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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창조과학이 기독교인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커트 놀)    
  글쓴이 : 미선이 날 짜 : 07-07-07 12:13 조회(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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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창조과학을 지지할 수 있는가?

- 창조과학이 기독교인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
 
커트 놀.이병권 옮김
 
편집자주_ 한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창조과학에 관한 글이다. 이 글은 감리교 신자인 Kurt Noll 박사가 켄터키 주에 위치한 Wesleyan College 종교 철학과 학장으로 재직시 쓴 에세이이다. 저자 스스로가 자신의 글에 대한 토론을 즐기며, 또 환영하기 때문에 궁금증이 있으면 직접 연락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본다.(e-mail; KLNoll@kwc.edu)
 
 
이 글의 목적은 저자 개인의 성서관, 신앙관을 주장하는 게 아니고, 기독교인인 저자가 ‘창조과학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글을 번역한 이병권 박사는 University of Tennessee의 생명과학 연구교수로 있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의 신앙관에 중점을 두는 대신에, 독자 여러분 각자의 성서, 신앙관으로부터 같은 질문을 해보시고 또, 나름대로의 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최근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Can a Darwinian be a Christian?)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나는 그 책 제목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당연히 다윈주의자(저자는 본 글에서 진화, 진화론 그리고 다윈주의자 등을 구별해서 쓰고 있지 않다)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도 다윈주의자가 될 수 있다.

나는 기독교인이란 “그 어떤 것도 진실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빌 4:8) 정의하고 싶다. 기독교인은 진실을 추구하고 또 그것을 받아들이길 원하기 때문에, 만일 다윈의 이론이 진실이라면, 기독교인은 다윈주의자라고 말하는 게 논리적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United Methodist Church의 구성원들은 공립학교에서의 생물학적 진화론 교육을 지지하는 것이며, 가톨릭에서도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내에서 진화론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지지 받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같은 이상한 제목의 책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그 책은 과학을 줄곧 부정해온 기독교내의 특정 그룹을 상대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그 그룹은 자신들을 “창조주의자(Creationists)”라 부른다.(저자는 특별히 창조주의를 창조과학과 구분하지 않는다.) 이들은 조직화가 잘 돼있을 뿐 아니라 자금도 풍족하여 미국사회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심지어 내가 일하는 학교내에도 이들이 벌이는 말장난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는 자연과학을 부정한다고 믿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다.

이 글은 다윈의 이론을 변호하고자 쓴 글이 아니다. 당신이 진화의 본질과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이 설명하고자 하는 바를 자세히 알고 싶다면 아래 나열한 참고 문헌을 살펴보길 바란다.(참고 문헌들 대신에 좋은 웹사이트를 소개한다. www.talkorigins.org)

이 글에서 나는 위에서 말한 책의 제목과는 반대되는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과연 기독교인이 창조과학을 지지할 수 있는가?”(Can a Christian be a Creationists?)

물론 나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기독교인은 창조과학을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창조과학자들이 내 의견에 반대할 것은 잘 알지만, 나는 관계치 않을 것이다. 난 그저 아주 단순한 진실 하나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 진실이란 바로 ‘창조과학을 지지하거나 믿는 기독교인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을 생각해보자.

첫째, 나는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이라 부를 수 있는 정의는 바로 기독교인이 진실을 추구하고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거짓된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들었지만 신약의 한 구절은 우리들로 하여금 “어떤 것이든 진실된 것은” 받아들일 것을 장려하고 있다. 나는 바울의 서신서를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인은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는 이글을 통해 창조론은 진실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최소한 세 가지 단계에서 창조론은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상의 두 가지 지적이 옳다면,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기독교인은 모순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즉, 진실을 (그게 무엇에 관한 것이든) 받아들여야하는 기독교인이 거짓됨을 장려하는데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은 내 의견에 반대할 수도 있으며 그럴 권리도 있다. 하지만 아래에서 지적할 창조주의의 세 가지 오류를 고려해 주길 바란다.
 
 
창조과학의 세 가지 오류

1. 창조과학은 과학에 대해 잘못된 인식(무지)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러한 잘못된 인식을 유포하는데 열심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다윈의 자연 선택론을 대신할 수 있는 이론이라고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은 거짓이다. 다윈의 이론은 과학이다. 그러나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일 뿐이다.

