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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제 목 : 화이트헤드, 그는 누구인가?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6-07-15 00:50 조회(1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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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헤드, 그는 누구인가?
 
 
 
 
 
 
1. 학문적 관심에 따른 화이트헤드의 생애

 
화이트헤드는 1861년 2월 15일, 영국의 아름다운 전원소도시인 켄트주 램즈게이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공회의 성직자이면서 사립학교의 학교장직도 겸하고 있었는데, 그의 종교적이고도 교육적인 가정환경은 그의 일생에 그 어떤 영속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물론 화이트헤드는 종교적 교리에 귀속되진 않았다. 
 
교육을 받던 청소년기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의 고전교육을 배우면서 낭만주의 시인인 워즈워드나 셀리의 시를 즐겨했으며, 역사책을 탐독하였다. 그렇기에 그의 사상에서 보여지는 학문적 균형은 일찌기 이러한 교육 성장이 바탕이 됨으로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다. 1880년 가을, 그의 나이 열아홉 살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명문인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였고, 그는 여기서 활발한 토론과 교육을 받는 가운데 종교, 철학, 정치, 예술, 문학 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강렬한 지적 자극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1885년에 화이트헤드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수학강의를 담당하게 되었으나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연구를 추진하여 마침내 1898년에 「보편대수론」(A Treatise on Universal Algebra)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그의 처녀작인데, 나중에는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과의 공동작업으로 수리논리학의 명저로 평가받는 「수학원리」Ⅰ(The Principles of Mathematics, 1910)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화이트헤드 생애에 있어서 「수학원리」Ⅱ, Ⅲ(1912, 1913)를 발표하기까지를 흔히 <케임브리지 대학의 수학, 논리학의 시기>라고 불린다. 
 
이후 1910년에는 30년 동안의 케임브리지를 떠나 런던 대학으로 옮긴 후, 그가 자연과학의 3부작인 「자연 인식의 여러 원리에 관한 연구」(An I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Natural Knowledge, 1919), 「자연의 개념」(The Concept of Nature, 1920), 「상대성 원리」(The Principles of Relativity, with Applications to Physical Science, 1922)를 발표했던 이 시기를 또한 그의 인생에 있어서 <런던 대학의 과학철학의 시기>라고 한다. 이 시기의 화이트헤드는 전통적인 자연과학이 은연중에 가정한 기본 전제들의 타당성을 통일적인 관점에서 검증하여 <과학적 유물론>를 통렬히 반박하고, 그것이 이른바 <구체성을 잘못 놓은 오류>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며, 또한 상대성 이론에 관한 과학철학적 고찰도 다루었다.
 
그리고 그가 63세 되던 1924년에 하버드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취임하여 생의 말년까지, 저 웅대한 형이상학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정초했던 시기를 <하버드 대학의 형이상학의 시기>라고 한다. 미국으로 간 이듬해에 발표한 첫 작품이 「과학과 근대세계」(Science and the Modern World, 1925)이며, 뒤이어 「형성과정에 있는 종교」(Religion in the Making, 1926)와 「상징 작용: 그 의미와 효과」(Symbolism: Its Meaning and Effect, 1927)를 간행하였다. 이 세 저술을 토대로 하여 후기의 대표적 주저인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 1929)를 출간하여 유기체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계속되는 연구활동으로 「이성의 기능」(The Function of Reason, 1929), 「교육의 목표」(The Aims of Education, 1932)를 출간하였고, 이후 그는 「관념의 모험」(The Adventures of Ideas, 1933)과 「사유의 양태」(Modes of Thought, 1938)를 발표하였다.
 
화이트헤드는 말년까지 비록 육체적으로는 쇠약해 갔을지라도 지적 활력에 있어서는 지칠 줄 모르는 불굴의 정신의 소유자였고, 죽기까지 평화 공존 사상을 제창했던 평화주의자였다고 한다. 그는 1947년 12월 30일 86세의 나이로 하버드의 교외에서 조용히 일생을 마쳤다.

