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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SBS'신의 길 인간의 길' <제4부 길위의 인간> 전문가 인터뷰 정리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8-07-29 06:59 조회(9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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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길 위의 인간 >

● 배철현교수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 부교수

하버드대학교 (Harvard University) / Ph.D.

유대-기독교, 고대근동 종교(Judaism-Christianity, Ancient Near East Religions) 전공

주요논문 : 유럽의 모체-오리엔탈리즘 다시 읽기(2001),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하나 였다(2001), Creatio Ex Nihilo?(2002), 인간은 하나님이다(Imago Dei?, 2003)

주요저서 : 타르굼 옹켈로스 창세기(2001), 유대인의 토라(2001), Comparative Studies of King Darius's Bisitun Inscription(2001)

Q1. 사탄 등의 개념들이 초기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데 맞는 사실인가?

"사탄이라는 개념이 사실, 엄청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사탄의 개념이 역사를 통해서 다 다르다. 맨 처음

에 사탄이라는 개념은 내가 생각하기엔 신들의 모임의 일원이었다고 생각한다. 구약성경에 '신들의 아

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창세기 6장에 나온다. 인간의 딸들

을 보고 예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는데 그가 용감한 장수가 되었

다. 그 사람들을 네필림이라고 그런다. 이것이 후대의 악마 개념에 중요하다. 네필림이란 말뜻은 히브리어

로 떨어진 사람들이란 뜻이다. 사탄이 신적인 존재들이다라는 것이 사실은 유일신관이지만 아주 오래된

 오리엔트 신에 대한 관념이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사탄이라는 말이 바로 고발하는 자, 하나님께 일을 잘 안하는 이를 고발하는 고발자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시험을 받은 대표적 인물 두 명이 아브라함과 욥이다.

여기서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물이 아니다. 신약성서 안에서도 사실은 사탄이라는 개념이 원래 구

약성경의 개념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사탄. 신과 대결하는 사탄의 개념은 사실은 기원전 5세기에

 조로아스터교, 페르시아제국 당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 사이에 처음으로 퍼졌을 것이

다.

우리가 아는 사탄이라는 개념은 나중에 외래적인 개념만 우리가 사탄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 예수 시대

까지 흘러내려온 그런 사탄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이 이슬람에 가서는 또 다른 의미를

 띄게 되는데 거기에서는 사탄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상당히 중요한 점인데 알라가 있는데 아담을 창조하

고 사탄이 그 당시에 신 천사한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니까 아담을 경배해라!" 이랬더니 천사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한테 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전통에서는 "그렇다면 넌 지옥에

나 떨어져라"고 해서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옥이라는 것은 '사랑할 대상이 없다'라는 뜻이고, 여기서 악마, 사탄이라는 개념은 바로 인간을 신처럼

 대접안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한테

 절할 수가 없다.' 원래는 인간을 돕기 위해서 사실 사탄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는데 거기서는 오히려 인

간한테 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서 끝소리와 상당히 연관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예수를 시험하

는 사탄이 '나한테 거꾸로 절해라'그런다. 그 전통이 사실은 고대 근동 당시의 아랍, 팔레스타인의 그런 개

념에서 있었을 것이다."

Q2. 현재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천국의 개념에 대해서...

"천국이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하는 데로 죽어서가는 장소, 또는 어떤 일정한 시간에 가는 장소로만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종교적인 용어라는 것이 사실은 인간의 언어의 한계 때문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죽은 다음에 가는 장소라는 개념자체가 사실 하나님

이 기다리는 하늘나라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장소란 개념과 하나님이 예비하신 장소가 같은 개념인지는 우리가 다시 한번 재고할 필

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다리는 장소가 인간이 생각하는 아주 아릅답고 보화가 박힌 그런

인간이 생각하는 장소로 천국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일 수가 있다. 우리가 아는 천국을 하나님이

만든 천국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성서 안에서 천국이라는 개념은 장소라기 보다는 관계다. 바

리세인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항상하는 질문이 '하늘나라 언제 오느냐? 언제 도래하고 어떤 형태로 오

느냐' 이것이 오늘날 우리한국기독교인들이 원하는 것처럼, 하늘나라가 어떤 형태고 언제 올 것인가, 그

당시 바리세인들처럼 똑같이 질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분명히 말하기를 '천국은 너희가 볼 수 있는 형태의장소가 아니다.' 라고 했다. 예수가 그건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분명히 그 천국은 너희들 가운데 있다고 했다. 너희들 가운데. 너희들이 신이 원하는 그런

관계를 맺을 때 이뤄지는 그 상태. 그게 천국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천국을 말할 때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가

 말한 천국이라는 개념은 천국은 밭에 감추어진 보화같다고 한 것이다. 상당히 역설적이다. '천국'하면 천

국이란 단어자체가 한자로도 '하늘에 있는 나라'는 잘못된 번역이다. 천국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밭에 있다는 것이다.

밭이란 개념은 뭐냐면 농부가 매일 지겹도록 보는 오늘, 바로 이 시간, 여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감추

어져있다고 그랬다. 두 번째, 은익성이 있다.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실천할

때에 그게 도구가 되어서 감추어진 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그것이 보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국을 장소의 개념, 멀리 떨어져 있는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가 계속

말하는 것은 천국은 이미 너희들 가운데에 있고, 그것이 이 밭에 바로 여기, 오늘에 있다 이것을 강조한 것

이다."

Q3. 기독교인들은 그렇다면 왜 그렇게 이해하고 있나?

"그것은 우리가 믿는 기독교가 심각하게 재고해야 될 필요가 잇는 것이다. 성서에서 말하는 천국의 의미인

지, 예수가 말하는 천국의 의미인지, 아니면 예수가 말했다고하여 해석된 신학화, 교리화된 천국인지...이

 두가지를 구별해야 된다. 우리 보통 기독교인들은 신학화되고 교리화된 천국의 개념, 특별히 중세 교회를

통해서 만들어진 어떤 면죄부를 사서 가는 장소로서의 천국 개념들이 이미 지난 2000년동안 기독교의 교

리라는 이유로 우리한테 왔기 때문에 우리는 이 두가지를 혼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21세기에 그리스도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수가 말한 천국의 개념, 성서가 말한 천국의 개념을 다

시 한번 재발견하는 르네상스를 일으켜야 된다고 생각한다."

Q4. 사탄, 천국, 지옥, 빛의 사자, 어둠의 자식들이란 용어의 정의에 대해서

"조로아스터교의 그런 기본적인 개념들이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본다. 그 개념엔 악한 신이 있다. 그런 악

한 신이라는 개념이라든가 선한 신과 악한 신이 계속 싸운다든가하는 개념이라든가 죽은 다음에 선한 일

을 하면 천국에 가고 나쁜 일을 하면 지옥에 간다는 개념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심판, 종말의 개념이라

든가, 신앙 공동체 안에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정결 의례를 들이고 한다든지 ... 조로아스터교의 야즈드

에 가보면 아예 두 개의 무덤이 있다. 하나는 시체같은 것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조장을 한다든가 개념이

고, 그래서 그곳에 나중에 이런 사람들의 부활 개념이라든가, 천국, 부활, 종말이 있고, 조로아스터교를 믿

는 사람들은 빛의 사람들, 여기는 어둠의 사람들, 거짓의 사람들. 빛의 자녀. 거짓의 자녀. 이런 모든 것들

이 조로아스터교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이런 개념의 조로아스터교가 기원전 5~3세기까지사실은 페르시아 시대 때 유대인들의 상당한 영향을 줬

을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기원전 2세기에 사해사본을 쓴다든가 여기에 영향을 줬던 것이고

이것이 초기 기독교...기원전 2세기에 소위 말하는 랍비 유대교가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다. 이것이 당연히

 예수님 시대 때도 영향을 줬고. 그래서 신약성서에서도 그런 개념들이 계속 살아서 기본 핵심사상으로 유

지되었고 후대에 이슬람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주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Q5. 기독교나 유대교의 중요한 요소들이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 대한 증거가 있는가?

"조로아스터교가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 제국의 국가 종교였다고 생각한다면 기원전 6세기에 유대인들

이 그 당시 최고의 지식인들과 왕족 귀족들이 전부 바빌론에 왔다. 거기서 죽게 됐다. 그런데 이사야서 43

장에 보면 새로운 메시아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고레스왕이다.. 고레스가 메시아. 목자라고 했

다. 그래서 고레스가 페르시아가 이전의 바로 아시아나 바빌론처럼 문명을 바로 죽이지 않았고 이 23개의

나라를 점령해서 페르시아의 정책은 문화유화정책이 되었다.

특별히 자기가 접목한 나라의 종교를 관장해 주고 심지어는 국고에서 돈을 들여서 성전을 지어준다는 것

이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522년에 고레스의 측령이 내려지게 된다. 그 측령에 의하면 '유대인들 다 돌아가

라. 국고에 의해서 예루살렘에 줘라.'라는 내용으로 기원전 515년에 예루살렘이 재건이 된다. 이게 제 2 성

전시대다

그 후로 알렉산더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의 200년 동안 알렉산더가 증당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의 은혜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에 다 썩고 자연히 200년 동안 이 사람들의 사상과 접했고 그래서

이 사람들이 페르시아 종교 때는 특별히 마즈다히즘, 조로아스터교라고 부르지 않는다.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것이 아니며 조로아스터는 예언자이므로. 이것은 마즈다이즘. 그리고 우리가 이슬람교를 마호멧교

그럼 실례다. 알라를 믿는 것이기 때문에 이슬람이라고 말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즈다이즘으로 아후라 마즈다이즘을 믿는 종교며, 이 종교가 분명히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신

기한 것은 기원전 2세기의 사해사본에 보면 갑자기 어둠의 자식들, 빛의 자식들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러

나 그 내용들이 어디에 등장하냐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인 아후라 마즈다의 경전인 아베스타에 등장

한다.

세상을 이원론으로 본 것이다. 거기에 참신, 아후라 마즈다가 있고, 악신 앙니 마니우스가 있다.

이 두신이 태초로부터 있었고 서로 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신이 이기기 위해서 이 선신을 믿는 사람,

 마즈다이즘. 또는 이 사람들을 아베스타어로 '아샤반'이라고 하는데 아샤반들이 제사를 해서 이것을 이겨

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이 특별히 정결례법, 음식법이 있고, 세상 모든 것을 두 갈래로 나눈다. 선

한 것, 악한 것. 정결한 것, 부정한 것. 이것을 가르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유대교의 음식법이다.

그 다음에 종말, 마지막 날 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종말에 신바트라고 해서 종말에 모든 사람들이 넘어가

야 될, 다리가 있다. 거기서 심판을 맡게 돼서 심판을 맡지 못하면 신바트에서 다리가 좁아져서 세상에서

나쁜 일을 한 사람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얘기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것이 쿰란 사본과 특별히 그리스도교 문헌에서도

 요한계시록이라든가 종말, 싸우는 얘기라든가 기원전 6세기부터 페르시아 종교에 등장했기 때문에 자연

히 들어가지 않았는가! 이전까지는 이런 것들이 그리스의 영향이라고 많이들 말을 하는데 직접적인 영향

이 그리스도 물론 알렉산더 이후에 등장했지만 정교한 종교시스템으로 확립되서 유대인들과 밀착하게 있

었던 것은 조로아스터교, 짜라수스트라, 아후라 마즈다이즘. 즉, 이 종교에서 나오지 않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

Q6. 이란의 조로아스터교의 제사 모습이 우리와 거의 비슷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가?

"원래 조로아스터, 마즈다이즘에서 말하는 종교란 '르따'라고 한다. 산스그리스어로 '르따'고 페르시아어

로는 '아르따'인데 이것은 라틴어로 '리투스'의례를 가리킨다. 의례라는 것은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온 우

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아샤반이 예배해서 그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게 예배다. 그것이 때때로 세

상에 아후라 마즈다의 반대가 있다는 것이다. 앙니 마니우스의 성격이 뭔지 아는가? 이것이 드라우아. 드

루지 '거짓'이라는 뜻이다.그래서 예배를 통해서 이걸 정교하게 해야했다. 아마 제사 때 그 사람들이 뭘 외

웠을 것이다. 외우기도 하고 의례를 한다. 그래서 이 텍스트가 정확하게 있다. 그리고 이것을 정확하게 외

워야 됐다. 중요한 것이 세 가지이다. 정, 심, 좋은 말. 좋은 생각. 바른 행동을 믿는 사람들이 하므로서 우

주의 질서가 깨지고 자꾸 파괴하려는 것이 앙니 마니우스. 즉, 거짓이라는 것이 파괴하기 때문에 그걸 지

키기 위해서 예배를 보는 것이다."

Q7. 좋은 행동을 해야 천국을 간다는 개념이 거기서 나왔다고 얘기할 수 있나?

"좋은 행동,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거짓말이라는 것은 우주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것이 거짓말이

다. 그래서 비문에 보면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람이 나빠서 반란을 일으킨게 아니라 다리우스 시대 때 가

오마타라는 자가 왕이라고 해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래서 처단한다. 다리우스 대왕이 '얘는 누가 그렇게

만들었냐면 거짓이 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는 거다. 아후라 마즈다의 반대되는 세력이 그렇게 만

든 셈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처단하는 것이 아후라 마즈다가 만든 완벽한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다."

Q8. 천국과 지옥이 바빌론에서 온 이후에 쓰여진 성경에는 포함이 되는 내용인가?

없다. 천국, 지옥은 신약성경에 나온다.

Q9. 우리가 유대인을 만났을 때 천국 얘기를 했다...

그것은 나중에 유다이즘에서 이야기 한다.. 구약말고 구약에 대한 탈무드, 미드라시 내용에 있다. 거기에

는 지옥이라는 개념이 있다."

Q10. 그렇다면 그러한 개념들은 바빌론에서 있을 때 다 체득한 지식에 의해서 된 것인가?

"그렇다고 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원론이라든가 지옥이라든가, 해리라든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루살

렘 옆에 송장을 버리던 장소가 게헷나라고 있다. 그것은 그냥 시체를 버리던 장소지, 지옥이라는 개념자체

가 사실은 구약성경에 있다고 하면 그건 잘못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 작은교회 전도목사

『아레오바고에서 들려오는 저소리』,

『울타리를 넘어서: 대승기독교인의 삶과 노래』, 『이름없는 하느님』외 다수

Q1. 자신의 책<이름없는 하느님>에서 유일신론은 종교 다원주의를 지지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존립 기반을 흔드는 건 아닌지? 그리고 우리가 구약에 나오는 신화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것인지?

"사실 책 제목이, 우선 대단히 논쟁적인데 본래 내 책 제목<이름없는 하느님>은 질문하신 그대로 철저 유

일신 신앙과 종교 다원론이란 제목이었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이름없는 하나님으로 냈는데 전자의 책 제

목은 사실은 20세기 후반에 예일대학교에 저명한 '라논 리버'라는 윤리학자의 동생인 '리차드 리버'라는

분이 쓴 책으로 철저 유일신 신앙과 서구 문화라는 작지만 대단히 내용이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책의

 논지는 서양 기독교 2000년 서구 문명사가 기독교가 이제 주도하면서 사실은 유일신 신앙을 자기들은 갖

는다고 말했지만 문화사적으로 추적해보면 유일신이 아니라 일신교였다.

유일신 신앙을 말로만 하고, 사실은 유일신 신앙을 배신의 역사였다는 것을 논증하는 책이었다. 그것을 미

국 유학시절, 감동적으로 읽고 썼다. 책의 논지는 진정하면서 철저한 유일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문명신이거나 종교의 경전에 독점된 신이거나 민족 특수 종교의 예속된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모든 천지만물과 전자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 주로써, 좀 철학적으로 말하면 진리, 자체이니까

역사적으로 출현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다 위대하지만 진리 그 자체이신 유일신 하나님과 비교할 때는

유일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한 역사적 형태들이고 또 불가식으로 표현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깨달을 때 종교간의 독선과 독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그런 논지이다.

기독교가 정말 성숙하면 우리는 기독교는 유일신적인 하나님, 철저한 유일신적인 하나님을 증언하는 구체

적 역사적 종교로서 제약과 언어와 경정과 인간의 경험과 기후, 지질, 풍토와 종교 의례의 상징체계에 한

정된 그러한 증언자들이다.

그렇지 않고 우리 기독교 안에만 유일신을 독점하고 있다하면, 기독교는 대단히 자랑스러운지 몰라도 유

일신 신이 한 종교 안에 유폐되는 오류를 범하죠. 그렇기 때문에 유일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을 그런 식으

로 이해를 하면, 일신교가 된다는 것이다 일신교는 여러신들이 있는데 그 중에 최고신. 가장 정점에 있는

 신이다라고 하는 이런 신관과 똑같은 것이 되어버려서 실질적으로는 서구의 유일신 신앙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지배 종교, 타문화, 타종교를 정복하고 억압하는 그런 기재로서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 기독교 종교 자체가 우상종교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가장 우상을 경계하라고 가르침을 받은 기독

교가 정작 자신의 종교를 절대자의 자리에 놓고 마니까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기독교는 위대한

종교다. 불교도 위대한 종교고. 불교도 위대한 종교고 이슬람도 위대한 종교지만, 이것은 함석한 옹이 말

한 유명한 말인데. '진리는 역사적 종교보다 더 위대하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유일신 신앙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기독교로 하여금, 기독교가 구약과 신약을 위대한 예언자

들과 예수 그리스도와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을 통해서 천명된 그리스도교의 가장 귀중한 유산, 유일

신 신앙을 바르게 알란 말이다.