과학이란 자연에 관하여 질문을 하는 하나의 방법론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자연에서 관찰된 특정 사항들을 기본으로, 자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가설을 세운 후, 그 가설을 시험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개발해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론에서는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의문) 자체가 필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이 반 종교적이거나 신과 반대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과학이 과학으로서 인정받는데 특정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은 신에 대해 중립적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창조과학은 신에 관한 한 중립적일 수가 없다. 창조과학은 시작부터 일련의 종교적 교리나 해석을 염두에 두고, 과학이 그들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예들 들어, 2003년에 켄터키 Owensboro에서 열린 창조과학자들의 강연에서, 회원이 되려면 자신의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가져야 하며 네 가지 강령을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네 가지 강령이란 성경에 관해 몇몇 사항을 꼭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령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그들만의 “과학”계에 발 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 강령이란, 성경은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무오한 것이며 모든 생명체는 “창세기에 기록된 그대로 신의 직접적인 창조행위의 결과로 만들어 졌다” 등등이다. 여기서 드러나듯이 이러한 강령은 애초부터 과학적 방법론을 배제하게 만든다.

실제로 창조과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과학”이란, 성서에 기록된 자연에 관한 설명을 시험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를 막고 있는 것이다.(사실 실험할 필요도 없다) 이건 분명히 말하지만 과학이 아니다. 심지어 유사 과학이나, 의사 과학보다도 못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예가 과학과 창조과학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어느날 웨슬리가 차에 시동을 거는 도중 이상한 소음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가까운 서비스 센터로 차를 몰고 갔다. 정비공은 웨슬리의 설명을 듣고 나더니, 후드를 열고 엔진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한참 후 정비공은 “당신 차가 이상한 소음을 내는 이유는 하나님이 이렇게 되게끔 엔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경우 사실 정비공의 말이 맞을 수 도 있다. 그러나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정비공은 웨슬리의 궁금증을 풀지는 못한다. 웨슬리에게 필요한 정비공은 이상한 소음을 내는 물리적 실체를 엔진으로부터 찾아내서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정비공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위의 경우 웨슬리의 궁금증 (질문) 과는 무관한 것이다.

위의 정비공과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자들도 과학자로서는 실패한 사람들이다. 설사 하나님이 존재하고 (사실 나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 이 우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실은 자연과학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우주는 신에 의한 창조가 옳고 그르냐에 관계없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 실체이다. 그리고 과학은 이러한 물리적 우주 (실체)를 연구하는 것이지 신을 연구하는 분야가 아니다.

지금쯤 아마도 많은 창조주의자들이 나의 이러한 의견이 무신론자들의 주장과 다를 게 없는것 아니냐고 흥분하고들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들은 나의 주장이 소위 말하는 형이상학적 물질주의(metaphysical materialism)와 유사하다고 비판하곤 한다. 대단히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여 나를 물리적 우주의 존재만을 믿는 사람으로 몰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들의 비겁한 게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과학자나 철학자들이 형이상학적 물질주의자들 일 수 있으며, 난 그들의 관점이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것은 그보다 더 많은 과학자나 과학 철학자들이 종교을 갖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내 주장의 핵심은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을 하는 것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에서의 물질주의는 자연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 중의 하나인 것이지, 종교적 이상이나 주장을 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이쯤해서 창조과학자들이 갖고 있는 첫 번째 문제점을 요약해 보면, 창조과학이 과학임을 주장함으로써, 스스로가 거짓임을 드러내고 있다. 만일 그들이 주장하는 창조과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진실되게 고백한다면, 우리 기독교인은 그들의 주장을 중요한 종교적 관점중 하나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들은 여전히 그들이 과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진실된 것” 만을 수용해야 하는 기독교인들은 거짓 과학인 창조과학을 부정해야 하는 것이다.
 
 
2. 창조과학자들은 성서와 관련해 그릇된 주장을 선전하고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성서의 창조이야기가 자연과학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그들은 성서가 신성한 계시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앞세운다.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그 옛날 성서 기자들은 과학에 대해서 무지했으며, 우주의 기원 등에 관해서 아무런 지식이나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만약 하나님이 (아무것도 모르는) 성서기자들을 감화시켜 성서가 쓰여졌다면, 충분히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서가 그런 감화없이 단순히 인간이 썼다고 하면, 성경은 자연과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게 된다. 하지만, 성서가 신성의 도움에 의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를 정당화시키진 못한다. 하나님은 가공의 이야기 (설화, 비유등)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당신의 목적 (인간구원과 같은)을 성취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성서가 신의 도움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과학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그 많은 성스러운 비유들이 실제 일어난 일들이 아닌 가상의 이야기라는 사실 때문에 당혹스러워 하진 않을 것이다. 신의 영감에 의해 쓰여진 잠언이나 전도서 등도 과학이나 역사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글들인 것이다. 나는 창세기의 첫 부분이 신의 영감으로 쓰여졌지만, 가상의 이야기라고 믿고 있으며, 이런한 사고방식으로부터 아무런 문제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또한 역사학자로서 나의 연구 결과도 성서의 창조 이야기는 설화 (또는 신화)라는 것을 더 확신시켜 주었다: 그것은 종교적 사상을 가르치기 위한 신성한 설화(pious fiction)인 것이다.

