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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기조강연 전문]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길희성)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8-10-01 12:07 조회(7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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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LE #1 : 제1회공동학술대회자료집-한국기독교의_배타주의_근원과_현상-자료모음.hwp (101.0K), Down:35, 2008-10-04 17:33:29




  ▲ 길희성 교수가 "유일신 신앙과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은 양자 모두 보편주의의 개방성과 배타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효임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유일신 신앙에 기반을 둔 그리스도교 자체의 근본 성격에 기인한다. 유일신 신앙은 지역이나 민족 공동체에 국한된 신관을 극복하고 온 인류를 내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보편주의적 성격을 지니지만, 동시에 ‘참 신’과 ‘거짓 신’을 구별하고 타종교들의 신앙을 ‘우상숭배’로 배격하는 배타성을 보인다. 특히 하나님이 한 역사적 존재인 예수를 통해서 온 인류를 구원하는 보편적 진리를 계시했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구원의 진리를 모든 민족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강한 선교 열정을 고취하고 타 종교, 타 문화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낳았다.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여기에 미국 근본주의 신앙의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와 대속신앙이 더해지면서 더욱 강화되었다. 한국 기독교는 2000년 역사를 통해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신학사상과 풍부한 영성 전통들을 도외시하는 지극히 편협한 성서 이해와 복음 이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특별하고 결정적인 계시임을 긍정하면서도 결코 유일무이한 계시는 아니고 타 종교에서도 하나님의 계시가 이루어졌고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 기독교의 배타성은 어디서 오나?
 

1. 최근 들어 공과 사를 가리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공직자들의 종교 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개신교 신자들로서, 민주사회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그들의 행동이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서 유발된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그들의 행위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다수의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다원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종교 간의 갈등이 사회 전체의 관심이 될 정도로 위험수위에 달한 적은 없었다.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국인의 민족적 정체성이 어떤 한 종교에 의해 형성되기보다는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공통의 역사적 경험,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교문화라는 공통 요소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종교의 차이에서 오는 분열적 요인보다는 이러한 공통 요소들에 의한 민족적 동질성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종교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한 집단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특히 근대 세속화(secularization)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는 하나의 지배적 종교가 사회 구성원 다수를 하나로 묶어주는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의 보루 역할을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지배적 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조 시대에 유교가 그런 역할을 했지만 근대 민주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유교는 적어도 제도상으로 더 이상 독점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아직도 유교가 한국인의 심성, 사고방식, 생활양식, 가치관 등을 음으로 양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조선조 시대에 불교와 천주교를 탄압했던 것처럼 타 종교를 억압하거나 마찰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오늘의 유교는 종교의 차이를 넘어서 전 한국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종의 시민종교(civil religion)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불교 신자이건 그리스도교 신자(천주교, 개신교)이건 한국인으로서 유교 윤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대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불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하튼 우리 사회에는 종교 갈등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분열은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장로 대통령’ 이명박 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위협을 받고 있다. 예전에 ‘장로 대통령’ 이승만 정권 때에도 정권의 기독교 편향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그 당시와 현재의 상황은 두 가지 면에서 판이하다. 하나는 이승만 정권 당시 기독교인의 수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회적 소수였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당시 불교계가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 모든 것이 달라졌다. 기독교는 이미 사회의 주류 종교가 된지 오래고 실제로 불교나 가톨릭보다도 더 큰 사회적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 편, 불교계는 종교적 각성과 더불어 각종 개혁 세력과 집단이 등장하면서 정치의식이나 사회참여 면에서도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불교계의 집단적 행보는 이러한 달라진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오늘의 불교계와 기독교계(소수 진보적 기독교 진영을 제외한)의 대립은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한 수위에 도달해 있다.

