간결명료함을 우리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의 유한성을 자각하고 무한을 향한 끊임없는 모험이 필요한 시점이다.
 
2, 8. <논리실증주의>의 꼴불견

근데, 여기서 잠깐 반형이상학을 지향했던 논리실증주의에 대해서 조금 짚고 넘어가자. 논리실증주의는 학문의 베이스, 즉 형이상학을 배제하고서 그 학문의 논리적 언명만을 따지는 학문이다. 1930년대에 비엔나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 팔푼이들은 경험을 초월한 모든 형이상학의 명제는 허튼소리에 불과하다고 떠들어댔던 것이다. 그러나 경험자체가 인간의 인식이라는 형이상학적 영역과 맞물려 있는데 어떻게 경험만 딱 떼어놓을 수 있는가. 논리실증주의는 과학의 기초적 토대인 사변적 구도를 배제하고서의 논리적 언명의 진위여부만 고려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논리실증주의는 진정한 경험주의가 아니라고 봐야 한다.[29]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R. Popper) 또한 논리실증주의의 주장은 오히려 자연과학마저 전멸시키는 우를 범하게 된다라고 지적한다.[30] 형이상학이 가설 일 수밖에 없듯이 모든 과학 또한 불완전한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기에 실증주의 철학자 꽁트(Auguste Comte)가 창시한 사회학 같은 분야의 학문이 경험적이고 확실한 사실들의 나열들과 체계를 얘기하는 것 같으나 결코 그렇지 않으며 이또한 확률적 지식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냉정히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민중신학자들을 비롯하여 민중운동 가들은 가끔은 이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다. 왜냐면 어떤 이데올로기도 <절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설령 "민중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단지 우리 앞에는 최선의 <선택>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인간사에서 객관성이란 절대가 아니라 최선의 선택으로서 지지받는 확률적 성격을 말하며, 그것의 진짜 사실 여부는 오직 신만이 알뿐이다. 고로 사회학 또한 어쩔 수 없는 픽션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화이트헤드의 말대로 끊임없는 검증으로서의 모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단지 이론에 대한 경험적 사례를 고찰하여 여러 이론들을 반추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화이트헤드식의 표현대로 하자면, 사회학 같은 실증주의적인 학문은 <현시적 직접성>presentational immediacy의 차원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논리실증주의는 <인과적 효과성>causal efficacy을 배제한 현시적 직접성만을 다루기에 그 자체로 오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왜냐면 이것은 경험주체의 <합생>concrescence에 있어서의 후기의 파생물인 현시적 직접성이, 근원적인 요소라고 생각되는 인과적 효과성보다도 더욱 명석하게 우리의 의식에 의해 조명된다고 하는 법칙을 무시하기 때문이다.[31] 우리가 경험적으로 지각하는 모든 세계는 전부 현시적 직접성의 차원이며, 그것은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가 인과적 효과성을 거쳐서 우리의 의식에 취사선택되는 최종적인 스크린이기 때문에 인과적 효과성을 무시한 현시적 직접성이란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실증주의자들도 알고보면 근원적 사실에 있어서 현시적 직접성의 우위성이라는 착각에 빠져, 근원이 아닌 허상의 진위를 판가름한 꼴불견을 연출한 셈이 된다.

2, 9. 민중신학에도 철학적 작업이

이제까지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통해서 철학의 유용성과 신학에 있어서의 철학적 성찰의 중요 성을 알아봤다. 즉 신학이 철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그 자신의 구도에 명확성을 부여하는 것이며, 신 학이 의도하는 본연의 색깔을 더 확연히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물론 철학이 주는 효과를 일찍이 캐치했 던 신학자는 앞서 얘기했듯이 본격적인 조직신학적 작업을 펼쳤던 중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였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근간으로 기독교의 신학을 조직적으로 체계화하여 무엇보다 신학이라는 학문 적 세계를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었다. 조직신학적 작업이라는 것은 바로 철학의 신학화, 곧 철학적 신학 을 뜻한다.

그렇기에 민중신학이 그 자신의 세계를 명확히 하고 조직신학적 작업을 전개하려면 철학이라는 학문 은 필수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그러한 작업은 민중신학이 전통신학을 대체하는 세계적인 신학으로 나서 기 위한 발판이요, 다른 외부의 비판에 대한 굳건한 보호막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철학은 이 세계를 보는 원리, 즉 <세계관>(철학의 'world view'은 곧 'cosmology'를 말한다.)이다. 물론 화이트 헤드가 말한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도 바로 이 <세계관>을 의미한다.[32]

2, 10. 민중신학 유감

문제는 바로 철학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치명적 결함이다. 이 결함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전통신학 의 폐단이 바로 그 베이스로 하고 있는 철학의 치명적 결함에서 나왔듯이, 전통신학에 대해 反신학을 주장하는 민중신학에는 오류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민중신학이 갖고 있었던 세계관 즉 철학적 바탕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는 작업이며 동시에 민중신학이 '잘못 놓인 구체 성의 오류'라는 전철을 밟지 않았는지를 알아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감스럽 지만 민중신학도 통뼈는 아니었다.

우선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을 살펴보면 민중신학 또한 많은 맹점들을 지녔음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 다. 민중신학에 대한 많은 비판적 사례들은 하나같이 이점을 예증한다고 봐야한다.[33]그렇기에 나는 민 중신학이 어떤 직접적인 경험의 사실에서 헛점을 보였다면 그 해석학적 기반에 대한 전면적인 재수정과 고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된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나는 지금 민중신학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적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다. 일개 학부생의 이러한 주장이 당돌하게 들릴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글을 끝까지 다 읽어본다면 적어도 나의 이런 캐치프레이즈와도 같은 선언이 어느 정도 이유 있음을 인지하 리라고 확신한다. 나의 지론은 기존의 민중신학이 갖고 있는 형이상학적 전제들을 살펴봄으로서 그 뿌 리를 캐는 작업이다.
 
2, 11. 철학은 학문의 드러나지 않은 <음모>plot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이 수학적인 패턴과 제휴한 시(詩)와 유사하다고 했다.[34] 이것은 철학이 모든 학문 의 배후에 자리한 논리적 체계의 학문이라는, 직설적이지 않고 메타포적이라는 면에서 시와 유사하다는 것이리라. 그런 차원에서 나는 철학은 곧 <음모>plot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학문이 궁극적으로 상정 하고 있는 세계관, 즉 하나의 숨겨진 저의, 또는 사변의 정체와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철학은 모든 학문의 배후에 감추어진 음모다. 그렇기에 학문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학문의 음모를 밝히는 작업을 내 포한다. 자, 그렇다면 도대체 민중신학은 어떠한 음모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자. 민중신학은 어떠한 철학 적 원리를 전제하고 있는가.[35]

2, 12. 빈틈없는 이론이 빈틈없는 실천으로

나는 이를 살펴봄으로써 민중신학을 올바로 세우는 작업은 바른 실천을 갖기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이 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바른 인식에서 바른 실천이 나오기 때문이다. 빈틈없는 형이상학은 경험의 적용에 있어서도 빈틈없이 나타난다. 인식과 실천은 구분이 되면서도 구분 이 안되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알면 곧 행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사람의 앎(이론의 영역) 은 사람의 생활(경험의 영역)로 직접 표현된다고 본다. 나는 역사적으로 인식과 실천이 단 한 번이라도 분리된 적이 있었는가 의심스럽다. 인식과 실천은 단 한 번도 구분된 적이 없었다. 인식과 실천의 갭은 인식 그 자체의 오류에서 나타난 현상이며, 열매를 맺는 실천을 향한 과정상의 노력들은 완결된 삶이 아니기에 단지 미완으로 보였을 뿐인 것이다. 이미 그 이론에 한계가 있다면 실천에도 당연히 그 한계 가 있다고 봐야한다. 관념론이 이론우위였기에 잘못이 아니라 관념론 자체의 오류에서 비롯하여 실천에 대한 무관심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 실천이 우위고 이론이 나중인가 생각하겠지만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이론 없는 실천이란 있을 수 없다. 분명히 얘기하지만 태초에는 이론이 먼저고 실천이 나중이 며, 이론과 실천은 둘 다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론이 실천을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또한 완전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 실천 없는 이론이란 불완전한 이론일 뿐이다. 실천은 이론을 예증 하는 영역이다. 바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바른 실천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민중신학의 빈 틈없는 이론을 향한 끊임없는 검증의 모험이 필요한 것이다. 민중신학의 빈틈없는 실천을 위하여!.

3. 민중신학과 맑스주의

3,1. 맑스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무신론

맑스주의가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유물론적 세계관은 "인간은 인간에게 하나님이다"라는 포이에르바하의 무신론에 기초하여 있다. 결국 포이에르바하의 무신론과 맑스의 유물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너무나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맑스는 헤겔의 철학을 비판하는 서두에서 "모든 비판은 종교에 대한 비판을 그 출발점으로 해야 된다"고 선언 하며[36], 종교비판을 통해서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전개한다.

3, 2. 어정쩡한 민중신학

안병무는 민중신학이 해방신학과 달리 맑스주의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주: 민이) 이것은 아무 래도 거짓말 같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민중신학은 맑스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어정쩡하게[37]자리 잡은-혹은 양자를 어정쩡하게 포섭한-학문이었다고 생각한다.[38] '어정쩡하다'는 표현은 민중신학이 겉으 로는 맑스주의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 해석학적 전거들은 유물론적인 냄새가 아주 농후한데, 민중신학자들은 이에 대한 학문적 토대로서의 사변적 구도를 명확히 정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어정쩡 하다는 것이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사변적 구도를 세운다는 것은 학문적 공사의 기초작업이다. 그러한 학문적 작업이 모호한 이상, 민중신학이 신학인지 사회과학인지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고 비판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흔히들 진보적인 신학자들이 보수적인 신앙인들의 예수像을 논할 때 예수의 인성은 예수의 신성보다 덜 강조되며, 그것은 예수가 비역사적인 인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구실만 할뿐이라고 비판 한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민중신학에서의 신학이란 꼬리표도 민중신학이 사회과학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구실일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신을 얘기한다지만, 유효한 것은 사회·경제사적인 해석이었잖는가. 물론 그러한 사회학적 해석이 가져다주는 공헌들을 인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서가 사회·경제사적인 해석으로 다 해결되는 책일까? 인간의 내면을 정화시키는 종교적 영성을 우리는 사회학적인 성서해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가? 민중교회의 주일예배시간은 왜 그리도 파리만 날렸던가?

3, 3. 민중신학과 맑스주의

민중신학이 근간으로 하는 철학적 바탕에 대한 체계적 정리가 없었더라도 지금까지 드러난 민중신학의 개념들을 살펴보면 민중신학이 맑스주의를 전제하지 않는다고 해도-아무리 프롤레타리아와 민중이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하더라도[39]-이 세계를 해석하는 사상적 기반은 맑스주의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본다. 솔직히 그렇게 볼 여지는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인간의 죄가 구조악에서 나왔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구조결정론, 곧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유물론적 발상이 아닌가. 이것은 최근의 민중신학의 경향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40] 사회경제사적 성서해석 자체도 유물론적 시각이며, 그렇기에 민중신학은 무엇보다 정치, 경제, 사회 제도의 개혁을 우선시하는데, 이러한 구조악의 척결은 사회변혁을 우선시하는 맑스주의와 지향하는 바와 흡사하다고 본다. 80년대 후반 세계사적인 흐름이었던 맑스주의의 위기에 대해 민중신학계 또한 이에 대해 민감했던 점을 보더라도 민중신학과 맑스주의가 결코 아무 상관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 맑스의 인간이해 자체가 사회학적 결정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한 민중신학이 만약에 맑스주의와 유물론과 아무 상관이 없다라고 한다면, 민중신학에 나타나는 유 물론적 흔적들에 대한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41] 또한 민중신학이 해방신학처럼 맑스주의를 사회 과학 분석의 방법론으로만 받아들이고 맑스주의가 밑변으로 하는 유물론적 세계관은 거부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민중신학이 여태껏 전제했던 철학적 세계관은 무엇이었나를 묻고 싶다. 이에 대한 명확한 입 장 표명을 한 번이라도 민중신학은 했었던가. 이러한 입장 표명은 오히려 유물론적 세계관을 수용하겠 다는 진영에서만 나왔을 뿐이었지 않은가.

물론 맑스주의 안에도 여러 다양한 맑스주의 이론들이 있다. 이것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현대의 맑스 주의는 물질에 대한 개념보다 실천(=투쟁, 노동)에 대한 우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둘 것은 이러한 현대의 맑스주의는 무엇보다 실천의 우위성을 말하면서도 물질이 의식을 초월한다라는 명제에 대해서 결코 부정하지는 않으며, 단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실천임을 강조 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초기 맑스가 철학의 <세계해석>보다 <세계변혁>을 주창할 때부터 필연적으로 예견된 귀결 이었다. 즉 맑스주의에 기초된 유물론이라는 철학 자체가 이미 사회적 실천을 향한 토대로서의 이론적 성격을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3, 4. 민중신학의 유물론 수용

민중신학에서 특히 서남동의 신학을 돌아볼 때에, 서남동의 전체 학문의 여정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끼쳤던 철학사조는 실존주의일 수 있겠지만[42] 그리고 신학의 안테나로 불리는 서남동의 전체 학문 여 정에 있어서는 이러한 주장이 타당할 지 모르나 민중신학에 대한 서남동의 입장에서는 실존주의에서 맑 스주의로 넘어 온 것으로 보인다.[43] '계시의 하부구조'라는 개념과 관련해서 강원돈은 서남동의 민중신 학이 실은 맑스주의를 전제했다고 평가한다.[44]
 
분명히 죽재의 탈신학화와 반신학은 방법론적으로는 유물사관을 전제하는 사회사적 분석을 기본축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비단 1세대 뿐 아니라 2세대 민중신 학자들에게서 보인 학문적 징후도 이를 잘 말해준다고 본다. 1세대가 시대적 상황-용공 혐의 등등-과 관 련하여 우회적으로 접근했다면,[45] 2세대는 아예 까놓고 사회변혁 이론인 유물사관과 관계를 맺을 것을 주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2세대 민중신학자들 중 조직신학적 작업을 위해 애쓴 대표적인 주자가 강원돈 과 박재순이다.[46] 특히 강원돈의 신학에서는 기독교가 사회변혁을 위한 도구이며, 하나의 정체성 확보 를 위한 구실로서 붙어있는 딱지일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의 신학은 기독교 전통의 신앙유산을 절연 하지 않는다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실천>, <변혁>, <운동>을 최종상위에 두고서 기독교를 보는, 기독교 전통의 맑스주의 유물론적 해석 작업이다. 강원돈은 해방신학이 맑스주의에 대해 방법론적으로만 수용 하고 세계관은 거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며, 기독교 신학은 유물론적 세계관까지 수용하여 그 체 계를 세워야 함을 주장한다.[47] 그러나 유물론과 기독교의 세계관이 어떻게 합치될 수 있는가 하는 그 자신의 학문적 작업은 -ing라고만 말한다.[48] 물론 이러한 학문적 작업들은 80년대의 변혁의 상황과 무 관하지 않다. 1세대의 사건의 신학, 증언의 신학에서 2세대의 운동의 신학이니, 변혁의 신학이니, 물의 신학이니 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과 관련한다. 민중신학이 맑스주의 방법론과 곧잘 비교 접근되고, <주체 사상>과도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은[49] 바로 민중신학이 은연중에라도 맑스주의를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 에 가능한 사실이었다고 본다.

3, 5. 기독교와 맑스주의

사실 기독교와 맑스주의와 대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프락시스의 차원이며, 민중신학이 노렸던 것도 바로 프락시스였다. 물론 가난한 자에 대한 사회적 실천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보편적 휴 매니즘이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 한가지는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대화는 본질적으로 <프락시스 안에서 합의를 맛보는 평행선적인 대화> 일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와 맑스주의는 본질적으로 그 근원적인 베이스가 다르다. 프락시스는 필요조건이지만 충 분조건일 수는 없다. 어떻게 프락시스만으로 종교가 충분할 수 있는가? 종교는 프락시스의 한계를 넘어 서 있다. 솔직히 사회변혁적인 투쟁의 효과만을 따진다면 오히려 기독교의 성서보다 맑스주의 텍스트들 이 우리의 성서가 되는 것이 더 유용하지 않은가. 종교는 프락시스의 차원뿐만 아니라 프락시스를 넘어 선, 즉 지속적인 프락시스를 가능케 하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영속적인 힘을 부여한다. 그것은 일종의 신비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신비의 차원까지 올라서 있다고 봐야 한다.

20세기 후반에 갈수록 기독교와 맑스주의자들과의 대화가 빈번해지는 이유는 서로에게 둘 다 없는 것 이 있다고 보는 자각에서 비롯한다.[50] 서구기독교는 영적인 힘은 있지만 그 자신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폐단으로 인해서 이 세상을 위한 프락시스에 잘 눈을 돌리지 못하는 한계를, 맑스주의자들에게는 프락 시스는 있지만 이를 지속하게 하는 초월적이고 영적인 힘이 서로에게 결핍되어 있다. 즉, 기독교와 맑스 주의 대화라는 것은 곧 둘 다 자기들 안에 뭔가가 결핍되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은 또 한 현재 아직 둘 다 헤메고 있는 중임을 예증한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이들의 합의와 일치점은 <프락시스를 위한 종교>의 차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51] 맑스로 인해 기독교는 본래의 기독교의 복음으로 돌아갔다기보다 전통기독교가 소홀히 한 부분인 예언자적 메시지를 인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봐 야 정확할 것이다.

아무튼 분명히 얘기하지만 민중신학이 맑스주의 유물론을 전제하면 할수록 그것이 운동성향을 띨 수 는 있을 지 모르나 그럴수록 민중신학은 더욱더 딜레마에 빠질 것이다. 기독교가 뭐가 아쉬워서 맑스주 의와 손을 잡는단 말인가. 예수 안에도 알고보면 얼마든지 맑스적인 것이 있는데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 가. 나는 지금 맑스주의에 대한 학문적 이해의 불필요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보편적 휴머니즘 의 지평에서 서로 연대하는 것은 결코 비판의 대상될 수는 없다. 요컨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휴머 니즘을 지향하는 정당한 관심사에서 하나로 뭉칠 수는 있어도, 결국 기독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무신론 적 휴머니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략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투쟁의 도상에서 맑스주의에서조차도 불완전함을 느낀다면 맑스주의를 극복·대체할 만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예수의 행태에서 다시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곧 예수는 맑스를 지양(止揚)한다고 보는 철학적 구도를 찾는 작업의 중요성을 말한다.

3, 6. 예수와 맑스

예수는 맑스와 달리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보편애에 도달할 줄 알았다. 거기에는 프롤레타리아 폭력혁명이 들어설 수 없으며, 그 사랑은 십자가에서 허무하게 개죽음을 당함으로서 표현될 뿐이다. 이른바 하나님의 무능함이다. 예수는 당시 젤롯당과 달리 정치, 사회제도적인 혁명을 꿈꾸지 않았다. 하나님 나라의 이상은 역사밖에서 역사안으로 개입하는 것이지, 역사안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맑스에겐 역사내재만 있지, 역사초월의 지평이 없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정치, 사회제도적인 완성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종국적으로 그것마저 획득하는 상태다. 만약 나와 여러분이 이천년 전 당시의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는 유대민중이었다면, 젤롯당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 민중의 입장에서 볼 때 오히려 사회변혁에 유효했다고 볼 확률이 높지, 아무 발악도 않고,-그것도 하나님에게만 발악하고- 아무 저항도 않고 그냥 개죽음 당한 예수의 행태가 오히려 사회변혁에 유효했다고 인식할 수 있었을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은 왜 그리도 무능하셨는가? 십자가 죽음 직후에 보였던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의 무기력함은 무엇이었나?

그러나 제자들은 곧 자각한다. 예수는 그들에게 정치, 사회 지평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근원적인 해방을 지향했다는 사실을. 예수의 허무주의적인 저항은 이미 생과 사를 초월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식했던 것이다. 그 갈릴리라는 촌동네에서의 예수의 부활, 전 세계적으로 퍼지게 되는 예수의 에네르 기는 결코 죽지 않고 전 우주적 지평에서 우리에게 하나님나라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아야 한다. 그것은 역사를 초월하여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에 내재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맑스는 한계가 있다.[52] 왜? 그는 역사내재만 알지, 역사를 초월할 줄은 모르니까, 역사는 역사 밖의 인자(=요인)가 역사 그 자체에게 비전을 제시하면서 역사를 더 나은 상태로 한 단계 전진하게 만드는 힘을 끊임없이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내재가 아닌 역사를 초월한 지평에 있기 때문에 근원을 알 수 없는 항구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말대로 이 세계는 본성상 불완전하며, 우리는 완전함의 근거를 <신>에게서 달리 찾을 수밖에 없다.[53]
 
3, 7. 민중신학이 여태껏 빠져 있었던 딜레마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신학이 갖고 있는 철학적 기반에 대해서는 한 번도 비판적으로 고찰 하지 않았다.[54] 제2장에서 얘기했듯이 화이트헤드의 견지에서 본다면 조직신학적 작업이라는 것은 그 신학의 밑변에 사변철학을 기초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말하지만 하나의 학문에서 두 개 이상의 형이상학적 구도는 존립할 수 없다. 민중신학이 맑스의 유물론적 발상에 고착하면서 기독 교 전통주의 신학의 좋은 유산들을 붙잡으려는 것은 넌센스다. 물론 여기엔 일부 2세대 민중신학자들의 주창했던 정치경제학과 신학을 방법론적으로 짬뽕시키려는 학문적 작업 또한 포함된다. 강원돈의 물(物) 의 신학이 아무리 스탈린적·기계적 유물론이 아닌 실천적·변증법적 유물론으로 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다.[55] 맑스의 유물론과 이원론적 관념론이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철학적 구도를 어떻게 혼잡시킬 수 있단 말인가?[56] 이 둘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명료하고도 확실한 사변적 구도를 확립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기계적 유물론'이 아닌 '실천적 유물론'을 갖고 둘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한다고 학문적으로 그럴 싸하게 말하지만, 맑스주의와 기독교는 그 근원적인 베이스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근본적으로 상호 침투·융합할 수 없는 물과 기름이 뒤섞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혼란이며 모순 이다. 관념론(기독교)과 유물론(사회변혁)이라는 대립적인 구도의 두 세계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단일 한 사변적 체계를 확립하지 못한데서 오는,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민중신학이 갖고 있었던 딜레마였으 며, 여태껏 민중신학은 바로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57]
 
3, 8. 민중신학의 철학적 성찰과 조직신학적 작업

그렇기에 민중신학이 맑스주의와 분명한 선을 어디까지 긋지 않는다면 결국 맑스주의가 종교비판의 토대로 삼았던 포이에르바하적인 신관으로 유도될 수밖에 없다. 물론 민중신학자들의 심적 확신은 포이 에르바하적인 신관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종국적으로 신학의 폐기가 되니까. 그래서 민중신학자들은 서구신학에 대한 반신학이라고 부르짖으면서도 보수주의 신학의 장점들, 예컨대 전통적 속죄론에서 오는 신과 인간에 대한 실존적·내면적 신앙이나 깊은 영성들을 확보하려 한다. 그 러나 그것들이 근저로 하는 사변적 구도가 이질적인 이상, 앞서 얘기했듯이 그것은 보수와 진보의 엉성 한 혼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여태까지의 민중신학자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확정적인 사변적 구도가 없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점은, 민중신학자들이 조직신학적 작업에 있어서, 그 필요성은 절실히 동감하면서도 정작 철학적 성찰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깜빡 잊어버리거나, 철학이라는 학문자체를 별로 중요시하게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58] 그러나 민중신학자들은 이것이 곧 민중신학의 학문적 진전이 지리멸렬했던 이유와 연관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민중신학은 그 학문적 작업에 있어서 저도 모르게 미리 구체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가정하는 것 들이 있었나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검토가 있어야 했다. 민중신학은 유물론이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온 당한 철학적 원리인가 아닌가, 또는 유물론이 정합적, 논리적이며 적용가능함에 있어서 충분했었는가하 는 비판적 작업이 있어야 했었다.[59] 그렇지 않고 민중신학이 은연중에라도 맑스주의를 수용했다면 이 것은 바로 화이트헤드가 말한 치명적인 상처, 곧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에 해당하는 케이스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이 부지불식간에라도 유물론적 세계관을 깔고 있었다고 본다.

