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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제 목 : [책] 문창옥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통나무 2002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6-11-11 19:56 조회(7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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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옥,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통나무 2002
 
 
목차
 
서언: 화이트헤드와 현대 ------- 5
저자해제 ---------------------- 9
1. '관념의 모험'으로서의 사변철학 ...27
2. 수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영원한 객체의 영역 ...51
3. 화이트헤드철학의 미학적 함축 ...71
4.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종교 ...99
5.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와 화이트헤드의 획기성 이론 ...125
6. 과정철학에서 인격적 동일성의 문제 ..159
7. 창조성과 궁극자의 범주 ...189
8. 예측명제의 합리성: 홉과 화이트헤드의 경우 ...217
9. 화이트헤드의 자연철학과 물리과학의 환원주의 ...243
10. 화이트헤드와 포스트모더니즘 ...267
참고문헌 ------------------------- 296
찾아보기 ------------------------- 303
 

화이트헤드는 그의 저술 몇 곳에서
현대 문명의 와해를 시사하고 있다.
그는 창조적이고 구성적인 사유를 외면하고
분열과 분파를 조장하는 문명은
이미 소멸기에 접어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비판과 해체의 잔해 위에서,
사변이성을 내세워 존재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화이트헤드 역시 이성 능력에 궁극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았던 점에서 존재와 타자성을 열어놓는
비합리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합리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는 비록 한계인식 하에서 이긴 하지만
존재와 이성간의 화해를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철학이 문명에 창조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문창옥,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서언 中에서
 
 
미디어 서평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 체계속에서 바라보는 관념의 모험, 수학, 철학과 종교, 미학, 자아, 궁극자의 범주, 명제, 과학철학,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논란이 되고 흥미로운 10가지 핵심주제에 대한 연구모음. 이책은 '화이트헤드와 현대'라는 큰 틀의 방향에서 헤겔, 케이르케고르, 니체, 베르그송, 하이데거, 데리다 등으로 이어지는 '시간의식의 도래와 이성중심철학의 와해'로 대표되는 현대철학의 흐름과 맥락 속에서 화이트헤드철학의 독특한 위치와 입장을 드러내 보인다.
 
화이트헤드 철학이란 20세기 반형이상학적 세기, 즉 형이상학의 불모지에서 태어난 형이상학이다. 화이트헤드 철학이란 한마디로 '우주론'이다. 우주론이란 우리의 모든 일상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포괄적인 사변의 체계이다. '우주론'이란 모든 학문의 근원이다. 개별과학의 모든 측면을 포괄하는 어떤 중심적이고도 추상적인 세계관이다. 이 우주론으로부터 모든 학문의 연역될 수도 있고 또 모든 학문으로부터 이 우주론이 귀결될 수도 있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은 매우 치밀하다. 경험의 아톰(원자)이라 불리울 수 있는 '현실적 계기'의 한 찰나 속에 가능한 우주 전체의 모습을 치밀한 논리로 담고 일는 것이다. 그 우주전체의 모습을 그는 '합생'의 과정이라고 부른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은 철저히 고정불변의 '실체'를 거부하고 과정적이고 관계론적이며 생명적이며 유기체적이다. 그의 우주는 '느낌의 우주'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언어는 모든 동양철학적 우주관.세계관.가치관에 그대로 스며들 수 있다.

김왕수 기자(책 소개) / 연합뉴스 / 20020514


2002-09-29 17:28:26
 
 
..........................................................................................
 
 
『화이트헤드 철학의 모험』
 
 

- 문창옥 -
 
 
논제 요약
 
이 책은 필자가 지난 몇 해 동안 간간이 지면이나 강의를 통해 이미 발표한 적이 있는 글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글들은 서로 내용상의 긴밀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는 어느 것을 먼저 읽는다 해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앞부분에 실린 글, 특히 제1장에서 제4장까지의 글이 그 뒤에 실린 글보다 평이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초심자라면 앞쪽의 글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 듯하다. 뒤쪽의 논의는 화이트헤드 연구자들 사이에 쟁점이 되고 있는 특정한 논제를 다루고 있어서 문제사에 대한 선이해가 어느 정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어떻든 남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각 장의 논의 주제를 개요 형식으로 요약해 보았다. 내용 접근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다.
 
