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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한국교회의 ‘신앙적 식민성’이라는 문법- 정치적 개입주의와 정교분리 신앙 사이에서 (김진호)    
  글쓴이 : 관리자 날 짜 : 07-12-29 10:17 조회(8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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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인의 ‘신앙적 문법’

한국교회의 ‘신앙적 식민성’이라는 문법- 정치적 개입주의와 정교분리 신앙 사이에서
 

불안한 접속―정치적 개입주의와 정교분리의 신앙

1990년대 초, 한창 대선 공방이 있을 때, 후보인 ‘양 김씨’ 지지를 둘러싸고 교회 간에 정치적 세몰이 경쟁이 제법 치열하게 벌어졌었다. 당시 나는 한 후보를 지지하는 측이 주관하는 대규모 조찬모임의 실무팀으로 차출되었다. 서울의 한 대형 호텔 컨벤션홀에서 전국 각 지역에서 온 수백 명의 목사, 장로들이 모여, 그 후보를 지지하는 행사를 가졌다. 그때 들은 얘기로는 기독교 다수파의 지지를 받던 다른 후보 측의 조찬 모임에는 1천 명이 훨씬 넘는 사람이 왔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때가 오랜 침묵 이후 교회가 정치의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던 기점이 아닌가 한다. 바야흐로 권위주의 시대가 지나고 ‘민주적 제도화’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권력 자원의 할당(allocation) 기능이 독점적으로 수행되던 시대가 끝나고, 사회의 여러 행위자들이 교섭하고 경쟁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 경쟁의 규칙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민주적 제도화의 주요 내용이겠다. 그리고 그 출발선에서 한국 개신교의 두 블록이 격돌한 것이다.

한 편은 이른바 개신교의 주류 세력으로, 권위주의 시대의 체제의 협력자(collaborators)인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였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은 줄곧 체제와 대항하면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소수였다. 그런데,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민주화와 더불어 본격화된 양자의 정치적 행보는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자원 배분을 위한 사회적 협상의 유리한 위상을 형성하는 유효한 수단이었음이 사후적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이후 근 20년 가까이 전개된 교회의 공공연한 정치적 개입의 역사는 변화하는 사회의 새로운 합리성을 학습하는 시간이었다. 하여 이후 교회의 정치적 행보 속에는 그 학습 효과, 즉 새로운 합리성에 준한 전략적 행위를 체화한 요소가 함축되어 있다. 비록 대다수의 교회 지도자들은 스스로가 노골적인 이익추구자의 태도로서 자신의 정치적 행위가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지만 말이다. 전략적 행위란 매순간 이익을 계산한 결과로써 실행되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더 많은 경우에는 체화된 시대적 합리성에 따른 가치 판단과 결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처럼 이익 지향성보다는 가치 지향성이 강한 사회적 역할의 수행자들에게도 이익추구행위의 전략적 합리성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한데 교회의 공공연한 정치 개입이 실행되는 데 중요한 장애물이 신앙 속에 내재해 있다. 이른바 ‘정교분리’라는 신앙 교의가 그것이다. 실상 이것은 근대서양의 특수한 정치사회적 지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편에서는 법적으로, 다른 한 편에선 신앙 규범의 형태로 제도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역사적 기원은 은폐되고 신화적 기원이 만들어짐으로써, 기독교도이건 비기독교도이건 정교분리는 마치 본래적인 것인 양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물론 해방기에서 한국전쟁기 전후까지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의 신앙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전선의 전면에 나서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식민지 시대부터 꽤나 확고히 자리 잡은 비정치적인 교회의 위상에 관한 신앙이 재고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이 시기의 교회는 너무 흥분해 있었다. 증오의 정치가 휘몰아치던 해방기-한국전쟁기의 교회는 역사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최소한으로도 구비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이 시기 교회의 정치 개입은 정교분리의 신앙과 진지한 갈등을 야기하지는 않았다.

196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근대적 국가체제는 급속한 안정기에 접어든다. 위에서 말한바 권위주의적 체제가 꽤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이다. 이 시기 대다수 교회들은 식민지 시대처럼 비정치적 영역 속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정교분리의 신앙과 헌법은 권위주의적 ‘체제’의 안보를 지탱하는 하나의 동력이었다. 그러므로 정교분리의 신앙은 설명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신앙적 덕목이자 사회적 상식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주화로의 이행 초기인 1990년 초 대선 상황에서, 위에서 말했듯이, 다시 교회의 정치 개입이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은 그러한 이행을 마치 종말론적 변화처럼 느끼고 있었다. ‘이행의 비상성’, 이것은 당시의 변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기조였다. 너무 특별한 것이기에 이 시기 교회의 정치 참여는 예외적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이는 정교분리 신앙과의 갈등을 유예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충분했다. 즉 정치참여라는 행위 선택과 정교분리라는 신앙적 규범은 아직 그리 큰 갈등을 야기시키지 않았다.