바르게 알 때, 겸손하면서도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지, 지금처럼 기독교만

이 유일신 신앙을 신앙하는 절대적 종교라고 할 때는 모든 다른 종교는 기독교보다 열등한 더 나아가서 극

복되고, 정복되어야할 그런 대상으로 비춰지게 된다.

그래서 지구 위에는 평화와 생명을 위해서 범해야할 종교들이 분쟁과, 우열다툼의 결과를 낳고 마는 것이

거든요. 그래서 유일신 신앙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이 큰 목적이고 그 핵심의 요지는 유일신 신앙, 혹은

유일신이라고 우리가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나 종교나 제도나 철학이나 어떤 문화형태로도 담아낼 수

 없는 지고한 존재임으로 그 앞에서 겸허하게 함께 진리를 추구하고 선을 찾아가는 이웃, 길벗 종교로 타

 종교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이 열리게 된다는 그런 얘기이다."

Q2. 지금 많은 기독교인 중이 예수님을 위해 목숨 마치고, 복음 전파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굉장히 허무한 얘기일 수 있지 않나? 한국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무너뜨리는 그런 주장아니냐는 이런 주장도 있을텐데?

"그런 말도 있다. 그러나 쉽게 말해서 나와 같은 유일신으로 이해하면 기독교가 곧 유일신을 독점하고 있

고, 본질의 것이 아니고 구별해야한다는 나의 논지를 듣는 기독교인들은 굉장히 분노하고, 반항하고, 절망

하고 그것을 인정하면 기독교의 자기 기반이 무너지지 않느냐는 그런 발상자체가 그동안 기독교가 잘못되

어왔다는 증거이다.

진리를 여러 다른 종교가 함께 증언한다고 하면 배가 아플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가지고 내가 체험한 기

독교 진리는 여전히 나에게나 이웃에게 유효하고 좋은 성경론적 표현으로 말하면 생명의 떡과 생수일 수

있다.

그것을 내가 체험한 그리스도교 안에서의 진리는 이렇게 훌륭하고 좋은 것이다라고 계속 증언해야할 영광

과 열심을 누그러뜨릴 필요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종교를 통해서 경험한 그들이 유일신이란 표현을 안쓰는 종교가 많다. 그러나 이슬람교나 우

리 천도교나, 다른 종교들도 표현만 다를 뿐이지 그런 유일신에 해당하는 진리 자체에 대한 경험과 표현이

 많이 있으니까 그런 것을 증언하고 귀함으로써 그들의 문화와 문화와 사회와 도덕과 예술을 창출하면서

지금까지 지구촌 문화를 이뤄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만약 진리가 다른 곳에서도 증언될 수 있다하면 내 종교의 지반이 흔들리고 선교의 열정이 떨어질 것이라

는 것은 대단히 독선적, 독단적 이론과 교리로 세뇌된 사람이라면 그런지 몰라도 오늘날 우리시대에는 열

린 사람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내 이웃종교에서 체험한 유일신 신앙의 맛과 멋은

무엇인가? 그것에 비해서 그리스도교는 높은 유일신 신앙체험을 한 경험과 진리와 윤리와 영성이 있다.

그걸 또 증언하므로서 점점 더 풍요로운 그런 인류정신문화를 형성해 가야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Q3. 성경에는 분명히. 우상을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든지 그러면 예수님께 나를 말미 않고 하늘나라에 갈 자 없다 이런 말은 그러면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우선 구약성경이라는 것이 쓰여지고 편찬된 것이 어느 날, 하루아침에 떨어진 그런 하늘에서 만들어진 절

대적 경전이 아니고 진리를 체험한 시각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첨한 한 이스라엘 신앙 공동

체들의 신앙 고백적 기록이다.

그것이 율법으로 역사적 진술로 종교 시편, 문학연서로 이런데로 통편됐지만,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민

족 자체의 종교사 속에 이런 높은 유일신론적인 그런 신앙이 성숙되어가고 순화, 정화되어가는 그런 역사

적 과정을 인정해야한다.

구약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구약이 아니다. 적어도 예수그리스도의 출현까지는 아브라함의 부름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의 보통 역사적으로는 함무라비 법전시대, 한 2000년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용광로 속

에 정금이 수천도의 열을 받으면서 점점 순금으로 정화되어 가듯이 정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까 나외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이런 구약의 계명은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야하는데 이들

이 가난을 정복했다는 과정 고에 있었던 기존 다종교 문화의 하급 종교들을 극복하라고 하는 그런 명령과

 동시에 더 근본적인 것은 예수도 마찬가지인데 그때 그 말씀을 이스라엘과 구약사람들만 특별히 편애해

서 주는 절대자의 종교라면 오늘 우리 지구촌 시대에 우스운 것이다.

인간은 사실 알고 보면 우상종교나 참종교나를 둘을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행하는 그런 삶을 살게 마련이

다. 그것은 형식적으로 특정 종교에 귀하하고 있다고 해서 진리종교이고 그런 보장이 없다.

내가 기독교에 몸담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나는 우상종교를 믿고 있는 그런 삶과 생활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 한국기독교의 지탄도 그런 것이다.

기독교 진리 자체가 문제가 있어서 오늘날 지탄을 받나? 그렇지않다. 그에 귀하는 기독교 인들이 제대로

기독교 진리를 몸으로 삶으로 신앙으로 고백하고 실천하지 않으니까 그런 것처럼 예수말씀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앞뒤 문맥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속에서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올자가 없다...내가 기류고 생명

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를 완전히 거두절미해버리고 그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교리적 문구로 탈바꿈

시켜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그 말을 듣던 당시 유대인들은 세계 여러곳에 불교가 있는지도 모르고, 공자,

맹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지중해의 유대의 조그만한 사회 속에서 혹새 무민하는 엉터리 사이비 메시아들이

 창관할 때 진리의 기를 따르라하는 뜻으로 그 말씀을 했지 오늘날. 그래서 모든 종교는 엉터리다...나만을

 믿으라는 이런 기독교 교리 변증의 구절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그 지도자들이 문제다.

그래서 오늘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 중에 상당한 사람들의 근본 혼란이 어디서 나오냐면 성경을

 절대 완전 무결한 금과 옥조의 교리서로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것을 절대적인 신앙이라고 생

각하고 시간과 공간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 보편타당한 율법적 경률로서 절대화 하기 때문에 다른 것

이 안 보인다."

Q4. 성령충만. 은혜를 목적으로 시골의 어르신들이 교회에 다니기도 하는데 이런 것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그런건 험할 것이 없다. 정말 소박한 시골에서 은혜를 받았던 성령 충만의 예수를 독실하게 믿는 할머니

들은 오늘날 이런 소위 타종교를 펌해하거나 타종교를 공격하거나 그런 생각은 없어다. 그들은 그런 은혜

를 받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으로 변한다.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은 보면 불쌍히 여기고 물질적, 정신적으로나 힘 닿는데로 도와주려고 하는 사랑의

화신재로 새로운 생명의 사람을 바꾸려는 것이 자기 종교를 절대적으로 소화하려는 교리, 수호, 근위병으

로 바뀌어지지 않는다.

도리어, 일반평신도들은 순수한 의미에서 은혜를 받고 성경을 읽고 새 새람이 되고 그래서 그 기쁨과 환희

를 삶 속에서 봉사로 사랑으로 증언하는 그 일은 계속 될 것이다.

문제는 도리어 잘못된 신학적, 교리적 속된 말로 먹물든 지도자들, 내지 지식인이라고 자칭하는 기독교 신

앙은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다. 이건 영적 생명의 변화를 거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이기심이랄

지, 자기중심적 그런 탐심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명의 창으로 눈이 열려서 단순하게 표현하나마 위로는 하

나님을 경회하고 수평적으로는 인간적인 것과 인간다운 사회를 이뤄나가자는 종교다.

예수의 계명의 요약속에서도 잘 압축되어있다. 그 본질은 어디 내평개치고 엉뚱한 다른 종교를 험담하고

비방하고 공격하고 그런 것이 마치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기독교를 선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다. 그래서 나온 결론은 종교분쟁, 문명의 충돌 밖에 없다."

Q5. 왜 그렇게 우리나라 교계가 독단, 절대적 종교성이 보편화 되었을까. 수요공급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근본적으로 초기 한국 개신교는 역사가 짧아서 초기 선교사들이 한국 기독교의

지도자들의 신학적 수준을 아주 낮게 잡았어요. 그렇게 문서로 나왔있다. 일반 우중들 보다는 높지만 선교

사가 자기들보다 훨씬 낮은 단계에서 한국기독교 교회 지도자들을 교육시켰고 이것은 문서로 정책으로 나

와 있다.

초기 대부분의 한국에 들어온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교사님들이 훌륭한 선교사들은 의료봉사 등...교리를

 전해주려고 오신 분들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비참할 당시, 질병, 가난, 빈곤, 무지를 극복하려는 그리스

도의 사랑의 종교를 가지고 와서 헌신해서 살았다.

거기에 충격과 감동을 받아서 초대 기독교 신자들이 많이 나왔지 교리를 믿고 나온 게 아니다. 교리적 기

독교는 제 2대 선교사들로부터 마치 무지 몽매한 제 3세계의 후견인들이 된 것처럼 이런 오만 불손한 자세

를 가지고 한국기독교를 자기들의 하수인격으로 길러온 때에 문제가 있었고 그리고 지금까진 개화기 때

큰 역할을 해서 성장한 한국기독교가 지금까지 말한 기독교 안에 참 생명의 길이 있다는 열정으로 많은 성

장을 이루었고. 그러나 그것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한국에도 다양한 다른 종교가 건재하니까 그 이상 기독교가 기존의 선교신학으로는 선교가 국내

에서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을 절감한 것은 사실이고. 그래서 그 에너지를 밖으로 분출하려고 하는 그런 동

기도 없지 않아 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세계전체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순수한 선교동기도 있겠지만.

타종교에 대해서 너무나 몰른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전반적인 큰 전제가 타 종교는 우상종교고, 비진리종

교고 기독교에 의해서 대체되어야 하고 극복되어야 하고 정복되어야 한다라는 암묵적인 대 전제를 갖고

있으니까 이번 탈레반 사건과 같은 문제가 나는 것이다."

Q6. 본인이 직접 쓴 책에 보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은 한글번역상 똑같이 기술되

어있지만 히브리어 원문에는 다르게 기술되어있다, 이게 어떤 구약의 역사성을 예로 들었는데 어떻게 구체적으로 다른가?

"지금으로부터 한 30년전의 개혁성경은 전부 여호아로 구약신 이름이 표현되어 있었다. 야회라고 하는 이

표기는 최근 한 20년전부터 히브리어에 가깝에 표현을 하게 되는데서 그런 발음적 신명이 출현하게 됐고

여호와나 야훼보다 더 앞선 말한 아브라함, 이삭, 야곱시대..족장시대에는 우리나라 시골에서 임금님이나

농부나 나무꾼이나 어려운 일, 개울건너가다 푹 넘어지면 '하나님, 하나님 맙소사' 하지 않는가? 그처럼

그들의 문화 속에서 L 하나님이라고 불렸다.

로힘, 베델. 임마누엘. 이란 말이 하나님이란 뜻이었다. 신명자체가 구약성경 그 안에서조차, 엘, 엘로힘,

 야회 ...등 다양한 그런 표현과 표기법이 있어왔단 말이다. 그러므로 겉에 나타난 표현. 막말로 우리는 야

회라는 이름의 신을 섬기지 무슬림들이 믿는 알라하고는 이름이 다르니까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일

은 단순 사고를 하는 것에서 빨리 해방을 시켜야 된다.

이슬람 문화권에 가서는 알라라는 말이 한국의 하나님이란 말이랑 똑같다. 우리사람들이 하나님. 그러듯

이 그들은 알라라고 그랬고. 구약식의 사람은 엘. 엘로힘. 야회라고 했고. 독일 사람들은 꼬트라고. 미국사

람들은 갓이라고 그랬지요.

인간은 문화적 유패성과 한계성 속에 너무나 쉽게 제한당하는 어리석은 존재다. 내가 가지고 있는 표기법,

 표현방법. 문화적...자기의 편의성과 다른 용어나 다른 패러다임이 나오면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고 위협

을 느끼고 요새 말하는 차이를 도리어 나와 다르기 때문에 다름에서 오는 배울 것이 많다는 축복의 계기로

삼지 않고 다름은 나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혼돈시키는 적이다..이런 사고가 근대적 사유의 특징이라고 한

다.

그것이 전통적 기독교의 특징이란 말이다. 그러니까 야회라고 교회에서는 배우는데 저쪽은 다른 신의 이

름을 부르니까 그건 우상종교다라고 하는 이건 단순논법이다.

한국 기독교에는 복잡한 깊은 사고를 해서 그런게 아니다. 말씀하신 나 외의 다른 신은 네게 섬기지 말라

는 것은, 구약에서 보니까. 야회 혹은 여호아라는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이슬람에선 알라라고 부른다...이건 신이 다르다고 생각한단 말이다. 그러나 이슬람 종교인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이야 말로 진정한 유일신 신앙을 갖고 있다고 본다.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론적 신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자기들 눈에 보면 조금 덜 순수하다고

 볼 정도로 정말 철저한 모스크라는 이슬람의 교회에 가보면 아무 장식물도 없어요. 촛대도 없고 십자가도

 없고 신상도, 불상도 그런것 아무것도 없다.

절대 순수한 절대 유일신을 오히려 섬기는 종교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이해를 그렇게 좁은 마음으

로 하니까 위대한 유일신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종교들끼리 서로 가장 파괴적인 문명충돌과 종교를

빙자한 정치적 충돌을 인간이 훨씬 더 깨우쳐야하고 성숙해야한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Q7. 조로아스터교가 유대교와 기독교에 끼친 영향...

"조로아스터교는 악이 발호해도 악은 선 그 자체를 상대할 만한 것이 못된다라고 보는

긍정의 종교였다. 그러나, 자기는 절대적인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데 굉장한 고통과 박해와

죽음을 겪기 때문에 그런 이세상은 하나님에 버금가는 사탄적인 어떤 힘이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이원론적인 조로아스터교적 영향이 후기 유대교와 기독교시대까지 들어왔다.

예수말씀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앞뒤 문맥 거두절미해버리고 그 성경 말씀을 절대적인

교리적 문구로 탈바꿈 시켜 버리는데 문제가 있다.

철저한 유일신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문명신이거나 종교의 경전에 독점된 신이거나

민족 특수 종교의 예속된 그런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Q8. 동학과 기독교 예수님과 비교한 얘기가 있다.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것은 내가 한국종교사를 이제 통해볼 때 동학 내지 천도교는 한국인의 본래의 종교적 심성에 가장 결정

체와 같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종교적 표현이었고 그때가 마치 외세의 침입과 국권의 문란, 절망 속에서

여러 가지 종교적 구조의 내적인 것이 기독교와 유사한 점이 참 많다.

제일 중요한 것이 동양종교 일반은 내 속에 이미 와 있는 불성, 인성, 천성을 개발해서 발전해서 성인의 경

지에, 깨달음.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것이 동양적 일반적 특징이다.

그러나 기독교도 하나님의 형상이 이 속에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자가발전적으로 수양과 교양을 통해서

꽃이 피는 면 못지않게 위로부터 성령이 이것을 일깨우고 꽃이 피게 하고 성장하게한다는 그런 요소가 강

하단 말이다. 그것을 종교학적으로는 강신체험 신앙이라고 부르는데 그런 것이 기독교의 사회윤리적 동기

하고도 굉장히 통한다. 그래서 나는 동학이 앞으로도 생태환경 윤리의 진흥과 발전을 위해서 많이 발전하

리라고 보고 난 사회윤리면과 기독교가 많이 흡수를 하니까 기독교 교세에 밀린다고 보는 것에 솔직한 평

이지만, 하여튼 동학 천도교는 한국의 제례종교 중에서 기독교와 가깝다고 나는 보는 사람이다."

Q9.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은 마음이 누구를 믿게 되면 끊임없이 계속 고민하고 해야 되는 그런 문제도 남아있지 않은가?

"끊임없이 자기의 허물을 벗어야지. 어린 아기, 다섯 살 먹을 때, 열 살 먹을 때. 스무살 먹을 때 각각 세계

를 보는 눈과 그가 여성과 남성을 보는 눈이 바꿔져야지.바꿔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열 살 때 가지고 있던

어린 장난감을 계속해서 갖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듯,

유일신 신앙 자체를 바꾸란 말이 아니라 유일신 신앙에 대한 이해의 성숙도가 성숙해가고 끊임없이 탈바

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란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은 상당한 창조적 용기와 진리에 대한 갈증과 모험을 동반하는 것이다.그러니까 한편

으론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안전한 자기가 만들어놓은 신관이 흔들릴까봐 그것이 흔들리면 불안해하

는 본능이 있다.

그것이 문제다. 그런 고정된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매시대마다 새로운 시대의 사상과 종교를 가르치는 사람

을 잡아인다. 그리스에는 소크라테스를 죽였고 종교개혁 때는 루터를 파문시켰고 우리시대는 최수훈을 죽

였고 한국에 불교가 들어올 때는 이차돈의 순교가 그렇고 이건 기존의 틀에 박힌 진리, 그것을 이해하는

패러다임이 보다 높게 승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횡포다. 그건 정신과학뿐 아니라 자연

과학도 똑같이 자연과학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진리를 잇는 그대로의 자연진리를 연구하는 연구집단이지

만 아시는 데로 양자역학 물리학 이론이 최초에 나올 때 아인슈타인이 젊은 시절에 기존에 뉴턴적 물리학

의 노벨수상자 대가들은 그 젊은 양자물리학의 천재들을 아주 욕하고 과학 써클에서 파문시키고 쫓아내려

고 했다. 왜? 자기들의 기존의 고전적 물리학의 패러다임 갖고는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그걸 받아드리면

자기들이 갖고 있던 물리 현상의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 같은 위기를 느꼈다. 똑같은 것이다.