그러나 오직, 본 글의 진행을 위해서 창조과학자들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즉, 신성의 감화로 쓰여졌기 때문에 성서는 자연과학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성서가 신의 감화에 의해 쓰여졌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창조과학자들은 그 대답을 성경 내에서 찾아낸다.

성서의 한 구절이 말하길 “모든 성경(all writings) 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후서 3:16)

원문의 Writings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서의 경전만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사실은 위 구절을 신의 감화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가정해 보자. 즉, 위의 성서 구절(또는 그와 유사한 내용의 구절들)이 성서가 성령의 계시로 쓰여졌다는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우리는 창조과학자들의 주장을 배척해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어떤 책의 본문 구절은 그 책의 권위를 성립시키지 못한다. 만일 창조과학자가 성서의 구절을 이용하여 신의 계시로 그 성서가 쓰여졌다고 주장하면, 이슬람교도들은 코란의 구절을 인용하여 똑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주장에 그 어떤 반론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코란의 수라(Sura) 55 절은 말하길 “가장 은혜로운 신! 코란을 주신 분”, 또 다른 구절에선, 이슬람 신은 “진실의 코란을 내려보내 인간들이 읽게 하시고”(수라 17:105)라고 말한다. 성서의 권위를 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정당화시키는 이러한 잘못된 논리는 어떤 종교 집단도 자신들의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는 핑계거리를 제공해 준다. 그러한 논리에 의하면, 우리는 조로아스터교의 성전인 Gathas나 몰몬교, 힌두교의 경전 등도 신의 계시에 의해 쓰여진 성스러운 책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심지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성령의 감화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단순히 이 글은 하나님의 계시로 쓰게 되었다고 몇 자 적으면 될 게 아닌가! 그리고나서 그 구절을 내 글이 하나님으로부터 감화로 쓰여졌다는 증거로 제시하면 된다.)

만일 성서의 본문 구절을 인용하여서는 그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 신성의 계시를 확신할 수 있는가? 교회의 지도자들, 즉, 교황이나 목회자들이 성서는 신의 감화로 쓰여졌다고 성명을 낼 수도 있겠다. 문제는 왜 우리가 그들의 결정을 신뢰하여야 하는가이다. 혹은 초대 교회의 교부들이 한데 모여 오늘날의 성서를 탄생 시키는데 성령이 주도 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주장만을 듣고 있을 뿐이다. 혹자는 자신이 성서를 읽을 때면 성령이 자신을 이끄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그 개인이 성서를 주관하는 것과 다름이 없게 된다.

사실 성경 밖에서 성경의 권위를 받쳐줄 근거를 찾고자 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것은 그 근거에 관한 신뢰성 여부이다. 왜 우리는 그 근거를 믿어야 하는가? 이 질문은 성서의 성령에 의한 감화를 믿는 여러분 각자에게도 해당되는 질문이겠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의 판단을 진정 신뢰할 수 있는가? 어떤 증거들이 당신에게 확신을 주는가? 환상? 내면의 소리? 혹시 그 환상이나 소리가 단순한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았는가?