자, 그렇다면 나의 이러한 논지에 맞서 민중신학의 전체입장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하지 않고 사 회 분석 방법론으로만 받아들였을 뿐이며,[60] 그것은 소수의 민중신학자들의 급진성에 대한 논리적 비 약으로써 부분적 견해를 전체의 구도로 생각하는 잘못된 오해라고 주장한다면, 정말 그렇다면, 난 오히 려 더욱 반문하고 싶다. 그러면 그게 아니었으면 도대체 민중신학의 세계관은 지금까지 뭐였냐고. 민중 신학이 상정하고 있는 학문적 음모를 확실히 드러내보라고 말이다. 내가 앞서 어정쩡하다는 표현을 썼 던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 기인한 것이다. 오해를 받을 소지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지금 까지의 민중신학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듯, 그 학문적 뼈대에 대한 작업부터가 되어 있지 않았다.

전통신학을 대체할 신학을 한다는 것은 조직신학에 대한 전반을 다시 세우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 니다. 조직신학없이 실천신학, 목회신학이 나올 수 있는가? 그렇기에 민중신학이 민중교회에 별로 도움 을 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 하겠다. 조직신학은 신학의 자리에서 철학의 비판적 수용 작업인 데 민중신학은 여지껏 유물론을 제외한 다른 철학은 수용하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민중신학이 체계화 된 학문성을 담보하기 위해서 민중신학에 철학적 세계관의 수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던 사람은 별 로 되지 않아 보인다. 물론 강원돈은 그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민중신학의 발전을 위해 철학적 성찰 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까지는 좋으나, 철학적 세계관의 수용에 있어서 치열한 비판적 작업 없이 열이면 열 모두 유물론쪽으로 눈을 돌리는 우를 범한 것이 한계였었다.[61]

아마도 민중신학의 세계관은 지금도 모색해 가는 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 지만, 그렇다면 그 자신의 학문적 작업이 아직 과정상에 있는 미완의 작업이라고 한다면, 뼈대없이 살을 자꾸 붙일 수는 있는가. 조직신학없이 실천적 방법론들을 생산하겠다는 것인가. 제아무리 뼈대없이 살 (투쟁을 위한 실천이론들)을 정교하게 붙인다고 하더라도 결국 이건 뭐가 되는가. 부실공사가 아닌가. 민 중신학의 조직신학적 작업이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자꾸 민족주의와의 관련이니, 문화정치학에서 의 전략적 투쟁이니 하는 것은 부실공사를 가중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닌가. 민중신학이 제2의 도약을 삼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조직신학에 대한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초창기 민중신학자들에게 보였던 그러한 참신함이 이후의 민중신학자들에게서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이유가, 희미하지만 복음 의 본질에 접근한 것이 1세대였다면, 2세대는 그 희미한 안개를 걷어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희미한 안개를 걷어낸다는 것은 바로 민중신학의 조직신학적 체계를 세움으 로써 민중신학이 의도하는 학문적 음모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고 하겠다.
 
3, 9. 기독교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까지 내 논의의 맹점이 있다면 유물론적 세계관과 기독교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이질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유물론에 대한 텍스트들을 점검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근데, 알다시피 맑스주의 유물론에 관한 텍스트가 어디 한 두 개인가? 이것은 책 한 권 이상의 분량이 나올 만큼 방대한 작업이라서 여기서는 논의상 이를 전개할 수는 없을뿐더러 학부생의 현실에서 이에 대한 작업시간을 내기가 힘듦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가정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명제라고 생각한다. 즉 유물론이라는 패러다임과 기독교가 가져야 할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이를 지지한다고 본다.[62] 그 것은 유물론이 전적으로 포이에르바하의 무신론적 테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를 아직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이에 반대하는 누군가가 유물론에 대한 텍스트와 기독교 신학의 텍스트들을 분석하여 유물론적 세계관과 기독교의 세계관이 근원적으로 같거나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음을 논리적으 로 밝혀낸다면 나의 이 논문은 휴지가 되어도 상관 않겠다.

3, 10. 맑시즘의 한계

사회학이라는 학문자체가 맑스의 망령과 대결한 역사라고 한다.[63] 민중신학에게도 맑스의 망령은 드 리워져 있다. 그 맑스의 망령의 정체는 사회변혁을 지향하여 건설하는 이상향으로써 다가온다. <사회변 혁>이란 테마는 진보적인 기독교인에게 달콤한 유혹의 선악과와도 같다. 아아-, 누가 그랬던가!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었다면, 공산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었다"라고. 결국 맑스의 사회변혁은 무신론에 근거한 사회변혁이며, 그렇기에 한계성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민중신학자들도 서글퍼하듯 이 최근의 동구 유럽의 사회주의 나라에서 보이는 정신적 공백기, 영적 혼미함이 나타나는 현상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64] 사회변혁은 휴머니즘의 차원에서는 정당하다. 그러나 맑시즘은 역사 밖의 초월적 신 을 인정하지 않기에 보편애에 도달하기는 어려우며, 내재적 무신론만을 인정하기에 궁극적으로 인간과 인간을 적대자로 삼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보복성이 짙은 휴머니즘[65]이며, 무신론적 휴머니즘이 다.

3, 11. 나의 실존은 관계망에 놓여있다.
나는 종교가 결코 프락시스를 간과해서는 안되지만, 종교의 근본적인 성격은 일차적으로 프락시스가 아니라 인간의 심령을 정화시키는 실존의 차원으로 본다. 나의 이런 얘기가 비역사적이고 사변적인 얘 기로 들리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내면이 바뀌면 외적으로의 '나'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존 재이기에 그 사회도 더불어 변화되는 것이다. 프락시스라는 것은 나의 실존적 변화의 열매에 불과하다. 서구신학이 프락시스라는 열매를 맺지 못한 근본적인 오류는 바로 사회와 단절된 개인으로서의 '나'의 실존만을 다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김명수 교수가 밝혔듯이 불트만의 신학이 실존주의를 전제하지만 그 실존주의는 개인의 내면에만 강조한 나머지 관계성을 도외시한다.[66] 즉 이 때의 '나'라는 존재는 이 세계와 고립되어 있는 존재-또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존재-로써 파악된 '나'인 것이다. 나의 참다운 실존(주체)은 바로 관계망 에 놓여 있는 실존이다. 그렇기에 생명은 <관계망>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67] 왜냐면 이 망을 떠나서는 생명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68]

민중신학은 전적으로 콘텍스츄얼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김창락 교수가 말한대 로 민중의 절박한 상황으로 인해 치밀한 학문적 작업을 할 수 없었던 요인도 있었다고 본다.[69] 그러나 민중신학이 21세기에도 민중과 함께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끊임없이 확장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으로도 성숙된 모습을 지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민중신학의 올바른 조직신학적 작업이 그리스도인의 빈틈없는 투쟁과 실천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민중신학이 우리에게 가르침으로 줘 야 할 것은, 사회과학 언어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영원한 진리여야 할 것이다.
 
4. 민중신학의 민중론 비판
 
4, 1. 안병무의 실수

언젠가 안병무는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의 자신의 학문의 여정을 밝힌 글[70]에서 독일 유학 당시, 실 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의 간결하고 분명한 언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언급했던 일화가 있었다. 어느 날 어떤 저명한 젊은 교수가 "조직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논문을 발표했는데, 토론 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루종일 조직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갑론을박 하다가 결국은 사회자가 하이데 거에게 판정을 요청했었다. 그런데 하이데거는 그 자리에서 짧게 "Was ist systematish?"이란 말만 남기 고 자리에 앉았다. 그것은 하이데거가 조직신학에서 <조직한다>는 것을 모르면서 어떻게 조직신학을 정 의할 수 있느냐라는, 그 날 토론의 맹점을 짧은 언어로 날카롭게 찌른 것이라고 그것을 지켜봤던 안병 무가 설명했다.
왜 이 얘길 꺼내는고 하니, 이 얘길 밝힌 안병무 자신이 민중신학을 논하면서, 독일 유학 당시의 그 날 토론처럼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안병무는 민중의 살아있는 역동성 때 문에 민중에 대해 개념을 내리기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민중신학이 "Was ist Minjung?"이라는 질 문을 회피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민중신학에서 민중을 모른다면 어떻게 민중신학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주지하다시피 민중신학의 중심은 민중이요, 모든 쟁점들은 민중에 의한 사건들로 소급되어 있는 데-. 민중신학에서 민중을 뺀다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음은 자명한 것이다. 안병무는 민중을 개념화한다는 것 자체를 반대했지만, 민중에 대한 개념화 작업은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민중을 어떻게 개념 화하느냐가 더 중요한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4, 2.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환상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인지하는 2세대 3세대 신학자들은 민중을 조심스럽게 개념화하는 작업을 펼쳤다. 그치만 이들의 학문적 개념화도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고 명확히 하나로 결집되어 있지 못하다는 인상 을 준다. 나는 여기서 굳이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온 민중론들을 또다시 살필 생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의 민중론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그것이 치명적인 오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밝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뭔가? 그것은 바로 민중신학이 가장 중요시한다고 보는 핵심적 전제이기도 한 <민중 은 역사의 주체>라는 민중신학의 제1명제에 대해서이다.[71] 민중신학자들도 예외없이 1세대 민중신학자 들부터 비롯하여 2세대, 3세대 지금에까지 이르러 이 개념은 거의 신봉되어져 왔다.[72] 그렇기에 이것은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이 그 자신의 민중론을 얘기할 때 정초하고 있는 개념이며, 이에 대해서 공통적 으로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민중신학의 가장 중요한 바로 이 명제에 나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 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매우 심각한 착각이요, 환상 에 불과하다. 물론 이에 대해 "그게 무슨 개소리냐?"라며 맑스형님이나 주사를 추종하는 일련의 식자들 이 나를 지배이데올로기에 영합하는 아주 극우적이고 보수적인 불순한 사상으로 매도하면서 나에게 돌 을 던질 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민중론을 논하면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에 대해서 크게 반론을 제기하거나 정합적으로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운동권 성향의 민중운동가 라면 더더욱 이것은 절대적이고 불변적인 진리라고 확신할 것이며, 나의 이런 주장을 참으로 어처구니 없게 볼 것이다. 하지만 거듭 말하건대,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민중론자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도그마요, 사유의 추상일 뿐이다. 여기에 대해선 추호의 거짓도 없다.

이것은 굳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가 생각을 조금만 깊게 한다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이미 주체를 상정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 따른 객체적 대상을 전 제하는 꼴이 된다. 민중신학이 <주객도식>의 이원론을 그토록 배격하면서도 어찌 민중론에서는 주객도 식에 빠지고 마는 우를 범하는가. 안병무는 성서를 볼 때 사건을 강조하면서 예수사건은 예수와 민중간 의 있어서 주-객이 따로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옳다. 그러면서도 민중을 논할 때는 항상 주체로만 파악 하는 우를 범한다. 성서에 나타난 사건들, 구원과 사랑과 기적의 사건들이 예수와 민중간의 상호 교호적 인 사건으로 파악했다면 교회사나 인류사를 파악함에 있어서도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통전하는 시각이 있어야 함에도 항상 민중을 우선적인 실체로 파악하여 그 외의 다른 대상들은 민중에 의해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행태로 묘사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4, 3. 역사는 <민중사관>만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80년대 운동권에서 유행한 <민중사관>이라는 것이 있다. 민중사관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보기에 민중의 바램과 동태에 의해 역사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발상이다. 그렇다면 민중이 역사 의 주체라면 이미 역사는 민중이 주인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필연적 결론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역으 로 얘기해서 장일조 교수가 언급한대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면 이 땅의 불완전한 모습들이나 구조악의 창궐도 그 책임성이 민중에게로 돌아간다.[73] 왜냐면 민중이 역사의 주체니까.

물론 역사란 사람과 사람의 실존적인 자취이다. E. H 카아가 밝혔듯이 史觀이 없이는 역사를 기술한 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본래적인 역사가 아니라 해석된 역사뿐이다.[74] 그래서 그런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파악하는 민중사관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인지되며, 그렇기에 민중 사관에 의해 파악된 역사만이 곧 정확한 본질의 역사로 간주되는 것인가. 설사 그렇다고 해도 이 세계 의 역사가 어떻게 민중사관만으로 유추될 수 있는가? 확언하건대,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민 중은 동시에 이 세계에 대하여 객체적으로도 존재한다는 엄연한 실존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는 것이다.

우리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떤 순간의 아주 극소한 변화-날씨 같은 자연 의 변화까지 포함한다. 올해의 그 무시무시했던 장마를 생각해보라. 수마(水魔)는 직접적으로 우리의 생 존권을 위협했을 뿐만 아니라 물가상승의 요인으로도 작용하여 경제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 않았던가- 가 이 전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커다란 변화를 얼마든지 낳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역사는 연 역적 차원과 귀납적 차원, 지배자와 피지배자, 엘리트와 민중, 여성과 남성, 인간과 자연 등등 이 세계의 다양한 존재들이 서로 교호적으로 작용하여 통전된 전체로서 나아간다는 것이다. 때로는 소수의 창발적 인 행태가 얼마든지 역사의 아이러니를 낳을 수도 있다. 누구 말대로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 더라면 세계사는 바뀌었을 것이고, 클린턴의 좆대가리가 꼴리지만 않았어도 세계사의 동향이 지금과는 같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지 않은가.[75] 정주영이 소를 끌고 북으로 갔던 사건이 어디 민중사건이었던가, 정주영이 민중이었나, 자본의 논리가 아이러니하게도 통일에 도움을 주면서 민중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도 있는 것이며, 그 영향을 받은 민중이 다시 또 이 세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는, 그러한 변증법적 합일 의 차원으로써 역사는 앞으로 나아간다고 봐야 한다. 나는 여기서 결코 우파의 논리를 대변하거나 그렇 다고 민중의 역할을 폄하 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지배사관이나 엘리트사관은 마땅히 폐기되어야 하겠 으나, 민중의 행태에 의해서만 역사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민중사관 또한 역사를 정확하게 본다고는 볼 수 없는 사관임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역사의 주체는 결코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지 않다는 것 을 알자.
 
4, 4. 김진호의 민중 이해

여기서 잠깐 김진호의 민중이해를 짚고 넘어가자. 왜냐면 그의 민중이해는 다른 민중신학자들과 조금 남다르기 때문이다. 김진호에 의하면 1세대와 2세대는 민중을 계급론적으로 규정했다고 보며, 민중은 계 급론적 관점이 아니라 계급형성론적 관점에서 민중을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차원은 민중이 역사 의 주체라는 명제가 요청적 차원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김진호의 민중이해는 민중이 <구성적 실체> 가 아니라 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적 실천의 장에서 비롯되는 <사건적 실체>로 이해한다.[76] 그에 따르면 민중은 헤게모니 절합에 의해 모인 대중적 당파성 집단이다.[77]

이러한 구도는 상당히 알튀세적인 냄새가 농후하다. 알튀세는 그의 맑스주의 연구에서 주체론이나 계 급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계급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에서 형성되는 것 이며, 맑스주의는 역사적 과정상에 있어서 유효할 뿐이다. 요컨대, 존재하는 것은 주체가 아니라 주체를 지양하는 과정이 있는 것이다. 나는 민중을 실체로 보거나 주체로만 보는 어떠한 이해도 거부한다. 그러 나 김진호의 민중이해에 의하면 변혁지향과 당파성을 띠어야만 민중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런 점에서 그의 민중 이해는 한완상이 얘기했던 <대자적 민중>의 보다 역동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으며, 박종천이 말한 <다변혁자 주체론>과 흡사한 느낌이다. 여기에는 자각된 중산층이나 일반 대중도 포섭할 수 있는 학문적 잇점이 있다.[78]

그렇다면 당파성도, 변혁지향도 상실하고 그저 하루하루 끼니가 급한 어느 가난뱅이나 병자는 민중이 라 할 수 없게 된다. 적어도 김진호의 민중이해에 의하면 말이다. 예수의 주변에 있던 <오클로스>에는 이런 빈곤한 무기력자들이 없었을까? 다윗연합이니, 사울연합이니 하는 이념적 당파성을 꼭 드러내어야 만 민중이 되는 것인가? 그리고 이념적 당파성을 띠는 사건적 실체로서의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고 한다 면 이들의 이념은 완전무결하게 쟁취되었던가? 김진호가 주장하는 역사의 주체인 이들의 변혁은 단 한 번이라도 성공했었나? 명색이 역사의 주체인데 필연적으로 이들의 운동은 성공해야 하지 않은가? 물론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주체는 주체의 폐기가 아니라 주체를 지양하는 요원함으로 남아있는 주체일 것이 다. 이것은 주체의 해체에 머무르는 <포스트모던>철학과 알튀세가 갈라서는 지점이기도 하다.
 
4, 5. 역사는 통전적으로 나아갈 뿐

민중이 주체로만 나선 적은 세계사에 있어서 단 한 순간도 없었다. 민중일수록 고난과 고통은 더 짊어지게 되어있다. 파리코뮌이든, 광주코뮌이든 우리가 민중의 주체적 사건으로 파악했던 역사는 바로 상대적으로 고난과 고통에 대한 민중의 반응으로 보는 때였다. 그렇기에 모든 역사적 지평에서 결코 주-객은 따로 이분화되어 있지 않다. 민중사관만이 절대라고 우기는 것은 오히려 실제의 역사를 고정적이고 정태적인 역사로 파악하는 것이며, 결국 비실체를 실체로,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사실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된다.[79] 왜냐면 역사의 다양한 측면 중에 어느 한 측면만이 역사의 전부로 인정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보편성으로 열려있지 않은 당파성이란 독단과 아집으로밖에 갈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종말론적 역사관으로 요청적 차원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 된다. 이것은 필시 '민중독재주의'차원을 얘기한다고 본다. 글쎄, 그렇다면 이것은 지배/피지배가 전도된 또하나의 지배적 차원을 말하는가, 아니면 차별적 평등의 차원을 말하는지 그 성격을 분명히 해 야 할 것이다. 나의 역사관은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발상은 없다. 나의 역사관은 모든 인간과 자연 과 더불어 변증법적으로 통전하며, 창발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유기체적 역사관이다. 이 거대한 우주 자 체가 하나의 유기체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설익은 나의 관점이지만 오히려 포퍼 가 말한 <열린사회>와 흡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민중만이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모든 차별적 인 개인이 역사의 주체로 참여하는 차원이다.[80] 나는 여기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역사관을 <우선 적 민중>preferential Minjung에 소급시켜 이해하고 싶다. 이것은 나의 대안적 모색을 밝히는 제6장에서 자세히 서술할 것이다.
 
4, 6. 화이트헤드 철학에서의 <주체>문제

화이트헤드 철학에 의하면, 모든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는 <주체>subject이면서 동시에 <자기초월 적 주체>super-subject로 파악된다.[81] 자기초월적 주체라는 것은 현실적 존재의 주체적 행위가 동시에 다른 현실적 존재의 주체적 행위에 개입하여 객체적으로 파악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또 다 른 현실적 존재의 주체적 행위에 연쇄적으로 개입한다. 그럼으로써 현실적 존재의 주체적 행위는 <만족 >satisfaction이후에 <객체적 불멸성>을 획득하여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82] 역으로 주체적 행 위를 하는 현실적 존재 자신도 다른 현실적 존재의 객체적으로 불멸하는 것들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전적으로 현실적 존재가 관계적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인 것이다.

마이크로한 세계를 기술하는 화이트헤드의 언어를 매크로한 인간의 역사라는 지평에 적용시켜 본다 면, 인간의 역사도 이 세계의 환경과 나의 주체적 결단이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여 빚어지는 사건의 발 현이 되는 셈이다. '나'라는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고-받고 작용>을 되풀이하면 서 단 한 순간도 똑같음이 없이 항상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도 본다면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테제는 결코 나올 수가 없으며, 그것은 곧 엉터리임이 폭로된다. 우리가 <관계 성>이라는 개념자체를 인지한다면, 그것은 곧바로 주-객의 폐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4, 7. <민중의 사회전기>도 구멍 뚫린 픽션에 불과하다.

자, 그렇다면, 민중신학은 <민중의 역사 주체론>을 아무런 비판없이 전제하는 우를 범한, 치명적인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에 또 한 번 빠진 것이 된다. 그러면 민중의 역사 주체론를 전제하는 어떠한 민중 개념화도 다 부질없는 작업인가? 물론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김용복의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개 념 또한 구멍 뚫린 픽션에 불과하다고 본다.[83] 민중신학을 하는 당사자들은 나의 주장이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터무니없게 들릴는지 몰라도 인정하기 싫겠지만 이또한 어쩔 수 없는 학문적 사실이다. 생 각해보라. 모든 인간이 관계적 그물에 얽혀있는 상황에서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것을 어떻게 딱 선을 긋듯이 구분할 수 있겠는가. 민중이란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적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구조적 병폐의 예증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 억압과 빈곤이 있다는 것을 알뿐이지, 누가 저 사람은 민중이다라고 못박을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사회전기는 외부 에서 규정할 수는 없고 민중인 그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알 수 있다라고 얘기한다. 아주 추상적 이지 않은가? 도대체 누가 민중이고 누가 민중이 아니길래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것을 찾아 알 수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멀쩡한 화이트칼라 중산층이 IMF 상황과 맞물려 지지로도 못사는 극빈자가 되어 있다고 치자. 그럼 그는 민중이 되는 것인가? 만약 그가 돈이 없어 나이어린 아이들을 앵벌이 시킨다고 한다면 그의 행동이나 삶이 또 다른 억압을 유도하지는 않는가, 그리고 그가 혹은 앵벌이를 하던 그 아이가 자 수성가하여 재벌이나 대통령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계속적으로 민중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래서 쓴 자서전은 민중의 사회전기라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창창했던 중소기업 사장이 잘못된 재벌정책으로 인 해 부도를 맞이하여 온 가족이 알거지가 되었다면, 이들은 곧 민중의 고난을 짊어지는 것인가? 부조리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집안은 어렵고 학비로 인해 학기마다 고통받고 있는 대학생인 나는 민중인가? 비민 중인가? 도대체 누가 누구를 민중이라고 확언할 수 있단 말인가?[84]
 
4, 8. 모든 인간은 다차원적 계급구조을 갖는 민중이다.

요컨대, 인간은 그 자체 안에 다차원적인 계급구조를 갖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人間)은 과정적, 관 계적 존재다. 그렇기에 인(人)은 간(間)으로써 파악한다. 인간이 다차원적인 계급구조를 갖는다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관계 그물망 속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는 민중인 동시에 민중이 아 닐 수도 있는 상황을 함께 경험한다고 봐야한다. 그렇기에 굳이 '민중의 사회전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 은 결국 '우리 모두의 사회전기'라 할 수 있겠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병폐 안에서 자유로울 없다는 사실을 알자.

이것은 오늘날 <글라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이라는 시대적 상황에서는 더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도대체 이 지구촌 사회에서 누가 누구를 민중이라 할 수 있는가. 글라벌라이제이션이라는 상황은 더더 욱 우리를 적과의 동침으로 유도하며, 적을 동반자로 여기게 끔 만든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 다. 오늘날 인류 전체가 바로 민중적 상황에 놓여 있다라는 절박한 인식이 먼저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항구적인 절망에 빠뜨리고 말 것이다. <민중의 생존>은 곧 <인류의 생존>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내면의 일그러짐>[85]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내면의 일그러짐'이 외부적으로 표현될 때는 사회적 존재로서 가지는 권력의 함수관계와 연관을 맺고 모순된 현실과 불의한 체제로 나타나는 것이다.[86] 아무리 재벌이고 부자라고 하더라도 그가 인간인 한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실존은 또 다른 관계적 메카니즘에 의해 억압을 받은 구석이 있음을 결코 배제 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가난한 빈민이라고 하더라도 이들 또한 불완전하며 이들 역시 남을 해하는 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태들이 지배이데올로기에 왜곡된 부분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주체적 의지가 이 세계에 변증법적으로 직접 참여할 수밖에 없는 한은-또는 그 자신이 살아있는 한은- 아무리 밑바닥계층이라도 왜곡될 여지가 많을 뿐이지, 그 자신의 책임성은 언제나 남아있다고 봐야 한다. 지배와 착취, 수탈, 정치적 억압은 인간의 내적 불완전함의 사회학적 표출일 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가 민중의 고난의 현장에 참여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 현장에 놓여 있다. 우리 자신의 실존은 이러한 현장과 뗄 래야 뗄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받은 각자 의 달란트에서 볼 때 이들을 수용할 만한 지평이 어디까지 미쳐있는가 하는 것이다.
 