사회과학세계나 자연과학세계나 정신과학세계나 종교는 그것이 더 심하다. 이유는 종교란 자기의 전실증

을 내던지는 악세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말씀하신대로 재산도, 생명도 받들 수 있는 뜨

거운 열정이 동반되는 거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모델, 패러다임이 바꿔지거나 승화되는 용기는 훨씬 더 큰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전 지구 문명사로 보면 크게 종교도 털갈이를 해야할 땐데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다.

잘보면 사무엘 헌딩턴이 말한 것처럼, 문명 간의 충돌이 일어날 수 있고 그 문명간의 충돌의 핵 속에는 종

교의 충돌이 있을 수 있단 말이다. 근데 붓다나 마호메트나 공자나 예수님같은 분들은 그런 좁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아니다."

Q10. 한국 개신교가 나아가야할 방향...

"역사적으로 출현한 모든 역사적 종교들은 다 위대하지만 진리 그 자체이신 유일신하나님과 비교할

때는 유일신 하나님을 증언하는 한 역사적 형태들이고 또 불가식으로 표현하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이라는 것을 알고서 깨달을 때 종교 간의 독선과 독단을 극복할 수 있다."

 킴볼 박사 (웨이크포리스트 대학 종교학 교수)

침례교 목사, 하버드대 비교종교학 박사

『종교가 사악해질 때 』의 저자

" 성경은 당신에게 하지도 않은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자를 경계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Q1. <종교가 사악해질 때>란 당신의 책에서 당신이 말한 다섯 개의 경고란 무엇을 의미하

나?

"우리는 지난 수세기 동안 여러 종교들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면, 우리는

공통적인 몇 가지 패턴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즉, 매우 지적이고, 신실한, 종교적인 사람들이 결국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매우 끔찍한 일들

을 자행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의 가르침과 정확히 반대되는 일들을 자행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 책의 전제는 그러니까, 우리는 911테러 사건 이후에 우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전세

계적인 차원의 대혼란을 야기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세기 동안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한편으로는 좋은 것으로 볼 수

도 있지만 나쁜 이러한 행동들은 소수의 사람들이 전 세계를 망칠 수 있는 요즈음 같은 상

황에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런 전제로 나는 우리의 종교가 안 좋게 변화하기 시작하는

몇 가지 사인들에 대해 보다 잘 알아차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즉, 선한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 말이다.

이러한 경고 신호를 다섯 개로 정의하였다. 첫 번째 신호는 소위 내가 말하길, 절대적인 진

실 주장 (Absolute truth claim)을 말한다. 이것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나는 절대적인 진실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

는 것은, 절대적인 진실이라는 것은 신에게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

이다. 우리는 인간이다. 우리 모두는 실수를 한다. 아무도 신의 마음을 갖지 않고 있으며,

어느 누구도 전 세계, 우주를 신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

따라서 신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라고 말

처럼 절대적인 말을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신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약 당신이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관계에서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항상 조금씩 조심해야 하며, 우리가 인간이며, 우리들 중 누구도 완벽하지 않

으며,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이 진실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절대주의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

특히, 이 절대주의가 다른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과 관계가 있을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이야기하는 경고 신호이다.

두 번째 신호는 맹목적인 복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모든 건강한 종교는 사람들로

인해 질문을 하도록 북돋아준다고 주장한다. 기존에 있던 사상에 대해 도전을 하도록 북돋

아준다. 언제든 당신이 종교적 시스템에 놓여 있을 때, 너무나 많은 권력이 아주 소수의 사

람에게 주어지고, 단 한명의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가 있는 경우, 맹목적인 복종의 위험에

처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사람은 아무런 실수를 하지 않고 아무런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

는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며, 그들이 무엇을 말하던 간에 그를 추종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

작한다. 어떤 종교든, 당신에게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냥 내가 하는 데

로만 행하면 된다고 말한다면, 그 종교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건강한 종교라면

당신은 항상 질문을 해야 하며, 새로운 방법으로 노력하고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맹목적인 복종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 번째 신호는 내가 이상적인 시간의 수행이라고 일컫는 것으로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어떤 종교든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가정이 있다. 생각해보면 말이 된다. 애초에 우리가 무지

하지 않다면 부처가 우리에게 와서 깨달음을 줄 필요가 없다. 우리가 죄가 많지 않다면, 예

수가 우리에게 와서 원죄로부터 우리를 구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인간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하는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가 이상적인 시간을 추구할 때, 우리가 천국, 구원자가 다시 온

다거나, 부처가 마지막으로 출현을 한다거나, 하기 전에 모든 종교는 어떤 인물이 다시 온

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가 다시 오거나, 메시아라던가 말이다. 이들이 와서 우리를 새로운

시대로 이끌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든 종교에서 이러한 천국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우리 앞에 곧 열린다고 사람들이

믿을 경우, 그들은 무엇이든 하려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을 돕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동에서도 극단적인 유대교 정통파들은 조만간 메시아가 나

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의 바위 돔 밑으로 터널을 뚫고, 그 돔을 폭발시키려다

수 없이 많이 잡혔다. 왜냐하면 그들은 메시아가 와서 예루살렘의 새로운 신전을 세울 수

있도록 자리를 정리해 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많은 원리주의 기독교인들이 예

수가 조만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

킨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신

이 없이는 신께서 일을 할 수 없다고 믿기 시작하고, 이러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학

대와 연관이 된다면 우리는 사람들이 선을 넘어 , 자신이 지상에 신의 왕국을 실현하고 있

다고 생각하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개 이상의 종교에서

이러한 패턴을 보아왔다. 네 번째 경고 신호는 내가 생각하기에, 방법을 정당화하는 데 있

는 여러 가지 것들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모든 종교에서 당신은 매우 중요

시 여겨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경고 신호는, 성전의 선언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주장하는 바로는, 우리는 지금

까지 역사를 거슬러 봤을 때, 신의 이름으로 일어난 수없이 많은 전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신께서 우리가 이렇게 하기를 원하셨다는 듯 행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우리는 이제는 충분히 깨달아야 할 때이다. 역사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신이 자신들 곁에

있기를 원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이 일어날 때 마다, 양측 모두는 항상 이것이 바로 신

이 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한 두 차례 그것을 증명했다.

종교는 전쟁을 지지하거나, 중요한 목표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은 우리도 알다시피 많

은 전쟁을 일으키곤 했는데, 그럴 때 마다 종교가 끼어들어 양측이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게

되었다. 따라서 누군가 “성전”을 주장하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바로 문제의 신호이다.

그럴 때는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전쟁은 분명히 “성전”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Q2.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가? 당신이 말하는 다섯가지 경고 중에서 몇 개 정도가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나?

"개인적인 종교나, 교회 지도자, 여러 종교의 지도자에 적용하는 것보다 이 다섯 가지 신호

를 미국에 적용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종교가 아니고 혹은 어떤 특정종교를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국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종교적 자유가 있는 곳이며, 미국 내에는 모든 종류의 종교들이 존재

하고 있다. 물론 확실히 미국인들 중에서 상당수가 기독교인이긴 하다. 아니면 스스로를 기

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러한 경고 신호들을 우리는 많은 교

회에서 볼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교회내의 여러 생각들과, 심지어 여러 정책들과 어

울린다. 때때로 미국 정부는 이러한 경고신호들을 수용하거나, 승인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장 큰 문제는 교회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데, 그들은 내게 당신은 아마도 이슬람 계에 있는 일부 원리주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이곳에 있는 나의 교회에서도 일어난다.

어떤 사람들은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절대적 진실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항상 우리가 전쟁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의 가치를 지키고

우리가진실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라면서 말이다.

따라서 나는 내 책에 쓰여있는 많은 것들이 미국내에서도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

한다. 물론 한국에도 내 책이 번역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여러 가지 부분에 이 경고 신

호들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방식에 대해 특

히 우려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종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심지어 미국의 정책적 결정에도 이런 것들이 많은 위험한 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

Q3. 이곳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이라크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독교가 이라크 전

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당신은 미국이 종교에 있어서 완전히 만장일치적인 견해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는 없을 것이다. 1991년에 이라크 전이 발발했다. 미국내의 대다수 교회, 주류 교회의 거의

전부, 그러니까,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카톨릭등, 주요 교회의 지도자들, 1991년 전쟁에

반대했었다.

2003년에 이라크 전에는 전과는 다른 반응이 있었다. 여전히 이라크 전에 대한 반대가 많

이 있지만, 911테러 이후에 이라크 전에 대한 지지여론이 더 높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설득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에 나왔던 대량살상무기

가 이라크에 있다던가, 사담후세인은 미국에 대한 주적이다 라는 말과, 세계 무역 센터가

무너지는 이미지들, 그런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 내의 복음주의 교회와 원리주의 교회가 점점 더 그러는 경향

이 있다. 그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항상 이런 전쟁 노력을 지지해왔다.

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미국이 뭔가 성스러운 임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종교의 자유를 수호하고, 자유를 수호하고, 정치적 자유를 수

호를 하는 역할에 있어서 말이다. TV를 보건 책을 읽건, 종교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다 보수적이고 원리적인 기독교인들로 이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특

히 지난 20-30년 동안 말이다.

예를 들면, 팻 로버트슨, 제리 퍼웰 등은 이런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다. 제리 퍼웰

은 2007년에 사망했다. 그들은 매우 빨리 미국 정부의 정책이었던 전쟁을 지지했다.

나머지 교회들은 매우 미온적이었다."

Q4. 원리주의 기독교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무슬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나는 그런 질문을 많이 들어왔다. 내가 복음주의 전통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침례교인이

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복음주의파와, 원리주의교인들이 이슬람에 대해 매우 무지하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도 이슬람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이슬람 종교를 매우 위험하고,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우 이런 상황은 사실인데 이들은 자신

의 견해를 TV를 통해 형성한다. 뉴스는 가장 극적이고 가장 센세이셔널 한 것을 다루는 경

향이 있다. 따라서 자연히 다소 과장을 해서 보도를 한다. 따라서 언론에서는 이슬람과 관

련해 가장 극적이고 폭력적인 것들을 보도한다. 이건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으

로, 서방세계의 기독교계 내에서 이슬람에 대해 깊은 편견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

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이유는 기독교가 미약한 유대교에서 시작된 이래 어떤 종교도 기독

교를 위협하지 못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신화, 아프리카의 토속 종교, 인디언의 종교등 말이

다. 사람들은 불교, 힌두교, 유교, 도교, 일본의 신교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을지 모른

다. 사람들은 이런 종교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신자가

된다거나, 하는 위협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슬람은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며, 7세기경 아라비아 반도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다. 스페인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100년도 안되는 기간에 확대되었

다. 기독교인의 뿌리 깊은 의식속에는 이슬람에 대한 경계가 존재하고 있다.

서방세계에서 이슬람은 위협이라는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다. 군사적인위협, 종교적인 위협

의 이미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종교적으로 매우 성공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 역사적로 봤을 때 십자가 전쟁이라던가, 스페인

침공, 무슬림들을 스페인에서 몰아내고, 유대교와 무슬림들을 강제 개종시킨 것이라는 것을

봤을 때 기독교는 이슬람과 오랫동안 긴장감에 놓여 있었다.

내 주장은 많은 기독교인들, 특히 복음주의파와 원리주의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은 다른 범

주에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위협이다. 거기에는 한 두가지의 요인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이슬람은 7세기 경에 떠올랐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말이다.

이슬람은 많은 기독교인들의 눈에는 기독교 이후의 종교이다. 무슬림이라면 알다시피 무슬

림들은 이슬람은 진정한 유일한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견해에 따르

면 이슬람은 7세기경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면 그 다음에는 왜 예수 다

음에 그런 종교가 생겨나게 되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환

생이며, 그런 예수는 세상의 원죄 때문에 죽었기에 , 그 이후에 다른 예언자가 있을 이유

가 없으니 자동적으로 그런 종교는 잘못된 종교가 된다. 이렇듯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자리잡게 되었다."

Q5. 유럽이나 미국에 보면 복음주의는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된 특

별한 이유가 있나?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부는 역사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자유와 개척자의

정신과, 마음, 밖으로 나가 땅을 정복하고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미국에서의 17세기 18세

기의 대단한 신앙부흥운동 같은 것들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회들 심지어, 감리교회처럼 복음주의파가 아니라하더라도, 감리교회는 복음주의가

아니지만 그 뿌리는 복음주의적 전통을 갖고 있다.

존 웨슬리, 조지 위트필드같은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이곳에 와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미

국에서 말이다. 따라서 역사와 관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의 독립과, 종교의 자유는 관계가

있다. 정치와 종교의 분리는 미국내 매우 중요한 원리이기는 하지만 유럽만큼 역동적인 것

을 이곳에서는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는 스웨덴과 독일, 영국에서도 국가 교회(state

churches)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러 가지 다양한 콤비네이션을 볼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항상 독립적인 정신이 있었다. 그리고 독립적인 교회는 원리주의적

이고 복음주의적인 교회인 경향이 있다.

부분적으로 다른 종류의 역사적 요인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것이

완벽하게 확실히 해 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국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려는 경향이 있

다. 정부는 종교에게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지 않고 종교 역시 정부에게 이렇다 저렇다 이

야기해서는 안 된다. TV를 보면, 설교를 하는 채널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또한 엄청 규모가

큰 교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의 경우 자신들의 예배 등을 방송하기

도 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 복음주의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하는 것 같다. 미국의 종교에서

주류가 된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복음주의교회는 많은 권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생

각한다. 그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많은 권력과 영향력을 갖고 있

다고 생각한다. 복음주의, 특히 원리주의 교회들이 그렇게 되도록 보다 쉽게 만들어준 것은

다름아니라, 그들은 사물들을 매우 확실하게 규명한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확

실하게 구분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대다수의 분야에서 모든 것들이 단순

히 흑백으로 나눌 수가 없다.

나는 책에도 썼지만 세상이 보다 빠르고, 변화하고, 분쟁이 잦고, 폭력이 많아지면서 거대한

규모의 교회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조성한다. 그곳은 안전한 곳이다.

그곳에는 단순히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교회안에 독서 클럽 뿐 아니라, 야구팀도 있고,

바느질 반, 청소년 활동 조직도 있다. 따라서 이런 대형 교회들은 일종의 도시 같이 되어버

리고 있다. 교회는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네트워크가 아니라, 사회 전체

시스템이 된 것이다. 저녁이나, 음식, 친교, 운동을 위해서 다른 곳에 갈 필요가 없고, 온

세상이 그 안에 있는 것이다. "

Q5. 결과를 봤을 때, 이러한 면에서 여러 가지 위험함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 나는 그것의 작용에 대해 절대주의적인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일부 교회

가장 유명한 교회중 하나는 시카고에 있는 윌로우 크릭 교회라고 있는데 그것과 같은 많은

복음주의 대형 커뮤니티들은 가난문제라던가, 에이즈 같은 문제에 개방적이다. 그들은 에이

즈 예방을 위해서도 운동을 한다. 그들은 단순히 동성애와 낙태를 윤리적인 문제라고 생각

지 않는다. 다른 많은 복음주의교회나 원리주의자들처럼 말이다. 이들은 그들 보다 훨씬

개방이 되어 있다. 따라서는 모든 복음주의 교회와 원리주의 교회를 하나의 범주로 너무나

쉽게 몰아넣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단체 사고(group think)에 있어서 위험적인 것이 존재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한자리에 있으니 옳다라는 생각 말이다.

이런 식으로 주장이 일어나게 되는데, 당신은 역시 이슬람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성공보다 더 신학을 확인해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무슬림들이 사우디 반도에서 나와 모든 것을 정복시켰는데 이에 대한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

면, 이 안에는 신이 계셨다는 것이었다. 신의 축복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나? 이것은 곧 신의 뜻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요일 큰 교회에 가서 만 명이 거대한 강당에 보여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이 어떻게 신의

뜻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들지 모른다. 이런식으로 성공은 확신을 가져다주고, 이런식으

로 점차 절대주의로 흘러가게 된다. 나는 이런 것들이 서로 서로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Q6. 당신은 책에서 기독교가 유일한 진정한 종교라는 것은 부족들이 부족장이 절대적인 진

실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썼는데, 그것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

"나는 책에 제안하길, 하나 이상의 진실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한다. 흥미롭게

도, 이것은 로마 카톨릭의 공식적인 입장이기도 하다.

많은 카톨릭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1965년 이후 바티칸에서 나오는

가르침과 요한 바오로 2세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렇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장 오래 교황으로 집권한 교황이다. 그는 교황중에 최초로 모스크를

방문하고 유대교 시나고그를 방문한 교황이며 전 세계를 방문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이 다른 종교에도 개방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는 말하길 예수가 길이긴 하지만 신께서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을 모아놓으셨고, 다른 종

교를 포함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을 섬기도록 하셨다고 했다. 물론 여전히 예수가 그 그

림 안에 존재하고 있지만, 오로지 신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꼭 교회에 가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이것은 일반 평신도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특정방식대로 믿고 특

정방식대로 행하고 세례를 하는 것은 기독교에 있어 가장 규모가 큰 커뮤니티인 바티칸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자면, 진실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용량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나는 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신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신은 너무나 큰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신께서 나의 경험 이상의 것들을 행하도록 세상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내게는 아

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리주의자들에게는 괜찮지 않다. 그러니까 달

리 말하자면 제대로 행동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다면 나가라는 말이다.