만약 성서 밖에서의 근거도 성령 감화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면, 성서의 텍스트의 내용이 성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된 것임을 정당화 시켜줄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해, 우리는 성서속의 어떤 예언자가 실제 생긴 일을 그전에 예언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가? 혹은, 우리가 이 우주는 성서에서 말한 그 해, 그 때에 정확히 시작되었다는 것을 증명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우리가 위의 상황을 증명할 수 있다하더라도, 그러한 실험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설사 이러한 시도들이 의미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해도, 그러한 시도 자체가 다름아닌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거부될 것이 명백하다. 왜? 성서 내용에 대해 질문하고 테스트한다는 사실과, 과학적 방법에 의한 실험이라는 단순한 이유 (결과에 상관없이) 때문에, 과학적인 방법(론)이 성서의 권위보다 상위에 있다고 해석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성령의 지도하에 쓰여진 성서의 권위가 그 무엇보다도 우선이라고(인간들이 만든 과학적 방법론을 포함하여) 주장한다. 바로 이 같은 이유로, 그들은 많은 기독교인들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것이다. 역사학자(고고학자)와 과학자들에 의해 성서의 특정 이야기들이 사실성이 없다고 판명되면, 창조과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낳게 한 연구가 왜곡 (또는 방법이 잘못) 되었다고 하면서 단순히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무시한다고 해서 있는 사실을 무효화 시킬 순 없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다. 성서는 그 자체로 신의 영감에 의한 것이라 주장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단지 창조과학자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 뿐, 우리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성서이야기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자들만이 그들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서가 하나님의 계시로 쓰여졌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참된 기독교인들은 성서가 신의 감화에 의한 것인지의 여부에 상관없이, 과학적 방법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창조과학자들보다 훨씬 더 성숙하게 성서가 쓰여진 원래의 목적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성서가 역사적, 과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성서는 역사적 또는 과학적인 측면에서는 상당히 부정확할 수 있으나, 여전히 우리의 신앙 (faith)을 보호하며 성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주지한다면,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연구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던 그 옛날의 성서 기자들에 의해 기록된 글에서 나타나는 불합리하거나 모순된 기록(지금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들은 의외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변함없이, 그때나 지금이나 성서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돼는 양식인 것이다.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보자. 초대교회의 전통과 성서에서 모두 말하고 있듯이, 둘 또는 그 이상의 신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아래 모이면,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게 되며, 모인자들의 신앙을 더욱 자라게 해준다.(마 18:20, 요 14:26) 당신은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위의 사실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는가? 내 생각에 대답은 “한 번도 없었다.”일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참석했던 모든 예배에 여전히 하나님의 성령은 함께 했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감화는 역사적, 과학적 정확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성서가 쓰여진 목적에 관한 정의는 가톨릭과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는 그 근저에 신앙(faith) 과 믿음(belief) 이란 단어의 차이점을 인식하는데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지만, 거기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신앙(faith)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trust in God)를 말한다. 믿음(belief)은 어떤 것이 진실하다는 생각에 대한 확신을 나타낸다. 이 둘은 같은 용어가 아니다. 정통 기독교에서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 은혜의 선물이며 결코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인간에게 신앙을 요구하지 않으시며, 단지 신앙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분이시다. 대조적으로, 믿음은 인간의 노력과 사고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신앙은 지속되나 믿음은 변한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사고력이 향상됨에 따라 우리의 믿음은 변할 수밖에 없다.

만일 어떤 기독교인이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더라도(확실한 증거와 이성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고), 이러한 결정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앙을 해치거나, 그것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한 인간의 기나긴 삶 속에서 신앙은 깨어 있는 것처럼 때론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며, 그 사람의 믿음은 그가 가진 지식이 변함에 따라 같이 변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압도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당신의 신앙은 당신 자신의 결정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앙과 믿음에 관한 이러한 차이를 감리교(the United Methodist Church)에서는 ‘사중표준(the Quadrilateral)’이란 교리로 설명하고 있다. 감리교인의 믿음(beliefs)에 권위를 부여하는 네 가지 표준은 1) 인간의 이성, 2) 인간의 경험, 3) 교회 전통, 그리고 4) 성서이다.

로마-가톨릭과 유사하게 성서는 교회 전통과 상호 조명되며, 감리교에서 이 두 가지는 다시 이성과 경험을 통하여 재조명 된다.

따라서 성서 자체가 궁극적인 권위를 갖는 게 아니라, 네 표준간의 상호 교류의 결과가 권위를 갖는 것이다. 성서는 다른 세 가지 표준과의 대화 속에서 그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위에서 설명하려고 한 성서에 대한 믿음(belief)과 하나님을 향한 신뢰(faith)의 차이점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본 글을 통해서 자연과학의 영역과 성서의 영역을 구분하려고 하는 나의 의도가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성서는 어떤 과학적 가설들이 참되고 어떤 가설들이 틀린지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 주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방법론은 오직 과학적 가설에 한해서만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생물의 진화를 받아들이고 공부한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닌 것이다.

나는 진화를 인정하는 기독교인이다. 이 말은 성서 및 교회 전통과 다윈의 자연 선택설이 공존할 수 있다는 보다 성숙된 가치관을 가지고 진화 생물학이 줄 수 있는 많은 통찰력을 수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창조과학의 두 번째 문제점을 요약하면, 창조과학자들은 성서가 진화론을 부정한다고 선전힘으로써, 성서가 마치 그릇된 주장을 내포하고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성서의 목적은 신앙심의 고취에 있는 것이며, 과학적 연구라는 분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성서가 성령의 감화로 쓰여졌는지의 여부가 그 내용이 과학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지도 않는다.
 