화이트헤드의 저작 가운데서 『과학과 근대세계』, 『과정과 실재』, 『관념의 모험』은 그의 후기 사상을 대표하는 <형이상학 3부작>으로 불린다. 그는 먼저 「과학과 근대세계」에서 이전의 세계관인 뉴턴 물리학이 전제하는 기계론적 세계관의 오류를 그의 철학적 구도에서 명석하게 밝혀내고, 그 다음 작업으로 「과정과 실재」에서 그 자신의 철학적 구도인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서의 형이상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여 서술하며, 마침내 『관념의 모험』에서는 그 자신의 형이상학을 인간 경험의 문명세계에 깊숙히 적용시켜 유기체의 철학을 검증시킨다. 그렇기에 그의 사상은 합리적 측면과 경험적 측면을 함께 고찰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드러나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는 화이트헤드의 사상적 발전을 흔히 3시기로 구분하는 것은 그 시기에 나타난 뚜렷한 학문적 관심으로서의 색깔을 말한 것이지 그의 학문적 체계가 도식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후기 철학 사상은 이미 케임브리지 시대에서도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었으며, 그의 수리 논리학이나 과학에 대한 학문적 성과는 그대로 후기 철학의 사상적 기반으로서 영향을 끼쳤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것을 화이트헤드사상의 단절된 단계적인 연속으로 볼 것이 아니라 화이트헤드가 가지고 있었던 전체적인 사유의 발전적인 통일체로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2. 화이트헤드 철학에 대한 평가들
 
화이트헤드에 대한 평가는 본인의 개인적인 평가보다 화이트헤드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여러 학자들의 평가들을 인용해봄으로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현대 사상가들에게 어떻게 인지되고 있는지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화이트헤드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는 학자들 중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가장 높게 평가하는 학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독설적인 비판가로 알려진 김용옥이라는 학자이다. 소신 있는 기독교 비판가로 알려진 그는 말하길 “나는 비트겐슈타인의 간결명료함과 러셀의 징철(澄撤)함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들도 화이트헤드에 비하면 두서너 줄에도 못미치는 것이다”라는 극단의 칭송을 늘어놓고 있다. 특히 화이트헤드의 저서인 「과정과 실재」에 대한 그의 평가는 정말 가관일 정도다. 아주 재밌게 쓴 글이라서 인용해본다.
 
“....(중략)....우리 모임은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를 읽고 있는데 내 일생일대에서 동서고금을 통해 내가 접한 가장 난해한 책을 들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가 바로 그곳에서 공부했던 하버드대학의 철학과의 교수였던 화이트형님의 이 「과정과 실재」를 정말 서슴치 않고 들겠다.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까? 한줄 한줄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도 같고,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아리숭하면서도 심오한 듯이 보이고, 헤겔이나 칸트의 어려움은 이에 비하면 새발의 피고, 도무지 난해한 도수로 말하면 인류언어 사용사상 챔피온 중의 챔피온이 될 것 같다. 화이트헤드 즉 白頭先生의 「과정과 실재」앞에서 나는 요즈음 경외감과 모멸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쉽게 써도 될 말은 이토록 어렵게 쓰고 있는 백두가 괫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괫씸한가 하면 잘 따져보면 한줄 한줄에 정확한 명제가 들어가 있고 해서 도무지 어찌 해볼 수 없다는 뜻이다. 老子부터 하이젠베르그까지가, 플라톤에서 李濟馬까지가 마구 엇갈려 들어가 있는 듯한 白頭선생의 대가리속을 제대로 알고 있는 한국인은 하나도 없다고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화이트헤드에 관한 모든 해설서와 또 화이트헤드의 우주관이 깔고 있었던 20세기 과학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조직적으로 탐구해 들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리송하게 헤어지기가 태반인데, 혼자 화이트헤드를 전공했다는 말은 도무지 語不成說이다 일본사람들은 「과정과 실재」를 번역하기 위하여 개념 하나의 번역을 놓고 몇 년씩 토론을 벌렸다고 좀 과장된 소문이 들려오는데.....(중략)....”
 