나는 이런 것은 일종의 부족주의라고 생각한다. 편협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수백 수천만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전혀 듣지 못하더라도 태어나서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게 잘, 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의미있게 살도록 되어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그들은 어쩌다 잘못된 장소에서 태어난 것일까?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할까? 나는 이

보다 좀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 김진호 목사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진보평론』편집위원, 제 3시대 그리스도연구소연구실장 역임

현, 한백교회 담임 목사, 『당대비평』편집위원

주요저서 :『함께 읽는 구약성서』(공저),『함께 읽는 신약성서』(공저),『실천적 그리스 도교를 위하여』, 『예수 르네상스』,『예수 역사학: 예수로 예수를 넘기 위 하여』, 『반신학의 미소』외 다수

Q1. 한국에 들어온 1900년도 선교사들의 특징에 대해서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압도적으로 미국선교사들이 많았다. 그밖에 캐나다 선교사들이

많았고 국적도 다양했는데 숫자적으로 미국선교사들이 많았으며 선교사들에 성향은 국적과

긴밀히 결부되있던 것같다. 미국에서 들어온 이제 유입된 선교사들은 신학적 근본주의적 신

학을 갖고있었고 미국에 근본주의보다 더 근본적인 분들이 한국에 선교사로 들어왔었다."

Q2. 배경에 대해서

"선교사라는 건 이제 그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지만 선교사가 되겠다는 것은 보통 사람

들보다 좀 더 강한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종교적인 근본주의가 그런 강한 결단에

좀 더 이제 자유주의보다 중요한 조건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 미국에서는 근본주의내에서 좀 더 현실문제를 읽어내기 시작한 시도

들이 있었다. 현대 신학을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근본주의 진영내에서 그래서 미국에 근본주의 교회들이 좀더 책임의식을 갖게 되고 국

제문제에 대해서 또 근본주의적 신학에 대해서 융통성을 갖게 되는 무렵에 한국에 온 분들

은 그런 분들이 아니라 열렬한 근본주의 투사같은 분들이 온 것이다. 선교사들은 대게 그런

분들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런 분들이 미국 내에서 대학교에서 설득력 잃어버리면

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Q3. 한국 기독교가 그런 근본주의, 복음주의 신학을 빠른 시간 안에 쉽게 받아들인 이유?

"평양 대부흥운동이 1907년도에 있었는데 그 사건이 한국 기독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건

이라고 본다. 평양 대부흥운동이1907년인데 실제로 대 부흥, 양적인 증가라는 관점에서 보

면 1904-5년에 양적인 증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그때를 대 부흥으로 보지 않고 7년 이후를 본 것이다.

이제 기독교 근본주의적 정체성으로 교회가 통합됐다는 관점을 얘기하는 것이다.

그 1904-5년간에 평안도 지역에 기독교가 양적으로 급성장한배경은 내가 보기에 러일전쟁

에 부정적 효과인 것 같다. 러일전쟁이 일어나는 그 곳으로 일본 군대가 육로로 이동하는

통로에 그 관서 지역이었고 그 당시에 기사나 이런 것들을 보면 일본군에 의한 군대 폭력을

짐작케 하는 여러 증거가 있다. 그래서 한겨울 2월달인데 관서지역 2월달인데 많은 사람들

이 일본군이 지나가는 소문만 듣고 산속에 숨어들어간다던가 이런 일들이 있었다. 근데 미

국선교사가 있는 교회는 일본군대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이었고. 그다음에 이제 선교

사들을 통한 물량공세 쌀배급 이런것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었던 것

같다. 이제 전쟁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교회로 많이 몰려오니까. 교회 안에서 다양한 분쟁

들이있었던 것 같다. 그런 분쟁들을 초기 교회 지도자들은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

준비가 안 된 상태니까. 어떻게 해서 교회 통합을 가져올지 준비가 안됐고 그런 와중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는데 ..그때 이제 선교사들이 택했던 방법은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도하

는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서 신비한 종교 체험을 하게 되고 그것을 이제 성령사건으로 해

석한다 . 한국교회는 그 체험을 하게 되면서방언이 터진다던가 사람들이 굉장히 신적 체험

을 한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교회 안에서 여러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 집회

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현상은 교회에 여러 다양한 갈등이 해소되는 것을 의미했

다. 그러나 이제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선교사들에 교회에 대한 주도권이 확립된다. 그래서

한국 신학 교육기관 신학대학에 커리 큘럼 목사 안수 할수있는 권리 입학 이런 모든 전권을

선교사들이 장악해 버린다.

그래서 1907년 이라는 사건은 한국 기독교에서 선교사들이 주도권을 갖게 되는 계기적 사

건 이었다 .그리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그 이후에 평안도에서만 있었던게 아니라 전

국화된다. 그래서 전국기독교가 평양대부흥 운동에 확대판처럼 돼서 한국 기독교가 선교사

들에 의해서 주도권이 장악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Q4. 우리나라는 구국기도회에서 미국지향적이고, 주한미군 목사님 나와서 주한미군 철수 반

대 이런 부분들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

"한국기독교는 아주 일찍부터 과도하게 친미적이었다. 일단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서 선교

가 주로 이루어져서 선교 모국이란 인식이 있었고 그다음에 이제 식민지 시대에 한국기독교

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그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기독교 엘리트들이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군정기에 미군과 한국인을 중개해주는 역할을 한국인 기독교 지도

자들이 많이 했다. 중에는 미국에 유학갔다온 사람이 적지 않이 있어서 그 시절에 이 당국

으로부터 여러 가지 특혜받았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때 기독교 인구가 굉장히 작음에도 불

구하고 국교처럼 취급을 받았다. 그 시기에 한국기독교가 굉장히 급성장을 하게 된다. 이

런 일련에 사건들은 이제 극도에 친미성과 한국 기독교 신앙이 결합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미 한국 기독교에 초기 형성 과정은 친미성과 결합돼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 대한 우호

적인 느낌과 신앙이 모순 없이 결합된 시기였다. 반성 없는 이제 미국에 대한 태도는 반성

없는 신앙이 그 시기부터 아주 강하게 뿌리박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박정희 정

권 때도 미국과 한국에 중간에 통로 역할을 중요한 역할을 목사님들이 많이 했다.

Q5. 미국복음주의자들 중에 '사회복지제도 확대, 반대한다, 의료보험제도 개혁 반대한다.'

등 상식적으로 기독교 가르침과 반대되는 얘기 계속하는데 그건 어떻게 이해를 하나?

미국에 오래된 역사 되짚으면 더 많은 분석이 나오겠지만 그런 분들은 주로 미국에 티비를

통해서 성공한 스타목사이다.. 교회에서 성공한 목사들이 아니고 그런 분들이 등장한 배경

과 미국기독교가 정치 세력화한 시기가 맞물려있다.

그 시기에는 레이건 대통령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그래서 이제 레이건 대통령에 배후 지지

세력이었고 그 이후에 부시 대통령 지지세력이고 두 아버지 아들 대통령에 그러면서 점차적

으로 미국기독교가 정치 세력화했다.

기독교적 도덕을 정치화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런 것들이 아까 말한 복지와도 관련돼 있

고 그밖에 여러 가지 낙태나 이런 좀 복잡한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 세력들이 법안

형성하는데 영향을 많이 미쳤다.

그것은 그시기 부시나 레이건 배후에 있었던 신자유적인 그 자본과 기독교가 연동돼 있었

다 의미한다. 그 이전부터 친화적인 요소가 있었을텐데 그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친화적인

요소가 정치화되고 그런 의미에서 복지라던가 여러 도덕적 법률문제에 대한 법률화가 그 시

기에 이뤄지니까 아마도 그 시기에 기독교에 대한 정치적 태도 사회적 태도가 본격화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Q6. 그들은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왜 가난한 자를 위한 복지 프로그램에

찬성하지 않는가?

"이를테면 기독교 신학자들 중에 신자유주의 이론들로 아주 크게 성공했던 신학자들이 있

고, 그런 분들이 미국에 신자유주의 이론에 중요한 이데올로기 역할을 한다.그런 이데올로

기들의 주장들은 크게 보면 사회적 실패를 사회적 실패로 보지 않고 개인의 실패로 보는 것

이다. 그래서 그런 개인에 실패로 보는걸 신학적으로 신앙에 내적 문제로 해석하고 사회적

으로는 이제 그 사회나 국가에 책임을 그 강조하지 않고 그래서 작은 국가론이 나오는 것이

가능해지고 이런 여러 가지 연관된 메커니즘 통해서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 게 아닌

가 싶다. 그래서 기독교가 복지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실패에 문

제를 개인의 실패로 환원시켜서 해석하게 된 미국에 일단에 보수적인 이데올로기 형성과

맞물려있다 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동시장에서 퇴출된 사람들은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상업 시스템에

문제일 수도 있지만 아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자기를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관리에 대한 답문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한다든가, 이런 담론들이 활발해지고 자기를 잘 관리하지 못한

것이 갖고 있는 문제는 이런 것은 신앙적으로 도 문제고 사회적으로도 문제다. 라고 보는

것이다. 게으른 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Q7. 사회에 문제에 사회시스템에 문제 제기 안하고 개인으로만 돌린다는 것인가?

"그렇다.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의 실패의 배후에는 개인의 실패도 이유도 되지만 사회적 실

패도 이유되는데 가령 사회주의자들은 그걸 사회 실패에 관점으로 보면서 사회 시스템을 만

든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실패로 보면서 그 시스템을 최소화하고 그 비용을 경제적인

재생산에 투여한다. 자본에는 되게 유리하지만 실패한 개인에게는 되게 불리한 것이다."

실업자가 됐다거나 학교를 졸업했지만 취업 못했다거나 또 취업했지만 이제 그 많은 보상을

받지 못한 월급이 작은 직업 전전한다거나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사회적으로 저소득과 불

안정한 직업 상태에 있는 이유가 뭔가 했을 때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은 그것은 그 사람이 자

기를 잘 관리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되면 사회는 그 사람이 잘 적응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책임 질 필요가 없어진

다. 그러니까 이제 사회가 그런 사람에 대한 비용을 지불 할 필요가 없고 사회는 그 비용을

재생산에 투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럴 경우 기업은 되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은 기업이 성공해도 그래서 국가의 GDP가 올라가도 개인은 그 가난한 생활이

라든가 불안정한 노동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것들이 신자유주의 위기인데

그런 상황이 신학적으로 정당화 되고 있다. 미국기독교에서 한국기독교도 그런 점에서 미국

의 기독교에 그런 점에서 미국 기독교에 어떤 친자본주의적 요소가 별로 여과되지 않은 채

수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Q8. 그들은 어떤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정당화시키는가?

"이제 그 신학적으로 타당하다기 보다 교회 담론 상으로 많이 이제 유통되고 영향력있는 사

람들이 주장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인데 그 주장배후에는 하나님이 신실한 사람을 축복해준

다는 것이다.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은 축복 못받는 셈이된다..

그러면 그 사람이 신실하지 않은 이유가 뭔가 하고 물으면 그건 그 사람때문이다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은 신학적인 논거는 아니다. 한국기독교에 중요한 리더들이 신앙을 그렇게 해

석했다. 세속적 성공이 신앙적 성공과 맞물려있다고 본 것이다."

Q9. 부시 정부가 이란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의 이유를 악의 세력과의 전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전쟁을 정당화했는데 나중에는 '석유전쟁'이라고 전쟁의 이유가 밝혀졌다. 그것

은 복음주의 신앙이 정치에 이용될 수 있다로 해석되는 것인가? 어떻게 이해해야하나?

"신앙적으로 어떤 견해를 갖고 있든,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런 견해 갖고 있는 사람이

다 겪는 실패들이다. 자기가 의도했으나 의도하지 않은 상황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그런 것

들은 그걸 정당화 시키는 다양한 기제들이 있는 것 같다.

그건 종교뿐 아니라 다른데서도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종교같은 경우 가장 많이 쓰는 방식

은 그런 결과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하는 것 같다. 자기들이 의도했을 때는 굉장히 사회적이

고 공세적인 생각을 세계에 대한 공세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 효과가 부정적인 것에 대

해서는 별로 통용하지 않은 지식들을 잘 모fms다. 지금 이런 정보는 석유전쟁이었다. 이건

음모론 수준에서 지금 통용되는 것이다.

명백한 사실로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만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기독교는 그런 음모론이 있다는 것

조차 모르는 경우 많다.

그리고 이상한 현상 중에 하나는 대형교회를 보면 우리나라에 굉장히 수준 높은 지식인들이

많다. 근데 그런 분들이 교회에 와 관련된 얘기할 때는 거의생각이 마비가 되는 것 같은 경

험을 많이 한다. 많은 분들이 그런 것을 느꼈을 것이다."

Q10. 이러한 것들이 어떤 메카니즘을 통해 쉽게 이용이 되는 것인가?

"기독교인들은 신문을 잘 안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정보만 듣는다. 특히 세계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를뿐더러 세계가 돌아가는 것에서 어두운 부분, 아픔들에 대해서 생각보

다 둔한 것이 사실이다. 자기가 읽고 싶은 부분은 굉장히 잘 읽는다.

기독교 신앙은 많은 경우에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읽는데 둔하게 하는 거 같다. 둔한 감

각 때문에 부조리한 것들을 읽어낼 때 굉장히 서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Q11. 위와 같은 현상을 이끌어내는 어떠한 작용이 존재한다는 소리인가?

“이율배반이 있는데 신앙 안에 하나는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 위해 선교해야 한다고 하면 가

난함에 대한 수많은 정보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으로 노력한다. 그런 정보 찾아내고 사실을

통용해서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내가 뭔가 해야 한다라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

것이 해외선교에 주된 동력이 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잘하는 것을 신앙적으로

문제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교회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가 세계를 잘 안다고 해도 잘 알고있는 자기의 지적인 능력

을 신앙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게 표현 안 하려고 하고 그런 것들이 반복되면서 마치 자기는

이 세계에 도달하는 것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신앙이 한편으로 세계를 예민하게 읽게 하고 한편으로 둔감하게 보게 하는데 그런 것들을

자기 편한대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건 불필요한 정

보라는 것을 자꾸 말해줌으로써 손도 안대고 보지도 않게 하게 하는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위해서는 너무 열심히 공부하게 하는 것, 종교가 가지고 있는 힘 같다."

Q12. 길에서 전도하는 사람이나 대형교회 목사의 설교를 보면 ‘기독교만이 참 구원에 길이

다‘ 강조 할 때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구문을 많이 인용

하는데 그때당시 그 말씀은 진짜 ‘예수만이 구원인가’. 혹은 ‘선교에 대한 지침 말씀이라고

이해해도 되나?

“그것도 신학적인 문제는 전혀 아니다. 교회 목사님들이 그렇게 많이 해석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너무 전문적인 얘기인지 모르지만 요한 복음에 나오는 그 말은 기독교와 타종교 문

제는 아니고. 그 회당 유대교 회당으로부터 쫓겨난 예수 추종자들이 요한 복음서를 만들어

낸 분들이라고 보고 있다. 그분들이 유대교 회당과 일종에 그 적대적인 갈등관계를 형성하

면서 한편으로 그들을 비판하는 논리였고. 또 한편으로는 요한복음서 만든 분들이 보건대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이 유대교 회당과 비슷한 방식으로 조직화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문

제제기이며, 대표적인건 제도화 되고 있고 위계질서가 강화되고 있다는 이런 것에 대한 비

판이다. 그런 것에 대한 요한복음 공동체의 비판이다.

그것은 교회 내부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 대한 비판이고 유대교 내부에 대한 비판이

다. 유대교, 기독교 공동체 비판에 대상이 되는 이들에 공통된 부분은 그분들이 일종에 패

권주의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 더 강한 존재가 되야하고 강한 존

재가 되므로써 강한 밑바탕이되고, 그리스도에 진리를 펼수 있다고 하는 일종의 제도화로의

길인 것이다.

요한 공동체는 그런 제도화 길에 대해서 극력히 저항했었던 공동체다. 그런 맥락에서 요한

공동체가 말하는 예수가 올바르다 라는 주장 바로 그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는 맥

락은 다 사장해버리고 기독교 중심주의를 설파하기위한 그런 논리로 해석된 것이다.

요한복음서 공동체 상황을 우리가 일반화 시킬 필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한복음서 공동

체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마치 보편적 진리인 것 마냥 말하고 다니는 것은 적당한 성서 해석

이 아니다."

Q13. 요한복음의 내용, 예수가 길이라면 주변인에게 어떤 의미라고 설명을 해야하나?

"우리가 성서를 통해서 배우는 예수님에 가르침들은 단 하나로 수렴되지는 않는다. 이건 예

수님의 가르침을 하나에 어떤 명제라고 할까요. 하나의 강령이라 할까. 이걸로 환원시켜

서 얘기하는 건 적어도 신학적이지 않고, 예수님에 근거한 성서적 가르침에 준한 것 같지도

않는다.

성서는 다양한 모순적인 얘기들이 있다.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될 필요가

있는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준 비교적 그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사실은 그분은 그 사회에

서 가장 못난 사람들 사람들이 못났다 라고 평가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사실이다.

그 점에 관해서는 어떤 성서학자도 이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거 외에 또 다른 얘기를 하

려면 이제 그건 여러 가지 논란도 필요하고 증거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이들과 함께했다는 것이 함께하는 주체가 누구냐 약한 이들과 함께해서 그들에게 교회

를 나오게 했다.

