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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예수는 좌파다 -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설교를 보고" - 한겨레 토론방    
  글쓴이 : 마루치 날 짜 : 08-06-18 15:07 조회(14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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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좌파다 -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설교를 보고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바보 같은 정치/역사관을 모두 버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온건 우파에 예속시키고, 80년대식 반공 사상에 아무렇지도 않게 몸담고 있던 나였기에, 사실 당시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 이른바 ‘운동권’에 대한 반감은, 유행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밤새 인터넷과 책을 뒤적여가며 고민할수록, 부모님과는 멀어졌지만 관점은 또렷해졌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할수록 판단은 확실해졌고, 기성세대의 관점에 예속된 사람들은 단지 정보가 없기 때문에 부모세대의 이념적 노선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저, 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배우고, 한국의 정치 역학을 이해하고, 기성세대의 기원을 파악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이익과 신념 간의 가치 판단이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될 ‘상위 계층’의 몇몇 사람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렇게 날마다 사회 비판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아가던 차에, 절대 당선되어서는 안 될 그 누군가가 아주 중요한 자리에 선출되는 경악할 사건이 발생했고, 나는 그것이 꽤 많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좋은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일반인들의 정치적 견해 표출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모습을 띄고 있었으며, 당연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단지 그들은 같은 종교라는 유대감 하나로 모든 것을 평가했고, 이것을 부추기기라도 하듯, 각 교회의 목사들이 서슴지 않고 설교를 통해 지지 성명을 내기 시작했다. 사울 왕과 같이, 축복을 받으며 왕좌에 오른 이도 하나님께 버림 받는 그 삼엄한 기독교 세계에서, 모든 정보와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종교라는 타이틀 하나로 사람을 믿는다면, 그것은 바보인가, 아니면 멍청이인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가치로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오늘날 그들이 판단을 위해 사용하는 기준이라고는 이기적 욕구 말고는 없어 보인다.

 

진심으로 신을 믿고 종교 생활을 하기 원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는 좌파다.”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시라.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니, 좌파와 빨갱이를 등치시키는 미련한 짓은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를 한 이념에 집어넣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는 기독교를 우파로 정의하려는 계속적인 시도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 지금 이 땅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목도하고 있다. 난 이 기회에 그 주장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주장이며, 하나님을 얼마나 오해하고 욕되게 하는 주장인지 보이고 싶다. 당신이 그 고정관념을 잠시만 접어준다면, 내게 일견 무모해 보이는 이 문장을 설명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좌우 대립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이데올로기라면 질색을 하지만, 난 솔직히 아직 이념의 시대가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고 본다. 그 찌꺼기들이 아직까지 버젓하게 남아있는 지금의 정국을 보건대, 또 한 번 이념적 무지에 의한 멍청한 국민적 선택이 되풀이되지 말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가 아는 기독교를 묘사해보자.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이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의 생명과 바꾼 위대한 한 사건이 기독교의 전부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연구를 했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경전을 남겨 주셨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인격체로서 받아들여지고, 당연히 우리는 그 성격과 대화 기록을 통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당신이 경험한 하나님에 대해서 떠올려보라. 아버지 같은 자상함, 세상을 가득 채운 끝 모를 사랑, 엄정한 공의, 이 세계를 창조한 거대한 지적 능력, 각자가 경험한 하나님의 모습들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는 형국일 테지만, 많은 사람의 경험이 모이면 일정한 분포를 볼 수 있을 것이고, 대강의 형태를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귀납적 추리를 해보자는 것. 이를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4:8).’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는 교파가 아무리 갈려도 바뀌지 않는 진리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본인의 이런 인격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계신다. 소유를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슬픈 자를 위로하고, 아프고 어려운 자를 긍휼이 여기며, 이방사람이건 여자건 노예건 모두 동등한 가치로 인정하라고 하신다. 사랑의 속성은 나누는 것이고, 베푸는 것이며, 인정하는 것이고, 품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격을 소유하고 있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이 사랑의 가치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기에, 성경에 최소한의 제안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중요한 예배와 선택의 가치는 종교인들의 고유 영역이니 언급하지 않겠지만, 분명 사회적 영역에서는 약자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명시하고 있다.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며 둘 만의 개인적인 영적 교감을 나누는 데에만 집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당분간 관심을 갖지 않게 될 영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에게 충분히 사랑을 나누어 주신 하나님은 곧 ‘가라’고 명령하실 것이고, 그 때에 그 명령에 즉각 순종하기 위해서는 이 논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랑을 실천하는데 좌파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할 차례다. 나는 이 궁금증을 기본적인 열쇠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기독교인이 똑똑해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선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초대 교회를 보자.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3:44-46).’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설교에서 이 내용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아주 드물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건 영락없는 ‘공산주의(共産主義, communism)’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친 반공 교육을 통해 대다수의 한국인들 머릿속에 적색 콤플렉스가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기에,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좌파적 본질에 대한 논의를 하기 이전에, 혁명적 사회주의로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아래에서는 일반인들은 아예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공산주의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한국에서 반공 교육이 그렇게 철저하게 이루어진 이유를 알아본다.