 
1. ‘관념의 모험’으로서의 사변철학

이 글은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추상의 역리」(ꡔ과학과 형이상학ꡕ(오영환 편, 서울: 자유사상사, 1993)를 상당 부분 수정․보완하여 지금의 제목으로 ꡔ화이트헤드연구ꡕ 제5집(2002)에 실렸던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적 논의를 방법론적 측면에서 추적해 보았다.

화이트헤드는 철학이 인간의 사유 배후에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관념들을 끌어내어 비판적으로 검토 수정하는 가운데 문명의 활로를 열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역설하는 관념의 모험은 이 과제 수행의 포괄적인 전략적 절차이다. 이 절차는 ꡔ과정과 실재ꡕ에서 ‘일반화’와 ‘합리화’라는 두 축의 모험을 따라 진행된다. 일반화는 글자 그대로 궁극적인 일반 관념을 찾아내기 위해 일상의 경험과 특수과학의 다양한 영역의 경계를 넘어서는 상상적 도약의 작업이다. 화이트헤드는 궁극적인 일반관념들로 존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합리주의적 믿음을 바탕으로, 이런 상상적 도약의 극대화를 주장한다. 그는 이런 일반화를 통해, ‘차이의 방법’에 의한 관찰이 포착하지 못하는 경험의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요인들을 건져 올린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된 일반관념들은 화이트헤드의 사변철학에서 형이상학적 원리들로 규정된다. 이에 반해 합리화는 직접 경험의 내적 구조에 주목하면서 이들 형이상학적 제일원리들 간의 상호 연관을 찾아나가는 모험이다. 이 모험에서 일반화의 산물인 추상적 관념들은 구체적인 직접 경험의 내용들을 구제하기 위해 상호 제약의 정합적인 체계로 조직된다. 체계 속에서 일반관념들은 그 일반성을 상실하고 특수화되어 구체적인 경험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런 추상화의 완결판이 형이상학적 우주론이다. 이 우주론은 구체적인 세계의 실상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이 우주론에 의해 드러나는 실재의 실상은 창조적 사유와 문명을 억압하는 전통의 추상관념들을 비판․해체하는 준거가 된다. 결국 ꡔ과정과 실재ꡕ에서 화이트헤드가 우주론을 구축하면서 감행한 ‘관념의 모험’ 은 문명에 활기를 불어넣을 관념들을 모색하기 위해 사변적 사유가 벌이는 추상의 비판․해체․재구성의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2. 수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영원한 객체의 영역

이 글은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영원한 객체’에 관한 강의용 원고를 토대로 작성한 것인데 이 책에 처음 실린다. 필자는 이 원고를 작성하면서 특히 A. P. Lowry의 “Whitehead and the Nature of Mathematical Truth" [Process Studies Vol. 1(1971), pp.101-113]; R. M. Palter, J. R.의 “The Place of Mathematicism in Whitehead's Philosophy"(A. N. Whitehead: Essays on His Philosophy, ed. G. L. Kline, Englewood Cliffs, N. J: Prentice-Hall, Inc., 1963); 그리고 R. A. Ariel의 "A Mathematical Root of Whitehead's Cosmological Thought" [Process Studies Vol. 4(1974), pp. 107-113]을 주로 참고하였다.

흔히 수학 명제는 분석 명제로 분류된다. 수학명제는 분석 명제의 특성인 필연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분석명제는 종합명제와 달리 경험적 내용을 가지지 않는 형식적 진술이다. 이런 종류의 진술은 그 진술을 구성하는 기호의 의미에 의해 그 참과 거짓이 결정된다. 그러나 수학명제가 분석 명제라면 수학명제와 세계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수학명제는 세계의 모든 사태에 적용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수학명제가 갖고 있는 필연성과 보편성에 근거하여 이를 분석명제로 간주하는 견해가 답해야 할 물음, 그러나 그 견해를 고수하는 한 답하기 어려운 물음이다.