이런 것들에 문제는 거의 타당성이 없는 이야기한다. 그분들도 함께해서 그분에게 용기 주

고 그분들이 이 세계에서 내가 있을 가치가 있다라는 걸 알게 해주고 다른 사람들이 그분들

은 비난하고 수없이 여기고 또 도와주지 않고 예수님은 공격했다. 그 사실에서부터 기독교

신앙은 출발해야 한다. 그거는 가장 확실한 예수님에 관한 증거다."

Q14. 그것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구절은?

“가장 핵심적인 구절이라 말할 수 없지만, 거의 성서구절에 예수님에 관한 성서구절 속에서

예수님이 이 세계에 작은 자들과 함께 했다는 것들이 다 나와 있다. 예수님은 창녀, 아니

면 하층민들과 친구라고 하며 그분들과 함께 먹고 마셨고 그분들을 위해 일했고 그분들에게

예수님에 기적을 베풀었고 그분들에게 예수님에 말씀을 가르쳤다.

또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예수님이 저주를 퍼부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과 싸우다가 죽임을

당했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는 그런 구조로 되어 있다.

어느 하나 딱 그런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구조로 되어있다. 예수님은 로마 식민지

시절에 로마 비난에 초점 두었던 분도 아니고 그런 점에서 국가에 회복을 위해서 싸운 분도

아니다. 그런 측면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가장 분명한 사실은

누가 주인이든지 간에 누가 권력을 잡든지 간에 그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과 가장 비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당신에 목숨을 다해서함께했다는 사실인 것이다."

Q15. 2000년 전에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에 나라 어떤 곳인가?

“예수님이 말한 하나님 나라, 즉 ‘죽어서 가는 곳’이란 것은 나중에 유럽으로 넘어와서

생긴 관념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죽어서 가는 나라 개념은 없고, 마지막 대에 죽은 이들이

다 살아나면서 생기는 새 나라다. 그리고 하나님이 심판하는 것이며, 마지막 대가 되면 하

나님 나라에 통합될 사람과 하나님 나라에서 밖으로 밀려날 사람이 나뉜다라는 이런 생각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내세에 대한 관념은 없었다.

후대에 유럽으로 오면서 내세에 관한 신앙으로 발전을 하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

님 나라에 대한 다른 시각이 생긴 것이다."

Q16. 우리가 각 교회에서 말하는 복음들이 다 허구란 얘기가 있는데...

"복음은 유대인, 우리를 유대인들로 만들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우리에게 없는 사고와 가치

관을 유대인들에 가치관으로 교화하기 위해서 복음순교한 게 아니니까 하나님 나라관이 그

렇다고 해서 우리가 꼭 그 하나님관을 가질 이유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반대로 이제 우리

가 갖고 있는 하나님의 관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적용하는 식에 하나님 나라 관

도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기독교의 과오는 자기들의 생각을 마치 성서적이지 않은데도

성서적이라 주장하고 그럼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한다라고 얘기했던데 있는 것이

지 유대인들에 신앙을 따르지 않은 것에 잘못이 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Q17. 자신이 생각하는 한국사회 기독교의 모습에서 가장 지금 바뀌어야 할 부분은 어떤 모

습인가?

"한마디로 하면 배타주의다. 다른 이의 생각을 무시하고 공격적으로 대하고 자기 생각을 아

주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태도가 가장 대표적인 문제로 볼 수 있다."

Q18. 그렇게 말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기독교인들이 그것도 이제 아까 말 한 것처럼 성서에 있는 얘기들을 자기가 원하는 말하고

싶은 부분만 뽑아서 갖다가 끼워 맞춘 것이다 예수님이 다른 신앙에 대해서 배타적이었다라

고 생각되는 그런 요소와 적절한 해석들이 아니고 억지 해석들이라 말하기도 곤란한데 기독

교인들 많이 갖고 있는 상투적인 생각이 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도 안되고 그밖에 기독교 중심적인 생각이 많다.

기독교 밖에는 구원이 없다. 그걸 증명해줄 여러 말들이 있는데 그런 기독교인들에 생각들

은 자기가 갖고 있는 교회의 제도적인 주장들을 주장하기 위해서 성서에 있는 구절들을 자

기가 편리하게 따온 것이다.

그 부분만 그러한 맥락과도 관계없고 현대 성서학자들은 교회가 해석하는 그 부분들에 대해

서 거의 대부분 동의할수 없는 것이다."

Q19. 현대 성서학자라고 말한 분들이 주류에 의견인가 아니면 주류의 생각과 다른 것인가?

본인이 해석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가?

"성서학에 관련된 학문적인 잡지들 저서들이 있다. 학문적이라고 통용되는 성과물들과 한국

교회가 주장하는 성서에 대한 해석은 거의 다른지 같은지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한국에 목사님이나 신학교가 현대성서학의 성과물들에 대해서 잘 가르치지 않으니

까 이렇게 모르고 있을 뿐이다. 이제 근본주의적 신학들은 현대 학문적인 그 토론에 장에서

토론되고 있는 성과물들이 아니다.

물론 그분들이 숫자는 꽤 많다. 그러나 이제 학문적이지 않은 것이다. 학문이 옳다는 얘기

하고싶은건 아니지만 그 성서에 대해서 이것이 옳다라고 주장한다면 학문적으로도 검증되야

한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검증이 전혀 안되는 걸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Q20. 신학대에서는 이러한 것을 어떻게 교육시키나?

"내가 보기엔 많은 경우 잘 안가르친다."

Q21. 어떤 사람은 아는데 가르치지 않고, 교수들도 다 아는데 가르치지 않는다하던데 사실

인가?

"그럴 가능성도 많다. 그건 의혹이니까. 그분들이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잘 모르므로 말할

수 없는데 분명한건 그분들이 그중에 상당수가 자기가 학위논문쓸 때 했던 것과 다른 얘기

하는 게 많다. 아는데 알고서 숨기는 것일 수 있고 또 와서 생각바뀔 수 있다. 그것을 내

가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런 여기와서 하신 말씀 중에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국제적인

학문의 장에서 학문적으로 통용되기 어려운 주장들이라는 것이다."

● 사무엘 휴 마펫 박사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명예교수/사무엘 오스틴 마펫(마포삼열)의 아들)

Q1. 한국에서 선교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

"외국인들에게 개방되기 전 한국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있었다.사람들이 외국인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리고 음식이 입에 맞을지 확신도 없었고 물이 깨끗하지 않을

까봐 걱정도 했다. 그 외에도 선교사들이 걱정한 것들이 많다.

한국에 대한 나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특히 벌레들이 아주 많았다. 벌레들과 모기

들이...아버지가 시골로 가셨을 때 그것 때문에 더 힘들어 하셨다."

Q2. 아버지가 경험한 사건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

"돌 던지는 것은 심각하지 않았다. 그 분을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그냥 쫓아내려고 한 것

이다. 이기붕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가? 그는 저희 아버지에게 돌을 던졌던 무리 중 하나를

이끌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후에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신

학교에 가고 싶어 했다. 저희 아버지는 1901년에 소위 신학 수업을 막 시작했었다.

1901년에. 그리고 약 1903년에 기독교인이 된 이기붕이 목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러 왔

다. 그리고 3년 후, 아니 4년 후 1907년에 그 반이 졸업을 했다. 그리고 그 최초의 반에는

이기붕을 포함한 7명이 있었다. 진짜 교회는 선교사들이 있어야 했고 이기붕은 '내가 최초

의 선교사가 될게' 라고 했다. 그리고 제주도로 보내졌다. 그리고 아주 힘이 센 제주도 여인

들이 이기붕에게 돌을 던졌다. 내 아버지가 최초 장로교 총회의장이었기 때문에 그에게 안

수를 해주었다. 어쨌든 그게 1907년이었고 대부흥회 직후였다."

Q3. 한국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게 한 동기는 무엇인가? 기독교가 퍼지게 된 특별한 동기나

사건이 있었나?

"신학적인 것을 떠나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로마 카톨릭교도들과 달리 개신교도들은 식민

지적 야욕을 갖고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개신교들은 제국주의자로 인식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에 있어서 제국주의자

는 동양, 즉 일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초부터, 일본이 한국을 지배하기 시작한 그 시

점부터, 사실 일본은 아주 빨리 그렇게 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선교사들이 사실 자신들의

편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그들은 일본인들의 한국 점령을 아주 싫어했다. 하지만 선교사들

은 일본인들과의 관계에 아주 주의해야 했다. 일본인이 오고 난 후에는 아주 힘들었다. 하

지만 한국인들에게 선교사들은 그들의 친구였다. 그들이 최초의 여성학교를 시작했고, 최초

의 서구식 대학을 시작했다. 최초의 병원도 시작했다. 저희 아버지가 가기 전, 최초의 개신

교 선교사인 앨런이 민비의 조카를 치료했었다. 1894년 아니, 1884년에 반란이 있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그 폭동의 주도자들과 당은 민비 세력을 없애버리려고 했다. 친중 세력을

말이다. 그리고 공격을 했고 거의 죽임을 당했다.

그 때가 한국 최초의 우체국이 생겼을 때이다. 민영익. 네. 그리고 사람들은 그가 죽을 거라

고 생각했다. 하지만 앨런이라는 사람이 그를 데려갔고 민영익은 거의 죽었었다가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여왕은 앨런이 그를 살릴 수 있었다는 것에 아주 기뻐했다.

그래서 민비가 왕에서 앨런을 치하하라고 선물을 주라고 요청했고 왕이 물었다. ‘당신이 가

장 원하는 게 뭐요. 왕족의 목숨을 구한데 대해 치하를 하겠소.’ 그러자 앨런이 병원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왕은 그렇게 해 주었다. 그게 바로 한국에서 최초로 합법적으로 조직

된,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건물이 되었다.그리고 그 병원이 한국 내 최초의 기독교 건물이

되었다. 앨런은 최초의 장로교 전도사였고 1884년에 왔다. 그리고 언더우드는 1885년에 왔

고 그리고 아펜젤러도 마찬가지이다. 저희 아버지는 1890년도 일월에 왔다."

Q4. 그 병원이 개원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나?

"앨런이 치료하고자 한 어떤 사람도 받을 수 있었다. 그보다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 최초의

병원은 민영익을 죽이려고 한 사람의 집이었다. 그 사람은 일본으로 도망을 갔고 왕이 그에

게 그 집을 최초의 병원으로 하사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에, 어떤 이들이 앨런을 찾아왔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생 3~4명 데리고

왔다. 앨런이 말했다. ‘기생을 데리고 도대체 뭘 해야하지?’ 하는지 앨런이 고민하자, 앨런

의 부인이 그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고, 간호사로 일하게 했다. 그게 바로 첫 번째 간호사들

이 된 사연이다. 그들 모두 개종을 하고 최초의 간호사들이 되었다. "

Q5. 그 기생들이 다 기독교로 개종을 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앨런은 사람들을 영혼으로 개종시켰다."

Q6. 서구 선교사들이 초기 한국민에게 메시아 혹은 구원자로 여겨질 수 있었을까?

"그들은 아주 신중했다. 그게 교회가 성장한 정치적 이유에서...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독교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 설교를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는 복음을 전도하고는 했다. 한국의 종교, 기본적인 종교는 불교와 샤머니즘이었

다. 엘리트들은 유교를 믿었고 여성들은 주로 불교신자들이었다. 어쨌든 저희 아버지는 때

때로 시장으로 나가 ‘난 당신들의 악령이 두렵지 않소. 무당이 두렵지 않아요.’

그러자 사람들이 와서 그걸 듣고,. ‘난 영혼을 조절하는 자, 무당이 무섭지 않소. 왜냐하면

나는 위대한 영혼을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러자 사람들이‘위대한 영혼이라구요?’ 그가 말

했다.‘네. 난 위대한 영혼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영혼, 성경을 보면 신은 영혼이다. 구문들을 보세요. 그리고 그가 말했다.‘그

걸 아시나요? 그 위대한 영혼은 당신들을 사랑하고 저도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신의 아들이 여러분을 위해 죽었습니다.’라고 했지요. ‘그게 내가 여기 와서 당신들에게 하

고자 하는 얘기이다.’ 사람들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외아들이라구요?’ ‘그건 엄청난 희생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직 아들 하나를 가지고 있다

면 어떻게든 살아있게 해야지요. 하지만 신은 여러분을 위해 죽게끔 그를 보냈습니다. 단지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고 그는 아들을 여러분을 위해 보낸 겁니다. 그리고 그는 죽었지요.

그게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자 그들이 와서 아버지를 보고 얘기하고

싶어했다. 그건 복음을 전파하는 좋은 방식이다. 그 문화에 대해 배우고 그걸 이용하는 것

이다."

Q7. 선교사 알랜우드에게 쓴 편지에서 보면 당시 한국인들의 50%의 교회 참석자들이 복음

이나 성경에는 별로 관심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교회로부터 받는 것들에 더 관심이 있었다

고 하는데?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쌀크리스찬’이라고 부릅니다. 성령이나 신 때문에 오는 게 아니라

쌀을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꽤나 사실이었다. 어쨌든 선교사들은 그걸 깨달았

고 또한 그 사람들이 단순히 신과 성령에 대해 얘기하는 것 이상의 것을 해야한다는 것, 즉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쌀을 주는 겁니다. 이 쌀을 얻기 위해 크리스찬이 될 필요

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교회원이 되었다."

Q8. 당시, 선교사들이 사람들간의 논쟁을 해결해주었다고 하는데...

"그 선교사들이 사실 변호사들은 아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성경의 프린트를 가져와서 보여

주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 비난하지 말라며... 그래서 몇몇 나쁜 일들을 방지할 수 있었

다."

Q9. 그 사람들은 선교사들에게 충고를 받았었나?

"물론 개인적인 것들이라면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도 환자들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항상 와서 문제를 얘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방을 집에 마련해 두었다.

그것을사랑방이라고 부르지요. 그리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항상 기독교에

대해서 얘기하지는 않았다. 다른 문제거리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자 했다. 선교사가 생각

하기에 자기가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것이었다.

결혼생활의 문제라던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던가, 도박, 씨족간의 다툼, 그리고 사람들은

여전히 거기에 충고가 필요했다.

아이들과 남편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그들이 기독교인들임에도 불구

하고 아이들과 남편들 때문에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교사에게 그

것을 말하고 선교사는 노력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여자 선교사들에게서 충고를 받았다."

Q10. 부흥회는 무엇인가? 190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사람들이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의 교회에서 기도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거기 계시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 안수 보조 목사가 거기 있었다. 길선주 목

사다. 길선주 목사. 아마 초기 가장 위대한 한국 목사일 겁니다. 그 분이 성경반을 돕고 있

었다. 사람들이 수업에 왔고 선교사가 기도를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시작을 했지요. 그리고

물론 한국말로, ‘자 기도합시다’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유로 12명의 남자들이 일어나서 동시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분

은 ‘아니요’라고 했다. 장로교에서 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아주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아주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 분이 말하기를, ‘잠깐만요. 여러분 12분이 기도를 하고 싶다면 좋아요. 하지만 우

리 모두 소리내어 기도를 합시다.’ 사람들을 둘러 앉히고 정돈을 좀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

들이 크게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발을 구르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부흥은 우

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 그리고 죄는 반드시 신에게 고백해야 한

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시작된다. 항상 큰 소리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큰 소

리로 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 울기 시작했

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말하기를 ‘여기 내가 당신에게 훔쳤던 10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이런 말을 하게 되어 유감이지만 전 기생을 만나왔습니다.’고 했다. 그

리고 다른 사람은 ‘내가 진정한 기독교인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 성경반에는 150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새벽 4시까지 계속되었다. 선교

사는 사실 멈추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멈추려고 하지 않았다. 한국인들이 인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2월이었고 그 해 6월에 신학교의 첫 졸업생이 나왔고 길선주 목사, 부

흥론자가 졸업을 했다. 그 후 선교사들이 10월달에 한국인들에게 교회를 넘겨주었다. 그들

이 말하기를 ‘여러분은 이제 7명의 안수를 받은 한국인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를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들이 선교사가 되어야 하지만요.’라고 했

다. 그리고 ‘당신들 7명 중 1명이 선교사가 될 겁니다.’라고 했지요. 모든 일들이 연속적으

로 일어났다. 부흥의 시작, 죄의 고백, 그리고 신앙의 회복. 당신의 죄가 사하여 졌으니 당

신은 전도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건 한국인의 장로교회였다.

그리고 이게 그들이 따랐던 조직이다. 이게 1907년 최초의 장로파이다."

Q11.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왜 그런 일들이 있어났나?

"그래서 우리가 그것을 부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령의 부흥이다. 신은 그의 아들만 보

낸것이 아니라 그의 성령도 보냈다. 성령이 셋이고 신이 하나다. 소위 ‘삼위일체’라고 한

다."

Q12. 소리내서 기도를 하고 발을 구르고 울고 그런 장면은 보통 장로교회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지않나?

"아무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모습은 ) 그게 성령이었다고 믿고 있다. 기

독교인이기 때문에.

놀라운 일이지만 그게 엄청난 성장의 시초였다. 우리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 한국 전역에,

북쪽과 남쪽 다 해서 오직 250명에서 300명 정도의 개신교도들이 있었을 뿐이었다. 250명

혹은 300명 정도의 개신교도들이 있었고 그 때가 1890년이었다.

하지만 1907년 부흥회 당시 그 교회에 1500명이 있었다."