오늘의 이 모임은 일부 기독교 신자 공직자들의 몰지각한 행위가 단순히 부주의나 실수라기보다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사명감을 반영한 것이며 그러한 신념의 배후에는 타 종교에 대한 한국 기독교계 일반의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열이 작용하고 있다는 판단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우리는 묻는다. 한국 기독교의 지독한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삼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 ‘전 국민 복음화 운동’ 등 비 그리스도인들이 들으면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호를 아무렇지나 않게 외쳐 온 한국 기독교, 뻔히 위험지역임을 알았을 터인데도, 그리고 엄연히 기독교 선교가 금지된 국가임을 알면서도 무모하게 전도 여행을 감행하는 한국 교회의 선교 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2.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종교적 배타성과 공격적 선교가 흔히 생각하듯이 한국 기독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른바 ‘근본주의’ 신앙이나 보수적 복음주의 신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것이고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교는 본래부터 선교하는 종교다. 처음부터 선교의 사명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종교로 시작했다. 기독교인 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명령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실 선교 행위는 그리스도교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모든 종교가 자기가 믿는 진리를 전파하는 포교활동을 한다. 어디 종교뿐이랴. 철학자들, 과학자들, 그리고 문학가들도 진리를 추구하며 자기가 깨닫거나 발견한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 한다. 모두가 다 자기가 깨달은 진리가 보편타당한 진리라고 믿고 행동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미처 못 본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나의 주장은 내가 속한 사회나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나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욕망이 나의 주장을 사로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식의 겸허한 자기반성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든 진리 주장은 따라서 폭력성을 띠기 쉽다. 예수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했지만, 진리란 자칫하면 매우 위험한 것이 된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지나치면 자유는커녕 진리의 이름으로 타인에 대한 폭력을 부추기고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은 ‘보편적’ 진리, ‘절대적’ 진리를 주장하고 신봉하는 종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자기가 믿는 진리가 만인을 위한 구원의 진리, 전 세계를 위한 보편적 진리임을 확신하면서 그 진리를 모르는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전해야 한다는 선교적 사명감이 강한 종교일수록 진리의 이름으로 ‘제국주의적’ 폭력을 행사하기 쉽다. 종교학자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는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그리고 공산주의와 세속적 휴머니즘(secular humanism)을 진리의 보편성을 앞세운 세계의 5대 '선교적 종교‘(missionary religion)로 들고 있지만, 이 가운데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그리스도교다. 불교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모두 그리스도교에서 영향을 받았거나 배웠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하늘과 땅과 우주만물을 창조한 유일신 숭배(monotheism)의 출현은 인류 역사상 매우 획기적 사건이었다. 유일신 신앙이 출현하기 전 다신 숭배(polytheism) 시대에는 인류는 토착적 지역신, 혈연에 관계된 조상신, 부족신 민족신들을 섬겼다. 따라서 한 집단이 믿고 섬기는 신을 다른 집단들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고 모든 인류를 내고 인류 역사 전체를 관장하는 ‘보편적’ 유일신 신앙의 출현과 더불어 ‘우상숭배’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참 신’과 ‘거짓 신’의 구별이 생겨나게 되었다. 지극히 역설적이지만, 유일신 신앙은 시작부터 보편성과 배타성이라는 양면을 지니고 출발한 것이다.

유일신 신앙의 원조인 유대교의 경우,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민족신적 개념과 선민의식으로 인해 타 민족, 타 종교에 대한 배타성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주의의 폭력성을 제어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더욱이 유대교는 역사적으로 타 민족, 타 종교를 정치적으로 지배할만한 힘을 누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힘으로 개종시키려는 제국주의적 신앙의 유혹에 노출되지도 않았다. 유대교는 유일신 신앙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메시지를 인류 구원의 보편적 진리로 전파하는 선교적 종교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3. 이와 대조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새 이스라엘’을 자처하는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강력한 선교적 종교로 출발했다.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 상 유대교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과 더불어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사라진 ‘극복된’ 종교이며 ‘극복되어야 할’ 종교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애초부터 반유대주의(antisemitism)를 안고 출발한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지중해 문화권 일대로 진출한 그리스도교는 가는 곳마다 토착적 다신 신앙과 문화, 이른바 ‘이방종교’(paganism)를 파괴하거나 대체하는 배타적 종교가 되었다. 그리스-로마-이집트의 다신 숭배적 요소들을 성인 숭배로 흡수하거나 대체하는 한편, 심오한 그리스 철학 사상은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흡수해서 신학을 발전시키고 정교한 교리 체계를 수립함으로써 진리의 ‘보편성’을 강화했다. 유일신 신앙과 그리스 철학의 주지주의적 전통이 손을 잡고 이를 강력한 교권이 뒷받침하면서 그리스도교는 서양 고대와 중세를 지배하는 종교로 군림했다. 율법과 실천 중심의 유대교 신앙이 이론과 교리 중심의 신학적 종교로 변화하면서 ‘정통교리’(orthodox)의 이름 아래 인간의 자유로운 사상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유대교의 유일신 신앙과 그리스 철학이 손을 잡았다 하지만, 둘은 물과 기름처럼 좀처럼 융화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실제로 서구 지성사는 계시(revelation)와 이성(reason), 자연과 초자연, 철학과 종교의 대립과 조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의 역사였다. 하지만 둘을 결코 하나가 되지 못했으며, 크게 보아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둘은 각기 다른 길을 가게 되었으며 계몽주의 이후의 서구 사상사는 간단히 말해서 이성이 하나님의 위치를 대신하게 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유일신 신앙과 인간 이성에 대한 믿음은 서구 역사 속에서 보편주의 정신의 두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양자 모두 보편주의가 지니고 있는 개방성과 배타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유일신 신앙이 인종이나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넘어서 모든 인간을 동등한 하느님의 자녀로 보는 평등주의 정신을 고취하고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예언자적 비판정신을 심는데 기여했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타 종교와 사상을 억압하고 정죄하는 배타주의를 낳았다. 이성을 중시하는 서구의 합리주의 정신 또한 한편으로는 인간을 비합리적이고 억압적인 사회 제도나 문화 전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힘으로 작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신체성과 감성을 억압하며 문화적 다양성과 정감적 유대성을 파괴하는 획일주의의 폐해를 낳았다. 특히 유일신 신앙과 근대적 합리주의 모두 인간중심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고취시킴으로써 오늘의 전 지구적 환경위기를 초래한 이념적 원천이 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4. 유일신 신앙의 종교적 배타성은 단적으로 말해서 계시(revelation) 신앙에서 온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모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전 인류 역사를 섭리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종교들이지만, 이와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각기 특별한 계시(special revelation)를 받았다는 신앙에 기초하고 있는 이른바 ‘계시종교’들이다. 유대교는 모세를 통한 율법의 계시, 그리스도교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의 육화(Incarnation)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이슬람은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인 쿠란(Quran)을 하나님의 가장 확실하고 결정적인 계시로 믿는다. 세 종교 모두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말하는 보편적 계시, 즉 하나님이 모든 인류로 하여금 창조의 질서를 통해 그를 알 수 있도록 계시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지만, 세 종교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각 종교가 받은 특수한 계시에 대한 믿음에 있다. 바로 이러한 믿음이 세 종교 간의 갈등의 뿌리이며, 나아가서 계시 신앙이 존재하지 않는 동양 종교들과 초자연적 계시 자체를 부정하는 세속적 합리주의자들의 눈에 세 종교가 그토록 배타적으로 보이게 하는 근본 원인이다.
 
