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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표준새번역 사서> <중용> 1장    
  글쓴이 : 한솔이 날 짜 : 16-10-23 19:10 조회(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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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새번역 사서> <중용> 1장

도와 중화1)

1 하늘이 명령하는 것을 ‘본성’이라 말하고, 본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 말하며,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말한다.2)
2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이지 않는 것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들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3)
3 은밀한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미세한 것보다 더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아는 마음을 삼간다.4)
4 〇기쁨・분노・슬픔・즐거움이 아직 발현하지 않은 것을 ‘중(中)’이라 말하고, 발현하여 절도에 맞는 것을 ‘조화[和]’라 말한다. 중은 천하의 큰 근본이고, 조화는 천하의 보편적인 도이다.5)
5 중과 조화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잘 자랄 것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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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이 책의) 이름을『중용(中庸)』이라 한 것은 중화(中和)의 작용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용(庸)’은 작용[用]을 말한다. 공자의 손자 자사는『중용』을 지어서 공자의 덕을 밝혔다. 이 (말)은 유향(劉向: BC 77~6)의『별록(別錄)』에 있는데, 통론(通論)에 속한다.”(정현)

“이 편(『중용』)은 공자 문하에서 전수해온 심법(心法)인데, 자사가 그 전수가 오래되면 (심법이 본뜻에서) 어긋날까 염려했다. 그러므로 그것을 책에 써서 맹자에게 전해주었다. 이 책은 처음에는 한 이치[一理: 天命之謂性]를 말했다가, 중간에는 (그것을) 만사(智仁勇, 九經, 祭祀, 鬼神 등)에 적용하고, 끝에서는 (만사를) 다시 한 이치[上天之載]에 합치시켰다. 그것을 풀어놓으면 우주에 가득 차고 그것을 말아놓으면 은밀한 곳(마음)에 저장되어 그 의미가 무궁하니, 모두 실학(實學)이다. 독서를 잘하는 자가 (이 심법을) 깊이 음미하여 터득하면 평생 그것을 사용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정이)

주2) 이 절에 대한 주희와 김용옥의 설명을 비교해 보라.
“‘명(命)’은 명령함과 같다. ‘본성[性]’은 곧 이치이다[性卽理]. 하늘이 음양과 오행으로 만물을 변화・생성시켜 기로써 (만물의) 형체를 이루고 만물에 이치를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만물이 태어나서 각각 부여받은 이치를 얻어 강건함과 유순함 및 오상(五常: 인의예지신)의 덕으로 삼으니, 이른바 본성이다. 사람과 만물이 각각 본성의 자연을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각자 마땅히 행해야 할 길이 있으니, 이것이 이른바 ‘도(道)’이다. ‘닦음[修]’은 도를 등급에 맞게 규정하는 것이다. 본성과 도가 비록 같으나 (사람마다) 부여받은 기질이 혹 다르므로 지나침과 부족함의 차이가 없을 수 없다. (따라서) 성인이 사람과 만물이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따라 도를 등급에 맞게 규정하여 천하의 법도로 삼으니, 이것이 곧 ‘가르침[敎]’이다. 예법・음악・형법(법률)・정치 따위가 이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에게 본성이 있는 줄은 알면서도 그것이 하늘에서 나온 줄은 모르고, 일에 도가 있는 줄은 알면서도 그것이 본성에서 유래한 줄은 모르며, 성인에게 가르침이 있는 줄은 알면서도 그것이 나의 고유한 것(본성)으로부터 (성인이 나에게 맞게) 만든 것인 줄은 모른다. 그러므로 자사가 이 책에서 맨 먼저 이것을 밝혔으니, 동중서(董仲舒: BC 179?~104?)가 이른바 ‘도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이 또한 이 뜻이다.”(주희)