 

 

공산주의의 근본적인 이념은 ‘유물론(唯物論, materialism)’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배치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단연코 말할 수 있는 바, 유물론은 그렇게 간단하게 ‘물질주의(배금주의, 拜金主義, mammonism)’로 해석될 수 있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철학적 사고와 공부가 부족한 사람들이 쉽게 유물론을 ‘맘몬(mammon)’처럼 해석하곤 하지만, 실상 유물론은 대단히 복잡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유이다. 1840년대에 이미 헤겔과 포이어바흐는 사유재산에 대한 유물론적 토대를 만들고 있었다. 즉 사람들이 소유하는 사적 재산이란 인간의 노동력을 물질적 형태로 대상화 한 결과물인데, 단지 결과물에 불과한 물적 재산이 도리어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을 지배하는 현상을 자기 소외라고 파악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생각한 공산주의라는 것은, 기독교식으로 표현하자면, 욕망의 실체인 물질적 재산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서 인간 소외를 극복하고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불교의 공사상이나 기독교의 금욕주의와 놀랍도록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철없는 몇몇 기독교인들을 위해 역설하자면, 술과 담배, 성욕과 물질적 욕망 등을 가능한 멀리하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디자인하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그 영적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이다. 쾌락이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중도’를 찾을 때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거기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에 금하는 것이다.

 

다시 공산주의로 돌아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러한 유물론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공산이론의 토대를 만들었다. 사실 유물론 자체적 의미에는 이론(異論)이 많았다. 위대한 학자들조차 관념론과 유물론을 대어로 사용하기도 했고, 이에 대해서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토대를 만든 것은 마르크스-앵겔스의 사적(史的) 유물론이었다. 사적 유물론이란 ‘사회의 물질적 생산관계와 생산력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며,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물질적 생산관계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두산 백과사전 참조)’는 이론이다. 이들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고 사회적 관계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생산 활동이라는 경제적 요소를 사회의 토대라고 규정하고, 정치제도나 종교, 법률, 사상 등을 상부구조라 규정하여, 토대가 바뀔 때에는 상부구조 역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그 토대인 생산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능과 과학 기술 등에 의해 변화할 것인데, 이때 변화 이전의 낡은 생산 관계에서 이득을 보고 있던 유산 계급과 새로운 생산 관계에서 이득을 볼 수 있는 무산 계급 간의 갈등을 그들은 예측했다. 그리고 결국 종래의 생산 관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생산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사회혁명이 피지배계층에서 일어나, 마침내 새로운 경제 체제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상부 구조도 바뀐다는 것이다.

 

결국 러시아에서는 1917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났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서구의 지배 계층들은 그들의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과 선거권 보장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그동안 거의 착취에 가까웠던 그들의 관계는 소위 ‘대타협’을 통해 계급 협조적 자본주의로서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니, 이것이 1940년대부터 70년대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이다. 이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냉전’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진실로 공산주의가 ‘악(惡)’이기 때문에 정의로운 민주 공화국이 맞서 싸웠던 성전(聖戰)이라기보다는, 단지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살아갈 수 있는 계급적 구조의 붕괴를 두려워한 상부 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에 더 가깝지 않은가. 그렇다면 반공(反共)의 이념 역시 실체가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반공에 대해 핵심을 찌른 인터뷰가 있어 소개한다. 동국대 한상범 명예교수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카시즘의 논리 그것이 최후의 카드인데요. 우리나라 우익은 민족주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제시대에 전부 친일파로써 투항을 했던 매국노들이니까, 이 사람들의 유일한 논리는 반공이에요. 반공으로서 아직까지 정당화했거든. 반공할 것이 없으면 용공분자를 만들어내는 거예요. 반공 하나밖에 없어요. 유일한 생명선이 반공 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것도 가짜 반공이지.” 이 핵심적인 인터뷰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진정한 민족주의와 우익의 개념, 매카시즘, 그리고 어두운 한국의 현대사를 살펴봐야 한다.