문제는 종말은 기다림을 지속시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시대의 비상성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결국 교회는 다시 비정치적 영역에로 복귀하지 않으면 정교분리의 신앙과의 갈등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만약 민주적 제도화가 역진(逆進)하여 다시 권위주의로 회귀한다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교회는 그 동안 익숙했던 제도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고, 정교분리의 신앙은 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적 체제에로의 이행은 비가역적인 과정(irreversible process)이다. 돌이킬 수 있는 구조적 요소들은 거의 제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은 것은 어떤 방식의 민주적 제도화가 추진될 것이냐에 있다. 그리고 그 미지의 과정에서 최근 교회의 정치적 행보가 있다. 하여 앞에서 1990년대 초의 대선 공방이 교회의 정치 참여가 본격화되는 계기적 기점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민주화 시대에 비정치 영역에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주지할 것은 민주화의 시대는 교회만이 아니라, 훨씬 많은 행위자들이 약진하여 제도화 과정에 적극 개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아니 실은 놀랍게도 교회는 민주화 시대에 그 역량에 비해 가장 더디게 정치세력화 하는 세력의 하나다. 그것은 이제까지, 심지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던 시대에도 정교분리의 신앙이 재해석되지 않은 채 굳건히 견지되어 왔던 탓이기도 하다. 정교분리의 신앙은 교회의 정치개입에 관한 신학적 성찰을 방해한다.

아무튼 이렇게 다중의 정치적 행위자들이 민주적 제도화에 개입하면서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부적절한 권력 자원의 할당 메커니즘을, 그 은폐되어 왔던 것들을 폭로하고 개선하려는 시도들이 잇따랐다. 우리 정치사에서 ‘개혁’이라는 담론이 가장 적절하게 자리 잡은 지점이 바로 여기다. 권위주의적 권력 자원의 할당 체계를 개혁함으로써 새로운 권력 자원의 배분 체계가 구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성적인 것들이 양성화되고, 공개적인 경쟁의 장에서 배분의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민주적 제도화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내용을 규정하는 가장 유력한 규준은 ‘시장적 규칙’이었다. 즉 한국에서의 권위주의의 지양으로서의 민주화는 시장화와 깊이 연동되어 있다.

최근의 큰 논란을 빚었던 사학법 파동은 바로 이 개혁의 과정에서 제기된 정교분리적 체제의 낡은 자원 할당 체계가 새로운 다중적 행위자에 의해 색출되고 도전을 받게 된 데서 비롯된다. 이러한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심각한 위기의식에 사로잡히게 했음이 분명하다. 교회는 전례 없이 강한 결속력을 통해 이러한 도전을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식의 대응이 향후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너무 많은 부분에서 교회는 사회의 신망을 상실했고, 그러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주적 제도화의 게임의 규칙 속으로, 즉 민주화 시대의 합리성에 몸을 싣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최근 교회가 정치세력화의 본격적인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외형상 과거의 정치개입과 같은 양상이지만, 유의미한 특이성 또한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최근의 정치적 행보의 배후에 신학적 성찰은 여전히 부재하지만, 뚜렷한 징후의 하나는 정치개입에 있어 미국교회를 모방하는 현상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1970년대 말 레이건 정부의 등장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던 미국교회의 정치세력화는 2천 년대 초 부시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을 한국교회의 정치적 선각자들은 매우 노골적으로 모방하고 있다. 이것은 신학적 성찰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정교분리의 신앙 규준에서 한국교회가 점차 벗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정교분리의 신앙은 오늘날 신앙 규준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해가고 있으며, 그것은 미국 기독교에 대한 모방 욕망에서 가능해진 것이다.

하나의 행위는 그것을 둘러싼 의미와 상호 관련됨으로써 실천의 제도화가 수행된다. 한국교회의 정치적 참여는, 종말론과 같은 의미 해체적인 비상성이 압도하는 특정 국면이 아닌 한, 그 행위와 상호 관련된 의미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참여의 의미화, 즉 정치 참여의 신학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한국교회에는 매우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어 왔다. 바로 정교분리의 신앙이다. 과거의 비정치적 교회의 신앙 행위와 상호 관련된 의미틀인 정교분리의 신앙이 새로운 행위를 통해 대체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미 형성이 필요한데, 낡은 의미체계가 너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탓에 새로운 의미 형성이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정치에 관한 다른 양식의 행위가 절실해진 상황에서도 새로운 신학적 성찰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데 흥미롭게도 한국교회의 대안적인 행위의 제도화에 결정적인 동력은 의미 형성이 아니라 ‘모방’에 있었다. 선망하는 미국 교회의 모방에서 새로운 행위의 실천적 제도화의 가능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한국적 신학으로의 고민들이 신앙의 실천적 제도화에 대해 무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의 행위가 신앙적 제도화로 발전하는 데 보다 중요한 요인은 한국신학이 아니라 미국 교회의 행보에 대한 모방인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반지성주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작동하는 셈이다.

이상에서 나는 한국교회의 최근의 정치적 행보의 표층을 살펴보았다. 정치적 행보의 배후에 있는 교회의 전략적 차원을 읽어 보려했고, 그러한 전략 행위를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방해받는 신앙 내적 요소와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요소를 살피고자 했다. 여기서 실천적 제도화를 향한 행위와 의미의 일반적인 변증법이 실패하고, 대신 한국 특유의 제3의 요소, 즉 식민주의적 모방 욕망이 개입함으로써 실천의 제도화가 구성되는 측면을 이야기했다.