국내에 『과정과 실재』를 비롯하여 화이트헤드 철학의 중요 서적들을 가장 많이 번역하여 잘 알려진 오영환 교수는 “20세기는 수학과 철학의 분야에서 화이트헤드를 능가할 만한 인물은 낳지 못했다.”는 찰스 하츠온의 평가를 인용하면서 그러한 “화이트헤드 철학의 영향력은 다가올 미래의 세계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현재 화이트헤드 철학을 논하는 논객 중에 빼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문창옥 교수는 심지어 “앞으로 인류가 제2의 화이트헤드를 다시 경험하게 되리라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까지 평가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신과 물질의 문제, 과학과 철학의 유기적 관련성, 해체와 구성 둘 다를 포괄하고 있는 화이트헤드 사상의 웅혼함을 어쩌면 앞으로의 서양철학사에서는 이를 넘어서기가 거의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리핀(D. R. Griffin)은 화이트헤드 국제학술대회에서 말하길 화이트헤드를 <21세기의 철학자>로 선언하면서 화이트헤드안들에게 담대할 것을 당부한다. 
 
데카르트는 서양의 역사에서 근대라는 시대의 정신사를 뿌리 깊게 지배했던 사람이다. 그의 전략은 맞아떨어져 근대세계의 인간관은 바로 그를 빼고서는 결코 논의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의 이론에 오류가 있을지언정 그만큼 그는 한 시대의 세계관을 지배했던 위대한 인물이었다. 비평가 허버트 리드는 화이트헤드를 가리켜 ‘20세기의 데카르트’라고 평가한 바 있다. 즉, 데카르트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었듯이 앞으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 새로운 르네상스는 바로 ‘화이트헤드로부터’가 아닐는지. 즉, 화이트헤드는 바야흐로 제3밀레니움의 문명사를 뿌리 깊게 지배할 사상가라는 얘기다.
 
아마도 이런 평가들은 실질적으로 화이트헤드 철학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작 느끼기 힘든 얘기일 것이다. 나 자신이 화이트헤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별거 아니다. 나는 화이트헤드의 사유를 통해서 세계 안의 여러 문제들을 손쉽게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는 해결들을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3. 화이트헤드 사상의 영향력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치밀하고 난해한 철학사상이라는 평가와 철학사의 모든 것들이 다 깃들어 있어 ‘서양철학사의 요지경’이라고도 평가받고 있다. 아마도 화이트헤드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이라면 생소할지 모를 이 철학자는 그 치밀한 난해함 때문에 그의 제자가 버트란트 러셀이었으면서도 끝내 그토록 똑똑하다는 러셀조차도 이해치 못할 정도였다. 당대에 이미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도 그를 족히 넘볼 정도의 철학자였지만, 서구철학 진영에서는 워낙 어려운 사상으로 취급받았고, 그의 명성이 제대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겨우 20세기 후반 들어서였던 것이다. 국내에도 그의 저서가 활발하게 번역된 것도 90년대부터 최근까지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 이래로 서양철학사의 모든 문제들이 그의 철학 체계에선 거의 대부분이 종결을 맺고 있다고 보고 있을 뿐더러, 놀랍게도 그전까지는 서양철학사에선 보기 힘들었던 동양철학의 세계관과도 통하는 새로운 <유기체적 세계관>으로서의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오히려 동양사상가들이 가장 우호적으로 좋아하는 서양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그의 철학은 현대 물리학의 성과물인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 또는 카오스 이론이나 통일장 이론 등등 이러한 첨단의 과학적 성과들과 모순되지 않게 조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예증성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철학에서는 근대 철학과 근대 과학에 대한 반성으로서의 해체적 기제마저 녹아있기에 오늘날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과도 관련을 맺으면서 해체 이후의 철학, 즉 해체의 잔해 위에서도 여전히 합리주의가 가능한 구성 철학을 말할 수 있다는 점은 포스트구조주의에 젖은 사상가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화이트헤드의 과정사상은 <구성적 포스트모던>constructive post-modern의 맥락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이 현대 물리학과 경험주의에 기초한 철학이면서도 동시에 현대 철학의 담론 가운데서 유일하게 현실적 존재로서의 신God 존재를 말할 수 있다는 점은 자연과학자들 뿐만 아니라 종교 신학자들에게도 매우 고무적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화이트헤드의 사상은 오늘날 과학과 종교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풍요롭게 해주는 영역들로서 자리매김 되도록 하는 철학이라고 하겠다.