4, 9. <민중론>은 인간이해의 한 측면일 뿐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심각한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민중도 인간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민중에 대한 미화나 수식어는 오히려 실질적인 민중의 정체를 가리며, 민중에 대한 또 다른 허상을 만든 꼴이 된다. '민중의 사회전기'는 소수 지식인의 픽션이다. 민중사관만이 옳다 고 보는 것은 결코 역사를 정확하게 보는 시각이 아니다. 단지 '민중사관'은 이 땅에 실질적으로 투쟁에 효과적이고 이로움을 줬다고 보기에 우리가 미련을 못버리는 것이다.

그럼, 우리의 역사관은 결코 당파성을 띨 수가 없다는 얘기인가? 아니다! 그 반대다. 당파성을 띠는 것은, 나의 실존과 관련하기에 결국 역사를 논의함에 있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당파성을 띨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그것이 결코 객관적인 파악일 수 없는 이유는, 이미 나의 삶의 정 황 또한 역사를 해석함과 동시에 함께 관여되기 때문이다. 즉 역사의 해석자 또한 역사 안에 있는 존재 이기에 결코 역사를 객관화할 수 없는 것이다. 당파성을 띨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역사관은 상대 적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의미한다. 그래서 역사는 해석자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마치 성서가 해석자에 게 열려 있듯이 말이다. 우리가 역사를 정확하게 보려면 가능한 한 여러 프리즘을 갖고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최선의 학문적 방법이다. 민중사관, 영웅사관, 엘리트사관, <환경 사관>[87] 등등 여러 역사의 프리즘들이 있다면, 이것들을 함께 비추어서 이를 상호 교호적으로 파악하 는 것이 정확한 학문적 객관성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역사학에도 화이트헤드가 말한 <관념의 모험>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겐 언제나 끊임없는 다양한 학문적 시도가 필요하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민중론은 인간이해의 한 측면이었을 뿐이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면 왜 우 리 역사는 여태껏 요 모양, 요 꼴이었단 말인가. 예컨대 “민주주의는 그 나라 전체 국민 수준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민중신학자들은 이 말속에 담긴 뜻을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5. 유기체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세계관
 
5, 1. 관념론과 유물론

서양 철학사는 관념이냐? 물질이냐?의 논쟁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의식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보 는 것이 관념론이고, 물질이 의식의 지평을 넘어 객관적으로 실재한다고 보는 입장이 유물론이다. 물론 유물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역사적으로 관념론은 지배자의 편에 있었으며, 유물론은 항상 탄압을 받아왔 었다. 이것은 사실이다. 플라톤의 철학과 그 아류의 철학들이 주류를 이룬 헤겔까지의 철학들은 바로 의 식이 존재를 규정한다고 보는 입장이었다. 물질을 곧 존재로 보며 존재에서 의식이 발생한다는 유물론 은 맑스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철학적 구도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 그것은 헤겔에 대한 반동이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헤겔의 공로(?)가 컸다고도 할 수 있다. 헤겔의 변증법이라는 도식은 그대로 맑스에게 수용되는데, 특히 맑스의 경제사관에 이르면 생산력(生産力)과 생산관계(生産關係)의 모순으로서의 자기 전개를 유물화시킨 맑스의 철학은 헤겔의 변증법적 도식과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88]

잠깐 유물론의 족보를 따져본다면 그 아버지는 포이에르바하의 무신론이며, 그 할아버지는 스피노자 의 범신론이고, 유물론의 태고적 조상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일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저서에서는 맑 스를 알았다는 흔적은 없지만, 그는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을 비판하는데 이것을 <과학적 유물론 >scientific materialism이라고 부른다.[89] 근데 우리는 여기서 물질은 의식을 초월한다는 맑스의 유물론 적 세계관이 뉴턴의 환원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세계관의 도식을 전제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뉴턴의 물리학은 바로 맑스의 조상인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의 예증에 다름 아니다. 즉 이 데모크리토스가 주장한 원자의 운동법칙이 바로 근대의 뉴턴의 수학체계에 의해 드러난 물리학이었던 것이다. 일원론이라고 생 각하는 맑스의 유물론은 플라톤의 이원론에서 강조된 이데아를 물질로 옮겼을 뿐이라는 점에서, 나는 맑스의 유물론 또한 여전히 이원론이라고 본다. 진정한 일원론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90]
 
5, 2. 물질과 정신은 존재의 양극

그런데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관념론과 유물론 중 어느 한쪽이 옳을 수 없다. 둘 다 틀렸다. 물질과 정 신은 존재의 양극에 불과하다. 사유와 존재는 결코 같을 수 없으며, 물질 또한 존재라고 할 수 없는 것 이다. 둘 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가 아니다. 물질은 정신을, 정신은 물질을 필요로 한다. 즉 신은 이 세계를 필요로 하고, 이 세계는 역사 밖의 신을 필요로 한다. 신과 세계 둘 다 어느 한 쪽이 자 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신은 이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자존자가 아니다. 신이 이 세계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정신성[91]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이 세계라는 물리적 영역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 다. 반대로 이 세계는 신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이 세계는 신의 정신적 비전을 통해서 불완전 한 물질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하나님 나라라는 것은 신의 비전을 이 세계가 완전히 실현 한 상태를 의미한다.[92] 종국적으로 이것은 신자신의 완성이요, 신의 자기 창조의 사역인 것이다.
 
5, 3. 포이에르바하의 오류

화이트헤드의 텍스트와 포이에르바하와 맑스의 텍스트를 갖고 정밀한 비판이 있어야 하겠지만, 여기 서는 조금만 언급해본다면, 역사내재적 지평만을 인정한다면 이 세계는 궁극적으로 영원히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왜냐면 그렇게 되면 역사의 비전은 역사 그 자체에게 찾을 수밖에 없기에 항상 불완전한 비 전만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역사 그 자체가 불완전한데 그 불완전한 역사가 어떻게 완전함 의 이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인가? 그것은 역사가 불완전하다는 인식자체도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인 간은 악한 존재다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차원이다. 왜냐면 불완전하다는 것은 완전함이라는 것이 있 기 때문에 나오는 비교의 개념이기 때문에 완전함이 없다고 한다면 불완전함만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 것은 곧 항구적인 죽음이다. 비교, 차이라는 관계적 개념에서만이 비전이란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는 역사의 지평 밖에서 신(또는 이 세계를 이끌어 가는 비전)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이에르바하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즉, 진화하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 가 곧 신이 존재함을 얘기하는 것이다. 고로 인간이해는 곧 신이해와 통한다고 본다.

포이에르바하의 테제의 오류는 역사 내재적 지평하에서는 인간은 하나님이라는 이상이나 비전을 가질 수가 없고 인식조차도 불가능한데,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하나님일 수 있냐는 것이다. 그의 사유 속에 하나의 완전무결함으로서의 신이라는 개념을 상정해놓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역사 밖의 신이 있다는 것을 예증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컨대, 인간이 인간이었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항구적으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간과하지 말자. 인간이 끊임없이 이상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 인간 이 꿈을 먹고사는 동물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초월적 존재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인가 를 끊임없이 갈망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인간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요, 그 진화의 힘(또는 인간의 욕구나 갈망)은 역사 밖의 끊임없는 유혹(신, 비전, 이상)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5, 4. 유물론적 세계관의 묵묵부답

유물론적 세계관에서 인간의 생명현상이나 의식도 고등한 단백질의 작용으로 본다. 그러나 물질자체 를 운동으로 보는 유물론적 세계관은 물질이 왜 운동인지, 물질의 고등함과 저등함의 차이는 어디서 기 인한 것인지, 물질자체가 왜 그러한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생명을 진화시 키는 메카니즘 작동은 왜 있는 것인지? 현대의 진화론자들은 왜 종교를 인정하는 분위기인지?[93] 20세 기 과학은 왜 하필이면 <물질>에서 <정신>으로 가고 있는지? 유물론적 세계관은 답을 못하고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물질의 진화를 생각해보면, 그 진화의 과정상에서 조금이라도 단백질의 결합이 어긋났었다면 끝장이었다. 단백질의 결합은 확률적으로 따지면 거의 있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 것과 같다. 이것은 복권당첨확률의 수 십만 배정도가 아니라 수 천억 배보다 더 힘들다. 수 천억 분의 확률을 수 천억 번씩이나 무수히 거치면서 겨우 인간이라는 생명 하나가 태동한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신비라고 밖에 달리 표현 할 길이 없다. 오히려 유물론자들이 좋아하는 과학적인 수치 로만 따진다면, 이 우주는 죽어있어야 될 확률이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창조된 것이다.(그렇기 에 이 우주에서 인간의 생명보다 귀한 게 어디 있으랴!) 생명현상이 출현할 수 없어야 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생명현상이 태동했다는 것은 물질의 진화가 어떤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즉, 이 우주의 진화는 <우연성을 가장한 신의 섭리>였다고 보는 것이다. 요컨대, 유물론은 물질의 진화 그 자체가 왜 일어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결국 그것은 물질을 물질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 한 명제 자체에도 의문을 느끼게끔 하는 애매한 단계에 우리는 와 있기 때문인 것이다.
 
5, 5. 유기체적 세계관의 생명이해
 
덧붙여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은 <생명>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를 우리에게 부여한다. 이 우 주의 모든 생명들은 제각기 독립적이지 않으며,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의 숨결이 깃들어 있다. 나를 포함 한 이 땅의 모든 생명의 근저에는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의 날줄씨줄들이 얽히고 설키어 모여 서 창조적으로 꽃 핀 것이다. 그렇기에 저 들녘의 이름없는 들풀도 이 우주 전체와 호흡하고 있는 것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설쳤듯이, 예사롭지 않은 생명에 대한 경외감 에 우리는 전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한 생명, 한 생명이 다 소중한 것이다.
 
예수께서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솔로몬의 영광도 이 꽃 하나만 하지 못하다"고 하신 말씀(마태, 6:28-29)은 창조주가 엮어내는 생명현상의 경이로움에 대한 놀라운 통찰에 다름 아니다. 이 우주의 바다 한가운데서 전체와 더불어 호흡한다는 것, 생명이 숨쉰다는 것, 즉 우리가 이렇게 살아서 숨을 쉰다는 사실 자체가 벅찬 감 격이요, 형언할 수 없는 신비며, 감당키 힘든 하나님의 은총이다. 이 어찌 창조주에 대한 경외감이 나오 지 않겠는가. "온 땅과 만민들아, 산들과 바다와 나무들아 주 너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늘의 해와 달 과 별들아 영원토록 주 너의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우리가 흔히 아는 시편기자의 이 감동적인 고백들은 지극히 종교적인 구술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지극히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신 앙고백임을 알아야 한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생태신학에도 닿아있다. 유물론적 세계관에 치우쳤다고 보는 기존의 민중신학에서는 이러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발견할 수 있었던가?
 
5, 6. 인식과 실천

현대의 유물론은 실천(노동)을 물질개념보다 우선시키고 일체를 실천(노동)에서 도출한다는 점이 다.[94] 실천적 당파성을 주장하는 민중신학자들은 그 자신이 이미 유물론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 기는 하는가. 인간의 인식과 실천에 있어서 태초에 실천이 있었는가 아니면 인식(깨달음)이 있었는가. 성경에는 이에 대한 좋은 말씀이 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 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서, 불 속 에 던진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로 그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마태, 7, 17-20]

열매는 현상의 차원이며 우리가 지각하고 알 수 있는 지평이다. 그러나 사람의 속(인식, 깨달음의 영역) 그것은 알 길이 없다. 그것을 아는 것은 열매의 차원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나무(인식)이지 열매(실천)가 아니다. 현상은 본질의 반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상에서 본질로> 가야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존재는 사유가 실천을 포섭함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실천은 현상의 차원이기에 결코 실천에서 인식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없는데 어떻게 열매가 나올 수 있는가? 즉, 실천은 그 주체자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에서 비롯되며, 깨달음의 정도에 따라 인간은 그만큼의 실천을 이룬다는 것이다. 태초에 있었던 것은 깨달음, 즉 새로운 자아에 대한 비전이다. 허나 깨달음 그 자체만으로는 불완전하며, 인간은 이 새로운 자아를 물리적으로 실현할 때에야 비로소 완전한 인간(=그리스도)이 되는 것이다.

5, 7. 관념은 물질을, 물질은 관념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관념론의 오류는 관념을 하나의 실체로, 물질을 하나의 부속물로 본 것이다. 그렇 기에 관념론은 사변적이고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의 철학은 관념 그 자체는 실체가 아니며, 관념은 물질과 유기적으로 통전할 때 비로소 실체가 된다고 한다. 이 세계는 신의 비인격(불완전함)에서 신의 인격(완전함)으로의 과정상에 놓여 있다. 끊임없이 창 조적으로 진화하는 이 세계는 바로 신 자신의 완성을 향한 자기 창조사역이다. 태초에 물질에 대한 비전 을 관념이 가져다 줬다면, 물질은 관념의 예증과 완성을 위해 필수적인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화이트헤 드가 기술하는 유기체적 세계관은 이 우주를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진화해나가는 거대한 유기체로 본다. 그 안에서 모든 현실적 존재들은 새로움novelty을 발현시키며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 의 진화하는 유기체적 세계관은 떼이야르가 말한 <인간현상>마저 그 과정상에서 잉태시켰다.[95]

5, 8. 낙관주의는 인류가 경계해야 할 치명적인 독(毒)이다.

그렇다면, 화이트헤드의 진화하는 신의 비전에 의해 마냥 낙관주의적 유토피즘으로 흐르는가? 아니다. 왜냐면 그 성공여부는 제각기 세계 속에 있는 우리 자신에게 주어져 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인간은 관 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요구되는 책임성이다. 화이트헤드의 관계적 세계에서는 무릇 내가 변하면 이 세 계도 변한다는 것이다. 역으로 우리는 내가 나쁘게 변하면 그 만큼 이 전체 세계에 반인간해방의 조류 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에겐 희망과 비극이 동시에 공존한다.[96]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기본 적으로 모든 비극적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비극적 가능성을 배제한 낙관주의야 말로 인간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는 독약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사상사적 지평에서 제일로 위 험한 발상이며,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교만인 것이다.

근대 세계관의 인간학적 오류는 인본주의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바로 이러 한 낙관주의 때문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적 세계는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결합하면서 인간은 이성을 통해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위대한 존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제1, 2차 세계대전 이라는 참담하고도 엄청난 비극을 야기시켰다. 낙관주의적 인본주의 혹은 낙관주의적 유토피즘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하고 폄하시켜야 할 인본주의사상이다. 그래서 인간은 한계를 느끼고 신을 되찾는 것이리라. 변혁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기독교 신학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나의 실존 의 변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나의 변혁은 곧 사회 변혁을 포섭한다. 왜냐면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니 까.

5, 9. <호떡을 파는 나>와 <수입가구를 사는 손님>은 서로 관계가 있었다.

인간이 관계적 존재라는 것을 예시하는 소중한 경험이 나에게 있다. 난 97년도를 1년 동안 휴학하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백화점에서 호떡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잘되는 장사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고통받던 가난한 나는 11월말쯤에 이르러서 아예 내가 직접 장사를 하기 로 맘먹었다. 욕심을 부린 것이다. 나는 호떡기계를 사기 위해 빚을 내어 겨우 장사를 시작했다. 근데 어이없게도 장사를 시작한 뒤 보름 후에 IMF사건이 터져 버린 것이다. 외환위기가 닥치고, 수입하는 상품들은 가격이 배로 뛰어 올랐다. 당연히 호떡을 만드는 재료인 밀가루며, 설탕이며, 식용유며 하는 상품들은 모두 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때는 또 돈을 많이 줘도 물건이 없어서 살 수가 없었 으며, 이러한 계기가 가격을 더더욱 또 부채질했었다. 할 수 없이 호떡의 판매 가격도 올릴 수밖에 없었 는데 손님들은 그로 인해 비싸다고 해서 잘 사먹지를 않았다. 결국 나는 엄청 손해를 보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생각해보니 IMF의 외환 위기는 갑자기 온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원인 중의 주요한 하나를 들자면, 무분별한 해외여행에다 조기유학이니 수입 가구니 하여 외화를 흥 청망청 썼던 우리 사회의 사치와 허영이 누적되고 쌓여서 터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그러한 징후가 이 사회에 참 많이 나타났었는데 왜 그때 난 그걸 예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물밀 듯이 들었 지만 어쩔 수 없었다. 즉, 내가 일하는 백화점에서 수입가구를 고르는 손님과 호떡코너에서 호떡을 파는 나는 서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관계적 지평에서 그와 나는 유기적으로 연관되 고 있었다. 결국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간에 나혼자만 잘되면 그뿐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 임이 드러난다. <자각된 민중>은 이 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를 무심코 넘기지 않는다. IMF는 참으로 우 리에게 예시하는 것이 많은 사건이다.

5, 10. 지구는 네모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이 관계되는 차원은 동시적인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 하는 그 어떤 지점에서 관계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시간적인 갭도 내포되어 있다. 우리는 결코 서로를 동시적으로 만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각자가 속한 제 각기의 우주가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결국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든 사건들은 모두 상대적인 사실들이다.

예컨대 우리는 지구나 달이 둥글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우주의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절대불변의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 인간은 직접 지구 밖에서 지구가 둥들다는 것을 실제로 확인했고, 달이 둥글다는 것도 봤다. 그렇기에 이것은 아무도 의심 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달나라에도 왔다 갔다오는 이 시대에서 지구나 달이 네모라고 주장한 다면 아마 정신나간 또라이거나 미친 새끼로 취급받을 것이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놀랍게도 오늘날 의 첨단과학은 이 말같지 않은 소리를 하는 미친 또라이들에게도 표를 던져준다는 황당한 사실을 알아 야 한다.(우와! 띠옹∼)

자-, 이 무슨 그로테스크한 생각인가하고 의아해하겠지만, 모든 세계는 상대적 세계일 뿐이라는 것이 다. 우리는 사물과 동시적으로 만날 수가 없다. 우리가 보는 지구는 전적으로 인간의 눈으로 본 지구일 뿐이며, 전혀 다른 존재가 지구를 본다면 우리가 보는 지구와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네모만 볼 줄 아는 어떤 우주인이나 다른 생명체가 있다고 친다면, 그에게는 지구가 네모로 보이며 네모로 만 져지며 네모로 지각된다는 것이다. 개의 눈에는 우리가 흑백의 난쟁이로 나타나고 지각될 런 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착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각 개인이 보는 이 우주의 모습도 실제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미세한 차이일 수도 있겠으나 결국 똑같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우주 자체를 동시적으로 접할 수는 없고, 이 우주의 스펙트럼이 쏘아내는 다차원적인 공간의 어느 한 부분을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느 지점에 서 우리는 타인과 이 우주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보는 사물이 절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거대한 착각이다. 물론 그 착각은 본래의 우주 (=인과적 효과성에 가려 있는 <물자체>)로부터 온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에 유행하는 <사오정 시리즈> 도 것도 바로 나와 너는 결코 동시적으로 만날 수가 없는, 각자 나름의 세계가 있다는 극단적인 표현의 우스개 유머인 것이다. 이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의 실제 여부는 우리가 알 수 없으며, 그것은 우리가 인식하고 경험하는 의식의 지평에서 논의 될 수 있을 뿐이다. 사회학이라는 학문도 바로 이러한 차원에 놓여 있다. 20세기 과학은 17세기의 과학적 유물론을 뒤집는, 이른바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놀라 운 결론을 이끌어낸다.[97]

5, 11. 의식과 물질의 상관성

우리는 물질이 의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물론 물질은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오히려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하여 잠깐 김용옥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왜냐면 유물론에 대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형님의 교조적 추종자들은 인간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 는 극히 일면적인 설명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결정"이라는 말보다는 "영향"이라는 말을 더 좋아하며 또 그 역방향의 가능성도 항상 인정한다. 즉 하부구조가 상부구조에 영향을 주는가하면 상부구조가 하부구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것은 좀 개명한 맑시스트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총체적 인간의 현실이다. 내가 일상적으로 관찰하는 인간의 모습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오히려 상부구조로부터의 하부구조에로의 진행방향이라고 나는 느낀다. 내가 나를 분석해 볼 때도, 나의 의식의 회전은 반드시 물질적 토대의 회전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와 무관하게 나의 의식은 회전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회전이 없이는 나의 새로운 행동은 발생하지 않는다. 나의 새로운 행동의 발현은 물질 조건에서 결정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의식의 변화에서 결정지워진다는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이 "의식화" 작업을 고수하는 것도 어쩌면 소박한 맑시즘의 대원칙을 위배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력한 데모의 행위가 발생하기 위하여서는 그 행위의 하부구조의 상태로서 조작될 수는 없으며, 반드시 그 상부구조의 조작이 더 중요하고 핵심적이라고 그들은 판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의식의 조작을 진행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만큼 의식의 틀, 즉 이데올로기의 조작성은 인간의 행위를 규정하는 결정적 틀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으며 단지 인간의 현실로 파악할 뿐이다.”[98]

5, 12. 민중신학은 유물론적 세계관의 때를 벗겨야 한다.

민중신학은 맑스주의 유물론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고 어디까지 거부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밝히 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중신학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한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피 하긴 어려울 것이다. 민중신학이 그 정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맑스주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철저히 비 판 극복하여 수용하든지-물론 나는 한계가 있다고 보기에 반대지만-아니면 이 우주를 설명하는 철학적 세계관에 대해 새로 판을 짜든지 해야 할 것이다. 앞서 얘기했지만 신학자라면, 특히 조직신학자라면 철 학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민중신학이 조직신학적 체계를 가질려면 이 우주를 설명하는 세계관에 대 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철학의 기능은 혼란과 모순의 언명들과 독단들을 제어하며 신학의 기능은 그러한 튼튼한 바탕위에서 이 세계에 궁극적인 비전을 제시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 대안으로써 나는 관념론과 유물론을 조화롭게 극복한다고 보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민중신학이 수용할 것을 권한다. 나는 다음 장에서 이것을 조심스럽게 펼쳐보이겠다. 화이트헤드의 사상 은 서구사상이지만-혹시 서구사상이라고 해서 반서구신학을 지향하는 민중신학자들 중에 무조건 질색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은 동양사상과 매우 흡사하다.[99]
 
6. 민중신학을 위한 대안적 모색

6, 1. 나의 민중신학의 <민중론>

언젠가 김경재 교수는 민중신학의 신관이 과정신학적 신관과 닮았다고 한 적이 있었다.[100] 그 작업 을 구체화할 때가 이제 온 것 같다. 하지만 여기서는 민중신학의 신관보다 시급한, 구구절절 논란이 많 은 <민중론>에 대해서 제일 먼저 언급할 것이다. 왜냐면 <신론>이나 <기독론>은 학문적 체계를 정립함 에 있어서 민중신학이 과정신학과 대화함으로써 얼마든지 학문적 전개가 가능하고 그렇기에 조직신학적 작업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중론>은 민중신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그 논의자체에 오류가 있고, 명확한 구도가 세워지지 않았다고 보기에 이 자리에서 피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기존의 민중신학의 민중론에 대한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 먼저 밝히는 것이지만, 나의 민중신학의 <민중론>은 <인간론>과 닿아 있다. 자, 그럼 하나하나 펼쳐보자.

6, 2. 우리는 모두 <보편적 민중>universal Minjung 이다.