화이트헤드는 수학적 진리가 현실태를 이루는 과정의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가 수학적 진리를 분석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에 따르면 예컨대 2+4=6에서 2+4와 6은 단순히 동일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2+4는 결합의 형식을 가리키며 6은 결과의 형식을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명제는 우리가 현실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수학명제의 보편적 적용가능성, 즉 수학명제와 경험 세계와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그런데 과정의 형식 그 자체는 과정과 유리되어 존재할 수 있는 현실태가 아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형식적 존재, 즉 가능태이다. 임의의 과정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한 형식으로서의 존재라는 말이다. 화이트헤드는 이런 가능태로서의 형식들을 영원한 객체라 부른다. 영원한 객체들은 각기 그 나름의 개별적 본질과, 다른 영원한 객체들과의 관계를 이루는 관계적 본질을 가진다. 수학적 명제의 진위 문제는 이 관계적 본질에 기초한다. 화이트헤드는 영원한 객체가 다른 모든 영원한 객체들과 결정적인 관계 속에 있으며 이 관계가 각각의 영원한 객체를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임의의 영원한 객체는 그것이 다른 모든 영원한 객체들과 가지는 관계에서 구성되는 본성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관계는 그 영원한 객체의 본질에 속한다. 내적인 구조적 관계가 영원한 객체들의 본성에 들어 있는 셈이다. 영원한 객체들의 관계적 본질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논의는 수학적 진리가 어떻게 보편적이고 필연적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한다. 수학적 진리는 영원한 객체들 간의 관계의 영원하고 정적인 구조를 기술하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필연적이다. 수학적 진리에 의해 기술되는 관계성은 순수한 가능태로서의 영원한 객체들의 본질적 성격에 포함된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관계인 것이다.
 
3. 화이트헤드 철학의 미학적 함축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시문학지 ꡔ신생ꡕ 제8호(2000, 가을)에 실린 적이 있으며, D. W. Sherburne의 A Whiteheadian Aesthetic; Some implications of Whitehead's Metaphysical Speculation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 1961)을 기본 자료로 활용하여 작성한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형이상학적 우주론이 인간의 모든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기획하였다. 이 글은 그의 이런 기획 의도에 주목하여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배경으로, 예술과 관련된 일련의 물음들에 대한 답변을 찾고 있다. 특히 이 글은 일단 예술이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명제’를 구현한다고 가정하고, 예술철학에서 문제되는 미적인 대상, 미적인 경험, 예술적인 진리 등의 문제를 분석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이들 논점이 막연한 의미의 은유를 넘어 직접적이고 기술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우선 예술작품을 실현된, 즉 객체화된 명제로 간주할 경우, 예술작품 가운데 일부, 예컨대 희곡이나 작곡 같은 것은 공연자가 예술작품인 명제를 객체화할 때 이용할 규칙의 체계 또는 지침을 영구적인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또 그렇게 볼 경우 우리가 예술작품에서 얻는 미적 경험은 공연(작품)으로 표현된 객체화된 명제를 재창조하는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적 경험에서 객체화된 명제는 경험 주체의 ‘주체적 지향’을 유혹하여 자기 창조 과정에서, 그 명제를 재창조하도록 ‘유혹’한다. 예술작품 이외의 대상을 아름답게 경험하는 것이 미적 경험일 수 없는 것은 그것에는 재창조할 명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예술대상을 명제라 할 때 우리는 예술과 진리의 관계 문제도 설명할 수 있게 한다. 명제로서의 예술작품은 실재의 육중한 배후를 유인해 내는 경우 진리가 된다. 따라서 언어적 진리의 지평에서는 거짓인 것조차도 고도 단계에서는 미적으로 참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동일한 논리에서 추한 것도 그것이 실재에 대한 육중한 정서적 패턴을 이끌어내는 한 미적인 것일 수 있다.