표층에서 심층으로―한국교회의 정치 행위의 신앙적 문법을 찾아서

논의가 이렇게 전개되면 이제 정치적 행보에 관한 신앙의 표층적 문제는 좀 더 깊은 차원에로 옮겨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표층에서 벌어지는 행위 이면에 놓인 ‘신앙 문법’(faith grammar), 그 심층의 신앙적 의미 체계에로 관심이 옮겨가게 되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정교분리의 신앙을 이제 다른 차원에서 살펴보자. 여기서 그것이 실천의 제도화로 정착되는 과정은 그 역사적 맥락이 은폐되고 신화적 기원으로 포장되는 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사람들은 특정한 맥락에서 형성된 것임에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고 오히려 원래부터 그랬다고 믿게 됨으로써 그러한 신앙을 내면화/일상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의 형성 과정과 그것 주변의 역사사회학적 배후를 탐구해 봄으로써, 은폐된 역사성을 조명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정교분리 신앙이 기초하고 있는 신앙문화적 요소를 조명하고자 한다. 즉 그러한 신앙문화적 요소가 형성,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교분리 신앙이 제도화되었음을 보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물음은 신앙 문법에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문화고고학적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교분리의 신앙이 작동하는 데는 하나의 사회학적 전제가 필요하다. 국가가 안정된 체제를 구축하고 사회적 체제적 통합(social and system integration)을 추동하는 힘이 있어야 하며, 교회 또한 국가에 대한 압력수단을 일정하게 갖춘 상황에서 국가가 교회의 영역에 개입하지 않고, 교회 또한 국가의 영역에 개입하지 않아도 양자는 상대의 독점적 영역의 자원을 일정하게 할당받을 수 있다는 상호신뢰가 가능한 곳에서만 실행될 수 있는 근대적 권력 분점 모델이 정교분리의 체계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한국에서 정교분리 신앙이 제도화되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

식민지 조선이나 해방 후 미군정기와 자주적 근대국가체제 아래서 기독교는 매우 빈약한 사회적 압박수단밖에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러한 능력만으로는 국가가 정교분리 모델을 수용할 이유는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국가는 다른 종교제도가 아닌 기독교의 종교제도로서의 교회에 대해서 정교분리의 원리를 적용하였다. 왜 국가는 자신이 독점할 수 있는 자원의 일부를 은밀하게 할당해줄 대상으로 교회를 선정했던 것인가?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미국’ 혹은 ‘미국 기독교’라는 배후가 조선/한국의 교회 뒤에 버티고 있었다는 점에 있다. 이는 조선/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자신의 신앙을 미국에 대한 신뢰와 동일시할 때만 가능하다. 또한 당국이 미국 혹은 미국 기독교를 의식하면서 조선/한국의 교회를 대할 때만 가능하다.

여기서 제국주의 일본에게 미국은 모방하고자 하는 서구의 상징이었으며, 미군정 당국과 한국의 제1, 제2공화국이 미국과 미국 기독교에 가장 우호적인 정치세력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없다. 반면 조선/한국의 친미주의와 신앙의 동일화의 문제는 좀 더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이러한 신앙적 특성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계기적 사건으로 본다.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먼저 주목해야 하는 것은, 평양에서의 교인수와 교회의 팽창이 대부흥운동의 결과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는 점이다. 1903-4년의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의 진군루트에 있던 관서지역에서의 군대폭력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로 찾아들게 한 원초적 배경이다. 그런데 주로 미국계 선교사들과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 집단인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당황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대부흥운동의 결과로 나타난 열광적 체험을 간증하듯이 고백한 자전적 기록들을 통해 역추론할 수 있는데, 내용인즉, 첫째로 교회로 몰려온 이들이 비신앙적 동기, 즉 생존의 동기에서 기독교 신앙을 찾았으며, 둘째로 그들에게 도덕적 아노미 현상이 매우 심했고, 셋째로 그러한 도덕의 아노미 상황이 이웃이나 동료 등에게 자주 폭력적으로 표현되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러한 폭력적 행위는 공동체 내부의 분쟁을 심화시켰고 분열을 조장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필경 이것은 일상의 폭력을 훨씬 넘어서는 야만성이 일본 군대를 통해 자행된 결과일 것이다. 결국 전쟁의 체험으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입은 탓에 사람들에게 집단적으로 그런 징후가 나타났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직면한 교회 지도자들의 대응 방식은 기도였다. 이것 역시 사후의 자전적 기록들을 통해 역추론할 수 있는데, 그들은 교회의 통합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의 폭력으로 인한 외상을 이해하고 그것과 대면하려는 노력보다는 공동체 내로 들어온 이들의 강퍅한 행위를 통제하여 단일대오로 결속하게 하려는 데 더욱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비체험들이 속속 일어나고 사람들이 회심을 하며 도덕적으로 재무장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를 교회는 ‘성령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분명 여기서 일어난 숱한 신비 체험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상처를 능히 극복할만한 신앙적 동력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한데 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선교사들의 헤게모니가 결정적으로 강화되었다는 데 있다. 신앙제도의 독점적 지위가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체험의 다양성을 일체 고려하지 않고 종교체험의 획일성을 통해 삶의 획일화를 강변했다. 또한 이런 맥락에서 신앙의 비정치적 해석이 규범화되었다.