나는 우선 민중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보다 존재론적 이해가 먼저 전제되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앞서의 제2장에서 밝혔듯이 사회학적 이해는 존재론적 이해를 기반으로 해야 그 타당성을 가지 기 때문이다.[101] 모든 학문의 밑변에 철학이 근저하고 있듯이, 이것은 곧 민중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민중을 존재론적으로 조심스럽게 정의해 본다면, 나는 민중을 <분열 과 부조화에 놓여 있는 존재 일반>라고 본다. 화이트헤드가 보는 이 세계는 연기적으로 짜여있기에 어느 누구도 분열과 부조화에 대해서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는 누구나 다 민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심지어 하나님도, 예수님도 일단은 분열과 부조화에 놓 여있는 존재가 된다고 본다.[102] 분열과 부조화는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악이다. 이 세계 안에 악이 창궐 하고 인간의 실존이 불완전한 한 모든 인간은 내면의 일그러짐을 가진 죄인일 수밖에 없다. 이 세계와 나는 이분화되어 있지 않으며, 이 세계가 오염되면 나자신도 오염된 것이다. 또한 동시에 그것을 극복해 야 할 책임성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우리가 이를 실행하지 않는 한, 여전히 이 세계는 불완전할 것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항구적으로 죄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바로 이러한 민중성을 가진다. 나는 이러한 죄에 빠진 만인을 <보편적 민중 >universal Minjung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나의 민중신학의 <민중론>은 곧 <인간론>이다.

우리는 모두다 보편적 민중에 속한다. 모든 인류는 보편적 민중이다. 보편적 민중은 분열과 부조화에 놓여 있기 때문에 구제를 받아야 할 대상인 <중생>衆生이라는 용어와도 어느 정도 상통한다 하겠다. 그렇기에 보편적 민중은 '내면의 일그러짐'을 가지고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가 필요하다. 이러한 보편적 민중의 '내면의 일그러짐'은 사회학적 지평에서 인간의 권력과 함수관계를 가지면서 남을 해할 수 있는 횡포, 수탈로 나타난다. 물론 이때의 권력이란 이 세계에 대한 영향력 정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같은 등급의 '내면의 일그러짐'이라도 권력을 많이 가진 자일수록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더 기여할 여지가 많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6, 3. <자각된 민중> [103]은 내면적 성찰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보편적 민중'가운데서 신이 주는 비전[104]을 체득한 자를 바로 <자각된 민중>이라고 한다. '자각된 민중'은 한완상이 얘기한 <대자적 민중>일 수도 있으나 이것은 <즉자적 민중>에 상반되는 위치 에 있는 개념이며, 계급적인 의미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기에 조금은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 보다 '자각된 민중'은 내면적 성찰이 선행한다. 이는 이 세계와 나는 무관하지 않다는 실존적 사실에서 나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실존적 가치에로의 의식의 전환을 이룬 민중이다. 그러므로 나 자신에게 있어 서 구원이란 보편적 민중인 <나>가 자각된 민중으로 거듭남으로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구원의 완결이 아니다. 자각된 민중의 내면적 성찰은 <찰나>에 일어나지만, 그의 삶에 비로소 열 매를 맺어야만 영원한 아름다움을 발하는 객체적 불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6, 4. 자각된 민중의 구원

그런데 <자각>이라는 용어 자체는 스스로 깨닫는다는 의미가 강하지만 이 자각이라는 것은 어떤 자 신을 비춰볼 만한 대상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개념이다. 포이에르바하의 오류는 제2자아를 그 자신에 게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 데에 있다. 왜냐면 나자신의 불완전함은 나자신의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완 전한 비전, 즉 제2자아를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논한 다는 것 자체가 바로 관계성에서 나온 개념이다. 즉, 인간은 인간에게 항구적으로 인간일 수밖에 없으며, 투사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자각함의 원인은 외부, 즉 초월자에게서 구할 수밖에 없다. 그 초월자가 바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다. 그렇다면 자각된 민중의 구원은 궁극적으로 <신-인 협력의 구원>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은 틸리히가 말한 <신율>(神律)이라 봐도 좋다. 왜냐면 분열과 부조 화에 놓여있는 보편적 민중은 그 자신만으로는 불완전하기에 그 자신의 비전을 하나님으로부터 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각한 민중>이라 하지 않고 <자각된 민중>이라고 했다.

궁극적으로 자각된 민중의 구원은 '신-인 협력의 구원'이지만, 현상적 차원에서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자력구원>으로 드러난다.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현실 세계의 특성에 대한 사려와 함께 시작하 는 어떠한 증명도 이 세계의 현실성 이상으로 올라갈 수는 없으며, 그것은 다만 경험되는 이 세계 안에 서 드러나 모든 요인들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한다.[105]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발견할 수 있 는 신은 내재적 신이지 전적인 초월적 신이 아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범신론, 다신론, 무신론, 진화론 은 일면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개념들은 세계에 내재하는 초월적 신의 현존양식이기 때문이다.[106]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신은 진화론적 신이요, 범신론적 신이며, 다양한 문화에 의한 다 신론적 신이거나 신의 침묵(또는 무능함)에 의한 무신론적 신이다. 초월적 신이 존재한다고 쳐도 현실 사실의 총체성 속에 포함되지는 않기에 이에 대한 증명이나 설명적인 어떠한 것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다. 이것을 역으로 얘기하자면, 무신론, 범신론, 다신론, 진화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초월적 세계를 증명 하지 못하는 인간의 경험적 인식의 한계를 예증한다고 봐야한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자각된 민중에게 내려주신 신의 은총은 우리가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며, 우리가 몸소 자각된 민중으로서 신앙적 체험을 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이 세계에서 구원의 빛을 내려주 신 신의 은총을 겨우 발견하는 자리는 자각된 민중의 신앙고백, 즉 <케리그마>안에서만이 초월적인 하나 님의 존재하심이 이 세계에 회자되는 것이다. 하트숀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자각된 민중의 구원을 설명해 줄 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그들 자신을 통하여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하신다."[107] 이는 우리나라의 속담에 있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이것은 결과적으 로는 민중의 구원이 스스로를 구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얘기하지만, 민중의 자력구원은 어디까지나 현상적 차원에서의 설명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다. 마치 불교가 제 스스로의 구원을 말하지만 어디까지 나 법력의 힘을 빌 듯이 말이다. 그리고 신의 은총에 의한 자아 성찰 없이 기도나 신앙의 수련이란 있 을 수 없을 것이다. 자각된 민중의 영성은 그 신앙의 훈련에 따라, 이 땅의 생명이 하나 죽어갈 때마다 그에 따른 기의 작용도 포착할 수 있을 만큼의 <영민함>과 슬퍼할 수 있는 통곡의 <깊은 감성>마저 지 녀야 할 것이다.

6, 5. <우선적 민중>preferential Minjung

그러나 일단 자각된 민중은 깨달음만 갖고 있을 뿐이지 그 깨달음을 드러낼 열매가 없다. 즉, 구원의 씨앗을 겨우 발아시켰을 뿐인 것이다. 이 자각된 민중은 내면의 일그러짐을 정화시키면서 동시에 이 사 회학적 지평에 눈을 뜨게 되는데, 바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자각된 민중은 이들과 나 자신을 동일시한다. 이들의 아픔을 곧 나의 아픔으로, 이들의 고통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생각하는 영성을 갖고 있다. 나는 이들을 <우선적 민중>preferential Minjung이라 고 명명한다. <우선적 민중>이란 역사적 과정상에 있어서 그때마다 항상 이 사회의 밑바닥에 자리하는 '보편적 민중'을 말한다. 또는 '보편적 민중' 가운데서 가장 최대치의 고난을 담지한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계층적 의미가 강하지만, 꼭 정치, 경제적인 면만 따질 수 없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등 신체적 장애까지 포함하여 통합적으로 어우러진 총체적 빈사상태에 있는 사람들 가운 데에서도 제일로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우선적 민중은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항상 바닥 사람 이기 때문에 역사가 진행하고 흐를 때마다 끊임없이 유기적으로 변화한다. 그렇기에 우선적 민중은 고 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것은 <사건적 실체>로 보는 입장과 일면 상통하는 면이 있다. 즉, 우선적 민중의 실체는 자각된 민중의 사회과학적 분석을 포함한, 이 세계의 다양한 시각에 따른 분석에 따라 유기적으 로 바뀔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선적 민중 또한 보편적 민중과 마찬가지로 이 땅의 평등의 그날까 지 항구적으로 존재하는 이들이다.

6, 6. <우선적 민중>은 <자각된 민중>의 우선적인 실천 대상이다.

그리고 우선적 민중은, 사회학적 분석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권력을 적게 가질수록, 또는 계층의 밑 바닥으로 갈수록 고난과 고통 즉 불합리한 모순을 많이 가진다고 본다. 우선적 민중은 왜 하필 <우선적 >인가? 그것은 이 세상의 불합리한 모순에 대해 불합리한 자세(='우선적 민중'을 우선시하는 자세)로 맞 불을 질러서, 종국적으로 평형을 유지시켜야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1세 대 민중신학자들이 발견한 것은 바로 고난의 담지자인 <우선적 민중>의 발견이 아닌가 생각한다.[108] 우선적 민중을 우선시한다는 것은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민중을 섬긴다'는 말과 상통하는 말이다. 그렇 기에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표현도 바로 역사적 진행과정에서의 불합리함을 극복하기 위 한 방편으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캐치프레이즈인 것이다. 우선적 민중에게서 나타나는 불합리한 모 순들이 우선적 단계로 해결될 때 이 땅은 저 평등의 하나님 나라에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다. 물론 우선 적 민중의 치유는 동시에 우선적 민중을 억압하는 것들에 대한 우선적 저항이다. 이데올로기 싸움은 여 기서 일어난다. 물론 우선적 민중도 보편적 민중이 가지는 '내면의 일그러짐'도 함께 가진다. 하지만 이 것은 보편적 민중의 더 큰 권력과 횡포에 의해 왜곡된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우선적 민중에 대하여 이 들의 내면의 일그러짐을 치유하는 행위는 곧 이러한 왜곡된 부분을 밝히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인간의 실존은 자신의 실존과 타자의 영향력에 의해 항상 변증법적으로 합일되면서 나타나지만, 물론 그 왜곡 의 정도는 권력구조의 영향으로 인해 우선적 민중이 제일 심하다고 본다. 그렇기에 우선적인 민중은 우 선적인 구원의 대상인 것이다.

구원의 열매란 바로 자각된 민중과 우선적 민중이 만나서 엮어내는 변증법적인 신앙의 성과물을 말한다. 그렇기에 구원은 사건속에서 형성론적이다. 전통신학은 선한 사마리아의 비유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을 예수랑 제일 닮은 자로 보는데 반해, 기존의 민중신학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자'를 예수로 본다.[109] 그러나 나의 민중신학은, 강도 만난 자는 우리가 만나야 할 예수(자각된 민중이 자신과 동일시하는 우선적 민중)이고 선한 사마리아인은 우리가 되어야 할 예수(자각된 민중)라고 보며, 이 둘이 만나서 예수사건, 민중사건, 구원사건, 치유사건이 일어난다고 본다.

6, 7. <우선적 민중>은 <자각된 민중>의 의식의 지평에서만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선적 민중은 역사적 과정상에서 객관적으로 실재하 지만 그 확인여부는 불가능하며 그 실체는 오직 우리에게 인식의 지평에서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즉, 우선적 민중은 자각된 민중의 의식안에서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전체 우주의 구도 속에서 <우선적 민 중>은 존재하지만 저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우선적 민중>은 우리가 인식하는 의식의 굴절에 의해 제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그것은 사회학 또한 확률적 사실로서의 지식일 수밖에 없기에 제각기 인식하는 사회학적 분석 또는 시각의 차이와 관련하는 것이다. 저마다의 자각된 민중의 인식의 지평에서 존재하는 우선적 민중이 처한 상황 또는 이해관계와 관련하는 보편적 민중은, 이 때의 우선적 민중과 이항대립적 인 구도를 가진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데올로기 싸움은 바로 여기서 일어나며, 이 지점에서 자각된 민중 은 우선적 민중을 위한 당파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우선적 민중의 부르짖음은 곧 하나님의 부르심이며,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우선적 민중과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우선적 민중이라고 판단되는 예수는 우선적 민중을 우선적으로 사랑했던 자각된 민중이었다. 그렇기에 민중운동의 전략들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우리들에게는 각자의 달란트가 있다. 나의 삶의 정황과 성격을 결정짓는 나의 삶의 자리에서 각자 맡 은 분량대로 각자의 그릇대로 우선적 민중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하여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할 것 이다. 그럴 경우 자각된 민중의 의식에 지평에 나타나는 우선적 민중의 발견은 늘어나지만, 이 세계에 실재하는 우선적 민중은 점점 줄어든다.(호크하이머는 이론은 <비관적>이지만 실천은 <낙관적>이라고 했다.) 글라벌라이제이션을 사는 우리지만 오늘날의 인간들은 저마다 실질적인 시공의 제약을 받는 생활 반경이 있다. 자각된 민중은 자신의 생활반경 안에서 여력이 되는 한, 우선적 민중을 발견하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6, 8. 종교와 이 세계의 근본적 치유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종교의 힘이다. 화이트헤드는 종교를 인간의 내적 부분을 정화시키는 신념의 힘으로 보며, 종교의 근본적인 덕목은 성(誠, sincerity), 곧 침투적 성실(penetrating sincerity)이라고 하였다.[110] 종교는 자신의 대한 성실성이 종국적으로 타인에게 흘러 들어가 침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또한 <종교는 세계에의 충성>Religion is world-loyalty이라고 했다.[111] 종교는 세상을 이롭게 한다. 그렇기에 죄에 빠진 보편적 민중의 구원은 자신의 내면적 일그러짐을 정화시키기 위해 종교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자각된 민중의 내면적 정화는 사회학적 지평에서 이 사회의 권력의 함수관계에 의해 타인에게 침투된다. 우선적 민중과의 참여연대, 이것은 바로 종교적 영성의 사회학적인 힘이다.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종교는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홀로 있음>solitariness과 더불어 행하는 일이라고 하였다.[112] 그렇기에 자각된 민중은 우선적 민중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다른 위치에 서있는 이에게는 빛과 향기를 발하며, 그 자신의 구원이 획득된 상태를 예증한다. 그러므로 종교의 구원은 형성론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세계의 근본악은 내가 보편적 민중에 머무는 것, 곧 나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내면의 일그러 짐>에서 비롯한다. 사회구조악은 나의 욕심이 사회학적으로 표출되어 나타나는 현상적 차원의 악인 것 이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완성은 종국적으로 정치, 사회 제도의 구조적 개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내 면의 정화 곧 나의 의지가 나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그러한 상태에 이르를 때에 완성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그리스도>라고 부르며, 불교적으로 얘기하면 내가 부처가 되는 상태라 할 수 있겠 다. <그리스도인>이란 나 자신이 종국적으로 그리스도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입문한 자를 의미한다. 물론 그것은 내가 예수를 믿고 따름으로 인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럼으로써 내가 예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기에 세계의 완성,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 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바로 <모든 인간의 그리스도화>(또는 <모든 인간의 성인군자화>라고나 할까!)가 될 때에야 근본적인 우주 완성의 지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민중신학이 사회 제도를 개혁하려는 실천을 지향한다면, 나의 민중신학은 끊임없는 내면의 성찰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기존의 민중신학이 사회 제도를 개혁하려는 실천을 지향한다면, 나의 민중신학은 끊임없는 내면의 성찰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겠다. 분명한 것은 이 세계의 근본적인 치유가 정치·사회의 구조적 인 개혁이라는 물적 토대의 완성만으론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설사 그런 사회가 제도적으로 완전 히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범죄하고 타락할 수 있지 않은가. 결국 이 세계의 완성은 종교 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앞서 얘기한 모든 인간의 성인군자화요, 그리스도 화라는 지평에서 구할 수 있겠다. 기존의 민중신학은 종교의 가장 핵심적 기능이라는 인간 실존의 내면 적 치유가 부재한 신학이었다. 확언컨대, 보편적 민중의 실존적·내면적 치유 없이 자각된 민중이 될 수 없으며, 자각된 민중이 되지 않고는 결코 우선적 민중을 만날 수 없다.

6, 9. 나의 민중신학의 계보적 위치

어찌보면 나의 민중신학은 기존의 민중신학과 너무 다른 신학일 수도 있다. 엄밀히 따지면 나의 민중 신학은 1세대의 민중에 대한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키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간다 할 수 있겠다. 유물론적 토대를 구축하려고 했던 2세대와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기에 학문적 도표로 보면 여기서부터 갈라진다고 본다. 그것은 1세대가 절박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하여 학문적 체계화에 그렇게 신경을 못썼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본다. 2세대는 1세대의 민중신학에 과감하게 정치경제학을 도입시키 지만, 나의 민중신학은 1세대의 민중신학의 학문적 체계화를 위해 학문의 뼈대인 철학적 세계관을 먼저 도입시킨다. 이로 인해 기존의 민중신학과 그 색깔이 확연히 바뀌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민중신학은 오히려 애초의 함석헌의 씨?사상과 흡사하다고 본다. 함석헌의 씨?사상 은 민중신학의 학문적 태동의 배경이기도 하다.[113] 개인적인 평가지만, 나의 민중신학은 민중신학이 태 동한 학문적 자궁 속으로 어른이 되어 다시 회귀한 느낌이다. 이 논문에서는 함석헌의 책은 거의 다루 지 않았으나, 안타깝게도 민중신학이 1세대, 2세대, 3세대로 갈수록 함석헌의 씨?사상과는 점점 멀리 떨어져가는 느낌이다. 함석헌의 사상은 김경재나 박재순을 비롯한 몇 사람에게만 주목되었을 뿐이었지, 현재는 단지 전설이 되버린 느낌이다. 잠시 「민중사건의 그리스도」라는 책에 나와있는 함석헌과 안병 무의 대화[114]를 엿들어보자.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놀랍게도 둘은 상반된 입장으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관찰력이 좋고 눈치 빠른 독자였다면, 분명 이 부분을 이상하게 여겼을 텐데....

안병무 : ......(중략)......, 그러니까 하느님 나라가 도래한다고 할 때 지금 불평등하고 불의한 것이 전부 제가 있어야 할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없이 곧 바로 하느님 나라에로 돌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죠. 해방 이라는 과정없이 평화로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거죠. 해방이라는 과정없이 평화에로 들어간다, 불 평등하고 불의한 상황을 그대로 안고 평화로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거든요, 그 과정은 예수 에게 꼭 있어요.

함석헌 : 날더러 말하라고 하면 거꾸로 말하겠어. 하느님의 평화에 들어가지 않고는 해방은 없다. 해방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되지도 않을 소리를 하는 거요. 해도 해방은 못가져 올거요. 다만 하느님의 평화에 들어 간 사람은 그대로 해방에 들어가.

안병무 : 선생님 사고는 비역사적이거든요.

함석헌 : 글세 그러겠죠.

- (중략) -

안병무 : 잘못하면 제 것만 하고 제 집안만 다스리라는 말이 수수방관하라는 말도 돼요. 그러는 동안 권력 자, 가진 자에 의해 평화가 교란되고 있는데요.

함석헌 : 할 수 있는 제 일도 안 하는 것이 문제지. 안 될 걸 자꾸 말하면 뭘 해. 제 자리에서 제 일 제대 로 한다는 것은 곧 전체의 일을 한다는 거지. 제 일만 하라니까, 마치, 아무리 보수주의 신앙이기로시니 옆 집 학생이 데모하다 잡혀갔는데, 종교인이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해서 거기도 한 번 들여다보지 않 는단 말이냐. 그건 정치가 아니라 사람 노릇도 않는 것이거든. 예수님이 설령 아무리 정치 관계 안 했다고 해도 사람 노릇하지 말란 말은 안했거든.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학생이 아무리 잘못했다 하더라도 잘못했 으면 했을수록 그 집을 들여다보는 것이 사람 노릇이고 종교인이지. 모른 체 한다, 이것이 바로 제 일 제 대로 안 하는 것이야. 그러니 그거라도 배워 줘야지. 큰 일부터 아니고 가능한 일부터 하자는 거지. 이것이 곧 개인에 철저하면 전체에 철저한 자리이지. 이것은 장자의 주장이기도 해. 개인의 생명자리는 전체와 구 별되지 않거든.

물론 위의 논쟁에서 나의 민중신학은 함석헌의 입장을 지지한다. 앞서 얘기했듯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그릇에 따라 각자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있다. 자각된 민중은 나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얼마인지를 발견 하고서는 그 만큼의 달란트를 남긴다. 나의 실존이 언제까지나 보편적 민중, 곧 죄인에 머문다는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묻어두는 것과 같다. 이것은 나에게 맡겨진 직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입으로는 민중해방이니, 민중혁명이니 하면서도 자기 옆의 친구들과는 늘 다투는 자 또한 예수께서 꾸짖으셨던 악하고 게으른 종에 속한다. 나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평화에 속 하지 않고는 민중해방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하나님 나라는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충 실히 수행함으로써 이뤄지는 나라이다.

6, 10. <민중>과 <인간>

지금까지 나는 민중신학의 <인간론>을 얘기했었다. 물론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앞으로도 더욱 더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민중신학을 왜 <인간신학>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민중신학>이라 고 했는가. 그것은 <인간>이라는 용어보다 <민중>이라는 용어가 고난과 고통에 처해있는 인간 실존의 상황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의 민중신학에 있어서 인간은 곧 민중이다. 그리 고 굳이 내 나름대로의 신학을 주창한다고 해도 이름을 따로 만들고 싶지는 않고 기존의 민중신학을 새 롭게 정립하여 우리나라의 민중신학이 세계신학의 흐름에 유유히 빛날 신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6, 11. 과정신학의 효용성

대안으로 제안하는 나의 민중신학의 조직신학적 작업은 이전까지 있지도 않았던 학문적 작업이다. 나 의 민중신학은 계속해서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밑변으로 한 과정신학의 신론, 기독론, 성령론, 삼위일체론 등등과 접목시킬 것이다. 과정신학은 과정철학을 밑변으로 한 기독교 신학이다. 과정철학이 모든 학문의 밑변이듯이, 과정신학도 그 자체로서 쓰일 수 있다기보다 민중신학, 종교다원주의, 생태신 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제3세계 해방신학과도 충분히 연관됨으로서 그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신학이 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학은 종국적으로 하나의 통로를 갖고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여성신학적인 전망에서 과정신학과 접목하여 조직신학적 작 업이 이뤄진다면,[115] 그것은 제3세계신학을 다 통합할 수 있으리라 본다. 왜냐면 여성은 우선적 민중 중의 우선적 민중이며, 가부장적 체제의 척결은 동시적으로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제도 전반에 걸친 구 조악의 개혁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의 이러한 시도가 얼마만큼 주목받을 진 모르겠으나, 더군다나 중요한 것은 나는 플라톤의 이원론을 밑변으로 하는 전통 보수 기독교의 폐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전통기독교에 대하여도 급진성을 지닐 수밖에 없음을 밝힌다. 왜냐면 유기체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세계관이 그 근본 패러다임이 다르듯이, 관념론적 세계관과 유기체적 세계관 또한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유기체적 세계관 은 관념론적 세계관과 유물론적 세계관의 좋은 점들을 포섭함으로 중첩되기에, 앞으로도 나의 민중신학 이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수용함으로 인해 그 학문적 작업이 진전될수록 느낄 수 있겠지만, 전통신학과 민중신학의 장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잇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6, 12.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또하나 언급할 것은, 민중신학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나의 학문적 세계를 확실히 이해하는 자 라면 어딘지 모르게 불교적인 냄새를 느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 화이트헤드의 세계관은 서구의 이론임 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이랑 매우 흡사한 면이 많다.[116] 화이트헤드는 불교가 종교를 탄생시키는 형이상학인데 반해, 기독교는 항상 형이상학을 추구하는 종교로 머물러 왔다고 말한다.[117] 나는 분명히 보이지만 만약에 기독교가 과정신학적 사유를 체계적으로 쌓게 된다면, 진리는 하나로 통하 기 때문에 언젠가는 기독교와 불교가 필연적으로 만나게 돼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재 진행되는 존 캅 의 연구는 이를 설명한다고 본다.[118] 기독교 신학은 예수의 삶을 합리적 언어로 이해하려는 하나의 학 문적 구도이기에 불교의 교리와 점점 유사성을 띠는 것이다.[119] 붓다는 진리를 설법으로 보여줬지만 예수는 몸으로 보여줬다. 진리에 대한 <이론적 명확함>은 붓다에게 치우쳐져 있으며, <실천적 다이나믹 함>은 예수에게 치우쳐져 있다.