“‘하늘[天]’은 자연적・이법적・도덕적・종교적 의미를 포괄하는 것으로 개체적 인간의 도덕적 주체성의 근원을 말하고, 하늘의 ‘명령[命]’은 하늘이라는 대자연의 우주생명과 개체와의 상호생성적 ‘상호작용(interaction)’을 말한다. ‘본성[性]’은 성선 또는 성악으로 규정되기 이전의 것으로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것인데,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生]’인 ‘식욕과 성욕[食色]’ 및 희로애락의 기(氣)를 말한다[性卽氣]. 따라서 ‘본성을 따른다.’고 함은 그냥 도덕적 본성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아니라, 본성에서 발출되는 ‘감정과 욕구[情: 喜怒哀樂愛惡慾]’를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길[道]’은 선택이고 과정이므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고, 바로 이 과정이 ‘교육[敎]’이다. 교육의 목표는 사회정의를 구현하여 ‘대동(大同)’을 실현하는 것이다.”(김용옥)

주3) 이 절에서 동사 ‘떠나다[離]’의 생략된 목적어로는 만물, 일상생활, 몸, 마음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여기서 ‘그 보이지 않는 것[其所不睹]’과 ‘그 들리지 않는 것[其所不聞]’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사람의 내면 곧 마음을 가리킨다(3절 이하 참조).
한편 이 절의 후반부는 흔히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경계하고 삼가며,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의 말을) 두려워한다.”로 옮기기도 한다.

“도(道)란 (사람이) 날마다 사물을 사용할 때에 마땅히 행해야 하는 이치들인데, (이러한 이치들은) 모두 본성의 덕으로서 마음에 갖추어져 있다. (도가) 없는 물건이 없고 (도가) 행해지지 않는 때가 없으니, (도가) 잠시도 (마음을) 떠날 수 없는 이유이다. 만약 도가 (마음을) 떠날 수 있다면 (사람이) 어찌 본성을 따른다고 말하겠는가? 이 때문에 군자가 마음에 항상 삼감과 두려움을 보존하여 비록 (마음이) 보이거나 들리지 않는 것일지라도 또한 감히 (마음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은 (마음에) 천리의 본연을 보존하여 잠깐 동안이라도 (도가 마음을) 떠나지 않게 하려는 까닭이다.”(주희)

“도(道)는 일용지간에 철저히 나의 몸에 내재하는 것이다. 유대-기독교의 신처럼 내 존재 밖의 타자가 아니다. 도를 닦는 삶의 자세는 (유대-기독교의) 신을 신앙하는 자세보다 더 부단한 노력이다. 그것은 신(=우주의 내재적 생명력)을 내 몸 속에 구현하는 과정이다. 신은 관념이 아닌 실재이며, 몸의 구체성일 뿐이다. 결국 ‘중용’이란 내 존재의 내면의 심화를 의미한다.”(김용옥)

주4) 여기서 ‘홀로 아는 마음[獨]’은 ‘홀로 있을 때’로 옮기기도 하는데(『대학』 3:1~4 참조), 이것은 내면의 깊은 곳으로 생각이 처음 싹트는 곳을 말한다(주희). 그곳이 선악(善惡)과 정사(正邪)의 갈림길이기 때문에 조심하라고 했다.
“‘은밀한 것[隱]’은 보이지 않는 곳(마음의 깊은 곳)이고, ‘미세한 것[微]’은 아주 작은 일(한 생각이 일어나는 찰라)이며, ‘홀로 아는 마음[獨]’이란 남들은 모르고 자신만이 홀로 아는 곳이다. 보이지 않는 중에 아주 작은 일은, 흔적이 비록 드러나지 않아도, 기미(幾微)는 이미 움직여서 남들은 비록 모르나 자신은 홀로 알고 있으니, (이것은) 천하의 일 중에서 이보다 더 현저하게 드러나고 더 명백하게 나타난 것이 없다. 이 때문에 군자는 이미 항상 (홀로 아는 마음을)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여기에 또 더욱 (그것을) 삼간다. (이것은) 인욕을 싹틀 무렵에 막아서 인욕이 은미한 가운데 몰래 불어나고 암암리에 자라나 (마음이) 도에서 멀리 떨어지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하려는 이유에서이다.”(주희)

따라서 “신독(愼獨)은 인간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하는 것(誠意=毋自欺=敬)으로, 이러한 사람은 본래적인 자신의 주체를 회복하여 자아완성을 향해 부단히 진보해 나아가게 된다.”(이동환:『대학』 7장 참조)

