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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김진호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10-11-10 09:08 조회(7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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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김진호
 
자기중심점 편집증이 ‘미친 십자군들’ 불교 사찰 난입으로
 
이웃을 ‘적’으로…교회가 시민사회로부터 ‘왕따’ 당하는 이유 
 
  
»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 
  
 
1991년 요맘때였다. 학문의 폭이나 깊이에서 당대 한국 최고의 신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변선환 당시 감신대 학장을 정죄하는 교단 총회의 결의가 있었다. 즉각 교수들과 학생들, 그리고 많은 목회자들의 항의와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또한 안병무·서광선·이재정 등 교단을 망라한 한국의 대표적 신학자들이 공동으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21일, 대형교회 목사들이 중심이 된 대한감리교회 교리수호대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총회의 징계 결의가 준수되지 않으면 교단 분열을 각오한다는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5월, 변선환 교수는 교수직을 면직당했고 목사직이 회수되었으며 출교 처분되어 교인 자격까지 박탈당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자행한 신학자에 대한 징계 사례 중 가장 극한적인 경우에 속한다.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노신학자에게 이런 가혹한 처결을 교단 분열 운운하면서까지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신학적 신념이 자기들의 신앙관과 다르다는 이유, 놀랍게도 이것이 전부다. 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그것은 “사탄과의 싸움”이었다.
 
도대체 저들을 그토록 격동시킨 신학적 신념의 내용은 무엇일까. 선생은 자기의 신학을 ‘타종교의 신학’이라 불렀다. 자기의 언어와 관행,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만남의 과정과 태도를 강조하는 신학이다. 해서 타종교를 자신과 닮도록 동화시키거나 타종교에서 자기와 닮은 요소를 찾아내어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타종교의 언어와 관행을 존경하고 그 ‘차이’에서 서로 배움을 얻는 만남의 과정이 중요시된다. 나아가 종교들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타자를 함께 바라보고 자신의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그러한 성찰에 이르는 것에 관한 신학적 담론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타종교의 신학이 종교간 대화모델 가운데 가장 훌륭한 관점이라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감리교회의 교리 수호를 강조하는 목사들은 이러한 신학을 ‘사탄의 행태’라고 보았다. 물론 이것은 그 교단 권력자들만의 생각은 아니다. 한국 교회 일반은 자기 외에는 모든 신앙과 신념을 폄하하고 심지어 악마화하기도 했다.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고강도의 자기중심주의적 편집증을 신앙이라고 오인해온 사례가 무수히 많다.
 
바로 그러한 신앙적 편집증의 한 증상이 최근 몇몇 불교 사찰에 난입해서 그 종교를 모욕하는 ‘미친 십자군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물론 알다시피 이런 행동이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이제까지 한국 그리스도교는 이런 식의 무례함을 수없이 벌여왔다.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신앙을 모욕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중요한 덕목임을 끊임없이 강변해왔다. 해서 수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이웃이 삭제되었다. 세상은 ‘우리’와 ‘타자’로 이분되었고, ‘우리’에게 동화되지 않은 타자는 ‘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이 신앙의 문법처럼 한국 교회를 둘러싸고 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한국 교회 일각의 사고방식과 냉전적 국가주의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 간의 끈질긴 밀월관계는 바로 이런 생각의 유사성과 결부되어 있다. 교회는 이웃을 적으로 상상하고, 한국 사회는 ‘우리’의 외부를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교회와 국가의 극우 냉전주의자들은 공존의 논리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이웃을 적으로 상상했고, 적개심을 증폭시키는 자들의 이웃이 되었다. 이웃이 전도된 종교가 된 것이다. 이것이 요즈음 교회가 시민사회로부터 왕따당하는 이유다.
 
 
 
 
 
 
미선이 (10-11-10 10:39)
 
좋은 글이다. 개인적으로는 김진호 실장도 이런 글을 더 자주 쓰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누군가 예전에 나와 제3시대 김진호 실장과의 차이를 물은 적이 있다.
나는 김진호 실장을 대표적인 3세대 민중신학자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선
보다 상세하게 <화이트헤드와 새로운 민중신학>에서 한 칩터까지 할애하며 언급한 바 있다.

쉽게 말하면, 나의 입장은 기존의 것을 대체하려는 대체론자에 가깝지만,
김진호 실장은 거의 해체론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예전에 이분의 글 중에는
"대안은 없다"라고 볼 만큼 매우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시각을 피력한 적이 많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김진호 실장에 대한 부당한 비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김진호 실장의 글에 대해
너무 어렵고 현학적으로 쓴다는 것에 대한 불만들이 가장 대표적으로 토로하기도 했었다.
즉, 민중신학자라는 사람이 도대체 민중이 알아먹기 힘든 용어를 쓴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용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나로선 그 내용의 타당성이 1차적으로 더 중요했었지
글을 쓸 때의 학문적 용어의 어렵고 난해함은 보다 부차적인 문제였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나 자신이 스스로 공부를 해보면 얼마든지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비판되어야 할 지점은 주장의 내용도 타당하지도 않으면서 동시에
일부러 어려운 용어를 쓸 때는 그야말로 대중들 위에 군림하는 지식인들의 권력놀음만 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김진호 실장의 글은 내가 볼 땐 진정성은 있어 보인다.

또하나, 김진호 실장의 글 중에서 탁월한 점 하나는
우리 안에 은폐된 폭력의 기제들을 잘 드러내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흔히 후기구조주의 사조에서도 일상적 미시적 파시즘을 폭로하는 기법들을 자주 보여주기도 했었다.

반면에 나와는 철학적 백그라운드가 다소 차이가 있어
결국엔 대안론자보다는 좀더 해체적 급진성을 표방하는 해체론자에 속할 따름이다.
그의 저작 중 특히 <반신학의 미소>는 이에 대한 대표적 저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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