바야흐로 21세기 기독교는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진정한 전환기의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학문의 지평에서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합리적 언어가 만나고, 종교의 지평에서 예수의 삶과 붓다의 깨달음이 화이트헤드의 세계관에서 하나로 만나는 시점에 이르렀다. 제3밀레니움의 민중신 학은 화이트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받아들임으로써 더욱 더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7. 민중신학에 대한 그 밖의 얘기들.

7, 1. 민중신학의 경험적 사례에서의 부작용

민중신학이 전통신학과 나란히 있을 하나의 특수신학이기를 원치 않는다면, 전통신학을 대체할 신학 으로서 전통신학의 폐단은 제거하고 그 장점만을 수용하기를 원한다면, 민중신학은 별 수 없이 콘텍스 츄얼리즘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민중상황의 우선성, 그렇다면 민중현장에서는 신학보다 사회과학이 민중변혁의 상황의 현실에서 더 복음적이지 않은가. 민중신학은 목회현장이 종교현장임을 간과하는 것 인가? 민중신학은 왜 목회현장에서는 제대로 힘을 못쓰는 것인가? 민중사건을 신학적으로 증언한들, 이 에 대한 나 자신의 종교적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민중신학이 목회 현장에서 제대로 쓸려면, 오클로스의 대한 사회학적 이해보다 오클로스에 대한 실존적·존재론적 이해 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민중신학은 프락시스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실천의 우위성으로 인해 민중신학 지지자들은 필연적으로 종교에서 맑스주의 사회과학으로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민중 신학을 하는 당사자들이나 민중신학에 심취했던 이들이 결국은 교회를 등지고 사회운동 쪽으로 자신을 몰입한 현상이 계속 나타났지 않았던가. 민중신학이 영성을 기피하는 것은 당연하며 주일날 예배인원이 줄어드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120] 이것은 분명 민중신학의 경험적 사례의 대표적인 부작용이라고 본 다. 이들의 생각 속에는 사회적 실천, 즉 민주화 운동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목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민주화 운동이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그렇다면 실질적 으로 하나님 나라를 앞당기기에 유용한 텍스트는 성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 투쟁이 적혀있는 사회과학 서가 되버리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설마 민중신학이 이런 쪽으로 가자는 것은 아닐진대.

민중신학은 목회현장이 종교현장임을 간과하면 안된다. 종교현장은 유물론적 투쟁성을 나타내기 이전 에 나의 존재론적 차원을 고백하는 현장이다. 종교현장이 사회계급의 투쟁현장으로 전락했다면 그것을 어떻게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사회 운동 단체라는 간판을 다는 것이 옳지. 분명히 얘기하지 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진정한 이데올로기 투쟁은 자각된 민중의 종교적 성찰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된 다. 우선적 민중은 종교적 성찰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것이다. 종교적 성찰이 결여된 이데올로기 투쟁은 생명력이 짧고 교회를 등질 수밖에 없다.
 
「한겨레신문」에 의하면, 민중신학연구소가 민중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중신학은 전통신학이 갖고 있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나타났다.[121] 왜 자꾸 이런 오류가 생기는 것일까?

경험적 사례의 부작용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민중신학이 종교적 영성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 아니라 민중신학은 종교적 영성을 강조하지 않는 맑스주의 유물론이 라는 패러다임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혹은 민중신학이 전제하는 세계관에 대한 명확한 체계 정립의 부재로 인해- 종교적 영성을 소홀히 하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은 그 패러 다임의 오류나 부재로 인해 이런 적용부분에서 오류가 거듭 발생했었다. <패러다임적 전환>이라는 용어 는 지금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 앞에서 내가 언급한 민중신학의 패러다임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나 의 주장에 이유가 있음을 알겠는가!

7, 2. 민중신학의 타겟

또한 나는 민중신학이 실제 민중현장에 기여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오히려 민중신학이 짐이 됐으면 됐지, 민중현장에서 유용했던 것은 민중신학이 아니라 맑스주의적 사회과학이었다. 그렇기에 80년대 상 황은 더욱 더 민중신학 심취자들을 맑스주의쪽으로 기울게 만들었던 현상도 바로 이와 관련하는 것이다. 민중신학이 민중현장의 시대적 상황을 분석함에 있어서 또는 실제의 민중당사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 을 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럼 민중신학은 여태껏 뭘 했었는가? 민중신학의 타겟은 어디였는가? 민중신학의 정확한 타겟은 바 로 기존의 보수신앙에 젖어있는 자들이었다. 민중신학은 이들의 시각을 바꿔 놓음으로서 간접적으로 민 중현장에 관심을 유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실제 민중과의 참여현장에서는 민중신학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민중신학의 유용성은 보수신앙에 빠진 사람들에게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점에서는 아주 먹혀들었다. 물론 그 반응은 대체로 극과 극을 나타냈지만. 보수 신앙인이 민중신학으로 인해 변하여 사 회운동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은 의의를 가질 수 있었으며, 그런 점에서 민중신학이 민중현장에 기여했다고 볼 수는 있지만, 이외에 민중신학이 민중운동에 기여했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창락 교수 가 말한대로 민중신학은 기층 민중에게 오히려 짐을 하나 더 얹어준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122] 민 중신학이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에게 유용했었던 이유는, 민중신학의 역할이 민중사건을 그리스도교의 입 장에서 해석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현재까지의 민중신학의 정확한 타겟은 그 대상이 기층민중이 아니라 기층민중에 관심하지 않는 보수 신앙인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민중신학자들이 민중현장에 동참했다는 것은 참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민중현장에서 쓸모 있었던 이론은 민중신학보다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맑스주의 이론들이었다. 왜냐면 이러한 담론들이 오히려 이 사회와 민중을 이해하 는데 더욱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들 신학자들은 민중현장에서의 유용한 사회과학이 론들을 신학의 영역으로 다시 끌고 들어온다. 왜냐면 이분들은 어쩔 수 없이 신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민중신학이 기존의 신학에 있어서는 급진성을 띠지만, 민중현장에 있어서는 별로 유용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7, 3. 민중신학의 <사건론>

그리고 엄밀히 따진다면 학문적 지평에서도, 기존의 민중신학의 관심은 <민중>이 아니라 <사건>이어 야 한다. 사건 안에서는 주객이 없다. 전통신학은 예수가 주체였고, 민중은 객체였다. 그런데 기존의 민 중신학은 민중을 주체로, 예수는 민중의 바램과 소망에 수동적으로 이끌려가는 객체로 파악되는 여지가 많이 있다.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면 그것은 주·객이 없는, 상호 교호적인 사건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민중신학의 발견, 그 위대성은 바로 <사건론>의 발견에 있다고 본다. <사건론>은 다른 여타의 신학에서 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개념을 분명히 하자. 민중신학은 <민중>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 민중사건>을 증언하는 것이다. 물론 그 전달대상은 금방 얘기한 보수 신앙인들일 것이다. 하지만 나의 민중신학에서의 민중사건의 증언대상은 죄에 빠진 <보편적 민중>이다. 나의 민중신학은 전통신학을 아 예 대체하려한다.

7, 4. 사회학적 성서해석의 한계와 새로운 성서해석

민중신학은 민중을 위한다고 하는 이야기 신학을 전개하기 위하여 학문적 체계화를 뒷전으로 미룬 것 인가-물론 민중신학의 아카데믹함은 계속 이어지지만- 아니면 김창락 교수가 밝힌대로 학문의 조직화, 체계화 자체가 전통신학의 폐단으로 보기 때문에 민중신학이 이러한 특성을 갖추지 않는 것을 오히려 자랑이나 장점으로 생각했던 것인가, 심히 우려된다.[123] 나는 민중신학자들 중에 설마 이런 생각을 갖 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이야기 신학이라는 것도 생활 속의 담론들을 채취하여 보다 실용적인 면에서 언어구사력 또한 평이하게 하자는 것이지, 그 밑변에 있는 철학적 세계관을 배제하자 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또 그렇게 할 수도 있는 성질도 아니다. 요컨대 신학자들은 예수의 머리에 인식·입력되어 있는 사변의 구도를 밝혀야 될 것이며, 그러한 견지에서 성서를 해석하고 우리의 생활 가운데 예수의 비유말씀과도 같은 쉬운 이야기 신학을 펼쳐 나가야 함이 바람직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앞서 지적했듯 사회학적 성서해석은 인간 내면의 실존을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본다. 민중신학은 성서를 볼 때 민중의 삶의 자리에서 민중의 자기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인 신앙고백의 언어들에 주목을 해야 할 것이다. 민중의 종교적 지평을 여는 언어들을 발 굴하여 성서를 새롭게 짜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아직도 새로운 성서해석이 필요하다. 새로운 성서 해석은 사회학적 성서해석의 자리에서 인간 내면의 실존적 신앙까지도 포섭하는 그러한 차원이라 하겠 다. 새로운 성서해석은 역사적 예수에게서 케리그마를 이끌어내고, 역으로 초대 그리스도교의 케리그마 가 또 어떤 사회학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는 성서해석이다. 이것은 결코 케리그마를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는 차원이다. 그리고 새로운 성서해석은 바울의 인의론의 역사적 자리에서 바울 자신의 신 앙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성서해석이다. 본질은 역사적 자리가 아니라 바울의 주체적 신앙이다.
 
 즉, 새로운 성서해석은 현상에서 본질을 추구하는 성서해석이다. 이것은 이전의 실존적 성서해석과는 완전히 다르다. 왜냐면 나의 실존적 성서해석은 사회학적 성서해석의 작업까지도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는 이것을 <전인적(全人的) 성서해석>이라고 명명하고 싶다.[124] 이것은 사회학적 성서해석의 자리에서 밝혀진 토대들을 중심으로 해서 그 성서의 인물들의 실존적 신앙을 가능한 한 여러 각도에서 탐색해보 는 성서해석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서 인물의 실존적 신앙이 또 사회학적으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살 펴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예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이 어떻게 민중들에게 침투하고 있으며, 민중들은 또 예수의 신앙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상호 교호적인 파악을 통해 성서를 해석하는 작업인 것이다. <전인적 성서해석>은 가능한 한 모든 사회적 인물의 위치에서 각자 나름의 시각으로 성서를 보는 다차 원적 성서해석에 의해 종합될 수 있는 성격을 가진다고 본다.

7, 5. 케리그마와 역사적 예수는 호상적 관계

진정한 케리그마는 자각된 민중의 신앙고백이라고 본다. 이것은 민중신앙의 기초요, 반석이다. 케리그 마는 역사적 예수사건을 경험한 자각된 민중의 반응이었다. 그렇기에 케리그마는 결코 역사적 예수를 간과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역사적 예수를 포섭하지 않는 그 어떠한 케리그마도 허상에 불과하다고 본 다. 비록 제아무리 위대한 불트만이 성서가 케리그마의 확대 집산에 불과하다고 말했어도, 우리는 거기 에 주눅들 필요없이 끝까지 케리그마의 배후를 추적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역사적 예수와 단절된 케리 그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케제만의 말대로 도케티즘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으로 우리가 역사적 예수만을 소유하고 케리그마를 버려서도 안된다. 기존의 민중신학자들은 역사적 예수만을 추구하면은 케리그마는 저절로 나올 수 있다고 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케리그마를 무관심하게 혹은 모호하게 방치하는 것보다 역사적 예수의 탐구는 그 전제나 혹은 결론이 항상 케리그 마의 예수로 나와야 한다고 본다. 획일적이라고 비판할 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은 분명 케리그마에 있다. 기독교 신앙을 끈질기게 이어주고 가능케 한 것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 리스도라는 신앙고백 때문이었다. 자기초월체로서의 예수는 분명 자각된 민중의 케리그마 신앙고백을 통 해서 현현된다. 태초에 케리그마가 있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차원이지만, 이것은 아직 폐기해야 될 차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 역사속에서 객체적 불멸함으로 남아있다. 케리그마를 배제하고서 역사적 예수를 논한다는 것은 당시의 민중의 신앙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라 볼 수 없다. 케 리그마는 예수사건, 민중사건의 결과물로써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7, 6. 나의 실존적 치유 없이 민중해방이란 있을 수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성서를 읽을 때, 나의 실존이 앞서는가 아니면 민중의 역사적 상황의 자리가 앞서는 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나의 실존이라고 말할 것이다. 민중사건이고 뭐고 간에 우선 성서와 나 자신과의 깊고도 은밀한 대화가 없다면, 즉 나 자신의 내면적 성찰이 없다면, 그 모두는 어설픈 무신 론적 사회학적 투쟁이거나 종교적인 위선에 불과하다고 본다. 종교의 궁극적인 차원은 인간 개인의 내 면적 실존, 곧 <고독>으로 소급되며,[125] 그렇기에 이 세계의 완성, 이 우주의 완성도 인간 개인 내면의 치유, 곧 고독의 치유에서 비롯한다고 본다. 이것이 곧 개인의 성인군자화다. 도대체 내가 나 자신도 추 스리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놈의 민중해방이란 말인가!

민중신학은 성서에 대하여 그 물음이 바뀌어야 한다. 성서를 대하는 기존의 민중신학이 제시한 물음은 이것이었다. "성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실천을 요청하는가?"[126] 이것은 인간 실존에 대한 이해없이 그 시대적 상황이 요구하는 책임성을 강제적으로 우리에게 부여하는 물음이다. 허나 그 이전 에 보편적 민중인 <나>가 자각된 민중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성서에 대한 나의 민중신학의 물 음은 이것이다. "성서는 오늘을 사는 <나>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확언컨대, 보편적 민중의 실존 적·내면적 치유 없이 우리는 결코 우선적 민중을 만날 수 없다.

7, 7. 민중신학과 서구신학

민중신학은 흔히 서구신학에 대한 반신학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민중신학이 애초부터 유신론적 관념 론과 상반되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신학에 대한 반신학이 될 수밖 에 없는 운명을 지녔던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만약 민중신학이 맑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하면 할수록 민중신학은 반신학이라는 성격을 더욱 더 극명히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민중신 학이 반신학을 표방하면 표방할수록 새로운 패러다임적 전환이 없는 한 기존의 민중신학은 유물론적 성 격을 더더욱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민중신학은 <반신학>이 아니라 <통합신학>이라는 새로운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

민중신학은 서구신학이 그 보수성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까지 이토록 끈질기게 이어져 왔는지를 알아 야 한다. 그 영속성은 단순히 지배/피지배라는 논리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것으로 설명이 다 되지는 않는다. 맑스는 그 자신의 학문적 작업에서 어려움을 토로하기를 그리스 예술을 사회적 생산양식과 물 적 토대로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러한 예술이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고 인간의 삶에 규범을 넘어 모범 으로까지 통용된다는 점은 도무지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얘기한다.[127] 만약 이 세계가 물적 토대로 설 명이 다 된다고 한다면 인간도 하나의 정교한 물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엥겔스는「반듀링 론」에서 인간의 정신이나 생명현상도 일종의 고등한 단백질의 작용이라고 했었던가.[128] 민중신학의 학문적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7, 8. 민중신학의 계보적 평가

민중신학은 지금까지 "왜 하필 유물론인가?"라는 물음이 부재했었다. 설령 이 물음이 나왔어도 사회 변혁(=민중해방)에 대한 절박한 우위성 때문에 학문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그 물음들은 희석되거나 묻 혀버렸을 것이다. 이런 자세를 1세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민중신학에 대한 학문적 작업을 조심스럽게 펼치겠다면서 야심만만했던 2세대 민중신학자들의 그 과오는-물론 일부 학자일 수 있겠지만- 민중신학이 3세대에 계승되면서[129] 더욱 더 혼란에 빠뜨리는, 어떤 면에서는 회복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로 망쳐놨 다. 민중신학은 신학이지, 민중학이 아닐 것이다. 이를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중신학에 체계화를 위 해 어떤 학문적 메스부터 가해야 할 지를 몰랐던 것이다. 신학에서 신을 뺀다면 그것은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우리는 종교를 배제한 사회환경에 처해 있지 않다. 종교를 포함하는 총체적 환경에 위치하여 있 다. 더군다나 기독교의 정체성은 종교적 지평에 그 시작점이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종교적 지평에서 유물론적 세계관은 수용하기에 타당한가?"라는 비판을 왜 철저히 하지 못했단 말인가.

특히, 강원돈은 전체 민중신학의 계보에서 민중신학에 철학적 세계관을 본격적적으로 정초하려고 했 던 최초의 신학자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의 실험적 작업은 불발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비록 학문적 작업은 불발로 끝났어도 그의 시도는 전체 민중신학계에 오히려 맑스주의를 더 경도하는 분위기를 가져다줬다고 보며, 암묵적으로 민중신학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한다라는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체 민중신학의 흐름에서 좋은 방향으로 갈 뻔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치명적인 상처였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강원돈의 학문적 오류만이 잘못이었 다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물(物)의 신학이야말로 그때까지 지녀왔던 민중신학의 저의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 신학이었다고 평가한다.

7, 9. 민중신학의 과제와 전망

그리고 민중신학이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했다는 것이 나자신의 오해였다면 불행하게도 민중신학은 이러한 철학적 작업이 단 한차례도 있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민중신학은 그 뼈대도 없이 막연하게 집 을 짓기 시작했던 것이다. 집을 지으면서 점차 그 세계관을 형성해 나가면 되지 않느냐라는 질문이 있 겠으나 조직신학자라면 더더욱 인식하듯이 철학적 세계관은 조직신학이라는 건물의 뼈대와도 같다. 뼈 대 없이 살을 붙이겠다는 것인가? 세상에 그런 공사가 어디에 있는가? 비록 그 터는 민중의 자리일 지 는 모르나 설계도의 오류로 인해, 지은 건물은 부실공사가 되는 것이다. 민중신학은 조직신학적 작업도 없이 실천적 방법론에 너무 치우쳐 버렸다. 특히 3세대는 그 실천적 방법론의 정교함은 인정할 수 있겠 지만, 결과적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꼴이 되버린 것이다. 21세기가 몇 일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민중신 학자들은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이 총체적인 부실공사였다는 점을 겸허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신학의 전체적 플롯은 조직신학이요, 조직신학의 베이스는 철학이다. 이것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하 기 싫은 학문적 현실이다. 게다가 신학자는 물론이고 과학자나 윤리학자[130]나 사회학자나 예술가들도 철학은 어쩔 수 없이 포섭해야 할 필수적 학문이다. 물론 이때의 철학이란 이 세계에 대한 정합적이고 논리적인 해석에 다름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세계를 보는 관이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 안경을 통해 서 모든 사물을 해석한다. 그 안경은 부지불식간이라도 생기는 안경이다. 그 안경이, 그 세계관이, 그 자 신이 가진 철학적 원리가 참인지를, 그 진위여부를 확증할려면, 철학은 끊임없이 현실세계에서 적용시킴 으로서 끊임없는 사변의 모험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민중신학이 새로운 세계관을 정립하지 않는다면, 민중신학은 종교적 테두리안에서는 보수 그리 스도인들의 시각을 넓혀준다는 기능의 차원에서는 계속 그 존재가치가 있겠지만, 진보적 교단의 민중교 회 현장에서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 어려우며, 종교의 테두리밖에서는 외부적 사회운동들과 계속적 으로 연대할 것이라 본다. 민중신학이 그 전제하는 철학적 세계관에 대한 고찰이 부재하는 한, 계속적으 로 민중신학은 시대상황에 대한 임기웅변식의 경향을 띨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제3밀레니움에는 전통 신학과 기존의 민중신학(만약 변하지 않았을 경우)의 한계는 점차 축적되는 시기이며, 민중신학은 그 자 체의 오류로 인해 민중신학 전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바뀌던가 아니면 기존의 민중신학과 새로운 민중신 학으로 갈라지던가 할 것이라고 본다.

7, 10. 올바른 세계해석은 올바른 세계변혁을 낳는다.

맑스는 철학을 얘기할 때 철학의 목적은 세계해석이 아니라 세계변혁이라고 말했다. 즉, 세계변혁을 지향하는 철학이야말로 올바른 세계해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철학이 실천적 투쟁성, 실천적 당파성을 드러내는 것은 애초부터 필연적인 귀결이었다고 봐야 한다. 맑스 이전의 헤겔까지의 철학은 세계해석에 치중했지만 그것은 시초부터 잘못된 세계해석으로 인해 세계해석과 세계변혁에 괴리 를 낳았으며 이 세계에 오류로써 나타난 것이다. 나는 말한다. 올바른 세계해석이 올바른 세계변혁을 낳 는다고. 참된 철학은 세계해석과 세계변혁이 이원적으로 나뉘어지지 않으며, 세계해석이라는 개념적 차 원이 세계변혁이라는 물리적 속성을 획득함으로서 비로소 인정받는 것이다.

7, 11. 민중신학과 과정신학의 대화를 소망한다.

그래서 나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우리시대의 최선의 철학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신학에 도입시킨 것이 바로 우리가 익히 들은 바 있는 과정신학Process Theology이다. 이 과정신 학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의 성격으로 인해 그 자체로 열려있으며, 여러 신학분야와 대화가 가능하다. 현 대 과정신학의 최고 권위자인 존 캅은 「과정신학」이라는 책의 한국어판을 위한 서문에서 말하기를 과 정신학은 역사에의 참여를 호소하며 거기서 그리스도를 식별케 하여,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케 하면서, 최근의 예언자적 기독교와 달리 철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했다.[131]

어서바삐 한국의 민중신학자들과 과정신학자들과의 대화가 있기를 바란다. 이런 차원에서 비서구화니, 반서구화니 하는 것은 오히려 민중신학에게 폐쇄성을 부여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언 한다. 21세기 신학에서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과정신학을 모른다면 또는 그것을 배제한다면 학문적 진보 란 있을 수 없다. 이런 나의 얘기가 화이트헤드를 맹종하는 자세에서 나온 독단으로 들린다면, 일단 화 이트헤드의 사상에 한 번 빠져보고 나서 나를 비판하라. 그후에 나를 정죄해도 늦진 않으니까.
 

8. 나오며

8, 1. 전환기의 민중신학

전체적으로 볼 때, 민중신학은 예수의 십자가에 맑스의 망령이 드리워진 신학이었다. 그리고 예수와 맑스가 모순적으로 혼재되어 있는 신학이었다. 민중신학이 계속 어정쩡하게 맑스주의를 잡고 있다면 민 중신학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한다라는 오해를 피하기 힘들 것이며, 민중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가 먼저 전제되어 있지 않는다면, 신학이냐? 사회과학이냐?라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물론 그것 은 관념적인 보수적 신앙에 젖어있는 자들이 남아있는 한 여전히 유효할 진 몰라도 민중현장에 있어서 는 결코 생명력을 가질 수가 없다. 실천적 당파성을 지향한다면 차라리 민중현장에서는 <주체사상>이 오히려 더 유익하지, 괜히 사회과학에다 기독교 신학을 집어넣어서 개념적 혼란만 야기하는 것은 짐을 더 부과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내가 생각하기에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에서의 종교적 신앙이란 것은, 민중신학의 자리로 들어올 수는 없고, 다분히 사회변혁의 단계를 거치고 난 후의 막연한 개연성으로서 인정하는 신앙만 존재할 뿐이었다고 본다.