3. 창조과학은 인간 윤리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유포시키고 있다.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믿으면 필연적으로 비윤리적 행위를 조장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대체로 그러한 논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기 마련이다. 만약 모든 생명체가 맹목적인 과정에 의해 진화되어 온 결과물이라면, 이 우주는 그 어떤 목적이나 도덕적 체계를 갖지 않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이 우주에 도덕적 체계가 결여되어 있다면, 인간에게 도덕적 순종을 명령하는 신도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인간은 그 행위에 대한 아무 윤리, 도덕적 제한도 없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도덕적 무정부사태를 택하느니 다윈을 거부하는 게 옳다고 결정한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의 윤리적 행위를 방어하기 위한 노력에 공감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주장은 아주 단순한 이유로 그릇됨이 드러난다. 앞서 나열한 그들의 논리는 시작부분은 명쾌하나 곧 결함을 보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윤리적 구조가 없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의 도덕성에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인간 스스로 도덕적 제한을 가지지 못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반대로 도덕과 윤리는 우리에게 필수적이라는 것을 오히려 진화론은 암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유대-기독교는 인간이야말로 신의 창조물의 결정체라는 믿음을 유지해 왔다. 물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창 1:26-28)과 우리의 존재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야말로 우주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이라는(시 8) 믿음은 성서로부터 기원하는 것이다.

나는 이제 그런 믿음(belief)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근시안적, 자기중심적, 교만한 믿음들을 버려할 때가 온 것이다. 우주는 수십 억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 인간이 이 땅을 걸어온 기간은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눈에 띄지도 않는 시간들인 것이다.

기독교 신학자이자 과학자인 Arthur Peacocke의 적절한 비유에 의하면, 45억년 지구의 역사를 48시간으로 줄여 놓았을 때, 포유동물은 최근 30분 정도 존재한 셈이고, 우리 인류는 이제 막 1초 전에 이 땅에 발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현재 대략 1,500만 종의 생물들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걸로 추산되는데 반해 그 전에 이미 수 억 종의 생물들이 멸종하였다는 것이다. 유전자 상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단순한 돌연변이부터 복제상의 더 큰 변화들)과 자연에 의한 선택은 이와 같은 다양한 생물들을 만들어내고, 그들 중 대부분은 삶과 죽음을 반복하다가 인류가 출현하기 오래 전에 멸종해 버린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인간이 그 최종 목적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또한 인간과 인간의 윤리적 행위가 우주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다. 우주는 오직 우주의 존재 그 자체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다. 목적 없는 우주의 사건들과 자연 선택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을 만큼의 크키로의 확장을 야기했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증명할 수 없지만 이성적인 가정으로 판단되는), 그리고 만일 신이 ‘이 세상을 사랑한다면’(우리 기독교인이 믿고 있듯이), 그렇다면 신은 조그만 기생충으로부터 수많은 은하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것을 사랑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눈엔 우리 인간이 새들 보다 더 귀한 존재라고 하신 말씀(마 6:26)보단, 전도서의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고, 인간의 운명이 동물의 그것과 다를 게 없다는(3:18-22) 표현이 좀 더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기독교인은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낌없이 쏟아 붇는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한다 “신 자신마저 죽이는 사랑, 그리고 그 죽음을 삼위일체의 생명으로 흡수하는 사랑” 이러한 사랑은 인간만이 아니라, 별 볼일 없는 기생충들의 세계에서부터, 광대한 은하들의 모임들까지도 그 대상인 것이다. 우주로부터 기생충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윤리 코드라는 것은 없다.(창조과학자들의 이 전제만은 옳다)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는 하나님의 행위도 단순한 윤리적 행위라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신의 초월성을 보여주는 행위이다.(나는 바울이 로마서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관점이라 생각한다) 실재하는 물리적 우주는 우리 인간의 존재에 전혀 무관심하며, 어떤 윤리 체계가 우주를 지배한다는 증거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의 윤리, 도덕 체계는 어디서 유래하는가? 바로 인간,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도덕 체계라 할 만한 것을 만드는 존재들은 예외 없이 자아의식을 가지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동물들이다. 자아의식을 가진 동물들 모두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며, 예상할 수 있듯이, 그런 동물들은 특별한 행위 규범같은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반면에, 개나 침팬지와 같은 사회적 동물들은 학습된 행동양식을 가지고 있다. 그 동물들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를 조화롭게 유지시켜주는 쓰여져있지 않는 코드를 학습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침팬지를 통하여 아주 초보적인 인간 윤리의 기원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침팬지가 그들의 공동체 생활에 ‘적합한’ 행동양식을 학습하는 것. 우리 인간도 상호 공존의 필요성 때문에 규칙이 필요한 사회적 동물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름아닌 진화에서 유래한다.