한편 “은미한 것에서 인간 본래의 모습의 최대치를 발현하는 것이야말로 천명을 가장 바르게 드러내는 정도이다. 삼감은 자기절제이고, 자기발견이며, 자기주체의 심화과정이다. 또한 ‘신독(愼獨)’은 개인의 내면적 사태이므로 사회적 결과에 의해 선악을 판단하는 일체의 공리주의적 윤리설과는 거리가 멀다.”(김용옥)

주5) “희로애락(喜怒哀樂)은 감정[情]이지만 그것이 아직 발현하지 않으면 본성[性]이니, 치우치고 기운 바가 없으므로 ‘중(中)’이라 말한다. (그것이) 발현하여 모두 절도에 맞는 것은 바른 감정이어서 (이치에) 어긋나는 바가 없으므로 ‘조화[和]’라 말한다. ‘큰 근본[大本]’이란 하늘이 명령하는 본성인데 천하의 이치가 모두 이로부터 나오니, 도의 본체이다. ‘보편적인 도[達道]’란 본성을 따름을 말하는데 천하와 고금에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행해야 하는 것이니, 도의 작용이다. 이 (절)은 본성과 감정의 덕을 말해 도가 (마음을) 떠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주희)

주6) “‘이룸[致]’은 (사람이 중과 조화를) 확충하여 지극히 하는 것이고, ‘제자리를 잡음[位]’은 (하늘과 땅이) 제자리에 편안한 것이며, ‘잘 자람[育]’은 (만물이) 자신의 삶을 완수하는 것이다. (마음을) 경계하고 두려워함으로부터 그것을 집약하여 (마음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감정이) 치우치고 기운 바가 없이 그 지키는 것(중)을 잃지 않는 데에 이르면, 그 중을 이루게 되어 천지가 제자리를 잡게 된다. (또) 홀로 아는 마음을 삼감으로부터 그것을 정밀하게 행하여 사물을 대응할 때에 조금도 잘못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못함이 없는 데에 이르면, 그 조화를 이루게 되어 만물이 잘 자랄 것이다. 천지만물은 본래 나와 한 몸이니, 나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 또한 바르게 되고, 나의 기운이 순하면 천지의 기운 또한 순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효험이 이와 같은 데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학문의 지극한 공이고 성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처음부터 (내 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도를 닦는 가르침이 또한 그 안에 있다. 하나의 본체(중)와 하나의 작용(조화)에 비록 움직임과 고요함이라는 차이가 있으나 반드시 본체가 확립된 뒤에 작용이 행해지게 되니, 그 실상은 또한 두 가지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5절)에서 그들을 합쳐 말하여 윗글의 뜻을 결론지었다.

위는 제1장이다. 자사가 (공자로부터) 전수받은 것의 뜻을 기술하고 자신의 의견을 세상에 발표했다. 먼저 도의 본원이 하늘에서 나와 바뀔 수 없음과 그 실체가 (자기) 몸에 갖추어져 떠날 수 없음을 밝혔고(1~2a절), 다음에 존양(存養: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기름-미발 함양)과 성찰(省察: 이발의 생각·감정·의욕·언행을 성찰함-이발 찰식)의 요점을 말했으며(2b~4절), 끝에 성인과 (천지) 신의 공로와 조화(造化)의 극치를 말했다(5절). 배우려는 자는 이 (글)을 통해 돌이켜 자신에게서 (도를) 찾아 스스로 그것을 체득하여 외물의 유혹에 따른 사욕을 버리고 그 본연의 선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양씨(楊氏: 楊時)가 ‘(이 장은『중용』) 1편의 요체이다.’고 말한 것은 이것을 뜻한다. 이 아래 열 장은 자사가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이 장의 뜻을 끝맺은 것이다.”(주희)
어쨌든 이 장을 바탕으로 하면서 불교 수행론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수립된 주희의 ‘미발이발(未發已發)’ 수양론에 대해서는 정은해의『유교 명상론』(2014) 등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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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곧 출간될 예정인 <표준새번역 사서>에 인용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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