그렇다! 민중신학은 전통신학의 안티신학이기에 새로운 면을 우리에게 시사했다는 점에서 새로움을 가져다줬으나 그 새로움의 차원은 단지 강조점의 이동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민중신학은 기존 보수 신 학에 대한 강조점의 이동, 관점의 이동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은 내세·피안에서 역사적 지평으로, 개인 에서 집단·사회로, 존재론적 차원에서 사회학적 차원으로 그 강조점이 전이됐을 뿐, 민중신학 또한 서 구신학이 빠져나오지 못한 이분법적인 도식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지해야 한다. 개 인과 사회, 주체와 객체, 믿음과 행함, 신앙과 실천 등등 민중신학이 일면 통합적이고 이분법적 도식을 극복한 듯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개인보다 사회를, 무엇보다 민중의 주체성을, 실천의 우위성을 두는 것은 이분법적 발상에서 나온 도식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개인과 사회는 결코 개체성을 띠는 실체가 아니다. 개인을 독립적 실체로 보는 것이 <우익>이라면, 사회를 독립적 실체로 보는 것이 <좌익>이라 할 수 있다.[132] 그러나 화이트헤드에 의하면, 개인과 사 회는 이원적이면서도 결코 이원적일 수 없다. 주체와 객체는 분리되지 않으며, 개인과 사회는 서로가 서 로를 형성한다. 이 세계의 완성은 정치·사회의 구조 개혁만으로 완성되진 않는다. 그런 사회가 제도적 으로 완전히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인간 개인은 여전히 범죄하고 타락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세계 의 완성은 종교에서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개인의 성인군자화요 그리스도화다. 민중신학은 내면적 치유가 부재한 신학이었다.

8, 2. 내가 사랑하는 민중신학을 위하여

한 가지 언급할 것은, 나의 논지들이 우익의 논리를 편다거나 지배이데올로기에 봉사한다거나 비역사 적이라는 비판은 결코 온당하지 못한 것임을 밝힌다. 요컨대, 우리 앞에 놓여진 과제는 이것이다. 하나 님을 바라는 종교적 영성(관념론)과 불의한 체제에 맞서고 대항하는 사회변혁(유물론), 이 둘 모두를 건 질 수 있는 하나의 사변적 구도의 세계관 정립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화이트헤드의 세계관을 선택했 다. 물론 민중신학자들이 맑스주의의 유물론을 계속적으로 연구하여 아주 적합한 패러다임을 찾았다면 나의 이 페이퍼들은 이면지로 사용되어도 상관 않겠다.

나는 이 논문이 지닌 중요성을 인지한다. 민중신학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는 나의 지론에 대해서 아 마 신학계는 극단적인 두 가지 반응을 보이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기존의 민중신학계가 거대한 찬반양 론에 휩쓸리든가 아니면 아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시당하던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글쎄, 나 자 신이 일개 학부생이라서 그런가?[133]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나 자신의 민중신학을 계속적으로 전개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차피 내가 믿고 있는 바가 진리라고 확신할 수밖에 없는 나의 한계에 기인한다.

그리고 나 자신은 민중신학을 참으로 사랑하는 신학도중의 한 사람이라고 감히 자부한다. 왜냐면 서 두에서 언급했듯이 민중신학은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인식의 혁명을 가져다 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 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아닌 나 자신이 감히 민중신학에 대해서, 그것도 <비판>과 <대안>이 라는 테마를 갖고 글을 썼던 이유는 단 하나 민중신학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8, 3. 민중신학을 튼튼한 반석 위에

이제 민중신학의 학문적 작업은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변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학문이다. 바른 사 변철학은 모든 학문의 오류를 검증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조직신학은 사변철학을 신학의 세계에 정초 하는 작업이다. 민중신학자들은 '학문에 대한 學'에 대한 개념이 결여되어 있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민중신학의 조직신학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같이 하지만 무엇을 먼저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막막했던 것이다.

나는 민중신학의 조직신학적 작업을 위해서는 먼저 철학의 수용이 필요하며, 그 대안으로서 화이트헤 드의 사상을 선택했다. 나는 한국의 민중신학이 과정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과정신학과의 연결을 모색함으로 한국의 민중신학이 더욱 풍부하고 견고한 신학적 체계로 나갔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한 바 탕위에서 실천적 투쟁성을 나타낸다면 참으로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134] 민중신학은 튼튼한 반석 위 에 집을 지어야 할 것이다.

8, 4. 죽재 서남동과 과정사상

이제 이 글을 읽은 여러분들은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죽재 서남동께서 살아 계셨더라면 지금의 민중 신학이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나의 예상은, 그분의 신 학 연구가 지속되었더라면 신학의 안테나라고 하는 이분이 바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중요성을 캐 치 못했을 리가 없다라는 인식에서 나온 얘기이다. 비록 그분이 살아생전에 화이트헤드 철학과 과정신 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었으나, 그때까지 이를 다 이해했었다고는 볼 수 없다.[135] 왜냐면 그것 은 그때까지도 국내 학계에는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과정신학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고, 더 군다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진전된 학문의 연구를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지 않나 싶기 때 문이다. 아마 7, 80년대의 시대적 절박성이 학자들을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에 한껏 고무되도록 했을 것 이다. 만약 학계에 지금 정도로만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과정신학이 소개되고 책이 나왔더라면, 죽재 서 남동께서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 또 한 번 엄청난 신학적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 분의 신학적 감수성은 내가 아는 어느 신학자보다도 최고였다. 그렇게 되면 모르긴 몰라도 70년대에 그 분이 주장하셨던 민중신학이 지금의 민중신학으로 발전하지 않고, 다른 모양새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 것이다.

8, 5. 민중신학은 통합적 신학으로

민중신학은 아무리 반신학을 주창한다하더라도, 누구 말대로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민중신학은 주어-술어형식이 바뀌어야 한다.

 <-아니라 -이다.>가 아니라 <-이면서 -이다.>라 고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존의 민중신학은 '전통적인 로고스 신학이 아니라 천한 민중 의 현실과 함께하는 육의 사르크스 신학이다'라든가, 또는 '이론의 신학이 아닌 일상의 생활 노동에서 나오는 실천의 신학이다'라는 패턴이 있다.[136] 나는 민중신학의 술어가 <-이면서,-이다>라고 바뀌어졌 으면 한다. 전통적인 로고스 신학이면서 육의 사르크스 신학이고, 이론의 신학이면서 실천의 신학이기도 한 민중신학이었으면 한다. 물론 그것은 애매모호한 회색의 차원이 아니라 확실하고도 명징한 하나의 차원을 얘기한다. 아무튼 궁극적으로 이러한 통합적 차원으로 나가야 민중신학이 기존신학을 대체할 만 한 새로움을 불러일으키리라 본다.

우주 안의 어떠한 체계도 독립적으로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일원론적인 관계의 그물망에 놓여있다. 인간의 다차원성을 간과하고 '-이 아니라 -이다'라고만 못박는다면 민중신학이 설 자 리는 점점 협소지리라 본다. 포용과 화합을 전제하면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민중 신학을 향한 나의 바램이다.

8, 6. 예수의 삶과 저항

자각된 민중의 성찰은 하나님이 이 세계에 쏘아주신 빛을 체득함을 의미한다. 물론 그 빛은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로 인해 나는 <나>라는 존재의 새로움에 대한 인식을 가진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고꾸라지고 엎어지며 나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서 우리의 죄가 치유 받는 때가 바로 그때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무능함이 곧 하나님의 전능함임을 깨닫게 하는 성찰이며, 예수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인이 의인화된 첫 열매로 고백하는 차원이다. 그렇기에 자각된 민중의 신앙은 당연히 예수의 행태로 나타난다. 이른바 예수가 나를 통해서 재현되는 것이다.
예수는 불완전과 부조화를 사랑으로 치유하고 극복한 분이시다. 예수에게서 나타난 차별적인 당파적 사랑, 즉 부자보다 빈자를 가까이 한 것은 예수의 삶의 사회학적인 자리가 그들과 가까이 있었기에 그 러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들과 나는 하나라는 존재론적인 동질성에 대한 성찰이 우선한다. 이러 한 자아 발견은 곧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까지 계속적으로 우선적 민중들을 발견하게 한다. 그는 보 편적인 사랑,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그 전제 위에서 우선적 민중인 빈자를 더 가까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저항은 맑스와 달리 비폭력적이다. 비폭력의 정신은 생과 사를 초월해야 나올 수 있는 것이요, 결국 나를 향한 죽음의 창끝이 자신을 찌를 때, 그 창끝을 허무하게-또는 공허하게- 만드는 것이 다. 죽음의 창끝을 허무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 <죽음의 창끝에다 빙긋이 웃어 줄 수 있는 초월적 여유> 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이 절대 허무요, 선이 악을 흡수하는 진정한 방식이라고 본다. 일반인의 눈에 는 개죽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은 바로 인간의 극한을 보여주는 비폭력적 저항의 최정점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지는 역사내재를 도외시하지 않는 역사초월의 지평에 서 있어야만 나올 수 있는 지평이다. 기독자의 신앙은 하늘의 비전으로 땅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기에 기독자의 실존은 궁극적으로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봐야 한다.

8, 7.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

지금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귀기울임이다. 하나님께 서는 끊임없이 미천한 우리를 부르시고 계시며, 우리 자신 또한 내면 깊숙한 곳에서 그분을 필요로 하 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시인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한 우리자신의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네 자신 또한 내가 정말로 사랑하고 아끼는 나의 자녀이노라"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 는 문구는 여전히 민중교회에도 절실히 필요하다.

이제 주님의 자녀로써 거듭난 새로운 나는 비로소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이 세상에 내가 필요한 곳 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힘을 부여해 주시는 든든한 분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그분은 나의 생 활을 통해 다른 보편적 민중에게 <계시화>된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과 나와 이 세계는 하나이며 떨어 질 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실태라는 인식의 변화이기도 하다. 즉, 우리는 그분과의 대화에서 나 자신의 총체적인, 전인적인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이것이 신비요, 은혜요, 은총이며, 이것이 바로 종교적 경 험의 차원이다. 영성은 바로 여기서 꽃피운다.

그리고 올바른 영성이라면 이에 대한 영성은 필히 사회학적 지평으로도 나타나기 마련이며, 그제야 비로소 우리자신의 내부로부터 가난하고 소외되고 천한 이들에게 관심하는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 로 끊임없이 넘쳐 흘러나오는 것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기는 것>이리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불쌍히 여길 줄도 모르는 자는 남을 불쌍히 여길 줄도 모른다. 내가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될 때에, 그제서야 나의 관심사 안에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억눌린 자들에 대해 관심하는 마음, 이 '관심'과 '사랑'이야말로 세계 안에서의 신의 기능이다. <투쟁>이 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참고도서>

화이트헤드 철학서와 참고자료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 An Essay in Cosmology, Corrected Edition. Edited by David Ray Griffin and Donald W. Sherburne, The Free Press, A Division of Macmillan Pub. Co., 1978., 오영환 역, 「과정과 실 재」, 민음사, 1991.
A.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Macmillan Pub. Co., 1925., 오영환 역, 「과학과 근대세계」, 서광 사, 1988.
A.N.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The Macmillan Co, 1961., 오영환 역, 「관념의 모험」, 한길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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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순, "서경석 목사의 글에 응답함", 「기독교사상」1993년 10월호, 대한기독교서회.
서경석, "박재순 선생의 글에 응답함", 「기독교사상」1993년 11월호, 대한기독교서회.
서진한, "다시 돌아보는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 「기독교사상」1994년 4월호, 대한기독교서회
김창락, "기로에 서 있는 민중신학", 「신학사상」96집·1997 봄, 한국신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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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참고서적과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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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載天 編, 「民衆」, 文學과 知性社,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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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통나무, 1989.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989.
Paul Davis, 류시화 역, 「현대물리학이 발견한 창조주」, 정신세계사, 1989.
고사까 슈우헤이, 방준필 옮김·변영우 그림, 「함께 가보는 철학사여행」, 시민서각,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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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Jonas, 이진우 옮김, 「책임의 원칙: 기술 시대의 생태윤리학적 윤리」, 서광사, 1994.
김진균·임현진·전성우 외 지음, 「사회학의 명저20」, 새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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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김경재·김상일 편저, 「過程哲學과 過程神學」, (서울: 전망사, 1988), p.33.
[2] John B. cobb, "Why Whitehead?", 강성도 역, "왜 화이트헤드인가?", 강성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입문」- 부록, (서울: 조명문화사, 1992), pp.165-185., 존 캅은 이 글을 통해 화이트헤드 철학이 생태학과 여성신학과 종 교다원주의에도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지성의 보고이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날과 다가올 21세 기에는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3] A.N. Whitehead, Science and the Modern World, (New York: Macmillan Pub. Co, 1925), p.51., 오영환 역, 「과 학과 근대세계」, (서울: 서광사, 1989), p.84. (이하 'SM'으로 표기)

[4] 화이트헤드의 철학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면, 자신이 직접 화이트헤드의 텍스트들을 본격적으로 탐구해 보 든가, 아니면 자기가 조금 게으르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국내 제일의 화이트헤드 전공자로 평가받는 연세대 철 학과 오영환 교수의 짤막한 글들을 찾아보라. 주로 화이트헤드 번역서 뒤에 실려있으며, 「기독교사상」1974년 1월호에 실려있는 "화이트헤드의 神觀"도 과정사상의 오리엔티어링으로 괜찮다. 개인적으로 화이트헤드 초보자 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김경재·김상일 편저, 「過程哲學과 過程神學」, (서울: 전망사, 1988)이다. 왜냐면 이 책에는 오영환 교수의 글을 비롯해서 화이트헤드에 관심하는 국내외 학자들의 다양한 논문들이 실려있어서 화이트헤드 사상과 그와 관련한 학계의 흐름까지도 짧게나마 조감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직접 화이트헤드 서적들을 독파하는 방법이 시간은 좀 걸려도 제일 좋을 듯 싶다. 물론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만큼은 꼭 빼먹지 말자!
[5] A.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 (New York: Macmillan Pub. Co, 1978), p.?., 오영환 역, 「과정과 실재」, (서울: 민음사, 1991), p.39. (이하 'PR'로 표기)

[6] PR, p.39., (역, p.110.), 이것은 플라톤으로부터 관념론의 완성자로 평가받는 헤겔까지의 서양철학을 플라톤의 아류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양철학은 헤겔에 이르러서 '말'에 의한 철학은 끝났다고 보며, 헤겔 이후의 철학을 현대철학으로 분류한다. 헤겔에 대한 대표적인 반동이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주의와 맑스의 유물론이다. 근래의 화이트헤드 학계에서 헤겔의 철학을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과 유사하게 보는 일부 학자들 이 있는데,-예를 들어, 최신한, "보편적 통합이론으로서의 형이상학",「과학과 형이상학」, (서울: 자유사상사, 1993)-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헤겔과의 유비는 어디까지나 화이트헤드가 플라톤과 유비되는 만큼을 넘 어서지 않는다고 봐야한다. 피히테의 자아철학과 쉘링의 자연철학을 지양하는 헤겔의 변증법적 세계관은 어디 까지나 사유의 영역에서의 존재를 말하며, 김용옥이 말했듯이 헤겔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질료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목적론적인 우주에다가 토미니즘적인 신관, 그리고 역사의 발전을 얘기하는 진보라는 사 유를 짬뽕시킨 데에 불과하다.(김용옥,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통나무, 1989], pp.56-57. 참조.) 헤 겔과 화이트헤드의 차이는, 헤겔은 사유의 영역에서 제일 자유로운 권력자인 나폴레옹을 통해서 '절대정신'의 현현을-또는 역사의 진보를- 봤지만,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는 밑바닥의 평인을 통해서도 이 우주 전체의 현현, 곧 신의 섭리를 볼 수 있다는 경험적 고찰에서도 드러난다고 본다. 이 어찌 동일한 세계관이라 할 수 있는가. 그는 칸트의 물자체를 융해하여 일원론적 세계관을 펼치려고 했으나 나의 시각은 헤겔은 분명 이원론자로 보 며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고 본다. 물론 변증법이라는 도식의 발견은 헤겔의 위대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헤 겔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평가하듯이 플라톤이 소망한 폴리스의 이상의 회복이 근대사 가운데서 주장된 것뿐이 라는 점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고사까 슈우헤이, 방준필 옮김·변영우 그림, 「함께 가보는 철학사여행」, [서울: 시민서각, 1990], p.319. 참조.) 헤겔에 대한 해석은 대체로 극과 극으로 나뉠 만큼 분분한데, 헤겔에 대한 아날로지를 주장하는 것은 플라톤이 화이트헤드와 유사하다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고착이라 본다. 화이트헤드가 얘기했듯이 철학은 위대한 철학자로부터 충격을 받고 난 후에는 결코 옛날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7] Charles Hartshorne, 홍기석·임기석 외 옮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서울: 한들, 1995), pp. 83-84., 오 영환 지음·도올 김용옥 序, 「화이트헤드와 인간의 시간경험」, (서울: 통나무, 1997), p.20.

[8] PR, 역, p.676.

[9] PR, 역, p.605.

[10] A.N. Whitehead, 오영환 역, 「관념의 모험」, (서울: 한길사, 1996), p.30.

[11] PR, p.3., (역, p.49.)

[12] PR, p.3., (역, p.50.)

[13] PR, p.11., (역, p.63.)

[14] 그럼, 모든 신학자는 철학을 꼭 전공해야 하는가? 물론이다! '아니, 무슨 놈의-, 신학자가 신학만 알면 되지 웬 철학공부?' 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분명히 말한다. 신학자든 무슨 학자든 간에 모든 인간은 필 히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다. 그것은 우리 안에 이 세계를 해석하려는 의지가 뻗치는 한, 우리는 이미 철학의 세계에 발을 담근 것이라고 봐야하기 때문이다. 신학의 전체적 플롯은 조직신학이요, 조직신학의 베이스는 철학이다. 더욱이 신학자라면 철학 뿐만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 사회과학에도 능통할 줄 알아야 한다.(갑자기 죽재 서남동께서 후학들에게 남겨놓으신 미완의 신학적 작업이 떠오른다. 이 분의 명저인 「전환 시대의 신학」을 상기해 보라!) 철학은 이 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논리적 가설이며, 자연과학은 이에 대한 예 증이다. 철학은 일종의 논리에 의한 신의 존재 증명이므로 종교로부터 늘 무신론이 아닐까하는 혐의를 받는다. (고사까 슈우헤이, 방준필 옮김·변영우 그림, op. cit., pp.198, 280. 참조.) 마찬가지로 철학을 예증하는 과학도 바로 종교를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철학과 과학에 <왜?>라는 물음이 항구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 는 한 그것은 결코 종교를 외면할 수 없으며, 끝내는 신학과 조우하게 되어있다. 굳이 세기말에 활발히 진행되 고 있는 카프라의 <신과학운동>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다가오는 21세기엔 철학과 과학의 경계선은 더욱 더 엷어질 것이며, 결국 언젠가는 철학과 과학과 신학이 하나의 학문으로 귀결될 때가 올 것임은 자명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신학자는 철학, 물리학, 사회학, 미학 등등 온갖 학문에 만능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며, 특히 목회자는 신학의 응용자이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배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봉착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감히 목회를 한다고 결심함에 있어서 목회가 순진한 사명감만으로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착각이요, 크나큰 오산임을 깨닫기 바란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어떻게 될 런지를 뻔 히 안다면, 어찌 우리가 앎을 게을리 할 수 있겠는가!

[15] John B. Cobb, JR.·David Ray Griffin, 류기종 역, 「과정신학」, (서울: 도서출판, 1993), p.220.

[16] Ibid., p.221.

[17] A.N. Whitehead, Religion in the Making, (New York: The Macmillan Co., 1954), pp.81-82.(이하 'RM'으로 표 기), 류기종 역, 「A.N. 화이트헤드 宗敎論」, (서울: 종로서적, 1986), pp.65-66.

[18] RM, p.83., (역, p.67.)

[19] PR, p.13., (역, p.65.)

[20] SM, p.ⅷ., (역, p.10.)

[21] 김경재·김상일 편저, op. cit., p.33.; PR. 역, p.8.

[22] 화이트헤드는 <철학적 일반화>philosophic generalization라는 용어의 의미가 <모든 사실에 적용되는 '유적(類 的)인 개념'generic notions을 점치기 위하여, 한정된 사실의 무리[群]에 적용되는 '종적(種的)인 개념'specific notions을 이용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이 너무나 정확하면서도 재밌지 않은가! PR, p.5., (역, p.53.) 참조.

[23] 이때의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를 <단순 정위의 오류>fallacy of simple location라고도 부른다. SM, pp.49-58., (역, pp.80-95.) 참조.

[24] A.N. Whitehead, Adventures of Ideas, (New York: The Macmillan Co, 1961), pp.18-24., 오영환 역, 「관념의 모험」, (서울: 한길사, 1996), pp.64-70.(이하 'AI'로 표기)

[25] RM, p.50., (역, p.37.)

[26] PR, p.342., (역, p.589.)

[27] AI, 역, p.27.

[28] SM, 역, p.325.

[29] AI, 역, p.28.

[30] Karl R. popper, The Logic of Scientific Discovery, (New York and Evanston: Harper & Row, 1968), p.36.

[31] PR, pp,310, 327-330., (역, pp.162, 173-175.) ; <현시적 직접성>이니 <인과적 효과성>이니 <합생>이니 <현실적 존재>니 하는 것들이 뭐냐고 묻는다면 여기서는 논할 수가 없고 화이트헤드의 책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왜냐면 적어도 이에 대해 떠들려면 거짓말 안하고 최소한 A4용지 열 장 이상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 의 형이상학의 용어들은 대부분「과정과 실재」에 거의 다 나와있으며, <현시적 직접성>과 <인과적 효과성>은 「과정과 실재」의 일부분과 화이트헤드가 쓴 Symbolism: Its Meaning and Effect, (New York; G.P. Putnam's Sons, 1959), 정연홍 옮김, 「상징작용: 그 의미와 효과」, (서울: 서광사, 1989) 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32] 한가지 알아둘 것은 이 논문에서 사용되는 형이상학, 사변적 구도, 밑변, 해석학적 베이스, 세계관, 사물을 보 는 원리, 철학(이것은 형이상학이 철학의 핵심적 학문이라는 점에서) 등등 이러한 용어는 모두 비슷한 뜻을 가 짐을 밝힌다.

[33] 물론 게 중에는 쓰잘 데 없는 비판서도 있긴 하다. 대표적인 책들이 나용화의 「민중신학비판(批判)」(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9)을 비롯한 골보수교단의 출판서적들이다. 박형룡의 졸개들로 보이는 이러한 보수주의 신학자들의 비판이 왜 쓰잘 데 없는고 하니, 이들의 글판은 하나같이 기독교 신학은 이러이러하니까 민중신학 은 틀렸다라고 말하는 억지논조를 펴기 때문이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에 민중신학이 말하는 예수의 십자가사건과 부활사건은 틀렸으며, 하나님을 부정한다고만 주장하는 것이다. 글 의 논조를 보면 민중신학에 대해서 거의 이단시하는 분위기이며, 더군다나 이들이 정작 민중이 고통당하는 밑 바닥의 처절한 삶에 현장에 한 번이라도, 정작 단 한 번이라도 참여해봤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면서 하 나님의 전능하심이니 속죄론이니 운운하는 것은 민중신학을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참으로 가소로운 아규먼트로 들릴 것이다. 비판의 '비'자도 모르는 자들이 학자랍시고 앉아있다는 것이 끔찍하기만 하다. 정확하게 제목을 붙인다면 이들의 「민중신학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민중신학비난」이라고 해야 옳다. 이화선의 「민중신학 비판」(서울: 성광문화사, 1989)은 이보다 조금은 낫다고 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민중신학을 하는 당사자들에게 는 설득력이 약하다. 민중신학을 접수한 사람들은 민중신학에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괜찮은 비판의 글들은 박재순, "1세대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모색",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무크1-진통하는 한국 교회」, (서울: 민중사, 1988) ; 김지철, "민중신학의 성서읽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신학사상」69집·1990 여 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 서경석, "민중신학의 위기", 「기독교사상」1993년 9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 김창락, "기로에 서 있는 민중신학", 「신학사상」96집·1997 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등이 있다. 이중 박재 순과 김창락 교수의 글은 민중신학 자체내의 비판이며, 김지철과 서경석은 민중신학 외부에서-각각 신학현장과 삶의 현장에서- 날라온 비판이었다. 최근에 볼 만한 책들은 민중신학자들 내에서의 민중신학의 진지한 자기 성 찰과 과제를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민중신학연구소'에서 나온 시리즈인 「민중신학 입문」, 「민중은 메시아인 가?」, (서울: 한울)과 젊은 민중신학자들의 '어울마당', 「시대와 민중신학」, (서울: 시대와 민중)에서 나온 시 리즈 등이 있다. 전자는 민중신학 2세대의 글이고, 후자는 3세대로 평가받는 학자들의 글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민중신학에 대한 괜찮은 비판의 글들이 있는 줄로 안다. 그러나 여기서는 민중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잘 회 자되는 대표적인 글만 소개한 것이다.
[34] A.N. Whitehead, Modes of Thought, (New York: The Free Press, 1968), p.174., 오영환·문창옥 옮김, 「열린 사고와 철학」, (서울: 고려원, 1992), p.200. (이하 'MT'로 표기)
[35] 나는 최근의 민중신학의 동향을 내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98년 7월13일부터 15일에 천안의 아우 내 재단에서 열렸던 <민중신학 대토론회>에 참관했었다. 2박3일간의 대토론의 주제는 "제3밀레니움, 21세기의 민중신학"이었다. 한국신학연구소 소장인 김성재 교수에 의하면 이 자리에는, 현재 활동하는 기존의 민중신학 자들 3-4명을 제외하고는 다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 토론에 대한 자료는「신학사상」誌에 성과물로 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민중교회 목사님 몇 분과 일본에서 오신 민중신학에 관심하는 분이 참석하였는데 학 부생은 달랑 나하나 뿐이었다. 바라건대 나는 우리 과의 학회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학술토론에 참가하는 행사 가 있었으면 한다. 한신성은 학문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배움도 하나의 투쟁이 아니던가. 누구말대로 이론 있는 실천은 이론 없는 실천에 결국 무릎을 끓게 되어 있다고 본다.