약 이백만년 전, 거친 아프리카에서의 생존 여부는 사고 능력을 증가시키는 방향을 선호하게 되었다. 뇌 크기의 증가로 인해, 아이는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 탄생한 후, 어미의 몸 밖에서 뇌의 크기가 충분히 자라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이러한 출산 형태의 대가로 인류는 태어난 후 수 년 동안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자손을 갖게 된 것이다.

당연히 아이를 더 잘 양육시키는 부모의 아이들이 생존에 훨씬 유리했을 것이고, 그처럼 양육에 더 관심을 갖게 되는 유전적 형질을 가진 부모의 자손들이 머지않아 인류의 주 집단을 이루게 된다. 이렇게 오랜 양육과정을 통하여 성립된 행동양식들이 보다 큰 사회적 단계로 확장될 때, 우리가 윤리규범이라 부르는,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규칙을 낳는다.

인간 윤리성의 기원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인 것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기록한 것이다. 십계명과 같은 행위코드는 성서가 쓰여지기 수백 년 전에 이미 기록되었으며, 이는 당시 사회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인간들의 작품인 것이다.(흥미롭게도, 진화생물학이 요구하는 인간윤리성의 기원은 신이 윤리성을 계명화시켰다는 종교적 관점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다윈론자들이 주장하는 바, 윤리성은 ‘적자생존(약육강식)’에서 비롯된다는 관점에 대해서도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창조과학자들은, 만약 나의 설명이 옳다면, 하나님이 인간 윤리에 무관심 하며, 따라서 인간은 얼마든지 사악한 행위들을 거침없이 저지를 것이라는 잘못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 윤리체계를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우주가 우리의 선.악 개념에 철저히 무관심하게 보여도 (성서 욥기의 주제), 그렇다고 해서 우주내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인간행위에 무관심하다는 결론엔 도달할 순 없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설사 인간성과 윤리체계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나 명령으로부터 기인하는 게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그 한 위격이 십자가에 몸을 바쳤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이 얼마만큼이나 우리와 가까이 있으며, 또한 얼마나 우리를 염려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며(요일 4:8), 사랑은 결코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고전 13:5) 하나님은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대신에 그저 끊임없이 내어주는 것이다. 인간도 그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로마서(1-8장)에서 보이는 바울의 신학적 사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은 그토록 복음과 (신의 계시로 받았다는) 율법을 구별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한 게 아닐까?(갈라디아서에서 볼 수 있듯이, 때론 과장된 주장들을 펼쳐가면서 까지)

창조과학자들의 논리 중 가장 근본적인 실수는, 어떤 것(실체나 관념)의 가치는 그 기원을 보고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논리로부터, 그들은 인간의 윤리 행위가 가치를 가지려면, 하나님이 도덕, 윤리체계의 부여자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의 기원은 그 가치를 측정하는데 아주 미미한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인간과 인간의 윤리도덕 체계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지 않았다 해도, 여전히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있어서 인간은 기생충이나 수많은 다른 별들과 함께 무한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창조과학의 세 번째 문제점을 요약하자면, 창조과학자들은 인간 윤리에 대해 비논리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성, 윤리체계의 부여자가 아니라면, 인간에겐 그 어떤 윤리규범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하고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설계해야만 하고 윤리체계를 명령해야만 하는 근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 나는 창조과학을 믿는 기독교인이 왜 모순 속에서 사는지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 “진실한 것만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에게 창조과학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유로 창조과학자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아야 하는가? 나의 대답은 간단히 “그럴 수 없다”이다. 신앙(faith)의 각 지체들은, 자신들의 믿음들(beliefs)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래 두 가지 사실만은 지적하고 싶다. 그리고 이 점에선 그 어떤 타협도 바라지 않는다.
첫째, 대학교수로서, 나는 창조과학자들에게 과학자 흉내 내는 짓을 당장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종교는 과학이 아니다. 물론 종교는 과학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진실된 것을 수용해야 하므로) 그러나 과학적 방법론은 그 어떤 종교로부터도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많은 창조과학자들이 과학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들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만 아는 체 하길 바란다. 어떤 창조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론이 ‘형이상학적 물질주의’를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철저히 오해하고 있다. 그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에 관해 추론하는 사람은 (내가 이 에세이를 통해서 해 온 것과 같은), 그 추론이 자연과학이 하는 추론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지해야만 한다. 하나님에 관한 추론은 오직 하나님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만 깊은 연관성을 갖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한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모든 기독교인이 진실된 과학을 수용하고, 쓰레기 과학을 버릴 것을 당부한다. 더불어 각 교파나 교구마다 자연과학에 관한 교육을 증진 시켜주길 바란다.여러분이 진실된 것을 수용하기를 원한다면, 진화와 진화론을 포함한 자연과학의 많은 성과들을 배우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창조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주류과학계에서 불공정하게 대우 받는 것처럼 보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실제 벌어지는 현상은, 우리 교회(기독교)가 과학을,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기독교적 차원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 잡는 일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한다면, 여러분이 기독교인이면서 아직 진화와 진화론에 대해 잘 모른다면, 여러분 앞엔 아직 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는 셈이다. 여러분은 찰스 다윈이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리어, 기독교인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진화와 진화론이 우리 기독교인이 이 세상을 바라보는 데 빠져 있었던 ‘잃어버린 고리’를 제공해 주었다고 믿는다. 아래 추천한 책들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 글쓴이가 추천한 참고서적 중 그나마 번역자가 읽어본 것만 소개합니다.
Ernst Mayr, What Evolution Is(Basic Books, 2001)
Alister E McGrath, Science and Religion: An Introduction(Blackwell, 1999)
Michael Ruse, Can a Darwinian be a Christian?(Cambridige University Press, 2001)
Robert T Pennock, Tower of Babel(MIT press, 2000)
Gregory J Riley, The River of God(Harper, 2001)
 