4. 화이트헤드의 철학과 종교

이 글은 1999년 ‘화이트헤드의 종교철학’이라는 주제로 감리교신학대학에서 강연했던 내용을 보완 정리한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화이트헤드에게서 철학과 종교, 특히 기독교가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우리는 때때로 우리가 종교적인 순간(moment)을 갖는다는 것을 의심하기는 어렵다. 화이트헤드가 종교적 개념이나 이설을 철학적 범주에 끌어들여 해명하는 것은 이런 종교적 순간의 경험을 실마리로 삼아서였다. 그는 자신이 체계적으로 해명하려고 한 우주의 실상의 한 측면인 영속성이 종교적 경험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종교에서 이런 영속성에 대한 관념은 특정한 사회, 특정한 시대에 솟구쳐 나온, 그리고 특정한 선행자들에 의해 제약된 정서나 목적에 뒤덮여 있다. 철학은 이 요소를 합리적 일반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종교는 이렇게 합리화된 일반적 관념들을 특수한 사상, 특수한 정서, 특수한 목적으로 번역하여 구현한다. 그리고 종교는 이런 일반관념에 힘입어 개인적 관심을, 그 자멸적인 특수성 너머에로 신장시킨다는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종교의 정서적 경험은 철학의 합리적 개념에 의해 정당화되고 철학의 추상적인 일반 개념은 종교의 정서적인 경험에서 예증되는 그런 화해가 성립한다. 요컨대 철학과 종교는 각기 합리적 개념과 특수한 정서를 교환하는 가운데 상대방을 정당화해 준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체계에서 종교와 철학의 화해 현장은 창조성과 신과 영원한 객체라는 기본관념들을 뼈대로 하고 있다. 창조성은 비록 범주적으로 신과 세계의 우연성을 설명하는 궁극자이기는 하나 현실적 존재의 활동성을 통해서만 현실적인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태에 의존하는 가능태이다. 영원한 객체 역시 가능태로서 현실태에 의존한다. 규정의 형식인 순수가능태로서의 영원한 객체들은 현실태인 신에 의해 파악됨으로써 질서를 갖춘 가능태로 전환된다. 그러나 신 또한 영원한 객체에 의존한다. 신은 영원한 객체들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원초적 본성(primordial nature)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현실 세계(actual world)와 신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신은 현실 세계에 대한 그의 경험을 통해 결과적 본성(consequential nature)을 구성하고, 현실 세계는 자신의 규정자인 영원한 객체들을 신에게서 얻는다. 이런 상호규정성의 바탕은 상호 파악의 일반적 활동성, 즉 창조성이다. 물론 창조성은 이런 바탕이 됨으로써 ‘현실적’ 활동성이 된다. 결국 창조성, 신, 영원한 객체, 세계는 상관적으로 그 의미가 규정된다. 그리고 이것은 화이트헤드가 말하는 근본 관념들간의 정합성, 즉 체계의 합리성이다. 체계 초월적인 요인은 인정되지 않는다. 화이트헤드는 명시적인 전제로부터 연역하는 종래의 합리주의적 전통에서 탈피하여 명시적인 전제와 명시적인 경험의 배후에 있는 묵시적인 전제들을 드러내어 정합적으로 기술하고자 하는 가운데 초월적인 궁극자를를 거부함으로써 존재 신학적 전통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5.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와 화이트헤드의 획기성 이론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ꡔ철학연구ꡕ 제38집(1996)에 실렸던 적이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화이트헤드가 전통 실체철학의 문제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또 어떻게 극복하려했는지를 고찰하였다.