Q13. 한국의 기독교가 급속하게 성장해 왔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국에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주, 아주 행복하다. 물론 대부

분이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전 일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디든 그렇다. 지금 한국은 인구비례로 따져서 미국보다 더 많은 선교사들을 세계전역에

보내고 있다.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는 국가이고

한국이 그 다음이다. 단 두세대, 저희 아버지와 제 세대 만에 말이다. 놀라운 일이다. 사

람들은 그걸 한국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문제점들도 있다.

나는 때로는 너무 빨리 성장하면 사람들이 제 때에 그들 고유의 언어로 된 성경을 갖지 못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심지어 그 후에도. 저는 하나의 악한 영혼, 악마가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에는 악이 있

다. 그리고 항상 악과 성령 사이에 싸움이 있다. 때로는 악이 그들의 날을 심지어 교회에도

슬며시 들이민다."

Q14. 당시 한국 기독교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나?

"문제점들은, 그들이 일본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그들이 기독교인들을 신토사원에 가서

황제에게 경배(신사참배)를 드리라고 명령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1938년부터 시작되었

다. 때로는 아주 폭력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세 성령, 아버지, 아들, 성령에 신을 추가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왜 네 번째 신을

추가할 수 없는가? 아버지, 아들, 성령 그리고 황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독교인들

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게 했고 어떤 이들을 그렇지 않았다. 그

리고 그들 중 몇은 그들이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었다.

아버지, 아들 그리고 성령에 대한 그들의 신념을 위해 죽을 정도로 강했던 한국인들에 대한

멋진 역사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후에 참회와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기독교인들은 그 죄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당신은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

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니다, 어떤 사람도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

고 그 이슈로 의견이 나뉘었지요. 우리가 신토 경배에 대해서 얼마나 엄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Q15. 한국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아주 보수적이며 성경과 복음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경

향이 있는데...

"그건 근본적인 질문이다. 내 생각에 최고의 저술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다. 아주 힘

들게 나온 것이다. 우리가 그걸 얻는데 400년이 걸렸다. 어쨌든 예수의 시대에 있을 수 있

었던 최소의 성경으로 여겨진다. 우린 그걸 문자 그대로 믿는데 하지만 당신 말은 잘못되었

다는 말인가요? 거짓이라구요? 아니요. 거짓은 아니다. 아주 작은 실수들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해석은 아주 폭넓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종파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카톨릭과 개

신교도 사이에, 신학자와 역사가들 사이에, 총신대와 장신대 사이에 차이점이 생기는 것이

다."

Q16. 작년 한국 기독교인들이 아프간에 선교를 하러 갔다가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들이 가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갈 만큼 훈련이 되지 않았었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실제로 갔었던 그들의 신념은 존중한다. 난 한국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은 세계 최고다."

Q17. 기독교로 인해 우리 문화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발전했다고 하면 적합

한 말이 되는가?

"백남준을 아는가? 내 좋은 친구였다. 한번은 제가 그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들의 최고의 업적은 무엇인가’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나는 그가 한글이라고

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가장 성공적으로 해낸 건 이천년의 기독교와 그 많은 문

제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여전히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단순히 기독교의 역사가 아니

다. 하지만 내 생각에 기독교는 아주 좋은 것이다. 실수가 있더라도 말이다.

내 생각에 그건 독립심을 심어준 것이다. 여러분은 자유를 위해 투쟁을 했다. 나는 삼일운

동을 기억한다.

여성 교육은 아마 가장 크고 눈에 띄게 변했을 것이다. 첫 번째 학생이 어땠나? 첫 번째 학

생은 고관의 딸이었는데 사람들이 학생을 보내라고 요청했을 때 그는 그의 딸이

영어를 배우면 그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여자학교가 학생

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데려가세요. 제 딸을 데려가세요.’ 했다. 그리고 그게 최초의 학생

이었다. 그녀가 특별하게 된 건 아니고 그냥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그래도 정치적인 영향력

을 가졌다. 그게 또다른 이점 중 하나다. 그런 식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

서 가장 큰 선교 대학이 되었지요. 아니, 기독교 여성대학교로 말이다."

 

● 김덕기 교수

미국드류대학 신학박사 신약성서 전공

클레어몬트신학교(M.Div.), 개렛복음주의신학교(M.Th.), 드류대학교에서 박사학위(Ph.D.)

현, 대전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해석학회 이사, 평화선교연구소 전문위원으로 활동

저서:『예수 비유의 새로운 지평: 프랑스 구조주의와 문학사회학 방법에 근거한 예수 비 유의 정치적-윤리적 해석』, 『바울의 문화신학과 정치윤리』, 『복음서의 문화비 평적 해석』

Q1. 우리나라에 전파된 기독교의 성향은 어떠한가?

"미국에서 19-20 세기 전파된 종교로서 우리 기독교는 사실은 보수 온건 진보 6대 3대 1

정도로 이렇게 골고루 들어왔다. 그러나 압도적인 것은 미국에 소위 세대주의 종말론이 극

단화된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강조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일단 부활해서 하나님의 심판 받

는다는 극단적인 종말론이 사실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 종말론이 들어오면서 한국은 상당히 근본주의적으로 되면서 성서를 조금씩 문자

적으로 보고 종말론을 끝까지 주장해야하니까 문자적인 측면으로 간 것이 가장 큰 그 문제

다. 그러나 이제 감리교나 기장이나 이런 기독교 장로교나 혹은 병원과 학교같은 시설을 세

웠기 때문에 진보적이고 온건한 기독교도 함께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19-20 세기를 말하자면 열정적으로 선교한 그룹은 '이 세상에 곧 종말이 올 거

다'라고 생각했으니까 문자적으로 성서를 읽게 되었고 강렬한 기독교로서 전투적인 선교를

하게 되니까 기독교의 영향이 엄청 크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또 국

가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한 새로운 극단적인 기독교가 대중들에게 잘 먹혀 들어갔다

고 봐야하겠다.

Q2. 우리나라에 전파시킨 복음주의가 미국에서 번창한 이유는 무엇인가?

"19세기, 미국에 유럽으로부터 두 가지 중요한 도전이 왔다.하나는 다비니즘 진화론이 들어

왔고 또 하나는 성서를 아주 역사적으로 굉장히 철저하게 비평한 고등비평이라 하는 성서의

교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라고하는 극단적인

고등 비평이 들어오니까 미국 내에서는 사실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서 세속적인 것을 완전히

버리고 성서만을 강조하다보니까 성서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므로써 기독교를 방어하려 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전 세계가 곧 종말이 온다 했으므로 오로지 선교를 통하여 그 종말을

준비할 수 있다 생각했고 우리나라에 상당히 강하게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들어온 가운데

서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라는 것이다. 봉건 보수 진보 이렇게 해서 온건은 한 3 보수가 6정

도 진보는 1정도로 볼 수 있고 아주 적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함께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것 중에 하나는 병원과 학교를 통하여 그래

도 사회적인 측면도 배려하자 이 3가지가 전체적으로 들어왔지만 당시 한국에 형편상 강렬

한 기독교는 역시 세대주의적 종말론이 종말을 완전히 기할 것이다 라고 하는 그런 복음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그렇게 봐야겠다. 그 당시 우리는 한국이 국가를 이뤘던

상황이기 때문에."

Q3. 복음주의에 위험성이 있다면 어느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가?

"복음주의는 사실 보수, 진보,그 다음에 온건주의인데 다 자기들이 복음주의라고 한다. 복음

주의라는 말은 사실 온건주의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복음주의를 극단적인 종말

론과 문자주의적 해석에 입각해서 하면 근본주의가 되고 그 근본주의적인 입장을 갖게 되면

성서를 글자 그대로 믿게 되니까 이제 종말 은 곧 올 것이요, 그다음 세상의 삶은 곧 끝날

것이라고 세상의 것을 전부 부정하게 된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성서의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도래라든지 그 하나님의 나라를 공동체 속에서 구현시키는 것이라든지

그다음에 인간 구원을 전체적인 구원 영혼과 몸을 나눠서 영혼구원만 한다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구원을 하시는 게 예수님에 원래 취지였다.그러나 한쪽으로 강조하게

됐다. 이세상은 곧 끝날 거니까 우리의 영혼을 지키자 라는 측면으로 너무 치우쳐있다. 그

것은 성서의 근본 취지를 왜곡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근데 한국은 우리가 유교적인 전통이 있고, 기복적인 무교적인 전통이 있고 국가는 없는 상

황이기 때문에 복음주의 가운데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복음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어

필을 하고 그 다음 60년대는 우리가 산업화를 위해서 교회를 부흥시키는 그런 계기가 됐던

시기다. 교회 부흥에는 천천히 인간의 구원과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유지하는 방향 보다는

오히려 빨리 교회를 건설해서 국가가 산업활동하여 농촌에 있는 인구들이 도시에 몰려오게

되고 그 도시에 있는 교인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는 영혼구원을 강조할 때 그것이 더 효과

적이지 않았는가 라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자꾸 반복되고, 교회에

개신교가 누구 컨트롤을 받고 조절되는 기관이 없지 않는가? 각자가 가장 빨리 교회를 세

워서 커지면 훨씬 더 좋으니까 그런 측면이 있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이긴 하다."

Q3. 우리나라 보수기독교인들은 친미 성향이 강한 것 같은데?

"이 동양의 성지라고 할 만큼 평양은 엄청난 1907년 중심으로 엄청나게 부흥한 곳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북한에는 기독교를 공산주의가 핍박을 하니까 남한의 기독교의 상당수는

북한에 특히 평안 남북도에서 내려온 그러한 그 기독교가 지금 다수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은 미국이 이제 남한 정부를 세운 도움을 줬기 때문에 당연히 공산주의가 싫으니, 친

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슨 사회가 노무현 정부라든지 이럴 때 그 반미

로 나가면 이들은 밖에 나가서 친미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에 굉장히 다양한 다수가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상당히 많다.

영락교회처럼 엄청나게 큰 교회도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내려와서 자리잡고 사람들이 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러니까 그분들은 생리적으로 보수성을 갖게 되고 미국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언제나

친미쪽으로 가는 경향이 상당히 크다. 물론 민주화를 위해서 투쟁했던 기독교와 상당한 숫

자들이 많이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런 기독교인들도 있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아직도 북한에서 내려오시고 그 영향권 안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그 정도까지 말할 수 있겠다. "

Q4. 성경을 문자 그대로 오류없이 보는 것은 어떤 위험성이 있는가?

"그것은 문자를 넘어서 항상 하나님의 자유 속에서 새로 도래하는 하나님, 아직 오시지 않

는 하나님 나라에 도래를 기다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역사에 눈을 귀울이

면서 성서를 봐야 하는 것이지 성서에 메이면 그것은 유대교가 이미 율법 모세 5경을 중심

으로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지키고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통하여 이스라엘 다스리는 방식으로

똑같은 유대교 종교가 되기 때문에 기독교는 문자에 메이게 되면 그것은 기독교의 기본정신

하고 상당히 그 좀 차이가 있게 된다. 난는 성서학자로서 그렇게 보고 있다."

Q5.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지 않으면 기독교가 성립될수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이제 성서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어떤 것은 원리의 차원, 어떤 것은 그 원리

를 가지고 그 시대에 맞도록 적용한 측면도 있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약간 모호한 측면

예를 들어 이혼에 관해서 보자면,

처음에 마가복음 같은 데서는 이혼을 해서는 안된다 라고 했지만 마테나 누가에서는 만약에

여성이 간음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혼을 해도 된다는 예외규정을 뒀다.

그런 식으로 어떤 성서 내에는 원칙이 있고 그 다음에 적용 에 가능성이 있는 것이 있고 그

다음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새로운 것, 예를 들면 에이즈나 또 어떤 모임에서 오늘날 가장

쟁점이 되는 안락사나 이러한 것들을 우리 성서에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있다.

그럴 경우 적용할 때 어떻게 해야하나? 우리가 원리 부분 잘 적용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서를 모든 차원에서 핵심적인측면에서 무조건 다 문자적으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예수님

당시에 우리 주님 오시겠다 곧 오시겠다 했는데 아직 오시지 않았다.

그럴 때는 누가와 마테는 그것을 앞으로 우리가 열심히 선교하게 되면 나서올 것이다...이렇

게 해석이 됐을 때는 성서학자로서 저희들은 그것을 적용 범위와 적용가능성 그리고 그것이

갖는 의미, 성서는 상징과 은유와 수사학적으로 다양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맥락을 봐야하고 어떨 땐 역사적 배경을 봐야 하고 이것이 수사학적으로 말을 돌려

서 한말인지 문자적인 의미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지 다양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그런 때는 우리가 성서학자들이나 조직신학자들이 원리를 추구하니까 그들이나 이렇게 의논

해서 가장 좋은 해석으로 가야하는데 단순하게 교회를 늘리고 교인들은 잘 모르니까 그저

문자적으로 믿어라 믿어라 하니까 믿고 사람들은 텍스트가 마가, 누가 다 다른데 어떤 것

을 믿어야 할지 그걸 비교해보면 다양하게 틀린데 어떡할 것이냐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조직신학이 있고 그리고 성서학자들은 역사적 배경 그다음에 문학적 맥락 수사학적

배경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에 여지 갖게 되는 것이다."

Q6. 한국종교가 타종교에 배타적인 이유와 그 근거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타종교에 대해서는 가장 민감한 사안일 수있다.

어떤 종교든지 어쨌든 자기 종교가 중요하고 또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생각할 때는 그것

은 타종교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타종교에 대해서는

둔감하고 서로 대화화지 않으려고 하는지 종교가 가진 기본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가 유난히 그렇게 강조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적 계시로 보고 절대

적 계시로 보게 된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가 볼 때는 누가복음과 마테복음에서 우리 주님이 말하자면 다시 올 것이다라고

그것을 위해서는 모두가 전투적으로 선교를 해야 한다, 그 마테복음은 주님이 오시지 않으

니까 이제 이런 방식으로 선교를 강조하므로서 말하자면 우리 주님이 오시지 않는 것에 대

해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강하게 선포 하려고 했던 상황이 있다.

그러니까 타종교와 상관없이 대화하기 전에 강하게 전달하다 보니까 그런 적이 있고 또 하

나는 요한복음에서 영지주의 또는 전 영지주의 원시 영지주의에서 너무 도전이 강해서 기독

교는 점점 강렬한 구원에 절대성을 주장해야지만이 당시 핍박 속에서 겨우 칼케돈 신조에

의해서 다양한 기독교가 너무 다양한 종교 분파들이 나오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을 중심으로

해서 굉장히 강렬한 기독교를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 두가지 배경 때문에

제가 보기에는 강하게 주장하다 보니까 배타적인 측면을 가질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러나 그 배타성이 과연 오늘날 종교가 다원시대로 넘어가고 지구화 시대가 됐으니까 종교

들 사이에서도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 된다. 그다음에 사회적인 정의를 외치기위해서 여러

다양한 종교들의 힘을 합치기 위해서 평화운동 이라든지 남북 통일문제라든지 국가가 갖는

기본적인 안녕의 문제라든지 이런 것 때문에라도 우린 같이 손 붙잡고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라도 특별한 때에 특별한 방식으로 강조된 어떤 기독교에 교리를 너무 지나치게 다

른 종교나다른 문화를 갖다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야기 하게 되면 오히려 선교에 지장이

오게 되고 기독교가 갖는 평화와사랑에 차원을 감소 시킬 수 있는 여지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한번쯤 달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Q7.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들이 나중에 첨가됐다는 표현이 있는데 올바른 표현인가?

"우리 학자들 사이에서 조금 견해 차이 있지만 대체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그저 예수님의 원

래 말씀을 30년~50년 사이로 본다면 그 이후에 큐라던지 누가, 마태 공통 어록집이라든지

그 다음에 또 다양한 종류의 공동체들이 조금씩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양하게 운동을

벌렸다. 그러다가 마가복음, 누가 복음, 마테복음이 나오면서 70년 이후에는 우리들이 자가

성전 파멸이 됐으니까 그것에 맞춰서 조금씩 변경하고 마태, 누가 복음 같은 경우 종말론이

우리 주님께서 70년에 다시 갑자기 주님 오신다고 하다가 안 오시기 때문에 거기에 또 걸

맞춰서 조금 더 변경을 하고 그다음에 90년-110년사이에 요한 복음이 나왔는데 요한복음

에 보면 또 예수님 자신이 빛이다 이러한 강렬한 기독교가 나오고 필요하다 라고하는 그런

시점에 따라서 조금씩 이렇게 변경을 하고 변경한 것이 기독교에 진리를 더 강화한다는 확

신 속에서 그런 진리를 더 발전시킨다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조금씩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조금 더 발전됐다. 그러나 그 원리는 내가 보기에는 사랑과 평화와 우리 주님을 통하여 인

간이 진정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차원은 이제까지 조금씩 변경된 것이기 때문에 어떤 것은

변경이 됐지만 어떤 부분은 똑같다고 봐야한다."

Q8. 예수님이 직접 한 말씀 중에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가서 어떤 선교를 하라는 메시

지는 없나?

"어느 정도는 메시지가 있었다고 본다. 예를들면 팔레스타인 안에서 수렛 페니키아 여인같

은 경우 팔레스타인 안에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 복음을 전하자고 얘기했다고 본

다. 그러나 그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 유대인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기대했던 분이

기 때문에 유대인이 그 당시에 선교 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이방선교의 유대인도 관심을

가졌고, 예수님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부활하시므로서 진짜 세계만방에 보편적인 구원이

왔다 그러니 이걸 빨리알렸음 좋겠다' 이것이 너무 강렬했다고 봐야된다.

그 제자들이 팔레스타인 안이나 밖이나 모두에게 이것은 인류의 구원에 역사가 시작됐다라

고하는 복음에 선포해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된 것이다."