 
- 출처 : 기독교사상 6월호 http://www.clsk.org/g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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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비정규직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미선이 7735 12-29
85 美 진보진영, 오바마 취임식 ‘릭 워렌 기도’ 반발 (1) 미선이 8436 12-27
84 김경재 목사 즉문즉설, "믿으면 축복받는다 종교는 가짜" (2) 미선이 9449 11-24
83 “WCC도 개혁하라”… 운동 약화 지적 미선이 8188 11-24
82 NCCK 회장에 김삼환 목사 선출 미선이 9913 11-20
81 “토착화되고 일상성 담은 예배음악 절실하다” (7) 미선이 8294 11-10
80 개신교 진보진영의 한계? (2) - 조용석 목사 (1) 미선이 8535 10-08
79    조용석 목사님께 드리는 재답변 - 정강길 미선이 8852 10-08
78 한상렬 목사 석방 촉구 재미기독학자 성명 미선이 9672 09-22
77 “기독교와 불교는 소금과 목탁이어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미선이 8280 09-13
76 기독자교수협 “불교계 저항 당연” 미선이 7262 09-05
75 “예수처럼 ‘질긴 놈’이 되자” 미선이 8532 08-16
74 “촛불시위는 신자유주의를 가로막고 선 의미” - 미디어오늘 (1) 마루치 8477 07-14
73 [인터뷰] '살림이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를 만나다 관리자 11289 07-11
72 “철거된 <촛불교회>, ‘촛불’과 함께할 것” 미선이 7742 07-08
71 예수 부활은 신화? ‘기원전 1세기 석판’ 해석 싸고 논쟁 미선이 9045 07-07
70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SBS취재 인터뷰 내용 (2) 미선이 10662 07-06
69 김경호 목사, "장로가 대통령인데 그리스도가 조롱 당해 탑돌이하듯 1, 2년 평화적으로 촛불… 미선이 8822 07-02
68 경찰의 폭력진압과 강제연행에 대한 기독인 행동주간 - 에큐메니안 마루치 7669 07-01
67 미 쇠고기 반대 기도회, ‘촛불교회’ 철거.. 목요기도는 계속 미선이 8965 06-30
66 <촛불교회> 이름을 이어가다 -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기독교대책회의 현장 보고서 (1) 미선이 9059 06-27
65 오바마, 복음주의 신도 표심잡기 '총력' - 연합뉴스 (1) 마루치 9065 06-22
64 개혁성향 개신교 원로 33인 '비상시국선언' 발표 미선이 7657 06-13
63 <예수의 독설> 저자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 오마이뉴스 마루치 11352 06-12
62 예수 천국? 난 즐거운 지옥을 꿈꾼다 - 오마이뉴스 마루치 8400 06-12
61 NCCK “정부, 인도주의 대북지원 조속히 시행하라” 미선이 7321 05-08
60 개축 평양<봉수교회>, 북녘·해외동포와 7월경 공동예배 예정 미선이 8101 05-08
59 “기독교 선교의 완성은 개종인가?”, 진보 신학자들의 선교와 교리에 관한 토론 미선이 8726 04-27
58 기장 “총회 직원들 무죄 밝혀낼 것” 미선이 8301 04-22
57 월18일(금) 오후3시, 청파교회에서 생명의 강지키기 기독교행동 출범식 열고 가두행진! 포도즙 8869 04-19
56 예수살기, 한미정상회담..한미관계 재정립 촉구 미선이 8362 04-16
55 종교인협의회, 노회찬, 김근태 등 운하반대 후보 격려방문 미선이 8801 04-08
54 "운하 건설은 생명과 하나님을 범하는 것" 미선이 8001 04-05
53 예수를 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예수살기 창립 대회) 미선이 8638 03-31
52 교회협(NCCK), 18대총선 공식선거운동 시작에 즈음하여 미선이 7898 03-28
51 기장, 티벳의 평화 정착을 요구하며 미선이 7610 03-25
50 기장총회 ‘사회선교와 평화 통일선교 정책협의회’ 미선이 8487 03-14
49 "한국교회, 평화통일 목소리 내야” 미선이 7978 03-02
48 "한국교회 병들었다고 인정하자" 마루치 8356 02-23
4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운하 결사반대 포도즙 8751 02-18
46 종교인 한반도대운하 반대 순례 미선이 7765 02-10
45 한미FTA기독공대위 2월 한달 간, 국회 앞 1인 시위 미선이 7645 02-06
44 한반도 대운하를 해부한다. (1) 미선이 8269 01-29
43 1백주년 일치기도회, “끊임없이 하나되자” 미선이 8659 01-20
42 '한국 여성신학 개척자'가 한 자리에 모인 날 미선이 8702 01-20
41 기독교 초심의 신앙적 문법으로 돌아가라 (조연현) 관리자 9089 12-29