현재 기독교계에 새로운 철학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과정신학의 조류를 형성하는 신학자들이 있고, 이외에도 떠오르는 생태여성신학의 젖줄도 화이트헤드의 사상과 닿아 있으며, 기독교 신학이나 종교학 분야외의 다른 분야들까지 이를테면, 유교의 주자학이나 노장사상, 화엄불교를 비롯한 부디즘, 교육학, 자연과학, 환경생태학, 여성학, 사회학, 정치경제학, 경영학 등등 그 영향력의 정도가 계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중국의 지예왕이라는 동양학자는 앞으로의 중국 사상에 있어서도 화이트헤드 철학은 현재의 중국이 그 대안적 사상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서구철학사상이라고 언급한 바 있으며, 키튼은 인류가 23세기가 되면 화이트헤드의 철학 사상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일반화될 것이라고까지 얘기한 바 있다.

화이트헤드의 철학의 단점을 말한다면, 너무 지나치게 어렵다는 것이다. 혹자는 이를 일컬어, “숨 막힐 정도의 합리성과 정밀함”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그래서 대중화되기에는 참으로 무리가 있는 점이 있다. 왜냐하면 그만큼 대중들도 깊게 공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23세기나 되어야 화이트헤드가 일반화된다고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과제는 이를 어떻게 쉽게 대중적으로 풀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가 화이트헤드를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간에 현재 세계 안의 온갖 진리 탐구들이 결국은 그가 이미 축조해놓았던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인도되거나 거의 흡사하게 맞아떨어져 가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는 <피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stubborn fact이라고 하겠다.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향한 시대의 징조들이 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종비련 창간회보 기고)
 
 
................................................................
 
 
 
[웹사이트에서 발췌한]
 
화이트헤드[Whitehead, Alfred North]
 
 
본문
 
목차  

개요  | 성장배경과 학교교육  | 런던에서의 경력  | 미국에서의 경력  | 평가  
 
1861. 2. 15 잉글랜드 켄트 새넛 램즈게이트~1947. 12. 30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영국의 수학자·철학자.
 
 
[개요]
 
B.러셀과 공동으로 〈수학원리 Principia Mathematica〉(1910~13)를 집필했고, 1920년대 중반부터 하버드대학교에서 가르치며 광범위한 형이상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성장배경과 학교교육]

할아버지인 토머스 화이트헤드는 지금의 채텀 하우스 아카데미로 알려진 남학교를 설립하고 자수성가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인 앨프레드 화이트헤드는 영국국교회 목사로서 할아버지와 교대로 이 학교를 이끌어 나갔고 뒤에 새넛의 성베드로 대성당 신부가 되었다. 결혼 전 이름이 마리아 세어러 버크매스터인 어머니는 부유한 군대 재봉사의 딸이었다. 그들은 화이트헤드가 학교생활이나 활발한 운동을 하기에 너무 약하다고 생각해서 14세까지 집에서 가르쳤다. 14세가 되자 영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 중의 하나였던 도싯의 셔본 학교에 들어갔다. 그는 고전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수학에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과잉보호를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도자의 자질을 타고났다. 학교생활의 마지막 해에 그는 반장으로서 과외의 모든 훈련을 책임졌고 여러 경기에서 훌륭한 주장이었다.

1880년에 화이트헤드는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수학강의에만 참석했고, 문학·종교·철학·정치학에 대한 흥미는 대화를 통해서 충족시켰다. 1884년 5월에 그는 사도(Apostles)라는 지성인 토론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다. 화이트헤드는 1883~84년 수학우등졸업시험을 우수하게 치러 트리니티 장학금을 받았고, 트리니티 칼리지의 수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J. C. 맥스웰의 전자기론(그의 동료의 학위논문 주제)에 대한 관심을 수학적 기호체계와 개념에 대한 정밀조사 쪽으로 확장시켜나갔다.