 따라서 세 종교가 자기들의 계시 신앙을 어떻게 이해하고 주장하느냐에 세 종교간, 그리고 동양 종교들에 대한 배타성과 갈등의 문제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역사의 우연처럼 보이는 한 특정한 사건을 통해 자신을 결정적으로 계시했다는 믿음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계시종교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보편성과 특별한 계시를 믿는 계시신앙과의 긴장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핵심 문제다. 그리스도교의 경우,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논하는 기독론(Christology), 그리고 이슬람의 경우는 쿠란(Quran)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피할 수 없는 문제의 핵이고 뇌관이다.

  동방교회, 서방교회, 개신교 할 것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은 간단히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다. 신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이 특별한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든 - 계시자, 중보자, 대변자, 현현, 아들, 육화 등 -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그의 뜻과 특별한 섭리를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주신 분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려면 예수를 알아야 하고 예수를 이해하려면 그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해해야만 한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유일무이한’ 계시인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없는가 하는 문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은 주어지지 않는가? 이 문제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는 한, 다시 말해 그리스도교가 계시의 독점권을 주장하는 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배타성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5. 현대 다원주의(pluralism) 그리스도교 신학은 이 문제를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룬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결정적 통로이며 타 종교와 타 문화권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지만 - 따라서 선교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  결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알고 그에게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세계를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은 타 종교와 타 문화를 통해서도 자신을 알렸으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놓았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혹은 우주의 궁극적 실재, Reality는) 결코 그리스도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학자들 가운데는 태초부터 존재하는 영원한 로고스(Logos), 즉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에 의거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괄적으로 이해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이 있다. 이른바 포용주의(inclusivism) 입장이다. 타 종교에서 발견되는 모든 긍정적 가치들 - 거룩함, 진리와 진실, 사랑과 정의, 아름다움 등 - 을 모두 우주적 그리스도의 활동으로 간주하여 그리스도교 밖에도 숨겨진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를 모르고도 ‘그리스도’라는 보편적 실재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은 타종교들에 대해 매우 개방적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종교의 논리에 따라 타 종교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배타주의보다도 더 폭력적이고 제국주의적 발상이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 종교를 단지 시민윤리적 차원에서 공존의 대상이나 예의바른 존중의 대상 정도로 간주하는 선을 넘어서 자신의 신앙적 논리에 따라 타 종교를 마음으로부터 인정하고 존경하는 하나의 길이 될 수도 있다.