 

먼저 민족주의(民族主義, nationalism)는 정의하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백과사전에서도 ‘민족주의는 본래 매우 비합리주의적이고 다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것에 일률적인 정의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운을 떼고 있다. 사실 민족주의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려면 16세기 절대주의 시대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절대주의 이전과 이후의 유럽 국가관이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세 유럽의 모습은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먼저 국가라는 개념은 거의 없었던 시절이다. 우리가 이미지로 알고 있는 ‘왕권국가’의 모습은 사실 16세기 절대주의 시대의 모습일 뿐이고, 그 이전의 진짜 ‘중세 유럽’이라고 하면 영주들의 성 단위 통치가 주류를 이루며, 왕권이라는 것은 그런 성 단위를 묶은 것에 불과했던 모습이었다. 왕국이라고 하는 개념이 지금의 나라와는 전혀 다르고, 오히려 가문에 의한 통치, 종교에 의한 통치가 횡행했던 시절이었다. 저 유명한 합스부르크 왕가는 일개 가문이 실제로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루기까지 하였으니, 현대인의 국가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대였음이 분명하다. 그런 시대에 대규모 전쟁을 통해 절대적인 왕권이 형성되면서, 귀족들이 왕의 신하로서 왕궁에 모이기 시작했고, 좀 더 강력한 단위체로서 국가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제껏 영토나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땅덩어리에 금을 그으려면, 당연히 ‘어떤 기준’이 필요할 것이니, 그 효과적인 기준으로서 작용한 것이 바로 민족주의였다.

 

성을 점령하던 때에는 영주와 기사들을 굴복시키면 그만이었다. 전쟁은 영주들과 기사들 사이에서 일어나던 일이었고, 농민들은 그저 영주만 바라보면 된다. 하지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더 많은 병사들이 필요하기 시작했고, 군대가 필요해졌다. 군대는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텐데, 그러려면 일반 병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거나 지킬 것이 생기게 만들어야 했다. 전쟁과 관련이 없던 일반 농민들이 전쟁과 관련이 생기게끔 하려면, 그들이 국가라는 단위체에 직접적으로 속하게 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유럽인들에게 가장 간단하게 ‘우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방법은 ‘민족’이었다. 이 민족이라는 것은 사실상 실체가 없는 것이지만 여러 가지 장치들-이를테면 조국(fatherland, 시대가 지나면서 좀 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motherland로 변화한다)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거나, 그들의 권익을 상승시키고 주장해주는 방법-을 이용하자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었다. 독립 국가를 국민들이 ‘우리들의 국가’로서 받아들여 사랑하고 이에 긍지를 느끼게끔 하는 이런 이념적 방식들을 민족주의라고 보면 된다. 앞서 나왔던 교수님의 발언을 다시 보자. 일제 강점기에 같은 민족을 버리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제국에 협력했던 친일파와 매국노들이 과연 이런 민족주의를 주장할 수 있을까. 폭력에 굴복해 협력했던 힘없는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자리 차지하고 권력을 누린 진짜 매국노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권력자 계보로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니까.

 