이 사건은 평양의 교회들을 일사분란하게 통합시켰고, 곧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그에 이어 상당한 양적인 팽창이 뒤따랐다. 성령 체험으로 사람들의 고통이 치유되었고, 선교사의 헤게모니가 확고해졌고, 다양성에 대해 배타적인 획일주의적 신앙이 자리 잡았으며, 신앙의 비정치성이 교리화 되는 일련의 과정이 기독교 신앙의 의미코드로서 형성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 요소는 빠르게 제도화되었다. 그 결과는 ‘양’에서나, 결속도와 충성도에 따른 ‘질’의 차원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성령에서 성공으로 이어지는 의미코드는 이후 한국 기독교의 공통감각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교회는 성령을 호출하고, 획일주의적 교권화, 배타성의 강화를 통해 위기의 극복을 도모하였다. 그런 점에서 평양 대부흥운동은 한국 기독교의 ‘초석적 사건’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근데 이 사건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교회가 ‘미국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랬기에 사람들이 전쟁기에 교회로 몰려듦으로써 사건이 시발되었으며, 성령 사건을 통해 미국의 대리인인 선교사들에게 충성함으로써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시작과 종결이 교회가 미국적 공간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즉 이 사건이 함축하게 된 의미 체계의 배후에는 ‘미국적 공간’이라는 공간 감각이 교회와 결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공간감각 속에는 신앙적 성공과 세속적 성공이 합류하는 지점이 있다. 선교사들이 전자를 대표하고 있다면, 강력한 서구라는 제국의 이미지는 후자를 대표한다. 하여 그곳은 삶의 ‘원본성’(originality)이 담겨 있다. 원본성은 훼손될 수 없는 것이며 모두가 모방(copying)해야 유일 대상이다. 역시 신적 이미지와 미국적 이미지, 신앙적 요소와 세속적 요소가 합류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토착성이라는 것은 이 공간에서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체내의 이본적 요소(different versions)를 배제하는 것이 신앙에서 중요하다. 미국적 공간이란 바로 이런 요소들을 함축한다.
한국 역사에서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교회의 정치 개입이나 비정치적 태도는 서로 정반대의 자세인 듯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 미군정기와 한국전쟁 전후기에 광적으로 활성화된 교회의 정치 참여는 미국적 공간인 교회가 이본적 요소들에 의해 침해되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던 배후에는 그들이 교회를 물리적으로 훼손시켰기 때문일 뿐 아니라, 원본성을 주장한 또 다른 주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몇 년 전 시청집회에서 한국의 한 대표적 목사는 주최 측이 10만이라고 추산한 대중 앞에서 영어로 기도했다. 그랬기에 반미집회를 신앙의 위기로 여기며, 한·미 FTA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지지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 그랬기에 정교분리의 신앙이라는 오래된 신앙 교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신학적 성찰 과정 없이 미국교회의 경향을 곧바로 모방함으로써, ‘침묵하는 다수’로서 만족하던 수동적이고 비정치적 자의식에서 민주적 제도화 과정의 적극적 행위자로 전화하는 정치세력화의 길을 갈등 없이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신앙적 사유의 배후에는 아메리카주의라는 식민주의적인 하위주체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함으로써 형성되는 획일주의, 배타성, 성공주의 등의 문화적 문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신앙적 문법의 폭력성을 넘어서기

신앙 문법은 신앙적 실천의 제도화의 배후이다. 즉 신앙 문법은 신앙의 의미 체계 속에 흡수된 모든 사람들 속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면서 특정한 것을 ‘선호’하게 하고 특정한 ‘행위를 선택’하게 하며 거기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게 하는 내적 계기인 것이다. 하여 신앙 문법은 태도와 행위의 가능성을 제약한다.

하지만 동시에 신앙 문법은 신앙적 실천의 제도화의 결과이다. 신앙적 문법은 구체적인 역사적 행위의 산물이지 신화적이고 본질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다. 즉 신앙 문법은 상이한 역사, 상이한 주체, 상이한 대상물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창조적인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에 열려 있다. 마치 바둑게임처럼 말이다. ‘19×19’의 정방형 판의 점 위에서 무수한 창조적 기보가 생성될 수 있듯이, 그리고 그 창조성의 근저에는 여러 우연적 요소들의 특정한 결합에 상관되는 우연적 수읽기가 있듯이, 신앙 문법은 끊임없이 타인, 타집단, 타문화와의 접촉과정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시키며,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후자의 차원, 즉 변형 가능성에 대해 신앙 문화는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신앙 문화의 원본성이 병적으로 강조되기 때문이다. 문화적 문법에 대한 논의는 문화 속에 내재하는 무수한 정전들(canons)을 해체시켰다. 문화는 다양한 주체들 간의 상호행위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주체란 고정된 것이 아니고 상호관계에 따라 분열되어 있으며, 분열된 주체들이 교접하는 시공간 편차에 따른 상호관계의 복합성은 문화의 범주성 자체조차 해체시켰다. 그런데 신앙 문화는 여타 문화들에 비해 훨씬 더 사고를 정지시키는 요소들을 발전시켜 왔다. 폐쇄적인 정전이 그렇고, 정전에 관한 폐쇄적인 독서법이 그렇다. 고정된 교회 공간, 고정된 예전의 시간, 고정된 찬송, 고정된 기도문 등은, 생각을 닫히게 하고, 관계의 양식을 닫히게 한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은 신앙적 문법을 경직된 것으로 만들며, 폭력적인 것으로 들끓게 한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신앙적 문법은 기독교인의 사유와 실천의 배후이지만, 동시에 기독교인의 사유와 실천의 창조적 가능성의 배후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후자가 제약되도록 신앙의 장치들이 제도화됨으로써 기독교 신앙은 점점 폐쇄적인 문법에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그런데 나는 이 글에서 기독교 신앙의 정치적 개입을 둘러싼 표층의 논의에서 그 심층에 있는 신앙적 문법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밝혀보고, 거기에서 신앙적 문법 자체의 문제적 요소를 읽어내고자 했다. 자칫하면 신앙적 문법 자체가 부정적인 사유와 실천을 파생시키는 필요충분조건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신앙 문법이라고 할 만한 심층의 요소들과 표층의 신앙적 사유와 실천들 사이에는 매우 많은 중개 요소들이 매개된다. 이 모든 매개 요소들, 매개하는 역사적 정황들 등을 거의 생략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짧은 글 한 편 속에서 다 담아내기엔 너무 방대한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여 여기서는 단지 최근의 기독교의 정치적 행보와 그 이면의 신앙 문법 사이의 불온한 접속에만 초점을 두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글에서 나는 신앙적 문법들을 부정적으로 옭아매는 요소를 교회와 ‘미국적 공간’ 사이의 감각적 동일시에서 찾고자 했다. 그것은 신앙 속에 내재된 식민주의이며, 그것이 신앙의 폭력성과 긴밀히 결탁될 수 있음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국 기독교의 정치적 태도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모색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김진호 l 목사는 서강대를 졸업하고 한신대(M. Div.)에서 공부했다. 한백교회 담임목사와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고 『당대비평』 편집주간을 역임했다. 지금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있다. 『예수 역사학』 ,『반신학의 미소』, 『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등의 책을 썼으며, 주요 관심은 우리 시대 대중이 겪고 있는 다중(多重)적 고통의 결을 읽으면서, 그것의 문화정치학적 맥락을 읽어내려는 데 있다. 
 