40 한국교회의 ‘신앙적 식민성’이라는 문법- 정치적 개입주의와 정교분리 신앙 사이에서 (김진… 관리자 8208 12-29
39 이안 바버가 보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유형 (김흡영) 정강길 12375 07-16
38 창조과학이 기독교인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커트 놀) 미선이 10919 07-07
37 진보는 좀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정강길 1468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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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거룩한 전쟁 이데올로기 : "야훼는 전쟁神" 사상에 관하여 정강길 10336 06-12
34 “한국교회에서 이런 예배는 기독교 아닌 줄 알겠어요” 정강길 908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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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신본주의>의 반대는 <인본주의>가 아닌 <사탄주의>일 뿐 (1) 정강길 14168 02-17
31 시중(時中)신학(1) - 하나의 세계, 하나님 (장경현) 정강길 9518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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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세계화 시대, 남미해방신학의 유산 (장윤재) 정강길 10747 01-07
28 과정신학이 '낙관적'이라는 편견에 대해.. 정강길 9079 12-16
27 함께 가는 길 - 종교와 종교의 만남 (오강남) 관리자 988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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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펌] 세계해방신학포럼 참관기 (2) 해방신학의 거목 레오나르도 보프 정강길 9453 11-16
24 ‘욱’하는 성질과 영성 (1) 정강길 9048 11-16
23 우리와 함께 고통을 앓고 계신 하나님 정강길 8494 11-16
22 하나님마저도 건드릴 수 없는 것!!! 정강길 7796 11-14
21 기독교가 말하는〈사랑〉Love과 〈정의〉Justice 정강길 8917 11-14
20 [말씀나눔] 정의가 이길 때까지 (박종렬) 정강길 8285 11-14
19 [펌]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경재) 관리자 8569 11-12
18 종교다원주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께: 종교다원주의? 열린중심주의!! (5) 정강길 33342 11-09
17 진화냐 창조냐 (기독교인으로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관리자 19534 11-04
16 [펌] 현경교수와의 인터뷰 관리자 13230 08-04
15 그리스도인일수록 <논리>와 놀자! 정강길 9174 06-14
14 [필독] '무조건 믿어라'의 내용에 따른 기존 기독교 분류 정강길 19926 07-02
13 에코페미니스트 현경 교수 인터뷰 (2) 관리자 14905 06-17
12 [펌] 한국신학의 태동과 흐름 김경재 8440 06-17
11 '월드컵선교'에 대한 비판적 시론 리민수 8462 06-03
10    '월드컵선교'에 대한 비판적 시론 정강길 8405 06-03
9 [펌] 한겨레21 -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3) 관리자 9910 06-03
8 [펌]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유정원) 정강길 8633 05-20
7 그리스도인일수록, <논리>와 놀자! 정강길 16601 04-30
6 [펌] 진화론과 창조론 양승영 9523 04-30
5 [펌] 예수는 정말 누구였나 - 21세기 캠페인을 하면서 박인용 9757 04-30
4 진정한 유일신론은 다원론 정강길 9976 04-28
3 악과 불완전한 하나님.. 정강길 8806 04-28
2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을 읽고서... 정강길 54154 04-27
1 전체 한국 기독교 신앙을 보는 개괄적 이해 (처음 오신 분들은 필독!!) (19) 미선이 159175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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