화이트헤드는 합리적 구도 속에서 ‘변화’를 다루어온 전통 철학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던 난점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속성의 논리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보고, 그의 ‘생성의 획기성 이론(epochal theory of becoming)’을 통해, ‘변화’를 전혀 다른 논리 위에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비판적 논객들은 이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철학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오해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이런 비판자들의 견해를 재차 비판한다. 이 글은 화이트헤드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규정에서 발견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내재적인 난점이 어떤 것이었겠는지를 간략히 구성적으로 고찰하고, 그가 과정철학에서 ‘획기성 이론’을 통해 모색하고 있는 실체에 관한 기술이 어떤 의미에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전통의 극복일 수 있는 것인지 검토하였다. 그리고 이런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필자는 과정철학이 실체 철학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가운데, 현대과학의 새로운 개념적 장치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이루어진 과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에 크게 힘입고 있다는 일부 논객들의 견해도 부분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과정철학은 전통 개념과 그에 수반된 논리를 해체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 구성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과정철학을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실체철학의 현대적 계승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현대적 극복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6.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 인격적 동일성의 문제

이 글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 인격적 동일성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ꡔ철학ꡕ 제53집(1997)에 실려 있고, 또 필자의 졸저 ꡔ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이해ꡕ 제6장 제3절에도 들어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과정철학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관련한 논쟁을 검토하였다.

화이트헤드는 인간과 그 밖의 자연물을 범주적으로 구별하지 않기에, ‘인격적 사회’(personal society)가 인격으로 정의되는 인간일 수 있음을 단언할 뿐, 세부적인 구성적 논의는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보완적인 구성 논의가 오늘날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판적인 논객들은 인격적 동일성에 대한 과정철학의 기술이, 실천적 문제와 연관된 담론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인식 자체에 대한 설명마저 위태롭게 한다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우선 인격을 계기들(occasions)의 사회로 기술할 경우 그로부터, 인간의 행위와 인식에 관련된 불합리한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런 기술 자체를 비판하는 귀류법적 논의는 다소간 성급한 것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나아가 이 글은 이런 비판적 시각들의 배경에 공통으로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확신, 즉 직접적인 자기 경험에 비추어볼 때 화이트헤드나 그의 연구자들이 제시하는 자아는 구체적 자아가 아니라 오히려 추상물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나 이런 확신은 기본적으로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화이트헤드가 사용하는 특정의 범주적 개념을 그의 우주론에서의 체계 내적인 지위로부터 분리시키고는, 실증적이고 직관적인 경험 내용에 비추어 그 부적절성을 지적함으로써 과정철학 전체의 시도가 수정되어야 한다고 결론하는 처사는 그 자체가 재차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7. 창조성과 궁극자의 범주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ꡔ화이트헤드연구ꡕ 창간호(1998)에 실렸던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창조성과 관련한 논란, 즉 창조성을 일원론적인 것으로 해석할 것이냐 다원론적인 것으로 해석할 것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일련의 논쟁을 고찰하였다.

화이트헤드 연구자들 가운데는 화이트헤드의 우주론 도식에서 우주의 시간적 진행성과 통일성이 일원론적 창조성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창조성을 포괄적인 실재이자 보편적인 작인으로 이해할 경우 창조성은 이들 문제에 답하는 궁극적인 설명 원리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조성이 현실적 계기나 현실 세계로 환원될 수 없는 포괄적인 실재성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우주의 진행성이나 통일성을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현실세계의 우연성을 설명한다는 의미에서만 궁극적인 설명원리로 간주될 수 있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에서 창조성 그 자체는 순수한 활동성이다. 이는 그것이 어떠한 결정성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은 우주의 진행성이나 통일성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화이트헤드의 문맥에서 우주의 이러한 특성을 현실적 계기들 사이의 외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이들 간의 내적인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조성은 현실적 계기들 간의 외적인 관계, 즉 계기(succession)나 공재(togetherness)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순순한 창조성 그 자체는 기껏해야 내적 관계를 토대로 하는 우주의 진행성과 통일성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일 수 없다. 그것이 충분조건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어 있어야 한다. 사실상 그것은 ‘궁극자의 범주’에 내속함으로써 이런 궁극적 결정성을 얻고 있다. 이 범주는 ‘다에서 일로’라는 원초적 형식에 의해 창조성을 제약함으로써 그것에 역동적 구조를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우주의 진행성과 통일성을 설명하는 것은 단순한 창조성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궁극자의 범주, 또는 적어도 ‘다를 일로 통일시키는 과정으로서의 창조성’이다.
 