Q9.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길이죠, 진리요,..' 이 요한복음 구절을 통해서 일부 기독교인

들이 예수 기독교 아니면 구원이 없다라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데 어떻게 봐야하는가?

"그렇다. 내가 보기에 '예수님이 길이죠,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다. 나는 세상

의 빛이다.' 라고 하는 강렬한 기독론이 사실은 기독교가 발전되어 가면서 어느 순간에는

헬라 문화하고 강렬한 충돌이 있게 된다.

헬라문화에서는 로고스, 지혜와 관련된 이 세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자가 가장 보편적인 진

리를 나타낼 수 있고, 이것이 로고스 하나에 말씀 또는 이성이라는 것인데 가만히 예수님

의 말씀과 죽음과 부활까지 선포했다. 그러나보니,

특히 에베소 지역을 중심으로 한 헬라 사상에 물든 사람들이 이것은 하나에 보편적인 구원

의 역사가 아니겠냐, 그러려면 로고스를 넣어야겠다해서 로고스를 넣고 말하자면 하나님의

아들 정도가 아니라 주님이 하나님이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그동안에 알고 있었던 다양한 최고의 신앙고백의

한 고백으로서 '나는 무엇이다...' 라는 고백을 거기다 넣은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이 하신 말씀은 아마 인자정도 비슷한 말씀을 했을지 모르지만 요한복

음에 와서는 영주주의의 도전도 있었고 하나는 헬라 철학과 대결하면서 그 복음을 강렬하게

전달하기위해서 점점점 강화했다 그렇게 봐야한다.

그러나 그러한 강화된 측면이 오늘날 배경에서 어떻게 기술적으로 그 구원에 절대성을 어떻

게 전달하느냐 하는 것은 원시시대와 오늘날 시대에 격차를 생각하면서 효과적인 것이 무엇

인지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10. 복음서의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게 어떤 의도가 있어서 추가가 된 것이라고 보는가?

"말하자면 그 복음에 근본 취지를 시대가 갖고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특히 고대니까 우리가

생각하기에 신화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신화가 말하자면 사실이 아닌 것을 넣었

따기 보다 신화는 그들의 사유방식이다.

이 세상의 것을 하나님의 것, 저 세상에 세계가 관여해서 일어난 일이다. 라고 표현하는 게

고대인들의 사유방식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으로 잉태한다 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그것이 어떻게 동정녀 탄생이 가능한자, 그리고 부활도 현대인들이 믿기에 어려운 측면이었

지만 고대인들에서는 신과 인간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그들의 사유 방식이다.

그 다음에 부활은 곧 고대인들에게 인간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게 유대인으로서 십자가에 처

형되는 게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게 어려운거지 부활은 종종 일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의 아들은 일반적으로 부활한다고 믿었고 그들의 사유 방식에 의해서 그들은

그런 사유방식 너무나 뛰어나고 하나님께서 이 세상 안에서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데 그들

이 아무튼 구원자가 나타나는가 그 구원자를나타내는 방법이 그들의 신화적인 사유 속에서

는 그들의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Q11. 그렇다면 그런 신화적 표현방법은 어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하기보다 그

리스 로마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가?

"내가 보기에 유대인은 오히려 내부에 있었던 율법이나 이 저 구약성서에 내용들을 잘 활용

해서 해야 하는데 그 부분을 마태복음이 주로 유대교에 맞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지나치게

사도 바울과 누가 복음 같은 경우 헬라쪽을 갔기 때문에 다시 유대교로 조절한 것이다.

마가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예수님의 활동을 그렸고 마태는 유대지역 유대 정통 다윗에 뿌리

속에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조금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그동안에 사도 바울이 한 것을 보다 더 보편적으로 행하

기 위해서 누가나 요한복음이 과감하게 헬라, 헬레니즘에 사용된 위대한 인물이나 종교적

인물 신화적으로 설명했던 것들을 조금 더 세련화 시키고, 유대지역의 역사적인 측면과 같

이 접목을 시켰다.

그래서 더 세련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 누가, 마태, 요한을 만들었다... 이렇게 이제 조금

씩 조금씩 더 설득시키는 방향으로 갔다."

Q12. 그렇다면 왜 일반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말씀만 기록하면 효과가 없는 것일까?

"그것도 내가 보기엔 시대가 좀 변경된 것이다. 30년에 있었던 시대와 70-80년에 가면 유

대교는 이미 성전이 파멸된 이후에는 그 근거를 잃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이 하신말씀이 70년의 상황 이 두 가지가 그 90년이나 100년경

에 있었던 혹은 130년에 있었던 로마와 기독교가 어느 정도 확장된 차원에서는 이제는 통

제 전체를 갖다가 기준을 만들어야 하니까 조금 더 기준을 강화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었

다. 그렇다보니, 우리가 보기에 마태, 마가, 누가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그대로 말했으면 앞뒤가 안 맞는 것이다."

Q13. 신화적으로, 고대 사람들이 이해했다는 것은 그렇게 쓰여졌다고 역사적으로도 이해한

다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 우리 역사관과 다르다.어떤 한 세대가 그것을 의미있는 줄거리라고 생각하자 역사

라는 우리는 입증이 되는 그렇지만 고대인들은 그것이 의미있는 스토리텔링에 가치 있는

그것이 역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세대가 공유하면 된다. 그래서 70년에 성전 파멸을 경험한

세대가 이것은 30년에 말했던 그 메시아가 뭘 했던지 그건 알수 없다.

그러나 그분이 메시아였다면 이 정도는 예언 못하겠느냐 거꾸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가 메시아인지 아닌지 몰랐었는데 메시아인건 맞다 이렇게 해서 마가복

음이 나온 것이다. 그 다음에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이것도 예언할 수 있다 이렇게 된 것이

다. 고대인들은 의미가 있으면 부활도 하는 것이다.

근데 우리 현대인들은 그게 무슨 부활 입증할 수 있어야 되지 않냐고 하지만 입증은 우리들

에 정신이다. 역사란 동시대인들이 가장 의미 있게 생각했던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역사

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70년 이후로 말할 수 있었던 건 조세 포스라는 위대

한 역사가가 역사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60년대에서 70년대 전쟁을 보고 그는 동시대인들이 느끼는 모든 것들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사람이었고 동시대인들에게 설득될수 있었기 때문에 역사인 것이다."

Q14. 우리나라 기독교의 복음주의와 문자주의 역사 사실을 믿는 관계는 어떻게 볼 수 있을

까.

"고대 사람들이 그때 생각했던 것과 비교해 우리는 성경이나 복음서를 오해하고 있는 셈이

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역사적 정황과 그 세대가 갖는 문제의식 때문에 만들어진

단층들이 있는데, 마치 우리가 어떤 고대 역사로 말하면 여러 층들이 있다면, 학자들은

그 층을 하나씩 연구를 다 해놨는데 문자주의자들은 그 층을 역사적 연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모든 부분이 다 하나님의 계시다라고 해버린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성서가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이 일반 삶에 또 윤리적인측면으로 나타나니까 그것이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중요한 것이고 그 의미가

나온 것인지 역사적인 층들을 조금씩 더 자세하게 연구해서 다른 사람에게 적용할 때는

조심해야한다. 성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위험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에게 물어봐서 또 여러 사람들이 숙의해서 나타난 결과들을 조심스럽

게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소기천 교수

현 장로회신학대학교(Th.B.와 M.Div.) 석좌교수

연세대학교대학원(Th.M.)

미국 클레이먼트신학교(M.A.T.S.)/클레이먼트대학원(Ph.D.)

충북 송면교회 담임목사 역임

한국신약학회 총무 역임

저서 : [하나님의 사랑과 세계선교] / [예수말씀의 전승궤도]/[예수말씀 복음서Q개론] /

[로마서가 새롭게 보인다] / [현대에 들려오는 예수 이야기]

Q1. 거리 전도사를 만났는데, 그 분은 ‘예수 구원은 인간에 구원은 기독교 그리고 예수밖에

없다.’ 그 이유로는 요한복음 16장 4절에 근거를 들고 있다. 왜 그분들이 그런 근거 들고

있고 있으며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복음 14장 6절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하지 않고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 라고 하는 이 말씀은 본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자기를 믿고 따

르는 신앙 공동체인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다.

그런 점에서 그 말씀은 이 땅에 구원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계시자로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한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

이기 때문에 사명을 주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목격하고

자기들이 체험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그런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이다.

학자들이 그 귀절이 후대에 삽입됐다고 얘기하는 그런 학자들이 있는데 그건 잘못된 시각이

다. 지금부터 30년전 70년대 중반에는 그렇게 해석했다. 그러나 지금은 역사 비평적인 방법

론으로만 신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 비평적인 방법에서 신약성서를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이 예수님의 사건을 실제로 목격한 사람들의 글이고 그 기록이 일련의

문학적 연속성 속에서 기록됐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대 삽입이라는 얘기는 과거에 잘못 해석한 오류고 일관되게 예수님께서 자기의

십자가에 죽음을 앞두고 제자에게 주시는 여러 말씀 중에 그리스도인의 복음 선교 사명을

일깨우기 위해서 주시는 명령이라고 우리가 그렇게 이해 할 수 있다.“

Q2. 일부에서는 한국교회가 대부분 권력 지향적이고 보수 지향적이라고 하는데 이것에 대

한 의견은?

“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목소리 중에 권력 지향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 비판들이 있는데 그

것은 일부 한 두, 교회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에 해당되지 않는 내용

이다.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님처럼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한국의 전해진 그리스도교는 미국선교사들이 전해줬다. 우리는 미국 선교사들의 열정을 봐

야한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인데 자기들의 가족과 생업을 뒤로

하고 한국에 왔다고 하는 그 열정 희생 그 120년 전에 그들에 헌신을 한국교회로 생각할

때 이해해야 하고, 오늘 한국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이런 희생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

력하고 삶 속에서 가난한 자라던지 어려움 당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사회사업을 하고 학교를 짓고 병원을 짓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한국 교회다.

여전히 그런 일을 계속하고 있다."

Q3. ‘복음을 전한다’는 부분에서 ‘복음’의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가?

"요즘은 복음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굉장히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복음

이라는 것은 자기희생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따라서 자기를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자기의 가장 귀한 시간이라든지 물질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이런걸 희생하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데 바로 그것이 복음이다.

신학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말씀 그대로 살려고 하는 그런 열망이 강

하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삶속에 실천하려고하는 그런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문자를 잘못해석해서 많은 어려움을 야기했다.

문자적으로 따르는 건 좋지만 해석잘못하는 건 어려움이 있다. 예를들면 영주주의 교단이

있는데 마그함마디 문서를 통해서 우린 오늘초기 기독교에 있었던 영지주의자들을 많이 알

고 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 말씀그대로 따르기보다 그 말씀을 자기 들 입맛에 맞게 재해

석했다. 영적인 지혜라는 차원에서 자기들만이 비밀을 깨닫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영지주의

교단을 만들었다. 그것이 185년경에 이레니유스에 대해서 이단 오리겐에 의해서 이단으로

낙인찍혔지만 그러나 그 이단이 새로운 옷을 입고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예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고 따르

는 것이 중요하지만 잘못해석하는 건 많은 어려움이 있고 많은 사이비와 이단을 만들어내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Q4. 학자 중에 '사탄'과 '선과 악', '사탄'과 '선한 신', '천국과 지옥'들의 이원적인 개념이

조르아스티교에서 유입이 됐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흔히 이제 신학적인 사고방식에서 이원론적인 사고방식이 있다.예를 들면 빛과 어둠이라든

지 선과 악이라든지 이런 사고방식이 있는데 기독교 신앙은 조로아스터교에 신앙이라든지

아니면 근동에 미리 종교에 신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학자들의 견해는 우리가 동의하

지 않는다.

기독교에 영주주의는 유대적 영지주의다. 다시 말해서 구약성서에 뿌리 두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빛과 어둠을 창조하셨다. 이미 구약성서

에 그런 사고가 담겨져 있다. 그다음에 선인과 악인이 구약성서에 나타나있다. 그래서 그

리스도교의 신앙세계를 다신론적인 이방문화에 배경 속에서 찾는 학자들의 주장은 내가 동

의하기 어렵고 구약성서에 뿌리를 두고 초기 유대교에 뿌리 두고 있는 전통이 초기 기독교

에 있어서는 전통라인이 됐다."

Q5. 옛날에 기독교에 박해가 없었다는 것과 플리니우스의 편지의 가치에 대한 설명...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교가 역사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 다음에 민의 했고 또 박해를 당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로마의 정치가 그 다음에 역

사가의 한 사람 중에 플리니우르사라는 사람이 있다. 이분은 초기 기독교가 형성되던 시대

인물이다. 이 사람이 남긴 글 중에 편지가 있는데 라틴어로 쓴 편지속에 트라누스 황제에게

보낸 보고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붙잡아 뒀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형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

때 플리니우스는 트라누스 황제에게 그대로 보고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트라누스 황제

는 답변을 보낸다. 그들을 선별해서 처형하라고 하는 답변을 내린다. 이 시대는 요한계시록

이 기록됐던 시대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은 로마에 압제 하에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처형당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콜로세움은 도미티나우스 황제 때 건설된 것이다. 바로 요한 계시록 시대에 박해 당했던 성

도들은 바로 콜로세움에서 도미티나우스 황제 때 엄청난 박해를 당했다. 바로 그것을 반증

해주는 것이 풀리니우스의 편지고 트라누스 황제의 답변이다."

Q6. 예수님이 '천국'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와 성경의 최초에 복음서가

그리스어로 쓰였는지에 대해서(예수님은 아랍어를 사용해서 그리스어가 아닌 아랍어로 하면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에서 죽어서 간다는 장소의 개념은 포함되있지 않다고 주

장하는 학자도 있다.)

"어디서 들은 것인지 모르지만 사실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쓰신 언어,모국어는 아랍어다. 그

러나 그 당시에는 이중언어가 있어, 벌써 400년전부터 헬라어(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있었

다. 그래서 아무리 모국어를 사용해도 그 당시 사람들은 당시 400년전부터 통용되던 헬라

어를 다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모국어인 아랍어를 생각한 것과 그다음 그 당시 세계공

용어인 헬라어를 생각했던 그 하나님에 나라가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에 나라 생각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적인개념이 있다. 그것은 현재 하나

님께서 여기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그런 장소에 개념도 있고 장차 우리가 죽어서 들어

갈 미래에 하나님에 나라라는 그런 장소에 개념이 둘다 있다. 그다음에 시간적인 개념이 있

다. 지금 여기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시간 개념이 있고, 장차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에

구원이라고 하는 그런 개념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나 미래를 하나로 설명하면 안되고, 동전에 양면과 같이 이 땅

에서 우리가 미리 맛보고 장차 우리가 죽은 다음에 누릴 영원한 세계로 우리가 동시에 이해

해야 한다. 많은 그 신앙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지 않

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순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하게 이

땅에서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나라로 이해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강조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시민으로서 이 땅에서 책임적인 삶을 사는 것이

다. 그리고 미래에 하나님에 나라 개념이 있기떄문에 이땅에서 좀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상금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비록 순교라든지 박해와 같

은 어려운 상황이 전개 된다 할지라도 신앙을 지킨 것이고, 미래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확

신이 있었기 때문에 내세에 주어질 상급을 기다리면서 신앙을 지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리스도인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책임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 그리고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사는 삶이 내게 의미가 있고 사람들을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내게 진정한

행복을 준다라고 하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

Q7. 구약성서에서는 죽어서가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신약성

서에만 등장하는데 그게 이제 그 개념이 예수가 한말이 아니고 나중에 조로아스터교의 새

로운 개념이라고하는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님의 나라를 영생의 문제와 관련해서 다른 종교에도 영생에 대한 개념이 있다는 건 우

리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는 구약성경에 뿌리 두고 있다. 이미 구약

성경에서 에녹과 엘리아 같은 사람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했다.

특수한 몇 사람의 예이다. 그분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간 것이거든요. 이미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이 죽어서가는 내세

의 개념으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에녹과 엘리아같은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데려갔기 때문

에 죽음을 맛보지 않고 간 것이다.

그래서 이 신앙은 구약성경에서 온거지 다른 종교 신앙에서 온 것이 아니다."

Q8. 현재 한국교회에 대해서...

“한국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겸허하게 받

아들이지만 그러나 일부 교회 지도자들을 보고 비판하는 건 문제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

회는 순교자 피 위에 세워진 교회다. 120년밖에 안됐지만 일제 36년 6.25 전쟁이 지나면서

수많은 순교자의 피가 한국 교회에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겸허하게 받아들이지만 한국교

회에 대한 비판은 일부 몇 교회나 몇 지도자들에 대해서 전체 한국교회 생각하는 태도는 나

는 조금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초기 기독교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다. 순교 재단 위에 세워진 교회는 강력한 저력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예수님에 희생과 헌신의 삶을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

해서 세워진 교회다.

예를 들면 초창기 한국 교회가 병원을 짓고 학교를 세우고 고아원을 세우고 양로원을 세우

고 많은 사회사업을 하면서 복음을 이 땅에 심어왔다.

지금도 예수님의 오른손이 하는 걸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는 그런 말씀 때문에 잠잠하게 있

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에 삶을 변화시키고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있

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래서 장차 한국교회는 많은 선교에 대한 비전과

소명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이러한 그리스도에 사랑과 실천에

모습을 구체적으로 심어주는 그런 교회에 모습으로 저는 발돋움 할 것이다.“

● 존 도미닉 크로산 교수

시카고 드폴 대학 성서학부 명예교수. 미국 성서학회 역사적 예수 연구분야 위원장.