글쓴이 /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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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일수록, <논리>와 놀자! 정강길 16601 04-30
[필독] '무조건 믿어라'의 내용에 따른 기존 기독교 분류 정강길 19925 07-02
전체 한국 기독교 신앙을 보는 개괄적 이해 (처음 오신 분들은 필독!!) (19) 미선이 159174 04-21
190 하나님이 "피조물에 의해 완벽해진다" 교황발언... 과정신학 지지? 미선 3182 07-04
189 개신교 진보 교단 연합 NCCK 분열 위기? 관리자 7402 11-14
188 미국 진보 개신교단, '동성 결혼 합법화' 승소 관리자 7118 10-19
187 기독교장로회 “청와대 김기춘·KBS 길환영 구속수사해야” 관리자 8306 05-25
186 기독교연합회 "박근혜 정권 퇴진 촉구" 관리자 8174 03-26
185 ‘박근혜 대통령 퇴진’ 7개 신학대생들, 19일 거리로 나선다 관리자 8438 12-19
184 개신교 성직자들 "'박근혜 퇴진' 지역으로 확산시키겠다" 관리자 7478 11-30
183 “한신, 개혁신학 전통과 현실참여적 공공성 견지해야” (2) 미선 5849 11-29
182 WCC 총무 “반대자도 기독교 공동체의 일부로 인정” 미선 5231 11-12
181 WCC 참여 성소수자 단체들 “동성결혼 축복해야” 관리자 5543 11-05
180 ‘다양성 속 일치’ 교파 초월한 기독교 잔치 관리자 5637 10-25
179 개신교 목사 1천명 `국정원 사태` 시국선언 관리자 5380 08-22
178 보수 줄고 진보 늘고… 美 종교지형이 바뀐다 관리자 5821 07-23
177 진보 기독교단체 “국정원 사건, 대통령이 사과하라” 관리자 5692 06-26
176 60주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세상과 자유소통" 선언 관리자 5217 06-10
175 궁궐과 동굴에 갇힌 종교를 넘어서 / 김경재 관리자 5912 06-09
174 “WCC 준비위 변혁 않으면, ‘선언문 트라우마’ 재연” 관리자 5514 05-16
173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선 기독교 단체들 부끄럽다 (임보라) 관리자 6592 04-27
172 [세상 읽기] 종교의 자유와 차별금지법 / 정정훈 관리자 5915 04-25
171 개신교 성서에서 동성애를 금지한다고? 관리자 5980 04-25
170 WCC 부산총회서 다룰 5가지 문서 공개돼 관리자 5731 04-02
169 에큐메니컬 진영 신학자들 “WCC 공동선언문 폐기하라” (1) 관리자 5974 01-31
168 한국교회 해묵은 신학논쟁 재점화…‘WCC 총회’ 쿠오바디스 관리자 5841 01-31
167 NCCK 김근상 회장, “WCC총회위한 4개단체 공동선언문 수용 안해” (1) 관리자 5767 01-26
166 불교·기독교 넘나들며 선악과 윤리를 묻다 관리자 5820 12-24
165 美 흑인신학, 기독교적 흑인이 미국 바꿨다 (1) 미선 8099 12-13
164 NCCK, '한국사회 의제 15' 선정 관리자 5467 12-05
163 “기독교인이라면 어느 후보가 공동체가치 실현할지 봐야” 관리자 5717 11-28
162 “종교개혁 신학, 정신은 계승하되 교리화는 주의해야” (1) 미선 7592 11-20
161 진보 개신교계, 정부예산분석..조세정의·복지확대 제안 관리자 5719 10-29
160 美 기독교에도 자유주의 물결 관리자 6198 10-04
159 김홍도 목사가 파면한 신학자 20년만에 부활하다 (2) Logos 6765 09-29
158 “모든 종교의 궁극점은 깨달음… 맹신과 광신이 문제” (오강남) (1) 관리자 6998 09-21
157 “장준하, 주사바늘 흔적… 추락 이전에 의식 잃었을 가능성” 관리자 5591 09-03
156 NCCK “인권위, 용역선정 부적절 종자연 종교편향성부터 조사하라” (1) 관리자 5913 07-30
155 개신교, 반인권의 추억 / 김진호 관리자 6056 07-11
154 박종화 목사와 위르겐 몰트만 교수의 대담… (1) 관리자 6743 05-04
153 박형규 목사, 민주화운동 공로 명예신학박사 학위 받아 (1) 관리자 6478 05-04
152 ‘빈민의 벗’ 허병섭 목사 별세 (1) 관리자 6799 03-28
151 개신교, 서경석 목사에게 가톨릭에 대한 ‘맞불집회’ 취소 요구 관리자 6181 03-08
150 생명평화 기독교행동 "야권연대는 최소한의 양심" 관리자 6282 02-24
149 "한국 교회, 사회적 기본가치 지켜야" 관리자 6591 02-14
148 NCCK, 신년 핵심사업 발표 (1) 관리자 6388 01-16
147 “남북 화해와 협력 위해 교회가 앞장서야”… NCCK 주최 기독교 통일운동 관리자 6046 12-22