8. 화이트헤드의 자연철학과 물리과학의 환원주의

이 글은 “자연과학, 자연철학, 화이트헤드”라는 제목으로 ꡔ화이트헤드연구ꡕ 제2집(1999)에 실렸던 것을 상당 부분 수정․보완한 것이다. 원래 초고는 <명지대, 서강대, 연세대 철학연구소 공동주최 ’98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화이트헤드의 자연철학에서 인식작용에 대한 탐구는 자연존재에 대한 탐구와 동류에 속한다. 감각경험은 단순히 실재에 대한 인식의 통로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이다. 실재의 궁극적 특성은 감각경험이 전달해주는 것에 앞서 감각경험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체계에서는 과거의 지적인 활동에 수반되어온 모든 인식론적 범주들이 존재론적 범주로 탈바꿈된다. 따라서 화이트헤드는 인식론 철학이 몰두했던 많은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화이트헤드를 따라갈 때 우리는 낡은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답변을 별로 듣지 못한다. 그는 이 문제들의 전제를 해체, 재구성함으로써 인류의 지적인 에네르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가려 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과격한 반전통적 반시대적 성향은 그를 철학적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그의 자연철학의 근본적인 제안들은 우리의 과학적 이성을 둘러싸고 있는 사유 습관과 개념, 방법적 절차 등과의 화해가능성, 요컨대 환원적 분석과 설명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등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리고 이런 평가는 화이트헤드가 자신의 철학을 ‘유기체 철학’이라 특징짓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유기체론자들에게 있어 유기체는 그 환경과의 내적인 상호관련에 의해 그 자신을 특화시키고 있는 존재로 간주되는 까닭에, 외적인 관계를 전제로 하는 기계적인 환원을 근본적으로 거부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화이트헤드의 자연철학과 현대의 과학을 대비시키는 것은 그의 철학에 대한 단순한 명목론적 해석의 결과이다. 화이트헤드의 자연철학에서 환원적 분석과 설명의 가능성을 문제삼으려면 존재 기술에 들어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구별에 먼저 주목해야 한다. 하나는 미시적 지평과 거시적 지평을 구별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거시적 지평 내에서 사회(society)와 비사회적 결합체(nexus)를 구별하는 일이다.

미시적 지평에서 고찰되는 현실적 계기 하나하나는 특수한 것으로, 반복되지도 존속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이들은 이 들이 구현하는 시공간 영역(region)과 생사를 같이 한다. 또 이들 하나하나는 그에 선행하는 과거의 계기들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모든 계기들과의 관계에 힘입어 ‘지금의 그것’(what it is)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이런 다른 모든 계기들과의 관계에 의해 완전히 결정되지도 않는다. 그들의 특성은 타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과거의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내적인 창조적 결단(decision)을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언제나 과거로부터의 부분적인 일탈을 구현한다. 따라서 현실적 계기들의 미시세계에는 유사성이 부분적으로 계승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이질적인 생성들(becomings)의 연속이 있을 뿐, 지속적인 동일성을 갖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지평에만 주목한다면 환원적 분석은 명백히 그 힘을 잃는다. 그러나 현실적 계기들의 미시세계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비동일성으로의 해체는 자연과학에서 문제되는 환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자연과학에서 문제되는, 부분들을 통한 전체 이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화이트헤드에게 있어 상대적 안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거시적 지평의 존재들인 ‘사회들’ 간의 문제, 일상 용어로 하자면 추상적 존재들 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는 흔히 물리과학에서 문제되는 무기물의 거시 사회를 모두 ‘존속하는 객체’, ‘입자적 사회’, ‘구조를 갖는 사회’ 등에 의해 분석될 수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상대적 동일성과 안정성을 갖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무기물의 세계는 이들에 의해, 일정한 한계 내에서, 환원적 분석이 가능하다.