그럼 이번엔 우익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우익은 보수를 뜻하는데, 보수란 개혁과 혁명의 반대이다. 앞서 설명한 공산주의에서 상부구조, 혹 낡은 경제제도, 유산계급을 뜻한다. 당연히 보수 계층은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던 경제 체제를 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 경제 체제에서 안정적으로 쉽게 소득을 올리고 권력을 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도 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신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요구하는데, 곧 한정된 그 자리가 자신에게도 주어지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 대부분은 그냥 포기하거나, 정권에 아부하거나, 아니면 혁명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들을 점잖게 타이르는 우익의 논리가 다름 아닌 민족주의다. 민족주의의 기원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살펴보라. 초기에 그것은 전쟁이나 정치와는 상관없이 살아가던 농민들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한 선동과 거짓말에 불과했다. 왕권의 안정을 위해 병사로 내몰리던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간신히 얻어낸 것이 그 소중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이지만, 시민의 권리라는 것도 교묘한 술책에 불과한 순간들이 있다. 민족주의를 들먹이며 권력자들이 시민을 전쟁터로 내모는 그 순간, 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대의를 읊조리면서 실상은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헌데 우리나라 우익들은 민족주의조차 들먹일 낯짝이 없다. 그들이 다름 아닌 매국노이고 배신자들인데, 어느 누구에게 민족주의를 들먹일 수 있던가. 그래서 그들은 반공을 들먹인다. 매카시즘은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의 폭탄적인 연설에서 발단한 것이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나 이번에 개봉한 ‘인디아나 존스 4’에서 나오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와 광기의 시대가 매카시즘을 설명해준다. 그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선동하였으며, 이를 배경으로 ‘공산주의자’라는 손쉬운 공격법을 만들어 냈다. 공산주의의 실체를 알기 위해 일일이 공부할 사람도 드물거니와, 알려고 하면 그냥 손쉽게 잡아 가두면 된다. 국가가 하지 말라는 일에 국민적인 여론을 형성하여 반항하던 시대도 아니고, 공산주의에 대한 이론적 교육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게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공산주의와 연관되면 잡혀간다는 공포와 실제로 잡아 가두고 고문하는 등의 국가적 폭력을 기반으로 한 통제 속에 점점 공산주의는 악으로 변해갔고, 이를 조금만 이용하면 자기 뜻대로 정치를 주무를 수 있었다. 공산주의자라고 지목하기만 하면, 그가 진짜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별개로 일단 잡혀가기 때문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매카시즘적 방식은 수없이 찾을 수 있다. 일반인들도 조금만 자기 뜻에 맞지 않으면 상대방을 ‘고소’하겠다고 겁을 주곤 하는데, 이는 법이라는 공권력에 대한 무지를 이용하여 공포심을 유발하는 전략이다. 실제 남소로 기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는 일반인들 사이에 갈등을 자기 뜻에 맞게 무마하는 아주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멀리 미국까지 건너갈 필요도 없이, 우리는 그 어두운 우리의 현대사에서 이와 똑같은 일들이 어떻게 벌어지곤 했는지 익히 알고 있다. 온통 ‘빨갱이’에 대한 적색 콤플렉스가 넘쳐났고, 비밀경찰과 안기부, ‘서빙고 호텔’이라고 불리던 지하 벙커 등이 실존하던 시대가 불과 몇 십 년 전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 손쉽게 처단하곤 했던 그 정권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지금, 우리나라 우익은 그 향수에 젖어 다시금 똑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한국의 교회와 목사들은 노골적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결국 그들은 기독교의 본질보다는, 주입당한 이념적 흑백논리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역시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아부하려는 것이려나. 다름 아닌 하나님의 종이라던 그들이, 더러운 맘몬 숭배를 하고 있는 셈이다.

 

 

공산주의에 대해 길게 설명했으니, 이제 주제로 돌아와서 기독교와 좌파의 연관성을 찾아 볼 차례다. 먼저 차근차근 좌파라는 것에 대해 정의하고, 왜 기독교가 좌파이고, 어째서 사회주의와 맥락이 닿는지 설명한다.

 

좌파는 앞서 설명한 우파의 대립각이다. 사실 여기서 좌우의 명칭 구분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저 서로 반대편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유명한 모 교회 목사가 이 좌우 구분을 성경에 있는 표현과 엮어 아주 요상한 해석을 만들어 냈던데, 그건 이단(異端) 수준도 아니고 그냥 개소리다. 우편이 하나님의 편이고 좌편이 지옥이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목사란 자가 지껄이고 있다니, 참으로 불쌍할 따름이다. 거짓 선지자는 지옥에 간다. 각설하고, 우파가 보수이고, 집권 계층이고, 지배 계급이라면, 좌파는 당연히 개혁이고, 무산 계층이며, 피지배 계급이다. 이 정의를 따른다면, 부자-서민-빈민의 기준으로 나눌 때, 서민과 빈민은 피지배 계급이고 무산 계층이기 때문에 당연히 좌파의 개혁 세력에 동조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나라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재미있게도 빈민 계층에 있는 사람들조차 우파를 자처하면서 ‘빨갱이’를 욕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웃긴 코미디인지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도록 하겠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좌파는 빨갱이가 아니다. 좌파는 그저 부자와 권력자에 대한 역사적 대립각이고, 2%만을 위한 정치와 경제 체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체제로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당시 부르주아 계층은 지금 집권 계층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명백한 좌파였다. 종교혁명의 핵심이었던 신교(기독교)도 지금은 집권층의 종교가 되었을지언정 당시에는 명백한 좌파였다. 기존 질서였던 거대 가톨릭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대들던 그 당찬 신교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일단 예수 역시 좌파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종교적, 정치적 권력을 쥐고 있던 바리새파와 제사장들에게 대항해 비판하고, 병자와 여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감싸 안았다. 그것이 좌파가 아니고 무엇인가. 예수가 행했던 모든 일들이 그 당시로서는 엄청난 개혁이고 혁명 주동이며, 제도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들이 예수를 정치적 선동가로 파악하고 두려워하며 처형시켰던 것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들이 섬기던 하나님이 보내신 그들의 메시아를 보지 못하고 정치적 선동가로서 처형한 것은 무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권력과 부가 그들의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었을까.