6. 그리스도교 전통에는 하느님의 특수계시에 선행하는 보편계시(universal revelation)에 대한 믿음도 줄곧 존재해 왔다.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부여 받은 자연적 이성을 통해서 창조 세계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와 같은 믿음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 신학은 그리스 철학을 수용했으며, 철학과 신학의 대화나 철학적 신학을 발전시켜 왔고, 인간의 이성과 문화 일반에 대한 긍정적 태도도 가질 수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사상의 영향으로 가톨릭은 대체로 개신교보다 이러한 전통이 강하지만, 정통 개신교 신학에서도 어느 정도 보편계시를 수용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 칼 바르트의 계시 중심 신학의 강한 영향 아래 이러한 보편계시, 자연신학, 철학적 신학 등의 전통은 많이 약화되었고 현대 개신교 신학의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특히 한국 기독교계 일반을 지배하고 있는 문자주의적 성서 이해와 예수의 대속의 죽음을 복음의 핵심으로 삼는 ‘복음주의’(evangelical) 진영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한국의 주류 개신교 신학과 신앙은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물론이고, 우주적 그리스도의 개념이나 보편계시의 개념조차 도외시하고 있으며,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의 다양한 신학사상이나 영성도 무시한 채, 그리스도교 신앙을 오직 성서의 문자주의적 이해와 예수의 대속 신앙으로 축소시켜 이해하고 있다. 아무리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예수를 통해 주어지는 죄 사함을 받지 않는 한 구원이 없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인간의 이성이나 도덕적 노력, 심오한 종교적 경험이나 통찰도 아무 소용없고, 타 종교의 성인이나 성자들도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된다. 이것이 한국 복음주의적 기독교의 배타적 편협성과 공격적 선교의 배후에 있는 신학이다.                     

7. 나는 한국 기독교는 물론이고 그리스도교 일반이 지닌 배타성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타 종교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있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구원의 진리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한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신학은 이제 이 사실을 직시하고 그리스도교의 역사적 유한성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타 종교에 대해 겸손하고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의 지적, 도덕적, 신학적 의무다. 사실 배타성의 문제는 비단 기독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대 다원사회를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종교들은 이제 자기 자신의 전통만을 알았던 ‘우물 안 개구리’ 식 편협성을 넘어서 타 종교 전통들을 배우려는 겸손과 개방성을 요구 받고 있다. 이는 결코 자신의 전통을 경시해도 좋다는 것이 아니라, 타 종교와의 잠재적 갈등을 해소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서 자기 종교의 사상과 영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는 성서시대로부터 19세기 후반 내지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와 같은 아시아의 위대한 철학적 종교를 제대로 알거나 본격적으로 대면을 한 일이 없었다. 서양 그리스도교는 중세 시대까지 주로 그리스 철학을 수용하여 신학을 발전시켰으며, 근대 이후로도 각종 서구 철학사상에 의거하여 신학을 해 왔다. 칸트 철학, 실존주의 철학, 마르크스주의 철학 등이 좋은 예다. 동양의 철학적 종교와의 본격적 만남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것이 현대 종교다원주의 신학의 출현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종교학자 스미스의 지적대로,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 동양종교들과의 만남은 현대 과학적 세계관과의 만남에 못지않을 정도로 혁명적 사건이다. 둘 중의 어느 하나도 무시하고는 현대 그리스도교가 살아남지 못할 정도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사실을 먼저 깨닫고 다원주의 신학을 전개한 것은 서구 신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실로 아이러니이며 우리 아시아 신학자들에게는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현대인에게 상식이 되어버린 역사의식 내지 인간의 역사적 유한성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만든 모든 사상과 제도, 종교와 문화는 역사적 산물로서 예외 없이 상대적이며 그 어느 것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적으로 말해서, 어느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은 절대적이지만 하나님을 접하고 알고 논하는 종교는 역사적 상대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종교도 하나님 자신을 알지 못하며 드러내지 못한다. 하나님은 종교를 초월한다. 종교가 자기를 절대화하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으려면 항시 하나님의 초월성과 신비를 위한 자리를 남겨두어야만 한다.