현대 대수학의 개척적인 연구에 힘입어 그는 일반 대수학과 관련된 기호논리체계들을 자세히 비교·연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1891년 1월이 되어서야 〈종합적 대수학에 관한 논문 Treatise on Universal Algebra〉(1898)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논문 집필 1개월 전 에블린 W.웨이드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몰락한 아일핸드 지주 출신 젠트리의 딸로 프랑스에서 태어나 수녀원에서 교육받았다. 그녀는 희곡에 뛰어난 감각을 가졌고, 남다른 심미적 감수성을 지녀 화이트헤드의 생활을 매우 풍요롭게 했다.

결혼 직전, 오랫동안 간직했던 종교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전환을 맞았다. 그의 종교적 배경은 영국국교회와 단단히 묶여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은 사제였고 형 헨리도 사제로서 마드라스의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추기경 뉴먼의 영향을 받아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약 8년 동안 많은 신학서적을 읽고 나서 그는 신학장서를 처분하고 종교를 포기했다. 이러한 회의는 제1차 세계대전 뒤에는 사라졌지만 그는 어느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화이트헤드는 1898~1903년 〈종합대수 Universal Algebra〉 제2권을 집필하던 중 러셀과 공동으로 방대한 연구를 하게 되면서 〈종합대수〉 제2권의 집필을 중단했다. 그는 러셀이 트리니티 칼리지의 입학 장학금 시험을 볼 때 이미 젊은 러셀의 탁월함을 간파했는데, 1890년 러셀은 수학을 공부하는 신입생이었고 화이트헤드는 그의 교수였다. 이 둘은 점점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1900년 7월 그들은 파리에서 열린 제1회 국제철학회의에 참가했는데, 수학자인 G. 페아노가 산술기초를 명확히 하기 위해 기호논리를 사용하는 엄밀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러셀은 즉시 페아노의 표기법을 완전히 익히고 그의 방법을 확장해나갔다. 1900년말 러셀은 훌륭한 〈수학의 원리 Principles of Mathematics〉(1903)의 초안을 썼다. 화이트헤드는 이 논문의 주논점(모든 순수수학은 재구성된 형식논리를 따르므로 논리와 수학 중 논리학이 더 기초학문이라는)에 동의했다. 1901년까지 러셀은 〈수학의 원리〉 제2권의 협력자를 찾고 있었는데, 논제는 엄격한 기호논법에 의해 확립될 예정이었다. 이 작업은 방대해져 결국 그들의 연구는 러셀의 책 〈수학의 원리〉와 무관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들은 그것을 〈수학원리〉라 불렀다. 1910년 〈수학원리〉 3권 중 첫번째 책이 출판될 때까지 이 일에 몰두했다. 본문의 '공식적'인 표현은 대부분 페아노나 화이트헤드가 창안한 표기를 썼다. 넓게 이야기하면, 화이트헤드는 철학문제(특히 논리형의 이론을 고안하는 문제)를 러셀에게 맡기고, 가르치는 의무가 없는 러셀이 실제로 책의 대부분을 썼다. 그러나 협력은 시종일관했고 러셀은 화이트헤드에게 같은 몫의 명예를 주었다. 〈수학원리〉의 기호체계를 이용해 화이트헤드가 쓴 규모가 큰 출판물로는 훌륭한 사색적 논문인 〈물질세계의 수학적 개념들〉(1905)이 유일하게 있다.
 