 

예수가 주장했던 약자에 대한 사랑은 사회주의에서 실천되었는가, 아니면 자본주의에서 실천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으로 갈음하도록 하겠다. 사회주의 역시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나, 그 기원만큼은 개인주의의 반대말로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자본주의의 경제체제는 사적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와 자유경쟁을 수단으로 삼고 있는 제도로서, 개인의 소유, 개인의 경쟁으로 되어 있는 경제적 개인주의의 제도이다. 그런데 19세기 사회사상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여러 모순과 병폐들, 즉 생산의 무정부성·자본의 집중·자원의 낭비·실업과 빈곤의 증대·주기적 공황·제국주의와 전쟁 등이 나타나는 것은 자본주의의 기본원리인 개인주의에 근본원인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 개인주의를 폐지하고 반대 원리로 대치해야만 된다고 생각했으므로, 사회주의란 말이 개인주의의 반대말로서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두산 백과사전 참조).’ 이 사회주의는 이후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를 주장하면서, 그 급진적인 방법으로서 공산주의로 분화되었고, 이를 기초로 바람직한 사회적 개조를 이루어 자본주의보다 한층 훌륭한 사회를 만들 것을 바라는 사상이 사회주의의 넓은 의미가 되었다.

 

자본주의는 그 병적인 이윤 추구와 자본 집적 때문에 ‘신용’이라는 믿을 수 없는 제도를 만들어 냈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최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이것은 일단 타인의 이윤을 최소화함으로서 이룰 수 있는 목적으로, 결국 타인에게 사랑을 베풀라는 명제와 대치된다. 또한 비율의 마술을 알아채고, 최대 이윤을 위해 자본 집적을 시작했다. 비율의 마술이란, 같은 1%의 비율이라도, 1,000원의 1%인 10원보다 100억의 1%인 1억 원이 훨씬 절대적 가치가 높음을 의미한다. 당연한 산수에 불과한 이 비율의 마술은 이후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근간이 된다. 이 두 가지 요소만 조합해도 자본주의는 충분히 파괴적일 수 있었다. 남의 것을 최대한 빼앗아, 내 것을 최대한 모으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많은 돈을 계속해서 벌어들이는 이 구조는 그러나, 사람의 끝없는 욕심에 의해 한층 더 진화하게 된다. 일정한 자본이 있다면, 그것을 담보로 더 많은 자본을 빌릴 수 있는 이 신용 제도는, 자본주의의 파괴성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스스로 자멸할 빌미를 만들게 된다. 대공황과 유럽 대전 이야기는 너무 많이 예를 들어서 지루할 테니,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서브 프라임 사태를 이야기해보자. 서브 프라임은 신용 등급이 낮아서 대출을 쉽게 빌릴 수 없었던 중산층 이하 계층에게도 대출의 문을 열어준 혁신적인 상품이었다. 당시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엄청난 활황이었기 때문에, 은행은 땅을 살 사람에게 앞으로 살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대출받아서 산 땅이 오르면 대출금과 이자를 챙길 수 있다는 계산이었던 것. 이렇게 돈을 빌려 부동산을 사고 이득을 본 사람들은 곧 그 돈으로 똑같은 짓을 하고, 결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생기면서 연쇄적으로 부도가 났던 사태가 바로 서브 프라임 사태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멍청한가 하면, 이 신용 경색에 의한 연쇄 도산은 무려 100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반복되어온 일이라는 사실이다.

 

이 멍청한 자본주의의 실패는 공산주의의 실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여러 번 거듭되었지만, 인간의 욕심은 자본주의를 놓지 못한다. 그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가면 세상을 내 것처럼 부릴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인간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전복시켜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들기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자본주의를 이용하여 나도 잘 살아보겠다는 동기가 압도적으로 강하다. 결국 많은 사회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2%의 자본가와 권력자만 잘 살게 되는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는 것에 동의했으며, 다만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것이 수정 자본주의인데,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사회주의적 자본주의이다. 2%의 인구가 70%의 부를 거머쥐고 있는 이 상태를 지속시키면 98%가 들고 일어날 테니, 적당히 부를 분배하여 주자는 이야기이다. 사회주의를 기본으로 한 복지 정책이 등장했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물론 몇몇 경제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아프리카 등 제 3세계나 자국의 빈민들에게 기부하는 행위는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들은 예수가 가르친 사랑을 실천하는데 관심이 있다기보다, 여전히 자신의 장래 수익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에 불과한 셈이다.

 

 

 

<출처 : http://hantoma.hani.co.kr/board/ht_politics:001001/24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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