역사적 예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저서 : 『Four Other Gospels(1985)』, 『The Historical Jesus(1991)』, 『Jesus : A Revolutionary Biography(1994)』, 『Who Killed Jesus?(1995)』, 『Who is Jesus?(1996)』,『The Birth of Christianity(1998)』,『The Essential Jesus(1998)』외 다수

Q1. 한국에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미국의 선교에 의해 많은 영향

을 받았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믿는다. 어떤 충고를 해 주신다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예를 들어 나는 결코 ‘사회 정의(social justice)' 혹은 ’사회 개혁가

(social reformer)'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와 성경이 주장

하는 것은 우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부분을 심각하

게 받아들이다. 신과 함께 시작되는 것이고 신이 신의 세상을 어떻게 운영하고자 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세상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우리가 그것을 개혁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할 때도 그건 여전히 우리 생각일 뿐이

다. 성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이 어떻게 세상을 운영하기를 원하는가에 대해서만 나온

다. 그리고 성경은 ‘신은 신이 세상을 운영하고자 하는 방식을 예수를 통해서 나타내셨다’라

고 말한다. 그리고 예수는 우리가 경배해야 하는 신이 인간적 존재로 스스로를 드러냈을 때

우리가 그 인간을 처형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신에게 맞추어 우리의 세상을 조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폭로함으로써 우리를 구원하고 있다.

우리는 2000년 동안 기독교 내부 그리고 외부에서 그것과 싸워왔다. 우리는 세상이 신에

의해 운영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독교의 전략은 전체적인 문제를 다음 세상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 대해서, 다

음 세상에 대해서 얘기한다라는 것이다."

Q2. 우리는 성경을 일종의 안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안내서로 받아

들이는데 똑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성경은 신이 어떻게 세상을 운영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주기도문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다.’ 천

국은 완벽하다. 아다 잘 운영되고 있다. 거기에는 확실히 어떠한 문제도 없다. 모든 문제는

이 땅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Hallowed be thy Name'이라고 말하

면서 시작한다. ’세상이 잘 운영되지 않는다면 신의 이름은 찬양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

고 있는 것이다.

집이 무질서하다면 왜 가장을 찬양하겠는가? 만약 세상이 신에게 속해 있다면 여러분은 확

실히 신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라.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 많이 먹고, 어떤 아이들은 굶고 있다면 어떻게 가장을 찬양하겠는가?

어떻게 그가 좋은 가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이게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 세

상은 신의 것이고 신의 집이고, 신의 왕국이고, 어떤 용어를 사용하던지 말이다.

세상이 잘 운영되고 있는가? 그리고 성경의 대답은 신은 특히 예수를 통해서 세상이 어떻

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입증하고자 혹은 나타내고자 혹은 말하고자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

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각각에 대해 계속해서 얻는 대답은 ‘우리는 너를 처형할 것이다’.

이다."

Q3. 우리는 ‘예수를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구원받을 것이다’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가?

"직접적인 의미로 예수는 그의 죽음과 희생으로 우리를 구원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 자

신의 폭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2천년 전에 신이 보낸 너그러운 경고같은 것이다. ‘내가 내

려가서 너희와 함께 했다. 너희들이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너희들은 나를 처형시켰

다. 나에게 린치를 가하지도 않았고 사고로 마차로 나를 친 것도 아니다.

너희들을 나를 끌고가서 심판을 하고 처형을 했다. 너희들은 너희들의 체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나를 심판했다. 그리고 너희들이 바로 본 것이다.‘ 그건 폭력은 인간종족과 세상을

위협한다는 2천년전의 경고였다.

하지만 폭력은 지난 6천년에 걸쳐 점차 확대되고 왔고 지금 우리가 있는 시점에서는 확실

한 존재로서 인간과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예수가 파일럿에게 한 말-

‘나의 왕국은 이 땅에 있지 않다. 만약 이 땅의 것이라면 나의 동료들과 제자들이 나를 구

하기 위해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할 것이다.’-을 심각하게 받아들

인다면 우리는 예수를 목격함으로서 구원받는 것이다.

따라서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비폭력적인 왕국이다. 이 땅의 왕국들은 항상 폭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폭력이 인간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는

신의 경고로 구원받는 것이다. 의사가 16살짜리 젊은이에게 ‘이렇게 계속 하루에 세 갑씩

담배를 피면 41살 정도에는 죽을 것이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사람이 그 말이

옳은지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담배를 피는 것이다.

우리는 이천년 전에 우리의 폭력성에 대해서 경고를 받았고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

았다."

Q4. 서유럽과 비교해서 미국의 기독교를 보면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신교정통파와 정통파

기독교 교회가 널리 퍼져 있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강하게 성경이 말하는 바를 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이러한 신교 정통파 기독교 교회들이 특히 미

국에서 이렇게 강력한 것인가?

"이번 11월이 지나고 나서도 미국의 종교 우파가 이전처럼 강력할 지는 모르겠다.사실 솔직

히 말하자면 이전에도 그렇게 강력했었는지 잘 모르겠고 만약 당신이 아주 잘 조직화되어

있는 작은 그룹, 투표자들을 가지고 있다면 선거에 꽤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신의 투표

자들을 잘 컨트롤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이 나라의 상황은 제 생각에, 그냥 지레짐작으로 통계를 대자면, 만약 우리가 소위 기독교

우파라고 하는 20%의 사람들이 있다고 해보자. 그들은 그렇게 하고자 하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는다. 그들은 누가가 성경에서 ‘다른 마녀들을 저주하라’고 한 것이나 ‘가난

한 자들을 축복하라’라고 한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아주 비유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들은 천국에 대한 것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 사회적인 세상에

대한 것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극좌파가 20% 정도 있다고 치자. 그

들은 동정녀 탄생 그리고 부활, 천국같은 모든 기독교 자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1세기 역

사를 알지 못하니까 모두 이상한 말들일 뿐이다.

그들은 ‘비기독교인’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간에 50, 60%를 차지하는 많은 기

독교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성경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지성과 감성, 그들

의 신앙과 논리, 역사와 계시를 동시에 유지하고 싶어한다. 그들은 성경에서 ‘너는 너의 모

든 지성과 감성을 다해서 경배를 드려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그걸 분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 거대한 중간 그룹을 상대로 나 같

은 사람이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우리는 그 중간 그룹에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성경을 믿어라. 비유로 의도하고 쓴 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우화적으로 쓴 것

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라.

그리고 그게 역사적인 사실인지 우화인지를 놓고, 문자 그대로 사실인지 혹은 비유적인 것

이지를 놓고 논쟁하지 말아라. 그것은 성경의 주요 포인트가 신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과제

라는 점을 잃게 한다. 신의 세상을 그것을 장악한 자객으로부터 되찾으라는 것, 세상을 위

협하는 폭력으로부터 세상을 되찾으라는 것, 그게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다. 신을 위해 이 세상을 되찾으라는 것, 왜냐하면 세상은 신에게 속한 것이다.

그게 성경이 말하는 것이다. 그 외 모든 것들이 거기서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는 거다. 성경

은 천국에 대해, 다음 생에 대해, 나의 개인적이고 내부적인 영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

다고 하자, 성경이 누가 세상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대한 거라고 말하지 말자. 왜냐하면 그

게 바로 당신을 역경에 빠뜨리는 것이니까요,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Q5. 미국에 20% 정도의 신교정통파 기독교인들이 있고 그들의 삶에서 성경이 아주 중요하

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이 50, 60%정도가 있다면, 그럼 신교정통파는 어떻게 미국 내에서

모든 사회적인 면에서 그렇게 강력한 것인가? 아니면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이 더 많은 건

가?

"미국에서 신교정통파가 아주 강력하다는 말을 하려면 사실 우리는 힘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야 한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단순히 그들이 시끄러운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아주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을 조직화하는 건 아주 힘이 든다. 마치 나비

들을 잡는 것처럼 보수파들은 조직화를 아주 잘 한다.

그래서 그들이 지난 8년간 이 나라에서 잘 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게 이 나라가 지금 협잡

꾼들의 손아귀에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선거판과 지금 공화당과 민주당에서 후보자로 나선

사람들을 보면 둘 다, 양쪽 모두 우리가 지난 8년간 거부했던 사람들이다. 많은 공화당원들

이 맥케인 상원의원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후보자로서 공화당회에서 선택

된 사람이다. 모든 경우에, 급진 우파에 강세가 주어져 있습니다. 급진적 종교 우파는 공화

당을 거의 망가뜨려 왔다. 그리고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만약 민주당이 대통령직과

국회를 인수한다면 공화당원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니다. 하

지만 급진적인 종교 우파에 대해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희생양이 될 테니까. 공화당이 너무 극우로 치달으면 이 나라의 사람들을

잃는다."

Q6. 21세기의 소시민으로서, 어떻게 역사적인 예수와 기독교를 실제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

는 것인가?

"그것은 교회의 기능이다. 사적인 관심으로 그것을 당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이

할 일이 아니다. 사적인 기독교라는 것은 없습니다. 개인적인 기독교 같은 것은 있지만 결

코 사적인 것은 없다. 기독교는 항상 공동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항상 그래왔다. 그리고

강점은 바로 그 공동체라는 것에 있다. 그래서 나는 혼자가 아니고 당신도 혼자가 아닌 거

것이다. 예수도 혼자가 아니었다. 항상 그의 그룹과 함께 있다. 강점이 바로 공동체 안에 있

고 그게 교회의 기능이다. 그래 예배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사적으로 예

배를 드려서 우리가 모여서릴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를 가지고 있는 건 공동체 때

문이다. 이 나라를 보고 제가 놀라는 점은 우리가 민주당과 공화당 기본적으로 두 당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 당에는 극우부터 극좌까지 엄청난 스펙트럼이 있다. 왜 그들이 함

께 모여 있는 것인가? 왜냐하면 그들은 뭔가를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말하지

는 않겠다. 아마 재선에 성공하거나 뭐 그런 거겠지요. 교회는 그 임무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분열하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뭔가를 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한다면, 심지어 예를 들어 저는 아주 진보적이고

당신은 아주 보수적일 수도 있지만, 만약 우리가 정치 정당에 있다면 협력해야만 한다. 하

지만 교회는, 그 임무를 잃었기 때문에 분열하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동성애에 의견 차이를 보이면 새로운 교회를 만든다. 만약 게이들의 결혼에

있어 의견 차이를 보이면 새로운 교회를 고. 계속 분열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저에게 놀라

운 점은,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극소 정당들이 있는 유럽에서 왔다. 내가 이

나라에 왔을 때, 말했지요. ‘여기에는 정당이 두 개 뿐이군.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극우

에서 극좌까지 보면 도대체 어떻게 서로 심지어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왜 대 여섯개의 정

당들이 있지 않은 것인가? 왜 계속 분열을 하는 걸까?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유일한 이유

는 그들이 그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신의 특성은 무엇인가, 믿음의 내용은 무엇인가, 교회의 기능은 무엇인가, 예배를 드리는 목

적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들이 제가 정말로 탐구하고 있는 의문들이

다."

● 함머미 러레설 유네스 박사(전통유대교문화 전문가)

Q1. 이란은 이슬람 국가다. 유대교인으로서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나?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이란의유대교 역사는 2700년 정도의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란은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민족이 같이 살았다. 역사에 문 제가 없었다고는 하지는 않겠다. 그

러나 유대인들과 이란인들이 서로 이해하고 평화적으로 좋은 삶을 살았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과 같이 여러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가 됨으로서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지중해 지역

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은 그 지역에서 추방을 당하거나 떠나야만 했다.

이란은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혁명은 이슬람종교적인 혁명이라는 것이다. 이슬람혁명

임에도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을 열린 생각으로 대하였고 특히 이란의 이슬람 혁명지도자인 이맘 호메이니

는 사회의 여러 부분의 대표자들과 열린 생각으로 유대인과의 다양한 모임을 통해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

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좋은 삶을 살고 있다.

믿음에 대한 얘기하자면 오직 하나의 하나님(유일신) 믿는 것은 유대교나 이슬람이나 똑같다.또한 지금까

지 유대교나 이슬람이 같이 살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똑같은 유일신을 믿기 때문이다. 더 추가적으

로 말씀드리자면 여러 종파의 기독교들 때문에 유대교와 이슬람이 쉽게 같이 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유대

교와 이슬람은 믿음적으로 하나님(유일신)의 대한 믿음이나 종교적 율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Q2. 여러 학자들이 말하길 유대교는 자라투르스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데...?

유대인과 자라투르스가 가까이 살았고 서로 대화를 통해서 유대인들의 시각을 넓혔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자라투르스에 대해 명백하게 설명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주제들은 인간의 믿음과 종교 믿음입니다. 만약에 어떠한 그룹이 모두 똑같은 믿음 ,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다툼은 적게 일어납니다. 그건 그 개개인의 종교적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믿음

을 가진 사람이나 믿음이 비슷한 사람일지라도 종교적 대화를 나누게 되면 다툼은 일어나게 되고 더 명백

한 대답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종교와 믿음에 관계는 유대인과 자라투르스트와의 관계와 같다. 이란의 유대인들의 어떠한 풍습이나 어떠

한 행태는 이란인들에게서 배웠다. 이건 서로에게 문화적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건 어느 사회에

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건 종교적인 것이나 종교적 믿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문화나 풍습이 닮아진

 것과 본래 믿고 있는 종교와는 관련이 없다.(다르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성스러운 토라

(유대교경전)에도 나와 있으며 다음 선지자들의 경전에도 나와 있다. 바블 왕에게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

기 전, 유대인들이 이란으로 가게 되기 전, 이란과 아무 관계도 없을 때 성스러운 토라(유대인경전)에는

 모두 명시 되어 있었다.

Q3.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대왕 고레스왕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이란인들의 견해와 유대인들의 견해에서 쿠로쉬는 존중하는 인물이고 현재도 그런 인물이다. 역사적인

 이유로 유대인들이 보크톨나슬 바벨 왕의포로가 되고 바벨로 오게 된다.

그리고 많은 억압을 받게 된다. 그 억압은 돌을 숭배 하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의 승리와 위대한 쿠로쉬의 넓고 열린 생각은 여러 민족들과 유대인들에게 주었습니다. 생각

의 자유와 결정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주었다.

포로들의 노예생활이나 수감 생활을 폐지 시켰고 이것은 이란인들에게는 위대한 업적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위대한 고레스라고 한다.

성스러운 토라(유대인경전)에서는 쿠로쉬에게 특별한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머시애라 하며, 뜻은 구원자

라는 뜻이다.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쿠로쉬와 이란인들을 존중한다. 고레스를 믿고 그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Q4. 한국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경전을 탈무드라고 부른다. 맞나?

"아니다. 두 개로 나눠진다. 실제로 탈무드는 유대교에 대해서 설명하는 책이다. 토라에서 나오는 말을 다

시 설명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성스러운 토라는 여러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토라의

일부분은 모세에 대해 적혀있고 다른 부분은 모세 이후 모세의 뜻을 계승한 선지자들에 대해 적혀 있다.

탈무드는 토라를 설명한 책이다. 토라에는 (유대인 율법에 맞는)정결한 식품에 대해 나온다.

하지만 정결한 식품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와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정결한 식품에

대해서 자세히 나와 있는 것이 탈무드다. 토라는신성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만 적혀있다. 탈무드는 토라

에 대해 설명이 적혀있고 율법에 대해 나와 있다."

Q5.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있다고 하였는데 왜 이란의 유대인들은 그 땅에 가지 않는가?

"토라에 나와 있는 대로 하나님이 약속한 땅은 이브라헴 선지자와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했다. 약속한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물 해주었다.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집트에서 캐넌지역으로 이동시켰고 그 이후 유대인들은 캐넌지역에서 정부를 만든

다. 그러나 그들은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바블 왕에게 지게 되고 포로가 된다.

그리고 나서 고레스 왕이 유대인들의 땅을 찾아가게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일부는 남았다. 유

대인들의 일부는 돌아가서 제 2의 예루살렘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도 로마의 공격으로 무너지게 된다.

그 시대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땅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의 삶은

우리도 믿는다. 세상을 구원하는 자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 때가 오면 하나님의 종교와 하나님 정

부가 만들어질 것이고 모든 유대인들은 그 때 예루살렘에 모이게 된다."

Q6. 세상을 구원할 자가 언제 오는지 알고 있나?

"언제 구원자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오는 시기는 인간들의 상황이나 하나님의 바람에 달려있다

. 만약 인간들이 좋은 행동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게 되면 구원자는 더욱 빨리 오게 될 것이다. 만약 이

렇게 되지 않을 경우는 하나님은 구원자에게 그 시기를 정해 준다. 그리고 어떤 일이 나는가? 하나는 예루

살렘이 재건이 되고 기도행사와 제사행사가 행해 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이 거기에 모이게 될 것

 이다.

구원자가 오게 되면 세상에 평화가 올 것이다. 전쟁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억압이나 성폭행은 없어지게

될 것이다.그리고 하나님 대한 지식이 많아지게 될 것이다.

우리책 토라에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물이 바다를 채운 것과 같이 세상을 채울 것이라고 했다. 모두 하

나의 하나님(유일신)을 믿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두 하나님을 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은 여러 종교가 나

눠져 있지만 그 때가 되면 모두가 하나의 하나님만을 믿게 될 것이다. 모든 병과 힘든 것들과 문제들이 없

어지게 될 것이고 자연재해 예를 들면 태풍이나 지진와 같은 것들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삶은 평화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많은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다가

오면 죽은 자들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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