 
[런던에서의 경력]

1903년 트리니티 칼리지는 화이트헤드를 10년간 수석강사로 임명했고, 수학과 교수진의 수석교수로 선출했으며, 학교 규칙이 정한 최고 25년을 넘어 강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미래는 아직 불확실했는데 뛰어난 수학자 대열에 들게 할 종류의 업적이 없었기 때문이다(그의 관심은 늘 철학적이어서 새로운 정리를 발견하기 보다는 보다 넓은 측면에서 수학의 성질을 이해하고 개념을 체계화하는 쪽으로 향했음). 그래서 트리니티 강의시절 말기에 그에게 케임브리지대학교 수학과 교수직에 오를 전망은 거의 없었다. 그는 비록 런던에 그를 위한 직위가 없었으나 만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1910년 런던으로 갔다. 그러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보낸 몇 년 간의 종사로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평생 동안 펠로가 되었고, 펠로에게 정규적으로 연 4회에 걸쳐 나누어 주는 배당금의 2배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것은 가족을 돌보기에는 충분하지 않았으나 아내 에블린에게 용기를 주었다. 런던에서의 첫해에 화이트헤드는 대중을 위한 그의 첫번째 책인 〈수학의 소개 An Introduction to Mathematics〉(1911)를 썼는데, 이 책은 현재까지도 같은 그런 종류의 책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의 하나로 꼽힌다. 1911년 런던에 있는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교수가 되었고 1914년 과학기술 임피리얼 칼리지의 응용수학교수가 되었다.

런던에서 화이트헤드는 그당시 영국의 일반대중이 받는 교육을 관찰했다. 그의 교수법은 항상 학생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기에 능했는데, 수학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제들이 일관성 없이 가르쳐지고 있음을 느낀 화이트헤드는 가끔 수학교수법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는 몇 개의 연관된 추상개념들의 기능에 대한 직접적인 감각을 개발시키기 위해 그것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용해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학에서 교과과정은 여러갈래로 나누어져 있고 교수들은 외부 시험관이 만든 획일적인 시험체계에 묶여 있어 교수법이 문학의 즐거움을 가로막는다고 느꼈다. 1916년 그는 수학협회 회장으로서 〈교육의 목표:개혁을 위한 탄원〉이라는 제목으로 주목할만한 연설을 했다. 화이트헤드는 젊은이의 보호자들에게 교육의 목적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개발을 고무하고 인도하는 것임을 상기시켰다. 그는 "문화란 사고의 활동이고 아름다움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해력이다. 단편적인 지식은 이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라고 말했다. 화이트헤드의 연설은 비할 데 없이 명쾌했고 정열적이었고 현실적이었을 뿐 아니라 특수교육과 일반교육을 조화시킨 권위 있는 것이었다. 그뒤 자유와 규율의 조화라는 주제의 통찰력있는 논평을 썼다. 화이트헤드의 교육 논평이 영국 현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영국·미국 및 기타 여러 나라의 많은 교사들을 고무시켰다(→ 교육철학). 1919~24년 화이트헤드는 영국의 주요한 교사훈련 전문기관의 하나인 런던의 골든스미스 칼리지의 관리단체장을 지냈다. 또한 런던의 몇몇 과학기술전문학교 학장으로도 일했으며, 런던대학교에서는 이사회 이사, 학술자문위원회 회장, 이학부장으로 있었는데, 그의 통찰력·친절·상식 때문에 위원회에서 그는 매우 필요한 인물이었다.