8. 기독교 신앙이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특별한 계시에 근거한다 해도 하나님을 아는 인간의 지식은 여전히 유한하고 상대적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인간을 위한 계시인 한 역사적 상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시는 그것을 수용하는 인간의 역사성과 분리될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전달되며,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하나님 자신의 육화로 간주되는 예수 자신도 한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유대 문화와 종교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역사적 존재였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인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성서의 언어와 개념들 역시 시대적, 문화적 제약 아래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그 뿐 아니라 성서는 시대마다 새롭게 해석되어 왔다. 인간의 언어로 이해되지 않은 하나님의 계시나 말씀, 인간에 의해 해석되지 않은 ‘순수한’ 복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 해도 인간의 몫은 아니다.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 성서신앙의 배타적 편협성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데서 온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 혹은 창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특별한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 그리고 교회의 풍부한 전통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로와 창구들 자체는 역사적 상대성과 유한성을 지닌다.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가톨릭 개신교 할 것 없이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의 근본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절대화하여 하나님 자신의 위치에 올려놓은 데서 비롯되며, 한국 기독교 특유의 배타성은 여기에 더하여 교회의 풍부한 신학 전통과 영성을 무시한 편협한 문자주의적 성서신앙과 값싼 은총을 남발하는  대속신앙에서 온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예수 자신의 신앙이나 가르침과는 무관하다.

예수는 결코 자기 자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여긴 일이 없었으며,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놓은 후세 그리스도교 신학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춘 존재였다. 그는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했다. 예수는 철저한 자기 비움을 통해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 존재며, 모두에게 자기 비움과 자지 부정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도록 명했다.
 
예수는 무차별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가르쳤다. 선한 자나 악한 자를 가리지 않고 햇빛과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말했으며, 그의 삶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온갖 편견과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하나님의 초월적 사랑을 증언하는 삶이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예수의 말씀과 행위와 삶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무차별적 사랑과 보편적 구원의 의지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특정한 역사적 매개체에 의해 제한될 수 없음을 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랑 자체이지, 이 사랑의 특정한 포현이나 계시의 사건 자체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지, 예수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보편적 사랑과 은총을 깨닫고 수용하고 증언하는 인간의 응답일 뿐,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사랑에 우선하거나 인간을 구원하는 힘은 더욱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개신교 신앙의 구호는 자칫 이러한 근본적 사실을 간과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그 어떤 교리도 사상도 아니며,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나 인간의 믿음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인간을 구원하는 힘이며, 이 사랑에서 배제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는 바로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고 보여 주신 분이다.
   
9.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 기독교가 편협한 배타성을 극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한국 기독교는 이성을 중시해온 서구 신학의 전통을 충실히 이어 받아 반지성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인간의 이성은 잘 못 사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며, 신앙은 이성을 초월하는 진리를 추구하지 이성에 반하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억지 행위가 아니다. 계시와 이성은 상호 견제적이고 보완적이어야 한다.
 
  둘째, 한국 기독교는 획일화되고 단순화된 근본주의 성서 신앙과 복음 이해에서 벗어나서 2000년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 담겨진 풍부한 신학적 다양성과 깊은 영성의 전통들을 배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 기독교는 ‘오직 성서,’ ‘오직 믿음’이라는 이데올로기화 된 개신교 신학전통을 과감하게 탈피해야만 한다.
 
 셋째, 한국 기독교는 그리스도교의 울타리에 갇힌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한다. 하나님은 동양의 철학적 종교들뿐 아니라 세계 여러 민족들의 토착적 신앙을 통해서도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배우는 개방적 신학을 필요로 한다. 오늘의 세계는 더 이상 한 종교의 자기 절대화나 진리의 독점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종교는 끊임없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길 것이며 스스로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다. 특히 서구 사회와 달리 명실상부한 종교다원 사회에 살면서 풍부한 종교문화 전통을 자산으로 가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는 서구 그리스도교가 세워 놓은 울타리를 과감하게 벗어나서 세계 모든 종교 전통들과 대화하고 배우는 열린 신학의 길을 앞장서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그리스도교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길희성/ 서강대 종교학 명예교수
 
 
정관 (08-10-01 21:00)
 
유태 근본주의 같은 것은 세계의 정치 경제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동을 사실 히틀러는 감지한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래도 학자의 견해이니까 그러한 것에는 관심이 덜한것 같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기독교 선교관'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주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엄청난 훈련을 시켰습니다.
심지어 부활후에 성령을 받을때까지 기다리게 하였는데 분명 예수께서는
성령을 받은자는 이러이러 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선교를 떠나는 사람들은
그러한 성령을 받은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증인이 되라고
하였는데 즉 그 사람을 보는것이 마치 주님을 보는 것과 같아야 하는데
이것도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은 교회사업자들이 벌리는
사업이라는 면이 더 강하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을
떠벌리고 다닐적에 교회에 돈이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들이
선교사가 되어 죽을 고생을 하지만 정작 배부른 사장들은 절대 나가지 않습니다.
간혹 여행하듯이 순회는 하더라구요.... 이게 문제예요..총알받이의 대가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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