146 기독교 진보진영, "한미 FTA 국회 비준 반대" (1) 미선이 6401 11-29
145 새로운 민중신학에서 <민중> 개념에 대한 질문과 답변 (1) 정강길 10087 05-06
144 종교단체, UNCCD 4대강 홍보부스 철거 요구 관리자 6660 10-18
143 문익환 목사 아내 ‘박용길 장로’ 별세 관리자 6832 09-27
142 '2012생명평화기독교행동' 창립 (1) 관리자 7258 08-24
141 예수는 카페 마리와 용산을 보고 뭐라 했을까 관리자 6657 08-07
140 WEA-WCC-로마 교황청, 기독교 3대 진영 ‘복음 전도 규범’ 채택 (1) 관리자 7592 06-30
139 [인터뷰] “심층종교는 자아정체성 찾는 길” (오강남 교수) (1) 관리자 7690 06-26
138 개신교-천주교,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 관리자 7001 06-21
137 교회협, '고엽제 의혹' 오바마에 공개서한 관리자 7030 05-26
136 NCCK 대북지원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한 것” 관리자 7173 05-22
135 종교 간 대화 ‘사회통합·상생’ 문화 꽃 피운다 관리자 6758 05-17
134 진보 개신교, 재능교육 사태 해결에 동참 관리자 6876 05-03
133 십자가 예수? 하느님은 "피에 굶주린 잔인한 신"? 관리자 8155 04-23
132 목사한테 이러면 정말 저주받을까요? 관리자 7205 04-23
131 한기총 해체작업, 그리고 한국 기독교와 정치 (김민웅) 관리자 6432 04-09
130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생명과 평화가 한국교회 중심이 돼야 합니다” (2) 관리자 7250 02-09
129 종교를 대하는 입장 갈등 정리 관리자 7431 01-18
128 다원주의 신학자 폴 니터, 불교와 대화하다 관리자 7794 01-07
127 폴 니터 교수 초청 종교간의 대화마당 성료 관리자 7296 01-07
126 “부처님없이 나는 그리스도인이 될수 없었다” 관리자 7636 01-07
125 ‘부디스트 크리스찬’ 폴 니터 & ‘한국의 고승’ 진제 대선사선 (1) 관리자 8217 01-01
124 종교·시민단체 사형중단 13주년 맞아 성명 발표 관리자 7041 12-30
123 종교 시민사회 단체 원로 “전쟁 반대·평화 정착” 호소문 발표 관리자 7218 12-30
122 천주교 원로사제들 “정진석 추기경 용퇴를…” 관리자 7515 12-13
121 종교·교수 모임 "4대강 대신 시급한 현안 집중" 관리자 6859 12-07
120 종교간 갈등 넘어 공존의 길로 관리자 7073 12-04
119 이웃 없는 종교의 우울함 /김진호 (1) 미선이 7787 11-10
118 권오성 NCCK 총무-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라디오 프로그램 대담 (3) 관리자 7312 11-05
117 심원 안병무 선생을 기린다 (1) 미선이 9320 10-18
116 종교와 과학의 거리 관리자 7359 10-17
115 부산에서 열리는 WCC 총회 날짜 확정돼 관리자 7284 10-07
114 테리 이글턴 초청 인문학 강좌, "신념과 근본주의" 강연 관리자 7604 09-08
113 “종교와 신학… 좌파의 새로운 지적 자원” 테리 이글턴 방한 관리자 8719 09-08
112 [역사 다시보기]'종교다원론자 변선환', 사후 10년만에 사실상 복권되다 노동자 8657 07-29
111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사고 발표에 대한 종교인의 입장 (1) 미선이 7175 05-25
110 5.18 광주 연합예배 준비모임을 알립니다. 왕꼬지 7274 03-19
109 예수와 부처 4대강에서 통했다…종교 연대 물꼬 튼 MB반대 미선이 7276 03-10
108 진보성향 목사·신학자·활동가들 ‘생명평화 그리스도인 선언’ 한다 미선이 9645 03-05
107 한국 교회 예수 버리고 권력 탐하다 (1) 미선이 9975 09-16
106 재벌 닮은 대형교회, 반말하는 대통령 미선이 7538 08-08
105 기장, "교인들에게 정부 반성서적 모습 알리자" 미선이 7245 08-05
104 “우리가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외칠 것” 미선이 7817 07-31
103 보수' 기독교, 무엇을 보전하고 지킬 것인가 미선이 8003 07-13
102 이명박 장로는 뭘 믿을까? (프레시안 박동천 칼럼) 미선이 8138 07-07
101 "이 땅에 민주주의와 평화를 주소서" 미선이 7203 07-06
100 개신교, 4대 강 정비 사업 저지 대회서 기도회 열어 미선이 7740 06-29
99 "일부 목회자 지나친 정치 행보, 개신교에 반감만… 손 떼야" 미선이 7098 06-25