화이트헤드는 평화적인 사람이었으나 평화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전쟁을 몹시 싫어했지만 영국이 전쟁에 참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의 맏아들 노스는 전쟁에 나가 싸웠고 그의 딸 제시는 외무부에서 일했다. 1918년 그의 어린 아들 에릭이 사고로 죽었고 그뒤 화이트헤드가 일을 계속해 나가는 데는 많은 노력이 들었다. 화이트헤드가 보기에 러셀의 평화주의는 단순했지만 그는 감옥으로 러셀을 방문해 계속 친구로 남았다. 러셀은 나중에 자신이 보여준 인내보다 더 큰 인내를 그가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그 기간 동안 화이트헤드는 또한 물리학의 철학적 기초를 세우고 있었다. 이 작업은 그가 기하학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감지할 수 없는 실체(예를 들면 점들)에 관한 가정된 전제로부터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연장(延長)을 갖는 사물들 사이의 복잡한 관계인 실제 공간의 과학으로 표현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지각할 수 있는 요소와 관계로부터 그는 기하학에 있어서 점들처럼 서로 관련된 실체들을 논리적으로 구성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공간·시간·운동의 개념을 수정했기 때문에 이 물리학의 철학적 기초는 그의 연구의 시작에 불과했다. 화이트헤드는 이 3가지 개념(공간·시간·운동)이 외부세계에 대한 인간지각의 일반적인 특징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1919년 그는 〈자연과학지식 원리에 관한 조사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Natural Knowledge〉를 출판했다. 이것은 탐구적이고 발전적이었으나 너무 철학적이고 복잡해서 물리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화이트헤드는 1915년 철학자들과 함께 과학지식에 관한 인식의 토대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고, 비수학적 저서인 〈자연의 개념 The Concept of Nature〉(1920)을 출판했다. 그는 지각할 수 있는 인간정신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관념론적 견해를 거부했지만 러셀과 G.`E. 무어가 이끄는 물리적 실재론 학파에 속하지도 않았다. 사건이 자연의 기본요소이고 사건의 진행, 즉 창조적 진보가 자연의 가장 근본적 특징(나중에 그의 형이상학을 예시하는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데 있어서 화이트헤드는 앙리 베르그송의 반기계철학에 다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주의자적인 면을 지니고 있었는데, 사건들이 가지는 명백한 특징을 시간을 초월해 있는 실체의 '개입'으로 보았다.
 
 
[미국에서의 경력]

1920년대초 화이트헤드는 영어로 과학저서를 쓰는 가장 뛰어난 철학자였다. 1924년 초 하버드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던 그의 친구인 역사학자 H.O.테일러가 화이트헤드의 보증인이 되어 하버드대학교에 5년간 철학교수 임용을 제안받았다. 당시 그의 63세였고 임피리얼 칼리지에서는 길어야 2년 더 일할 수 있었다. 철학을 가르친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에 들었고 그의 아내 또한 하버드대학교로 옮기는 데 진심으로 동의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는 단순한 과학철학자가 아닌 대석학을 얻었음이 곧 드러났는데, 그는 G. 라이프니츠와 G. 헤겔에 비교할 수 있는 형이상학자였던 것이다. 1925년초에 보스턴에서 8개의 강좌를 열었고, 같은 해에 그의 신에 대한 초기 저작물을 덧붙여서 〈과학과 근대세계 Science and the Modern World〉를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오랫동안 심사숙고해온 '과학적 유물론'(예를 들면 자연은 움직이는 물체, 즉 순전히 물질적인 에너지의 흐름으로만 이루어졌다는 견해)의 대두·승리·영향을 극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이 유물론이 수리물리의 추상체계를 자연의 구체적 실재로 잘못 판단하게 한다고 비평했다. 화이트헤드는 그런 추상관념에 정통해 있었고 그것들을 지적인 발명이 아닌 실제의 발견으로 보았다. 존재의 완전함에 대한 생각으로 그는 철학이 추상관념의 결점을 다양한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개선한 뒤 더 일반적인 개념으로 만들어서 보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책의 중요성은 곧 인정되었다. 읽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마도 자연에게서 가치를 배제하는 것에 반대하며 그가 좋아하는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와 P.B. 셸리에게 호소한 점이었던 것 같다.

1926년 그의 〈발달중인 종교 Religion in the Making〉가 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화이트헤드는 종교를 인간의 고독에서 가장 깊은 단계에 이르는 것으로 설명했다. 즉 사회 현상으로서가 아닌 우주를 향한 개인의 마음가짐으로서 종교를 설명했다. 1927년 1월 에든버러대학교에서는 새 학기에 10개의 기퍼드 강좌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 강좌를 위해 화이트헤드는 '유기체 철학'(그는 이것을 형이상학이라 불렀음)이라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체계를 세웠는데, 유럽의 위대한 몇몇 철학자들 견해와의 '일치와 차이'를 고려했다. 특히 화이트헤드는 데이비드 흄에 반대하여 적절한 철학이론은 '실천'(practice) 위에 세워져야 하는 것이지 그것에 의해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기퍼드 강의는 화이트헤드의 변색적인 가설, 즉 우주는 생성되어가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은 이전에 존재했던 우주와 신(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영구적 공급원)이 제공하는 것(실재)의 무한성을 통합하고 조정하는 과정이라는 가설을 반영했다. 화이트헤드가 새롭고 어려운 전문용어를 쓰면서 이 가설을 1928년 6월 강의에서 소개했을 때 청중들은 전혀 호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강의 내용은 총 25장에 달하는〈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1929)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서구 형이상학의 가장 훌륭한 저서의 하나가 되었다.