결국 화이트헤드의 자연철학은 거시적 지평의 기술을 통해, 동일성과 추상성을 근간으로 하는 과학적 경험을 해명하고 미시적 지평의 기술을 통해, 이질성과 구체성을 축으로 하는 내적, 외적인 직접경험, 즉 아직 개념화되거나 이론의 의해 제약되지 않은 경험들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자연철학, 곧 우주론은 사변적 지평에서, 그러나 물리주의의 환원적 프로그램이 없는 “통일된 과학”(unified science)이라는 이상에 부응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자연철학에서 현대 과학과의 전면적인 충돌은 존재하지 않는다.
 
9. 예측명제의 합리성: 흄과 화이트헤드의 경우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ꡔ화이트헤드연구ꡕ 제3집(2000)에 실렸던 것으로, 초고는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정기발표회(2000, 12)에서 발표했던 적이 있다.

흄은 귀납이 자연의 제일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제일성 그 자체는 합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의 자연 사건에 대한 예측은 합리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화이트헤드는 상상적 일반화를 통해 우주론을 구축하고 자연의 제일성을 우리의 우주시대에 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의 우주론을 전제로 한다면 사건들이 우리의 우주시대에 발생하는 것인 한, 우리는 이들에 관한 귀납추리를 합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예측 또한 합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다. 화이트헤드의 우주론은 그 논리적 일관성과 정합성 및 적용가능성과 충분성에 의해 정당화된다. 이런 사실은 그의 우주론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단순한 심리적 근거 이상의 것이 있으며, 이에 의해 귀납과 예측의 합리성이 확보된다는 것을 함의한다. 흄이 주장하듯이 귀납과 예측이 단순히 우리의 믿음에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화이트헤드는 우주론을 구상함으로써 귀납과 예측에 관한 흄의 회의적 결론을 극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화이트헤드는 우리의 우주 시대 그 자체는 영원하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이고 우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의 체계는 우리의 우주 시대 밖에 놓인 사건들에 관한 예측은 합리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는 화이트헤드가 흄의 주장을 받아들였던 셈이다. 결국 화이트헤드는 우주론적 지평에서는 흄의 견해를 거부하는 한편 형이상학적 지평에서는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10. 화이트헤드와 포스트모더니즘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ꡔ화이트헤드연구ꡕ 제4집(2001)에 실려있다. 그리고 이 글은 필자의 선행연구 「화이트헤드의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에 부분적으로 토대를 두고 있다. 이 후자의 글은 「한국화이트헤드학회ꡕ 제5차 정기학술대회(2001, 2)에서 발표했던 것으로, ꡔ철학ꡕ 제69집(2001)에 실려있다.