[36] 라인홀트 니버 엮음, 류승국 옮김, 「맑스·엥겔스의 종교론」, (서울: 아침, 1988), p.7.

[37] '어정쩡하다'는 나의 이 표현은, 논의를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민중신학은 맑스주의를 전제한 흔적이 많 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확실한 표명이 없었다는 점에서 나온 표현이다. 확실한 표명이 없었다는 것은 민 중신학이 전제하는 명확한 철학적 세계관에 대한 고찰이 없었다는 점과 관련한다. 한때 2세대 민중신학자 강원 돈은 민중신학은 아예 맑스주의와 유물론적 세계관을 수용해야 하며 그것과 접목시키는 신학적 작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아무튼 나는 '어정쩡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화이트헤드는 이러한 자세에 대해 "부 지불식간에 받아들여지고 있는"ignorantly entertained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MT, p.171., [역, p.197.] 참조)

[38] 이점에서 서남동이 그간의 학문과 활동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기를 "크리스찬 맑시스트" 라고 표현한 것은 민중신학자로서의 솔직하고도 정확한 자기 인식이었다.(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논문집 편집위 원회, 「전환기의 민중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p.141-142. 참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학의 안 테나'로 불리는 이분의 신학적 감수성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신학계에서는 단연 최고였다고 확신한다. 나 는 이분이 아마 살아계셨다면 현재의 민중신학이 지금과는 다른 모양새와 엄청난 변화를 겪었으리라고 보는 사람이다. 또 하나 언급할 것은, 이 대목이 실린 장일조 교수의 "죽재를 위한 하나의 대화"라는 글에 대한 것 인데, 민중신학에 대한 그의 뼈아프고도 날카로운 지적은 비록 짧은 글이지만,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에 대한 어떤 비판의 글보다도 가장 본질의 문제에 접근한, 아주 예리한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서구의 진보적 학문영역에 서 밝혀지는 맑스의 한계와 맑스주의 진영의 새로운 흐름들을 언급하면서,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환상 에 불과하며, 이제는 역사적, 계급론적 해방 대상의 민중론이 아니라 인간-사회-자연의 총체적 지평으로서의 전 인적인 인간을 얘기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개인적으로 평가할 때 맑스주의를 전공한 장 일조 교수야말로 누구보다도 민중신학의 한계를 일찌기 캐치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장일조 교수의 위의 글 외에 민영진·전경연·김경재·장일조, "한국 민중신학에 대한 몇 가지 테제", 「한국 민중신학의 조명」, [서울: 대화출판사, 1984], pp.119-144. ; 주재용·서광선 편, 「역사와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5], pp.155-162.를 읽어보라)

[39]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서울: 한길사, 1983), pp.175-176, 228.

[40] 미발행, 송기득, "민중신학의 예수이해", 「민중신학 대토론회: 주제-제3밀레니움, 21세기의 민중신학」, (1998, 7/13-15), 발제물 中.; <죄>에 대한 이해에서 박재순의 논문인 "기독론과 죄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죽재 서남 동 목사 기념논문집 편집위원회, 「전환기의 민중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p.180-202.]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평가하면서 민중신학의 죄이해가 사회학적인 측면만 다룬 것은 오히려 잘못 이며, 실존적 측면인 개인의 죄도 다루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시각은 옳다.

[41] 박재순은 민중신학의 체계화를 위한 제언에서 기독교 신앙에서 보는 유물론의 성격과 위치를 규명하고 함석 헌의 씨?사상과의 사상적 관련성의 규명을 주장했다. 그치만 민중신학자들의 이에 대한 학문적 작업은 크나큰 진전이 없었다고 본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기사연무크1-진통하는 한국교회」, (서울: 민중사, 1988), p.99. 참조.

[42] 김경재, "죽재 서남동의 신학사상", 「신학사상」46호 1984년 가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487-490., 김경재 교수는 서남동의 사상은 실존주의, 과학사상, 본회퍼의 사상, 그리고 이 모두가 어우러진 정치신학사상이었다고 평가한다.

[43] 서남동, op. cit., p.167.

[44] 강원돈, "죽재 신학의 주제와 방법",「신학사상」70집·1990 가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p.806-807., 나아가 2세대 민중신학자인 그는 더욱더 과감히 맑스주의 세계관을 수용한다. 그는 민중신학에 전통신학의 관념론적 세계관과 대비시켜 유물론적 세계관을 위치시킨다. 그가 주창하는「물(物)의 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은 바로 이러한 견지에서 나온 학문적 구도이다. 박종천은 그의 이러한 구상을 대체로 높게 평가하나, 민 중신학의 과학성과 대중성의 담보를 주장하는 서진한은 비판적·회의적이다. 물론 강원돈은 서진한의 비판에 가만있질 않고 또 반박을 가한다.(박종천, "1980년대 민중신학의 문제와 한국신학의 새로운 탐색",「신학사상」 71집·1990 겨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 서진한, "80년대 민중신학의 과학성과 대중성", 한국기독교사회문제 연구원,「기사연무크1-진통하는 한국교회」, [서울: 민중사, 1990] ; 강원돈, "신학형성에서의 유물론과 해석학",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무크2」, [서울: 민중사, 1990] 참조.)

[45] 강원돈, "죽재 신학의 주제와 방법", 「신학사상」70집·1990 가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815.

[46] 박재순, "1세대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기사연무크1-진통하는 한국교회」, (서울: 민중사, 1990), p.99.; 결과적 으로 둘의 작업은 아직도 미완이지만 강원돈은 유물론적 세계관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에 유물론적 세 계관의 수용에 대해서 박재순은 회의적이다.「기사연무크2」, (서울; 민중사, 1990), p.458.참조.

[47] 강원돈, 「物의 神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175.

[48] 강원돈, "신학형성에서의 유물론과 해석학", 앞의 책, p.393.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작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를 제외하곤 아무도 모르고 있다.

[49] 북미주 기독학자회 1989-1992 연례대회 자료집, 「기독교와 주체사상」, (서울: 신앙과 지성사, 1993) ; 한국기 독교장로회 서울노회·서울남노회 엮음, 「기독교에서 본 주체사상」, (서울민중사, 1993) 참조.

[50] Jurgen Moltmann, 김균진 역, "宗敎와 마르크스主義"-구라파에 있어서의 그리스도敎와 마르크스主義의 對話, 「신학사상」47집·1984 겨울,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895.

[51] 이와 관련하여 페르 프로스틴Per Frostin의 저서인 「유물론/ 이데올로기/ 종교」,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8)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러나 페르 프로스틴의 이 야심만만한 작업, 즉 기독교가 어디까지 얼마만큼 맑스주의적인가를 밝히는 작업의 결과는 결국 프락시스의 영역이라는 나의 지론을 확인하는 차원에 불과했었 다. 페르 프로스틴은 맑스주의를 유물론과 그리스도교의 중간으로 보지만, 맑스주의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유물 론이다. 물론 엄밀히 따진다면 맑스주의와 유물론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맑스주의의 철학적 기초가 바로 맑 스의 유물론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기반은 예수의 삶의 행태에 있다. 이 예수의 삶을 신학화하는 작업에서 헬라철학이 도입되어 예수의 삶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비역사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러나 예수의 삶의 흔적들은 너무나도 강렬하여 이원론의 폐단에도 불구하고 예수에게서 나타나는 프락시스 는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가 없는 실존적 사실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의 프락시스는 현상적으로는 맑스주 의의 프락시스와 흡사할지는 몰라도 본질은 분명 다르다. 기독교의 프락시스는 궁극적인 초월을 지향하고, 맑 스주의 프락시스는 정치경제의 구조적·제도적 개혁을 지향한다. 왜냐면 맑스에 의하면 정치·사회제도의 개혁 을 향한 노력이야말로 새로운 인간을 낳기 때문이다. 페르 프로스틴이 착각했던 기독교와 맑스주의의 유사함의 원인은 바로 기독교의 프락시스가, 맑스주의의 프락시스가 지향하는 사회구조적 개혁마저 포함하고 있었기 때 문에 드러났던 현상이라고 봐야한다. 한마디로 예수는 맑스를 지양(止揚)한다.

[52] 이점에서 안병무는 기독교의 이상과 맑스주의의 이상은 분명히 다르다고 못박는다. 안병무, 「歷史 앞에 民衆 과 더불어」, (서울: 한길사, 1986). pp.312-313. 참조., 그래도 그는 여기서는 맑스주의 사회혁명의 한계를 잘 언 급하지만, 또다른 곳에서는 역시 사회구원만을 얘기한다. 그에게는 개인의 종교적·내면적 성찰의 중요성은 빠 져있다. 오직 실천적 우위성에 함몰될 뿐이다. 대부분의 민중신학자들이 그렇듯이 안병무 또한 맑스주의와 기 독교가 다르다고는 분명히 말하면서도 맑스주의를 알게 모르게 수용하는, 모순된 개념들이 혼재(混在)되어 있 다고 본다. 특히 안병무는 7,80년대의 학문적 사고가 그런 경향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53] PR, pp.345-349., (역, pp.594-599.)

[54] 이점에서 김명수 교수가 썼던 "민중신학의 해석학"(「기독교사상」1992년 3-4월, [서울: 대한기독교서회])이란 글은 상당히 아쉽다. 불트만 신학의 해석학적 기반에 대해서는 상당히 철학적 논의에 접근했으면서도 정작 민 중신학의 해석학을 논할 때는 민중신학에 대한 피상적이고 원론적인 얘기에 그치고 만다. 그의 논의에서는 민 중신학에 대한 철학적 쟁점들이 빠져있다.

[55] 앞서 말했듯이 박종천은 강원돈의 학문적 작업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物性과 靈性을 동시에 기대하는 데에는 회의적이다 .박종철, 앞의 글, p.1100. 참조.

[56] 그렇기에 서남동은 상황에 따라 실천을 강조할 수도 있고 신앙을 강조할 수도 있다고 얘기한 것인가?(서남동, 앞의 책, p.198. 참조.) 하지만 이 말도 지금까지의 민중신학자들은 지키지 않았다. 보수주의자들에겐 '사회구원' 의 중요성은 강조했어도 사회운동가들에게 '개인구원'의 중요성은 별로 열변하지 않았잖는가.

[57] 서경석과 박재순의 논쟁은 민중신학이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음을 뚜렷하게 예시하는 글에 지나지 않는다. 서 경석, "민중신학의 위기"·"박재순 선생의 글에 응답함", 박재순, "서경석 목사의 글에 응답함",「기독교사상」 1993년 9,10,11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참조.
[58] 지금까지 민중신학의 조직신학적 작업을 위해 제일 애쓴 사람은 아마 민중신학 2세대인 박재순일 것이다. 그 의 시각은 대체로 민중신학과 전통신학의 대립되는 개념들을 통전하려 한다. 참으로 그 방향성은 옳게 잡았다 고 보나 조직신학적 작업에 있어서 제일 먼저 무엇이 필요한 지를 그는 간과하는 것 같다. 그의 글은 대안이라 기 보다 문제제기의 차원을 넘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59] 박재순은 맑스주의를 방법론적으로 수용하는 해방신학 또한 분석에 있어서 맑스주의가 어느 정도 타당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답변을 못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박재순, "제3세계신학과 방법론에 대한 고찰", 「신학사상」 46호·1984 가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584. 참조.
[60] 민중신학연구소 엮음, 「민중신학 입문」, (서울: 한울, 1995), p.126.

[61] 90년대 이후의 안병무는 민중신학을 동양사상이나 생명사상의 견지에서 보는 학문적 접목을 시도하려고 했었 으나 미수에 그쳤기에 심화된 작업으로 볼 수는 없다.(한국민중신학회 편, 「민중신학」창간호/1995, [서울: 한 국신학연구소] 참조.) 그래도 나는 이 분의 민중신학에 대한 학문적 방향성이 가까스로 참으로 옳게 잡았다고 보지만, 안타까운 것은 남아있는 2세대나 3세대 신학자들은 이에 별 관심하지 않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화이트 헤드의 유기체적 세계관도 알고보면 동양사상이나 생명사상과 매우 흡사한데....

[62] 사실 이것은 민중신학자들 자신들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는 바다.(특별대담: 안병무·박재순, "민중의 생명을 향한 민중신학",「기사연무크2」, p.458.; 최형묵, "그리스도교 민중운동에서 본 민중신학",「신학사상」90년 여 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334. 참조.)

[63] 김진균·임현진·전성우 외 지음, 「사회학의 명저20」, (서울: 새길, 1994), p.29.

[64] 미발행, 김용복, "제3밀레니움에 있어서의 민중신학의 진로모색", 「민중신학 대토론회: 주제-제3밀레니움, 21 세기의 민중신학」, (1998, 7/13-15), 발제물 中.

[65] 인간사에 갈등과 대립과 모순적 병폐가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게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말이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라.

[66] 김명수, "민중신학의 해석학(1)", 앞의 책, pp.94-101.

[67] 대담: 안병무/ 김경재/ 선순화/ 김영호·"생명과 민중신학", 한국민중신학회 편,「민중신학」창간호/1995, (서 울: 한국신학연구소), p.13.

[68] 이것은 하나님도 예외일 수 없다. 물론 출애굽기 3장14절에 야훼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즉 이것은 야훼가 <자기 원인적 존재>로서 영원한 자존자(自存者)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에서도 그렇게 성서 를 가르친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이것은 굳이 화이트헤드의 철학적 관점을 들지 않더라도 이러한 희랍적 해 석이 잘못 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신이 '홀로있음'으로 존재한다고 쳐도 우리는 그것을 진정으 로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그 이름을 불러준단 말인가? '존재성'을 잃어버린 존재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홀로있음'이란 불완전한 것이며, 존재의 완성은 '관계성'에 기반한다. 만약 야훼가 홀로 있는 존재라면 야훼는 누구로부터 영광을 받을 것인가? 그렇기에 야훼는 스스로 있는 자가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있는 자인 것이다. 김이곤 교수는 그 성서 구절을 "야훼는 존재하는 것을 존재케 하는 자"라고 봐야 타당하다고 주장한 다. 동감이다.(김이곤,「출애굽기의 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pp.52-56. 참조.)

[69] 김창락, "기로에 서 있는 민중신학", 「신학사상」96집·1997 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57., 즉 1세대 민중 신학자들이 급박하고 어려운 정치적·사회적 상황에 처한 억압의 현실속에서 민중신학을 논하다가 보니 치밀 한 학문성을 담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김창락 교수의 민중신학 비판은 전체적으 로 민중신학의 학문성에 대한 재고찰이었지만 일면 민중신학에 대한 '비판'이 민중신학의 '변명'으로 들리기도 했다.

[70] 안병무, "삶에서 형성된 학문과정", 「철학과 현실」1983. 3, (서울: 철학과 현실사), pp.221-240.

[71] 서진한, "다시 돌아보는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 「기독교사상」1994. 4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p.108.

[72] 상생의 신학자인 박종천은 <다변혁자 주체론>을 내세웠다. 그는 중민(중산층, 시민)의 역할을 강조한다.(박종 천, 앞의 책, 참조.) 김명수 교수도 중산층 끌어안기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인식한다. 3세대 민중신학자인 김진 호의 민중이해는 <민중형성론>의 관점에 서 있다. 그의 민중이해는 투쟁의 과정상에서 형성되는 민중을 말한 다고 보여진다.(김진호,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 「신학사상」80호 1993 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참조.)

[73] 竹齋 徐南同 牧師 기념논문집 편집위원회, 「전환기의 민중신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154.

[74] Edward H. Carr, 황문수 역,「역사란 무엇인가」, (서울: 범우사, 1977), p.29.

[75]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지만, 엄숙해야 할 논문에 그것도 신학을 한다는 놈이, 웬 원색적이고도 망측한 표현이 냐고 질색할 지 모르겠으나, 나는 되도록이면 언어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다. 논문이라고 해서 꼭 딱딱하 고도 엄숙하며 점잖은 표현을 써야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암묵적 원칙들이 자유롭고 싶은 나 의 창조적인 사유체계를 억압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틀에 얽매이길 거부하며, 오직 <인간해방>이라는 구도하에서 맘껏 자유롭고 싶을 따름이다. 밝히건대, 나는 <직설>과 확신에 찬 <독설>을 좋아한다. 만약 식자 들이 나의 언어께에서 보여지는 부도덕성과 난잡함을 비판하고 싶다거나 또는 이해하길 원한다면, 우선 김용옥 의 「여자란 무엇인가」(통나무, 1989) 中에서 pp.25-32.부분을 읽고 참고하라. 솔직히 나는 그 글에서 이에 대 한 아무런 반박점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76] 김진호, "역사 주체로서의 민중", 「신학사상」80집·1993 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33.

[77] 김진호, "민중신학 민중론의 성서적 기초", 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논문집 출판위원회, 「예수·민중·민족」,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2), p. 185.

[78] 중산층과 관련해서 이 자리를 빌어-그렇게 썩 마땅한 자리라고 보진 않지만- 한총련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난 학생운동이 시민운동과 연대하여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램이다. 운동권 부류에게는 소 위 3대 도그마가 있다. 이른바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연방제 통일"이라는 것인데, 그렇지만 80 년대 주장을 90년대에도 똑같이 되풀이하는 심뽀는 무엇인가? 그러한 구호가 틀렸다는 뜻이 아니다. 꼭 사회가 변했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소위 운동권들의 변혁이론이나 맑스주의에 대한 담론도 기계론적 유물론을 아 는 정도에 머물 뿐이며,-적어도 내가 아는 운동권 부류들은 그러했다- 지금의 운동권은 더욱 더 입지가 좁아져 이제는 아예 고유한 <게토>가 되버렸다. 이러한 폐쇄적 성격은 이 사회가 한총련을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 아 니라-물론 다소 그러한 면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한총련 자체의 성격에 의한 요인이 크다는 사실이다. 김 대중 정부의 한총련의 이적 규정은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철회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한총 련을 지지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운동의 그 편협성 때문이다. 도무지 한총련은 중민에 대한 이해가 결여 되어 있어 보인다. 경실련과 환경운동 같은 시민단체들의 운동이 왜 지지를 받고 대중성을 확보하는지를 우리 는 절실히 느껴야 한다. 한총련이 거리의 홈레스들한테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는 행사를 한 적 있 었던가. 학교와 학원폭력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선배인 우리가 나 몰라라 해도 좋은가. 그러면서 민중을 위한 다고 하는가. 이들을 위하는 것은 한총련의 성격상 맞지 않는 것인가. 한총련이 억눌림 당하는 자들을 생각한 다면 이 사회의 모든 억압적 상황에 대해 항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정황들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바로 내 옆에 있는 친구와의 시비까지도 포함해야 한다. 폭력퇴치, 환경운동, 소비자 운동, 실직자 문제 해결에 조금이 라도 도움이 될려는 한총련의 모습을 보여 보라. 분명히 얘기하지만 한총련이 시민운동과의 연계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한총련이 대중성을 확보하기란 어려울 것이라 본다. 이것은 90년대 들어서 한총련이 태동할 때부터 이미 했어야 했었다. 대중성확보를 위해 지금까지 했던 모든 걸 버리거나 색깔을 바꾸라는 얘기가 아니다. 시 민운동과의 연계도 민중을 위한 하나의 방법론적 모색이라면 수용 못할 이유가 없으며, 그리고 난 이후에-또는 그렇게 하면서-"주한미군철수"든, "국보법 철폐"든, "연방제 통일"이든 학생운동의 도그마틱한 구호들을 외쳐보 라. 모르긴 몰라도 그 외침에 엄청난 힘이 실려있음을 느끼리라. 학생운동이 중산층을 포섭할 때엔 완강한 정 부도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 요인은 두 가지 경 우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운동의 주체자들은 옳은 데, 대중사회 전체가 기만당하고 있는 경우이며, 또 하나 는 운동의 주체자들 그 자체가 가진 결함으로 인해 대중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이다. 물론 전자의 영향 을 어느 정도 인지하면서도 나는 여기서 후자의 경우를 말하고 있으며, 한신이 한총련의 개혁에 앞장서지 않는 다면 학생운동의 경직화에 한신도 한 몫 하게되는 그러한 역사적 오점을 남기게 됨을 지적하고 싶다. 요컨대 학생운동 그 자체의 결함은 한총련이 가진 철학의 빈곤이기도 하다. 맑스주의 유물론과 주사외에 학습하는 철 학이 어디 있기라도 했던가? 그러한 허술한 이론들을 언제까지 붙잡고만 있을 것인가? 새내기들이「껍데기를 벗고서」나 「철학 에세이」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해서 껍데기가 벗겨졌다거나 진보적인 철학을 터득했다고 생각한다면 크∼은 착각이다. 또다른 허구를 익히는 껍데기의 시작일 수도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거시 적 투쟁과 미시적 투쟁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시민운동이 태동하고 그 지지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학생 운동이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함을 왜 모르는가? '역할분담론'이 학생운동의 폐쇄적 성격을 정 당화시킬 수는 없다. 거듭 얘기하지만, 현재에도 한총련을 탈퇴하는 학교가 늘어나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외면 당하는 한총련은 분명 바뀌어야 한다. 진심으로 바라건대 지금의 학생운동이 80년대의 전대협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21세기를 조망하는 학생운동이 되었으면 한다. 나의 이런 얘기가 비록 비운동권자의 의견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난 나의 신념의 구도 하에서 옳다고 생각되는 집회는 참여했으며, 지금도 그렇 게 살아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운동권 사회도 진보를 지향하고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면, 나의 이런 얘기에도 귀를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79] 사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은 학계에서는 이미 한물간 사상으로 보며, 김용옥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는 <민중사관>만을 절대사관이라고 우기는 것은 역사의 에이비씨도 모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민 중사관이 소수 사가들의 허구적 픽션임을 밝힌다. 사실 어차피 모든 역사적 서술들은 픽션일 수밖에 없는 한계 를 지니는 것이지만. 도올 김용옥 엮음,「삼국통일과 한국통일」上卷, (서울: 통나무, 1994), p.59-60. 참조.

[80] 물론 이에 대하여 칼 포퍼의 보수성에 대한 논박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기로 하겠다.

[81] PR, p.29., (역, p.91.)