화이트헤드는 존재의 이해 가능성에 확고한 신념과 과거 이원론을 극복할 만큼 폭넓게 전반적인 생각의 틀을 구성할 수 있는 우수한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존재의 무한성을 이해하는 데는 그 이전의 접근법을 취하는 것보다 더 좋은 체계가 없음을 알았다. 그는 오랫동안 확고했던 뉴턴 물리학체계의 붕괴를 보아왔고 그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때부터 철학·과학·신학에서 독단적 신념은 그의 적이었다. 〈관념의 모험 Adventures of Ideas〉(1933)은 화이트헤드의 마지막 대철학저서이며 일반독자에게 가장 가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서구문명화 과정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인간성과 신, 그리고 우주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과 야만적인 힘이 한 역할을 통찰력 있고 조화롭게 반영했다. 화이트헤드는 새로움으로 향하는 삶의 충동과,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유익한 모험을 만들기에 충분히 안정된 사회가 절대로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이 책에서 자신의 형이상학을 요약했고, 이것을 이용해 아름다움·진실·예술·모험·평화의 본질을 설명했다. '평화'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움의 유효성에 대한 믿음'이라는 종교적 입장을 취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와 지크문트 프로이트에 정통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당시 과학과 문학 모두에 정통했다. 젊은이들은 화이트헤드의 아내가 마련한 '일요일 저녁'에 모였다. 그곳에서 야위고 몸이 굽지만 않았다면 보통 키는 되는 장밋빛 뺨을 가진 사람이 온화하면서 높은 목소리로 그들과 이야기했는데 자신의 학설이 아니라 그들의 사상에 대해 폭넓고도 역사적인 전망으로 날카롭게 조명했다.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버드대학교에서의 강의에서도 화이트헤드는 개념의 적용범위를 탐구하고 전통적으로 반대되는 직관들이 어떻게 서로 보완되는지를 자신의 개념에 의해 보여주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참석해 큰 경험을 얻게 되었다. 하버드대학교는 1937년까지 그를 은퇴시키지 않았다. 미국에서 처음 몇 년 동안 화이트헤드는 강사로서 동부와 중서부의 많은 대학들을 방문했다. 그는 미국인들을 좋아했지만 항상 전형적인 영국인이었다. 1903년 이래로 왕립학회 회원인 그는 1931년 영국학술원에 선출되었고 1945년 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죽은 뒤 그의 몸은 화장되었고 장례식은 없었다. 출판되지 않았던 원고와 편지들은 그가 원하던 대로 아내가 없앴다.
 
 
[평가]

모든 사상계의 지도자들이 그의 숭배자였지만 화이트헤드에게는 제자가 없었다. 그의 교육 및 철학 저서들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형이상학은 특히 미국에서 활발히 연구되었다. 현재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으로 불리는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은 미국의 철학자 찰스 하트숀에게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과정철학). 남을 돕는 습관 때문에 화이트헤드는 전세계에서 사랑받았다. 그는 공손한 태도를 잃은 적이 없지만 부드럽지는 않았으며, 결코 논쟁을 하지 않았고, 통찰력이 있었으며, 자비롭고, 매우 고집이 세었다. 현실적이며 균형 잡힌 정신을 가졌고, 악의 없이 세련되게 비꼬기를 잘 했다. 화이트헤드는 직관력, 지적인 능력, 확고부동하고 지혜로운 장점들이 훌륭히 조화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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