98 위르겐 몰트만, "신학의 주제, 사회에서 찾아야" 미선이 8313 05-18
97 한신대, "석가탄신 축하 펼침막, 찢기면 다시 달아요" (1) 미선이 9511 05-02
96 찬송가공회 법인화 문제, NCCK 실행위 갑론을박 설전 (1) 미선이 8141 04-27
95 종교언론, 교권과 자본에서 자유로와야 미선이 7775 04-21
94 촛불교회 "생명의 강을 지켜내자!" 미선이 7481 04-06
93 배우 문성근씨 “故 문익환 목사는 세상에 나간 분” (1) 미선이 11099 03-24
92 평화·통일 3·1선언 서명자 연합예배 미선이 7598 03-02
91 'MB가 바로 설 때까지 우리의 기도는 멈추지 않는다' (1) 미선이 7795 02-26
90 "추기경은 갔어도 용산 철거민은 아직 있다" 미선이 7972 02-26
89 3.1절 90주 맞아 기독교 진·보수 평화통일선언 (1) 미선이 7842 02-22
88 김삼환 목사님, 전두환 대통령 각하라고요? (1) 미선이 9072 02-10
87 85주년 NCCK, 에큐메니칼 역사 정립 등 계획 (2) 미선이 8579 01-06
86 비정규직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 미선이 7735 12-29
85 美 진보진영, 오바마 취임식 ‘릭 워렌 기도’ 반발 (1) 미선이 8436 12-27
84 김경재 목사 즉문즉설, "믿으면 축복받는다 종교는 가짜" (2) 미선이 9448 11-24
83 “WCC도 개혁하라”… 운동 약화 지적 미선이 8188 11-24
82 NCCK 회장에 김삼환 목사 선출 미선이 9913 11-20
81 “토착화되고 일상성 담은 예배음악 절실하다” (7) 미선이 8294 11-10
80 개신교 진보진영의 한계? (2) - 조용석 목사 (1) 미선이 8535 10-08
79    조용석 목사님께 드리는 재답변 - 정강길 미선이 8852 10-08
78 한상렬 목사 석방 촉구 재미기독학자 성명 미선이 9672 09-22
77 “기독교와 불교는 소금과 목탁이어야”,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 미선이 8280 09-13
76 기독자교수협 “불교계 저항 당연” 미선이 7262 09-05
75 “예수처럼 ‘질긴 놈’이 되자” 미선이 8532 08-16
74 “촛불시위는 신자유주의를 가로막고 선 의미” - 미디어오늘 (1) 마루치 8477 07-14
73 [인터뷰] '살림이스트' 신학자 현경 교수를 만나다 관리자 11289 07-11
72 “철거된 <촛불교회>, ‘촛불’과 함께할 것” 미선이 7742 07-08
71 예수 부활은 신화? ‘기원전 1세기 석판’ 해석 싸고 논쟁 미선이 9045 07-07
70 다양한 역사적 예수 연구 학자들의 SBS취재 인터뷰 내용 (2) 미선이 10662 07-06
69 김경호 목사, "장로가 대통령인데 그리스도가 조롱 당해 탑돌이하듯 1, 2년 평화적으로 촛불… 미선이 8822 07-02
68 경찰의 폭력진압과 강제연행에 대한 기독인 행동주간 - 에큐메니안 마루치 7669 07-01
67 미 쇠고기 반대 기도회, ‘촛불교회’ 철거.. 목요기도는 계속 미선이 8964 06-30
66 <촛불교회> 이름을 이어가다 - 광우병쇠고기 수입반대 기독교대책회의 현장 보고서 (1) 미선이 9059 06-27
65 오바마, 복음주의 신도 표심잡기 '총력' - 연합뉴스 (1) 마루치 9065 06-22
64 개혁성향 개신교 원로 33인 '비상시국선언' 발표 미선이 7657 06-13
63 <예수의 독설> 저자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 오마이뉴스 마루치 11352 06-12
62 예수 천국? 난 즐거운 지옥을 꿈꾼다 - 오마이뉴스 마루치 8400 06-12
61 NCCK “정부, 인도주의 대북지원 조속히 시행하라” 미선이 7321 05-08
60 개축 평양<봉수교회>, 북녘·해외동포와 7월경 공동예배 예정 미선이 8101 05-08
59 “기독교 선교의 완성은 개종인가?”, 진보 신학자들의 선교와 교리에 관한 토론 미선이 8726 04-27
58 기장 “총회 직원들 무죄 밝혀낼 것” 미선이 8300 04-22
57 월18일(금) 오후3시, 청파교회에서 생명의 강지키기 기독교행동 출범식 열고 가두행진! 포도즙 8868 04-19
56 예수살기, 한미정상회담..한미관계 재정립 촉구 미선이 8362 04-16
55 종교인협의회, 노회찬, 김근태 등 운하반대 후보 격려방문 미선이 8800 04-08
54 "운하 건설은 생명과 하나님을 범하는 것" 미선이 8001 04-05
53 예수를 몸으로 살아내야 한다 (예수살기 창립 대회) 미선이 8637 03-31
52 교회협(NCCK), 18대총선 공식선거운동 시작에 즈음하여 미선이 7898 03-28
51 기장, 티벳의 평화 정착을 요구하며 미선이 7610 03-25
50 기장총회 ‘사회선교와 평화 통일선교 정책협의회’ 미선이 8487 03-14