화이트헤드는 전통철학의 근본 전제들을 비판하면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견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철학자들과 한편에 있다. 그는 근대의 독단적 이성에 대한 신뢰를 철저히 비판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 비판이 모든 구성에 대한 전면적 해체로 이해되는 한,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외견상 명백히 포스트모더니즘과 일정한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양자가 ‘독단’이라는 개념을 달리 이해하여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다. 일부 논자들은 이 거리에 주목하여 화이트헤드의 철학을 “구성적” 포스트모더니즘으로 특징짓는다. 이들의 논의는 부분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화이트헤드의 철학에서 이 측면에만 시선을 고정시킬 경우 그의 체계는 곧바로 반구성주의 철학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 때 화이트헤드의 철학은 근대의 극복이라기보다 근대 이념을 계승한 수정적 재구성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될 것이며, 그래서 마땅히 해체의 대상 가운데 하나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구성은 결코 근대 이념을 계승하고 있지 않으며 그런 점에서라면 해체의 대상일 수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화이트헤드는 이미 자신의 체계 속에 해체의 기제를 작동시키고 있어서 외부의 해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에서 오히려 화이트헤드는 20세기 후반의 시대 정신을 상당 부분 예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해체적 포스트모더니즘, 특히 데리다와의 비교를 통해 이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물론 화이트헤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이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또한 그래서 양자는 상이한 개념적 도구를 통해 근대를 비판․해체한다. 더욱이 화이트헤드는 구성을 시도한다. 그러나 양자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있는 최종 국면은 상당부분 접근하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현실적 존재의 자기 원인성, 즉 창조적 결단을 존재의 우연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이것은 화이트헤드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철두철미 존재론적 측면에서 실험적이고 개방적인 것으로 이끌었다. 다른 한편 그의 주장의 또 다른 측면, 즉 현실적 존재들 간의 상호 연관성은, 해체적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하는 언어적 지평에서 화이트헤드적 해체를 결과한다. 화이트헤드는 데리다와 마찬가지로 언어가 철학에 부과하는 본질적인 한계를 직시하였다. 그가 이런 언어의 한계를 확인 한 것은 존재의 상호 연관적 성격과 관련해서였다. 생성하는 존재는 타자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지금의 그것으로 생성하고 있다. 이것은 존재의 상호 연관성이다. 이런 상호 연관성 때문에 그 어떤 현실적 사태도 고도의 추상형식인 언어에 의해 온전히 표현될 수 없다. 화이트헤드가 객관적인 언어적 주장에서의 의미의 단순 정위를 비판하고 나서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이다. 그리고 존재들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화이트헤드의 이런 확신은 언어의 지평에서 데리다의 인식론적․문맥주의적 해체와 유사한 귀결을 동반하고 나타난다. 존재의 상호 연관적 본성은 언어로 하여금 결코 존재 전체를 포착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언어 표현으로 하여금 그 의미의 총체적인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화이트헤드와 데리다는 언어 그 자체의 상호 연관적 본성을 인정하고 고정된 객관적 의미를 거부한다는 데서 일치한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적인 보편적 진리로 자처하는 추상, 자신의 특수한 전망과 입각점의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철학의 오만을 같은 목소리로 비판한다. 그러나 데리다의 경우 이런 비판의 핵심에는 주로 언어의 상호 연관적이고 유동적인 본성이 있었던 반면 화이트헤드에게서는 존재의 상호 연관적 본성과 우연성이 있었다. 따라서 화이트헤드와 데리다가 공유한 포스트모던적 관심은 또한 그들의 철학적 전개를 유사한 것으로 만들고 있지만 데리다가 인식론적․언어적 시각에서 이를 정초하고 있다면 화이트헤드는 존재론적 시각에서 이를 정초하고 있다는 데서 다르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화이트헤드는 존재에 대해 초연한 사심 없는 철학적 기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가운데 모더니즘의 핵심에서 이탈하여 데리다 작업의 특징을 이루는 해체로의 길을 열고 있다. 말하자면 그의 구성은 완결된 단 하나의 보편적인 형이상학적 문맥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분명히 해체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함축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후면 표지 글

20세기 후반 이후 목소리를 높여온 해체 성향의 철학자들은 존재에 대한 자의적 이성의 폭력성을 역설하면서 이성 중심철학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을 노래한다. 이들이 말하듯 해체의 철학은 우리에게 진정 해방과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인가? 혹 비합리적 의식이 몰고 올 파괴력 앞에 우리는 또 다른 억압과 굴종을 강요당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지금의 우리로서는 이 물음에 확답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아무런 방향타 없이 이리저리 흩어지면서 유희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이트헤드는 그의 저술 몇 곳에서 현대 문명의 와해를 시사하고 있다. 그는 창조적이고 구성적인 사유를 외면하고 분열과 분파를 조장하는 문명은 이미 소멸기에 접어든 것이라고 보았다. 그가 비판과 해체의 잔해 위에서, 사변이성을 내세워 존재와의 화해를 시도하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화이트헤드 역시 이성 능력에 궁극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보았던 점에서 존재의 타자성을 열어놓는 비합리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역시 합리주의자에 가까웠다. 그는 비록 한계인식 하에서이긴 하지만 존재와 이성간의 화해를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그는 철학이 문명에 창조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문창옥,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의 모험』(서울: 통나무, 2002)

 
 2003-02-01 02:5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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