[82] 저마다의 현실적 존재들은 다자(多者)가 일자(一者)를 이루는 <합생>concrescence의 과정을 가지는데, 이러한 과정의 최종적 통일성을 <만족>satisfaction이라고 부른다. "만족은 합생이 그 정점에 이르러 하나의 완결된 확 정적 사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PR, p.212. ; 역, p.388. 참조) 그리고 현실적 존재가 '만족'을 통해 존재의 주체 로서는 소멸되지만, 그 소멸된 주체는 다른 현실적 존재내의 현존 양태를 띠는 성격을 <객체적 불멸성>이라고 한다.

[83] 민중신학자들은 퍼스날리티한 사고방식을 혐오하면서도 민중을 살아있는 실체로 본다는 사실 자체가 퍼스날 리티한 사고 방식임을 모르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퍼스날리티는 <개인>이 아니라 <개체>를 표현한다. 그것은 다른 무엇과의 연관을 맺지 아니하고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실체를 말할 때 쓰이는 용어이다.

[84] 국가라는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제3세계라면 한국은 억압만 짊어지는 나라인가? 한국의 상황이 또 다른 제3세계를 또 억압하고는 있지 않은가? 김진호는 <탈식민주의>(또는 민족주의)에 대한 한계를 언급하면서 과테말라에 진출한 한국의 횡포를 사례로 들었는데, 그것은 1970년대 한국의 평화시장의 참상을 무색케 할 정 도라고 한다. 미발행, 김진호, "1990년대 이후의 변모하는 위기성과 민중신학의 새로운 지평", 「민중신학 대토 론회: 주제-제3밀레니움, 21세기의 민중신학」, (1998, 7/13-15), 발제물 참조.

[85] <내면의 일그러짐>이라는 것은 이 사회 체제의 구조악에서 기인한 왜곡됨에 선행하여 존재해왔던 인간의 근 원적인 죄에 속한다. 이것은 곧 나 자신이 나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 봐도 좋다.

[86] 나는 권력을 많이 소유한 사람일수록 형벌의 가중치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호의호식'과 '책임성'은 비례할수록 부조리가 적어질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것은 현재 기득권자들의 <행정편 의주의>에 의해 반대되고 있지만.

[87] <환경사관>이란 필자의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지만, 이러한 사관이 이전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것 은 자연환경의 입장에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 사건들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사관이다. 예를 들 어, 날씨나 기후 같은 지리적·환경적 여건이 역사적으로 인간과 그 집단의 성격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 며,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사건이라든지 그럼으로써 환경파괴가 또 다시 전체 인류사에 어떤 정치적·경제적· 사회적·문화적 영향을 끼쳤는가를 지리적·환경적 입장에서 시간적 순서로 알아보는 학문적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88] 김용옥, op. cit., p.75.

[89] SM, p.36., (역, p.66.)

[90]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대체로 <다원론>으로 보는데, 나는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일원론>으로 본다. 물론 일 (一) 즉 다(多)이겠지만, 학계에서는 화이트헤드 철학을 놓고 다원론이냐 일원론이냐의 논쟁이 분분한 것으로 안다. 최근 화이트헤드학회에서 나온 자료 중에는 나의 입장과 동일하게 일원론으로 보는 논문도 있었다. 미발행, 송성진, "화이트헤드의 신과 세계에 대한 고찰", 「화이트헤드학회 학술제」, 1998, 발제물.

[91]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말한 신의 <원초적 본성>primordial nature을 의미한다. 신의 '원초적 본성'이란 절대적 으로 풍부한 가능태들(<영원적 객체>eternal object를 말함)의 무제한적인 개념적 실현conceptual realization을 말한다. 쉽게 얘기해서 이것은 곧 신 자신의 완결된 비전vision을 뜻한다고 봐도 좋다. PR, pp.31, 343. (역, pp.94,591.) 참조.

[92] 이것을 바로 화이트헤드는 <세계의 신격화>the Apotheosis of the World라고 명명했다. 세계의 신격화란 이 세계가 자신 속에 신을 완전히 체현(體現)하는 것, 즉 신의 물리적 파악이 완전히 끝나는 시점을 얘기하는 것 이다.(PR, p.348. [역, p.599.] 참조.) 과학신학자인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표현방식으로 얘기하자면, 모든 인간이 진화의 극점으로 종국적인 완성을 이루는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성취하는 차원이라 이해해도 무방하 다. 그렇기에 <세계의 신격화>는 곧 <모든 인간의 그리스도화>를 의미한다.

[93] 참고로 1998년 8월12일자 뉴스위크(NEWSWEEK)誌 pp.38-44를 보라!

[94] 森信成 지음, 민해철 옮김, 「현대 유물론의 기본과제」, (서울: 거름신서, 1985.), p.88.

[95] 일반적으로 학계는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도 과정사상으로 평가한다. 화이트헤드를 논하자면 떼이야르의 사상도 같이 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철학과 과학과 종교의 합일점을 발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96] 이것은 물리학의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라는 극적인 실험에서 예증된다. Paul Davis, 류시화 역, 「현대물리 학이 발견한 창조주」, (서울: 정신세계사, 1989), pp.174-175. 참조.
[97] Ibid, p.170., 동양의 사고에 "내 속에 이 우주가 깃들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내가 이 우주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혹은 나의 마음 상태에 따라- 이 우주는 밝게도 보이고 어둡게도 보인다는 것이다. 아하!

[98] 김용옥,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 통나무, 1989), pp.36-37., 밑줄은 전적으로 필자의 표시이다.

[99] 김상일, 「화이트헤드와 동양철학」, (서울: 서광사, 1993) 참조.

[100] 민영진·전경연·장일조·김경재 지음, 「한국 민중신학의 조명」, (서울: 대화출판사, 1984), p.107., 이 책은 주로 민중신학을 비판하는 입장인데, 오히려 강원돈은 이 책의 내용을 다른 곳에서 리얼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강원돈, "민중현실의 발견과 우리의 것에 대한 추구", 한국신학연구소 편, 「1980년대 한국 민중신학의 전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년] 참조.) ; 그리고 중요한 점 한가지는, 일반적으로 과정신학의 신관을 "양극성적 유신론"(兩極神觀, dipolar theism) 또는 "범재신론"(汎在神論, panentheism)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화이트헤드의 제자였던 찰스 하트숀의 용어이다. 김경재·김상일 편저, op., p.176. 참조.

[101] 화이트헤드는 말하길, 형이상학에 대한 언급없는 모든 추론은 불완전하다라고 얘기한다. AI, pp.196-197., (역, p.252.)

[102] 이는 각각 과정신학의 <신론>과 <기독론>과 닿아있다. 하나님은 완전하면서도 불완전한 존재로 평가되며, 예수는 죄인으로서 의인이 되는 의인화의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 화이트헤드가 <궁극자>로 생각하는 <창조 성>creativity이 육신의 삶으로 현현된 그리스도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다음 기회로 넘 기겠다. 설명하자니 논의가 엄청 길어진다. 직접 과정신학과의 접목을 통해 알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103] <자각된 민중>에서 <자각된>에 해당하는 영문은 comprehended 보다 be conscious of의 수동형에 가까운데, 사전에는 나와있질 않아서 아직 명기하질 못했다. 영어 잘하시는 몇 분에게 물어도 모르시던데, 혹시 잘 아는 분 계시면 이것을 어떻게 표기해야 하는지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설마 여기에 해당하는 영어단어가 없다면 할 수 없고.

[104] 신이 주는 비전이란 기독교적으로 얘기하면 곧 예수사건을 얘기한다. 자각된 민중은 나의 실존과 예수사건이 충돌하면서 이뤄내는 차원이다.

[105] RM, p.69., (역, pp.53-54.)

[106] 이런 의미에서 보수신학이 <일반계시>와 <특수계시>를 구분하는 것은 참으로 무지한 발상이다. 하나님의 특 수 계시는 인간 세계에 일반성을 띠고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가 <성육신>아닌가. 초자연적 하나님은 인간 예수 로 현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07] Charles Hartshorne, op. cit., p.106.

[108] 물론 공식화할 수는 없겠고 아주 근접된 의미로써, 1세대는 <우선적 민중>을, 변혁자 주체론을 말하는 2세대 와 3세대는 <자각된 민중>을 각각 강조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109] 서남동, 「민중신학의 탐구」, (서울: 한길사, 1983), p.107.

[110] RM, p.15., (역, p.7.)

[111] RM, p.59., (역, p.45.)

[112] RM, p.16., (역, p.8.)

[113] 박재순, 「열린 사회를 위한 민중신학」, (서울: 한울, 1995), p.102.

[114] 안병무, 「민중사건 속의 그리스도」,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9), pp.108-109., 대화 중의 밑줄은 전적으로 필자가 표시한 것이다.

[115] 주지하다시피 과정신학의 신관(神觀)은 절대적 군주자인 남성적인 신이 아니라 포용, 동정, 설득, 치유, 사랑 을 강조하는 여성적인 신이다. John B. Cobb & Davis Ray Griffin, 류기종 옮김, op. cit., pp.14, 57-87.

[116] 물론 인과적 개념에서 화엄불교랑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사변의 거시적인 구도에서 보면 불교랑 흡사하다는 것이다.(Steve Odin, Process Metaphysics and Hua-yen Buddhism, [Albany :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2] 참조.) 불교는 상당히 과학적이고 틈이 없어 보이지만, 인간고에 대한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 면-또는 <중생>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상당히 보수화 할 위험이 다분하다고 본다. 불교는 조화와 화합을 강조하고 당파성을 멀리하는 일원론적 습성에 젖어 역사적으로 자주 지배이데올로기에조차 봉사하는 귀족불교, 산속불교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대체로 불교도들은 평화주의자였지만 민중에 대해 당파성을 띠는 예언자 적 성격은 희석되어 있었다. 이들은 중생에 대해 존재론적 이해에 치우친 나머지 중생을 이원적으로 나누는 것 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중생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에 대해서는 별로 진전하지 않는 분위기로 나타났었던 것이 다.(劉載天 編, 「民衆」, [서울: 文學과 知性社, 1984], p.45. 참조.) 그래서 불교에 평화와 사랑은 있어도 <정의> 나 <공의>에 대한 의식은 기독교에 비해 아주 희박한 편이다.(변선환아키브 편집, 「종교간 대화와 아시아 신 학」,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p.342. 참조.) 나는 불교의 크나큰 과제로써 불교는 부처님의 자비 또한 <우선적 자비>를 베풀어야 될 곳을 지적할 수 있어야 됨을 주장하고 싶다..

[117] RM, p.50., (역, p.37.)

[118] John B. Cobb, 김상일 옮김, 「과정신학과 불교」,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강성도 옮김, 「종교다원 주의와 오직 예수」, (서울: 조명문화사, 1992) 참조.

[119] 불교 뿐만 아니라 중국의 노장사상, 유교의 율곡사상과도 과정철학적 사유와 유사점이 많다. 도(道)는 하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120] 노창식,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의 실천", 안병무 박사 고희 기념 논문집, op. cit., pp.646-645.

[121] 한국민중신학회 편, 「민중신학」창간호/1995,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p.186.
[122] 김창락, op. cit., p.97.

[123] Ibid, p.57.

[124] 이것은 아직 설익은 나의 관점이지만 성서해석학에 충분히 도입할 수 있다고 보며, 언젠가 여유가 된다면 이 에 대해 깊이 연구해보고 싶다.

[125] 그래서 화이트헤드는 말하기를, 종교는 각 사람이 그 자신의 <홀로 있음>solitariness과 더불어 행하는 것이 며,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곧 <고독성>solitariness이라고 하였다. RM, p.16., (역, p.8.) 참조.

[126] 한국신학연구소성서교재연구소, 「함께 읽는 구약 성서」,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1), p.11.

[127] 竹齋 徐南同牧師 기념논문집 편집위원회, op. cit., p.151.

[128] Friedrich Engels, 김민석 옮김, 「반듀링론」, (서울: 새길, 1987), p.92.

[129] 김진호 목사로 대표되는 3세대 민중신학자들의 활약은 2세대의 민중신학을 더욱 더 정교하게 비판 계승한다. 김진호는 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에서, 세대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연속성은 있다라고 말한다.(김진호, "민중신학의 계보학적 이해", 「시대와 민중신학」1997년 제4호, [서울: 시대와 민중] 참조.) 물론 세대간의 학 자군 중에서 일부겠지만, 여기서 2세대가 맑스의 유물론을 수용·접목시킨 세대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3세 대는 맑스 이후의 포스트맑스적이고 알튀세적인 개념들을 수용하려는 경향을 띤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3세대 역시 그 기본적 전제들은 고착하지 않고 있다. 즉, 이들의 아카데믹한 수고도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이 되버렸다.

[130] 유명한 생태 윤리학자 한스 요나스는 그의 저서에서 현대의 윤리학은 형이상학을 필히 전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오로지 형이상학에서만 "왜 인간은 결국 이 세계에 존재해야만 하는가?", "인간의 실존을 미래에도 보장해야 하는 무제약적 정언 명법이 왜 타당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 이라고 얘기한다. Hans Jonas, 이진우 옮김, 「책임의 원칙: 기술 시대의 생태윤리학적 윤리」, (서울: 서광사, 1994), p.6. 참조, 나는 윤리학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이 책은 현대 윤리학의 명저인 것으로 안다.

[131] John B. Cobb & David Ray Griffin, 류기종 옮김, op. cit., p.5.

[132] 도올 김용옥 엮음, 「삼국통일과 한국통일」上卷, (서울: 통나무, 1994), p.96-97.
[133] 실제로 나는 민중신학 대토론회 때 학자들에게 이 문제를 언급했지만, 아무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 한 듯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134] 과정신학의 실천적 분야인 목회영역을 피력한 John B. Cobb, 이기춘 편역, 「과정신학과 목회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3)은 익히 알아둘 만한 책이다.

[135] 서남동, "과학과 근대세계-서평", 「기독교사상」1974년 12월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pp.86-89., 김경재· 김상일 편저, op. cit., pp.299-318. 참조., 그는 여기서 존 캅에게 과정신학이 해방신학과 달리 중산층의 신학이 아니냐는 비판을 가한다.

[136] 미발행, 김성재, "민중신학과 탈식민주의 담론", 「민중신학 대토론회: 주제-제3밀레니움, 21세기의 민중신 학」, (1998, 7/13-15), 발제물 中
 
 
 
▷ 1998년 8월15일, 양산리에서

 
 
 
 [펌금지]
 
미선 (13-02-18 03:29)
 
우연히 그 옛날에 썼던 원안 자료를 발견하고서 올린다.

내겐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시간 중의 하나가 1998년도 여름이다. 당시 한신대학교 신학과 학부생이었던 나는 학교 앞 양산리에서 아르바이트와 자취를 하면서 두어달을 꼬박 썼던 원고가 바로 위의 "화이트헤드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이라는 글이었다. 

읽어보시면 아실테지만, 이후 책으로 나온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 반영된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고 제외한 몇몇 단락의 글도 있다. 게 중에는 지금 읽어보면 약간 치기어린 느낌의 문장도 있고 사소한 오류도 보이고 있는데, 어쨌든 위의 글은 당시 원안 글 그대로를 가감없이 올린 글이다. 그래서 펌금지임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그렇기에 본인의 졸저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위의 원안 자료글과 비교해보는 약간의 쏠쏠한 재미 느낌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초안 자료이다보니 좀 더 다듬어지지 못한 문장들도 많이 보이며, 그 중에 지구 네모 얘기나 호떡 장사 알바를 했던 에피소드들은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 책에서는 제외시킨 부분인 걸로 안다. 어쨌든 당시 한창때의 나 자신의 사상적 궤적들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자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이 글을 쓰고나서 이에 대한 코멘트나 피드백을 받기 위해 김경재 교수에게 보낸 바 있었는데, 읽어보신 후 직접 전화를 주시며 과분한 칭찬을 해주셨던 기억도 새삼 떠오른다. 위의 원안 글에서 '기존 민중신학의 민중론 비판과 새로운 민중론' 부분만 추려서 그 해 가을 신학과 임마누엘 학술제에 발표한 바 있었고, 그 다음해인 99년도에는 "3세대 민중신학 비판"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전반적으로 전체 민중신학자들 혹은 전공자들은 본인의 이 글이 무슨 뜻을 내포한 것인지에 대해선 전혀 짐작도 못했었던 걸로 여겨진다. 지금도 그런 점이 없잖아 있지만, 당시 위의 글이 발표되었을 때도 도대체 무슨 얘길 하는건지를 도통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때 당시보다는 조금 더 기독교 신학에서 화이트헤드 철학사상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이들이 점차로 늘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엔 정말 전무했을 정도였으니..

여튼 1998년도 8월15일 2평 남짓했던 그 해 여름의 양산리 2층 자취방에서 썼던 이 글이 나의 사유가 세상밖으로 처음 표현된 글에 해당한다. 한신대를 졸업한 이후로 다시 양산리를 가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경부선 기차로 지나가면서 학교 앞에 많은 아파트 건물이 들어선 것을 멀리서 본 적은 있지만 말이다. 언제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양산리를 찾아가고 싶다.

귀비 (17-01-19 16:19)
 


이러한 뭉클사연이 있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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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015 11-04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05 01-16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02 12-06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098 10-14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07 04-11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08 02-17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04 02-02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154 01-13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37 11-28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516 11-03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것은 과연 진리인가 정강길 4951 04-27
"어차피 이러한 기독교로 바뀌게 된다!" (모든 분들에게 고함) (17) 정강길 3473 02-18
새로운 기독교를 위한 조직신학적 성경공부 (신론) (2) 관리자 6170 05-28
새롭고 건강한 21세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위한 신앙선언서 (26) 관리자 5327 05-23
180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몰락이냐? 도약이냐? 미선 1113 06-16
179 "함께 만들어가는 종교와 진리" (2) 미선 1163 06-10
178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병치유 귀신쫓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 (1) 미선 1264 06-10
177 몸에 모시는 하나님 (탈유무신론의 신앙) 미선 1041 06-09
176 초자연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가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1226 06-07
175 과학의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창조론 입장들 미선 1179 05-30
174 신학이 아닌 몸학에 기반하는 <몸학 기독교>로! 미선 1081 02-10
173 신의 영어 표기 God ----> Gio 로 바뀌어야 미선 1032 02-07
172 약자에 대한 눈뜸 - 잠자와 깬자의 차이 미선 1118 12-08
171 <초자연주의>를 인정하면 나타나는 문제들.. 미선 779 11-04
170 [어떤 진리관] 진리(眞理)와 진리(進步)의 차이 그리고 퇴리(退理) 미선 768 07-05
169 시작이 있는 우주인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인가? 미선 882 06-18
168 <종교 위의 종교>에 대해.. 미선 755 05-04
167 초자연주의와 자연과학 그리고 신비주의 구분 미선 889 04-06
166 지적설계론(창조론)자들과 유물론적 과학자들 간의 공통점 미선 721 12-10
165 종교 신앙의 반지성에 대한 단기적 대안 (1) 미선 793 11-24
164 "몰락이냐 도약이냐" 21세기 종교 진화의 방향 (종교학회 발표) 미선 755 09-10
163 '나(I)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하려면.. (1) 미선 733 04-13
162 유신론-무신론을 넘어서 <탈신론>으로 미선 891 05-04
161 <초자연주의>를 버려야 기독교가 산다! 미선 872 02-04
160 몸학 기독교 & 몸학 사회주의 추구 미선 754 12-31
159 <자유>에 대한 짧은 생각.. (2) 미선 870 08-24
158 몸학 기독교에선 기독교 신학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유 미선 984 03-24
157 인간 무의식의 두 가지 상태와 보다 상향적인 의식 발달을 위하여 미선 967 03-03
156 (1998년 원글) "화이트헤드 철학에서 본 민중신학 비판과 대안적 모색" (2) 미선 1015 02-18
155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동서양의 어원적 의미와 전후 혼동 오류 미선 788 02-06
154 기존 기독교와 <몸 기독교>의 분명한 차이들 미선 754 01-21
153 GIO명상 방법 12단계 (몸기독교가 제안하는 수행 방법 중 하나..) (5) 미선 1205 01-16
152 2013년 계획.. 몸 기독교 (4) 미선 958 01-02
151 민중신학 40년.. (20년전 안병무 기사를 보며..) 미선 750 12-25
150 진보정치 교육의 사각지대와 민중 역사 주체론에 대한 반성과 재고찰 미선 699 12-22
149 교회에 대한 권력비판? 교리비판? 어느 것이 더 유효할까? (4) 미선 1102 12-06
148 왜 예수인가 (필독 원함!) (13) 미선 3015 11-04
147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2) 미선 748 10-05
146 새로운 기독교의 방향과 몸학의 종교관 (1) 미선 780 08-17
145 기독교 교리의 문제는 기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3) 미선 854 06-11
144 초대교회와 바울에 대해... 미선 903 04-28
143 '작은 교회'가 정말 대안인가? 핵심은 교리다! 미선 719 04-22
142 진선미의 기원과 예수사건 (1) 미선이 708 02-24
141 중간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리스의 <과학신학> 비판 (13) 미선이 705 12-13
140 끔찍한 <몸의 신학>에 속지 마시길! (유사품 주의) (8) 미선이 814 11-15
139 종교운동과 사회운동을 구분 못하는 오류-기존 진보 기독교 비판 (1) (2) 미선이 1098 10-14
138 여전히 예수얼굴에 똥칠하는 개신교 정치세력들 (5) 미선이 770 08-30
137 새로운 기독교 역사의 국내 선구자들 : 유영모, 함석헌, 김재준 미선이 723 06-26
136 조용기 목사의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선이 753 05-14
135 몸학과 새로운 기독교 운동 그리고 30년 후의 기독교 미선이 1107 04-11
134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착각과 환상에 관한 문제 (14) 미선이 1459 03-04
133 기존 진보 기독교인들의 <생명평화> 담론에 반대한다! (업그레이드판) (8) 미선이 1208 02-17
132 기존 진보 기독교계의 ‘생명평화' 담론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선이 555 02-10
131 영혼구원의 강조에서 <총체적인 생명구원의 강조>로 (4) 미선이 668 02-05
130 성서문자주의 또는 성서무오설 신앙보다 더 뿌리 깊은 고질병은? (9) 미선이 1404 02-02
129 죄의식의 종교에서 <이웃과 함께 성찰하는 종교>로 미선이 655 02-01
128 수직적 구조의 교회에서 <수평적 구조의 교회>로 (2) 미선이 852 01-21
127 서구식 목회문화가 아닌 <우리식 목회문화>로 미선이 740 01-21
126 과정신학에 대한 비판과 민중신학의 신 이해 접맥 미선이 1154 01-13
125 ★ 예언 (1) 미선이 1077 12-24
124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4) 미선이 896 12-19
123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3) (4) 미선이 996 12-12
122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2) (10) 미선이 1270 12-05
121 새로운 기독교의 시간관, 태초와 종말로서의 시간관을 거부한다! (4) 미선이 1050 12-01
120 ♣ 새로운 기독교 신학의 인간론 (1) 미선이 1263 11-30
119 [예수운동 예배 견본] 새로운 기독교의 <예수운동 예배>를 위하여 미선이 1437 11-28
118 숭배하는 예배에서 <닮으려는 예배>로 (1) 미선이 1205 11-19
117 거꾸로 흘렀던 감리교 역사, 바로 세우기엔 아직 멀었나 미선이 1053 11-10
116 <새로운 기독교>를 소개하는 전체 안내 링크글 (계속 업데이트 예정) 관리자 3516 11-03
115 [논평] 봉은사 땅밟기 추태, 성경 '문자주의' 그 야만의 역사 넘어서야 (1) 관리자 1189 10-29
114 기존의 진보 기독교와 새로운 기독교 운동 (1) 미선이 1080 10-22
113 1세대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미완의 작업과 기존 민중신학의 과제 미선이 1005 10-19
112 [새기운 성명] 4대강 사업 관련, 문정현 신부의 정진석 추기경 비판을 지지한다 관리자 964 10-19
111 스퐁, "스티븐 호킹과 유신론/인격신의 죽음" (작은불꽃님 역) 관리자 135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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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for Transformation of World and Christian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