49 "한국교회, 평화통일 목소리 내야” 미선이 7978 03-02
48 "한국교회 병들었다고 인정하자" 마루치 8355 02-23
47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운하 결사반대 포도즙 8751 02-18
46 종교인 한반도대운하 반대 순례 미선이 7765 02-10
45 한미FTA기독공대위 2월 한달 간, 국회 앞 1인 시위 미선이 7644 02-06
44 한반도 대운하를 해부한다. (1) 미선이 8268 01-29
43 1백주년 일치기도회, “끊임없이 하나되자” 미선이 8659 01-20
42 '한국 여성신학 개척자'가 한 자리에 모인 날 미선이 8702 01-20
41 기독교 초심의 신앙적 문법으로 돌아가라 (조연현) 관리자 9089 12-29
40 한국교회의 ‘신앙적 식민성’이라는 문법- 정치적 개입주의와 정교분리 신앙 사이에서 (김진… 관리자 8208 12-29
39 이안 바버가 보는 과학과 종교 간의 관계 유형 (김흡영) 정강길 12375 07-16
38 창조과학이 기독교인의 선택이 될 수 없는 세 가지 이유(커트 놀) 미선이 10918 07-07
37 진보는 좀더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정강길 14688 06-12
36 사사기 6장9절에 담긴 비밀 : 고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사건 정강길 11379 06-12
35 거룩한 전쟁 이데올로기 : "야훼는 전쟁神" 사상에 관하여 정강길 10336 06-12
34 “한국교회에서 이런 예배는 기독교 아닌 줄 알겠어요” 정강길 9081 05-22
33 기독교와 불교가 만나 구원과 해탈을 얘기하다 정강길 9919 04-28
32 <신본주의>의 반대는 <인본주의>가 아닌 <사탄주의>일 뿐 (1) 정강길 14168 02-17
31 시중(時中)신학(1) - 하나의 세계, 하나님 (장경현) 정강길 9518 01-30
30 즐겁게 반란하고 전복하라 (서정민갑) 정강길 8697 01-30
29 세계화 시대, 남미해방신학의 유산 (장윤재) 정강길 10747 01-07
28 과정신학이 '낙관적'이라는 편견에 대해.. 정강길 9079 12-16
27 함께 가는 길 - 종교와 종교의 만남 (오강남) 관리자 9885 11-22
26 [펌] 세계해방신학대회 폐막 정리..."세계화는 역설적으로 연대의 세계화로 이어져" 정강길 8493 11-16
25 [펌] 세계해방신학포럼 참관기 (2) 해방신학의 거목 레오나르도 보프 정강길 9453 11-16
24 ‘욱’하는 성질과 영성 (1) 정강길 9048 11-16
23 우리와 함께 고통을 앓고 계신 하나님 정강길 8494 11-16
22 하나님마저도 건드릴 수 없는 것!!! 정강길 7795 11-14
21 기독교가 말하는〈사랑〉Love과 〈정의〉Justice 정강길 8917 11-14
20 [말씀나눔] 정의가 이길 때까지 (박종렬) 정강길 8285 11-14
19 [펌] 신학을 어떻게 할 것인가? (김경재) 관리자 8569 11-12
18 종교다원주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들께: 종교다원주의? 열린중심주의!! (5) 정강길 33341 11-09
17 진화냐 창조냐 (기독교인으로서 창조론과 진화론을 어떻게 볼 것인가) (2) 관리자 19534 11-04
16 [펌] 현경교수와의 인터뷰 관리자 13229 08-04
15 그리스도인일수록 <논리>와 놀자! 정강길 9174 06-14
14 [필독] '무조건 믿어라'의 내용에 따른 기존 기독교 분류 정강길 19925 07-02
13 에코페미니스트 현경 교수 인터뷰 (2) 관리자 14905 06-17
12 [펌] 한국신학의 태동과 흐름 김경재 8440 06-17
11 '월드컵선교'에 대한 비판적 시론 리민수 8462 06-03
10    '월드컵선교'에 대한 비판적 시론 정강길 8405 06-03
9 [펌] 한겨레21 -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 (3) 관리자 9910 06-03
8 [펌] 존 캅의 그리스도 중심적 다원주의 (유정원) 정강길 8632 05-20
7 그리스도인일수록, <논리>와 놀자! 정강길 16601 04-30
6 [펌] 진화론과 창조론 양승영 9523 04-30
5 [펌] 예수는 정말 누구였나 - 21세기 캠페인을 하면서 박인용 9757 04-30
4 진정한 유일신론은 다원론 정강길 9976 04-28
3 악과 불완전한 하나님.. 정강길 8806 04-28
2 떼이야르 드 샤르댕의 『인간현상』을 읽고서... 정강길 54153 04-27
1 전체 한국 기독교 신앙을 보는 개괄적 이해 (처음 오신 분들은 필독!!) (19) 미선이 159174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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